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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평역에서 패러디 비교분석
    곽재구 詩 (1981) : 임철우 小說 (1983)임철우의 소설 은 곽재구의 詩 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두 작품의 비교를 통해 시가 소설화되었다는 점에서 내용과 시점 등 구조적 차이와 그 장르적 특성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시와 소설 장르는 같은 문학 장르이기는 하나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갖는다. 시는 운문의 형태로 소설에 비해 보다 정서적이고 감상적인 성격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시의 내용이나 느낌이 추상적이며 꼭 필요한 말만 표현하는데서 오는 함축성과 그 안에 숨은 깊은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반면에 소설의 경우 산문의 형태로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서술이 특징이다.시의 소설화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인 작품의 비교를 해보자면, 일단 시점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시에서는 나(역장)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었던 것이 소설로 바뀌면서 전지적 시점으로 변화된다. 이와 같은 이유는 장르적 특징과도 관련이 깊은 것으로, 일인칭 시점에서 그 느낌을 함축적이고 주관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시가 적합한 반면에 소설화가 되면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구체화하고 그 점에서 모든 인물과 사건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이 가장 적합하였다고 본다. 그렇다고 소설은 항상 전지적 시점이 적합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의 경우 여러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가 으로 소설화됨으로써 인물이나 사건이 어떻게 서술과 묘사되었고, 얼마나 구체화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먼저 시간과 장소의 서술과 묘사가 구체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은 시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으나 나머지는 나름대로의 상상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려주고 있다. 소설 에서 시간은 대합실의 출입문 위쪽에 붙은 낡은 벽시계가 여덟시 십오분을 가리키고 있으며, 대합실의 눈 내리는 밖과 눈에 띌 만한 시설물이라곤 거의 없는 대합실 안의 묘사까지 눈으로 그려질 만큼 자세하고 섬세하게 전개된다.또한 시에서 ‘그믐처럼 몇은 졸고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로 표현된 사람들이 소설에서는 ‘나’까지 모두 다해 열 명으로 그려진다. 늙은 역장과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사연 많은 각각의 사람들. 시에서 침묵하고 있는 대합실의 사람들이 소설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살펴보면 이렇다. 제일 먼저 제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 완행열차를 보기 힘든 작은 산골 간이역(사평역)을 지키는 늙은 역장이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 톱밥 난로가 놓여져 있는 대합실에 남아 있는 사람 다섯 명이 있다. 한 사람은 줄곧 콜록거리고 있는 중늙은이로, 오래 앓아오던 병이 요즘 들어 부쩍 심해져서 가까운 도회지의 병원을 찾아가려는 길이다. 그 옆에는 삼십대 중반의 농부인 그 노인의 아들이 있는데 역장에게는 이 둘만 낯익은 인물들이다. 한편 중년의 사내가 있는데, 그가 묘사되고 있는 부분은 매우 리얼하며 그의 사연까지 짐짓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흔이 넘었을까 싶은 사내는 싸구려 털실모자에 때 묻은 구식 오버를 걸쳐 입었는데 첫눈에도 무척 음울해 뵈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길게 자란 턱수염이며, 가무잡잡한 얼굴 그리고 유난히 번뜩이는 눈빛이 왠지 섬뜩하다. 오랜 세월을 햇볕 한 오라기 들지 않는 토굴 속에 갇혀 보낸 사람처럼 사내의 눈은 기묘한 광채를 띠고 있다.’이처럼 한 인물을 깊이 그릴 수 있는 것은 소설의 시점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데 있다. 이미 인물의 사정 등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뒤에 중년의 사내가 감옥을 살고 출감해 이곳까지 오게 된 어떠한 사연을 담고 있는지 미리 인물의 묘사에서 조금씩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대합실에는 톱밥 난로주위에 달라붙어 있는 이 세 사람 말고도 잠바차림의 청년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있고, 미친 여자가 의자 위에 벌렁 누워 있다. 청년은 고향에서 유일하게 도회지의 국립대학에 합격한 가족의 희망으로 기대를 받지만 실제로는 제적을 당한 대학생으로 끝내 집에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역에 와 있는 것이며, 미친 여자는 늘 공짜 승객으로 표를 사지 않는다. 이 다섯 명의 인물들 말고도 소설에서는 대합실에 한 번 더 한 떼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네 명의 여자들로 모두 일행은 아니며 ‘몸집이 큰 중년 여자와 바바리코트를 입은 처녀, 그리고 나머지 둘은 큼지막한 보따리를 하나씩 이고 오는 품이 무슨 행상꾼 아낙네들이 분명하다.’라고 묘사된다. 첫 번째 뚱뚱이 여자는 서울에서 돈을 떼먹고 도망간 사평 댁을 만나러 왔다 돌아가는 길이다. 다음으로 바바리코트 아가씨도 앞의 중년 사내와 같이 사연을 짐짓 추측할 수 있게끔 묘사되고 있다. ‘스물대여섯쯤, 화장이 짙은 편이고, 머리엔 노리끼리한 물을 들였다. 얼굴은 제법 반반한 편이지만 어딘지 불결감 같은 게 숨어 있는 듯하다. 도시의 뒷골목, 어둡고 침침한 실내, 야하게 쏟아지는 빨간 불빛, 청승맞은 유행가 가락…… 그런 짤막한 인상들이 티브이 광고처럼 서울 여자의 시야에 잠깐씩 머무르다 사라진다.’바바리코트 아가씨는 신촌의 민들레 집에 몸담고 있는 춘심인데, 그 사실을 모르는 고향집에서는 화장품회사에 다니는 옥자로 여기지만, 뚱뚱이 아줌마는 이미 그렇고 그런 계집애라고 생각한다. 시에서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는 것이 소설에서는 ‘사내가 감방의 허씨 칠순 노모에게 찾아가면서 서울역 앞에서 산 굴비 한 두름, 하지만 사내는 이미 죽은 허 씨의 노모를 만날 수가 없었다.’고 묘사되며 저마다 불현듯 누군가 나직이 내뱉은 “흐유, 산다는 게 대체 뭣이 간디…….”에 대해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한다. 중년 사내에게 산다는 일은 그저 벽돌담 같은 것, 농부의 생각엔 그저 흙과 일뿐이며 서울 여자에겐 돈이다. 또한 춘심 이는 애당초 그런 골치 아픈 얘기는 생각하기도 싫으며, 대학생에겐 삶이란 이 세상과 구별할 수 없는 그 무엇이고 행상꾼 아낙네들에게는 이를테면 허허한 길바닥만 같다. 여기서도 시의 경우 그 한 마디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짐작하게 하며, 소설의 경우는 그에 대한 구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인문/어학| 2010.12.20| 3페이지| 1,000원| 조회(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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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프카의 벌레와 김영현의 벌레를 패러디 관점에서 비교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은 단순하게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작품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유익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고 또한 그 당시 사회적인 상황도 나타낼 수 있다. 이번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과 “김영현의 벌레”이다. 이번 리포트를 통하여 두작품속에 숨어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수업을 통해 얻은 패러디 관점에서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두작가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카프카의 경우, 그가 “변신”을 썼던 1915년의 체코 프라하는 400년에 이르는 독일의 식민지였다. 그가 살고 있던 곳은 이미 유럽의 자본주의적 체계가 삶의 유일한 양식으로 뿌리내린 곳이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에 빌붙어 살았으며, 독일인에게는 비굴하고 가족 안으로는 폭군 같은 모습이었다. 이에 비해 카프카는 독일인에 비해 체코인을 좋아했지만, 체코인들은 독일인에게 기생하는 유대인을 싫어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의해서 결국 카프카 개인에게는 독일인도, 체코인도, 그와 함께 자신의 아버지조차 권력자로 드러난다. 그가 성인이 되어 집안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지고 그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관련된 법률문제를 맡아보는 ‘산업재해보험공단’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게 되고, 당대 사회가 보여주었던 괴물 같은 관료주의와 이를 둘러싼 제도적 장치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게 된다. 이에 비해 “창작과 비평” 1989년 봄 호에 발표된 김영현의 소설 “벌레”의 경우는 작품 내적 시간과 작품이 발표되었던 작품 외적 시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작중 시공간은 군부독재에 의해 사회가 파행적으로 흘러가던 유신 시기였다. 정권은 자신의 권력 지속을 위해 전 방위적으로 사회를 억압?구속하였으며,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시키려 하였다. 그 결과, 이 시기 우리 사회의 학생 및 지식인은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다양한 형태로 권력의 작동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김영현은 그 후 남한 사회의 진보진영의 주요 인물들로 위치한 여러 인물들과 함께 정치적 탄압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시기는 유신독재의 서슬이 그 어느 때 보다 퍼랬던 시기로, 권력의 폭력과 그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강하게 일어났던 시기였다. 따라서 김영현의 수감 기억은 독재 권력에 의해 철저히 비인간화되었던 처절한 체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작품의 외적인 시간인 1980년대 말은 남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한 시기로 노동자 대투쟁을 비롯하여 군부정권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민중운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이에 따라 다양한 사회변혁의 담론이 분출한 시기였고,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 발맞추어 문학 역시도 강력한 정치적 성향을 담고 사회변혁의 이념을 구가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10여년의 거리가 있는 작품 내적 시간과 작품 외적 시간은 육체에 의한 기억으로 인해, 그리고 자유와 민주화를 갈망하던 정치적 상황의 동질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두 작가들의 사회적으로 처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작품은 서서히 완성되어 갔다. 이제 작품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카프카의 변신”이다. 작품 속에서 그레고르의 변신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가족의 최대 문제는 현실 속에서 다시 일상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변신한 그의 존재는 단순한 가족의 짐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해버린다. 여기서 이들이 회복해야 할 자본주의적 일상성이란 부르주아 사회의 일상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적 사회 체의 여러 기제들 속에서 구조화되어 있는 욕망의 코드이며, 가족 성원들의 욕망은 이러한 코드화된 욕망의 표현에 불과하다. 따라서 소설은 그레고르가 가장 사랑했던 누이의 입을 통해 방 속에 유폐되어있던 그를 버리자는 말이 나올 때 가장 충격적인 양상을 띤다. 작품의 맨 말미에서 죽은 그레고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소풍을 가는 가족들과 그 과정에서 모두들 새롭게 활기를 회복하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김영현의 벌레“이다. “벌레“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시위예비혐의“로 적발된 적이 있고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벌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벌레가 되는 과정이 그냥 한 번의 수감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옥살이와 군대라는 곳에서 억압과 폭력 등으로 인해 자신이 점점 벌레라는 생각으로 빠져들게끔 만든 것이다. 이처럼 ”변신“과 ”벌레“속에는 모두 멀쩡했던 자신이 혐오스러운 벌레로 변한다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이는 두 작가 처한 사회적 상황이 모두 억압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잔인한 사회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두작품 모두 ”벌레로의 변신“ 이라는 주제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변신“이라는 부분에서도 차이점은 있다. 카프카의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자신이 벌레로 변하는 것에 대해서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현의 작품속의 주인공은 자신이 변하는 것에 대해 혐오스럽고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작가가 처한 상황에 있다. 카프카가 처한 상황은 체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지 벗어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김영현 자신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은 억압과 구속이 많았던 군사독재 시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억압받고 구속을 시키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몸부림이었던 것 이다. 이처럼 두작가가 개인적으로 처한상황속에서 작품속의 가장 중요한 변신이라는 것의 차이가 들어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두 작품에서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카프카의 “변신”속의 주인공은 결국에는 죽어서 없어지는 반면에 김영현의 “벌레”속의 주인공은 끝까지 버텨서 결국에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다. 그가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작가 김영현은 자신의 작품 “벌레”에서 카프카의 “변신”을 기본적인 틀로 쓰고 있다. 하지만 작품 속에 있는 내용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0.12.20| 2페이지| 1,0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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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생전패러디 분석 평가A+최고예요
    ◎ 허생전과 허생의 처 비교 분석1. 전체 내용 비교1) “허생전”의 줄거리.묵적 골에 사는 선비 허생은 돈을 벌어 오지 못 한다는 아내의 핀잔에 10년을 작정했던 공부를 폐하고 장삿길에 나선다. 그는 장안의 거부 변 씨를 찾아가 돈을 빌려 매점매석으로 거금을 번 후, 온 나라의 도적을 모아 무인도를 개간하여 이상국을 건설한다. 그 후 섬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남기고 본국으로 돌아온 허생은 변 씨에게 꾼 돈을 갚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 변 씨는 잘 알고 지내던 어영대장 이완이 인재를 찾는 것을 알고 허생을 추천하였다. 이에 이완은 크게 기뻐하며 변 씨와 함께 허생의 집을 찾아갔다. 이완이 허생에게 국사를 도와 달라는 청을 하니 허생은 시사(時事) 삼난(三難)을 들어 이를 거절하였다. 이완이 이튿날 다시 찾아가자 집은 텅 비어 있었고, 허생은 사라지고 없었다.2) “허생의 처”의 줄거리허생의 처는 그녀의 어머니가 소복을 입고 아버지의 무덤가에 등장하는 꿈을 꾼 뒤,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 백중날 절에 재를 올리러 가기로 마음먹는다. 문득 목을 매어 죽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불안하고 가난했던 그녀는 재를 올리러 갈 돈을 구하러 동생의 집과 큰 형님의 집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집에 정착하지 않는 허생의 삶에 대한 책임만을 강요당하고, 허생이 변부자에게 돈을 꾸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그 곳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허생이 돌아오자 그녀는 허생과 절연하고 팔자를 고치겠다는 의도를 밝힌다.2. 패러디 관점에서의 비교 분석먼저 박지원의 ‘허생전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허생전’은 흔히 18세기 실학의 한 주류였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바탕으로 하여 불완전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작가 박지원이 ‘허생전’을 쓴 의도가 고스란히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셈이다.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고, 동시에 실제적인 해결책 (그의 이상)을 제시하려는 박지원의 의도에 따라, 소설의 줄거리는 ‘허 생’의 사회 개혁적 시도를 따라가며 전개되고 있다. ‘허 생’ 은 조선의 편협한 경제상황을 걱정한다. ‘허 생’은 이상국을 건설한다. ‘허 생’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 ‘허 생’은 이완대장에게 국사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허 생’은 사라진다. ‘허 생’의 삶에는 정치, 사회, 경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 그의 삶에는 무엇이 있는가. 조선 사회의 학자로서 현명했던 그에게, ‘인간 허 생’으로서의 삶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사회’에 있어 필요한 사람임에 분명하지만, ‘허 생의 처’에 있어서는 절실한 사람이 아니다. 이렇듯 ‘허생전’에서는 개인적?일상적 삶에 관한 내용은 흰 공백처럼 텅 비어 있다. 너무나도 사회적인 내용 일색이어서 그가 ‘인간’이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래서 그의 사고는 실증적이지만, ‘허 생’이라는 인물은 픽션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다.이번에는 ‘허생의 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소설의 주된 내용은 그녀의 심리적 갈등에 관한 것이다. 밤낮 글만 읽다가 훌쩍 집을 나가 소식도 없는 남편을 그녀는 기다린다. 그리고 항상 심리적으로 불안함과 괴로움을 안고 있다. 이러한 ’허생의 처‘는 원작 ’허생전‘과 비교하여 상당히 개인적이고도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 속의 소재 또한, 그녀의 개인적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소복을 입고 등장하는 꿈을 꾸고 불길한 느낌이 들어 고민하는 것이나, 항상 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며 끈을 보고는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이 그것이다. 꿈 그리고 자살이라는 소재 그 자체로도 개인적이며, 이를 사용한 작가의 의도 역시 그녀(허생의 처) 개인적 삶에 초점을 맞추는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허생의 처‘는 원작 ’허생전‘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지만, 유교사회 안에서 쉽지 않은 여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다 어머님이 가르치신 바였다. 어쨌든 남편이었고, 살아있다면 언젠가 돌아올 것이었고, 난 기다릴 도리밖에 없었다. 돌아 온 뒤로 남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더욱 오만해졌고, 더는 글을 읽지 않았으며, 늘 나돌아 다니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라는 내용에서 볼수 있듯이 같이 가부장제에 대한 점을 부각 시키면서 결론적으로는 주인공이 이혼을 결심을 하는 장면과 같이 작가는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여성성‘이라는 것을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허생전과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비교 분석1.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에서 허생전을 수용한 부분.‘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에서 허생전을 수용한 부분은 바로 허생이라는 주인공을 수용하였다. 그 인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국어 선생님인 ‘왜냐’ 선생님이다. 여기서 ‘왜냐’선생님은 자신이 지금 현재 속해있는 집단의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 하였다. 학교라는 장소 또한 허생전에서 나오는 현실을 현실에 비유하여 나타내었다. ‘허생전’에 서도 허생이 자신이 처한 현실 세계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것이 학교에서 ‘왜냐’ 선생님이 학교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비유된다. 허생의 기교와 호탕함을 왜냐 선생님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교장이나 교감 나머지 선생님들 역시 허생전에 나오는 양반이나 사대부계층을 보는듯하다.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그 현실에 머물러있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즉, 허생전의 배경과 비판적 지식인으로 그려지는 허생을 ‘허생전에서 배우는 시간’에서 학교라는 배경과 ‘왜냐’선생님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2.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에서 허생전을 변용한 부분.
    인문/어학| 2010.12.20| 3페이지| 1,000원| 조회(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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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과과학(창세기 1-2장의 두가지 창조 기사의 차이점은?)
    먼저 창세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창세기라는 명칭은 이 책 2장 4절의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는 위와 같다”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헤브라이어 성서에서는 이 책 최초의 말씀 ‘처음(태초: 베레시스)에’를 그 명칭으로 하고 있다. 모세의 저서로 알려져 왔으나, 문학적 내용의 분석으로 볼 때는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자료에서 편집된 것임이 명백하다. 즉, 야훼 자료, 엘로힘 자료, 제사자료(祭司資料)의 세 가지 자료로 이루어졌으나 다만 자료의 집성에 그치지 않고, 사계의 여러 학자들이 편집하여 거기에는 통일된 의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자료는 모두가 훨씬 그 이전에 있던 자료를 사용한 것이다. 본서는 크게 보아 2부로 나눌 수 있다. 제1부는 태고사(1~11장)로서 만물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다. ① 세계와 인류의 창조(1~2장), ② 죄의 기원과 낙원 추방(3장), ③ 문명의 기원과 사람의 증가(4~5장), ④ 노아의 홍수 이야기(6~9장), ⑤ 제민족과 헤브라이인의 기원 및 바벨탑(10∼11장)이며, 제2부는 족장사(族長史:12∼50장)이다. ① 아브라함의 생애(12∼25:18), ② 이사악의 생애(25:19∼28:9), ③ 야곱의 생애(28:10∼36장), ④ 요셉의 생애(37∼50장)이다. 이 책은 역사적인 기술이 아니며, 그 편집자가 의도하는 방향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인류 구제사(救濟史)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며, 야곱의 가계가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창세기의 천지창조사는, 다른 여러나라의 국민, 특히 바빌로니아의 개벽설화에 힘입은 바 많다고 하지만, 그 중심사상은 전혀 유대인 독특의 것으로서, 철저한 유일신교의 사상으로서 일관되어 있음을 본다. 또 극히 태고의 사실 중에, 신약의 기본이라고도할 수 있는 깊은 세계관, 인생관, 사회관이 간직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 의미에 있어서, 창세기는 놀라울만큼 하나님의 계시의 글(책)이라 할 것이다. 또 족장사의 부분에 있어서는 그 전기가 보통의 영웅의 전기와는 전연 취이를 달리하여 정복자나 개선장군 같은 위훈(偉勳)도 없으려니와 정치적 경제적 활동에 있어서도 볼 것이 없고, 문학적 예술적 공적의 기술도 없이, 다만 오로지 유일신 하나님의 신앙사로서 시종하고 있음을 본다. 즉 하나님의 눈에 비친 선민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전편에 넘쳐있는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인류의 관계여하에 있는 것으로서, 그 의미에 있어서 본서를 읽는 경우에 비로소 본서의 뜻을 분명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를 일관하는 사상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이를 훈련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전 인류에게 축복을 주시는 일인 것으로서, 본서는 이에 그 단서를 이루고 있다.내가 알고 있는 창세기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한 인간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다. 그래서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고 타락하여 난 아들 가인과 둘째 아들 아벨 가인이 아벨을 시기 질투한 동생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된다. 그런뒤에 노아라는 사람의 시대가 오고 하나님이 진노로 홍수심판을 하게 된다. 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홍수 심판 후 함이 아버지 노아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된다. 다음으로는 아브라함이 나오는데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 이였는데 믿음의 조건을 세웠다 해서함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아브라함 시대 때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당하기도 하고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있었지만 자식이 없어서 몸종을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내서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 아들이 이스마엘이이다. 하지만 나중에 사라가 자식을 낳게 되고 그래서 따로 살게 된다. 아브라함은 재물 실수를 한번 하게 되어 자손 중에 400년간 노예살이를 한다고 나와 있다. 아브라함의 자식 이삭은 리브가 라는 아내를 얻게 된다. 리브가가 2명의 아들을 낳게 되는데 에서와 야곱을 낳게 된다. 에서는 장자였지만 장자 권을 등한시 여기고 야곱에게 빼앗기게 되고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지만 야곱이 축복기도를 받게 되고 에서는 너무 화가 나서 야곱을 죽이려 한다. 그래서 엄마의 고향에 가서 살게 되고 삼촌의 두 딸과 결혼하게 된다. 야곱에게선 12명의 아들이 나온다. 12명의 아들이 나중에 12지파가 된다. 야곱이 레아와 라헬이라는 2명의 아내를 얻게 된다고 했는데 그중에 라헬을 더 사랑해서 낳은 자식 요셉을 더 사랑한다. 요셉을 더 사랑하니 형제들에게 미움 받게 되고 꿈도 볕단이 자기에게 절하더라, 해와 달과 별이 자기에게 절하더라 라는 꿈을 꿔 아버지에게 책망받기도 한다. 형들에게 미움 받던 요셉은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 있는 곳을 가게 되고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애굽에 팔아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요셉은 애굽이라는 나라에 총리가 된다.아버지가 살던 땅에 가뭄이 들어서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릴 듣게 되고 곡식을 사러 온다. 형들이 아직도 다른 형제를 미워하나 확인하고 요셉은 자기임을 밝힌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요셉이 있는 땅에 와서 살게 되고 요셉이 죽고 창세기는 끝이 난다.창세기 전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져 있다. 엘로힘계 문서와 야훼계 문서이다.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칭하는 문서를 엘로힘계 문서라고 하며, 야훼로 표현한 문서를 야훼계 문서라 한다. 창세기 1장은 엘로힘계 문서이며, 2장은 야훼계 문서이다. 큰 차이점은 없으나 관점의 차이는 있다고 본다. 1장은 창조가 된 순서가 나열되어 있으며, 2장은 이미 되어진 일을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다.창세기 1장과 2장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되, 남자인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다. 아담의 혼자인 것이 보기 좋지 않아 창조된 것이 하와, 즉 여자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가 창조되었으므로 결국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볼 수 있다.창세기의 창조기사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창세기에는 두 개의 창조기사가 있다. 첫 번째는 창세기 1:1~2:4 상반 절이다. 여기에서는 바벨론 포로시대에 써진 것으로 추정되는 제사장 문서로 분류된다. 상반절의 내용으로는 태초의 상황(물의혼돈), 하나님의 창조사역(6일동안), 하나님의 휴식(7일째[안식일]) 이렇게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6일 동안 창조의 도식적 구조를 살펴보면 명령의 소개, 명령의 내용, 명령의 결과, 결과의 평가, 시간의 구조로 이루어져있고 6일 동안의 창조 행위를 살펴보면 첫째 날은 빛, 둘째 날은 궁창, 셋째 날은 땅과 식물, 넷째 날은 광명, 다섯째 날은 물고기와 새, 여섯째 날은 지상동물과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사장 문서의 창조기사 메시지를 살펴보면 우주는 창조주 하나님의 잘 짜인 계획과 의도대로 창조 되었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에서는 신들의 전쟁의 결과로 우주와 인간이 창조된다. 그리고 창조된 온 우주는 선하다. 따라서 인간은 이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또한 본문에는 물질과 정신, 선과 악 등 이원론의 개념은 없다. 이러한 구분은 헬라 철학과 고대 근동 종교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세상의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고대 근동 신화에서 인간은 신들의 노예로 창조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연세계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다스리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는 자연의 신격화를 반대하는 것이다.두 번째로는 창세기 2:4하~25절의 내용이다. 하반절의 내용은 인간의 창조, 에덴동산의 창조, 인간의 임무, 여자의 창조로 구성되어 있다.두 개의 창조 기사를 비교 해보면 상반 절은 우주창조 묘사, 반복적, 도식적, 장엄함, 하나님 칭호(엘로힘), 말씀으로 창조, 창조 이전(물의혼돈), 물은 창조의 적대적 요소 이고 하반 절은 인간창조에 집중, 민담과 같은 이야기 형식, 하나님의 칭조(야웨 엘로힘), 도공처럼 만듦, 창조 이전(황무지), 물은 창조에 도움을 줌 이다. 이렇게 두 창조기사는 내용으로 보아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두 창조 기사의 창조 순서에서도 차이점이 있다. 그것들을 비교해보면 상반 절은 빛, 궁창, 땅, 식물, 동물, 달, 별 이고 하반 절은 남자, 식물, 동물, 여자 그리고 이외의 다른 피조물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차이점은 창세기 상반절이 인간의 주소지인 지구를 중심으로 창조를 묘사 하고 있는 반면 하반절은 그 초점을 인간창조에 두고 있다는 차이 일뿐이다. 상반절에서는 시간적인 연속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하반절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0.12.20| 3페이지| 1,000원| 조회(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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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과 과학 1장 정리
    1.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오해일반 적으로 사람들은 과학과 신앙에 관한 대부분에 대해서 오래를 하고 있다. 잘못된 매스컴이나 교육으로 인해 얻어진 정보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 예를 보면 첫째로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 신앙은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학의 발전은 종교의 해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신앙 혹은 종교를 미신이자 미개한 인류문명의 산물이라고 보는데서 나온 것이다. 신앙은 미신적이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할수록 그 설자리가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반종교적 자연주의자 피터 애트킨스가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미신이나 미신적인 신앙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전한 신앙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또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종교의 교리나 체계도 더욱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서 종교가 없어지거나 신앙이 설자리를 잃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과학이 발전해서 신앙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적으론 그렇지가 않다. 첨단과학을 연구하면서도 여전히 신앙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이 많다는 것은 건전한 신앙이 미신이거나 유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는 신앙, 특히 기독교 신앙은 과학적 사고나 과학의 발전을 억제하거나 거부한다는 오해이다. 이러한 오해는 과학의 연구결과가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 가르쳐 왔던 교리와 배치되는 경우 서로 일치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기독교는 새로운 학문의 발전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매우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일부 신앙인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독교 신앙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서구 역사를 볼 때도, 고학은 교회가 세운 대학에서 발전되었고, 교회는 과학의 발전을 지원했었다. 교회는 대학의 설립자이자 후원자였으며 과학은 교회의 지원을 받는 대학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교수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가르쳐졌으며 발전되었던 것이다. 교회는 왜 과학의 발전을 지원했을까? 그 이유는 과학이 발전할수록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더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하나님의 숨겨진 비밀이나 계시가 더욱 잘 드러날 수 있다고 교회가 믿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과학의 발전을 억제한다는 것은 서구 기독교 주류 역사를 볼 때에 사실이 아니다. 셋째로, 기독교 신앙인들과 과학자들은 항상 대립하며 싸운다는 오해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증거로 두 가지 실례를 주로 제시한다. 즉 갈릴레오의 재판과 다윈의 진화론 논쟁이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을 과학과 종교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과장되었다는 것이 최근 학자들의 연구결과이다. 그 당시 역사를 연구해 보면, 이 두 사건을 과학과 종교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과장되었다는 것이 최근 학자들의 연구결과이다. 그 당시 역사를 연구해 보면, 이두사건을 종교가 과학을 억압하고 박해했으며, 과학이 종교에 대해서 반기를 든 표본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갈릴레오 재판의 경우,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당시 교회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당시 갈릴레오의 주장을 지지했던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정치적 힘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갈릴레오의 주장이 그를 지원했던 종교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을 대에는 별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들이 물러났을 때에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과학과 신앙이 항상 서로 대립된다는 오해의 근저에는 과학사를 과학의 시각에서만 주로 보고 집필했던 일부 과학 역사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오늘날 신앙과 과학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려는 연구들이 증가 하고 있다. 이에 관한 저서들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연구 과제도 풍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신앙과 과학의 관계 정립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 두 분야의 새로운 관계 모색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시점에서 신앙인들이 과학에 대하여 그리고 과학자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사고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들이 사고하는 방식은 크게 4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갈등이론이다. 갈등이론은 신앙과 과학은 근본적적으로 화해할 수 없고, 서로 갈등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앙과 과학 양쪽에 다 있는데 두 진영 모두 도발적이고 적대적인 논조를 사용한다. 즉 서로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만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과학적 유물론이 있다 과학 쪽에는 과학적 유물론자들이 갈등이론을 주장한다. 이들은 물질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실재이며 과학적 방법이야말로 지식에 이르는 가장 신뢰할만한고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과학만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를 하는 반면에 종교는 주관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한다고 주장한다. 갈등이론의 또 다른 예는 성서문자주의이다. 이들은 과학적 유물론과 대립하면서 신앙과 과학의 갈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 쪽에도 있다. 성서문자주의자들의 신앙적 열정과 순수한 의도는 높이 평가할만하고 존중할만하다. 하지만 이들이 문자적 내용을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증명하려는 시도는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성서는 초월적이고 초자연적 존재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쓰였으며,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징적인 언어나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론으로는 독립이론이 있다. 독립이론이란 신앙과 과학은 각기 다른 영역이므로 서로 독립되어야 하고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두 분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질문들에 대하여 각기 다르게 대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갈등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독립이론은 신앙과 과학을 완전히 분리하여 서로 다른 영역 안에 머물게 한다. 그리하여 이 두 영역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의 영역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이 둘 사이의 건설적이고 건전한 대화와 교류를 차단한다는 단점이 있다. 세 번째로는 대화이론이 있다. 대화이론은 독립이론과는 다르게 과학과 신앙의 유사점을 강조한다. 독립이론은 과학과 신앙의 연관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만 대화이론은 이 둘을 연관시킬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즉 대화이론가들은 과학과 신앙의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상호관계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이론은 통합이론이다. 통합이론이란 과학이나 신학을 펼치는데 있어서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입장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하여 신학의 이론을 활용하고, 반대로 신학자들은 신학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하여 과학의 이론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의 이론을 통합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함으로 통합이론 자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이론을 창출해 내려고 노력한다.
    인문/어학| 2010.12.20| 2페이지| 1,000원| 조회(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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