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1990년대 이후 정부의 농업정책에서도 농업구조 정책이 실질적으로 가정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 안으로는 농공간의 심각한 불균등 발전과 밖으로는 농산물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이라는 엄중한 현실 앞에서 한국농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세농경제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는 농업구조의 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논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농업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농업구조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싼 견해의 대립은 결국 국내 농업의 장래에 대한 전망의 차이, 농업 발전에 대한 이해관계의 차이, 현 단계 한국농업의 위기와 농업구조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여러가지로 제시되고 있는 농업구조개혁론 가운데 특히 정부의 농업구조정책은 현실적으로 한국농업의 장래를 규정해 갈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농업구조정책은 현실적으로 한국농업의 장래를 규정해 갈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 글에서는 정부의 농업구조 정책을 비교해 자세히 검토한다. 농업구조조개혁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한국농업에서 구조문제의 현황과 성격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농업구조의 실태와 성격을 고찰한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구조 문제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농업구조 개혁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그 구체적인 정책과제에 관하여 주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Ⅱ. 본 론1. 우리나라 농업의 특색우리나라의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이전인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농업은 국민 총 생산의 45%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농업의 비중이 낮아져 오늘날에는 국민 총 생산의 8%미만으로 줄었다. 우리나라 농업의 주요 특색과 현저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첫째, 영세적이고 집약적인 농업이다. 전체 농가의 약 40%가 1ha 이하의 경 품목에 따른 과잉과 부족의 동시적 병존이라는 사태로 귀결되고 있다.또 농업생산력을 구성하는 농업생산제요소의 측면에서 보면, 먼저 농가인구의 급격한 농외유출에 의해 농가인구와 농가호수가 빠르게 줄어들었으며, 농업노동력의 감소와 노령화로 농업생산력의 주체가 크게 약화되고 있다. 1992년 현재 농림어업부문의 취업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30대 이하가 18.5%, 40대가 19.2%, 50대가 34.0%, 60대 이상이 28.4%로 노령층의 비중이 매우 높고 또 노령화가 급속히 심화되고 있다. 또 취업인구 가운데 50세 이상의 비중이 1985년에는 39.9%였으나 1992년에는 62.4%로 증가하였다. 또 농업경영주의 노령화는 이보다 더 심각하며, 전체농가 가운데 영농승계자가 없는 농가가 84%를 차지하고 있다.또 농업노동력 문제는 단순한 양적 감소나 질적 약화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 따라서는 지역농업자원을 이용?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농촌 부락의 해체?공동화 현상까지 가져오고 있는 실정이다.그리고 이러한 농업생산력 주체의 약체화는 기계화를 중심으로 한 노동절약적 농업기술의 일정한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가족협업체제의 붕괴, 노령농가의 증가와 후계자 단절농가의 증가, 토지이용구조의 단순화?조방화와 경지의 유휴화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종래의 가족노작적 영세농경제에 중요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또 농업생산력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생산수단인 농지는 도시화?공업화에 따른 농지전용에 의해 양적으로 크게 감소해 왔고, 경지이용율이 저하되고 농지의 유휴화?황폐화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경지정리, 농지집단화, 관배수개선 등 농지의 생산기반정비도 대단히 불충분하다. 1993년까지 경지정리된 논 면적은 64만ha로 전체 논 면적의 49%에 불과한 실정이고, 밭은 전혀 경지정리가 되지 않았다. 또 이미 경지정리된 지역도 필지규모가 작고 농로가 좁아 대형농기계의 이용이 제한되거나 기계이용 효율이 저하되고 있다. 또 수리안전답율은 1993년 현킬 수 있을 정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다만 1992년도의 수도작 식부면적 규모별 농지순수익과 농지소득을 분석해 보면 0.5ha층과 3.0ha 이상층의 사이에는 지대부담능력에 상당한 격차가 있슴이 확인된다셋째, 일부 상층농이 성장한 반면에 광범한 중농층이 해체되고 잔존하는 대다수 농가는 이른바 반프로농가로 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가의 반프로화는 겸업화, 가족노동력의 부분 이농에 의한 농외취업과 그 결과로 가족의 재생산단위로서의 농가의 해체 현상, 부채와 이전소득에의 의존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농가 겸업화의 수준을 보면 겸업농의 비율이 1985년 21%에서 1992년에는 37.5%로 높아졌다. 선진제국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나 1980년대 후반 이후 겸업화가 다소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농외겸업의 내용은 그 취업상태가 불안정하거나 임금수준, 고용조건 등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반적으로 겸업농가에서도 자가농업경영은 가족노동력의 취업처로서 여전히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고, 이 점에서 겸업의 심화가 겸업농가의 규모축소 혹은 탈농으로 이어져 농지유동을 촉진하고 상층농의 규모확대의 계기로 될 것으로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또 농가의 극심한 노동력 유출의 결과로 정상적인 가족구성을 갖추지 못한 노령농가나 단신가구 등이 증가하고 부분가족이농의 증가로 농가의 가족 해체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최상층의 도작순수익과 최하층의 도작소득의 비교단위: 천원/10a???????????????????????????????????????????????????????????????????????????? 연 도? 2.0ha이상층의? 0.5ha미만층의? A / B??? 한계농지순수익(A)? 한계농지소득(B)? (%)????????????????????????????????????????????????????????????????????????????? 1985? 261.5? 294.2? 88.9?? 1987? 327.5? 337.6? 97.0?? 191.5)? 88(13.2)? 139(17.7)????????????????????????????????????????????????????????????????????????????? 임차지 계? 581(100.0 )? 654(100.0)? 666(100.0 )? 788(100.0)????????????????????????????????????????????????????????????????????????????또 특히 1980년대 이후 중?상층농가에서의 임차지 확대와 중?상층 규모의 임차농의 증가라는 이른바 농지임대차 전개의 계층성이 비교적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농업기계화의 전개에 따라 생산력적으로 고도화되고 규모도 비교적 큰 임차농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최근의 농지임대차에서 중요한 특징이나 이들의 대부분도 기계화에 따른 기계 감가상각비와 자본이자 등 고정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절약된 가족노동력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 규모를 확대하는 농가들이라는 점에서는 한계를 지닌다.이상에서 우리는 1980년대 이후 농업구조문제의 몇가지 특징적인 현상들을 고찰하였다. 요컨대, 현단계 한국농업의 구조문제는 농업생산력의 심각한 정체?쇠퇴와 불균형적인 발전, 농업 담당자의 압도적 다수가 영세소농층인 가운데 일부 상층농의 성장, 겸업농가?노령농가의 증가 등으로 나타나는 농업담당자의 현저한 약화, 자작농적 토지소유의 붕괴와 비농민의 토지소유와 농지임대차의 급격한 증가, 토지소유관계와 생산력 발전과의 모순 증대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린 잠시 제주도와 전남지역의 농업에 관하여 알아본다.3. 농업구조문제의 성격현 단계 농업구조문제의 성격은 한마디로 농지개혁 이후 농업구조의 기본을 이루어 온 자작농적 영세농경제의 위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자작농적 영세농경제의 위기는 현 단계 농업위기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는 것인 동시에 그것의 구조적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농업구조의 위기는 농업생산력 담당자인 농업경영과 농가경제의 위기를 전제로 하여 영세농경제하의 농업생는 것이다. 영세농경제에서 농업기계화는 비록 상층농에 있어서라 할지라도 기계 도입에 따른 높은 고정비용 부담과 가족노동력의 실업문제가 농업경영을 압박하는 계기로 작용함으로써, 농업기계화의 진전이 현단계에선 생산력 위기를 극복하기보다 오히려 영세농경제의 위기를 한층 증폭시키는 계기로 되고 있는 것이다. 즉 노동력 유출에 의하여 파괴되어가는 농업생산력을 유지?회복하기 위해 도입된 새로운 생산제력과 영세농경제와의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계작업의 수위탁, 임차에 의한 규모확대, 겸업취업의 확대 등은 이러한 모순에 대응하기 위한 제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농업기계화라는 새로운 생산력과 영세농경제와의 모순?충돌에서 오는 위기적 국면이라 할 수 있다.다음으로 영세농경제의 위기는 농업경영과 농가경제의 위기이다. 개방농정 이후 농업경영의 수익성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경영의 불안정성은 심화되고 있다.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일부 상층농에서도 농산물가격의 불안정, 농업노동력의 부족, 기계화에 따른 부담의 증가 등으로 그 경영은 불안정하다. 이러한 농업경영의 위기는 농산물 수입개방의 확대에 따라 한층 증폭되고 있다. 농업경영과 농가경제의 악화라는 농가노동력의 재생산조건의 악화는 결국 이농과 경영폐지에 의한 농가호수의 급격한 감소, 중농하한의 급격한 상승(=분해기축의 상승)과 대다수 농가의 반프로화로 귀결되고 있다. 많은 농가는 자가농업 이외에 직접 노동력을 판매하거나 가족구성원의 일부를 이농시키고, 가족노동력의 적당한 취업기회마저 제한된 채 부채에 의존하거나 과소소비로 지탱하지 않으면 농가생활의 유지조차 곤란하게 되고 있다. 현단계 농업경영과 농가경제의 위기는 대다수 농가로 하여금 자립적인 경영체로서의 성격을 급속히 상실하게 하고 나아가 농가로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4. 농업구조개혁의 목표농업구조개혁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조개혁의 목표가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한다. 정부는 구조개선정책의 목표를 경쟁력있는 농업을 육성하는 데 두고 있으나
학과:학번:성명:“내겐 너무가벼운 그녀”를 보고남성이 여성을 보는 미의 관점에 관한 분석과 사회적인 영향미스 코리아대회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제일 예쁜 사람을 뽑는다는 대회에서 아름다움(美)은 3등일까, 왜 1등과 2등은 진실(眞)과 선함(善)이라는 별칭으로 美에 앞서 부르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TV에서 그 '美의 제전'을 중계하지 않게 된 지금까지도 사실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사회자가 무슨 쪽지에 적힌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는 재치문답이 면죄부는 아닐 것이다. 화장과 성형에 찌들은 얼굴과 다이어트로 말라붙은 몸매를 다 드러내 놓고는, 7.5 어쩌구 하면서 준 점수를 합산·평균해 놓고는, 眞과 善이 美에 앞선다는 그 가식적인 겸양이 가증스럽다.어쨌거나 미인대회조차도 진-선-미의 순서를 존중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사회는 그'성 상품화의 극치'만도 못한 것이 아닐까? "예쁘다는 건 경쟁력"이라는 어느 광고의 문안은 더 이상 여성만의, 젊은이만의 것도 아닌 것 같다.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 모두 어쩌면 그렇게 비슷비슷 예쁜지, 또는 지하철 벽마다 어쩌면 그렇게 성형외과 광고가 많은지... 막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에게 "선생님 좋니?"하고 물었더니 "응, 예뻐."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열병에 가깝다.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원제 Shallow Hal)의 남자주인공은 어느 날부터 보는 사람마다 그 모습을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착시(錯視)하게 된다. 이 외모만 밝히던 '천박한 Hal'의 눈에만 200kg 가까운 못 생긴 여자가 기네스 펠트로우처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줄거리는 상투적이고, 유머는 과장되어 있고, 결말은 예측가능하지만, 이 만화적 발상은 우리를 퍽이나 아프게 꼬집고 있다. 그저 외모만 가지고 사람들에게 후광(halo)을 씌워 사람들을 판단하곤 하는 우리들을 말이다.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할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처음에는 외모만 따지더니... 그땐 정말 나의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변해 가는 할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이 영화를 처음 볼 때의 느낌과 두 번 째 볼 때의 느낌이 달랐다. 내용의 파악과 깨닫는 정도의 깊이도 깊어졌다고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못 생기고 뚱뚱한 여자인데 마음이 천사와 견주어 보아도 뒤지지 않으며, 하는 행동은 그 누가 보아도 찬사를 보낼 만 하고, 나를 향한 마음이 아침 햇살의 금빛과도 같다면...? 그런데 정말 누가 보아도 못생기고 뚱뚱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러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그렇다면 내가 할처럼 최면술에 걸려 그 추녀가 완벽한 미녀로 보인다면? 물론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주위에서 뜯어 말려도 나는 내가 보이는 그대로 믿고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아직도 나는 사람의 외모를 중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할이 여자의 외모만 따지고 들 때 나는 그에게 한심함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할이 사람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그럼 나도 사람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것이다. 헌데 나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심각한 추녀와 사랑할 자신이 없다. 그의 내면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나의 이러한 면에 부끄러움을 느낀다.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까? 대부분 그렇지는 않을까? 그렇다. 우리 인간들은 외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할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최면에서 풀려난 할은 로즈 마리의 실체를 보고 갈등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를 비난할 수 없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갈등을 느낄 테니 말이다. 비록 할이 갈등을 했지만 그는 로즈 마리의 내면의 아름다움과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날씬하고 예쁜 로즈 마리가 아닌 뚱뚱한 로즈 마리와 결혼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걸까? 그것은 할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았기 때문인 것이다.이 영화를 보고서 나는 사람을 볼 때 외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우선적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정말 여자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 동안 얼굴이 잘 이쁘다는 이유로 좋아했던 남자들의 내면만을 들여다보니 그리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자들을 처음 만날 때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아름다운 사람만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지성인으로서 대학생이 된 이상 늦기 전에 그러한 발상 자체를 바꾸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여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현재 교재중인 여자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여자친구는 외모를 굳이 따지자면 중간이상은 속하는 것 같다. 제 눈이 안경이니 콩깍지니 말하여도 괜찮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의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고 사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음씨 그 내면을 보고 사귀는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엄마, 나의 친구들도 모두 느낀다. 그의 마음이 예쁘다고. 만약 지금 내가 주문에 걸린 상태라서 여자친구의 외모가 멋지게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그 주문에서 깨어나 그 실체를 본다 해도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실한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속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이 영화는 여자는 예뻐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나 역시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공감하면서 영화를 감상했다.주인공의 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 예쁜 여자와 결혼하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인식하면서 생활하지는 않지만 거의 우리의 생활이 되어버린 하나의 고정관념을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보여 주면서 관객들이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 인 것 같다. 그럼으로 해서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비교 평가해 갈 수 있는 것이다.주인공은 그런 아버지의 유언, 사실은 우리들 자신이 다 가지고 있는 외모지상주의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서 노력은 하지만 짝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사람을 마음으로 평가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을 외모로 바라보는 최면에 걸리게 된다. 여기서 감독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주위를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 해서 우리들의 주변 생활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가를 보여 주고 있다.실제로 우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여러 고정관념들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쁘지만 심성이 나쁜 여자와 착하지만 외모가 볼품없는 여자 중에서 누구를 택할 것이냐 하고 물으면 거의 다가 예쁜 여자를 택할 것이다.
학과:학번:성명:주제:‘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고찰?서론예전에 매스컴을 통해서 안티 미스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성을 상품화하고, 미적 기준에 의해 여성을 평가하는 사회의 모습을 없애려는 취지에서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왜 안티 미스코리아일까. 이 대회는 이름부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마 이 이름은 여성들을 외모로 판단하는 전형적인 대회인 미스코리아를 비판하면서 사회 전반의 여성을 억압하는 상황을 비판하려는 취지에서 지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여성을 외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그 미의 판단 기준을 다른 일반 여성들에게도 적용하여 여성들을 괴롭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고 고쳐 나가려는 생각에서 지어진 것이라 생각한다.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는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인의 조건인 큰 키, 날씬한 몸매, 예쁜 얼굴 등을 부정하고 각 사람의 개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대회에서는 여성들이 활동적이고 건강하게 운동하는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미의 요건을 거부하며, 특히 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대중매체의 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다.실제로 TV에서는 미스코리아형 미인 또는 미남을 출현시켜 사람들의 미의식을 크게 좌우하고 있다. 마치 TV가 인형 제조공장처럼 미스코리아형 바비 인형을 쉴새없이 만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비 인형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동안 사회에서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외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들에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이 대회를 보고 와서 그 동안의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로 마음먹었다.지금부터 이 대회를 본 소감과 더불어, 이 대회의 목적과 취지를 바탕으로 이러한 것들편견에서 벗어나도록 어떻게 설득해야 할 지 생각해 보고, 사회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여성들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본론각종 미인대회를 중심으로 지구상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규격화, 수치화, 획일화하려는 사회의 인식들과 남성 위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상황들을 없애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 대회는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대회는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리여야 하고, 여성 자신이 진정으로 즐기는 축제를 만들려는 취지에서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구시대적인 미인대회를 위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특정한 규격의 틀로 재단하는 상황을 막아보고자 이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이런 생각들에 찬성하고 동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되도록 관객들도 참가하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도가 참 보기 좋았다.절제된 미, 엄격한 기준에 반(反)하는 다양한 미의 기준이 적용되어 창의적인 생각, 자유로운 무대, 상상력이 중시된 행사인 만큼 새로운 시도들을 엿볼 수 있었다. 후보자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일렬로 서 있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이번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여성과 남성이 눈높이가 같으며, 상식이 통하고 서로를 전 인격적으로 존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 첫 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대회가 앞으로 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었고, 이 대회를 통해 아름다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그러나 나는 이 공연을 보면서 많은 한계점들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이 대회는 진정한 미스코리아 대회의 대안으로 성장하기에는 더 많은 고민과 여성들의 호응이 있어야한다는 과제를 던져주는 미완의 무대였다. 그리고 미스코리아 대회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정작 이 대회서 하고 있지만, 이 대회 또한 상업적인 면을 너무나도 많이 가하고자 할 때 주체측에 대한 소개와 도와준 이들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홍보를 하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리고 주체측을 설명할 때, 이 대회에 대한 취지에 대한 설명을 바랬지만, 이것보다는 주체측 광고로 얼버무리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그리고 대회가 진행될수록 대회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내용의 공연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공연은 그 의도조차 찾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퍼포먼스 ‘오르가즘’ 팀은 건강한 성에 대한 이야기를 무용을 통해서 보여 주고자 한다고 하였지만, 정작 보여 준 것은 야한 몸동작 뿐이었다. 속옷을 입고 나와 여자와 남자가 이유도 없는 춤동작을 하는 모습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운동하는 여자가 아름답다’ 대회의 주제와 맞지 않는 내용의 공연들도 여럿 있었고, 단지 흥미 위주로 구성된 공연도 있었다. 수상부분에서 이화여자 응원단이 타게 되었는데, 단순히 짧은 치마차림에 어느 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응원모습 일뿐이었다. 다른 응원단과는 다른 모습의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특별한 메시지나 철학도 가지지 않은 이 팀을 상을 주다니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관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씁쓸하기까지 하다.이번 대회는 남성에 대한 욕을 하고 남성과 여성의 자리만 뒤집는 역지사지 식의 패러디 쇼만으로 그저 웃고 즐기기엔 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나는 남성 중심의 권력으로부터 생성된 이 공고한 가치들에 대한 진정한 뒤집음은 단순한 쇼 가 아닌, 진정한 가치 전환의 변화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대회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단지 한바탕 속 시원하게 남성들 욕이나 하자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나는 이 대회가 더욱 발전되기 위해서는 웃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뚜렷한 철학과 메시지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공연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공연을 봄으로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실천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여 줄 수 있는 공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여성을 억압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나는 이 공연을 보고 와서 진정한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해 볼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우리 사회는 여성들을 미적 잣대로 평가한다. 오로지 외모로 여성들을 평가하고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외모를 가진 여성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성형외과를 제 집 드나들 듯이 다니고,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여성에게 있어서,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왜 이렇게 외형적인 모습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아름다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예쁘고 곱다’란 뜻 외에 ‘사물의 됨됨이가 마음에 들어 기쁨과 만족을 줄 만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아름다움은 외면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적인 아름다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것이다. 외면적 아름다움이라면, 단지 보는 것만으로 평가되는 미스 코리아가 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모순되는 점이 있는 것이 이런 평가 기준도 사회의 편견과 의식들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반면에 내면적 아름다움이란 성실함, 책임감, 순수함, 남을 생각하는 마음 등 자신과 남을 만족시킬 만한 성향을 들 수 있겠다. 소위 말하는 외면적 아름다움은 타고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선천적인 것보다도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좌우되며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충분히 개발시킬 수 있다. 때문에 내적인 아름다움은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어 테레사 수녀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고, 장애로 인해 외적인 요소가 결핍되었던 헬렌켈러나 루즈벨트도 그것을 극복하는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훌륭한 위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위인전에 기록하면서 그들을 숭고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존경한다. 반면에 외적인 아름다움의 최고라 불려진 동양미인 양귀비나 서양미인 클레오파트라를 볼 때 그들의 외면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거나 부러움을 가질 수 있으나 우리는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 남을 아끼는 마음, 효, 책임감, 성실함 등은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칭찬 받는 항목이었다. 이런 점을 볼 때 아름다움은 내적인 아름다움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안티 미스코리아 에 참가한 사람들도 이러한 외면적인 아름다움만을 인정하고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무시해 버리는 사회적인 경향에 반발한 것이라 생각한다.이렇듯 생각해 보면 외면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란 일시적인 것이어서 그 자치를 논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기준조차 사회의 왜곡된 인식들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 생각하면, 여성을 상품처럼 외모로만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요즘 현대인들은 앞에서 말한 내면적 아름다움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TV 등을 통해 외면적 미인, 미남에 자주 노출됨으로서 아이들은 이런 외적인 것만이 아름다움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은 외모에 집착하여 꾸미고 가꾸는 초등학생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과 못생겼다는 이유로 친구를 왕따 시키는 등의 아이들의 성향을 통해 알 수 있다.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외양적인 아름다움은 시대에 따라 변하며 고정되어 있는 아름다움은 결코 아니다. “예쁘다=아름답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단지 아름다움이라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예쁘다는 것이 하나에 포함되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 중 내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서 최대화시킨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해 줌으로써 아이들의 외모 지향적인 성향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면적인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알아야 할 것이다.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 시각을 가져야 할 것 이다.40대가 되면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이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인격이 나이가 들면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인데, 이 때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은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외면적인 아름다움까지.
학과:학번:성명:주 제: 12주차-미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미스 코리아대회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제일 예쁜 사람을 뽑는다는 대회에서 아름다움(美)은 3등일까, 왜 1등과 2등은 진실(眞)과 선함(善)이라는 별칭으로 美에 앞서 부르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TV에서 그 '美의 제전'을 중계하지 않게 된 지금까지도 사실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사회자가 무슨 쪽지에 적힌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는 재치문답이 면죄부는 아닐 것이다. 화장과 성형에 찌들은 얼굴과 다이어트로 말라붙은 몸매를 다 드러내 놓고는, 7.5 어쩌구 하면서 준 점수를 합산·평균해 놓고는, 眞과 善이 美에 앞선다는 그 가식적인 겸양이 가증스럽다.어쨌거나 미인대회조차도 진-선-미의 순서를 존중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사회는 그'성 상품화의 극치'만도 못한 것이 아닐까? "예쁘다는 건 경쟁력"이라는 어느 광고의 문안은 더 이상 여성만의, 젊은이만의 것도 아닌 것 같다.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 모두 어쩌면 그렇게 비슷비슷 예쁜지, 또는 지하철 벽마다 어쩌면 그렇게 성형외과 광고가 많은지... 막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에게 "선생님 좋니?"하고 물었더니 "응, 예뻐."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열병에 가깝다.그럼 나도 사람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것이다. 헌데 나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심각한 추녀와 사랑할 자신이 없다. 그의 내면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나의 이러한 면에 부끄러움을 느낀다.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까? 대부분 그렇지는 않을까? 그렇다. 우리 인간들은 외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이제 지성인으로서 대학생이 된 이상 늦기 전에 그러한 발상 자체를 바꾸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여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현재 교재중인 여자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여자친구는 외모를 굳이 따지자면 중간이상은 속하는 것 같다. 제 눈이 안경이니 콩깍지니 말하여도 괜찮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의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고 사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음씨 그 내면을 보고 사귀는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엄마, 나의 친구들도 모두 느낀다. 그의 마음이 예쁘다고. 만약 지금 내가 주문에 걸린 상태라서 여자친구의 외모가 멋지게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그 주문에서 깨어나 그 실체를 본다 해도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실한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속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TV를 주름잡는 꽃미남, 꽃미녀들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황폐함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 이제 美는 바로 眞이요, 善이다.주 제: 13주차-동양화론에서 말하는'화육법(畵六法)'이란 무엇인가?그 내용을 살펴보자.⊙사혁(謝赫)이란 누구인가?중국 남제(479~402)말기의 화가 사혁(謝赫)은 인물화를 그리는데 모델을 앉혀봏지 않고도 그려냈다고 한다. 한번 보기만 하여도 그생김새나 모습의 세밀한 점까지 상기해 가며 아주 똑같이 그려냈다. 비록 생동감이 결여되고 필치가 섬약하여 웅장하고 아담한 맛은 없지만 실력이 그를따를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화가로서보다는 오히려 회화이론가로서 더욱 유명하였는데 그가 쓴 화론이 현재 고화품목의 이름으로 남아 그서두에 제창한 기운생동(氣韻生動)아래 은 오랜 중국화평의 기준이 되었고 후세에서 그대로 답습되었다⊙사혁이 육법에서 제창한 화론(畵論)① 기운생동(氣韻生動) : 기운이 생동하다곧 화육법 원리의 기본이 되며 최상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원리라 할 수 있는데, 회화창작에 있어 주제가 명확하고 형상이 생동하며 표현이 진실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난해한 형이상학적 특성으로 인해 학자들의 시각에 따라 기운생동 개념은 조금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운율적 생동, 혹은 생명운동 속에 나타난 정신적 운율', '정신적 요소, 생명의 운동', '정신적 톤과 생명운동', '생동을 뜻하는 정신의 반향'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곧 기(氣)를 뜻한다. 이는 기운생동에서 가장 중핵이 되는 개념으로 어떤 본질적 요소로부터 나오는 아우라, 호흡, 방사물, 생명정신, 고양 따위를 암시하며, 우주의 근원, 모든 사물에 편재되어 있는 성질로서 화가가 마땅히 포착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율이라 함은 곧 운(韻)을 말하는 것으로 단순화 형태의 조화나 균형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록 정지되어 있을지라도 운동감을 확연하게 암시하는 형태 자체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와 운을 생동과 결합함으로써 사혁은 '창조적인 생명력'의 문제, 그 실행에서의 '조화로운 수법'의 문제, 그리고 그림에서의 '약동'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 좁은 의미에서 기운이란 그림 안에서 일어나지만, 넓게는 생명의 자연적인 운동으로 확장된다. 기운은 굳이 예술작품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우주의 충천한 기운에서부터 새의 지저귐, 들풀의 흔들림, 그리고 사람의 동작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며, 그러한 자연의 기운은 역동성과 활력에 충천해 있다. 그러므로 화가의 최고 목적은 우주적인 에너지로 하여금 그의 작품을 통해 생명감 넘치는 세계의 흐름을 야기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훌륭한 예술작품은 기술적인 것보다 우선해서 작가의 정신적 감정, 공간적 감각, 운율적 감정, 생명력, 생동적 감응력 등이 표현되어 드러난다.② 골법용필(骨法用筆) : 골법으로 붓을 사용한다붓놀림의 구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회화창작에서 형상을 묘사하는 데 있어 필치와 선조(線條)를 말한다. 이는 중국회화에 있어 언제나 화가들의 기본과 본질을 이루는 주요 요소로 받아들여져 왔다. 여기서 골의 개념은 육조 시대에 예술의 속성뿐 아니라 미적인 판단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결합되어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가령 서예와 관련된 초기 문헌에서는 골을 규범적인 비평어휘로 사용했는데, 6세기 화론가 유협(劉 )은 "골을 몸체처럼 의존하는 문장은 그 뼈대에 의해 바르게 세워진다"라고 하여 그 성질이 서화(書畵)의 '구조(構造)'같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그림은 기운이 빠진 그림처럼 맥이 빠질뿐더러 그림의 본질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③ 응물상형(應物象形) :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그린다물체의 형상을 그려내는 사실적인 묘사를 말하며 제재 선택의 적합함, 대상의 관찰과 묘사의 엄격함, 세밀함, 정확함을 의미한다. 대상을 거기에 걸맞는 질서의 상(像)에 부합시키는 것으로 종종 리얼리즘을 가리키는 말로 잘못 해석되기도 하나, 근본적으로 자연과의 객관적인 조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인체, 화조, 조충 등 소재가 어떤 것이 되었든 자연대상들을 단순히 장식적인 형태나 모양을 묘사하기 위해 기용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언제나 내적인 의미, 다시 말해 형태를 빌려 표현해야 될 정신과 밀접히 관련을 맺었다. 말하자면 미적이거나 정신적인 유형의 상징적 표현만이 있었을 뿐 형태는 항구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셈이다.
학과:학번:성명:주 제: 10주차-환경과 관련된 예술에 대해 알아보자.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환경계획은 과학적 실용성과 기능적인 면에 치중되어 왔지만 문화, 경제가 고도로 발달하는 이때에 앞으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시각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감상적인 미학개념을 빼 놓을수 없게 되었다.이런 환경과 관련된 예술로 ‘환경조각’에 대해 생각해 보자.조각은 순수미술의 한 분야로서 물체의 형태미를 추구하는 조형예술작품이다.조각이 전통적으로 미술관이나 화랑의 실내에서 야외로 나오게 되면서 야외조각(Outdoor Sculpture)이라 불리었고, 현대의 도심지의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고 자연과 인간의 연결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가진 조형이 환경조각(Environmental Sculpture)이라 한다.환경조각으로는 공공조각 분수조각 설치조각 기념비 조형문 등이 있으나 넓은 의미로는 옥외공간에 설치된 모든 조각과 구조물을 통칭한다. 환경조각의 대한 정의는 명확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다음 구성요소를 갖춘 조각작품을 환경조각이라 한다.① 공공의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조형적인 환경요소를 만들어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②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공공간(Public Space)에 위치한다.이러한 환경조각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형태를 표현하면서 시민공원으로 활용되는 조경양식을 조각공원(Sculpture Park)이라 한다. 공원은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민의 중요한 휴식처로, 가까이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공공장소이다. 이러한 공원이 문화 공간망 속에 편입되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갖게된 조각공원은, 문화공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뿐 아니라 공원기능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띠게된다. 즉, 조각공원은 조각과 공원이 결합된 장소로서, 도심 속에서 자연과 점점 멀어져 가는 인간본래의 심성을 환기시켜주는 예술의 양식이다.건축법에서 '환경계술 장식품'의 설치를 유도하는 결과도 한국에서의 환경조각이란 마치 건축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혹은 말 그대로 장식품인 듯 착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그러나 장식을 넘어선 예술로서의 조각품, 때로는 건축물과 도시의 구성요소들을 압도하며 도시의 상징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환경예술, 도시조각(urbom scalplure)의 개념을 일반화 할 정도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누구든지 한번쯤은 경험하게되는 선진문화에 대한 한숨 섞인 여러 가지 부러움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제도적인 어떠한 구속도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예술품에 대한 엄청난 공간의 할애이다. 예술가가 도시를 하나의 갤러리로 자신의 예술품을 쏟아놓을 수 있는 발표의 장으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허락된 그들의 여건이 부럽다. 공간의 할애, 그것은 바로 작품의 규모로 연결되어 우리 인간이 기능과 미를 겸비한 건축물에 포근히 감싸듯이 거대한 조형물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도시 속에서 웅대한 산을 보거나, 바다 혹은 거목을 보듯 정서가 순화되고 정화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아직은 갈 길이 먼 우리의 미의식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생활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것들부터 다시 한 번 미학적으로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1)환경미학(문운당) 윤평섭 저 [99년] : 11쪽~15쪽2) 제18집 1993, 한국미학회 (민주식) : 45쪽~72쪽주 제: 11주차-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순수예술은 우선 여러 사람의 집단적 창작이 아닌 개인의 창작에서 비롯된다. 즉, 창작자 개인의 창의력과 자기 충족에역점을 두는 고도의 실험적이며 모험에 찬 작업 분야이다. 순수 예술은 이렇게 창작자 자신의 창조 욕구 충족에만 집중적인 관심을 두기 때문에 그 밖의 사회적 가치에는 간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순수 예술의 창작자는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만족을 위해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과 같은 대중,상업 예술 시대에 있어서 순수 예술은 일부 상위 계층에게만 향유되는 사치스럽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순수 예술은 그 주변적 성격을 통해 사회가 건전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기능을 하고, 더불어 그 자유로움과 비판 정신은 문화 발전과 재생산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이에 반해, 대중,상업 예술은 문화 생산자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중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예술을 말한다. 대중 예술의 성격은 한 마디로 말해 '일방적'이라 할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생산된 예술은 대중 매체라는 매개 수단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에 전달되지만 그 반대방향으로의 흐름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대중,상업예술이 문화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는 긍정적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그에 못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그것을 능가하는 문제점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대중 매체에 의한 기계적 복제는 많은 사람들을 문화의 역동적인 창조자가 아닌 단순한 문화의 소비자로 전락시켰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대중 매체에 의해 전달되어 오는 문화, 예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 (그들은) 그것들에 대한 비판 의식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소수의 문화 생산자들은 대중 매체의 이런 특성을 악용해, 대중 매체를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삼으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