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1.권서의 유래와 연역2.권서의 임무와 선발3.권서들의 활동상황한국 기독교의 개척자 권서한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단 기간내에 기독교 선교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여기에는 언더우드, 아펜젤로와 같은 우수하 고 헌신적인 외국 선교사들의 공이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은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성경이 번역되어 보급되기 시작하였 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일시적인 부흥운동이 아니라 성경보급을 통한 말씀역 사로 말미암아 튼튼한 기초를 쌓으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선교 100년만에 인구의 4분의 1이 크리스찬이 되었고 이제는 세계선교를 주도해 나 가는 제사장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국 교회가 성장하기까지 개척의 최선 봉에 서서 목숨을 걸고 성경보급에 힘쓴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권 서'들입니다. 권서들은 초기 한국교회에 몰려온 온갖 시련과 모진 풍상을 온몸 으로 감당하며 황무지를 개척한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일제하의 민족 수난 기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성경봇짐'을 메고 다니며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한 '권서'들이야말로 한국교회의 선구자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헌신과 희 생은 한국 교회 설립의 모태이자 그 발전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 심포지 움은수양회때 발표한 심포지움인데 이 심포지움을 통해 권서들의 뜨거운 선교열정과 희생정신, 그리고 구령의 열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1.권서의 유래와 연역'권서'(colporteur)라는 말은 불어의 'col'(목)이라는 말과 'porteur'(운반한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즉 권서는 목이나 어깨에 봇짐을 걸어 물건을 운반한 다는 뜻으로 행상인을 가리킵니다. 그 말이 현대에 와서는 성경책을 사서 읽도 록 권하는 사람, 성격책이나 전도 책자를 파는 행상인의 의미로 발전하였습니 다. 한국에서 권서가 시작된 것은 1882년 만주에서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한글 로 번역될 즈음이었습니다. 만주에서 활동한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스(R년에는 70명대에 이르고 1910년에 는 238명에 육박하였습니다.2.권서의 임무와 선발권서는 그 사역의 특성상 사명감이 투철하고 믿음이 좋으며 특히 책판매에 탁 월한 소질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권서의 선발조건을 보면 다음과 같습 니다. ①격심한 육체 노동에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갖춘 자. ②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특심한 열정을 소지한 자. ③주위로부터 칭찬을 받는 덕망을 갖춘 자. ④돈의 유혹에 잘 빠지지 않는 자. ⑤한문을 잘 알고 어느 정도의 지 식 수준을 갖춘 자 등이었습니다.권서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처음에 무슨 말 부터 전도를 시작할 것인가? 하는 실전 판매 전략을 교육받았습니다. 또 상류 지식층을 상대하기 위해서 논어, 맹자 등 중국 고전을 배워야 했습니다. 미신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 과학적인 지식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성 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어 필요한 경우 성경 구절을 자유롭게 인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습니다. 당시 윤성근이라는 권서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었는지 '살아있는 성구사전'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연해주 지방에서 활약 한 권서 안용환은 러시아 정교회 소속인 두 젊은이와 진화론을 가지고 토론을 해서 마침내 이들을 복음에 굴복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 지방 20가구 중 10가 구의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본래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드리는 '합동제사의식'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의 반이 신자가 됨에 따라 자연히 이 제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구춘경권서가 쓴 글에 의하면 권서는 다음과 같은 마음 자세로 사명에 임해야 했습니다. ①우리가 파는 책은 하나님의 묵시로 된 성경이며, 사람들이 읽고 구 주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②겸손과 존경 심으로 사람을 대할 것이며 온유하고 화평한 말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③핍박 을 받더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 ④숙식할 때에는 교우나 불신자들에게 폐가 되지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후 주위환기, 흥미유발, 구매욕구 유발, 구매결심의 4단계 판매전략에 따라 판매를 하였습니다. 원칙적으로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판매와 전도에 열중하다보면 밤 9시를 넘겨 발이 부르 트고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다 시 '사랑방 전도모임'을 가졌고 개종자가 생기면 근처 교회에 연결시켜주고 그 지역을 담당하는 권서가 계속해서 그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권서들은 자기가 책임 맡은 구역은 한 곳도 빼지 않고 모두 다녔습니다. 사람 들이 밀집한 장터나, 교도소, 병원, 나환자 수용소, 매춘굴, 도박판, 아편소굴, 궁 궐, 나룻터, 학교, 심지어는 산중의 절간까지 그들은 하루 평균 20Km 이상 걸 어다녔습니다. 특히 권서들이 즐겨 찾는 곳이 닷새에 한번씩 서는 장터였습니 다. 그들은 장터 한 구석에 성경과 카렌타, 쪽복음, 교리문답등을 펼쳐놓고 찬송 을 부르며 열심히 성경을 팔았습니다. 부모 손잡고 장에 따라온 아이들에게 성 경 이야기를 해주고는 이들을 격동시켜 성경을 팔기도 하였습니다. 해질녘이 되면 술에 취한 장꾼들을 피해 여인숙으로 가서 그 곳에서 성경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격동기 가난한 백성들에게 생활 필수품도 기호품도 아닌 성경을 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청일전쟁,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땅을 본격적으로 수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땅과 곡식마저 빼앗기니 헐벗고 굶주림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는 한권의 성경 보다 한 줌의 쌀이 더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권서들은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를 외치며 확신있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예 한글을 가르 쳐서라도 성경을 팔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조선의 백성들을 구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레가 득실거리는 객사에서 자야 했습니다. 그들 이 겪은 고통과 어려움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순직하거나 병들거나 일찍 은퇴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석현권서는 남천에서 성경을 팔고 있는데 깡 패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더러운 예수쟁이! 저리 꺼져" 깡패들은 그를 죽이 고자 그의 옷을 벗기고 칼로 위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또 올 것입니다. 만일 당신들이 날 죽이면 다른 권서들이 올 것이요.'안교철권서는 자신이 경험한 감동적인 체험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나 는 오늘 한 가난한 여인에게 성경을 권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계란이라도 하나 주면 성경을 팔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하루에 한끼 먹고 사는 데 오늘은 그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 불쌍하여 내가 돈을 내고 성경을 사 줄테니 읽어 보라고 했다. 성경을 받아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그 여인은 잠시 후 동 전을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책이라는 것을 알았습 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책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받을 수 있습니까? 여기 이 돈을 이웃집에서 빌려왔으니 책값으로 받아 주십시오. " 내가 한사코 괜찮다 고 했지만 그 여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이처럼 아무리 가난해도 반드시 대금을 지불하던 풍토는 결국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자립할 수 있는 영적 환경 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권서들은 하루100리 길을 걸어 성경 하나를 팔고 나서 차디찬 꽁보리밥에 짠지 하나를 얹어서 도시락을 먹을 때는 참으로 꿀맛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루 종일 한 권도 팔지 못한 채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언제나 스피릿이 충만했습니다. 열 악한 환경과 싸우면서 희생적인 노력으로 일한 권서들의 수고는 점점 열매를 맺었습니다. 1914년 대구에서 미국 선교사 블레어가 성경공부반을 열어 교인들 에게 어떻게 기독교를 믿게 되었는가 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권서들은 외국선교사들에 대한 반감을 없애주고 현지인들의 마음을 부 드럽게 하는 '세례요한'적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베시선교사는 권서들의 공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권서들에게는 평범한 일이 없고 또한 쉬운 일도 없 다. 그들의 사역은 모든 선교사역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고 전도 사역의 척 후병 역할이다. 그들은 영원히 전진하는 십자군의 공병이요 지뢰 제거병들이다. 이들은 이 적대적인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더 빨리 전파하려고 길을 예비하 고 있다."권서 중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인권서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형제 들이 들어갈 수 없는 부엌과 바느질방을 개척하였습니다. 용기종기 모여 앉아 남편 흉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여인들에게 부인권서들은 다림질도 도와주 고 함께 파도 다듬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글을 모르는 경우 가 많았기 때문에 부인권서들은 하루 종일 성경을 읽어주고 저녁으로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김부인은 150명에게 글을 가르쳤고 10,110에 게 성경을 읽어주었고 13,066권의 성경을 판매하였습니다. 원다비다 부인은 과 부에다가 자식도 없이 주막에서 일하며 막걸리와 담배로 한 많은 인생을 살던 여인이었습니다.그러나 권서 부인들의 전도로 거듭나 모은 재산을 몽땅드려 성 경과 찬송가를 사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6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70 세 이상까지 여름 장마와 겨울의 폭설을 견디고 산간지대를 다니면서 3천명에 게 설교하고 1,750권의 성경을 판매하여 '평화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습니 다.이처럼 권서들이 수고한 결과 1908-1940까지 한국의 전체 성경 보급의 85%가 권서들의 '부르튼 발'과 '복음짐'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참고1938년은 940,416 권). 선교사 그리어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서들의 사역을 들어보면 마치 사도행전의 한 장을 읽는 것 같다." 이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주님께 충성한 권 서들로 인해 무지와 가난과 우상숭배의 나라
국화와 칼을 읽고『국화와 칼』은 루스 베네딕트가 서구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의「이중적」인 성격의 실체를 문화인류학 시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녀는 연구과제를 크게 전쟁 중에 일본인, 각자 알맞은 위치찾기, 메이지유신, 은혜갚음, 인정의 세계, 덕의 딜레마, 자기수양, 패전후의 일본인 등으로 나눠 깊이 있게 탐구했다.미국의 인류학자인 베네덕트는 1944년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다. 태평양전쟁 중이었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보면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미국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베네틱트는 일본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채로 일본에 관한 기존 연구들과 여러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여 일본을 분석하였다.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베네덕트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국화와 칼이라는 상반된 상징을 통해 설명한다.1~2장에서 저자는 일본인 특유의 모순적 성격, 즉 공격적이며 동시에 수동적이고, 호전적이면서 심미적이며, 무례하면서 공손하고, 충성스러우면서 간악하며, 용감하면서 비겁하고, 경직돼 있으면서 적응력이 뛰어나며, 또한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신경과민이 돼 있으면서 타인의 눈이 미치지 않으면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든다는 등등을「국화와 칼」이라는 말로 상징화했다.서양인들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쟁에서의 죽음은 정신적 승리라고 외치며 최후까지 절대로 항복을 하지 않을 듯하던 그들이 국왕의 패전선언이 있자 곧 일사불란한 유순한 태도로 적이었던 미국인에게 복종과 협력을 아끼지 않는 모범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이중성의 실체를 저자는 위계 서열 의식, 은혜와 보은, 그리고 의리에 대한 독특한 도덕체계, 죄와 악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대신 수치심을 기본으로 하는 문화체계 등으로 설명한다.3~4장에서는 일본인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위계 서열 체계에서「위치」지워져 있으며 각자가 그 위치에 맞는 특권과 의무와 행위규범을 가진다고 한다. 이 위치 또는 서열은 사회계급이나 신분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남녀난을 듣지 않을까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은혜)을 받으면 그것을 제대로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워 한다. 따라서 자연히 이런 도움을 요구하고 받는 행위는 발달할 수 없고 되도록이며 거절하게 된다.일본인의 이러한 의식을 좀더 자세히 분석하면 이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의무에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그 은혜가 너무 커 도저히 평생동안 갚을 수 없는 그런 은혜에 대한 보답, 즉 기무(義務)가 있다. 천황에 대한 충(忠), 부모의 은혜에 대한 효(孝), 스승의 은혜에 대한 기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머지 하나는 기리(義理). 자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주어야 하는 그런 것이다. 여기엔 자신의 주군에 대한 의리, 세상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은 도움 등의 세상에 대한 기리와 자신의 이름이 모욕을 당했을 때에 그 오명을 씻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자살,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한 복수 등이 포함되는 이름에 대한 기리가 속한다. 특이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자에게 행하는 복수까지 그들은 꼭 되갚아야 할 빚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또 특이한 것은 중국에서는 '인(仁)'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충이든 효든 이런 인이 바탕이 되어야 제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일본에서 인(仁) 또는 인정(仁情)은 비합법적인 기리를 나타내는 부정적인 말이다. 그리고 중국은 조상을 숭배할 때 가문을 중시하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조상까지 숭배하나 일본은 오직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조상에 대해서만 효를 행하는 현실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행위 역시 어버이에 대한 효로 인식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천황숭배가 이상하게 보이지만 일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천황에 대해 죽을 때까지 갚을 수 없는 빚(은혜)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천황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죽을 수도 있다. 천황을 위하기 이전에 천황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 따라서 천황이 원하지 없는 경쟁이 그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특히 서구인처럼 경쟁을 즐기고 지더라도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그런 모습은 일본인에게는 맞지 않다. 일단 경쟁이 벌어지면 일본인은 자기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기보다는 경쟁자의 페이스에 지나치게 신경쓰다 정작 자신의 에너지를 엉뚱하게 소비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지거나 실패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모욕을 느끼고 따라서 이 모욕, 치욕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복수는 옛날 사무라이처럼 쉽게 사람을 죽이거나 해를 입히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내면화된다. 이는 권태와 우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우리가 때로 목격하듯 자살의 형태로 나타난다.자기 이름의 명예, 타인에게 존경과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일본인에게 실패와 패배의 치욕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타인의 존경과 인정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패전 후에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에 그렇게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들은 그들의 확신에 기초해 전쟁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전쟁이 다른 나라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길이라 믿어 전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보니 그 길은 선진국을 따라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과감하게' 살 수 있었다.일본인들의 세계관에서 아주 독특한 것으로 '선과 악'의 관념도 빠질 수 없다. 일본인을 성악설과 성선설 둘 중 하나에 놓으라고 한다면 성선설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선천적으로 악한 인간은 없다. 절대적인 악이라는 관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인간은 선하나 자기수양 등을 게을리 하거나 자제력을 잃어 얼마든지 더러워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러워진 것은 버리거나 씻으면 된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노력에 의해 선해질 수 있다. 보통 서구에서는 쾌락, 육체의 욕구를 악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인정하지 않는다. 선하던 것이 녹이 슬어 낡으면 악이 되고 다시 이를 다듬어 갈면 선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므로 그들이 당면하는 문제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인생의 각 영역에서 지켜야할 의무(또는 기리) 사이의 갈등이다. 즉 천황에 대한 충(忠)과 주군에 대한 기리(義理) 사이에서의 갈등 같이.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선이고 다른 하나가 악인 것이 아니다. 단지 둘 사이의 갈등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를 자살로 해결한다. 부모에 효를 다하기 위해 아내를 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 가운데 감정에 치우치거나 드러내지 않고 '성실'하게 기무(義務)를 다하려는 노력이다.일본인에게 있어 '자중(自重)하다'란 말은 행동을 함에 있어 타인을 의식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인의 삶이 서구처럼 '죄의식' 중심이 아니라 '수치'중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죄가 아니라 수치가 중요한 사회는 외면적인 강제력에 의한 선행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나쁘게 볼까 두려워 선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본인 특유의 예절을 지키는 것이다.11장의 '자기 수양'에서 동양문화권의 '무아(無我)지경'을 매우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읽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몰입의 경지인데 서구인의 눈에는 매우 희한하게 보였나 보다. 서구의 자기 수련과는 다르게 자기 희생(서구에서 자기 수련은 가톨릭에서의 고행처럼 자기 희생의 이미지가 강하다)을 포함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처세를 위한 것이라 하고는 선종의 신비주의적 수련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무아지경'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나를 보는 나'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버리는 것,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일체화되는 자연 숙달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에만 몰입하는 경지라 할 수 있겠다.12장에서 일본인의 유아교육법은 일본인의 삶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가장 과 명예를 위해서 서슴없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들의 실패나 실수,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 그리고는 미련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기들의 신념이 악한 세력에 저지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일본의 역사를 공부하고 또한 이해하려면 일본 문화의 틀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주관성이 개입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국화와 칼이란 책은 일본 문화의 틀에 대해서 주관성이 개입할 수 있는 역사주의 방법이 아닌 문화 인류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여 상당히 객관적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책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한번도 일본을 방문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으로 작용하여 그의 저서에 객관성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이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제시하는 객관적 일본의 특성을 하나씩 살펴본다면 일본 문화의 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일본의 특성들 중에 한가지로 이중성을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인 국화와 칼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인들은 국화를 즐겨 가꾸면서도 또한 칼을 숭상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친절하면서도 또한 불손하고,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서도 또한 반항적이다. 그들은 이러한 모순을 그들 문화의 특징으로서 지니고 있다. 즉 극과 극으로 반대되는 특징들을 '일본적'이라는 의미 안에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일본인들이 약아 보이고 얄미운 듯이 느껴지는 이유도 그들의 이런 이중성 때문인지도 모른다.또한 일본인들은 항상 자신이 세상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본인의 특징은 서양의 합리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일본인들은 효에 대해서도 부모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부모에게 진다.
서 론과학이 죽으면 성장도 끝이다. 요즘 고3수험생 및 재수생들의 대학지원을 돕기 위해 만든 소위 배치표를 보면 자연계의 학교를 불문하고 의대와 한의대 등 상위등급에 배치되어 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순수과학보다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이 보장되는 과를 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경쟁력은 이미 상실해가는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 진입을 위해 유능한 기술인재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 국민소득 2~3만 달러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이공계 기피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본 지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과 그 이유를 살펴보고 이것이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이공계 인력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 현상을 해결할 방안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주제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 되고 있는 문제 이므로 신문잡지의 기사나 인터넷자료 등을 활용하였다. 또한 경제지식에 관련된 책과 수업 자료를 참고하였다.본 론2. 이공계기피 현상과 일어나는 이유1) 이공계기피 현상 실태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상위권일수록 이공계 보다는 의대, 한의대, 약대 등에 지원하는 경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대학 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한 학기동안 서울대 공대생 50여명이 의대 한의대로 옮기기 위해 자퇴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이공계 대학 지원자는 급감했다. 98학년도 자연계 지원율이 43%로 절정을 이룬 뒤 계속 내려가 2002학년도 수능에서는 22.9%였다. 그때 바닥을 쳤고, 이후 조금씩 올라가 2003학년도 수능에서는 30.3%, 2004학년도에는 31.4%다. 「조선일보」 1003.12.4 박중현기자 이처럼 자연계의 최상위권 학생들이 이공계 보다는 안정성 면에서 유리한 의대, 한의대 등에 몰리고 있다. 사실 대학의 이공계에 정해진 정원이 있기 때문에 인력의 양적인 문제보다도 최상위권 학생들이 이공계 지원을 기피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2) 이공계기피 현상의 이유그렌져 승용차는 한의대는 30세,의대는 3말이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원인을 알아보기 전에 반대로 학생들이 의대 법대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면 사회적 명예, 경제적 풍요, 직업 안정성, 노후 안정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이공계공부는 공부하기가 힘들고 어려운 반면에, 졸업 후에 취업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97년 IMF이후 가장 먼저 감축한 인력이 연구 개발직이라는 것도 또한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출하는 데에 대한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위 관료, 기업 CEO에 이공계 출신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그 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간단히 이공계 기피현상의 이유에 대해 정리하자면 물질주의 적인 시대에 들이는 노력에 비하여 부유해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3. 이공계 인력의 중요성1) 과거 한국경제성장 과정과거 한국은 저임금이면서 양질의 노동력은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격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그 명성이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렇든 한국은 사람에 의한 경제발전 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1차5개년계획(1962-66), 제2차5개년계획(1967-71), 제3차5개년계획(1972-76), 제4차5개년계획(1977-81), 제5차5개년계획(1982-86), 제6차5개년계획(1987-91), 제7차5개년계획(1992-97)을 거치면서 한국은 급성장 하였다. 6.25 전쟁당시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현재는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OECD 구매력평가환율을 이용한 GDP등 비교'자료에 따르면 구매력평가(PPP)환율로 환산한 1인당 실질GDP를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는 OECD국가중 중-저위 소득국가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2002.10.27 , 진병태기자 이것이 과거 우리나라가 이루어 낸 경제성장의 성과이다.2) 한국경제 성장의 미래한 학자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빗대어 "넛 크레커"라고 하였다. 위에서 누르고 아래서 올라오는 한 마디로 끼인 상태라는 것상태는 이래 저래 치이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선진국 대열에 들기 위한 gap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사실 핸드폰 등 소위 효자 수출품목에도 주요 부품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첨단의 기술이나 지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1) 질적경제발전의 필요성선진국의 경우, 국민소득 2만 달러 되었을 때 이공계 진학률이 떨어졌는데, 우리나라는 벌써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이 문제이다. 과거 양적 경제발전에서 질적발전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경제이론에 생산함수(production function)가 있다. 이는 생산요소 투입량과 산출량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생산요소의 투입량을 한 단위 증가시킬 때 창출되는 산출량의 증가분이 이 함수 위에 표현된다. 그런데 이 그래프를 보면 생산요소의 투입량이 증가함에 따라 그 요소의 한계생산물이 줄어드는 현상인 한계생산물 체감현상(diminishing marginal product)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N. Gregory Mankiw, 김경환 김종석 (편), 교보문고 2003, p.302 이는 생산요소를 투입을 해서 얻는 이익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어떠한 공장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곳에 인력을 투입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투입량에 대비해서 생산량이 늘어나겠지만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공장의 기계가 모자라는 등의 여러 이유로 투입량 만큼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발전 초기단계에는 양적 변화가 주도하지만 성숙단계로 진입할수록 질적 변화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장현준, 「한국경제론」,이화여대 2003-2 기업경제개론 수업자료 질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기술진보 및 제방 제도 여건의 개선 등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 중 기술진보를 위하여 우리나라에 훌륭한 이공계 인력이 필요한 것이다.(2) 질적 발전의 성과의 예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 중 하나를 꼽는다면 삼성 일 것이다. 삼성은 1983년 12월 1일 삼성전자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사업에 나섰다. D램이 다른 반도체 분야에 비해 기술 격차가 적고 설계보다 공정 기술이 중요하다는 점도 후발 주자로서 유리한 점이었다. 이후 삼성은 잇따라 세계 최초 D램 제품을 내놓으면서 오늘날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자신문」, 2003.12.1 이렇듯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의 기술자원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출중한 이공계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4.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 방안논의사회 전반에 이공계기피현상에 관해 위기의식이 일어남에 따라 갖가지 방안이 논의 되고 있다.1) 선진국의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방안(1) 독일의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방안독일 또한 이공계 기피 현상을 겪은 나라이다. 독일의 '대화하는 과학재단' 부이사장 에커하르트 빈터는 "이공계 기피, 과학대중화로 뚫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대화하는 과학 재단'은독일무역 및 산업협의체인 스티프테르페르 반트가 '대화하는 과학' 프로그램을 위해1999년 만든 단체로 과학과 대중의 간격을 좁히는 다양한 과학페스티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독일은 내년을 기술의 해로 장했고 2005년은 아인슈타인의 해로 정할 것이며, 또한 과학에 무관심한 층에게는 영화를 이용한 페스티벌을 벌이는 등 계층마다 특색에 맞춰 접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화하는 과학'을 운영하면서 2000년을 '물리의 해'로 정해 집중적인 이벤트를 펼친 결과 지금은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 수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많은 과학 잡지들을 인터넷에 정보를 공개하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중앙일보」 2003.11.20 박방주, 심재우 기자(2) 미국의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방안미국 미시간공대의 한국 교수인 조벽(趙璧 46 미국명 Beck Cho)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처럼 의 치대가 전문대학원으로 바뀌면 생물 생명과학 관련 학과 등 자연계의 인기가 회복될 것 이라며 공대도 배출되는 엔지니어 개에서만 공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수정예의 고급 공학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선 대학원 중심대학을 집중 육성하고 공학 박사학위 소지자의 취업 기회를 확대시키는 정책을 펴야 한다 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2.3.282) 이공계기피현상 해결을 위한 제도적 개선(1) 학교차원의 노력㈜만도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이공계 출신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의 90%가 입사후 기업의 재교육 필요성에 공감했고 71%가 전공지식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답했다고 오상수 ㈜만도사장은 소개했다. 「파이낸셜 뉴스」 2003. 11. 24 학교로서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 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제시되는 것이 '공학교육 인증제'의 도입이다.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수준이나 내용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므로 인증 평가단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82%는 대학교육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오사장은 전했다.또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인증교육을 받은 학생을 먼저 취업시키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포항공대의 경우 대학원 진학 등의 이유를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100% 취업이 될 뿐 아니라 기업들이 이들을 모셔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고 하니 이는 실력을 갖춘 인력이 얼마나 대접을 받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스위스 리하르트 에른스트 교수는 "이공계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편협한 공부만 시킬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접 학문도 가르쳐 관련 산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한다"며 그 해법을 제시했다. 「매일경제」 2003.11.20 장욱 김인수기자(2) 정부 및 기업 차원의 노력이공계 출신자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장이 필요하다. 이공계 공부를 제대로 마친 사람은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런 공부를 한 이공계 출신자들에게 연봉을 많이 주고 행정부 고위직이나 기업체 CEO등에 많이 등용해야 한다. 미국 휴렛팩커드사는 2차 대전 후 군(軍) 이공계 인력이 많이 남아돌 때다.
사상체질과 리더쉽으로 살펴본 한 미 일 외교정책1. 서론종래의 현실주의 외교정책론은 국제정치의 행위자를 국가로만 한정하고 국가는 더 이상 해부될 수 없는 국제정치의 기본 원자라고 가정하였다. 따라서 국가라는 암상자(black box) 속에 있는 개인은 연구범위에서 제외되었다. 물론 국가는 개인의 집합체로서 궁극적으로 개인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국가이성 이라는 것이 가정되었지만, 이것은 구체적인 인간성으로부터 도출된 개념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보편적 인간성인 이성을 국가에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자유주의학파(liberalism) 외교정책론은 국제정치의 행위자로서 개인변수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개인변수는 그를 통해 예측 가능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설정이라기보다도, 교란변수 로서 고려되었다. 즉 개인변수는 예외적인 결과 를 설명하기 위해 사후적이고 보완적인 차원에서 고려되었다. 개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개인의 천성, 기질 차이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는 정치학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차라리 심리학의 과제라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개인 차원의 변수를 고려하는 때라도 논의의 틀은 심리학의 것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정치이론에 개인을 분석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연구 틀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어느 학파든지 개인의 천성은 변화무상하여 감히 체계 지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신현실주의를 제창한 K.Waltz는 인간을 아예 학문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국제관계의 운용패턴을 거시적 구조(structure)자체의 속성에서 유추함으로서 개인요인이 학문에 침투하는 통로를 원천 봉쇄하였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론의 완결성을 위한 하나의 전제일 뿐이다. 즉 학문적 부존재일 뿐 인간의 천성이 현실 국제관계에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본 연구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성에 근간한 서양학문의 태생적 한계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가정 상에서 전개된 기존의 서구중심 외교정책논의들의 한계점을 살펴본다. 나아가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고 통치 스타일인 경쟁형의 특징은 참모들의 경쟁적이고 공개적인 의견제시 에 잇다. 백가쟁명식 활발한 건의를 대통령이 권장하여 최선의 정책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 모형에서 조직의 질서는 무의미하여 관할범위가 무시되는 것이 예사이고 다차원의 채널이 생성되기도 한다.(b) 정석 모델(The Formalistic Model, 트루먼 형): 정책 결정 과정이 위계질서에 따라 질서 정연히 정석대로 움직이는 것이 이 모형의 특징이다. 다양한 견해와 판단을 추구하지만 공개 토론이나 타협은 금지된다.(c) 협동형(The Collegial Model, 케네디 형): 팀워크를 강조하는 정책결정구조이다. 체계 내의 다양성과 경쟁으로부터 생기는 득을 취하되 장관이나 보좌관이 각자의 입장에 빠지지 않고 대통령의 입장에 서게 하려는 데 역점을 둔다. 그룹의 협동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모델이다.그러나 이 접근은 대통령의 개성을 분석하는데에 연구의 많은 부분을 할당하지만, 근본적으로 외교정책은 대통령인 아닌 조직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 즉 대통령의 스타일과 외교정책의 특색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스타일은 그에 걸맞는 외교전략팀의 조직유형 을 결정하고 외교정책은 그러한 조직적 특성의 결과물인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즉 위 모델은 어떤 조직이 보다 효율적인가? 를 묻고 있지 어떤 조직이 어떤 정책을 산출하는가? 라는 물음은 도외시한다. 즉 대통령의 개성, 스타일은 그의 대외정책결정 조직의 형태를 결정할 뿐, 내용적으로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조직이 될 것인가 하는 사실에는 무관심하다. 즉 대통령 정책결정과정 모델들은 조직유형을 분류하여 말그대로 정책결정 과정 을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지, 개인의 인성과 외교정책내용의 인과성 규명에는 관심이 없다.또한 대통령 정책결정과정 모델은 대통령의 스타일과 개성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유형 모델을 세분화하면 혼란에 빠지고, 반대로 너무 단순화하면 그 같은 스타일과 개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책결정과정의 심층분석이 어려워인 교우에 뛰어나고 말이 분명하다. 천시 에 밝은 태양인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시를 연결시키는 역사의식 속에서 산다.{) 황태연 2003, p90태양인은 공적 교제에 능하나 당여 를 경솔히 하는 까닭에 친숙한 당여인의 함정에 빠진다. 따라서 태양인은 당여에 제일 강한 소음인과 잘 화합하나 당여인의 모함이나 사기를 알아챈 후에 생기는 지나치게 노여워하여 해롭게 된다.{) 황태연 2003, p95소양인은 사상인 가운데 가장 변함없이 약자에 대한 잔잔한 의협심과 정의감을 표출하는 체질이다. 소양인은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협객 또는 열사의 성정을 지녔다. 소양인은 타인의 슬기와 어리석음을 잘 분간해 내고 상냥하며 바깥 사무 에 탁월하다. 소양인은 미래지향적이므로 과거를 현재화하고 현재를 미래화하는 혁신주의자 타입이다.{) 황태연 2003, p91소양인은 사무에 능하나 거처 에는 취약하다. 따라서 거처 만들기에 유능한 태음인과 잘 화합한다. 하지만 거처를 마련해주는 자의 기만으로 인해 거처를 잃거나 불안정해지면 지나치게 슬퍼하여 해롭다.{) 황태연 2003, pp96-97태음인은 인륜적 행위에 능하고 사려가 깊다. 거처 를 마련하는 데에 높은 관심과 탁월한 능력이 있고 시간적으로 늘 현재에 산다. 태음인은 역사적 사명감이나 종교적, 신비적 성향이 거의 없는 천성적 현세주의자, 보수주의자 타입이다. 높고 고결한 성정을 지녔으며 타인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잘 분간한다. 태음인은 겁이 많고 사무 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에 능한 소양인과 화합한다. 그러나 소양인의 사무능력에 너무 의탁하여 지나치게 즐거워하면으로 인해 해롭게 된다.{) 황태연 2003, p98소음인은 지방적 특수성을 중시하고 당여를 잘 관리하여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생활주의자이다. 시간적으로 소음인은 개인사와 얽힌 어린 시절 또는 젊은 시절의 당여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를 찾아 복원하거나 과거의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추억으로 삼아 살아가고 따라서 시간적으로 과거에 산다. 소음인은강함강함없음(권위적, 점잖음)(공석에서) 없음(사석에서) 있음(4) 사상체질과 국민성한스 모겐소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국민성과 국력, 국민의 사기 및 외교정책간의 상관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성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모겐소 교수는 국민성을 판별하는 기준을 인간의 체질적 특성이 아닌 문화유형 의 범주에서 찾고 있다.{) Morgenthau, 1948, pp173-185이제마의 사상체질론은 후천적으로 변하지 않는 천성을 논하는 이론이다. 사상체질의 유전법칙을 탐구한 연구실적은 아직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체질을 관찰해보면 사상체질도 윗 세대에서 아랫 세대로 그대로 유전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성 은 이제마의 사상체질론에 의해 더욱 정밀하게 분석될 수 있다.세계각국의 국민에 대해 사상체질론을 대입해 보면, 국민성은 여러 체질이 섞인 경우도 있고 단일 체질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 중국, 인도, 영국, 러시아는 두 가지 이상의 체질이 비등하게 혼성된 국민성을 보여주는 한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소양인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소양인의 나라 이고, 독일과 일본은 소음인이 수적으로 지배하는 소음인의 나라 이다. 사상체질론은 각국의 국민성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각국의 역사 흐름과 문화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고 또 각국의 정치적 리더십과 지배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설명한다.{) 황태연 2003, pp274-2755. 한국 외교정책의 사상체질적 접근(1) 소음인 노무현 대통령황태연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을 소음인으로 분류하고 있다.노무현은 부끄러움을 잘 타는 내성적인 성격에 시비지심이 강해 비판에 능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 풍자와 반어(비꼬기)를 좋아한다. 강인하고 초지일관하는 성정을 지녔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낭만적 과거지향의 정치인이자, 자기만의 논리적 순수성에 집착하여 정치색깔을 세밀히 가르는 정치인이다. 고집은 고래심줄 고집 이다. 그에게는 미래비전보다 과거청산이나 으로 파급되는 효과를 낳았다. 즉 뜨거운 민족애를 지닌 노무현의 집권은 국내 반미세력에게 앞으로 한국외교가 미국에 대해 공격적으로 전개되리라는 막연한 기대심리를 낳았다. 결국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당여와 교우를 혼동{) 터키는 형제의 나라 와 같이 공적관계를 사적관계로 치환하여 파악하려는 심리는 소음인의 주요한 기질이다.케 하고 공적관계인 한미동맹이 흔들리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과적으로 2사단의 이남 배치, 주한 미군 축소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물론 미국이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세계전략의 일환이지만, 남한 내 반미감정의 고양은 미국에게 좋은 구실, 시점을 제공해 주었다. 또 미군 철수가 본격화될 때에도 한 입으로 두 말할 수 없는 자가당착의 상황에 빠져 미군에게 협의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말았다.2) 대미 외교국민성을 토대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국인들 중 소음인들은 한미동맹의 근거를 과거지향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즉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한국을 지원했기 때문에 오랜 우방 으로서 과거의 인연과 50년 이라는 유구한 동맹의 역사에 기초하여 동맹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미 있던 것이므로 앞으로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태음인들은 천성적인 현실주의자{) political realism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인만큼 현재의 북한의 현존 위협 등 현재적 이유를 한미동맹의 목적으로 본다.그러나 소양인이 다수인 미국인들은 한미동맹을 미래적 관점에서 평가한다. 즉 미국은 소련 이후의 잠재적 도전세력으로서 중국을 상정하고 이러한 미래적 관점에서 종래의 대소방역선으로서의 한미동맹을 재검토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비한 새로운 동맹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4개년 국방보고서인 2002년 QDR에 의하면 미국은 해외주둔미군을 신속대응군으로 개조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전격 단행하고 있다. 주한미군도 한반도를 넘어서 중국 및 기타 역내 테러 활동에 적시에 대처할 것을 목적으로 재편 중에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의 .
Ⅰ. 서론오타쿠는 일반적으로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으로 간주되었다. 흔히 집단에서 배제된 채 골방에 쳐 박혀서 만화나 게임에 골몰하는 자들을 오타쿠라고 부르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서 nerds{) nerds 는 멋도 매력도 사회성도 없고, 오로지 지적이거나 아카데믹한 일, 특히 컴퓨터에만 노예처럼 전념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에티엔 바랄, 오타쿠: 가상세계의 아이들, 문학과 지성사, 2002, p30라고 부르는 집단을 의미할 뿐 오타쿠의 본 모습과 다르다. 이런 세간의 일반적인 오해로 그간 오타쿠는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될 것 같은 사회적 타부(taboo) 취급을 받았다.몇몇 서구 학자들이 오타쿠에 호기심을 느끼고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타쿠가 아닌 것을 오타쿠로 오인하여 연구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타쿠를 단지 현대 대중문화의 병폐로만 이해하려는 아집에 무의식 중에 지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일본적 현상인 오타쿠를 설명하기 위해서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에 주목하기도 했다. 그들에 따르면 오타쿠는 집단에서 배제된 외로운 아웃사이더들의 문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주의 외에 다른 일본문화와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부재했고, 결국 오타쿠의 시원적 일본적 뿌리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오타쿠를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보는 접근법의 가장 큰 실수는 문화적 배경을 간과한 점이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기에 오타쿠는 이해될 수 없었고 따라서 비정상적인 문화로 간주되었다.본고는 오타쿠의 일본 문화적 뿌리를 규명한다. 오타쿠는 현대사회의 파생물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속에서 자생한 전통문화의 소산이다.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오타쿠에 대한 일반적 오해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Ⅱ. 問題提起: 오타쿠 에 대한 기존의 인식오타쿠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살펴보면, 게임, 영화에 미친 사람들 , 나이 값도 못하는 유치한 어른들 등 매우 경멸적이고 부정적이다. 1989년 일본 고베에서 발생한 유아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취재하던 매스컴이 범인 일본의 문화에 대한 통찰에서 얻은 지혜로 현상을 설명한 반면, 후자는 일본적 현상을 서구식 잣대로 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에티엔 바랄은 오타쿠를 현대문명의 병리 로서 해석하려고 했고, 이러한 전제에 대한 무의식적인 집착이 사실을 곡해한 것이다.우선 에티엔 바랄이 정리한 오타쿠의 특성들을 살펴보자. 각각의 명제들이 진실과 거리가 먼 것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이 오타쿠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를 집약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별 명제들에 대한 반박은 다음 장에서 제기될 것이다.1 오타쿠는 왕따 이다.에티엔 바랄에 의하면 오타쿠는 대인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어 혼자 지내는 사람이다. 바랄의 설명을 보자.기리토시 리사쿠는 이지메를 당하면서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였다. 오타쿠가 되는 것은 기리토시처럼 일본 사회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수백만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선택이다.{) 에티엔 바랄, 같은 책, p12오타쿠들은 인간관계를 발전시키기 싫어하며 자기의 정열을 충족시켜주는 것들로 가득 찬 방에 칩거해 있기를 더 좋아한다.{) 에티엔 바랄, 같은 책, p31바랄은 お宅 를 문자 그대로 집안에만 쳐 박혀 사는 사람들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서 이지메 등에 기인한 집단에서의 퇴출을 들고 있다. 바랄은 농경사회에서는 개인이 집단을 떠나 혼자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나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이것이 가능해졌고, 또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오락문화가 등장함으로 오타쿠라는 새로운 집단이 도래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에티엔 바랄, 같은 책, p422 오타쿠는 아웃사이더로서 현실을 도외시한다.앞서 오타쿠는 사회에서 배제당한 아웃사이더라고 설명했다. 오타쿠를 이처럼 사회에서 도태당한 자로 규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타쿠가 사회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타쿠는 그들만의 세계인 언더그라운드 에서만 은밀히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한 마디로 오타쿠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필요 없고 된다. 다음 장부터 위의 3가지 명제들이 지닌 오류를 구체적으로 논증해 본다.Ⅲ. 오타쿠의 연원: 오타쿠는 왕따이다?앞서 오타쿠는 왕따 라는 첫 번째 명제는 오타쿠의 연원을 고찰할 때 잘못된 것이다. お宅 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your house 이지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한 호칭 이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 우리말로 표현하면 댁 정도의 뉘앙스를 갖는다. 일본의 SF 영화 팬들은 정보교환을 위해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할 필요가 많았는데 그들 사이에 가벼운 경칭으로서 오타쿠 가 선호되었던 것이다.{) 오카다 토시오, 같은 책, p10즉 오타쿠 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내용(house) 으로서가 아니라 파생적 의미인 호칭 으로서 사용된 것이다. 7,80년대 일본의 SF 영화 동호인들이 서로를 오타쿠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런 호칭이 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채택되고 유행한 것이 오늘날 오타쿠란 단어의 진정한 어원이다.오타쿠가 호칭 에서 연유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교류하고 있었다는 점을 반증한다. 실증조사에 따르더라도 오타쿠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이성 친구 수가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및 20대의 경우 일반인이 평균 2.8명인데 반해 오타쿠는 6.9명으로 2배 이상이었다. 또 남녀를 불문하고 친구의 수도 월등히 많아 무척 사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카다 토시오, 같은 책, p45요컨대 오타쿠는 방안에 쳐박힌 사람 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오타쿠가 호칭이라는 점은 오타쿠는 언제나 복수 로 존재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오타쿠는 가족,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를 넘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광범위하게 전문지식을 교류해 왔으며,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낯선 사람들에게라도 적극적으로 접촉하는 저돌적이고 사교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물론 오타쿠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서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자신들의 작업에 골몰해 있기 때문이지 사회가 두렵거나 대인관계에서 상처 받았던 쓰디쓴 기억 때문한 오카다 토시오는 오타쿠들이 이런 정보분석능력 과 문화창조능력 에 힘입어 다가오는 멀티미디어 시대를 주도하는 계층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오늘날과 같은 고도 정보화 사회에서는 과잉정보로 인해 도리어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소위 정보범람의 문제이다. 이런 고도 정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은 정보의 생산이 아니라 정보의 가치를 정해줄 수 있는 비평이다. 가령, 어떤 영화가 재미있다. , 당신에게는 이 정보가 적당해 보인다. 라는 식으로 정보를 코디네이션 해줄 사람, 방대한 정보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가치관, 시간 보내는 방법, 장르를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카다는 오타쿠들을 선견지명적 선도자 그룹으로 보고 있다.정보사회에 있어서는 소프트웨어 자체의 가치를 판별하고 비평하는 사람이 멀티미디어 시대의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이런 코디네이션 능력을 가지고 문화를 선도해 가는 이들이 바로 오타쿠 이다.{) 오카다 토시오, 같은 책, pp50-51Ⅴ. 오타쿠를 낳은 일본문화의 이해: 오타쿠는 정신연령이 낮은 인간이다?마지막으로 오타쿠는 정신연령이 낮은 인간이다. 라는 명제를 비판하고자 한다. 이는 오타쿠들이 만화를 보고 프라모델을 가지고 노는 것을 문화적으로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이 명제의 오류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문화의 성찰로 얻어진 지혜 속에서 오타쿠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앞서 바랄은 산업 사회라는 물적 기초가 오타쿠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즉 그에 의하면 오타쿠는 농경 사회였던 과거 일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타쿠는 현대 산업 사회의 산물일 뿐이다. 집단 밖의 삶이 불가능했던 과거 농경사회였더라면 도태되고 멸종되었을 이단아들이 현대문명의 요람 속에서 생명을 부지한 결과 오타쿠라는 집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면 왜 하필 일본에서 오타쿠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에 널리 유포되기 시작했다.우선 서양에서 유래한 어린이라는 관념의 특징을 살펴보자. 서양에서는 어린이와 어른을 철저히 구분한다. 서양의 주류문화 소위 메인컬쳐는 이런 이분법에 기초했으며 이는 아이들을 제대로 된 어른으로 교육하는 문화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독교 사상에 입각해 볼 때 감정 그대로 움직이는 아이들은 악하고 카오스에 있는 상태로 보였다. 즉 이들은 교화되고 분별력있는 성인들로 교육될 필요성이 있는 존재였다. 아이들에게 예절을 엄히 가르치는 것도 아이들의 행동은 악 이라는 메인 컬쳐적 가치관에 근거한다.{) 오카다 토시오, 같은 책, p264그래서 서양문화는 어린이 문화와 어른 문화로 구분되고 이런 이분법적 도식은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전자는 서브 컬쳐(비주류문화, 하층문화), 후자는 메인 컬쳐(주류문화, 귀족문화)가 된다. 따라서 서양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의 것=저급하고 나쁜 것 이라는 도식을 안고 살아간다. 앞서 에티엔 바랄이 오타쿠들이 만화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연령이 낮은 자들로 매도한 것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만화, 프라모델 등을 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어른들은 성장과정에서 아이들의 문화 로부터 탈피할 것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유아성을 벗어나지 못한 어른은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비판받는 것이다.그런데 일본 문화에서 아이들은 나쁜 존재가 아니다. 일본에서 아이들은 미완성의 존재가 아니라 순수하고 근원적인 인간상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억지로 교화하거나 교육하지 않는다. 루스 베네딕트 역시 이런 일본적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미국에서는 유아에게는 엄한 훈련을 하지만 어린애의 성장에 따라 차츰 완화되어 성인이 되면 거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일본인의 양육법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의 생활곡선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애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와 관대함이 허락되고 결혼 전후 시기의 청년에게 사회적 구속이 가장 심하다. (중략) 유년기는 자유로운 영역 이다.루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