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역사『누구를 위하여 조종은 울리나』목 차1. 역사 사료로서 『누구를 위하여 조종은 울리나』의 위치2. 작품의 시대적 배경3. 헤밍웨이와 스페인 내전4. 작품의 줄거리5. 등장인물의 세계상6. 작가의 현실 비판7. 헤밍웨이의 니힐리즘8. 극복으로서의 인류애1. 역사 사료로서 『누구를 위하여 조종은 울리나』의 위치문학 작품은 여러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시, 소설, 희곡 등과 같이 형식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내용상으로는 순수문학, 사실주의 문학, 참여문학(행동주의 문학), 역사소설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문학은 그 종류와 구분에 상관없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정도 역사와 상호관련성을 지닌다.이 중에서 『누구를 위하여 조종은 울리나』는 행동주의 문학에 속한다. 참여 문학 혹은 행동주의 문학은 역사와 현실이 문학작품 배경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일제시대 계몽주의 문학이나 사회주의 문학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작품을 통해서 역화 현실을 해석하고 평가하며, 이를 토대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독자의 관념에 영향을 미친다.행동주의 문학은 1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전의 유럽에서는 한때 유행처럼 내면세계를 파헤치고 자의식을 추구하는 문학 작품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20년대 후반기부터 전 세계는 경제 공황에 휩쓸리고 히틀러로 대표되는 파시스트 정권이 권력을 잡고 좌우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그리하여 사회 상황이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문학도 현실에 개입해서 그 바람직한 방향으로서의 건설을 위해 영웅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반파쇼 투쟁에 나선 앙드레 말로, 생텍쥐베리, 헤밍웨이 등이 이에 속한다.2. 작품의 시대적 배경1930년대는 이데올로기가 만발한 시대였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민주주의(공화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가 공존하고 있었다. 1930년대는 실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에 몸을 바쳤다. 이 시대는 사상에 파, 교회세력, 군부 등은 범 파시즘 세력을 형성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 인민전선 정부를 방해하였으며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던 중 왕당파 지도자가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쿠데타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파시즘 세력에게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었는데, 마침내 보수 세력을 등에 업은 군부가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음날인 18일, 프랑코는 좌천당해서 근무하고 있던 카나리아 제도에 계엄령을 발동하고 아프리카 반란군의 지휘를 맡았다. 세계를 뒤흔든 스페인내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역사가들은 18세기부터 ‘두 스페인’에 관한 개념을 말해왔는데, 하나는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급진적이고 범세계적인 지식인과 진보주의자들의 스페인이고, 다른 하나는 가톨릭적이고 맹목적이며 엄격하고 스스로 폐쇄적이며 민족주의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스페인이었다.1936년 당시 군대와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경찰과 같은 국가기관 내에서까지도 이러한 ‘두 스페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당시의 스페인 사회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회가 아니었다. 양 진영에는 각각 군인도 있고 사제도 있었다. 또 중산계층과 지식인층, 가톨릭교도와 반교회주의자, 전통을 옹호하는 계층과 진보적인 그룹 사이에 갖가지 알력과 상극도 존재했다. 말하자면, 당시의 스페인 사회는 가로와 세로로 분단되어, 서로의 틈을 메우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 넓고 깊었다. 다시 말해 스페인 내전은 ‘두 스페인’이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스페인 내전은 초기 단계부터 유럽과 온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소련과 멕시코가 공화국 정부군을, 독일과 이탈리아가 반란군을 지원했다. 이는 스페인 내전이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했다. 공화국 정부군 측에서는 작가인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등이 참여한 의용군으로 이루어진 4만여 명의 국제여단이 활약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외국의 원조가 시작된 이후로 공화국 정부군 진영에 주어진 인적, 물적 원조가 반란군 진영에 주어 것이라고 당시에 말한 바도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지도력을 행사하는 데 반대하지 않은 그의 입장은 그들이야말로 최고의 조직 능력과 기율을 갖고 있어서 파시즘을 당장에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결코 공산주의에 가담하지 않았다.파시스트 세력인 프랑코 장군이 끝내 승리를 거둔지 1년 후인 1940년에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조종은 울리나』는 발간되었다.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곧 이 작품이 스페인 국민과 국제여단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한 비방은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헤밍웨이의 공화정부에 대한 지지와 반 파시즘 사상은 확고하였다. 다만 그는 정치선전문을 쓰는 것만은 거부하였다. 내전에 대한 그의 태도는 간단명료한 것처럼 들리게 하는 어떤 매끄러운 정치강령과는 달리 복합적인 진실의 추구에 있었다.4. 작품의 줄거리이 소설의 주인공 로버트 조단도 미국인이지만 인민전선파에 직접 가담하여 싸우고 있다. 로버트 조단은 파시스트 군의 이동을 방해하기 위해 교량 폭파의 임무를 띠고 산 속에 잠복해 있는 아군 게릴라대에게 응원을 청하려 간다. 인민전선파 군은 총공격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다리의 폭파는 그 공격 개시 직후에 단행되어야 했다. 시일은 아주 절박하고 임무는 무거웠다. 그러나 조단이 산 속의 게릴라대 근거지에 도착해 보니, 대장인 파블로는 이미 싸울 투지를 잃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폭파하는 따위의 행동을 하면 자기네 위치가 적군에 발각되어 이 산 속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오히려 조단의 일을 방해하려 한다. 하지만 파블로의 아내인 용감한 투사 피라 및 그 밖의 대원들이 그의 편이 되어 준다.그리고 이 게릴라대에는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스페인 아가씨가 참가하고 있다. 그녀는 파시스트군에게 부모를 살해당하고 자기도 능욕당하여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된 것을 게릴라대에 의해 구출된 뒤로 함께 지내고 있다. 조단과 마리아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 둘의 사랑은 이 전쟁의 틈바구니상상적 인물들이라고 하여 헤밍웨이만의 독자적 가치관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헤밍웨이는 당시를 체험한 작가로서 상상적 인물들을 통해 당대의 세계관을 개성있게 드러내고 있다. 즉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은 역사가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당대의 여러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반응을 상징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1) 로버트 조던미국 몬태나 대학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있던 미국 청년. 열성적인 공화주의자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정부군의 일원이 되어 다이너마이트 폭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본이자,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인의 전형이다. 그는 에스파냐의 억압 받는 민중을 위하여, 나아가 이 세계에서 파시즘을 몰아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참전하여 신념을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며, 삶에 대한 긍정적 열의와 인류의 연대 의식, 거의 영웅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사회적 이상주의를 추구하던 헤밍웨이의 가치관을 반영한다.조던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나쁘며 오직 보다 나쁜 것을 제거하기 위하여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요할 때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런 행위를 신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던의 가정적 배경은 여러모로 헤밍웨이의 경우와 비슷한 데가 있다. 헤밍웨이의 아버지 에드 헤밍웨이는 남북전쟁 때 쓰던 권총으로 자살을 했는데 조단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조던은 자기 아버지 생각을 하고 부끄러워한다.(2) 마리아프랑코의 파스시트 군대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그러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유격대 처녀로 조던과 사랑에 빠진다. 마리아는 아름다우면서도 순종적이고 복종적이며, 유순하고 헌신적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마음을 바치는 여성이며 헤밍웨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여성이다. 마리아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여성이며 헤밍웨이가 이전에 그린 어떤 여성보다도 더 낭만적으로 묘사되어 있다.조던이 부상을 입고 그들과 함께 도망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함께 있겠다는 마리아를 설득하여 떠나게 그러나 그는 파시스트를 죽였고 앞으로도 다시 죽일 것을 알면서도 이러한 고통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나려고는 하지 않는다. 해야만 할 일은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이를 합리화시키지는 않는다. 후일 그는 자신으로부터 용서를 구하겠지만 믿지 않는 신으로부터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6) 아구스틴유격대의 한사람으로 파블로의 부하이면서도 그의 옳지 못한 행동을 지적하는 의리파이다. 다리 폭파작전에서 큰 몫을 해낸다.6. 작가의 현실 비판이 작품이 파시즘을 반대하는 소설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헤밍웨이는 개인적으로 스페인의 국가, 문화, 민족에 강한 애착을 느꼈다. 반 프랑코파(민주적으로 선출된 공화 정부에 충성하는 사람들)의 대의에 헌신하고 싶어 했고, 소설의 소재를 얻고자 하였다. 결국 헤밍웨이는 1937~1938년에 종군 기자로 스페인을 네 번 찾았으며, 그곳에서 8개월 정도 지냈다. 전작 가 전쟁 후 10년이 지난 후에 쓰여진 반면, 는 내전 직후인 1939년 3월부터 1940년 7월 사이에 써졌다. 그는 또 다른 전쟁(2차 세계대전)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스페인에 대해 쓰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고 느꼈고, 전쟁을 직접 참여하지 못했으나 전쟁을 궁금해 하는 미국 독자들을 위해 작품을 쓰고 있었다.헤밍웨이는 반 프랑코파의 패배를 기술하는 것이 어렵고 비도덕적이라고 느꼈고, 이 전쟁이 파시즘에 맞서는 전쟁이고, 독일과 이탈리아는 다음 전쟁을 위해 병사들과 무기들을 시험하고 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가 우익을 돕듯이 영국, 프랑스, 미국이 중립정책을 버리고 좌익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는 한, 공화 정부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 작품은 종교를 비판하고("만약 신이 있다면 그는 내가 목격한 것들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파시스트-이나 신을 가지라고 해라")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한다.(“이곳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은 전쟁 수행을 휘한 최고의 원칙과 가장 건전하고 온건한 원칙을 제시했다”) 그러나 필라르의 회상은 아군인 공.
신화도 역사인가?-〈단군신화〉를 통해 본 한국의 신화-☞ 목차§ 서 론 §1. 신화의 성격1-1. 신화의 정의1-2. 신화의 기능2. 신화의 특징3. 신화의 발전과 변화3-1. 일반 심리적 조건에 의한 변화3-2. 문화적, 지리적 조건에 의한 변화3-3. 민족 공동의식의 변화에 따른 변화3-4. 화자, 청자에 의한 변화4. 신화의 분류4-1. 신성성이 인정되는 범위에 따라서4-2. 전승방식에 따라서5. 한국 신화의 특징§ 본 론 §-고조선과 《단군신화》를 통해 본 한국의 신화와 역사-1. 고조선에 대한 인식의 변천2. 단군신화의 본문과 그 내용3. 단군은 누구인가?4. 단군신화에 대한 해석5. 단군신화의 진실 ? 거짓 여부5-1. 단군신화는 진실이다.5-1-1. 북한에서의 단군신화. - “평양에서 발굴 된 단군릉”5-2. 단군신화는 거짓이다.6. 단군신화는 역사인가?§ 결 론 §§ 서 론 §1. 신화의 성격1-1. 신화의 정의신화는 신성시 되는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화는 이를 보는 각도에 따라서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신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신화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 역시 각각 다르다. 모든 신화는 신성시 되고, 신성시 되지 않는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다. 신성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것을 포괄적, 규범적 의의를 갖도록 차원을 높여 나타내는 현상이다. 주몽신화나 탈해 신화에서 주몽과 탈해는 운명의 시련을 극복하고 싸워 이기는 위대한 투지를 보여주기에 신성하다. 이들의 투쟁은 역사적인 시간에서 전개되고, 일찍이 고구려와 신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의 신화적 반영인 것이다.신화의 신성성은 위대하거나 숭고한 행위로써 성립된다. 위대하거나 숭고한 행위는 반드시 특이해야 하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난생, 기아, 짐승의 보호, 또는 표류, 불가능에 가까운 시련의 극복, 거대한 승리 등은 흔히 발견되는 특이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이한 요소들이 기괴하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널리 인정 , 전승되었다.3. 신화의 발전과 변화신화는 공간적으로 전파되고, 시간적으로 전승되면서 끊임없이 변화 되었다. 그러면, 신화가 변화하는 원리는 무엇인가?3-1. 일반 심리적 조건에 의한 변화신화의 구전은 신화 전체를 암기하여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유형의 요점만을 기억하고, 화자가 거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살을 붙여서 청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전 과정에서 화자의 망각으로 본래의 신화의 일부분이 단축되어 결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 망각된 부분을 채워 넣으려는 심리에서 삽화, 또는 모티프를 끼워 넣어 부연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망각과 부연에 의해서 신화는 변하게 된다. 이야기 자체로 보면 망각은 퇴화요, 부연은 발전이다. 그러나 부연되는 삽화나 모티프가 지나치게 강조, 확대되면 본래의 이야기가 변모하게 된다.3-2. 문화적, 지리적 조건에 의한 변화첫째, 종교의 변화에 따라 신화도 변한다. 종교는 모든 문화의 중심요소가 되므로 종교와 표리관계에 있는 신화의 내용이 변하고, 전설·민담의 내용도 따라서 변화하게 된다.둘째, 사회제도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고대의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에 관한 신화가 많았고, 후대 부계사회에 와서는 신화의 주인공이 남성으로 변화한 것이 좋은 예라 하겠다.셋째,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 수렵어로기의 신화의 주인공은 동물이었는데, 농경 문화기에서는 곡령, 곡신이 주역을 하게 된 것들은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넷째, 이민족과의 접촉에 의해서도 신화는 변화한다.다섯째, 자연환경에 따라서 풍토화 한다. 국토, 지세, 해류, 산악, 기후, 동식물 등의 조건에 따라 그곳의 자연환경에 맞도록 신화의 내용이 변한다. 구약 창세기 제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탈출하던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중국·한국에서는 돌기둥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사해 지역에는 염석이 많은데 비하여 중국이나 한국에는 암석이 많은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설화가 풍토화한 예이다.3-3. 민족 공동의식의 변화에 따른 변 계승했고 고려가 단군의 상징성(우리 민족의 시원이다.)을 강조 했다면 조선은 고조선의 역사성을 더 강조했다. 이는 단군 묘에 제사를 지내고 단군신사를 세우는 등의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조선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는 조선후기 실학자들에게 의해 행해졌다.1-4. 근대1894년에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가 완전히 철폐되면서 근대적인 민족의식이 싹텄다. 그로인해 단군과 단군신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다. 1909년에는 나철이 대종교를 창시함으로 인해 단군을 종교화했고 20세기 초반에는 단군민족주의가 대두돼 이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또한 상고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민족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민족주의 역사학자와 일제식민지 역사학자의 대립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민족주의 역사학자는 단군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일제 식민지 역사학자는 “청동기 시대가 아니다. 조선역사는 허구다”라고 주장해 단군조선은 인정하지 않고 기자조선의 연구만 활발히 하였다.1-5. 해방 후해방이후에는 실증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BC10c에 청동기 실재,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을 통해 고조선의 실재를 확인함으로 인해 단군신화는 조작된 것이 아닌 고조선 당대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때에 앞서 말했던 고조선 중심지 설, 요하(고조선 초기에 비파형 동검 대량 출토), 평양(고조선 후기에 세형동검 대량 출토)이 대두되었다.1-6. 현대현대에 이르러 민족의 의미는 다양한 모습을 띠었다. 민주적 공동체, 파시즘인 국가 지상주의, 사회주의인 제 3국의 형태, 여기에서 히틀러로 대표되는 국가 지상주의는 50년대 남한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이승만 정권시대로 ‘백서도 하나요. 지도자도 하나요.’라는 일민주의를 주장했고 이러한 민족주의의 극대화로 인해 국가 이탈시 매국노로 치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단군의 연도인 2333년과 서기를 합하여 쓰는 단기를 쓰기도 하였다.1-7. 1980년대1980년대에는 전두환이 집권하던 때로 민주화운동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던 때였다.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 ? 우사 ? 운사를 거느리고, 곡 ? 명 ? 병 ? 형 ? 선 ? 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고, 곰은 37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못 참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 왕검이다.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으며, 이어서 백악산의 아사달로 옮긴 뒤 그 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주나라 호왕(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하매 장당경(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3. 단군은 누구인가?단군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하느님(환인)의 아들 중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하강하여, 곰이 여인으로 화한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신인이다. 따라서 단군은 천강 신 환웅과 지모 신 웅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한민족의 조상이며 반신반인의 인간신이다. 즉, 하늘의 아들과 땅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신적인 인간'인 것이다. 그는 평양성에 도읍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했고, 후에 도읍을 백악 산의 아사달로 옮겨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주의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고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이 되었는데, 그 때의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단군신화〉의 주인공이자 우리나라 시조신으로 추앙받는 단군은 과연 실존했을까? 단군의 실존 여부의 문제는 단군 신화의 허 ? 실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단군신화〉가 부족신화에서 확대된 것이라 보는 측에서는 말한다.4-2. 단군신화는 당시 정치 상황의 상징이라 보는 견해고조선이 일어날 무렵은 토테미즘)이 크게 영향을 주었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신화를 곰을 토템으로 섬기는 부족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있었는데, 이들 원주민 중에서 곰 부족만 환웅 집단과 손을 잡고 호랑이를 섬기던 무리는 다른 곳으로 쫓겨 갔다는 뜻으로 해석 한다. 즉, 신화에서 환웅은 하늘님을 섬기는 부족이고, 웅녀는 곰을 섬기는 부족인데 어느 날 하늘을 섬기는 환웅부족이 곰을 섬기는 부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주해 와 토착 세력을 정복하여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두 부족이 합쳐져)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만들어 진 것이라 신화를 설명하는 것이다. 또 단군신화를 청동기 시대의 산물로 봐 청동기를 가진 힘센 무리(환웅 부족)가 아직 신석기를 쓰고 있던 곳으로 이동해 와서 그곳에 살던 무리와 힘을 합쳐 나라를 세웠다고 단군신화를 해석하기도 한다.4-3. 그 외의 견해이 외에 단군과 부루를 묶어 보는 시각이 있고, 민족 고유의 의식표현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으며,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곰 숭배사상에 주목하여 우리 민족을 동북아시아지역에 분포하는 고아시아족)과 연결시키려는 견해도 있다. 또 단군신화를 지배자의 출현을 빛내는 신화로 보는 반면에 사 ? 과학의 입장에서 신화라는 것은 고대인의 한 관념형태이므로 단군신화를 곧 역사적 사실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단군 신화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5. 단군신화의 진실 ? 거짓 여부5-1. 단군신화는 진실이다.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이다. 다른 건국 신화는 건국 시조의 영웅적 활약이 많은 반면에 단군 신화는 단군의 활약보다 어떻게 해서 단군이 태어나게 되었느냐가 이야기의 주를 이루고 있다.신화에서 설명되는 단군의 아버지는 많은 신들을 거느리고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최고신의 아들이다. 그러한 하늘의 자손이 지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의욕에 땅으로 내려온다. 보통 신이 지상에 내려오는 본다.
★목차★1. 시작하면서2. 축제의 설명a. 축제의 정의b. 축제의 성격c. 세계의 유명한 축제3. 크리스마스에 대해서a. 크리스마스의 어원b. 크리스마스의 유래c. 크리스마스의 시작d. 크리스마스의 상징적인 것들e.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점차 세속화된 크리스마스4. 축제의 역사, 그리고 축제와 역사1. 시작하면서인류가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나 변화한 모습들을 기록한 것을 역사라 하고 우리는 그 역사를 통해서 현재 삶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며 미래를 준비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어떠한 문화가 과거에는 어떻게 존재하였었고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가 있다. 그만큼 역사라는 것은 현대에서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런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예전에는 종교적인 의미로써 존재했었고 현대에는 유희적인 의미가 커진 바로 축제이다. 예전의 세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축제는 항상 우리의 곁에 존재 했었고 우리는 축제로 인해 일상생활에서의 스트레스나 근심들을 잠시나마 잊기도 하였다. 한번 가까이에 있는 달력을 살펴보자. 크리스마스나 설 연휴, 추석 등의 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역시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는 축제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처럼 축제는 항상 인류의 가까이서 하나의 역사처럼 존재하고 유지해 왔다. 역사가 여러 시대를 거치고 많은 변화가 있으면서 지금까지 왔듯이 축제 역시 많은 변화를 하며 지금 까지 오게 되었다.그리고 이 보고서에서 나는 바로 위에서 말한 축제에 대해 언급을 하려고 한다. 단순히 축제가 변화된 모습이나 축제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서 그것에 대해서만 설명하기보단 우리가 듣는 수업이 ‘역사란 무엇인가’ 이기 때문에 축제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역사와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말해보도록 하겠다.2. 축제에 대해서a. 축제의 정의축제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보면 사전적인 의미로써 축제라는 것은 예술적 요소가 포함된 제의를 일컫는다. 축제에한 산업화와 세속주의가 축제의 종교적인 성격을 사라지게 하고 세속화를 강조시켰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제가 단순히 축만을 강조하며 놀이를 말하는 것이고 제가 사라졌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분명히 축제는 축과 제의 모두 포함된 문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축제라는 것은 일상의 근심을 잠시나마 망각하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접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는데 이것만 보면 일반 여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축제가 일반 여가와 다른 점을 살펴보면 지역공동체가 집단으로 참여하여 공동체 공동의 걱정, 혹은 속박에 대한 저항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기후적인 부분이나 흑사병같은 전염병, 그리고 기존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 등 다양한 공동체의 근심들이 축제의 기원이 될 수 있다. 축제는 즐거운 기분을 안겨주고 일상의 근심들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시켜주는 신나는 일이기 때문에 축제는 자발성과 목적성, 규칙성, 비일당성의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경쟁과 표출이라는 두 가지 기능에서 비롯되는데. 놀이가 제의적 성격을 동반하는 경우에 축제로 상승되어감을 알 수 있다. 이는 인류가 창출해 낸 놀이 문화의 전형적인 형태를 축제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제는 단순 소비와 유발 향략적인 문화가 아니며 진취적이며 창조적이라는 것을 알수 가 있다. 따라서 축제는 생활 공동체 구성원들이 노동과 속박에서 벗어나 풍요를 신에게 기원하며 벌이는 제의나 동시에 춤과 노래를 통해 자연스런 감정을 털어놓은 잔치며 놀이마당인 것이다.c. 세계의 유명한 축제.축제에 대해서 알아보는 이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알아볼 부분은 세계의 여러 유명한 축제이다. 세계의 유명한 축제에 대해서 정리해보면영국 에든버러의 에든버러 문화예술 축제매년 8월경,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인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문화예술 축제가 바로 에든버러 축제이다. 세계 각국의 예술인들이 몰려와서 오페라, 연극, 영화, 클래식음악, 재즈 등을 비롯하여 발레, 댄스, 무대이자 모짜르트의 출생지여서 도시곳곳에서 음악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인, 음악에 애착이 강한 유럽인 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해마다 7월말부터 8월에 걸쳐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성대하게 개최되며 이 기간 중 도시전체는 음악회장으로 그 모습이 변한다. 시내 중심가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는 야외오페라가 연일 공연되고 잘츠부르크 페스트 슈필하우스 등에서는 수많은 음악회가 열려 전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을 만족시켜준다. 유럽에서 열리는 여름음악제중 가장 크고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1922년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시인 호프 만슈탈,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의해 시작됐다. 처음에는 모차르트 곡만 연주되었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작품 등으로 레퍼토리가 매우 다양해졌다. 이 페스티벌기간 동안 세계의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솔리스트 독주회, 관현악, 실내악 연주회 등이 초대된다. 다양한 오페라공연과 수십 여종의 콘서트, 연극발표, 발레 공연 등이 곳곳에서 올려진다. 또한 도시에 위치한 모짜르트의 생가에는 생전에 모짜르트가 사용했던 유품 등이 잘 전시되어 있어 이를 보려고 모여든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인구 8만 명의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니스에서는 사순절의 2주전부터 지구상에 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면축제가 열린다. 이 기간에는 민속놀이, 황소 사냥, 곡예사의 가장 무도회가 진행되며 이를 보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로 도시의 좁은 골목골목은 울긋불긋한 고깔모자와 가면들로 포화상태가 된다. 다른 유럽의 카니발에 비해 베니스 카니발이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의 역사적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축제가 처음 시작된 16세기경에는 축제 기간동안 만큼은 계급질서가 없어져 귀족들에게 욕을 해도 참는 등 평민들의 불만을 해소해주고 계층간의 갈등을 완화시켜 사회통합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축제가 절정에 달하는 9일과 10일 산마뱅슈 카니발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질'이 등장한다. 질은 뱅슈인 들에게 위엄 있고 장중한 존재로서 풍요와 행복을 상징하는데 질이 되기 위한 자격조건은 굉장히 까다롭다. 벨기에국적을 가지고 뱅슈 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이 축제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남자여야만 한다. 그는 축제아침에는 녹색 안경에 구레나룻과 밀랍가면을 쓰고 춤을 추고 오후가 되면 시청 앞 광장을 계속 돌면서 북소리와 함께 그 유명한 타조 털이 달린 엄청나게 큰 모자를 쓰고 사람들에게 오렌지를 던지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오렌지는 호사스러움을 상징한다. 특이한 복장과 독특한 뱅슈 만의 문화를 맛볼 수 있는 뱅슈의 카니발은 유럽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예쁜 축제로 매년 많은 관광객을 불러드리고 있다.독일 뮌헨의 맥주 축제맥주를 빼놓고는 독일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맥주는 독일의 상징적인 존재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원래 독일에는 물에 석회질이 많이 섞여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맥주를 물 대신 즐겨 마시게 된 것이 유래가 되어 맥주 산업이 발달하였는데. 그러한 맥주의 전통답게 독일에서는 매년 9월 마지막 주부터 10월 첫째 주까지 2주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맥주의 축제가 열린다. 그 중 뮌헨대학 인근의 테레지아 구릉지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최대 규모의 맥주축제이다. 12만평이 넘는 넓은 축제장 곳곳에는 어린이들의 놀이 시설 등을 비롯한 많은 위락시설들이 설치되어 세계 각국의 남녀노소가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되어있다. 축제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거대한 천막 안의 맥주홀에서는 인종과 나이에 관계없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머그잔을 높이 들어 큰소리로 건배하며, 유명한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민속밴드의 흥겨운 연주에 맞춰 어깨동무한 채 춤추며 몸속의 열정을 쏟아 붇는 모습은 과연 장관이다. 또한 이 축제에서는 매년 약 5백만 리터의 생맥주와 60만 마리의 닭, 40만개의 소시지등 엄청난 규모의 음식이 소비되고 있다. 이 축제의 유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수가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것은 기독교가 만들어낸 일종의 신화에 불과할 뿐이다. 예수 탄생에 대해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 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은 3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초기에는 그 날짜가 일정치 않아 1월 6일, 3월 21일(춘분), 12월 25일(동지 축제) 가운데 어느 하루가 선택되었다. 로마 교회(서방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한 것은 354년부터로 보여 지며, 379년부터는 그리스 교회(동방교회)가 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c. 크리스마스의 시작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처음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의 일이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기 전에는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켰는데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이중 명절로 지켰고, 예루살렘에서는 같은 날 예수의 탄생만 경축 하였다.*로마 교회로마에서는 4세기에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결정하고 이어서 1월 6일을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현현일 (Epiphany)로 기념하였다. 예수의 세례 기념일은 1월 6일로 부터 옥타브가 되는 다음주 같은 날로 연기하여 지키는데 이날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정도로 기억할 뿐 특별한 행사는 없다.본래 로마에서는 하루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 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것은 주후 274년 Aurelian 로마황제에 의하여 되어진 일이다. 북구라파에서는 이전부터 "태양이 다시소생"하는 동지 (冬至)를 크게 기념하는 축제(Festival)를 전통적으로 지켜 왔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한다.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이다.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X-MAS의 용어 설명-크리스마스의 유래-크리스마스의 시작-크리스마스와 캐롤-크리스마스 전통과 관습-세계의 크리스마스 풍습크리스마스와 X-MAS-크리스마스 용어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크리스마스"란 말을 원래는 Christes Masse - 그리스도 미사(예배)라고 불러 오다가 중세 영국에 와서 두 말이 하나로 합쳐서 된 것이라고 한다.그런데 신약성경에 기록된 언어인 헬라어에 보면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단어인 크리스토는 크리스마 "기름부음"(요일2:20,27)에서 유래된 것이며 이 용어는 크리오 "기름을 바르다, 헌신하다"에서 나온 용어이다.헬라어 명사는 주격으로 쓰면 시그마가 붙여져 '크리스마'를 주격으로 사용하면 크리스마스가 되는 것이다.'그리스도' -> '크리스마' 는 예수의 공적직함으로 구약에서는 제사장, 선지자, 왕에게 기름부음으로 그 직능을 수행한 것인데, 신약에서는 오직 예수께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아울러 예수께서는 이 세 가지의 직능의 완성자가 되신 것이다.-크리스마스와 X-MAS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지면 곳곳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써 놓은 것을 보기도 하지만 간단하게 X-MAS라고 쓴 것도 볼 수 있다.이 표기를 영어의 X로 생각하여 어떤분은 X-MAS는잘못된 표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표기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X-MAS을 알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여기에서 X 자는 영어 알파벳의 X자가 아니다. 헬라어의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자로서 이 뒤에다 MAS자를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표기는 X-MAS로 할 수있지만 읽을 때에는 반드시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것을 표기한 대로X-MAS라고 읽는다면 완전히 본 뜻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크리스마스의 유래크리스마스"의 날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12월 25일 설은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다음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Armenia 지방의 교회에서는 1월 6일에 성탄절을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때문에 1월 6일 현현일을 "작은 크리스마스"(Little Christmas) 또는 "구 크리스마스"(Old Christmas)라고도 부른다. 동방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같은 날 천사들에 의하여 "기쁜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방문(눅 2:11)도 겸하여 경축하고 동시에 성경에는 동방박사가 언제 찾아 왔는지 확실한 날짜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방박사의 경배도 아울러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탄생과 목자만을 기억하고 동방박사의 경배는 현현일에 기념한다.Christmas와 캐롤 (Carol)크리스마스의 전통과 관습 중에서 가장 즐겁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캐롤를 부르는 것일 것이다. 캐롤은 본래 불란서 말 carole에서 온 말로 주로 중세 불란서에서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圓舞)를 일컫던 말이었다. 이 원무는 동지때 가졌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이었다고도 한다.그러므로 캐롤은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어서 캐롤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반드시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 음악 이 캐롤인지 아닌지는 곡의 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그 곡에 버든(Burden)이라고 불리우는 후렴이 각 절의 가사 끝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 했는데 이것을 형식으로 보면 B, V1, B, V2, ... B의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개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캐롤은 우리가 현재 아는 바 대로 크리스마스 노래만을 한정해서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 시대의 캐롤은 다양하게 씌여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롤이 동정녀 마리아, 아기 예수, 등을 주제로 한 연유로 크리스마스 노래인것 같으나 실상은 부활절 캐롤도 있고, 고난절, 승천일, 성령강림 주일,... 등등 1년 교회력의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이 있다.옥스포드 대학 에서 출판한 {The Oxford Book다니면서 캐롤을 부르곤 했던 것이다. 미국 작가Washington Irving(1783-1859)이 1820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크리스마스날 밤 창문 밑에서 들려오는 합창단의 아름다운 캐롤 소리에 잠이 깨었다고 한다. 그 합창단은 십여 명의 옆 동네 사람들로 구성되어 집집마다 돌아 다니면서 창문 밑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화음이 서투르긴 해도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캐롤링은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소식을 천사들이 찬양으로 전했던 것 처럼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졌다. 한국에서도 6.25후 얼마 동안 까지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 캐롤링의 전통을 유지 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밤이 너무 무질서하고 퇴폐적인데다가 새벽의 노랫소리가 옆집의 비기독교인 가정에 안면 방해가되어 기쁜 소식이 아니라 불쾌한 원성이 높다고하여 교회가 자진하여 캐롤링을 삼가하고 있는 실정이다.-크리스마스 캐롤 이외의 캐롤캐롤은 크리스마스 캐롤만 있는것이 아니다. {The Oxford Book of Carols}를 보면 1년 열두달 교회력에 따라 200여개의 무수히 많은 캐롤이 수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캐롤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무도회에서도, 음악회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광범위하게 불려질 수 있는 음악이다.우리가 캐롤을 크리스마스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캐롤이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하여 씌어 졌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대학생들이 기타에 맞추어 가스펠 송 (실제로는 포크송(folk song)이라고 해야 옳다)을 즐겨 부르듯이 캐롤을 계절과 교회력에 맞추어 교회의 모임과, 그룹 활동, 여전도회, 청년회 등의 모임과 예배에 두루 사용 한다고 하면 즐거운 기분을 북돋우어줄 뿐만 아니라 은혜와 감명도 받을 수 있어 장려할만 하다고 본다.큰 교회에서는 대곡을 가지고 매주일 연주를 할 수 있지만 작은 교회 성가대는 대 합창곡을 하려고 힘겹게 애쓸 것이 아니라 캐롤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는 아물이었는데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의 머리에 눌러 씌움으로 예수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빨간 열매로 변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마스 때 담장 넝쿨로 화환을 만들어 교회와 집문에 붙이는 관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면류관의 상징이다.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독일에서 Martin Luther가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하늘에 별이 빛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서 있는 모습이 Luther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상록수의 끝이 뾰족하여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같이 보여 이와 같은 나무를 준비하여 자기집 방에 세우고 거기에 별과 촛불을 매 달아서 장식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상록수는 이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의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와 기독교인들의 생명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로 통합되어 이루어진 전통이 "크리스마스 나무"라는 것이다.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 아니라 기분 좋게 "호! 호! 호!"하고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4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의 조교로 있었던 좋은 일을 많이 행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를 의미한다고 한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 산타클로스의 풍습은 성 니콜라스가 평상시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나누어 준 것을 기념하는 관습이다.처음엔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이 구라파에 전해졌고, 그것이 화란 사람들에게 까지 전해졌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국으로 이민해 감으로써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배달하면서 "호! 호! 호!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즐겁게 외치는데, 이것은 미국작가 Washington Irving이 산타클로스를 항상 웃는 즐거운 인물로 묘사한 {Visit from St. Nicholas}를 1822년 Clement Moore가 작곡 함으로("T'was t없는 것으로"Lord of Misrule"이란 것이 중세 크리스마스 때 행해 졌었는데 이것은 평민 또는 대 군주의 노예 중에 서 한 사람을 뽑아 그가 군왕이 되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동안 절대 권력을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하는 전통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의 대혼란 을 일으키곤 했는데 이 전통도 쌔터넬리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쌔터넬리아 축제기간에는 모든 노예에게 그들의 주인과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였었다.세계의 크리스마스 풍습1. 영국영국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봉건제도 시대에 장원 영주의 저택에서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렸다.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풍습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 사람들은 대강절 기간부터 교회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다.그리고 이를 축하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려는 뜻에서 카드를 보낸다.최근에 이르러서는 여왕의 성탄절 메시지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영국 전역에 방송된다. 영국 트리팔가 광장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다.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밤에 통나무를 통째로 들여다가 벽난로 옆에 갖고 놓고 옛날의 풍습대로 온 가족이 통나무 위에 앉아 본다. 그리고 나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새해에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통나무를 벽난로 속에 넣기 전에 인사한다.어린이들은 벽난로 또는 화덕 옆에 긴 양말을 걸어 놓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채워 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우편배달부, 우유배달소년, 신문배달 소년, 청소년들에게 장갑, 털구두 따위의 선물을 안겨 주면서 한 해 동안의 수고에 감사한다.성탄절 아침에는 치즈를 발라서 요리한 공작새 고기를 먹는다.2. 독일독일의 성탄절은 크리스마스 장난감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12월 6일 전날 밤부터 크리스마스 축제가 시작되는데, 교회는 대강절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이 마음에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찬다.독일의 크리스마스 풍습으로 첫째는 선물을 주는 일이다. 아기 예수의 오심이 우리에게 기쁨이듯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르헨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