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Ⅰ. 들어가는 말Ⅱ. 이론적 논의1.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정의2. 주민참여예산제도 도입 목적3.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시행방식 및 기대효과(1)시행방식(2)기대효과Ⅲ. 사례분석1. 울산광역시 동구의 주민참여예산제(1)도입배경(2)제도 설계(3)제도화 수준 및 성과(4)평가2. 광주광역시 북구의 주민참여예산제(1)도입배경(2)제도화 과정(3)초기 제도화 단계에서의 장애 극복 활동(4)평가3. 비교 분석(1)비교분석(2)사례분석의 시사점Ⅳ. 맺음말Ⅰ. 들어가는 말근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가 예산 및 지방정부 예산 제도는 국민의 대리인들(의회, 행정부)의 심의와 의사결정을 통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운영되어 왔다. 행정부와 국회 간의 기능과 역할 분담에 근거하여 필요 예산의 내용과 범위에 대한 기본 안은 행정부가, 이것의 타당성은 국회가 검토하고 결정하는 이른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근대 예산제도 운영의 핵심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대의제의 위기 논의와 관련하여 국회와 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 원리의 파괴, 그리고 국민 대표자들의 자기이익 추구 경향으로 인해 발생한 ‘대리인 문제’는 이러한 예산제도의 운영과 구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적어도 규범적으로는 주민의 의사에 따라 공공지출 및 조세의 내용 이 결정된다. 즉, 주민의 선호에 따라 정부의 공공서비스 내용도 정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의 선호를 취합하여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제는 투표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투표의 방식은 주민이 정책 내용을 직접 결정하는 방식(직접민주주의)과, 정치후보를 선정하여 그로 하여금 주민의 선호를 대변하게 하는 방식(간접민주주의) 두 가지 기제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공공지출의 결정에 대한 정치적 경쟁도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투표자 개인들의 선호를 모두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게 되며, 또 투표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알지 못 재구성하기 위해 외부적인 제도개선보다 납세자인 주민 스스로가 감시자로 전환될 필요성에 의해 제기된 참여제도라고 볼 수 있다.둘째,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 행정부와 의회 기능 복원을 위한 조정을 목적으로 한다. 주민참여제도는 관료 및 행정부 중심의 폐쇄적인 예산편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 예산편성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대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즉 공공부문의 기능이 효과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면 주민참여예산제도는 불필요한 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과 관련된 의사결정 구조는 일련의 합리적인 과정을 전제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계서적 권한 구조 안에서 의사결정자들의 영향력과 관여가 과도하게 인정되는 형태를 취해 왔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관에 의한 예산편성권, 그리고 예산의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권한 등을 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분산 또는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의 행정부와 의회의 본래적 기능을 극복하고 대체하는 제도로서 고안된 것이라기보다 양자가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객관적인 내용의 활동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조정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문제 해결적 성격을 갖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3.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시행 방식 및 기대효과(1)시행 방식주민참여예산제도를 처음 시행한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시의 주민참여예산제도는 크게 세 가지 참여기구를 통해 주민들의 예산 관여가 이루어졌다.)첫째, 총회 조직으로 매년 3~4월경에 총회를 개최하는데, 지역별, 의제별로 중요한 예산 안건을 중심으로 회의를 수행한다. 총회에서는 지방정부의 전년도 투자계획이 보고되고, 금년도 계획이 설명된다. 총회는 전체 예산관여와 관련된 보편적 시민의 참여가 허용되는 조직이고, 여기에서는 대의원 포럼에 파견할 대의원을 참석자 20명당 1명의 비율로 선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Ⅲ. 사례분석1. 울산광역시 동구의 주민참여예산제도(1) 도입 배경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하게 된 첫 번째 배경은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 요구와 동구청장의 의지이다. 동구청장은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참여예산제도의 도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고, 시민단체들은 재정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참여예산제도의 도입을 촉구하였다. 참여예산제도가 시민단체들의 요구와 민주노동당 소속 구청장의 의지가 결합되어 추진된 점은 주민참여예산제가 처음 시행된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시와 유사하다. 하지만 동구는 참여예산제도 도입의 필요성에서 포르투 알레그레시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시는 고객주의와 호혜주의 정치문화로 인하여 부패한 시의회를 견제하고 시의 통치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통제가 필요했으나 우리나라의 지방의회는 포르투 알레그레시의 의회와 같은 고객주의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예산심의과정에서 제한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에 참여예산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동구 의회의 견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갑용 동구청장(2005)은 “지방권력은 곧 단체장의 권력으로 인식되며 단체장이 가진 가장 큰 권력은 예산권과 인사권”이며 참여예산제도를 통하여 단체장의 예산권을 주민이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구청장의 의지와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참여예산제도 도입의 일차적 요인이라면 참여정부의 제도 도입 권고와 주민들의 참여요구가 제도 도입에 힘을 실어 주었다. 기술한대로 참여정부는 ‘지방 분권 추진 로드맵’과 ‘재정·세제 개혁 로드맵’에 이 제도의 도입을 계획하고 2005년 개정된 지방제정법에 참여예산제도의 시행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켰다. 동구는 현대중공업, 미포 조선 등 대형 사업장과 협력업체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64%가 2차 산업에 송사하는 산업도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상대적으로 젊은, 많은 수의 주민들이 산업체 근무와 노동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 제도에 대한 관심과 참 분과위원회 참석률은 71.3%이다. 포르투 알레그레시의 참여예산제 실시 첫 해에 1,510명이 참석하여 전체 인구수 대비 0.12%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337명이 참석하여 전체 인구 수 대비 0.18%를 차지한 동구의 주민참여율은 우수하다.그러나 높은 참여율에 반해 참여자의 자율성과 대표성 확보에 대해서는 미흡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첫 해에 구성된 시민위원회 위원 총 82명의 직업별 분포를 보면, 시민단체 19명, 직장인 14명, 자영업 21명, 전문직 4명, 학생 2명, 무직 2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업별로는 이렇게 분류를 하고 있지만 82명의 시민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의 경력사항이나 현직현황을 보면 위원들 대부분이 시민단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며, 지역사업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순수’ 주민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이다.아울러 주민대표의 전문성 측면에서 관련 교육 측면의 형식화가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민위원회 위원들을 대상으로 예산편성 관련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고, 예산편성 관련 지식을 제공하기 위한 교육, 일반주민들에 대한 예산편성결과 공개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구의 주민참여예산제의 운영과정에서 시민위원회 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예산교육은 3일간의 1회 교육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위원들 대부분이 예산 관련 전문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흡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2. 광주광역시 북구의 주민참여예산제(1) 도입배경광주광역시 북구의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자치단체장이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을 바탕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방분권 정책,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주장해 온 참여예산제도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행정자치부가 2003년 7월 말에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의 도입을 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주광역시 북구가 전국 최초로 이를북구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를 제정하였고, 이어서 조례시행규칙을 제정하였다. 주민참여예산 조례가 재정됨으로써 예산편성과정에 대한 주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고, 자치단체장의 교체 등에 관계없이 주민참여예산제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전국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있었다.2004년에 조례제정을 통해 도입된 주민참여예산제는 2003년에 시행하였던 주민참여예산제와 비교하여 훨씬 체계적으로 예산편성과정에 대한 주민참여를 보장하였다.우선, 북구청 홈페이지에 주민참여예산제 코너를 구축하였고,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도모할 수 있도록 예산참여 시민위원회의 규모를 축소 조정한 다음에 공모와 추천을 받아 80명 규모의 시민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시민위원들을 대상으로 주민예산학교를 운영했고 공무원 마인드 전환교육도 실시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는 ‘찾아가는 예산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둘째로, 조례 재정을 통해 예산 설명회를 사전 설명회, 분야별 설명회, 총괄 설명회 등으로 체계화했고, 그 개최 시기도 9월 또는 10월 중에 실시하는 것으로 명문화 되었다. 이에 따라 9월 15일에 사전 설명회, 10월18일에 분야별 토론회, 11월 5일에 총괄 토론회를 시민위원회 주관으로 개최하여 주민의견을 수렴했다. 이 기간에 맞춰 홈페이지에 예산요구서를 공개하여 구민들로부터 개별적인 의견을 접수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렴된 의견을 11월 10일에 지방재정계획 심의위원회를 열어 심의하고 11월 12일 최종예산안을 확정해 의회에 상정했다.2004년의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효과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었으며, 예산편성과정에의 주민참여가 ‘협의’ 수준에 그치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이 바로 2005년 6월에 광주광역시 북구 후원과 ‘참여자치21’ 주관으로 개최되었던 ‘광주광역시 북구 주민참여예 크다.
강원 지역산업 발전 방안강원도는 산이 많고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우리나라의 청정 지역이다. 그래서 휴가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를 찾곤 한다. 그러나 환경이 깨끗하다는 것만 빼고는 내세울 점이 없다는 것이 강원도의 현재 실상이다. 어떻게 해야만이 강원도 지역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강원 지역발전 방안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5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첫 번째는 원주 의료기기단지의 지속적 발전이다. 원주 의료기기산업단지는 지난 2004년 산업자원부의 신규 혁신사업인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시범단지'에 선정되어 향후 5년간 집중적인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강원도는 원주 의료기기단지가 기존의 산업단지 기능 외에 혁신기능이 추가된 산업단지로 육성됨에 따라 종전의 산업단지보다 한 차원 높은 지원기능을 갖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원주의 의료기기산업이 앞으로 계속적인 성장을 거두기 위해서는 강원도와 원주시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의료기기 관련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하고 정부에 계속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 또한 수도권까지 원활한 교통망과 물류망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상습 정체 구간인 영동 고속도로의 통행량을 분산시킬 수 있는 제 2영동고속도로의 빠른 완공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또 의료기기 단독산업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춘천의 애니메이션과 강릉의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범 강원도를 아우르는 산업망과 교통망을 발전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 방안은 서울 기반 대학 캠퍼스 유치이다. 현재 서울에 기반을 둔 대학의 강원 도내 캠퍼스는 원주에 있는 연세대학교 캠퍼스가 유일하다. 현재 서울권 대학들은 비대해진 본교의 학생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캠퍼스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 파주에는 이화여대 캠퍼스, 국민대 캠퍼스, 서강대 캠퍼스가 동시에 건설되고 있다. 강원도도 접근성 향상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지방 캠퍼스를 유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원과 서울 지역 간 KTX 개통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KTX가 개통된다면 강릉에서 서울까지 1시간 이내에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 제 2영동고속도로 개통 등 강원도가 추진하고 있는 접근성 개선 방안이 무리 없이 진행된다면 강원도도 캠퍼스 유치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강원 도내에 캠퍼스를 유치한다면 수많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3개 대학교가 동시에 들어설 파주시도 엄청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캠퍼스 유치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대학들이 강원도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강원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세 번째 방안은 DMZ의 효율적 활용이다. DMZ는 길이가 248Km나 되며 3개 시·도와 15개 시·군·구에 걸쳐있고 잘 보전된 환경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DMZ는 생태·역사·문화·안보 등을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관광단지 조성, 평화도시 건설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이 모색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활용 방안은 남한 측의 일방적인 계획과 주장으로 실천되지 못하여 왔는데 만약에 북한과 협의 하에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한층 활용이 가능하게 되고 또한 자원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요즈음 새 정부가 DMZ의 활용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어 정책반영을 위한 강원도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비무장지대 내 학원 도시나 산업연구도시 또는 평화 생명벨트 조성 등 북한과 협의 하에 이용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 해 볼 수 있다. 이는 남북한이 이해관계가 있는 DMZ를 매게 체로 통일논의를 함으로써 강원도의 선도하에 실질적인 통일논의에 접근 및 활용방안의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또한 DMZ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살아있는 생태·문화 등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관광객 유치에 나선다면 DMZ 인근 지역경제 발전과 주변 관광산업 발전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05년 초반 강원도와 문화 관광부 등이 나서서 DMZ 인근지역 개발을 위한 포럼 등을 개최하며 열을 올렸지만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DMZ 개발을 위해 나서고 있는 요즘이 강원도에게 찾아온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강원도가 연계하여 DMZ 개발을 위해 노력한다면 강원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넷째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양양국제공항 활성화이다.영동권 허브 공항의 필요에 따라 지난 2002년 문을 연 양양국제공항은 국내 공항중 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국내 어느 공항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그러나 양양국제공항은 열악한 접근성, 배후도시 및 배후산업의 부재 등으로 인해 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공항으로서의 면모를 잃고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공항과 인접해 있는 배후지역의 최대 관광지인 설악산과 공항과는 40분이 넘게 걸리며 강릉, 동해권 지역에서 공항까지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걸리는 등 접근성이 매우 열악하다. 때문에 현재는 부산-양양간 국내선 1개 노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취항을 멈춘 상태이다.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양양공항을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첫째, 대외 교역 향상을 위한 기능의 확립이다. 먼저 대북한 관문공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시험 운행하였던 북한의 선덕공항과의 정기 노선 개설이 필요하다. 또 환동해권 공항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의 직항로 개설이 이루어져야 한다.둘째, 철도 및 도로망의 개설을 통해 접근성의 제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개설되고 있는 양양 서울간 고속도로의 조기 완공과 동해선 및 동해 중부선 등의 철도 인프라의 확장 등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공항에 대한 접근 교통망이 개선된다면, 공항과 인근 산업단지 및 항만시설간의 연계성이 높아짐은 물론이고, 공항의 배후지역이 발전해 경제권의 물류중심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셋째, 배후산업 집중 육성화 전략이다. 공항의 활성화를 위한 배후산업의 육성은 공항의 여건과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 및 산업을 선정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집중화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다. 양양군의 경우 최대 관광지인 설악산이 배후에 있으므로 숙박업이나 제조업 등을 집중 육성해야 할 것이다.
Ⅰ현대 애니메이션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 양분하고 있다. 미국은 디즈니와 드림웍스를 앞세워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일본은 출판만화산업의 발달 등 관련 인프라가 확충되어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만이 지닌 경쟁력으로 전략적인 상업을 창출해 오면서 세계 시장에서 장악력을 키워가고 있다.이렇게 미국과 일본이 양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곳이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애니메이션이 처음 등장한 국가로서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미셸 오슬로, 실뱅 쇼메 등 명망 높은 애니메이터들의 활약으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한동안 침체의 길을 걷다가 최근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프랑스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영화 발명 이전부터 에밀 레이노에 의해 실험된 애니메이트 제작방식의 실험에서부터이다. 잔상효과를 이용한 움직이는 영상에 대한 실험은 19세기 초부터 유럽의 각 지역과 미 대륙에서 계속 되었으며, 아마추어적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1877년에 에밀 레이노의 프락시노스코프 장치를 통해 일단락된다. 당시 레이노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이용해 박물관에서 ,등 일련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선보이지만 이 작품들에 완벽한 서사 구조나 캐릭터의 독창성이 없는 단순한 영상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이때 , 등의 작품으로 프랑스와 유럽 뿐 아니라 멀리 미 대륙에까지 서사구조와 개성 있는 캐릭터 그리고 독특한 웃음이 담긴 최초의 애니메이션을 선보인 사람이 바로 에밀 콜이다. 본래 고몽영화사에 트릭전문기사로 입사한 에밀 콜은 일반 무성영화에 다양한 실험적 요소를 첨가하면서 애니메이트 기법의 제한없는 표현양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는 그러한 표현양식과 제작방식을 무성영화라는 전제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종이 위에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단편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장르적 실험으로 평가받게 된다. 즉 움직임에 대한 동영상 개념을 애니메이션의 장르실험으로 전환한 것이다. 본명은 에밀 쿠르테로서 전형적인 파리 시민계급에 속했던 쿠르테 가문에서 자라 보석 세공과 마술사 보조 등의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군복무 기간에 에밀 쿠르테는 부대 내의 군인들과 막사의 모습 등을 스케치하던 중 자신이 그림에 상당한 소질이 있음을 깨닫고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에밀 콜은 1907년 당시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영화사인 Gaumont에 들어가 트릭 전문기사로 활동한다. 에밀 콜이 고몽사의 직원으로 작업을 시작하던 해에 미국의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튼이 제작한 실사영화가 프랑스에 소개되자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특수효과를 보고 프랑스인들은 감탄하게 된다. 에밀 콜은 이 미국인의 영상을 통해 연구와 실습을 거듭한 끝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터득한 후 최초의 프랑스 애니메이션이라 불리는 4분 분량의 짧은 애니메이션 (Fantasmagoria)를 발표한다.)는 종이에 단순한 선을 위주로 그려진 그림을 필름 카메라로 한 프레임씩 촬영한 후 상영하는 현대적인 방식이었고, 이 작품은 다음해 라는 초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제작되기도 하였다. 순수 예술로서의 실험 애니메이션은 일반 영화에서의 실험적인 시도들과 함께 1920년대에 들어서 유럽의 여러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영화 발명 이전부터 에밀레이노가 애니메이션의 원형을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전제 하였는데, 뒤이어 에밀 콜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실질적인 체계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 에밀 콜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애니메이션의 기본적인 제작 틀을 마련한 감독이며, 미국으로 건너가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기법을 전하기도 하였다. 1차 대전 당시 귀국,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면서 프랑스 전통예술과 새로운 예술이 공존하는 애니메이션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하였다. 이어 에밀 콜의 후계자들이 등장하여 프랑스 애니메이션을 발전시켜 왔다. O'Galop(오가롭)은 , 등을 제작하였다. 로텍(R. Lortak)은 15명의 스태프들로 스튜디오를 개설, CF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제작하였다. 주요작품으로 등이 있으며, Albert Mourian은 관절이 움직이는 인형을 사용한 , 등을 제작하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애니메이터 폴 그리모(Paul Grimot)는 1950년대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세계에 소개한 작가이다. 그는 1936년 레제모 사를 설립, 광고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1937년 파리의 만국박람회 상영용 애니메이션이 그의 첫 작품인데,
한국과 CIS 국가 관계 현황※우즈베키스탄1. 한.우즈벡 의회간 협력ㅇ 한. 우즈벡 의원친선협회(회원 48명) 구성ㅇ 우즈벡 의회(Oliy Majlis)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국별 의원친선협회가구성되어 있지 않으나 국제협력 분과위가 대외업무담당ㅇ 최근 우리 국회의원단의 우즈벡 방문 회수가 점차 늘고 있는 상황에서우즈벡 국회의 양원제 설립 및 권한 확대에 따라 양국 의회간 교류 확대 필요성 증대2. 제3차 한.우즈벡 정책 협의회 개최ㅇ 95.11월 이후 매2년마다 개최되어온 바, 제3차 회의가 2001. 10.5(금)서울에서 개최되어 양국간 주요 현안에 대해 협의- 주재국 수석대표는 외무부 차관ㅇ 제4차 협의회는 2004년 개최3.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현황ㅇ 우즈벡 정부는 그동안 우리의 국제기구 진출을 전적으로 지지- 최근 우리의 국제법 이사회,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이사국,(구)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 입후보 지지- 2001년에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국에 입후보, 국제법 위원회 입후보,등에 전적으로 지지ㅇ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입후보(2007-8년 임기) 지지 교섭- 본부는 동 입후보를 결정하고 2001.11월 유엔 아주그룹에 통보- 아국은 1996-97년 임기로 최초 안보리 이사국을 역임한 바 있으며향후 약 10년 주기로 안보리에 진출을 계획 중4. 통상 및 경제협력 관계가. 교역o 교역 현황(단위: 백만불)구분1996년1997년1998년1999년2000년2001년2002년2003년수출49*************345188.5247.1수입19*************136.7??96.879.0합계6*************4423285.3326.1?- 주요 수출품목 : 자동차 부품, 섬유기계류, 전자,전기 제품- 주요 수입품목 : 원면, 순면사, 면직물, 가죽, 한약재 등o 양국간 교역은 독립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97년에는 10억불에 육박하였으나, 98년 이후 한국의 외환위기, 대우자동차 사태, 우즈벡의 외환통제에 따로 양국 교역량이 대폭 감소함.-2001년, 2002년 연이어 하락 추세ㅇ 2003년 한국의 대 우즈베키스탄 수출은 전년대비 31.1% 증가한 24.7백만불, 수입은 전 년대비 18.4% 감소한 79백만불에 달함.ㅇ 우즈베키스탄의 수출 품목이 면화, 금 등으로 제한되어 있고, 기존 한국 기업들의 신규 투자계획은 거의 없으나, 최근 자동차 부품 및 전기, 전자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 증가 추세.7. 투 자o 우리나라는 우즈벡의 주요 투자국으로서 독립 초기부터 2002년 말까지 약 7억불을 투자 한 것으로 집계(한국은행 허가 금액 3.9억불)- 주요 투자분야 : 자동차산업, 방적산업, 무역, 서비스업 등임.o 우즈벡은 CIS 국자 중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로 투자의 대부분이 수교 초 기 대규모 투자 형태로 이루어 졌음.o 현재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신규 투자 지속.o 많은 한국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현지 공장 설립 후보지로 당지를 검토하고 있 으나, 원자재 구입 대금의 환전 문제 등으로 주저-현지 생산 원자재(면화 등)를 이용한 가공 공장을 설립하여 생산품 해외 판매시 성공 가 능성 높음.※카자흐스탄1.한-카자흐스탄 관계 개관ㅇ한-카자흐스탄 관계는 1992.1.28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꾸준히 실질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옴.ㅇ 카자흐스탄은 우리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이 자국의 경제개발에 유용할 수있다는 점과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경험 전수 및 카자흐스탄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인식하에 우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음.-특히, 카자흐스탄 독립직후 카자흐스탄의 경제적 어려움과 서방기업들의 무관심이 지속되던 시기 에 우리 기업이 카자흐스탄에 적극 진출하여 성공적인 투자사례를 이룸으로써 결국 서방기업들 의 투자를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졌음을 평가※ 삼성은 1995-2001간 “카작무스(구리 광산 및 제련)”에 2억불을 투자하는 등 성공적으로 위탁 경영하여 현재 동사는 6매출액은 약 8억불에 이르는 구리 제련 분야 세계 6위의 회사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ㅇ우리의 외환위기 이후 우리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하였으나 2002년도 카자흐 외무장관 방한 및 산자부 장관의 상호방문을 계기로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 양국관계는 2003.11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방한(2004.9)으로 카스피해 원유 및 광물자원 공동개발 등 실질협력관계 확대를 위 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함.-2003.11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및 2006.9 한명숙 총리 공식 방문 등을 통해 양국 정상 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UN 등 국제무대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는 등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도 양국 간 협력 관계는 더욱 확대 추세2.한?카자흐스탄 경제관계ㅇ양국 경제·통상협력은 양국 경제의 상호보완성에 기초하여 2000년 이후 대폭 활성화되고있으 며, 2003년에 87.2% 증가한데 이어 2004년 39.9% 증가하는 등 급속한 성장세를 보인 바 있다. 2005년에는 한?카자흐스탄 간 교역량 확대에 따른 수출입 구조 조정 및 러시아 및 중국을 통 한 교역량 증가에 따라 전체 교역량이 다소 보합세를 유지하였으나,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 야 등의 약진에 따라 2006.9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교역량이 14.1% 증가하는 등 교역량은 균형적으로 확대되어 2006년도 양국 교역액은 사상 최초로 6억 만불을 돌파하였으며 카자흐 스탄의 WTO 가입추진에 따른 경제 자유화 및 국제유가 상승, 카자흐스탄의 건설수요 증가 등 으로 양국 간 교역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됨.(단위 : 천불)구분1997199819*************22*************06.9교 역 량175,614134,882107,963131,766164,139197,780370,269517,979514,163450,090(-23.7)(-23.2)(-20.0)(22.0)(24.6)(20.5)(87.2)(39.9)(-0.74)(14.1)4,01656,60682,385108,003126,110217,174313,950272,558236,987(-12.6)(12.9)(-45.6)(45.5)(31.1)(16.8)(72.2)(44.6)(-13.2)(16.8)수입83,49130,86651,35749,38156,13671,670153,095204,029241,605213,103(-33.0)(-63.0)(66.4)(-3.8)(13.7)(27.7)(113.6)(33.3)(18.4)(11.4)무역수지8,63273,1305,24933,00451,86754,44064,079109,92130,95323,883(자료원 : 한국관세청) ( )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2005년 이전 우리의 대 카자흐스탄 수출은 휴대폰 등 전자제품이 주도하였으나, 2006년 휴 대폰 등 전자제품의 수출량이 감소한 반면,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야 수출량은 전년동기 대 비, 열교환기 9.6%, 엘리베이터 162.9%, 화물자동차 109.3%, 승용차 72.2% 등 큰 폭으로 증 가하여 휴대전화를 제외한 수출 품목 상위 7개 제품의 수출이 대폭 신장되고 있어 가전제품 에 편중되던 우리 수출품목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 향후 카자흐스탄 건설경기 활성 화 및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건설자재 및 자동차 분문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 으로 예상-동 기간중 휴대전화, 컬러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수출 도입선이 우리 업체의 해외공장 및 제3국(러시아) 경유 방법 등으로 전환된데 기인, 우리 수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일부 감 소하였으나, 우리 업체들의 카자흐스탄에 대한 매출액은 전년대비 증가 또는 동일한 수준을 유지ㅇ양국 간 실질협력은 원유사업을 성장 동력으로 하는 카자흐스탄의 경제발전에 따라 우리기업들의 가전?IT?유전개발?건설 중장비 및 자동차?건설?석유화학 분야 진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향후에도 지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특히, 우리 국내건설 경기 하락에 따라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우리 건설기업들의 진 출이 카 신도시 건설 및 카스피해 종합개발 등에 따른 건설수요 증가로 향후 활 성화될 것으로 전망※키르기즈스탄1. 경제?통상협력ㅇ1992.1 수교 이후 한?키르기즈 간 경제교류는 양국 경제구조의 상호보완성에 기초하여 꾸준히 확대되고 있으며, 양국 교역량은 2004년도 전년대비 63.2% 증가한데 이어 2005년 (1~11월간)에도 전년 동기 대비 31.8% 증가하는 등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음.-2004년도 양국 교역량은 수교이후 최초로 5천만불을 초과하였으며, 2005.11월 현재 6천만불 을 초과ㅇ대 키르기즈 교역은 2000년 이후 편직물, 연초류, 합성수지, 승용차 등 우리 수출물량의 대폭 증 가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컴퓨터, 자동차부품, 화물자동차 등 수출품목이 다 변화하고 있음.-수입품목은 금, 곡류, 펄프, 비금속광물 등 원자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주재국 정세불안으 로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59.7% 감소ㅇ양국 간 실질경제협력 활성화 여부는 바키예프 대통령의 신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키르 기즈 국내정세 안정 및 경제활동 정상화, 시장개방 및 외국인투자 유치 노력 등에 좌우될 것으 로 전망되며, 한? 키르기즈 양국경제의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접목할 경우 확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사료됨.-키르기즈는 1998년 CIS 국가 중 최초로 WTO에 가입2. 양국관계 전반 평가o 키르기즈측은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이 키르기즈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우 리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 증진을 희망하고 있음.-그러나 키르기즈 정세불안 및 경제난 지속 등으로 우리 기업의 투자부진 등 키르기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전반적으로 저조o 05.3월 대중소요사태 및 아카예프 前대통령의 사임이후 출범한 과도정부가 치안을 확보하고 7.10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바키예프 대통령 권한대행이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위한 계기를 마련한 키르기즈측은 미국과 서유럽 및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주요국들과의 관계증진을 강하
그들 잣대로의 이해-‘국화와 칼’을 읽고-나는 일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식민 지배로 인해 우리 나라에 많은 아픔과 시련을 가져다 준 것은 둘째 치더라도 현재에 와서 그들은 과거사에 대해 용서를 구하거나 유감을 표시하기는 커녕 독도 소유권 문제, 동해 표기 문제 등을 내세우며 그들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비유한다. 지리적으로 그들은 우리와 매우 가까운 나라에 있다. 하지만 국민 정서상이나 시대상으로 볼 때 그들은 우리와 아주 머나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상대적 거리감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가까워 질 것 같지 않다. 일본과 우리 나라는 커다란 강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들 문화에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국화와 칼을 접하면서 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비록 현대의 일본세계가 아닌 과거, 그러니까 책이 쓰여질 당시인 1940년대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 안에는 나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은 서양이나 그 외 나라와는 다른 그들만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때로 이중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방패를 상징하는 국화와 그에 반대되는 개념인 칼로 지어진 것이다. 책에서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여러 부분에 걸쳐서 자세히 그리고 있다.·‘온’과 ‘주’온은 수동적으로 입는 은혜로써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받으면 일정 기한 안에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서양에서 돈을 빌려주고 갚는 개념과 흡사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온의 관계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와 비슷하게 보고 있다. 일본이 은혜를 갚는 것을 중요시 하는 반면에 우리 나라나 서양에서는 은혜를 베푸는 것을 중요시 하고 있다. 이솝우화 중에 은혜 갚은 쥐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쥐가 사자를 만나게 되어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사자는 쥐를 살려준다. 쥐는 꼭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하지만 사자는 작은 쥐 따위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후 사자가 그물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쥐가 나타나 그물을 이빨로 끊어 사자를 구해주고 은혜를 갚게 된다. 이 이야기는 언제 자기가 위기에 처할 지 알 수 없음으로 항상 은혜를 베풀며 살라는 이야기이다. 보은을 중시하는 일본과 대조되는 내용이다. 우리 나라도 예부터 베풀며 사는 것을 삶의 미덕으로 여겼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베푼 은혜를 일정 기한 내에 반드시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베풀면 살아가다가 언젠가 자기에게 베푼만큼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온’이라는 개념은 일본에서만 존재하는 그들 나름의 문화인 것이다.주는 윗사람에 대한 의무로서 기무 안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기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전부를 갚을 수 없는 의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기무에 관해 ‘받은 온의 만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주는 봉건시대에는 세속적 수장인 쇼군에 대한 의무로 나타나다가 매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천왕에 대한 의무로 나타났다. 천왕에 대한 그들의 주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매우 강한 복종을 상징한다. 물론 여기에는 천왕을 신성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이기는 하나 일본인들의 천왕에 대한 존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책에는 천왕의 존재를 ‘침범될 수 없는 것’ 이라고 적고 있다. 그들은 조국애보다 천왕에 대한 보은을 더 중요시 하였으며 천왕을 위해 온몸을 희생하였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전투기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하여 상태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신은 전투기와 함께 산화하는 ‘가미카제’ 전술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로서 섬기는 천왕이 하사하는 술 한잔을 받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목숨으로써 천왕의 보은에 보답한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들의 이러한 전쟁관은 분노를 자아내지만 주로 대변되는 그들의 군주에 대한 복종심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물며 그들은 싸울 수 있는 여건이 되었음에도 천왕의 명령에 따라 항복을 자행했다. 당시 일본과 전쟁을 치루던 미국에게도 이러한 행동들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은 일본의 항복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핵폭탄이 본토에 떨어져 자국민 수십만이 피흘리며 죽는것을 보면서 더욱 항전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천왕의 한마디로 전쟁을 종식시켰다.일본사회의 ‘주’는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는 군주에 대한 충성과는 또 다른 개념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본을 굴종적인 국민들로 생각할지 모르나 일본인들은 그저 자신이 입은 은혜를 갚는 것뿐이다. 기무와 주 또한 온과 마찬가지로 일본사회를 다른 국가와 구별 짓는 특별한 개념인 것이다.·기리온의 반대의 의무인 기리는 책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쓰라린 보은’ 이다. 이것은 본의 아니게 되는 것으로 계약 관계의 이행으로 볼 수 있다. 과거 기리는 가신 영주 및 전우에 대한 관계로서 ‘본의 아니게 돠는 것’ 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날 일본인에게 ‘기리 때문에’ 라는 말은 번거로운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가 되었고 이는 매우 정확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으로 제때 행하지 못할 경우 마치 빌려간 온에 이자가 붙듯이 양이 더 증가하는 것이다.‘이름에 대한 기리’는 자기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기리로서 체면 유지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사고로서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상이다.하지만 기리는 서양의 돈을 갚는 것과 일치하는 면도 있다. 금전상의 거래에서 변제 불능에 대한 형벌은 파산으로 나타난다. 기리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일본인들은 기리를 갚을 수 없을 때 그 사람은 파산하였다고 여긴다.또 한 가지 유사한 점은 기리를 갚을 때는 돈을 갚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장례식에 조의금을 가지고 가는 것이 관습화 되어 있고 촌장이 조의금을 일일이 기록한다. 이 명부에 따라 나중에 받은 것들을 똑같이 갚는 것이다.기무가 널리 퍼진 일본 사회의 이면에는 이처럼 계약적이고 형식적인 기리라는 세계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무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었던 것에 반해 기리는 인간적인 면이 결여된 딱딱한 계약적 관계였다.·일본인의 성장 과정일본인은 유아기에 최대의 자유를 보장해준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해 나감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결혼 전후의 시기가 되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다. 자기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어감에 따라 사회의 구속은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다. 그들은 유년기 시절 엄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한다. 그러나 체력이 성장하고 완화되어 결혼할 시기가 되면 거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이것이 개인이 장년기에 마음껏 활약하여 그들 문화에 참가하는 길을 확보해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장년기에 자유를 증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일본은 속박이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이고 자유에 의해 달성 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