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불변의 5가지 법칙 1. 선도자의 법칙 (The Law of Leadership) - 더 좋은 것보다는 맨 처음이 낫다.JEJU AIR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전 “저가항공의 미래전략과 리더로서의 마케팅 실행 전략”미래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사업과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여 국가와 국민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겠습니다. - 대표이사 주상길 인사말 중 -IntroductionCONTENSMarket Analysis Customer Analysis IMC Strategy Targeting IMC promotemarket analysisIMC strategycostumer analysistargeting2. 영역의 법칙 (The Law of Category) 어느 영역에 최초로 들어간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최초로 뛰어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라.기존 FSC와 차별화된 대중을 위한 항공서비스, 저가항공!항공서비스의 대중화! 새로운 영역이 열리다![그림1] 저가항공의 등장 배경저가항공의 탄생규제완화 Open sky항공수요 증가공급의 다각화 요구 증대▶ 특정계층만이 아닌 대중을 위한 항공시장이 열린다. 소비자의 Needs를 바탕으로 한 저가항공사의 등장. - 독점적인 항공 시장에 대중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저가항공(LCC)은 기존항공(FSC)과 다른 새로운 수단이다. 저가항공은 그 특징, 목적, 발생 배경 등이 다르다. 항공기를 이용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FSC와 LCC는 전혀 다른 수단이다.Market analysis[그림2] FSC 와 LCC의 비교 분석국내 저가항공의 선두주자 제주항공▶ 국내 제3항공사로의 도약을 꿈꾸는 제주항공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여 항공의 대중화를 추구한다. 국내 저가 항공 시장의 대표 주자로 제3항공사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제주항공Check1 저렴한 가격Check2 항공 서비스의 대중화Check3 틈새 시장 노선 개발▶ FSC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항공사 FSC의 70% 수준의 저렴한 가격 (KTX와 비슷한 요금 장에 먼저 들어가는 것보다 기억 속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국내에선 왜 항공 대중화가 나타나지 않는가?Costumer Analysis소비자는 항공 대중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국내 소비자가 항공 대중화의 등장에 무반응인 이유를 찾아라!기존 항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고 있다?소비자는 항공 대중화가 실현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가능성 1가능성 2가능성 3소비자는 항공의 대중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Costumer AnalysisKTX 초기 소비자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KTX 승객수 예상 46% 불과… 차량구입 1조5천억 과잉투자 국민일보 04.10.14▶ KTX 역시 초기 지속적인 적자가 발생했다. KTX는 개통 후 평균승객은 7만1000명으로 당초 예상인원의 47%에 불과했다. 또한 하루 운송수입은 20억9000만원으로 목표치의 46% 에 그쳤다.▶ 가격이 변수가 아니었다. 익숙하지 못할 뿐 할인기간 중 KTX 평균탑승률은 61.9%로 할인 이전 탑승률 60.0%에 비해 1.9%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같은 기간 무궁화호 탑승객은 268만 5284명으로 탑승률이 217.5%에 달했다. .▶ 안전성 논란 제기 KTX는 개통 이후 5개월간 146건의 장애 및 사 고가 발생했다. 특히 고속철도의 두뇌격인 주운 행컴퓨터가 다운돼 광명역으로 진입하던 열차 가 역주행하는 아찔한 사고도 발생했다.장거리 수송수단의 왕자로 변신한 KTX!Costumer Analysis소비자에게 필요성을 인식시켜 KTX를 뛰어 넘자!“상반기 KTX 이용객 전년동기대비 4.6% 증가” 연합뉴스 07.7.27“KTX 장거리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나?” EBN산업 뉴스 07.7.27“KTX 年 수입 올해 1兆원 돌파 무난할 듯” 서울경제 07.7.27고속철도 이용객 4천만명 돌파, 지속적 증가 추세“ 연합뉴스 05.8.30“KTX '샴페인' … 지방공항은 '울상' 김포~대구항로 1년새 이용객 71%나 줄어” 서울경제 06.1.25▶ 현재 소비자는 KTX를 필요로 한다. 소비.FGI를 통한 제주항공의 브랜드 이미지 진단Customer analysis기존 FSC 대비 안전하지 못하다.특별한 목적, 느낌을 위한 특별한 교통수단[그림1] 제주항공의 소비자 지각도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식되는 장거리 이동 수단인 KTX등과는 다른 개념으로 인식된다.제주항공이 FSC의 연장인 접근성이 어려운 교통수단이 아닌 대중교통 수단으로서의 특징을 이미 갖춘 新대중교통 수단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제주항공은 기존 FSC와 차별화된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변화의 중심이다.FGI를 통한 제주항공의 브랜드 이미지 진단Customer analysis제주도 여행만을 위한 제주항공KTX보다 비싼 제주항공[그림1] 제주항공의 소비자 지각도저렴한 가격접근성대중교통 수단제주항공저렴한 가격접근성대중교통 수단제주항공FSC기존의 제주항공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미래전략이다.FGI를 통한 제주항공의 브랜드 이미지 진단Customer analysisKTX 보다 비싼최고급 대중교통 수단으로 저렴한제주도 여행만을 위한일반 대중교통이 갈 수 없는 곳 까지 어디나기존 FSC보다 안전성이 떨어지는대중교통 수단 중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는특별한 목적, 느낌을 위한 특별한 수단생활 속에서 이용 할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의 대중 교통수단[그림1] 이상적인 제주항공의 소비자 지각도market analysisIMC strategycostumer analysistargeting4. 집중의 법칙 (The Law of Focus)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개념은 잠재 고객의 기억 속에 한 단어를 심는 것이다.소비자는 기존 FSC와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IMC strategy강력한 브랜드 Story로 History를 뛰어넘어 소비자 인식의 전환을 꾀하라!그의 잊지 못할 첫사랑을 이제는 잊게 만들어 주자!그가 첫사랑을 잊도록 예상을 뛰어 넘는 새로운 Story를 시작한다.소비자는 Mp3의 시작을 아이리버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삼성 Yepp 이었다. 소비자는 인터넷 서비스의 시작을 메가패스]소비자 성향 파악 : 위트와 InteractionTarget analysis위트있는 커뮤니케이션은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위트가 있는 광고물은 소비자에 의해 컨텐츠가 확대재생산 - 젊은이들의 삶의 문화 코드적인 브랜드로서 정착 - 개개인의 사용경험이 다양한 방법으로 피드백 됨.위트는 읽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을 생각의 소통과정에 들어오게 함으로써 참여를 이끌어낸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는 적극적인 마음과 생각하는 두뇌를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출처: A smile in the mind (Beryl McAlhone, David Stuart)] 20대는 츄리닝등의 반전 만화의 주 소비층, 끊임없는 패러디물의 주 생산자 = 반전과 위트에 익숙한 세대,소비자 성향 파악 : 상상예찬Target analysis2030세대는 상상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2030세대의 상상을 예찬한다. - 그들은 상상의 실현을 누구보다 원하며 적극적이다.상상력은 모든 것에 활기를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며 인격마저 부여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2030세대에게 상상은 그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분출구가 되고 있다. UCC열풍은 이러한 2030세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생산의 주체가 상상력을 바탕으로 원하는 제품을 직접 만든다. 즉 이들은 창조적인 소비자이다. (2006 서울 2033트랜드 키워드 9 / LGAD)소비자는?기존의 관념을 깨며 위트를 가진 상상의 실현을 원한다.제주항공의 컨셉은?기존 FSC와 차별화된 생활 속 대중교통 수단지금 시장 상황은?세계적인 저가항공사의 항공 대중화 물결Concept생활 속 대중교통Brand EssenceCommunication Concept상상의 실현 Flying BusConceptFlying+Bus?상상의 실현?우리는 항상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한다. 상상의 힘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항공과 대중교통의 대표적 이미지의 결합1단계 Promotion 상상의 날개2단계 Promotion 상상의 실현3단계 Promotio알겠습니다. 1시간 뒤에 거기서 뵙겠습니다.동료) 1시간 뒤라며 서둘러야 하는 것 아니야?남자) 왜? 아직 시간 많이 있는데..남자) 그럼요 제주항공을 이용 한걸요ATL #2Tip 소비자 흥미와 확대 재생산 유도를 위해 반전의 위트를 사용하여 생활 속에서 제주항공의 대중적 이용 가능성을 소비자에게 어필한다.상상의 실현 – 비즈니스 편①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대학생들② 신나게 공항에 들어서는 대학생들.③ 이국적 풍경의 목적지에 도착해서 신나게 놀고 있는 대학생들.④ 여행지에서 찍었던 폴라 로이드 사진이 줌임 된다. (사진에 적혀있는 글 2007년 여름 부산에서.)학생들) 역시 사진 그대로 배경 쥑이내.Na) 상상이 현실이 된다.⑤ 대한항공 로고와 슬로건학생들) 아 외국 보다 한국이 훨씬 좋다!AudioVideo경쾌한 BGMSE) 공항에서 기타 소음.남자) 출발 준비는 다된거지?ATL #3상상의 실현 – 여행 편Tip 지속적으로 시리즈를 개발, 노출 하여 소비자에게 생활 속 대중교통 수단인 제주항공이란 이미지를 형성한다.BTL #2교통카드는 교통 수단을 위한 것이다!죄송합니다!아직 환승 할인은 되지 않습니다!상상의 실현 Flying Bus상상의 실현 Flying Bus이제는 교통카드로 제주항공 이용하고 할인받자!*본 행사는 선불 교통카드를 이용하실 경우 할인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고객 여러분 누구나 편리하게 제주항공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인쇄광고상상의 실현 – 교통카드 Promotion 인쇄광고Tip 위트를 발휘한 인쇄광고를 버스와 지하철에서 실시한다. 소비자는 본 Promotion 광고를 통해 제주항공을 더욱 친근하게 인식하고 높은 관심을 유발시킬 것이다.BTL #2Main concept: 제주항공을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단.실행 방안: 교통카드(후불제)를 이용 발권을 하는 고객에 대하여 할인 및 이벤트 참여 자격을 부여한다.대중 교통수단의 상징인 교통카드를 이용한 프로모션으로 소비자는 한층 제주항공을 대중교통
※ 과제는 ‘나’ 형식, 즉 14주차 수업 중 1 주차 수업을 선택하여 강의안에 대한 내용을 논문 형식으로 다시 재정리하는 과제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주제는 12주차 아웃소싱입니다. 제가 저번 학기에 논문 관련 수업을 들어서 이번 논문 과제 역시 기본적인 논문 절차에 따라 작성했습니다. 일단 국문 초록과 서론, 결론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이나 기타 자료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본론에서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기존의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나름대로 정리하고 수정해서 제 보고서에 맞게 작성했습니다. 이번 정보기술과 경영혁신 마지막 과제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운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보고서 논문경영혁신전략으로서의 아웃소싱에 관한 연구-전통적 의미와 정보시스템 차원 중점으로-지도교수 김민철경희대학교국제경영학과(제주대학교 계절학기)02008F2405이동헌2009년 01월 14일목차1. 국문 초록2. 서 론3. 본 론4. 결 론5. 참고 자료1. 국문 초록급격한 변화의 시대인 정보화 사회와 함께 기업들의 경쟁 환경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지속가능 경영을 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보기술의 활용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술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기업들은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 나가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어떤 경영혁신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 즉, 정보기술 활용을 통한 경영혁신이라는 2가지 토끼를 다 가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본 소논문은 이러한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아웃소싱(Outsourcing)’을 제시하고 있다. 즉,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업은 핵심 사업에 주력하고 핵심역량을 개발하면서, 기타 사업부문이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외부 업체에 맡기는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다. 또한 빠르게 변하는 정보기술과 정보시스템을 활용하고 구축하기 위해서 자사의 능력과 여건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 외부의 전문 정보 관련 업체에 이러한 업무들을 아웃소싱 하렇지만 경제 상황이나 정보 관련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정보를 찾아 이를 활용하는 정보 기술을 구현하는 것은 기업 차원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글로벌화에 따라 국가 간 국경의 의미는 약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전 세계적인 경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국제 시장에 진출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그에 따라 더욱 더 치열한 세계적인 경쟁이 펼쳐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다양해지고 있으며,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인 생산 방식인 소품종 대량 생산은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으며, 그에 따라 기업들은 다품종 소량 생산에서 다품종 대량 생산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한정된 자원으로 자사의 활동을 모두 내부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차별화된 핵심 역량을 더욱 키워야 할 때이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급격한 경제 환경 변화와 치열한 경쟁 환경이 기업들에게 혁신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즉,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과 번영을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거기에 자사의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핵심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아웃소싱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선행 연구로는 정보시스템 아웃소싱 전략들 간의 적합성을 통한 아웃소싱의 성공: 실증적 검증 (이재남, 2007.), 정보시스템의 아웃소싱 성과에 대한 조절요인(한영춘, 2003.) 등 이미 아웃소싱 관련 연구들, 특히 정보시스템과 관련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 중에 있으며, 이에 본 소논문은 기본적인 아웃소싱에 대한 설명과 정보화에 따른 아웃소싱 위주로 기술하였다.본 소논문은 아웃소싱에 대한 정확한 실험과 결과에 대한 사례 위주가 아니라 필자가 학기 중에 수강했던 '경영정보 시스템', ‘전략 경영론’, ‘정보기술과 경영혁신’ 등의 강의에서 학습한 지식과 평소 경영정보 측면에 대한 필자의 생각과 고찰 위주로 기술하였다. 어느 정도의 한계점을 가질 수 있겠으나 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기업을 성장시키는 경영기법이라 정의할 수 있다.흔히 아웃소싱과 유사하게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 용어들이 있는데 이는 아웃소싱이 외부조달 또는 외부위탁 등의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 보면 유사용어들 모두 아웃소싱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다음 표는 이러한 유사용어들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하 청도급으로 일을 맡는 것을 말한다. 업무의 일부, 즉 부품이나 기능, 부문등을 외부기업에 위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업무대행업무수탁자가 위탁자의 이름으로 업무의 운영만을 맡는 개념이다.업무대행기간 동안 이익금에 대한 배분이 이루어진다.외 주외주발주 또는 외부주문의 뜻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것을 말한다.컨 설 팅업무기획, 진단, 설계, 지도, 상담 등을 하여 경영을 개선시켜주는 것으로실제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웃소싱과 유사한 용어들의 차이점을 보면 조금씩 개념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목적과 효과 측면에서 보면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웃소싱 개념을 광의로 본다면 모두가 아웃소싱의 한 방법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수, 21세기형 글로벌 경영전략, 2008, p119~120. 참고 )다음으로 이러한 광의의 아웃소싱 개념이 아닌 정보시스템의 아웃소싱의 개념에 대한 정의이다. 정보화의 아웃소싱이란 정보시스템 기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선택적으로 제 3자에게 이전하거나 정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술자원이나 인적자원에 대해서 해당조직에서 외부로 정보시스템의 책임과 소유권을 이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즉, 경제 상황의 변화와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정보화 분야에서 아웃소싱이 새로운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Apte, 1991. Clark, Zmud, 1991. 세 학자의 정의 내용 참고)정보화 아웃소싱은 토털 아웃소싱과 선택적 아웃소싱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토털 아웃소싱은 기업의 모든 정보 관련 업무를 외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전적으로 검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체개발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그 효과가 신통치 않다면 이는 기업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앞서 기술했지만, 급격한 경제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정보시스템의 유연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속한 대체가 가능한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시스템을 자체개발하는 경우에는 대체가능성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이준식, 정보시스템 아웃소싱 전략, 주간경제 420호. 참고 )( http://blog.naver.com/lanke?Redirect=Log&logNo=30000603720)다음 그래프는 기업들이 정보기술 아웃소싱 추진 동기 및 목적에 대해 나타낸 것이다.정보기술 아웃소싱 추진 동기 및 목적)표에서 보듯이 기업들은 정보기술 아웃소싱에 있어 기업 핵심역량 강화와 급변하는 정보기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필요성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3.3 아웃소싱(Outsourcing)의 기대효과아웃소싱은 기업에게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주력부문 업무 위주로 수행하며, 비효율적인 부문의 업무나 기타사업에 대해서는 외부화하도록 한다. 따라서 아웃소싱으로 인해 기업의 주력부문 업무는 더욱 전문화되고 경쟁회사에 비해 경쟁우위를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음은 기업에게 있어 아웃소싱의 기대효과에 대해 정리한 표이다.경영의 효율화? 유연한 고용 형태 - 유동 인력 보유? 경기변동 대응능력 향상? 리엔지니어링 가속? 업무처리 시간의 단축외부전문성 활용? 업무의 질적 능력 향상? 외부의 중립적 평가 활용? 정보 네트워크의 확대? 고도의 전문기능 강화종합적인 경영전략? 시너지 효과에 의한 부가 가치 창출? 주력업무에 경영자원의 집중? 리스크 분산? 신규사업진출의 신속화? 조직의 슬림화즉, 아웃소싱을 통해 경쟁력 없는 분야는 외부 업체에 맡기고, 기업은 핵심역량을 개발에 주력사업에만 몰두함으로써 기업 경쟁력대한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신중한 절차를 통해 아웃소싱을 진행해야 하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기업에게 있어 비용절감도 중요하지만 가치창출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웃소싱이 비용절감이라는 효과를 기업에게 주지만 기업은 단지 비용절감만을 목적으로 아웃소싱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아웃소싱은 기업에게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자사의 핵심역량을 개발하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김성수, 21세기형 글로벌 경영전략, 2008, p123. 참고 )정보시스템의 아웃소싱 추진 역시 일반적인 아웃소싱의 추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는 경영목표에 맞는 전산 정보 전략을 수립하는 것과 CIO의 역할이 중요하다. 즉 아웃소싱을 할 것인지 내부에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의사결정과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보통 시장 변화가 빠를 때는 아웃소싱이 더 효과적이고, 시장 변화가 느리고 기업 조직이 유연하다면 자사에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점을 포함해 기업의 입장에서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보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산 업무의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 그리고 전산 업무 인력을 개발, 관리하는 CIO의 역할도 중요한 측면이다. 정보시스템을 아웃소싱하기로 결정했으면 다음으로 공급업체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아웃소싱 전문 업체 선정, 평가 시 기업들은 SLA(Service Level Agreement)에 대한 합의를 맺어야 한다. SLA란 아웃소싱 서비스의 수준을 정량적으로 측정, 평가해 미흡한 부분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고 사고발생 시 책임 등을 명확히 규정한 합의서로 서비스 비용과 직결되는 서비스 수준 협약이다. 이러한 SLA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업체와 고객 간의 목표를 공유하고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또한 SLA는 도입보다는 지속적인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이렇게 엄격히 선정된 아웃소싱 공급업체와 SLA의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성공적인 정보시스템의 아웃소싱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되었다.
동 아 일 보'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동아 일보 창간창간 시대 배경1910년부터 1919년까지는 흔히 언론의 암흑기라 부를 정도로 민족 언론이 자취를 감춘 시기였다. 그러나 3.1운동 후 조선 총독부가 이른바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언론의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고 3개의 한국인 민간신문(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의 발행이 허가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동아일보이다.한일합방 이후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바 있는 박영효(朴泳孝, 1910년 합병에 따른 논공행상의 자격으로 후작의 작위와 매국공채 28만원을 받음)를 초기 사장으로 추대하여 1920년 4월 1일에 전지판(全紙版) 4면으로 창간하였다.4월 1일 타블로이드판 석간 4면 체제로 창간발행부수는 1만 부 정도, 구독료는 한 부에 3전(지금의 약 900원)사시(社是, 회사의 경영방침이나 주장)에 해당하는 3대 주지(主旨) 로는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 민주주의, 문화주의최초의 사옥동아 일보 창간제1차 무기정간(1920.09.26~1921.1.10) 사설 '제사문제를 제론하노라'에서 일본이 신성시하는 3종 神器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정간1920년 9월 25일한일 차별반대 지상 캠페인 시작1920년 5월 14일창간호 발행 창간사 '主旨를 宣明하노라'에서 동아일보는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라는 창간정신을 천명. 창간1호는 배대판(倍大版) 8면, 제2호부터는 석 간 4면으로 발행1920년 4월 1일창간 발기인 총회 발기인 대표 김성수, 사장 박영효. 사옥은 서울 화동 138번지(구 중앙학교) 한옥건물로 결정1920년 1월 14일동아 일보 창간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촉'게재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인도의 詩聖 타고르는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조선민중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동아일보에 기고1929년 4평양에서 만세 소요' 를 문제 삼아 발매 반포 금지(發賣頒布禁止)의 행정처분 (1920년 4월 15일)제 1차 무기 정간 처분 (1920.9.26~1921.1.10) 9월 24일 사설 '제사문제를 재론한다' 에서 필자 장덕수가 일본 천왕가의 상징으로 숭상되는 이른바 '삼종신기(三種神器)'를 건드린 것. 혹은 경(鏡)으로, 혹은 주옥(珠玉)으로 혹은 검(歛)으로... 물형을 작하여 신이 자(玆)에 재하며 영(靈)이 자에 재한다 하여 이에 대하여 숭배하며 혹 기도함은 일체 우상숭배라 할지니…….동아 일보의 반일 언론 활동제 2차 무기 정간 처분(1926.03.07~1926.04.20) 3월 5일자 2면에 소련 국제 농민회 본부의 3.1운동 7주년기념축전을 사진과 함께 실어 정간제 3차 무기 정간 처분(930.04.17~1930.09.01) 4월 16일에는 미국 네이션지 주필 빌라즈의 축사를 게제 하여 제 3차 무기 정간 처분 주간 '네이션'이 1865년 창간이래 주장해온 것은 소수민족의 자유와 민중 생활양식의 자유, 그리고 어떠한 군국주의에 대하여도 항의하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따라서 귀지가 추구하는 사업에 대해 우리가 절대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의 현 상황에 동아일보의 사명이 매우 중대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귀지가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은 귀지가 청렴하고 비이기 적이며 공정하고 결백해, 사명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는 결심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귀지가 이러한 정책으로 일관한다면 조선민족과 그 사명을 위해 가장 힘있는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동아 일보의 반일 언론 활동제 4차 무기 정간 처분(1936.08.29~1937.06.02) 손기정 선수의 사진 조작으로 제 4차 무기 정간 처분동아 일보의 또 다른 업적 브나로드 운동브나로드 운동으로 애칭 되었던 청년 학생들의 민중 계몽운동은 민족 독립운동에 있어 민중 계몽을 통한 민족 자강으로 독립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자 한 운동으로서, 언론계와 조선어학회·청년 학생이 '브나로드'로 부르다가 민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이라 하여 제4회에 '계몽운동'으로 개칭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금지로 1935년부터는 계속하지 못하였다.브나로드 운동이란?브나로드 운동의 의의민족지 혹은 친일 대변지?38년부터 40년 폐간 되던 해까지 해마다 1월 1일치 1면 머리에 일왕 부부의 사진과 찬양 기사를 싣다.'대원수 폐하'라고 부르며 정무 군무에 부지런히 힘쓰신다 (1월 1일치 1면)대일본제국의 언론 기관으로서 조선통치의 익찬을 기하려 하오니 ! (40년 1월 1일치 1면 )일제의 '지원병'으로 끌려가 비명에 간 젊은이 이인석의 죽음을 지원병 최초의 꽃, 조선인 지원병의 영예라고 선전했다.(39년 7월 8일치)고향집을 찾아가 죽은 이의 처까지 끌어들여 침략전쟁의 선종도구로 만들었다. (7월 9일치)김 성 수'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생 애1891 - 전라북도 고창 출생 1908 - 군산 금호학교 졸업 1910 - 일본 와세다 대학 입학 1914 - 정경학부 졸업 1915 - 중앙학교 인수 , 경성직뉴주식회사 인수 1920 - 동아일보 창간 1922 - 동아일보 통한 물산장려운동 1923 - 민립대학설립운동 1932 -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교장취임 1938 -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 및 이사로 참석 1939 - 협화회의 재경성유지간담회에 참석,발언 1941 - 흥아 보국단의 결성에 준비위원으로 참여,임전보국단 감사 1945 - 미군정 수석고문에 피선 1946 - 한국민주당 수석 총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회장, 고려대학교 설립 1947 - 신탁통치 반대투쟁위원회 부위원장에 피선 1949 -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1955 - 야당인 민주국민당 고문으로 활약하다가 병사함언 론 활 동-김성수는 일본 유학 이후 민족언론의 중요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 3·1운동 이전에는 일제의 철저한 언론 탄압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다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의 소위 문화정치로 인해 한글 신문 출판이 가능해지자아 창간 이후 처음 동아일보의 판매와 배포를 금지했다. 동아일보는 이후 총독부에 의해 기사삭제 압류 배포금지 정간을 당하는 등 끝없는 탄압을 받아야 했다.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통해 민립대학 설립운동, 물산장려운동, 문맹 타파 운동, 한글 운동 등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민족주의 문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갔다.언 론 활 동-그는 또 1931년과 1933년 월간 신동아와 신가정을 창간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같은 문화운동을 펼쳐나갔다. -1936년 8월25일자 동아일보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없앴다. 일제가 가만 있을리 만무했다. 총독부는 곧바로 동아일보를 무기한 정간시키는 등 갖은 탄압을 자행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그에 굴하지 않고 이듬해인 37년6월3일 다시 발행되었다. -동아일보는 일제의 영구 폐쇄 음모로 인해 결국 40년8월10일 폐간됐고 광복 후인 45년12월1일 다시 발행됐다.교 육 활 동-1914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인촌 김성수는 사립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안재홍(安在鴻1892-1965) 등 일본 유학시절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 관련 자료를 모아 1915년 봄 백산학교라는 이름의 사립학교 설립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첫 시도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좌절당해야 했다. -그러던 차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있던 중앙학교로부터 운영을 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왔고 김성수는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겠다는 신념에 따라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중앙학교 인수를 지나친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를 설득하고 인수 비용을 얻어내 1915년4월 중앙학교를 인수했다.교 육 활 동-중앙학교를 인수한 김성수는 근대적인 경영방식을 도입, 학교 운영을 근대적 합리적으로 바꿔나갔다. 김성수는 그곳에서 직접 영어와 경제를 가르쳤으며 1917년엔 중앙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해 12월엔 서울 종로구 화동에서 종로구 계동의 근대식 건물로 학교를 옮겼다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의 산업 활성화를 위해 방직산업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경성방직 설립의 첫단계는 1917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경성직뉴주식회사를 인수한 것이었다. 김성수는 2년전인 1915년 중앙학교를 맡으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국산 무명옷을 교복으로 입게했을 때 이미 한국의 직물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각오했던 터였다. -김성수는 경성직뉴를 근대적 면 옷감 생산 시스템으로 개조, 중앙상공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8년부터는 면의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19년10월 그는 경성직뉴와 별도로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한국 자본으로 세워진 순수한 민족 기업이었다. -경성방직은 당시 한국의 산업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으로부터 면직물 수입이 증가하면서 한국의 면직물은 거의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김성수의 경성방직 설립은 그같은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대규모 생산을 시작한 일본인회사 조선방직에 맞서 한국의 면직물 산업과 한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1939년엔 중국 만주에도 공장을 세움으로써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투자를 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건 국 운 동광복 직후 좌우 갈등의 혼란기에서 인촌 김성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앞장섰다. 광복이 되던 그해 1945년 김성수는 송진우 등과 함께 한국국민당을 결성했고 송진우가 암살되자 한민당을 이끌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듬해인 1946년1월 김성수는 한민당의 수석총무를 맡아 본격적으로 건국 운동에 뛰어들었다. 김성수는 모든 세력이 함께 참여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김구(金九 1875-1949)와 이승만(李承晩 1879-1965)을 한데 아우르는 정당을 설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뜻은 이루지 못했다. 1948년 그는 비록 남한만의 정부수립이긴 하지만 한반도에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는 대원칙에 동의, 그 해 5월10일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이 선거에서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가 제1당이 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