먼나라 이웃나라 - 일본편을 읽고내가 본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에서 가장 그 제목에 걸맞는 나라라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일본이다. 흔히 일본을 정의할 때 가깝고도 먼나라 혹은 이웃나라라고 주로 정의 했기 때문에 더욱더 책의 제목이 친근한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긴 역사를 함께 해온 동반자이자 때로는 적이기도 했다. 한때는 서로 문물 교류를 통하여 친분을 쌓았지만, 후에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서로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읽고 또한 일본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나 조차도 마음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의 감정은 과거의 사건 이후로 마치 습관처럼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다. 일본은 그 이후로 많은 발전을 이뤄 지금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강대국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지금처럼 세계화되고 정보화된 21C에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히고 또한 타협해야한다. 과거의 일 등으로 인한 선입견을 가지고 일본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책의 앞부분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객관적인 시야를 통해서 가치중립적으로 일본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인의 가치관 사고체계 그리고 일본의 문화 등 여태까지 별반 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서양의 이웃나라들을 보면 어느 정도 뒤섞여 상당한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언급하듯이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천지차이로 다른 이웃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수저를 놓는 방법과 전통의상으로 인한 걸음새의 차이, 한국의 온돌방과 일본의 다다미를 깐 방, 음식 맛의 차이에서 심지어 술 마실때의 예절까지 다른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종교문제를 보면, 한국은 하나의 종교를 가지면 철저히 그 종교를 따르는데 반해 일본은 종교를 갖든 안 갖든 종교의식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한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국가적 상징인 덴노(=천황)을 섬기고 있다. 즉 덴노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국민을 상징하는 존재이며 일본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 때문에 덴노가 없는 일본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섬나라의 특성상 고립되어 한정된 범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타협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바로 이것이 일본의 건국이념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의 기본인 “와”사상이다. 따라서 와가 중요시되는 사회에서는 자신이 분수를 알고 자신이 맡은 몫 즉, 이치닌 마에를 완벽히 해내야 했다. 남에게 신세지거나 폐를 끼치는 것을 ‘메이와쿠’ 라 하여 이런상황이 발생될 경우는 조화가 깨지고 사회가 발전할 수 없었다. 또한 일본인들의 특징이라 하면 바로 “온(溫)”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온을 은혜나 도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도움 받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의 문화와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힘들 때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 이것을 오히려 당연하다 생각한다. 인심좋은 이웃 사촌이란 말이 생긴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도움을 빚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온”과 “정”으로 통하는 한국의 문화, 우위를 가릴 수는 없지만 이 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면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일본은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라고 불리운다. 세계대전 이후로 회생할 가망성이 없어 보이던 일본이 6.25 전쟁을 계기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잿더미 속의 일본을 지금의 경제대국으로 일으킨데에는 7가지 성공비결이 있다고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이이도코토리” 정신이다. 흔히 모방의 천재라 불리는 일본의 특징을 명확히 나타내주는 단어이다. 경제 뿐 만 아니라 정치 종교 문화 군사 사회 제도 등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다. 아무리 외국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거리낌없이 취해서 자신에게 맞도록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일본인의 특성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특유의 장인정신과 최고, 완벽을 추구하는 노력에다가 특유의 기쿠바리 정신까지 가미해서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만들었다. 또한 정경관의 밀착, 연공서열, 종신고용제도 등의 독특한 고용제도, 가격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한 대량 생산 등 그밖에 많은 것들이 있다. 성공비결이 되었던 이 중에서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 요인들도 많다. 예를 들어 정경관의 밀착을 본다면, 뇌물 문화가 성행하여 일본의 발전에 장애를 주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저축률 1위라는 나라로서 국민이 돈을 쓰지 않아 그것 또한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근검절약하는 정신은 아주 좋은 현상이지만, 돈이 활발히 움직여야 국가 경제에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목 차1. 루소의 사상적 배경(1) 계몽시대의 사상- 휴머니즘과 과학정신- 로크의 자연법2. 루소의 교육사상(1) 성선설이란 무엇인가(2) 소극적 교육이란 무엇인가(3) 자연주의 교육의 목적3.『에밀』의 출현과 수난(1) 루소 이전의 아동관(2) 계몽시대의 아동관(3) 루소의 교육경험(4)『에밀』의 출판과 판매 금지4.『에밀』의 구성과 전개제1부 유아기제2부 아동기제3부 소년기제4부 청년기제5부 여성교육?시민교육5. 루소와 현대- 병든 현대문명1. 루소의 사상적 배경(1) 계몽시대의 사상? 계몽시대 :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시기를 말하며 18세기 중엽 루소의 전성기와 함께 그 절정기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계몽 : 어둠을 밝힌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것은 인간 내부에 잠들고 있는 이성을 각성시킨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당시의 절대 왕권 정치와 기독교의 막강한 권력이 인민 위에 군림하 는 폭정하에서 야기되는 사회악을 어둠으로 간주하고 이를 인식, 비판하는 인간의 이 성을 빛으로 본 것이다. 계몽사상의 뿌리는 르네상스의 휴머니즘과 17세기에 지배적인 영향을 준 과학 정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휴머니즘과 과학정신? 휴머니즘: 신 앞에 굴복하는 인간에 대한 거부의 정신이다.즉, 중세의 절대자 신에게 인간의 권리를 양도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포기 하는 신본사상에 대한 인간의 재확인 또는 인간의 재창조를 의미한다.한편 인간의 창조주 신을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신이 아닌, 자연 속 에 있는 신과 하나가 되는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르네상스의 인간은 자연 과 융합되는 인간이며 자연을 지배하거나 자연에서 분리된 인간은 아니다.휴머니즘을 새로운 사상으로 부각시킨 요인은 중세교회의 타락으로 상실된 교권과 이에 반비례해서 신장한 과학의 제반 발명 내지 발견에 있다.이와같은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이나 신의 증명은 기실 데카르트의 독창적 산물이라기 보다, 17세기 프랑스의 형이상학의 주류를 이룬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에 동물학자 헥켈의 반복설을 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 린이의 성장 발달은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인위적으로는 수정 불가능한 것으로, 각 단계마다 그 고유한 특징과 능력이 나타난다고 한다. 교육은 자연에 의한 교육이며, 인간 과 사물의 교육은 자연의 교육에 일치할 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연, 인간, 사물의 세가지 교육은 성장단계에 따라 각각 학습원리가 설정되고 그에 따라 학습 효과가 나타나지만 어느 경우에나 자연이 중심 기준이 된다.?루소의 아동관 : ⑶성선설에 기초를 둠⇒ 『에밀』의 첫 장 첫줄에 ‘만물은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 선하다’는 기본적인 명제 를 제시하여 어린이의 본성을 분명히 규정한다. 인간의 본성을 선으로 본 루소의 인간 관은 그대로 어린이의 관.점으로 이어지며 그의 교육론의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루소의 성선설은 물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선에 대한 인식은 과학적 인식론에서가 아닌 종교적 인식, 즉 믿음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조물주의 존재는 스콜라 철학에서 합리화된 신의 증명과 같은 논리를 지닌 것으로, 조물주 자체에의 의심을 일단 접어둔다면 다음은 조물주의 성격에 대한 논의가 된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주인이 되는 신은 그가 만든 것을 악이라고 규정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다만 만든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만든대로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곧 선이다.자연상태에서 자연인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런 생활에는 악이 끼어들 수 없다는 그의 생각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그의 선에 대한 개념은 사회도덕이나 사회인습에서 정해놓은 도덕적 개념으로서의 선과 다르다. 즉, 사람이 만든 선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선을 자연선으로, 그리고 성선설로 보는 것이다.(2) 소극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소극적(negative) : 『에밀』에서 ‘초기교육은 소극적이어야 한다‘ 강압적인 교육은 안된다는 뜻.⇒ 그가 소극적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Negative는 기독교의 원죄설에서 본 아동관과 강시키는 시민이 되는일은 반드시 일치하는 일은 아니다. 즉, 개인의 자유와 시민의 의무는 서로 모순된 혹은 이중적 양상을 보여준다고 하겠다.?『사회계약론』,『에밀』 ⇒ 모순된 인간상의 통일을 시도즉, 로크나 계몽사상가들의 민주주의가 이기적 개인의 사적자유를 일부 양도하는 것으로 국가를 형성하는 것에 대해 루소는 전면적으로 양도함으로써 각자는 국가를 자기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민의 일반의지에 복종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와의 모순을 제거하려 한다.그러나 『에밀』에서는 그와같은 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적 교육으로서의 시민교육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우선 가정교육과 개인교육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에밀의 교육목표 : 자연인의 모델을 써서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그 모델은 원시인처럼 숲속에서 사는 그런 자연인이 아니라 도시 속 에서 사회생활을 해야 할 인간으로 교육되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선이 자연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즉, 자연인 그대로 사회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는 방법을 바꾸어’ 시민으로서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은 곧 반사회적 교육 혹은 반시민교육으로 파악되어서는 안되고, 또한 그가 에밀에서 언급한 인간과 시민을 동시에 교육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시민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교육이 시민교육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그 이유는 아직 시민의 권리를 받기 전의 어린이 교육은 인간교육이 되어야 자연에 적합하다는 데 있다. 이는 순서로 보아 또는 자연질서에서 볼 때 타당하다고 본다.『에밀』 제 5편 끝부분에는 에밀을 위한 시민교육이 서술되었고 그를 위해 사회계약론이 요약되었다. 에밀은 시민교육의 실습을 위해 여러 곳을 여행하며 적당한 국가를 찾아보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결국 시민으로서의 경험을 얻을 수 없게 된 에밀은 그 후 아무 계획 없이 교사의 곁을 떠난다.달 이전의 단계, 이성적이나 부모와 동거하는 단계, 결혼후 부모와 별거하는 단계로 구분된다. 이성을 제일 원리로 하는 계몽시대의 인간관은 이성을 기준으로 어린이를 다루었다.루소의 아동관은 이러한 아동관의 변천을 배경으로 성립된다. 루소 자신은 당시의 철학자중 한 사람으로, 그 흐름 속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백과전서』에서 설명된 것과 반드시 일치한 것은 아니다. 루소는 그의 고유한 스타일로 그 시대의 새로운 아동관을 수립했으나 합리주의 일변도의 고찰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장, 즉 이성을 기준으로 한 아동관이 아닌 감성의 중요성을 들고 나왔다.일반적으로 『에밀』을 어린이의 발견서, 혹은 어린이의 복음서로 부르는 이유는 어린이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속성을 발견하고 신체적 발달의 특징을 각 단계로 구분하여 고찰한 데 있고 또한 그 특징에 상용하는 교육 계획을 제안한 데 있다. 그가 어린이를 객관적인 자연의 사실로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신체적 성장에 주목하여 건강한 어린이의 양육을 위해 모유를 권장하고, 팔 다리를 자유롭게 운동시킨 일, 감각을 통한 학습을 중요시 한다는 점등 루소의 독특한 필치로 묘사된 교육론이 바로 『에밀』이다(3) 루소의 교육경험두 번째 배경으로 루소의 교육경험을 들 수 있다.루소는 일생동안 소위 공식 교육을 받아 본 일이 없다. 루소는 태어나자마자 곧 어머니를 읽었으나, 어머니가 남겨 놓은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읽은 책을 오래기억하고 있었으며 고백에서도 그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그 후 봐랑부인 을 만나 안정된 생활을 찾자 독학으로 공부를 했으며 그의 대부분의 지식은 이때 얻은 것 으로 알려졌다.그의 교육자로서의 경험은 1740년에 당시 리옹의 행정장관이었던 마블리씨 집의 가정교 사가 되었을 때 얻은 것이다. 겨우 수개월간의 짧은 기간의 교사 경험이었으나 아마 이 경험이 에밀의 출발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심리적 동기가 된다고 할 수 있 겠으나, 그 자 다가왔다. 6월 초 책은 경찰에 압수되었고, 저자 체포 명령이 떨어지면서 책은 판매금지 되었다. 수집된 책은 집행인에 의해 파리에서 소각되었고, 주네브에서도 『에밀』 견본이 압수되었다. 화란 정부 역시 출판인가를 몰수하고 재고품을 소각토록 했다. 8월 초에 개최된 소르본느 신학부 교수단집회는 검열 계획을 결정하고 파리 대주교 크리스토프 보몽(Christophe de Beaumont)은 그 검열 결정을 교서로 만들어 각 교구에 전달했다. 그 교서에는 『에밀』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들어있었다. 9월에 바티칸은 이 책을 금서 목록에 넣었다.1762년 르그랑(Legrand)신부가 쓴 『에밀 혹은 교육론이라는 제목의 책에 대한 파리 신학부 교수단의 검열』을 참조하면 루소는 기독교적 자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자비한 말투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 내용을 추려보면 ‘루소는 정신착란에 빠진 철학자’로 ‘타락과 오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규정되었으며, ‘악마의 이론’을 퍼뜨려 고발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에밀』은 성공을 거두었다. 앞서 인용한 르그랑 신부의 다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쓰여졌다. “그의 책은 해롭지만 열렬히 읽혀졌다. 그 책은 영원한 공포를 불러 일으킬 것이 틀림없는 치명적인 독기로 가득 차 있으며…. 모두가 낮이고 밤이고 길에서도, 방에서도, 시골이고 도시이고 간에 상관없이 그 책을 구한다.”이 책은 아주 빠른 속도로 외국판으로 출판되었고 18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미 전 유럽에 번역판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4.『에밀』의 구성과 전개『에밀』은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총 600페이지(가르니에 판)에 달하는 장편 교육소설이다. 신생아에서 청년기까지의 성장과정을 다섯단계로 구분하여, 각 단계의 발달과정과 이에 적합한 교육을 논의한 교육론서라 할수 있다. 다음 각 단계의 주요한 발달상의 특징과 교육을 간추려본다.제1부 유아기서문과 영아기의 특징을 다루었으며, 주로 신체적인 특성과 감각적인 발달에 대해 그리고 전통적인 육아법을 자연법칙에 의존하여 비판했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