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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슐라이어마허의 사상 평가A좋아요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에 대한 단편적 연구“신앙이란 지식도 아니며 행위도 아니라, 감정 혹은 직접적 자기의식의 한 양태이다. 신앙의 표현이 비록 다양하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에 공통적인 것, 그것으로써 신앙은 동시에 다른 모든 감정들과 구별되며, 경건의 자기 동일적인 본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서, 즉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서 의식하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의 '신앙론' 중에서 -■들어가며2006년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일 수 있겠지만, 기독교는 중세 이후 그 이전과 같은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 가운데 중세 시대에 기독교가 누렸던 국가에 대한, 사회에 대한 정치적 권력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큰 시대적 흐름은 개인적 삶의 양태와 종교, 문화 등 인간 생활의 모든 부분에 어느 한 곳의 성역도 놔두지 않고, 모든 것을 폭풍처럼 휩쓸어 가 버렸다. 새로이 등장한 사조는 세상의 흐름을 급격히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컸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이 후에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야했던 지정학적 위상의 탓일지, 감수성이 풍부한 우리 민족의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옛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태로 일어난 미국판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제 3의 경건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운동장을 제공하였다.슐라이어마허는 현대 신학을 시작을 알리는 테이프 컷팅을 한 사람과도 같습니다. 현대신학을 슐라이어마허 이 후의 신학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만큼 현대 신학에 있어 그의 영향력은 학문을 시작하는 저와 우리에게는 크게 다가옵니다. 지금부터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주장을 전개해 왔는지 함께 연구함으로 이 온 세계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성실함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슐라이어마허의 삶과 경력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가 겪는 보편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그 때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관심있게 들어야합니다. 이 챕터에서는 슐라이어마허의 생애를 돌아보며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리를 놓아보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어마허는 1768년 독일의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개혁파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명을 따라 소년시절 헤른푸트 형제단 학교에 입학, 경건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형제단의 신앙에 회의를 품고 1787년에 할레대학교에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2년간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다음 동 프로이센 슈로비텐의 도나 백작의 집에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5년 후 베를린의 자선병원 목사가 되어 의사인 마르크스 헤르츠의 살롱에 출입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알게 된 낭만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종교론》(1799)을 썼습니다. 1804년 할레대학교 교수로 초청되었으나, 얼마 후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대학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베를린으로 가서 훔볼트 형제와 J.G.피히테 등과 더블어 베를린대학교 창립에 진력하고, 이 대학 신학부의 교수로 끝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그의 대표적 저작으로는 《그리스도교적 신앙(일명 신앙론)》(1821~1822)이 있습니다. 그는 교편을 잡는 한편, 설교가로도 활약하였습니다. 특히 해방전쟁 때는 설교를 통하여 민족주의를 고취하여 애국설교가라는 명성도 얻었으며. 그는 또한 루터파와 개혁파의 통합운동에도 힘써 신학분야뿐만 아니라, 철학?교육학?미학 등의 영역에서도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슐라이어마허와 상황(Context)“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은 주로 그가 살던 시대의 문화적 상황과 지적 상황 그리고 자신의 성장배경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입니다. 계몽주의 시대는 기독교에 있어서 편안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의 시대정신은 신앙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조장했고, 때로는 공공연한 적개심으로 발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의 예로는 프랑스 혁명을 들 수 있는데, 프랑스 혁명은 기독교회의 국교 제도를 폐지하였고 그 자리에 ‘이성의 여신’을 올려놓았습니다. 슐라이어마허 개인적으로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가진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라났고, 경건주의 학풍의 학교에서 꾸준하게 수학해 왔습니다.■슐라이어마허의 사상1. 종교는 인간에게 필요하다.그가 베를린 자선 병원 교회에서 개혁파 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당시에 근처에 있던 지성인 그룹에서 활동할 무렵 그는 종교의 일반과 특히, 기독교가 인류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진정한 성취에 필수적인 것임을 증명하려 하였습니다. 당시 교양인들이라 불리던 지성인들은 종교는 인생의 이상을 성취한 것으로 자부하는 교양인들에게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이며 오로지 삶의 꿈을 잃어버린 무능한 자에게 위로의 수단으로서만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지만 그의 시각에서 이것은 유용성에 집착하는 영국 경험론의 한계였으며, 세계의 영원한 법칙을 무시하면서 프랑스 혁명까지도 경박하게 바라보는 프랑스적 사유의 한계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합리주의와, 낭만주의와 그의 만남의 열매는 그의 책 『종교론』((부제 : 신앙을 멸시하는 교양인들에게 쓰는 담화)에서 맺혔습니다.2. 종교론 : 신앙을 멸시하는 교양인들에게 쓰는 담화슐라이어마허는 계속하여 합리주의와 낭만주의라고 하는 양대 사조가 제공하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책 속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 내의 문제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만나며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였고, 기독교를 신화적이고, 비계몽적이며, 비이성적이라 조롱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의 옆에 있었습니다.그는 신앙을 멸시하는 교양인들에게 진정한 신앙은 교리와 무관하며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 관한 문제라고 설득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로 의해 슐라이어마허에 의한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성의 관점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며, 종교의 영역은 인간 내면의 깊은 세계 즉, 감정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3.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적 방법앞서 살펴본 생활과 저서에서 살핀 것처럼 그는 인간의 경험에 기초하는 신학을 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사유도 아니고 행위도 아닌 직관이고 사유라는 그의 사상의 중심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것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인간을 희생시켜 하나님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를 어떤 고유의 방법으로 묶을 수 있는 기독교 교리의 재편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직관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이며 보편적인 감정, 실재 전체에 대한 의존 감정에 주목했습니다. 칸트가 “주체로 돌아가라”라는 말로 철학의 코페니쿠스적 혁명이라는 말을 들었듯이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적 방법 또한 이에 못지않은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물론, 슐라이어마허 이전에도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난제들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의 문제들이 계속해서 신, 곧 하나님을 중심으로 난제들을 인간이 가진 이성의 범위 안에서 풀어가려고 노력해 왔고, 신이 보여주시는 그 곳까지만 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을 따라가자면 신학의 주체로 신, 곧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앉아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슐라이어마허 이전까지는 ‘위로부터’의 신학을 해왔고, 이제부터 그는 ‘아래로부터’의 신학을 해나가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그는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경험의 인간적 성찰로 간주함으로써 신학의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습니다.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본질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증거나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교의 또는 교회적 의식이나 절차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문화 속에 있는 ‘근본적이고, 쉽게 식별이 되는 통합적 요소’ 즉 유한한 것들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무한한 것에 대하여 전적으로 의존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4. 슐라이어마허와 교리적 혁신슐라이어마허가 시도했던 교리의 재구성은 그의 사상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자유주의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교리는 반드시 성경에서부터 기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교리는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요? 그는 기독교의 모든 교리도 인간의 종교의식 즉, 그리스도인의 종교적 ‘자아-의식’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의 내적 경험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저작들을 볼 때 특별히 그가 저술한 기독교 교리를 핵심으로 보는 교리적 책인 『기독교 신앙』에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그의 성경관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경이 특별한 것이 초기 공동체의 종교적 경험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여기서 그는 성경을 하나의 오래된 문헌 또는 역사서 정도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성경 권위는 그에게 절대적이지 않습니다.5.슐라이어마허와 하나님신론에 있어서도,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은 꾸준하다. 그에게 있어 신, 곧 하나님은 하나의 의존감정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돌리는 그의 모든 속성들이 하나님 안에만 특별하게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절대 의존 감정이 하나님과 관련되는 방식에 있어서 특별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하나님 중심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의존 감정이라는 인간 심리에 중심을 옮김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하게 된다.
    인문/어학| 2005.12.19| 6페이지| 2,000원| 조회(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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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플라톤 연구
    플라톤(Platon) : 서양 철학의 기둥들어가며영국 출신 미국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사상에 각주(脚註)를 다는 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플라톤이 서양 철학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상은 질서 정연한 우주에 관한 애타는 호기심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은 그의 등장으로 인해 사상의 초점이 인간으로 물줄기를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의 생애 가운데 구체적이고 확실한 답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던져진 숙제에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대답을 제시해 주었다.플라톤의 사상은 크고도 넓다. 그러기에 이 글에서는 플라톤의 사상 가운데서도 이데아 개념과 이원론에 관해 집중하여 살펴보는 기회를 가지려 한다. 그 이유는 그의 사상 중 이 부분이 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또 현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지성과 생활 가운데 아직 잔존해 있는 것을 볼 때, 조사 및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Ⅰ. 플라톤의 사상이데아 : 실체 없는 개념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인식과 윤리, 기르고 정치를 말할 수 있다. 그의 형이상학(形而上學), 윤리학(倫理學), 정치 철학(政治哲學)은 지금까지도 모든 분야의 기틀이 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가지 열쇠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그의 이데아(idea)이다.플라톤의 철학은 흔히 ‘동굴의 비유’로 소개된다. 이는 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인 ‘국가론’에 나온다. “이 동굴에는 평생 동안 벽만을 바라보게 묵인 죄수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옆 사람조차 볼 수 없고 오로지 동굴의 벽에 비쳐진 그림자만을 볼 수 있다. 뒤는 돌아볼 수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 그림자들은 죄수들의 등 뒤에 있는 불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 그림자들을 실체라고 믿는 죄수들은 그림자 외의 세계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림자의 실체는 전혀 엉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이 죄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묶인 기둥에서 풀려나 그림자를 만드는 불꽃을 보게 된다면, 그의 눈은 부시고 아파서 차라리 가짜모습을 보는 것이 편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불 뒤에는 좁은 통로로 된 동굴 입구가 있고, 동굴 바깥에는 나무와 강과 푸른 하늘이 있다. 이제 죄수는 좁은 통로를 통하여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나 햇빛이 너무 눈부셔 해는 보지 못하고 우선 그림자를, 그리고 점차 나무와 산을 보게 되고 마지막으로 해를 바라보게 된다.”여기서 플라톤이 “빛의 세계”로 비유하는 것이 바로 이데아이며, 플라톤이 제시한 ‘동굴의 비유’는 우리가 느끼며 사는 현실 세계란 그림자처럼, 실체가 아닌 다만 상으로 묘사된 허구의 세계이며, 그 상을 만드는 진실된 존재가 바로 이데아라는 것이다. (이외의 이데아 정의 : 플라톤은 주장하기를 “인식의 대상들 즉 정의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지만 지각의 세계에 있어서의 어떤 것과도 동일시될 수 없다고 했다. 그것들이 존재함은 공간과 시간 밖의 관념적인 세계에 있어서다. 이것들이 유명한 플라톤의 이데아들(idea)인데, 이는 플라톤이 그것에 대해 적용한 헬라스말 idea의 음역에 의해 이렇게 불리운다. 그리고 그것은 형상(form) 또는 본(pattern)을 의미했다.”) 또 하나의 정의는 “어느 집단이나 개인의 임의적인 규정들을 넘어서며 사물들의 본성 속에 고정되어 있는 불변적인 것”)이다.)이원론 : 가지계와 가시계플라톤의 이원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식론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인식론(Epistemology)는 쉽게 말해 인간의 느낌, 의식의 상태를, 존재론(Ontology)은 인간이 느끼고 인식하는 대상의 상태를 말한다. 의식의 가장 낮은 상태는 ‘추측’의 상태로 추측의 대상은 상(像)이며, 그림, 영화, 조각 같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추측’상태의사람은 영상을 실체로 오해할 수 있다. 다음 수준은 ‘신념’으로, 그 대상은 실물을 갖는다. 그러나 신념도 역시 감각 지각의 불확실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추측과 신념의 상태는 ‘의견’ 차원을 넘지 못한다. 진정한 어떤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어떤 것의 개념이 있어야한다. 이것을 플라톤은 오성(悟性)이라고 불렀고, 개념을 ‘아는 것’이므로 지식에 속한다. 또한 어떤 것의 개념은 모든 대상에 적용될 수 있는 본편적인 개념이어야 하며 모든 개념 위에 있는 최고의 개념을 플라톤은 형상, 즉 이데아라고 불렀다. 여기서 지식의 부분은 가지계로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알고 있는 세계를 말하고 의견의 부분은 자시계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말한다.플라톤은 이데아야말로 모든 실체의 근원이며 영원한 진리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그의 인식론에서 인식의 대상을 가시계와 가지계로 나누고, 그는 모든 대상은 실체와 이데아를 지닌다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였다.Ⅱ.기독교적 관점교회역사와 이원론초대교회에서부터 육체와 영혼간의 이원론적 구분은 문제시 되어왔다. 이러한 이원론의 근원을 이야기할 때 주로 이야기하는 것이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신화이다. 당시 헬라사회의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신의 아들인 디오니시우스는 제우스의 대적들로서 지상적인 본성을 소유하고 있는 사악한 타이탄들에게 잡아먹혀 죽었다. 이에 화가 난 제우스는 번개를 던져 사악한 타이탄들을 죽였는데 타이탄들이 타 죽은 재에서 디오니시우스적인 요소와 타이탄스적인 요소를 동시에 지닌 인간이 생겨났다고 한다. ㅇ그러므로 인간은 선하고 신적인 요소와 사악하고 지상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신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의 보다 선하고 고상한 디오니시우스적 요소를 개발하고 사악하며 지상적인 타이탄스적인 요소는 억제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헬라의 신화적 사상은 그 당시 시대 인물이었던 플라톤에게 영향을 미쳤고, 플라톤의 인간관에 가서 “육체”(body)와 “영혼”(soul)을 구분하는 것이 뚜렷해졌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인간관을 따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피조물로서의 삶을 부인하고 영속성, 안정,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천상적 삶을 갈망해야 한다.플라톤의 이원론적 인간관은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나갔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는 이교적인 헬라사상의 근본적 가정 또는 전체를 성경적 세계관의 조명하에서 철저하게 비판하지 못했다. 그 결과 플라톤으로부터 빌려온 개념은 성경적 세계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결국은 성경적 세계관을 내부로부터 파괴하는 ‘트로이안의 말’과 같이 작용하게 되었다. 그의 이원론적 사고는 후에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현대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이러한 이원론의 문제는 바로 오늘의 문제이다. 이원론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상호 대립되는 두 영역으로 구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그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방향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성/속, 영적/육적(물질적), 교회/세상, 신앙/이성(학문,과학), 신학/철학, 영원적/일시적, 천상적/지상적, 초자연적/자연적 등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원론은 순종과 불순종 사이의 정당한 이중성을 희미하게 만드는데, 이는 이원론이 순종, 구속, 하나니의 나라를 삶의 한 가지 영역과만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원론은 그 나머지의 삶을 구속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더 악한 것으로 여긴다.
    독후감/창작| 2005.11.16| 4페이지| 2,000원| 조회(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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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제자입니까? 평가C아쉬워요
    “제자입니까”를 읽고책을 읽어 나가는 가운데 시종일관 내 중심적인 신앙생활의 직면에 힘들어야했고, 그것을 내려놓기 위해 책을 읽는 가운데 나 자신과의 씨름을 계속 해 나가야만 했다. 지금부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허락하신 은혜들을 나눠보려 한다.언젠가부터 우리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 가운데 예수님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 같다. 받는 것과 잘 되는 것의 개념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서 자신의 무거운 짐과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예수님의 멍에를 져야하는 것에 대해서는 싫어한다. 우리의 이기성과 하나님을 제한하며, 그로 인해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불순종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맞다. 사실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집, 유치원, 학교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얻어나가는 것에 익숙한 우리 중심적인 사고 때문인지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고, 내 문제에 대해,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은 우리 몸에 베인 오래된 관습을 도려내야하는 쉽지 않는 수술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중심에 그 분이 있길 원한다.오늘의 시대는 날마다 자기를 사랑하게 하며, 자기만을 사랑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간다. 또한 사랑의 나눔을 단순한 경제적 필요의 충족으로 단순화 시켜버리며, 우리의 사고 또한 그렇게 인도해 간다. 나또한 그러한 시대의 흐름 가운데 예외일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랑의 화살이 나를 향해 있었고, 남들을 사랑한다는 기준이 그분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있어주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물질적인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어떤 것으로 사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 나라의 산소이며 생명인 사랑이 내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게 되었다. 어렵지 않게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는데, 다름이 아닌 이기심과 자존심이었다. 저자의 예화와 비슷한 상황이 내 삶 가운데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 가운데서 너무나 다르게 반응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의 이익이 어떻게 되는지 따져보고 행동하며, 내가 손해보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하고, 남을 위해서 시간을 내려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내가 받을 것은 다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의 장벽이 내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흐르는 것을 막고 있었다.내 삶의 운전해 나가는 운전대를 나의 손가락 하나 걸치지 않고 온전히 그리스도께 내어 드려, 내 중심적인 사고와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한 자존심의 문제를 하나님의 향한 순종의 방향으로 돌려나가는 치열한 전투를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나의 영혼은 지금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쪄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바로 수긍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의 목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영혼의 문제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성장이 멎고 옆으로만 커져가는 비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의 살이 찌는 것은 건강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성장이 멈추고, 살만 계속적으로 찌어나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곧 그것은 비만이라는 문제를 가져온다. 비만은 모든 질병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영적 성장이 없이 다른 어떠한 비본질적인 것의 성장에 우리의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고, 몸이 거대해진다면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없으며, 일을 하다가 빨리 지쳐버리게 되며,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쉽게 불평할 수 있다. “제자입니까“는 내 영혼 가운데 이러한 위험성이 보이는 것을 이제는 단지 관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독후감/창작| 2005.11.16| 2페이지| 1,000원| 조회(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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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학문의 숲을 걷는 기쁨
    목 차1부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들어가는 글1장 ? 세계관이란 무엇인가?2장 ? 성경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3장 ? 기독교 세계관과 현실 문제4장 ?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비판2부기독교 학문과 철학5장 ? ‘기독교적으로 사유함’의 뜻6장 ? 신앙과 학문의 통합7장 ? 칼빈에게 있어서의 기독교 철학8장 ? 현대 학문 이론에 대한 기독교적 비판마치는 글제 1장 ? 세계관이란 무엇인가?세계관의 개념사와 그 본질기독교 학문 운동은 기독교 대학 설립 동역회, 기독교 학문 연구회, IVP 등에 의해 제창, 주도되었다. 또한 기독교 사회 참여 운동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에 이끌어져 왔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교회와 학생 그룹 등으로 가장 확대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성경적 원리와 복음적 신앙에 근거하여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며 또 그것에 기초하여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을 영위해 가자는 운동으로, 무엇보다 한국 교회의 신앙과 생활의 분리를 타파하고 양자 간의 일치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관 운동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세계관이 비록 그 본질상 실천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이론적 기초를 논구함이 필요하다는 것.세계관은 근세철학과 낭만주의 Weltanschauung(세계관)이란 개념에서 생겨난 표현으로 만유의 구조나 목적, 그 가치와 의미에 대한 총체적 견해라는 뜻이다. 그 후 19세기 초반 이전까지는 세계관의 대상이 물리적 세계 내지 세상이며 그 구성 본질은 객관적 내지 주관이 섞인 반객관적인 성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가 진행됨에 따라 의미가 '성향'(Gesinnung), '인생관' (Lebensauffassung)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서구 사상사에서는 철학과 세계관을 매우 날카롭게 구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 개념을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 세계관이나 철학이 핵심적으로는 유사한 내용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동일시 가능. 철학이 하나의 학문이고 반면에 세계관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또 가질 수의 분류문명권종교철학성경?동양적 세계관 서양적 세계관?히브리적 세계 관과 헬라적 세 계관?기독교?흰두교?유교적?불교적?회교적?도교적?천도교?관념론적?실재론적?유물론적?합리주의적?경건주의적?신조품적 세계관?인조품적 세계관신조품적 세계관 :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계시적 세계관으로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세계관.인조품적 세계관 : 인간이 축적된 경험과 사유를 통하여 형성한 세계관으로 역사상 여러 모양과 여러 형태들로 나타났다가 소멸한 세계관.인간이 만든 세계관은 ‘닫힌 세계관’이다. 이 말은 세계관을 구성할 때 자연세계 너머의 하나님의 세계, 영계와 내세를 배제시키고 있다는 뜻. 대조적으로 성경적 세계관은 “열린 세계관”이다. 지상을 넘어 천상, 현실을 넘어 내세, 역사를 넘어 피안의 세계를 말하고 수용하므로 ‘열린 세계관“이라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성경적 세계관(은총적 세계관)은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아예 하나님 편에서 세계를 보려고 한다.성경적 세계관의 기본틀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죄로 인해 타락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의해 회복되었다.② 시공적으로 유한하고, 하나님과 관계성 속에 존재하고 의미를 부요받는다.③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는 단순히 물리적 현상만 일어나는 자연 세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며 의미를 부여하시는 영역이고, 또 여기에서 인간은 단순히 지상적?육체적 존재로서 머물다가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 삶을 영위하고 살며, 또 그 삶의 의미도 내세까지 연장되는 것이다.위의 세 가지 특성은 창조, 타락, 구속의 내용에서 종합적으로 잘 구현된다. 『창조 - 타락 - 구속』은 기독교 철학의 종교적 동인이기도 하고 모든 기독교적 학문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창조 : 세계의 기원과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세계의 모십이 잘 설명됨. 세계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를 밝혀 주므로 세계관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성격을 규명성경의 창조 내용의 세가지 명제1.하나님이 이 세교의 본질은 성경적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 그리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구현되는 기독교 본질은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첫 번째 물음은 신앙 고백,성경적 교리와 신학의 문제. 두 번째 물음은 신앙 생활, 실천과 삶의 문제이다. 그리고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긍정적인 태도와 둘째로 부정적인 태도가 있는데 이 두 가지 태도는 양극단의 태도로 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의 관점이 아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청조-타락-구속의 태도에서 바라본다.오늘날의 시대 정신1.세속주의 : 현실 속에서의 육신적 삶에만 관심을 가지는 입장2.인본주의 : 바벨탑 건설의 정신. 이성과 기술이 절대화되고 과학이 하나님 자리 차지.3.상대주의와 자유주의 : 모든 것의 상대적 인정과 정당화를 기치이념과 가치의 다양성과 복수성 인정4.이데올로기숭배정신이러한 시대 정신 속에서 삶이 지니는 영적인 상태는 분의와 악이 우리의 생활 속에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이 이중적 생활하고, 성도들과 교회가 세속화되고 이단과 그릇된 사조가 횡횅하며, 인간 숭배 사상,가정의 위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자세는 전투와 사랑이다.전투적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직무 가운데 선지자 직에. 사랑의 자세는 제사장직에 해당1.전투적 자세영적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우리는 유념해야 할 세 가지.①우리가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확신이다.②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바른 무장과 바른 투쟁을 해야 한다.③투쟁의 상대, 즉 적을 바로 알아야 한다.2. 사랑의 자세사랑 없는 지식은 교만이요, 사랑 없는 구제는 자기 이름만 드러내는 행위요, 사랑 없는 분신은 원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는 것이 사랑인데, 이 사랑은 행위에서 ‘섬김’으로 나타나고,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이 섬김에는 세 가지 유념이 있다.①섬김에는 자신 희생이 수반되어야 한다.②자기의 무엇이든지 바창조-타락-구속이 이성을 비롯한 이론적 및 실천적인 문제를 제시하는 근본적인 태도는 긍정-부정-재긍정이다.기독교적 사유는 기독교적 삶의 기초가 된다. 기독교적 사유는 기독교적 삶에 대한 역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진리를 찾고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나의 사유 작업을 하나님과 그의 말씀으로 가져가는 것을 뜻한다. 기독교적 사유의 주체는 기독교적 이성이다.이성의 본질 자체에서도 물론이지만 특히 계시와 신앙의 문제와 관련해서 그것을 논할 때 우리가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 문제점은 바로 인간 현존 안에 있는 죄의 본질과 그 무거움이다. 이것이 바로 신적 진리와 인간적 이성간의 불연속성의 근거이다.중생된 이성은 ?자율적이지 않고 신앙의 기초 위에 있다.?성경의 하나님 진리를 근본적으로 따른다.?성령에 의해 조명되고 인도된다.기독교적 사유의 본질과 기독교 학문 구성에서의 의미?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이라는 존재론적 전재를 가진다.? 계시 진리에 대한 신앙적 수용과 자기 비판을 수반한다.? 성경적 신앙의 기초를 정립하고 성령님의 통제와 인도를 수용한다.? 논리적 기능은 중립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기독교적 사유’에서의 지식과 학문은 통합적 체계를 이룬다.? 기독교적 사유는 완성으로 가는 도상에 있다.제6장 신앙과 학문의 통합1980년대는 한국 기독교 역사가 그 첫 세기를 마감하고 제2세기로 넘어가는 끝맺음과 새 출발의 분기점이다. 제1세기의 한국 교회모습은 첫단계의 대중 전도와 예배당 건립 두 번째 단계의 성경 공부와 선교. 제 2세기에 이르러서 몇 가지 주목할만한 활동 내지 현상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경향은 봉사적, 윤리적, 문화적 활동인데, 이것은 사랑의 실천과 의식의 변화는 물론 문화 내지 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고있는 일종의 참여 운동이다. 둘째 경향은 기독교 세계관 내지 학문 운동으로서, 신앙과 삶의 일치, 신앙고 학문의 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지녀왔던 신앙과 삶, 신앙과 사유하고, 또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 우리는 신앙과 학문, 그리고 삶의 통합을 이룩해야 한다. ? 기독 지성인들은 학문의 영역에서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학문을 하며 기독교 학자가 되어야 한다. ? 기독교 학문 운동을 전개할 때는 학자 간, 학제 간, 그리고 다른 복음 운동과 공동적으로 전개해야 한다.제7장 칼빈에게 있어서의 기독교 철학중세의 늦겨울과 근세의 초봄을 장식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때는 가히 사상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었다.칼빈은 성격적 가르침의 이해를 표현하기 위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사용한다. 칼빈이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점은 원인들 가운데 어떤 것도 사람의 사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최고 존재라고 표현한 데서, 그리고 실체에 있어 형상과 질료를 구분한 데서, 주어와 술어를 나누는 논리학에서, 실체와 속성의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도입한다.칼빈에 의하면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고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문제는 철학과 관계되지 않고 죄성을 지닌 교만한 철학자들과의 관계된다. 그래서 철학을 하는 이성이 하나님의 법에 자기를 종속시키면 그 때 기독교 철학이 가능하다고 보았다.16세기에 기독교 철학이란 용어는 인문주의적 성격과 기독교적 색체를 다 EL고 있었지만 칼빈에게 이르러서는 이 용어는 오로지 성령의 지도 하에 성경에 기초해 있는 철학이라는 뜻으로만 쓰이게 되었다.칼빈은 자기 신학의 특색을 이루고 있는 선택론과 예정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사용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칼빈의 근본적인 입장은 하나님의 특별 섭리 이다. 또 칼빈은 인본 철학은 오로지 이성에 근거해 있는데 비해 기독교 철학은 성경과 성령의 인도에 근거해 있다. 칼빈은 세속 철학과 기독교 철학을 날카롭게 구분하고 있다. 세속 철학은 오로지 인간 이성에 근거해 있고, 기독교 철학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간섭에 기초해 있다.칼빈은
    독후감/창작| 2005.11.16| 12페이지| 3,000원| 조회(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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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그리스도인의 비젼 스터디 가이드
    세상의 변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비젼(Brian J. Walsh & J.Richard Middleton, The Transforming Vision: Shaping aChristian World View,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84리챠드 미들톤, 브라이안 왈쉬 공저, 황 영철 옮김, 세상의 변혁을 위한그리스도인의 비젼,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86)제 1 장 세계관과 문화 (World View and Culture)1. 세계관(World View)이란 무엇인가?세계관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P.18,37 에 있는 저자들의 이해와 일반적으로 일치하는가?A)그렇다. 전반적인 이해라는 걸 넘어서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받아들이는 좋은 기회였다. 세계관은 신학과 철학같은 사고의 체계가 아니라, 인식의 틀이며,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독특성을 가지며, 지적 측면뿐만 아니라 실천적, 정서적 측면까지를 포함한 포괄적 세계 파악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세계관은 삶에 대한 시각만 아니라 삶을 위한 시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2. 저자들은 서구 사회에서 아기를 목욕시킬 때 사용하는 과학적이며, 의학적인 소독약의 냄새도 역시 아기를 악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목욕통 속에 레몬을 띄우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아마도 미신적인 것이 아닌지 묻고 있다. 저자들이 왜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설명하라. (P.25)A)먼저, 세계관의 범주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고 있을 법한 학문적인 어떠한 이론이라는 부분을 넘어, 세계관은 각 사람의 생활 속에서 정신적인 형성력과 문화적 힘을 가지는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각 사람과 문화권에 따라 세계관은 차이점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3. 저자들에 의하면, 자연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점은 무엇인가? (PP.30-32)A)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대립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함으로, 자연을 하나의 위협으로 보는 것이 가능해지고, 결론적으로 정복 후 이용이해 근본적인 답이 될 만한 것이다.4. 하나님의 “피조물과의 언약”(covenant with creation)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것이 과학과 테크놀로지와 같은 영역에 어떤 의미(중요성)를 갖는가?(pp.59-60)A)하나님께서 확정하시고 지정하신 창조의 고정된 규칙성과 명백함에 연결되는 이 주제는 하나님과 창조(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응답) 세계, 그 자체와의 관계로 주권적인 하나님에 대해 볼 수 있기에 과학과 테크놀로지 영역에 만연하여 있는 환원주의 기저의 인본주의에 대해 성경적인 관점으로 반박할 수 있다.5. 하나님의 형상(God's image)으로 지음 받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pp.62-64)A)인간의 독특성을 대변해주는 것으로, 땅에 대한 지배와 하나님을 섬기느냐 우상을 섬기느냐 하는 종교적인 선택이라는 두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의미를 구조적이나 정적인 어떤 것(이성적인 능력, 도덕적 본성, 우리의 영성, 우리의 인격성)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인간의 도덕성의 정도, 혹은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에 대한 순응의 정도를 표시한다고 보는 관계론적 이며 역동적인 접근방식은 형상으로 볼 수 있다.6. 문화(culture)란 무엇인가? 그리고 역사(history)는 무엇인가? 문화와 역사의관계는 무엇인가? (pp.65-66)A)먼저, 문화와 역사는 거의 정의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문화는 포괄적인 것으로서 세상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인류가 그 주도권을 가진다. 이에 비해 역사는 인류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이나 또는 그 기록을 의미한다.7. 저자들은 “실체와의 이런 상호 작용, 즉 우리 인간의 문화 형성은 본질적으로공동적 현상, 즉 사회적 현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인가? 만약사실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당신의 직업(vocation)에 대해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p.66)A)문화는 사회를 기초로 해서만 견고하게 서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가? (p.97)A)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구속 사역이 모든 것에 속하는 참으로 우주적인 것이라는 점과 구원은 무엇인가를 다시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창조의 영역 중에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모사거나 그의 보호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4. 그리스도께서 모든 창조 세계를 구속하신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후천년주의자들(postmillenialists)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이와 같은 비난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pp.100-101)A)초림은 하나님 나라의 출범이라고 표시할수 있고, 재림은 하나님나라의 절정이라고 표시할수 있다. 이미 승리는 획득 되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이 점점 나아지리라고 믿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5. “그 마지막 날, 곧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그의 나라를 완성시키는 그 때에‘우리도 그를 닮은 자들이 되리라는 것을’ (요일 3:2)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p.102). 이 진술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이해하는 데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인성을 이해하는데 주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A)형상의 회복. 이 회복은 우리의 성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성숙이라는 현재적 실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표준이며, 기준이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드러내는 형상으로서의 사명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6. “우리가 우리의 개인적 결정에만 의존해서 살도록 방치되지 않았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자!” 저자들에 의하면 이 진술의 맥락(context)과 요점(point)이 무엇인가? (p.105)A)우리는 성령과 성령으로 삶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어서, 이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표준들에 민감하게 하며, 자기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세상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교회 봉사는 선한 것이고, 록 비디오는 속한 것이며, 문화적인 어떤 것이기에 우리는 가치가 떨어지는 어떤 하등한 것을 중요시 여기지 않으며, 록 비디오 문화의 회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8. 저자들에 의하면 “해석학적인 순환 논리”(the hermeneutical circle)의 의미가무엇인가? (pp.127-128)A)이 말은 성경을 읽는 것마저도 우리의 세계관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성경 본문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조망이 언제나 상대방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9. pp.129-130의 “성경을 새롭게 봄”(Seeing Scripture Anew)이라는 제목하의 내용이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무엇인가? 당신은 이와 같은 해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아니하는가? 느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느끼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A)우리의 세계관은 사물을 보는 우리의 방식에 영향을 끼치며, 심지어 우리가 성경을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으로, 죤 스토트의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서도 지적한 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경으로 가지고 나와 정작 봐야할 것들을 놓친다는 것에 동의한다.제 7 장 이원론의 발전 과정 (The Development of Dualism)1. “...대부분의 기독교 이원론자들은 인간의 성을 선하다고 인정하는 데에 어려움을느낀다.” (p.136) 만약 성(sexuality)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성경적이며 이원론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운 관점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연극 예술에 대해서 갖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이 영역에서 규범적(normative)(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적)인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결정하겠는가?A)이 문제의 출발은 어거스틴의 이원론인데, 그는 성(性)을 인간의 욕망만을 충족케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하진 않다.성(性)은 자극적여서, 인간의 눈을 도둑질하기에 적합하다. 하나님께덕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는 자로 믿는 믿음으로 종착한다.2. 기술주의(technicism)에 대해서 설명하라. 당신은 이것이 우리의 현대 사회에 대한 타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가? (pp.164-167)A)먼저, 이것은 자기의 신뢰를 둔 두 번째의 거짓된 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술주의는 과학주의의 성과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기술은 과학적 발견을 인간의 힘으로 바꾼다. 기술주의가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한 이유로는 그것이 가지는 이해할 수 있으며, 자연 지배에 대한 우리의 힘을 강화시켜 주며, 우리 삶에 대한 효율성과 정확성의 특성을 들 수 있다.언젠가부터 우리들의 사고 가운데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대야할 자리 가운데, 책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기술주의의 전능이 대신하는 모습을 본다. 이것 또한 신의 자리에 인간을 올려놓아 신이 인간에 의해 이용될 소지를 남겨두기에 타당한 비판이라 생각한다.3. 계몽된 자기 이익과 경제의 자율성의 사회를 받아들이는데 수반되어 있는 역사적함축뿐 만 아니라 “깊은 도덕적, 종교적” 함축이 무엇인가? (pp.168-169)A)로마 카톨릭과 봉건적인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그것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구 사회는 바뀌었고, 인간 사회의 지나간 역사 속에서 타당한 것으로 거의 인정받은 적이 없는 동인, 또한 일상적인 활동과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수준에까지는 결코 도달한 적이 없는 하나의 동인, 곧 이익이라는 동인을 자기의 기초로 정했던 것이다. 중세인 들이 죄악시했던 허욕, 이기심, 탐욕 등이 이제는 경제 체계의 종교적 기초가 되었다.4. 아담 스미스(Adam Smith), 칼 맑스(Karl Marx), 그리고 케인즈(John MaynardKeynes)의 경제학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라. (p.169)A)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주장하며 사람들이 자기 이익의 법칙에 순종하고 자기들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노력한다면 사회는 번영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위휘한다.
    인문/어학| 2004.12.03| 19페이지| 3,000원| 조회(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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