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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랑루즈 평가B괜찮아요
    영화 물랑 루즈)의 배경은 1900년도 초 보헤미안 혁명이 태동하던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언덕의 사교댄스클럽 ‘물랑 루즈’이다. 파리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 아무래도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은 ‘예술의 도시’이다. 파리가 예술의 도시가 된 것은 유럽대륙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인접 국가들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여 그것을 토대로 하여 민족의 기질을 첨가해 탄생하게 된 것 일 것이다.물랑 루즈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보헤미안’의 어원은 체코의 보헤미안 지방에서 유래되었다. 그 지역에 살던 유랑민족인 집시를 일컬어 15세기 이래로 프랑스에서는 그들을 보헤미안(보엠)이라 불렀고, 이 말은 19세기 후반부터는 사회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랑자나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을 지칭하게 되었고, 실리주의와 교양 없는 속물근성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필리스틴’에 대조되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기존의 계급, 질서에 반항하는 세력으로 반 부르주아적 성향을 띠는 집단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곳에서 자유와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보헤미안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영화 ‘물랑 루즈’속의 한 반항적 젊은 시인 크리시티앙(이완 맥그리거)을 비롯한 그의 주변인물(화가 툴루즈 로트렉)등)들이 바로 이러한 보헤미안 혁명의 주인공들이다.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려는 가난한 예술가들과 귀족계급을 대표할만한 인물인 듀크공작은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은 소수중의 한명으로써 특히 순수한 사랑을 하는 크리시티앙과는 대조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런 물질문명을 엿볼 수 있는 하나가 영화에 나오는 노래의 소재로 쓰인 ‘다이아몬드’가 아닐까 한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육신이 늙어 가면 남는 것은 오직 다이아몬드뿐이라는 짧은 구절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은 영원할 수 없을 거라고 크리시티앙의 사랑을 부정하기도 하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세틴은 사랑을 알아가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을 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이다- 라고 외치던 크리시티앙의 말처럼 그녀는 듀크공작의 연인이 된다면 얻을 수 있는 큰 극장의 주연배우와 보석들을 버리고 젊고 가난한 시인인 크리시티앙을 선택한다. 이러한 결말은 부르주아들의 계급적인 사회를 버리고 자유와 예술의 상징인 보헤미안혁명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이 영화를 문학적 관점에 비교해서 살펴본다면 물랑 루즈는(비록 190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지만) 근대의 리얼리즘 문학에서 현대의 모더니즘 문학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시기와 비슷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중세의 봉건주의 체제는 무너지고 근대의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서게 되면서 부르주아가 지배계급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향락은 날이갈수록 심해졌고, 노동력 착취와 저임금 고생산의 악덕 경영자들이 늘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갈수록 힘들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학해 졌다. 그리고 1848년을 기점으로 현대로 들어서면서 여기저기서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자신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위해 권력층에 대항하기 시작했다.이렇듯 영화 물랑 루즈도 계급권력인 듀크공작과 자유를 부르짓는 시인 크리시티앙의 대립과, 다이아몬드만이 최고의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는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있는 세틴이 극중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상황을 짐작하게 해 준다.“작품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물랑 루즈는 보헤미안 시대의 정신인 자유로운 예술이 귀족계급의 향락으로 몰락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미에서 한 여자를 사이에둔 듀크공작과 시인 크리시티앙의 삼각관계에서 세틴이 크리시티앙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보헤미안의 승리를 암시해 놓았다.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관객이 현실을 보는 각도도 달라질 것이다. 즉, 이 말은 작가의 세계관이 관객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약 이 영화의 결말이 세틴이 공작의 애인이 되는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작품성이 없는 그냥 쓰레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리얼리즘 문학의 선구자인 발자크는 귀족이었고 보수적이었으며, 왕정중심주의의 사고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를 꺼려했고, 대중이 지배하는 사회의 문화는 타락할 것이고,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고급예술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쓴 「농민들」이라는 책은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다. 발자크는 농민들이란 책을 발표하면서 “나는 프랑스 역사의 서기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듯 발자크는 귀족의 편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까라 어쩔 수 없이 부르주아의 편을 들었다. 이것은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이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아주 적적한 예이다.
    인문/어학| 2007.04.08| 2페이지| 1,000원| 조회(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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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스쿠니 신사참배
    목차Ⅰ. 서론1.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Ⅱ. 본론2.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3. 야스쿠니신사참배가 문제시되는 이유Ⅲ. 결론4. 야스쿠니신사참배 문제의 해결 방안Ⅳ. 마치며5. ‘일본을 보는 두가지 테마’1. 야스쿠니신사 (靖國神社)신사는 도쿄중심가의 황궁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부지 3만평에 도쿄돔 야구장의 2배크기다. 1869년 메이지 천황 시절 황군의 혼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국가신사로서 세워졌으며, 처음의 명칭은 쇼콘샤(招魂社)였으나 1879년에 야스쿠니진쟈(請國神社)로 개칭하였다.국립묘지가 없는 일본에서 야스쿠니신사는 우리의 국립묘지와도 같은 상징적인 곳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의 11개 전쟁 전몰자 총 246만 여명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일제 때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한국인 희생자 2만 1000여명도 포함되어 있으며, 더욱이 당시 총리 겸 육군대신 도조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들도 놓여져 있어 '신사중의 신사' 불리고 있다.야스쿠니 신사에는 상징인 흰 비둘기를 대량으로 방육하며 평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신사 전체가 전쟁을 주제로 한 거대한 학습장을 연상케 한다. 야스쿠니신사의 정문을 들어서면 '일본육군의 아버지'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동상이 있으며, 그 오른쪽으로는 가미가제 돌격대원의 동상, 야마토(大和) 전함의 포탄, 군마(軍馬) ? 군견(軍犬)의 위령탑 등, 각종 병기들과 함께 근대 이후의 일본이 겪은 각종 전쟁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 뒤쪽으로는 군인칙유(천황이 내린 제국 군인의 덕목)의 비석 이 있으며, 유슈칸(遊就館)이라는 일종의 전쟁박물관도 볼 수 있다.1869년 처음 세워진 이래 야스쿠니신사는 황실이 경비를 부담하는 국가신도(神道)를 상징하였으며, 제국주의 시절에는 군국주의 확대정책을 종교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곳으로서 천황숭배와 군국이념을 조장하는 국영 신사였다. 전후 좌파정권이 야스쿠니신사 철폐안을 제기한 것이나 우익세력이 공식참배 주장을 거듭해 온 것도 모두 이런 역사 때문이었으며, 전후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 사령부도 이러한 야스쿠니신사의 위험성을 깨닫고 국가와의 연결고리를 차단하여, 이후 국영 신사라는 특권적 지위를 상실한 채 단순한 종교법인으로 전락하게 되었다.2.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일본의 신사참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신사라는 것은 일본의 토속 종교의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기관이다. 한국에 고려시대의 삼국유사등에 나오는 단군 신화가 있듯이 일본에도 고사기, 일본서기라는 역사책에 내려오는 건국 신화가 있고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신화에 따르면 현재의 일본 천황은 일본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한국과 다른 것은 한국은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에 전부 건국신화가 있고 그 후에 고려, 조선시대에 왕조가 여러번에 걸쳐서 바뀌었지만 일본은 고대로부터 같은 뿌리로 계속 천황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일본 전국 각지에 있는 신사들은 신사들마다 섬기는 신들이 서로 다르고 천황도 신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역사상 유명했던 천황을 섬기는 신사도 있다. 예를 들어서 도쿄 하라주쿠에있는 메이지 신궁은 일본이 개국을 해서 근대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한 메이지천황을 섬기는 곳이다.일본 국민들은 요즘도 아기가 태어나면 무병장수를 기원하거나 결혼식을 올리거나 새로 집을 짓는데 무사히 집이 다 지어지는 것을 바라거나, 심지어는 자동차를 샀을 경우 교통사고가 나지 않기를 기원하려고 신사에 가기도 한다. 정말로 종교심이 투철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일종의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려고 신사 참배를 하는 것이다.그리고 일본인들은 새해 첫날에 그 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신사에 가서 기원하는 풍습이 있고 거의 모든 일본 국민이 새해첫날 (또는 2,3일)에 참배를 간다. 한국 사람이 설날에 세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풍습일 뿐 종교적으로 의미를 크게 가진 것은 아니다.일본총리가 참배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쿄 이치가야 역 근처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이다. 야스쿠니신사는 나라를 위해서 순직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신사이다. 일본 전국에 호국신사라는 신사들이 많이 있는데 그 신사의 대표격이 야스쿠니신사이다.일본에는 국립묘지가 따로 없어서 야스쿠니신사가 국립묘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2차대전때 중국, 한국을 침략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일본이 패전한 다음 군사재판을 받아 전범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위패가 야스쿠니신사에 같이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즉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다는 것은 일본의 전쟁 범죄자들에게도 함께 머리를 숙였다는 말이 됨으로 중국이나 한국에서 볼 경우에 과거의 침략전쟁 범죄자들에게 참배하고 과거 전쟁을 통해 한국이나 중국에게 피해를 끼친 것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야스쿠니신사는 순수하게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총리가 신사 참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 중에서는 침략 전쟁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우익 단체들도 있다.뿐만 아니라 침략 전쟁은 나빴지만 전사자들의 명복을 비는 것은 필요하다는 이유로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들 위패를 빼거나 야스쿠니신사와는 별도로 순수한 의미의 국립묘지를 따로 건설해서 거기에 참배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사실 현재의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의 우익단체들의 정신적인 본거지가 되어 있고 과거 전쟁을 미화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어버린 경향이 있다.3.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문제시되는 이유첫째, 일본 헌법 20조는 「국가 및 기관은 어떠한 종교적 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즉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야스쿠니신사는 말할 것도 없이 민간의 종교 시설이다.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참배하는 것 차체가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둘째, A급전범 14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신으로서 받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자인 연합국은 전쟁을 일으켰거나 적극 가담한 사람들을 재판에 넘겼다. 이 가운데 당시 총리로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한 도조 히데키등 핵심인물 25명을 A급 전범이라 부르고, 이들중 사형을 당한 7명과 감옥에서 숨진 7명이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 포함 되었다. 이들이 전범 중 가장 죄가 큰 A급 전범이다.그러니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절을 한다는 것은 곧 A급 전범의 혼령 앞에서 일본인을 대표해 존경과 추모의 뜻을 표시하는 셈이 되죠.전사자의 유족이나 후손이 개인적으로 참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총리의 참배는 또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비춰지게 됩니다. 특히 피해자였던 한국.중국 입장에선 더욱 문제가 된다.4. 야스쿠니신사참배 문제의 해결 방안제국주의전쟁과 동서냉전의 시대였던 불행한 20세기를 넘기고 세계사는 이제 지역협력주의와 평화주의?문화주의를 지향하는 희망의 21세기로 들어섰다. 이같은 시대적 요구와 추이에 따라 세계의 문명국들은 그 2세 국민을 평화주의자로 길러야 할 세계시민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인류사회의 보편적?당위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국가는 아무리 경제대국이요 물질문화 선진국이라 해도 문명국으로 평가되거나 대접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역사적으로 단죄된 침략주의자 전쟁범죄자들이 그 2세 국민들에게 국가의 수호신이나 구국의 영웅으로 인식되게 하려는 처사이며, 따라서 그 2세 국민을 평화주의자가 아닌 침략주의자로 길러낼 소지를 마련하는 행위라 할 수밖에 없다.지난날 우리 땅과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소위 국익선(國益線) 확보니 동양평화니 대동아성전(大東亞聖戰)이니 하고 늘어놓았던 궤변을 되살려 21세기 일본의 주인이 될 젊은이들에게 가르친다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G7인가 G8인가에 든 선진국이요 경제대국임을 뽐내는 일본이라 해도, 결국 문명국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침략주의 비문명국 이 되고 말 것이다.돌이켜보면 20세기 아시아세계를 불행하게 했던 주범은 일본이었다.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 주의로 유럽제국주의를 배워 아시아국가로서는 유일한 침략주의국가가 되었고, 우리 땅과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를 침략했다가 결국 패전국이 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패전 후 한동안은 제국주의 침략행위를 반성하는 척하더니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뒷배를 봐주는 미국이 유일 초대강국으로서 패권주의국가가 되자, 이제는 탈아입미(脫亞入美) 주의를 강화하면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에서 드러나듯 지난날의 침략주의를 정당화하고 조장하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경영/경제| 2007.04.08| 5페이지| 1,000원| 조회(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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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소평평전
    아리랑은 문학적 공백기로 가려져 있던 일제 식민지 시대의 깊은 역사 인식으로 그려낸 대하 소설로서 1904년 여름부터 해방까지의 군산과 김제, 하와이와 동경,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우리 겨레의 수난과 투쟁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민족해방을 다룬 이 작품은 일제 식민지시대 우리민족의 고통이나 애환의 이야기이면서도 애국투쟁이나 반민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그 시대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 민족역사의 모순을 파헤치면서도 그 속에 숨쉬는 민족의 힘을 아주 잘 묘사해 놓았다.이렇듯 아리랑이란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우리민족의 살아있는 역사를 체험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 이다. 친구가 읽었다기에 경쟁의식에서 무슨 내용인지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고 많은 의문이 생겼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전 12권이라는 방대한 양에 놀랐고, 내가 공부한 일제침략기의 내용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 너무나 다른것에 놀랐으며, 그 시대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아서 내가 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일주일만에 12권이란 책을 읽은것에 또 한번 놀랐다. 이렇게 단시간에 많은 양의 책을 재미있게 읽어본 적이 없었다. 재미있게 읽었다기 보다는 책에 빠져들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책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일제시대 우리 선조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내가 국사시간에 배운 유관순이나 안중근의사등 유명한 인물이 한명도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명 아니 수백명의 사람들이 조국해방을 위해 애써오고, 해방 이후에 그들이 더욱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생겼다.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조정래의 머릿글을 보면서 조금씩 의문이 풀려 가는 느낌이었고, 아리랑의 핵심이 여기에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대한 반성을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란 아주 작은 하나의 퍼즐조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역사의 어느부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학교에서 배우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볼수는 없지만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배운 국사는 더더욱 그러했다. 일본을 비판하기만 할 뿐 왜 우리가 식민지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는가.. 라던가 우리민족의 고통스러운 삶들은 정작 뒤로한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시키기위한 정책들을 중심으로 수업했다.아리랑은 다른 책들과 학교 교과서와는 다르게 여러 신분과 계층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식민지시대의 우리민족이 살았던 역사적 삶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이때까지의 어떤 대하소설들의 내용보다도 더 강력하게 민족의 관념을 앞세우고, 정면으로 민족주의를 표방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민족정기는 소멸되어가고, 민족정신은 혼탁해 졌으며, 민족자존은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한 남북한의서 식민 왜곡된 역사기술에 맞서서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 식민지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아리랑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인문/어학| 2007.04.08| 2페이지| 1,000원| 조회(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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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미학의 이해]에비타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 평가B괜찮아요
    이 영화의 시작은 에비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체게바라)의 독백으로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에바 페론(Eva Peron)은 1919년 아르헨티나의 대초원(팜파스)의 시골 마을 로스 톨도스(Los Toldos)에서 농장 주인과 농장의 요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에바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던 농장주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다섯을 낳았는데 에바는 그 중 네번째 아이였다. 굳이 홍길동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설움이 많았을 에바 두아르테는 15세 때 옷 가방 하나만을 달랑 들고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한다. 그러나 서울역에 갓 내렸을 1960년대의 영자가 그러했듯이 이 시골 처녀 에바에게도 낯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고향집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그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지닌 강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깨달아야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가 가장 강한 무기임을 알았다. 그녀는 삼류 배우나마 배역을 따기 위해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당시 아르헨티나는 대초원에서 방목되는 육류와 곡물 수출에 힘입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1869년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6.9%의 높은 수준이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메리카 대륙의 전체 도시들 가운데 뉴욕 다음의 대도시를 자랑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만 하더라도 아르헨티나의 국민 1인당 GNP는 스페인?이탈리아?스웨덴?스위스보다 높았고, 독일이나 베네룩스 3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 대륙 그 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에서 많은 이민이 유입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유럽에서 온 이민 노동자들은 그냥 가족만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문화와 사상까지도 함께 신대륙 아르헨티나에 가지고 들어왔는데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등이 그것이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노동운동과 그동안 대지주은 한 동안 밀히를 즐기다가 곧 두 사람만의 은밀한 방을 구해 장기적인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에바는 힐러리가 빌 클린턴에게서 미래의 대통령 싹수를 발견한 것처럼 후안 페론에게서 미래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보았다. 그리고 힐러리가 그랬듯이 자신의 연인이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제2차 세계대전 중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친독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의 반정부 진영을 고무하면서 민정 이양을 요구하도록 했다. 그 결과 파렐 발카르세 정권은 민정 이양을 약속하고, 강경파였던 후안 페론을 구금한다. 후안 페론에게 위협을 느낀 권력 기관과 군인들이 페론을 구금했던 것 이었다. 후안 페론이 연금 당하자 타고난 미모와 달변을 가진 에바 페론을 비롯한 페론의 추종 세력들은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페론 석방운동을 벌였고, 밤낮없이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사주하여 마침내 노조 총파업을 유도해내면서(1945년 9월 17일 민중혁명) 후안 페론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준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준 정부(情婦) 에바에게 새삼 사랑과 신뢰를 느낀 후안 페론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하기를 맹세하고 결혼한다. 후안 페론은 대통령으로 추대되고, 에바는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다. 퍼스트 레이디가 된 에바는 자신이 약자여서 받았던 멸시와 소외를 잊지 않고 가난한자, 약자를 위해 노력한다.페론은 1946년 2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4%의 지지를 얻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페론은 기존의 지지 세력이던 군부?교회는 물론 노동조합의 지지까지 확보하고, 노조 지도자 등 각 부문별 이익 집단의 대표들을 각료로 기용하는 등 집권 초기 강력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페론은 집권 후 페론주의를 내세우며 외국자본의 추방, 기간 산업의 국유화 등을 추진하며 자립노선을 추구했다. 또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동 입법 추진, 노동자 생활 수준 향상,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인상 및 여성 시민적 지위 개선, 친권과 혼인에서의 남녀 평등의 헌법 보장공업화 정책은 레닌이 러시아에서 추진했던 중공업 정책과 달리 수입 대체 전략에 기초한 경공업?소비재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본재 수입의 증가로 외환 사정을 다시 악화시키고 말았다.이런 위기 속에서 페론주의와 아르헨티나는 점차 독재의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1948년에 이르자 페론은 자신의 정치 이념을 「정의주의(Justicialismo)」라고 포장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였으며 반대 세력에게는 유?무형의 압력을 가했다. 1951년에는 「정의주의 학회」라는 것을 만들어 정권 홍보에 나서도록 하기도 했다. 에바 역시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사랑을 이용하여 남편과 자신을 포장해나갔고, 대중이 원하는 것들을 즉흥적으로 선사하기도 했다. 에비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서 학교, 병원, 고아원을 단기간에 전국에 건립했고, 그녀의 이름을 딴 병원 기차가 의료장비를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또한 에비타 재단은 지진 등 재해를 당한 나라에 거금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콜롬비아, 에콰도르 같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도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정책 덕분에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런 위세를 등에 엎고, 심지어는 초등학교에서 매주 페론 부부를 찬양하는 글짓기 숙제를 하도록 했으며,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는 에바의 자서전을 교재로 채택하도록 하기도 했다.에바 페론은 단순히 퍼스트레이디로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데 상징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정계의 핵심 요직에 올라 명실상부한 권력 2인자에 오르고자 애썼다. 1951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67%의 지지를 얻어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재선되자 노동자총연맹 등의 단체가 에바 페론을 부통령 후보로 옹립하려다 군부와 마찰을 빚었다. 부통령 지위에 오르고자 했으나 군부의 반대로 실패하자 대신에 정부의 주요 요직을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며 자신의 정적이 되었거나 그럴만한 헨티나 상류층이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탱고 음악이 원래 태동 당시부터 지니고 있던 상류 계급에 대한 풍자와 조롱 등의 반문화적인 요소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거세되었다.)과 함께 골수까지 배인 사치와 무책임,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아르헨티나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려 하지 않았고, 페론 정권의 시혜적인 사회복지 정책은 개혁적이어야 할 노동자들을 당장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마비되도록 했고, 그들을 중독시켰다.에바 페론의 진보적 여성 정책들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여성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그녀가 일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바 페론이 반드시 그런 의식을 가지고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여성 운동 확장과 여권 신장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면서도, 결국 그렇게 해서 달성된 결과물들을 자신의 남편인 후안 페론에의 충성으로 귀결시켰다. 그녀는 틈만 나면 여성 당원들에게 이렇게 강론했다. "여러분, 남자는 지성을, 우리 여성은 감성을 투쟁에 바쳐야 합니다. 지성과 감성을 모두 합하여 보다 정의롭고 보다 행복한 최상의 조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페론 장군을 우리는 적극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 여성은 남녀 모두 뭉쳐야 하기 때문에 남자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그녀의 이런 여성운동은 결국 가부장적 권위에 복종하는 여성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고, 자기 자신이 그런 전형적인 모델이고자 했다. 국가사회주의 하에서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운동은 종종 이런 모순을 빚어내곤 한다.일명,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을 표현하는 말 중에서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라는 말보다 그녀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를 아르헨티나의 독재에 봉사하였고, 노동자?빈민계급을 마취시킨 악녀라고 비난하기에는 실제로 그녀가 행한 수없이 많은 초인적인 봉사와 헌신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는 가진 자에게는 더. 그녀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큰 국장으로 한달동안 성대히 치러졌다. 이런 에비타의 장례식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난다.‘에비타’처럼 영화로 만들어진 뮤지컬의 경우는 허다하다. 등등.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아리아로 유명한 뮤지컬 "에비타"는 기획된지 10년만에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헐리우드의 내노라하는 유명감독들이 모두 거론됐으나 번번히 불발로 끝나야했고 메릴 스트립, 훼이 더너웨이, 미셀 파이프, 줄리아 로버츠 등등이 에비타 역으로 거론됐으나 예상을 뒤엎고 록가수 마돈나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등의 영화와 같은 음악영화를 만들었던 알란 파커가 연출하여 영화 는 완성됐다. 에비타는 잘 알려진대로 아르헨티나의 전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의 애칭으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추모해 마지않는 전설적인 여성의 이름이다. 거의 성녀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진 이 배역을 관능적인 요부의 이미지를 가진 마돈나가 맡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격렬한 반대시위를 벌였고 영화의 촬영 기간 내내 마돈나의 테러의 위협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마돈나는 이에 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감독인 알란 파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왜 자신이 이 배역을 맡아야하는지의 당위성에 관해 설명함으로서 마침내 배역을 따내는 집요함을 보였다고도 한다. 영화는 뮤지컬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가난한 시골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 페론은 유명한 유부남 가수의 정부로 생활하다 그에게서 버림받자 홀로 상경, 나이트 클럽의 댄서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한다. 어느 난민 구제 모금행사에서 전도유망한 정치군인이자 노동부장관인 후안 페론(조너선 프라이스)을 만나 사랑에 빠진 에바는 적극적으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마침내 후안 페론을 대통령에 당선 시키며 일개 나이트 클럽의 댄서에서 영부인의 위치로 까지 신분상승을 이룩한다. 남편의 선거운동에선 열정적인 달변의 웅변가로, 영부인으로서는 소였다.
    독후감/창작| 2005.10.30| 5페이지| 1,500원| 조회(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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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브레스드 오프
    영화 는 웅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어두운 화면이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게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는 무언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제목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것, 즉 중심이 되는 생각을 함축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교수님께서 영화의 제목을 이야기 해 주셨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했고, 영화를 보면서 그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해 봤지만 쉽게 알아채지는 못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을 때 아!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동시에 이 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는 영국의 속어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다 는 뜻이다. 영국의 주원료를 석탄에서 원자력으로 바꾸는 정책과 원가가 싼 석탄의 수입으로 인해 탄광의 폐광이 현실화되어 가면서 광부들이 삭막한 광산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기역할을 하는 밴드도 해산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탄광촌 사람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하는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리고, 더욱 확실히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이 영화의 배경인 1990년대 초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92년 영국 북부 요크셔의 작은 탄광촌으로, 시대적 배경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베치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보수당 정부가 전격적인 폐광정책을 준비하고 있을 때이다. 영국은 강성노조와 고실업으로 영국병 을 앓고있던 나라였다. 결국 수 차례의 구조조정 결과 수만은 노동자가 실업자가 되어 정부와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보였는데 이러한 갈등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자가 대처 총리이다. 이른바 대처리즘으로 불리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게 되고 결국 이러한 현실에서 퍼킹대처(Fucking Thather)'를 외쳐야만 하는 노동자들. 이들의 궁핍하고 암울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가 바로 이다.불황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운 80년대 영국. 정부가 100개가 넘는 탄광을 폐쇄하자 약 25만 명이라는 실업자가 생겨났다. 하지만 궁핍하고 암울한 광부들의 어두운 모습만 생각하기엔 이 영화에 나오는 음악이 그들을 뭉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웅장함이 관객들을 감동의 세계로 몰아넣는 역할을 한다.밴드를 소재로 한 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클래식 음악이 많이 등장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영화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그람리 밴드들의 연주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글로리아가 남성 전용밴드인 그람리 밴드에 들어와 푸르겔 혼의 첫 연주로 단원들을 매료시킬 때 흘러나온 음악은 스페인의 작곡가 후아킨 로드리고 의 [아랑훼즈 협주곡]이었는데 영화에서 지휘자 대니가 [바보 협주곡]이라고 하면서 광부들이 곡을 외우기 쉽게 곡 제목을 바꿨다고 하는 부분을 보면서 대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진폐증으로 쓰러진 대니가 입원한 병원의 앞에서 랜턴이 달린 광부용 작업모의 불을 켜고 연주하던 장면이었다. 거기서 사용된 음악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민요인 「오! 대니 보이」이다. 그리고 그림리 탄광 밴드가 런던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나가 로얄 알버트 홀에서 연주할 때의 그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연주는 갈곳 없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쿵쾅거리는 그람리 밴드의 멋지고 경쾌한 음악에서 부조화가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절제된 슬픔, 서글픔 그리고 분노가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사회자가 그람리 탄광 밴드의 대상 수상소식을 알리자, 병원에서 몰래 도망친 대니는 앞으로 나가 대상트로피 수상을 그들의 생업 터전이었던 탄광 폐광 정책에 대한 항의에 대한 표시로 상 수상을 거부한다. 하지만 감동의 박수가 터져나온 이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트로피를 가로채는 모습은 정말 유쾌했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신자유주의경제정책이 낳은 사회문제이다. 레이거 노믹스{) 레이건의 보수주의 경제정책 -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레이건은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방안으로 첫째, 정부지출을 줄이고 둘째, 감세정책을 시행 하였으며 환경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였다. 이러한 경제정책으로 레이건은 인플레이션을 잡 고 금리를 인하하여 미국의 산업이 굴러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기업가 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레이거노믹스는 미국 전체의 경제는 부흥시켰지만, 경제구조를 심각하 게 왜곡함으로써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와 함께 80년대를 이끌어 나갔던 대처리즘이 크나큰 경제성장을 가져왔지만 상류층에 편중되게 배분되는 자본가 중심의 경제구조와 장기집권에 따른 부정부패의 원인이었다. 이 영화는 이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아주 솔직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영화 후반부에서 대처리즘에 대해 중산층과 서민계급의 불만이 폭발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05.10.30| 2페이지| 1,000원| 조회(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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