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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유육학]그림책의 그림읽기
    과 목 명 :그림책의 그림읽기과, 학년교 수 명 :학 번 :제 출 일 :이 름 :책을 처음 보는 순간 겉표지와 책의 제목을 보면서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예쁘고 흥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책의 표지도 다른 책과는 다르게 읽기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굵고 매끄러운 종이이기 때문에 부담을 갖지 않게 되었었다.책의 내용은 우선 그림책의 개념을 먼저 설명하고 있다.개념에서 그림책은 대개 책의 외양이나 물리적 형태에 따라 분류된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림책이라고 부르는 책에서는 글의 그림 없이 그자체로만 존재할 수 가 없다고 한다. 글의 의미를 더 명료하게 해 주고 나아가서는 그 자리를 차지기도 한다.그림과 글이 대위적인 관계에 있는 경우는 글이 그림의 배경음의 역할을 하는 그림책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예로는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무서운 이빨을 무서운 눈알, 무서운 발톱은 문장과 그림을 비교해 보면 글이 단훈히 그림을 묘사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우리는 그림책에 그려져 있는 많은 그림들을 쳐다보면서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이것이 글의 내용과 맞아 떨어질 때문 더욱 창조적인 생각과 자아가 성숙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부분들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되어 지는 것 같다.어릴 적 우리들은 깊게 상상하고 있었던 일들을 한가지 씩은 여전히 지금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이런 것은 그림책의 중요성을 한번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림책에서는 그림이 이야기를 구체화시키고 우리의 상상력과추리력을 방동 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글에서는 알 수 없었던 상황을 보여주고 독자는 이러한 글의 부적절성을 인식하고 알아보는 지적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글이 말하는 이야기와 그림이 말하는 이야기 간의 거리가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다.이 책을 통해서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주는 즐거움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다. 즐거움이 수록되어 아이들과 함께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 바로 아이들이 선호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그림책에서 그림의 특정 스타일, 매체, 내용에 대한 어린이의 선호도를 밝혀 보려한다는 것이 책에 소개 되어졌는데 이러한 사항들이 현재 많은 아동관련 책을 쓰는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구세서는 사실주의와 추상주의 스타일의 그림 중에서 어린이가 어떤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우리는 책에서 나온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함께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이것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분명한 역할임에는 틀림이 없다.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유의해야할 사항들은 책에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기호적관점과 현대문학이론 그리고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상호보완적 역할 이다.책의 내용이 정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명확한 답변 보다는 예를 들어 설명을 하는 것으로 나열이 되어 있어서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다양한 예를 그림과 함께 읽으면서 차차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책에서 상호중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림책은 글기호가 그림기호로, 그림기호가 글기호로 변화하여 새로운 해석을 창출하면서 ‘상호중재’한다. 라는 내용인데 이것을 모형을 통해서 설명을 해 놓은 것은 독자가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지만 정의의 부분에서는 이해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물론 어려운 부분에 대한 내용에서 다소 이러한 부분이 있었을 뿐 다른 부분에서는 이해하기가 편했다.특히 그림의 기본요소에서 선이나 모양과 형태, 색이나 재질감, 그리고 공간, 구성원리등을 설명할 때에는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다.그림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와 아이들의 시각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를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떤 의도로 작가가 표현 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림책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그림 책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와 지적수순을 높일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에서 새삼 느끼게 했던것 같다.그림책이 큰 조화를 이루려면 제대로 조직화 되고 각 부분의 합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통일감은 그림 작가들이 그림의 각 부분들을 서로서로 연관짓는 기법으로 통합된 전체로서의 느낌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좀 어려운 말이기는 하지만 결론은 조화나 일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뜻인것 같다.책에서 많은 예들을 들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그중 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노란우산의 그림인것 같다. 물론 아무 내용이 없지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는 것같다. 다양한 색상과 균형적인 우선의 배열등은 움직임의 효과를 극대화 한것 같다.그림책에서 그림언어의 문법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아이들이 책을 접하면서 글을 알게 되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우선 아이들에게 책이라는 것의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단순히 교육적인 목표 보다는 흥미를 줄 수 있는 문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책에서는 그 용법이나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달을 해주어야 효과적인지 잘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교육학| 2007.05.08| 3페이지| 1,000원| 조회(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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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기독교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평가A좋아요
    좋은 문학작품이란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질서와 규범에 맞는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적 문학외에는 어떤것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새롭게 받아 들여졌다. 그렇다고 부정을 하는 것은 아니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질서와 규범 바로 이것은 어떤 특별한 형태와 내용을 뜻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전도적인 목적이 아니라 문학에서의 규범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존재하는 규범과 다르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느끼고 기준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목표를 세운다. 이것은 윤리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라 생각한다. 즉 윤리나 도덕은 나라의 문화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변할 수 없지만 기독교적인 진리는 변함이 없다. 즉 변하지 않는 진리 속에서 우리는 삶의 선과 악,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을 찾을 수 있게 된다.문학교육의 목표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것이 모두 포함된다고 보았을 때 기독교교육과 문학은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책의 내용이 매우 쉽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감을 갖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매우 유익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비기독교인들이 읽었을 때에는 기독교에서의 주관적인 입장을 내보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것에 쓰여진 것을 타 종교에 비춰서 생각해 보았을 때에도 크게 벗어나는 것같지는 않다는 것이다.이유는 많은 타종교가 선하게 살고 어리석음과 악한 것에는 배타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단지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르다는 것은 부활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좀더 객관화 되어 씌여졌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그렇다고 전혀 타종교와 구분되지 않은 것도 아니긴 하다. 재화라는 내용으로 성경의 언어가 어린이의 이해수준에 적합하지 않기l 때문에 혹은 성경 테스트를 문자 그대로 읽어주는 상황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무미건조함을 피하기 위해, 혹은 그 사건이 일어난 문화적 맬락을 보충하여 설명하기 위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화의 내용을 말하는 것인데 직설적으로 다른 종교와의 차이는 이러한 점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내용은 아이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고 이웃에 대한 봉사로 나아가는 길이 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학문의 목표를 세울수 있고 이룰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문화적인 차이로 전래동화와 서구적인 동화의 차이를 들어서 전래동화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서구동화로 기독교적인 내용을 깊게 다룰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좀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많은 이야기들을 재현하기 때문에 우리의 전래동화도 그렇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적인 것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그림책을 설명하면서 존버닝햄과 존 셰스카 그리고 에쿠멀 래머챈더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존버닝햄은 기존의 동화와 확실히 다른면이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다.우리 주변에 흔히들 좋은책이라고 선정된 책들을 보면 의문이 가는 책들이 많다. 그 의문은 이 것이 정말 아이들이 읽어서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또한가지는 어떠한 뜻을 전달하려는 의도인가. 이다.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기존의 끝이라는 전달이 명확했던 것과는 달리 좀더 상상해 보고 아이들의 차이에 따라서 해석이 틀려지는 것으로 기준을 명확하게 내세우지 않은 점은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자칫 상상을 멈추고 재미로 접근할 수 있는 교훈적인 기능을 줄일 수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다양한 삽화로 접근하는 애쿠멀 래머챈더는 전달하는 목적의 의도가 독자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끝맺음을 줄 수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이 추가적으로 설명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성인과는 달리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을 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 부정적 요소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역시 기독교적 관점으로 그림책을 접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성경의 틀 안에서 해석을 하다보면 결론은 그렇게 다를게 없다. 즉 상상력과 결단력에 한계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서 처럼 일그러진 세상과 인가의 모습이 죄로 인해 생겨난 것을 문학교육적인 측면에서 그 전달방법에 따라 기독교적 관점으로 풀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 차체가 한계라는 것이다.긍정적인 의미로 보았을 때에는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근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진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즉, 현재의 틀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고 안주하려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하나님나라에 가기 위해서 혹은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 세상안에서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생각, 행동, 인지차원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현실을 바라볼 때 때론 이성적인 측면에서 윤리와 질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능력도 길러 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맥락으로 해석하자면 공동체의 삶이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결속되어져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공유를 위해서 또는 다른 결과를 위해서라도 공동체는 성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폭넓은 시야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지식을 전달하는 정보책에 대한 내용에서 고학, 사회, 수학, 언어, 음악과 예술로 분류하여 대부분 유아교육과정에 많이 사용되는 매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지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이 결합될 때 학습이 더 잘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좋은 정보책은 학생으로 부터 흥미와 활발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학습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내용은 오래전 부터 지식을 전달하기위해 많이 사용되는 내용이기 때문인지 이해하기가 쉬웠다. 또한 공감이 가는 면이 많았다.어떻게 보면 이 책은 잘못전달 되면 주입식으로 아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소 지루함이나 거리를 두고 흥미보다는 교육에 앞서 지도할 수 있는 잘못된 방식으로 아이에게 접근할수 있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방법과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여 아이들에게 의무적일 수도 있지만 전달해야하는 의무감은 교사들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07.05.08| 3페이지| 1,000원| 조회(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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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의 자유
    ‘아이들의 자유’를 읽고...어린이집에서 유아들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거나 나와서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면 서로 나와서 하려고 손을 드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한국 사람도 어렸을 때는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커가면서 차츰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거나 심지어는 겁을 먹는 사람들로 변해 갈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이번의 ‘아이들의 자유’책을 읽으면서 차츰 해답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문제의 시작은 ‘착한아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위 착한아이라고 불리어지는 아이들을 상상해보면 우선 부모님이나 교사의 말을 잘 들어야하고 떠들지 말아야 하고 뛰지도 말아야 하고 친구들과 싸우지 말아야 하는 등등. 이것들을 유아들이 잘 지켰을 때 어른들은 ‘그 아이 참 착하구나.’ 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내 자식이 이런 소리를 듣게 하기위해서 어렸을 적부터 주입식 교육을 시켜 가면서 착한 아이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면 혼나는 것이 아닐까? 혹시 누가 자신을 흉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즉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서양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이야기할 줄 아는 아이’를 바람직한 아이로 보고 있다고 한다. 유아기 때의 보육방식이 틀리기 때문에 점차 성인이 되어가면서도 서양과 우리나라의 모습은 크게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양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예전과는 많이 다르게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자리 잡고 있지만 여전히 성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공식대로 아이들을 양육해야하고 그 공식대로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 양육에 대한 성공감을 느낀다.책에서처럼 자녀를 양육하면서 부모는 많은 고민과 당황해 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부모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서 자신이 헌신을 한다고 생각하고 판관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가치관은 지식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고 희열관은 지식은 배울수록 기쁘고 좋다는 것이며 간판관은 장차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우리 대다수의 부모나 교사는 간판관을 갖고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자식이 좋은 대학에 졸업을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고 교사는 좋은 학생을 배출하는 학교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 된다.희열관이 바로 영유아기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어른들이 아이들의 고유의 정신을 무시하고 어른들의 가치 판단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고 결국에는 교육은 어른의 무지와 착각 덩어리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 같다.책에서처럼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며 아이들의 행복은 아이들의 고유정신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나 교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 한다.책에서처럼 흔히들 놀이로 부터에서도 어른들은 목적을 갖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학습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잘 잘 때만 빼고는 끊임없이 학습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그렇다면 아이들은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만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인가? 사실 놀이의 본질에 따라서 목적이 없는 활동으로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어떤 의무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놀이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수단으로 이용되어 진다면 앞으로 아이들에게 무엇이든지 수단으로 밖에는 적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목적을 두고 놀이를 하기를 원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교사가 아이들의 놀이를 보면서 평가를 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정상적인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로 구분도 하는 경우를 보아 왔다.아이들에게 자유로운 놀이가 허용되지 않는 다면 결국에는 어떤 지시에서 그리고 어떤 틀 안에서만 아이들이 활동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이들의 차별성을 무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어린이집에서 만들기 작업을 할 때 교사는 미리 정해놓은 계획대로 아이들에게 재료를 우선 제공 한다. 그리고 미리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만들어 보라고 시킨다.아이들의 작업이 시작될 때 교사는 아이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완성된 작품과 같은 모습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그때그때 수정을 해준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는 재료를 다른 작품을 생각할 수 있고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을 텐데 이러한 아이들의 욕구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또한 점심식사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골고루 먹게끔 하기 위하여 싫어하는 음식도 강제로 먹이는 경우와 늦게 먹는 아이를 구박해서 빨리 먹을 수 있게끔 교육시키는 것 또한 아이들의 차별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인간은 얼굴이 모두 다르듯이 마음도 능력도 다 다르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은 모든 면이 다 다른 개성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그리고 어른들이 정해 놓은 잣대에 아이들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아이들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봄으로써 끈기가 생겨나고 무언가에 몰두하여 일을 마무리 하면 거기서 자존감과 자신감등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맛보기 전에 어른들은 대신 해주거나 또는 미완성된 작품 보다 아예 완성된 작품을 아이들에게 건네주곤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끈기를 갖고 무언가를 해보려는 인내심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또는 무언가를 끈기 있게 할 필요성조차도 못 느끼게 된다. 그래서 무엇을 얻어도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없고 보다 새로운 것만을 갖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본다.가끔 이러한 자녀를 보면서 부모들은 자신의 어렸을 적에는 이러한 풍족한 것이 없었는데 너는져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겠다.예전의 대가족 시대에서는 형제들이 많아서 서로 경쟁도 하지만 많은 도움도 받으면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만 점차 핵가족화 되면서 형제의 수가 적어지고 얼마 전 내가 실습을 간 곳에 5세반 유아들은 거의 반의 70%이상이 외동 이였다. 이런 유아들은 책에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또래와의 접촉을 통해서 자신의 욕구와 주장을 상대방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 된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유아들이 다툼을 할 때는 자리를 비켜 유아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부모들에게 있다고 본다. 이러한 배려를 할 수 없고 싸움이 커지기전에 교사가 나서서 중재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몸싸움으로 인해서 유아들의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부모들은 교사의 역할이 무엇이냐며 따지고 들기 일쑤며 상대부모로 부터 공개 사과를 하라는 사람도 있다. 역시 부모들의 무지는 외동에게 최악의 조건만을 만들고 또 만들어 놓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인간의 본질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지나치게 유아들 끼리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회마저 어른들로 인해 빼앗긴다면 유아들이 누려야할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유와 방종은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 어른들은 이것을 머리로는 구분을 해놓고 있으면서 실제로 행동으로 구분되어진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마저 방종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부모의 입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책에서 유아기의 교육에는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자유롭게 아이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스스로 선택도 해보고 탐색도 해보는 자유를 갖는 동안 교사는 아동의 안정을 위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의 역할만이 아니라 부모가 가정에서 유아들을러한 성인이 다시 자신의 자녀에게 같은 양육을 하게 된다면 끊임없이 연속된 아동 학대만 이루어 질 뿐이다. 이러한 학대는 사실 가정에서만 국한 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책에서의 예와 같이 입시문제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고 자살을 한 예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아이들이 6세에 학교에 가기 전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교사들은 끊임없이 어린 영유 아에게 “너는 왜 이렇게 못하니?”, “너 자꾸 그러면 혼낼 거야.”,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 왜? 너만 그렇게 하니?”라는 말을 잘 쓴다. 이것은 내가 실습을 할 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려오는 교사의 말 이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잘 해야 선생님께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블럭 한 개를 들고 서로 제자리에 갖다놓으려고 다투기도 한다. 결국 두 아이는 블럭으로 친구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인가? 아이들은 무엇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았던 적이 있었다.블럭을 잘 치우는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면서 모든 아이들이 블럭을 깨끗히 정리 할 수 있기를 바램을 가졌던 교사의 의도에 따른 결과는 결국 아이들을 칭찬의 함정속에 빠뜨리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칭찬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인간을 어렸을 적부터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어른들로부터 교육받아 오는 것 같다.우리는 어릴 적에 자유로운 생활을 해본 경험도 그리고 어른들에게 존중을 받아본 경험이 없고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정체감 상실과 열등의식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라 왔기 때문에 그렇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공식화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이 공식이 학대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보육과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학대의 문제는 이미 .
    독후감/창작| 2007.02.22| 6페이지| 1,000원| 조회(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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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유아교육]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를 읽고...
    저자는 벤포스타를 방문하여 실바신부로부터 그리고 직접 아이들의 생활을 보면서 새삼 아이들에 관한 능력에 대해서 스스로 놀라워 했다. 현대의 아이들과 그리고 부모들 보호아래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가 겉으로 보았을 때는 안전하게 보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지나친 보호아래 자라나는 아이들은 사회에 진출할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위해 많은 어려움 격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지나치게 가난한 가정에서 그 나이 또래에서 익혀야할 학습과 경험을 누리지 못하는 성장한 아이들의 경우도 사회에 나가서 균형 잡힌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힘들며 그런 결과 가난이 되물림 되는 것이리라고 한다.어른들 중 아이들의 자발성과 상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책임을 맡길 만한 용기를 지닌 어른들이란 무척 적다고 한다. 하지만 실바 신부는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고 하였다.저자는 실바신부가 말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문제를 결정하고 풀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이 경제독립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와 같이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간섭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많은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현재 벤포스타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 만큼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 물론 교사도 있는데 그들은 아이들에게 지식과 기술을 전해주는 조언자의 역할만 할 뿐이다. 이러한 벤포스타에 대해 걱정 스러워하는 부모도 있지만 벤포스타의 아이들이 사회 여러곳 진출하여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일반 학교에 가서도 좋은 성적을 얻고 있다.저자는 단지 벤포스타의 어린이 공화국을 소개하기 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우리 성인들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하기 위함이고 모든 아이들에게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도 함께 말하고 있다.실바 신부은 9살에 소년들의 마을 이라는 영화를 보고 에스파냐에 어린이들을 위한 도시를 세우고 싶어했다. 그 어린이의 도시에서는 남녀 아이들이 똑같은 귄리를 누리며 생활하고 일하며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어린이 도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실바의 생각이다.이러한 뜻을 뒷받침하여 만들어진 실바의 교육방침은 아이들이 굳이 나서서 세상의 고통을 체험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자기들이 동참해야 하는 까닭을 이해하기 바라며 아이들에게 세상의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되, 미래의가능성을 위해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실바의 교육 방침이다.벤포스타는 아이들이 스스로 도시를 가꾸고 보호하며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을 방문하는 방문객은 아이들이 정해놓은 절차를 밟아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우선은 방문객은 벤포스타의 국경 경비원에게 수수료를 지급한 후 비자를 받는다. 그리고 경비원은 시청으로 전화하여 이 사실을 전달하고 방문객은 시청에서 20살의 시장을 만나게 된다. 시장으로부터 마을을 안내할 나이어린 안내원을 소개 받는다. 그 아이는 능숙한 말솜씨로 방문객들을 놀래키며 자세하고 친절하게 마을을 안내한다.벤포스타에서는 학교 수업과 기술 수업이 너무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신경을 쓴다. 수업이 스트레스를 주어 아이들이 중압감을 느끼거나 거칠게 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한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의 소질과 취미를 계발할 시간이 늘 넉넉하다.실바 신부는 처음부터 이 학교에서 서커스단을 만들어, 서커스단이 벤포스타의 사명을 예술로 변형해 전 세계에 전하도록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아이들은 자신들의 공연 활동은 곧 ‘삶의 기쁨’ 이고 벤포스타는 국가에서의 지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공연이나 주유소등을 통해 수입을 올리고 있다.벤포스타에는 큰 모험이라고 하는 특별한 교육이 있다. 1년 동안 힘든 교육을 받는 이 큰 모험은 벤포스타 아이들이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경험해 볼 수 있는 훈련이다.벤포스타는 삶의 소중함을 배우는 곳이며 삶의 가치를 배우고 기회가 많은 유익한곳이다. 이곳 벤포스타의 아이들은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는 많은 도움을 주는 성인으로 자라날 것이다.우리나라에서 몇 년전부터 열린교육, 참여교육 바람이 불면서 차츰 교육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어느 정도 아이들에게 교과중심 교육과정보다는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들 자신들이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는 습관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벤포스타가 어린이 공화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실바신부의 철학이 뒷받침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실바신부는 좀더 나은 세상, 좀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아이들 뿐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새로운 사회 행동 방식을 연습시키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가장효과 높게 전달함으로써,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추구하는 일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교육이 실시 되기 위해선 교사 스스로가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실바신부는 끊임없이 벤포스타와 그 아이들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벤포스타가 완성될가 봐 걱정된다고 한다. 완성이란 움직임이 멈추는 것이며 틀 속에 갇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변화에서 신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보통아이들의 또래 아이들 보다 성숙되어 지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온 실바 신부의 의지와 능력이 매우 놀랍다.벤포스타의 교육 중 특별한 교육이라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이 교육은 1년 동안 병원봉사부터 시작해서 구걸, 배청소등 교도소체험까지 함으로써 앞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나 앞으로 겪게될 알수없는 여러 상황에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물론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교육을 받고자 하는 아이가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힘든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알면서도 많은 아이들이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학| 2005.09.15| 3페이지| 1,000원| 조회(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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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교육] 딥스
    딥스의 저자 액슬린은 어른들의 자녀교육에 관한 잘못된 지식으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어떠한 피해를 입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를 딥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떻게 치유해주어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환경에 따라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놀이치료를 통해서 아이에게 숨겨져 있는 행동의 이유를 찾아서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적절한 치료를 하면서 정상적이고 건강한 아이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한다.저자의 소견으로는 놀이치료와 같은 정신치료의 가치관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자기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느끼고 자신의 생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고 본다.부모들이 현대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를 기르는 척도가 복잡한 기술을 습득하거나 인지적인 수준을 높이는 것에만 집중을 하기 때문에 보이는 부작용이 어떠한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가 있으며 액슬린은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아이를 치료하지만 이 치료는 반드시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부모까지 정신 위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액슬린은 어린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인격, 권리가 자신과 다른 점을 이해하기 전에 마음속에 끊임없이 자라나는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자기를 존중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갖게 되는 것을 먼저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액슬린이 처음 딥스를 보게 된 곳은 3세부터 7세까지의 아이를 교육하는 매우 훌륭하고 오래된 사립 유아학교였다. 이곳에서 딥스는 보통아이와는 다른 행동을 보였다. 우선 주위 사람과의 접촉은 피하고 웃지도 않으며 정신박약아 같은 때도 있고 간혹 꽤 명석할 때도 있는 아이였다.딥스의 부모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 이였고 물질적으로도 풍부한 가정이었다. 그의 부부는 딥스에게 동기나 이해, 느낌 등의 변화 없이 인지적인 학습만 강요하였고 균형있는 학습을 제공받지 못한 딥스의 태도는 이상하게 변하였다. 그렇지만 부부는 딥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게 말을 함부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딥스의 아빠는 딥스의 말조차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딥스도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시키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즉 이러한 환경 속에서 딥스는 자신의 외부적인 활동들은 긍정하지 않지만 자신의 자아를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므로 자신의 세계는 더욱 자기중심이 되었던 것이다.일주일에 한번 시행하는 놀이치료와 딥스의 어머니의 상담을 통해서 원인을 파악한 액슬린은 딥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적절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딥스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그의 우수한 지능의 적절한 돌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놀이치료를 하기 전에는 딥스는 가족과의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또한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부모들은 매우 힘들어했고 딥스의 학교 친구들도 그를 멀리 하였다. 하지만 놀이치료의 횟수가 늘어가면서 어느덧 스스로 자기는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자기감정에 대한 책임감을 쌓았고 그의 증오감과 복수심을 자비심으로 전환 되었다. 딥스는 자아를 찾은 것이다. 그는 그의 상징적인 놀이를 통해서 스스로의 상처 입은 아픈 감정들을 쏟아 오르게 되었다.자아를 찾은 것은 딥스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도 딥스의 성장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나머지 함께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딥스는 친구들과도 함께 어울리고 가족과 예전 같지 않은 모습으로 지내게 되었다.치료가 끝나고 액슬린은 9년 정도 후에 천재 소년들을 위한 학교에서 교사로 있는 친구로 부터 딥스가 자신의 친구의 퇴학조치에 반대를 하기위한 공개서한에 대한 이야기와 딥스가 매우 총명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며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학교 측에서는 그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딥스의 의견을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는 ‘만인의 정의와 평등을 위한 중요한 말 등을 수집해 놓은 것에 이걸 끼워 넣고 싶지 않으세요?’ 라고 하며 딥스의 공개서한을 주는 친구에게 액슬린은 공개서한에 씌어진 말을 인용해서 ‘성실함과 행동의 의지로써 꼭 그렇게 하겠어요.’라는 말로 이 책에 마무리를 지었다.이 책을 읽고 내 자신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이를 가리키는 것이 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루소의 ‘에밀’을 읽었을 때 루소는 참다운 교육이란 훈계로써 교육하는 것보다 실제적인 훈련으로써 교육하는 편에 있다는 결론과 자식에 대한 첫 번째 의무를 다하게 하려거든 우선 어머니의 의무부터 시작하라. 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많은 교육현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자신들에 대한 사랑, 애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 존중해 주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05.09.15| 2페이지| 1,000원| 조회(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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