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의 역사199910301철학과한영철역사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 때, 우리는 서구인들이 유방에 대해 당연시하고 있는 가정들이 얼마나 자의적인가는 금방 드러나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에는 약 25,000년에 걸쳐 유방에 대한 어떤 특정한 사고가 서구의 상상력을 지배하여 그것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던 몇몇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순간들을 유방의 역사를 죽 펼쳐 보이는 연속 필름식이 아닌, 서로 오버랩되기도 하는 영화의 몽타주 장면들처럼 보여준다.)『유방의 역사』는 풍부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여성의 삶이 자기의 욕망을 표현하지 못했고, 또한 기록하지도 못했던 과거로부터 이 책은 회화나 문헌 등에 드러난 여성의 삶의 자취를 발견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자료들을 보여줌으로서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보여주고자하는 문제의식은 ‘유방이 누구의 것인가?’ 라는 것이다. 즉 -여성의 가슴에 대한 소유와 인식의 9가지 고찰-이라는 부제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의 유방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이데올로기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유방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유방의 역사』는 여성의 몸이 쓰인 여러 방식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채우고 있다. 저자는 이를 8개의 챕터로 구성하고 있으나 그 흐름은 크게 세 가지의 전제들 속에 드러나는 것 같다. 첫째는 여성이 생명을 낳고 양식을 준다는 것에 대해 신성화했던 흐름이 있고, 두 번째는 남성의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적인 측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배계급(국가/시민/가정/남성 등으로 분류되어)을 위해 봉사할 의무를 지닌 자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생명과 쾌락과 국가를 위해 억압되어온 여성의 역사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끝부분에 다루어지는 「해방된 유방」은 여성이 이런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 자기 몸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벌였던 현실의 노력들을 담고 있다.저자는 몸을 사용하는 주인이 여성 자신이 되기 위한 노력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여야 했지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유 양육을 신성한 의무로 만들었다.신성화된 여성은 여성의 욕망(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사회적인)을 스스로 억압한다. 모성애에 대한 일방적인 강조와 그것을 여성의 본성으로 귀속시키려는 시도는 여성이 스스로 그것을 자신의 역할로 수용하게 만든다. 성적 대상이 되는 유방은 남성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여성의 욕망이 주체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막는다.)몸의 다양한 성질과 욕망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은 사회적인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관념화시키고 고정된 것으로 가두려는 시도들 때문이다. 몸에 대한 이런 관념적인 태도와 규정은 여성을 대상화시키고 여성의 주체적인 욕망을 숨겨 왔다.이탈리아에서 젖을 먹이는 성모 마리아 상이 출현하고 1년이 지난 후 한쪽 유방을 노출 시킨 프랑스 와의 애인(아그네스 소렐)의 초상화가 나왔다.) 남성 시인(에드먼드 스펜서 1552~1599)에 의해 쓰여진 시에도 여성의 유방을 노래하게 시가 나타난다.태양 아래 빨갛게 익은 사과 같은 그녀의 뺨,한번 깨물면 먹고 싶도록 남자들을 유혹하는 버찌 같은 그녀의 입술,부드러운 생크림 용기 같은 그녀의 유방,봉오리진 백합 같은 그녀의 젖꼭지,여성의 유방은 입맛을 당기는 맛있는 음식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시들은 유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그 유방의 뒤에 있는 사람의 느낌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삼지 않고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남성의 입장에서 유방을 보았을 때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유방에 대해 칭찬하는 것이든 냉소적인 것이든 이런 미술 및 문학작품들은 모두 남성들의 창작품이었다.)어쩌면 이때부터 남성들에 의해 여성의 유방에 대한 압박이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여 남성들은 여성들의 유방에 모든 여성의 전부가 깃든 것처럼 여기게 되고, 이런 남성의 사고에 부합하여 여성들은 유방이 무너지는 것, 그것은 여성 자신의 생명이 끝장나는 것처럼 여기게 되자 급기야 모유로 아기를 양육하는 것을 꺼하기 시작했어??????이 시에서는 시큼한 젖 냄새와 수술 후 옭아맨 매듭과 남편-애인의 애정을 이야기하면서 출산과 수유, 성애 행위를 하나로 연결지어 통합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유방은 따로 분리된 성적 대상이 아니라 어머니의 전체 세계 내 존재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며, 그녀의 육체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매개체이고 힘과 고동을 함께 느끼는 장소이며 그녀가 누군가를 보살피고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다. 아이를 젖을 먹여 키워본 여성들만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런 유방이 가져다주는 자부심과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느낌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이런 다양한 욕망들 자체도 남성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잊고 남성적인 시선이 투여된 여성의 육체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들이 활발한 것 같다. 현대의 예로 마돈나는 자기에게 투여된 남성적 시선을 자신을 욕망하는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고, 상업적인 이익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이렇게 똑똑한 여성들은 이미 고대부터 존재해왔다. 물론 지금과 같은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역사적으로 고급 창녀들은 자신의 몸에 부여된 시선과 역할을 적극 활용하여 생활을 보장받고 그 당시 여성들이 누리던 것보다 더 많은 문화와 부를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런 자기 이용과 통제는 일견 여성들이 자기의 몸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실은 강한 자기억제를 통한 보상일 뿐이다. 몸은 여전히 강한 구속에 놓여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구속은 마돈나나 고급 창녀들 아래 가려진 보이지 않는 여성들에게 더욱 강한 억압이 된다.)다른 누드모델이나 연예인들처럼, 게일은 유방 숭배가 여성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유방이 여성성의 절대적 상징인 양 너무 유방을 강조하는데……. 그것이 정말로 나쁜 것은 그로 인해 유방이 납작한 여성들 가운데 심지어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있다!’ 그녀는 잡지가 오직 한 가지 종류의 몸, 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이라는 체계에 대한 의무를 짊어지게 된다.가족이라는 단위는 거대한 정치적 대우주를 구성하는 소우주로 여겨졌고 따라서 어머니가 집안을 말끔히 청소할 때와 같은 정성으로 기꺼이 모유를 먹여 아기를 기르는 의무를 떠맡는다면 가족은 가장 훌륭한 보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에 따라 어머니가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을 것인가는 엄격하게 성별된 가족의 역할에 따라 정해졌다.)상류의 여성 중, 자신의 아기는 자신의 젖으로 키우겠다는 당당한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극소수지만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 스스로 자생적으로 낸 목소리이기 보다는 국가에 의해 주도된 정치성에 반응한 결과이다. 어머니가 가정에 있어야 했던 이유는 단지 어머니의 피가 더 좋을 것이라는 의학적인 판단에 의지하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예전에는 젖이 피가 변형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므로 자식은 어머니를 통해 직접적으로 혈통을 잇는다. 이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가 혈통과 배제, 즉 피를 근거로 계열화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가란 민족이나 영토 등을 경계로 계열을 세우고, 배제하는 작업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가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권력인 것이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여성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사회질서를 공고히 하였으며,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공동체에서 배제되어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이런 정치성에 부합하면서 국가는 여성의 유방을 여성의 것이 아닌 국가의 정치 차원에서 관리하게 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여성은 성적인 유방을 소유한 것이 아닌 정치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은 스스로 유방을 세상에 공개하기도 한다. 1830년의 유혈폭동을 주제로 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처럼, 유방은 종종 자유의 이념과 동일시되었다.)두 번의 세계대전은 여성의 가슴을 전쟁의 승리에 이용하는 극적 계기가 되었다. 각국에서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과 홍보에 열을 올렸고, 그 결과 여성의 에로틱한 가슴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16세기 그리고 정치적인 유방이 출현했던 18세기가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그런 지각 변동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연구작업으로 20세기 전환기에도 다시 한 번 일어났다.)정신 분석학의 체계에서 유방은 인간의 가장 심층에 있는 감정의 원천이다. 프로이트는 젖을 빠는 것이 아기의 최초의 행동일 뿐만 아니라 ‘전체 성생활의 출발점’이라고 단정했다. 인간의 심리는 유방과 음경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언제나 유방의 중요성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음경의 절대적인 지위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오직 멜러니 클라인 같은 후기 프로이트주의자들만이 이러한 위계질서를 재조정하여 유방의 우월성을 인정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학적인 영향은 단순히 유방의 의해서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현대적 견해이다.우리는 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어떤 것을 선택하게 만드는 많은 무의식적인 결정인자들에 의해 민감한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더 이상 과학으로 위장한, 독단적이고 근거가 희박한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다. 때로 유방은 단지 유방일 뿐이다.강박적으로 유방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유방이 거의 무한한 상업적 기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가슴을 가리는 브래지어나 바디 로션과 같은 관련제품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차나 음료수 회사에서는 여성을 이용하여 상품 판매를 촉진한다.) 이른 바 여성이 음료수를 옆구리에 끼기만 해도 그 상품은 불티나듯 팔려나가는 것이다. 바야흐로 여성의 유방은 본격적으로 상품화의 길로 치닫고 있었다.서구 세계 전체에서 여성들은 그들의 성적인 그리고 직업적인 주가를 높일 유방 환상을 창조하기 위해 기꺼이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다. 그들 자신이 창조해낸 것이라곤 거의 없는 여성적인 이미지에 속아 어떤 여성들은 유방을 밀어올려주는 브라와 실리콘 이식조직을 비롯하여 규격화된 유방을 위해 마련된 제품들의 걸어다니는 광고물이 된했다.)
헤겔의 예술철학19910301철학과한영철목차1. 헤겔 미학2. 상징예술, 고전예술, 낭만 예술3. 건축1)독자적이고, 상징적 건축2)고전적 건축3)낭만적 건축4.조각5.회화,음악,시6.결론1.헤겔미학헤겔은 자신의 미학체계는 전반적으로 자연의미가 아닌 예술의 미를 다루고 있음을 처음부터 규명하고 있다. 즉 예술미는 자연미보다 우월한데, 그 이유는 예술미가 ‘정신의 소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의 소산인 예술 역시 철학의 고찰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예술은 그 개념상 진리를 조형적이고 구체적인 실제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것은 ‘감각적인 것과 순수한 사유의 중간에’ 서 있다. 이러한 예술은 절대 이념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써 예술작품으로써 구체적 보편자가 드러난다.이는 예술을 헤겔이 이야기한 소외의 한현상으로써 절대적 보편자는 알아가는 하나의 대자적 존재로써 간주한다. 이러한 대자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대자적 존재와 즉자적 존재가 일치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예술은 내면의 정신-즉자적존재- 와 외면의 형태 -대자적 존재-가 일치하는 것이다. 정신과 형태의 균형과 조화가 즉 즉자 대자적 형태이기 때문에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가장 이상적인 예술의 형태로 보았고 그 이후의 낭만적 예술의 경우는 이념이 형태를 압도하기 때문에 예술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2.상징적 예술, 고전적 예술, 낭만적 예술헤겔의 예술 철학의 또다른 특징은 미학을 역사적인 발전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도 역시 인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변증법적 발전단계를 거치고 있다면서 세단계로 구분하다. 그 세단계는 상징적 예술, 고전적 예술, 낭만적 예술이다. 이러한 예술의 구분은 내면의 정신과 외면의 형태의 균형에서 구분된다. 정신이 형태에 비해 부족할 때 상징적 예술이 되고 , 정신과 형태가 평형을 이룰때 고전적 예술이 되고 , 정신이 형태를 압도할 때 낭만적인 예술이라고 구분하다때문에 여기서는 건축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으로써 헤겔의 예술 철학을 고찰해 보기로하겠다.3.건축예술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현실에서 특정한 존재로 드러낼 때 특수한 예술이 된다.건축은 개념 정의상 우선적으로 고찰되는 예술로 설명되는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그 존재적인 측면에서도 최초의 예술로 다루어져야 한다.예술의 개념에서 그 시작의 규명: 정신을 외적으로 둘러싼 자연적인 기반을 형상화함으로써 내면이 갖지 않는 것에 의미와 형태를 주입 시키는 일.신전을 건축의 시초로 간주.· 건축 구조물의요소가 외적인 목적-사람이나 신상이 머무는것-을 띤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 ·특정한 욕구등을 축족 시키기 위해 건축하는 목적을 지니고 예술적 형태를 만들어 내려는 미적 충동이 일어나면 건축예술로 분류할 수 있다.건축: 상징적 예술 형식에 맞으며 특수 예술인 상징적 예술의 원칙을 가장 적절하게 실현시킨다. ->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주위의 외적인 환경 안에서만 암시할 수 있다.건축술은 정신적이고 주관적이면서 그 내면의 의미에 전적으로 일치하는 현상으로 형태화해 내지 못하고 단지 그 외형속에서 의미를 상징적으로만 표출하는 작품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조각과는 다르다. 내용이나 표현 안에서 원래 상징적이다. 단지 어떤 표상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상징적인 형태로만 세워지기 일쑤이다.건축은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정신, 즉 인간형상이나 또는 인간에게서 나와 객관적으로 세워진 신들의 형상을 정신 자체에서 나와 예술의 의해 미적으로 형태화된 외적인 자연으로 둘러싸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그 때 에워싸는 것은 그 자체 안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즉 인각과 인간이 가정적인 삶, 국가적인 의식같은 욕구와 목적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 목적에 맞게 건축물이나 궁전, 성 따위가 세워진다.이러한 양쪽 요소가 결합되고 분리될 때 거기에서 곧 독자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상의 개념적 차이들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인 발전 자체도 내포하고 있는 모든 건축술을 다음과 같이 분류할이 정신에서 어떤 표상, 어떤 사념이 솟아 나올때 이를 작품으로도 산출하거나 세우는데 있었다. 이는 인간이 다른 표상을 지닌 사람들에게 언어로 이해시키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언어에서의 전달수단은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므로 이는 매우 자의적인 외연성을 띤다. 그에 반해 예술은 단순한 기호를 이요해도 되지만 의미에다 그에 맞는 감각적 현재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므로 감각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작품은 한편으로 내적인 내용을 띠고 있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 내용은 물론 형태도 직접 현실에 실재하면서 표상활동과 정신적 예술활동의 소산이 되게 표현해야 한다.한민족이 지닌 사상같은 관념은 추상적이며 무규정적인 것이다. 이제 이를 표상하기 위해 역시 추상적인 것, 즉 덩어리진 무거운 질료, 어떤 특정한 형체가 될 수는 있어도 스스로 구체적이고 참된 정신적 형상이 될 수 없는 물질에 손을 댄다. 즉 원래 객관적인 직관, 보편적인 사상들을 자신과 타인의 눈앞에 드러내고자 한다.내용은 감각적인 실재성을 통해 표상에서 나와 표상되어야 한다. 그 때문에 양쪽의 관계는 단지 상징성을 띨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알려줘야 하는 건축작품은 그 속에 이러한 숭고함을 표현하는 일 외의 다른 목적은 갖지 않은 채 서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매우 본질적이고 보편타당서을 지닌 상상력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상징물로서, 정신에게 직접적인 언어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건축적 산물은 이미 스스로 형태화된 의미를 단순히 주위에서 에워싸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생각하게 해주고 부편적인 표상들을 일깨워 줘야 한다. 이러한 표상들은 직접 지시하지 않고, 더 많은 것들을 상기시킬수도 있다.모든 시대와 변혁을 거쳐 폐허가 되었으면서도 꼿꼿이 버티고 서 있으면서 우리에게 환상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하고 육중한 면에서도 경탄대상이 된 고대 바빌론이나 인도, 이집트의 예술은 전적으로 그런 특성을 지닌 채 구성되어 있거나 대부분 그런 특성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식 성스러운 것을 외적으로만 표현할 수 있으므로 그 끈을 암시만 해줄 뿐이며 따라서 곧 상징성을 띤다.상징적 건축물의 예로서 오벨리스크나 멤논상과 같은 건축과 조각 중간에 속하는 건축작품들을 예로 들수 있다. 이들은 건축이 구체적인 의미를 내용으로 삼고 또 이를 좀더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더 구체적인 형태들을 취한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형태들은 개별적으로 만들어 조립하든 아니면 거대한 건축물로 조성하든 간에 조각적인 방식이 아니라 그 고유하고 독자적인 영역에서 건축적인 방식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조각이라고 보기보다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오벨리스크의 형태는 유기적이고 생동적인 자연, 즉 식물이나 동물, 인간형상에서 취하지 않고 전적으로 균형성을 띤 형태로서, 동시에 집이나 사원으로 쓰이는 목적을 띠지 않고 자유로이 독자적으로 서 있으면서 태양빛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오벨리스크들은 신성한 태양에 봉헌된 것으로 그 태양빛을 받아들여 곧 이를 표현하는 것을 뜻했다. 멤논상의 경우는 두 개의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띤 좌상으로서 그 거창하고 육중한 모습은 조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기물인 건축물같아 보인다. 멤논의 좌상들도 역시 일렬로 나열되어 서 있는데 그것들은 그러한 크기를 지니고 정돈된 상태에서만 그 가치를 지니므로 조각적인 목적을 띠지 못하고 전적으로 건축적인 목적을 띠는 것으로 그 가치가 떨어진다. 이러한 거대한 조각작품들은 뭔가 보편적인 것에 대해 좀더 규정적이거나 비규정적인 표상을 띠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과 에티오피아인들은 아침 여명의 아들인 멤논상을 숭배하여 태양빛이 처음 나타날 때 그에게 제물을 바쳤다.거대한 멤논의 좌상들과 비슷한 것으로 스핑크스가 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그 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크기 역시 매우 경탄할 만했다. 이 거대한 형상은 오히려 엄청나게 큰 본래의 조각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스핑크스들도 역시 입구에 일렬로 나란히 배열해 서 있음으로 해서 전적으로 건축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이러한 상징적인 건신적인 것, 상징적인 것을 위해 봉사하기도 해도 그렇다고 그것들과 직접 섞이지 않고 그 자체 안에 완결되어 전체적으로 짜 맞춰지며, 그것이 지닌 하나의 목적을 그 모든 형태들을 통해 엿보이게 하고 그 형태들의 관계가 음악처럼 화음을 이루는 가운데 합목적적인 것을 미로 승화시켜 형태화해 낸다.고전적인 건축의 일반적인 특징은 그것이 건축술의 기본개념에 충실했는가가 첫 번째이다. 원래 건축술의 기본개념은 정신적인 의미가 전적으로 건축물 안에 주입되어 그 건축물이 내면의 독자적인 상징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의미가 건축물 밖에서 자우로운 존재성을 얻는데 있다. 정신은 예술에 의해서든 직접 생생한 존재 안에서든 건축물에서 나와 스스로 존재하게 되므로, 건축도 원래 의미와 특정한 목적을 띠었던 이 정신에 봉사하는 예술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이제 이 목적이 주요한 것이 되어 건축물 전체를 지배하면서 건축물의 기본형태, 즉 뼈대를 규정하며, 상징적 건축에서처럼 질료와 상상력, 자의 어느 쪽도 마음대로 독자적으로 몰두하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그 목적은 낭만적 건축에서처럼 합목적성을 넘어서서 다시 지나치게 다양한 부분이나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이런한 종류의 건축물들은 그 목적과 규정, 그리고 그것이 세워지게 된 주변 상황들에 대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것들은 건축물을 구성하는 질료, 기후, 위치, 주위의 자연환경을 합목적적으로 고려하고, 동시에 자유로이 통일된 전체로서 산출해 내는 일이다. 이것이 완전히 이행될 때 건축예술가의 의미와 정신이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형태에는 지탱하고 지탱되는 역학적 관계가 참된 척도와 규칙을 띠고 유지되어야 한다. 무거운 각재는 가늘고 아담한 기둥 위에 설치되어서는 안되며, 거꾸로 뭔가 무거운 것을 지탱하고자 만들어진 거대한 시설이 아주 가벼운 것을 받치는데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이와 같은 모든 관계, 건물의 넓이, 길이, 높이의 관계, 기둥과 그 천장 사이의 관계, .
포스트 모더니티의 다양성의 정체19910301철학전공한영철포스트모더니티의 다양성의 정체~목차~1. 들어가며1)문제제기2)문제에 대한 고찰2. 다양한 갈등들3. 냉전 시대의 전후4. 이데올로기에 대하여5. 문화의 다양화6. 결론?참고 문헌 " 무료신문 때문에 우린 죽어요"[ 중앙일보 2004-06-21 21:15][ 중앙일보 이상복 기자] 무료 만화신문 '데일리줌' 창간에 항의해 지하철 신문 판매인들이 신문 판매를 거부하고 나섰다. 창간일인 21일 서울 지하철 1~8호선 전역의 신문 가판대(300여개 추산)는 모두 문을 닫았다. 일부 지역에선 신문 배포를 둘러싼 몸싸움도 일어났다.지하철 신문 판매인들은 이날 가판대에 '장애인을 두번 죽이지 말라' 등의 포스터를 붙이고 "무료신문 창간으로 인한 신문판매 감소로 임대료조차 내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신문 장사는 우리에게 맡겨 달라"고 요구했다.이들은 또 "임대료를 절반으로 감면하거나 위약금과 연체된 임대료를 감면해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데일리즘' 최조셉 전무는 "가판업자들은 현재 '굿모닝서울'과 'AM7'을 배포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신문까지 달라는 것"이라며 "성실하게 배포할 수 있는 사람에게 권리를 준다고 말했지만 무조건 다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는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모자 가정, 독립유공자 유가족 등 국민기초생활보호법에 의한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신문 가판대를 임대하고 있다.)1. 들어가며...1) 문제제기[장애인을 두 번 죽이지 마세요. 6월21일 만화 신문이란 무료신문이 창간됩니다. 이는 부동산등에 투자를 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인 ENC와 만화가 협회가 손을 잡고 한국만화를 영화 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수익성... ])6월 21일 지하철 가판대에서 빨간색 포스터로 만들어진 이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 작년 문화정보경영개론 수업을 듣는 아이가 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무료신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이야기의 경영자가 셔틀버스를 운행함으로써 누린 반사적인 이익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더 이상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백화점 등에의 접근에 대한 편이성이 감소되었을 뿐이고, 이로 인하여 소비자의 상품선택권이 제한을 받는 것은 아니어서 이들에게는 청구인적격이 인정될 수 없으므로, 이들의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란 이유로 결국 백화점 셔틀버스는 운행되지 않고 있다.2) 문제에 대한 심화 고찰이 두 사건은 유사한 점이 많다. 사실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보면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과 무료신문의 발간은 올바른 일이다. 소비자들은 무료로 특정효과를 얻고 - 백화점까지 가는 차비가 절약되고 신문을 사는 요금이 절약된다 - 공급자들은 그로 인한 광고 수익과 소비촉진을 유발시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그리고 이것을 잘 분석해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은 단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기를 원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백화점에 있는 물건을 사는데에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것이다. 여기서 교통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지 원하는 것은 백화점에 있는 물건을 사는 것일 뿐이지 그곳까지 이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까지 이동하는 교통비용의 제재로 인해 백화점을 이용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백화점은 이점을 안타깝게 여겨서 무료셔틀버스를 운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셔틀버스운행을 막는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경제적 원칙이 아닌 자신들이 원래 받던 돈을 아무 이유없이 계속 내라는 식의 강탈일 수 밖에 없다. 무료신문의 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무료신문의 창간을 막아서 즉 정보습득의 방법을 막아서 자신들에게 꼭 돈을 내라는 형식인 것이다. “매점매석”을 생각하면 이 원리에 대해 금방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기회를 차단 시켜서 무작정 돈을 빼앗는 경우인 것이다. 이런 표현이 과격하다면 ‘우리가 불쌍하이 80%에 육박하고 그로 인해 학술 서적에 대한 집필의욕들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하고자 하면 모두 책을 꼭 사야 된다고 하는 것을 돈이 없으면 공부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 된다.그리고 최근에 교통 요금제 개편에 관한 문제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하철 요금을 일방적으로 올린다고 지하철 요금 인상에 대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도와 서울시의 교통요금통합일 결렬되었던 이유는 이 교통요금이 경기도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교통요금 체계에서는 10Km이후에 서울시에서는 8km마다 인상되고 경기도에서는 10km마다 인상된다. 즉 경기도의 교통요금이 더 적어진다는 이야기다. 경기도는 이에 따른 손해분을 서울시가 보상해 주지 않으면 같은 통합요금체계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이협상결렬의 원인인 것이다. 즉 한쪽에서는 교통요금을 인상했다고 성화고 한쪽에서는 교통요금을 적게 인상한다는 이유로 불만을 토로하는 형태인 것이다.우리 철학과 내의 최근 카페에 토론중에 하나가 학번서열제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존대말의 존재로 인해 위와 아래의 서열문화가 엄연히 존재하고, 대학교와 같은 경우는 학번이 우선시되어 왔다. 지금까지 나이 많은 후배와 나이 어린 선배와의 관계에 대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시각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쪽은 나이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한쪽은 학번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어떤 특정한 한가지 사실에 대해 어느것 하나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서로 배제되는 시각이 존재하고 정반대에 입장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수 있다. 그러면 왜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들어나지 않았나? 과거에는 다양화된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문제의 답을 문화적 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는 이데올로기 문제로부터 찾을 수 있다.3. 냉정 시대와 그 이후근래에 역사적 흐름에서 이러한 문화적 다양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됨에 따라 국가간의 전면적 전쟁 가능성은 현저히 감소한 반면, 미?소간의 「세력균형체제(Balance of Power System)」하에서 억제되었던 영토분쟁의 재개, 지역패권국 또는 소위 불량국가(rogue states)에 의한 특정지역에서의 국지적 분쟁 발발 가능성은 계속 남아있거나, 더욱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즉 냉전 시대에는 거대한 냉전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가려져 있던 사실들이 그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잠재되어 있던 갈등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냉전이후의 분쟁들은 유고 내전, 미국과 유럽간의 통상마찰,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분쟁, 한국과 일본간의 독도 분쟁, 중국과 일본간의 조어도 분쟁등 이루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독도 분쟁과 마찬가지로 냉전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했다. 단지 냉전이라는 극한 대립구도로 인해 더 거대하고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묻혀서 밀려나 있었을 뿐이다.이 문제를 중국과 베트남과의 관계속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자. 중국과 베트남(북베트남)은 냉전시기의 안보관은 냉전적 사고에 기초했기 때문에 양국은 이념에 입각한 외교를 수행했으며 따라서 민족주의적 이익으로 인한 양국 간의 관계는 이념적 동질성으로 인해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1950년에서 1978년 3월 완전히 중단하기까지 중국은 베트남에 200억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행했다. 중국의 이러한 원조는 우호국에 행해진 원조들 중에서 가장 장기간에 걸쳐서 가장 큰 액수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냉전구도가 점차 약해지면서 중국과 베트남은 원래 잠재되어 있던 갈등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1969년 3월 다만스키에서 중·소 국경분쟁이 발발했을 때 베트남의 주요 잡지에는 과거 한족의 베트남 침략을 언급하면서 현재도 그러한 침략주의가 살아 있다고 간접적으로 중국을 비난했다. 이런한 갈등은 중국과 베트남과의 영토분쟁, 인도차이나 패권을 추구하려는 베트남과 이를 견제하는 중국등의 여러 요인들이 있다. 결국 1979자에 의해 창조되고 사용된다.) 이데올로기는 약소자들로부터 순수하게 권위를 얻어내는데 좋은 방법이 된다. 즉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권위자들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약소자들에게 세뇌하는 하나의 헤게모니인 것이다.이러한 헤게모니의 권력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시대를 짚어보자.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시기의 여성은 집에서 아이들이나 기르고 남편에게 잘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이상으로 여겨졌다. 여성은 이시기에 사회적 약자이고 남성은 권력자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약소자들이 당연스럽게 따르기를 바라고 그에 따라 가부장적인 헤게모니를 약소자들에게 항상 주입시켰던 것이다. 약소자였던 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이것은 과연 평등하고 올바른 일인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였던 것이다.17세기 영국의 이상적인 가정은 하인과 하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남자들은 항상 자유로웠다. 이것은 이상적인 것이고 정당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녀나 하인의 입장에서 그들은 가정을 가질 수 없는 형태의 사람들이 된다.이러한 권위에 대한 정당화된 형태의 문화가 깨어지기 시작한 것은 계몽주의 사상이 발달하면서 부터이다. 계몽주의는 합리적인 생각과 그리고 평등이라는 개념의 발달은 처음에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한 이상의 것들을 가져왔다.처음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한 평등이라는 개념은 단지 성인 남자들에게만 사용되었던 표현이었다. 이러한 기본 바탕에는 남자만이 합리적인 이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고전적인 사상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주의는 점점 여자들에게도 확대되었고,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점점 파고 들었던 것이다.이성에 의한 합리주의적 판단들은 막연한 불평등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점점 자각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 불평등함을 주장하는 형태로 발전된다. 그리하여 점점 이데올로기는 깨어지고 이데올로기속에 눌려 있던 약소자들의 주장들이 표면화되는 것이다. 합리주의적 사고는 이데올로기속에 가려졌던 약소자의 일방적 희생들을 깨닫게 하는데 도움을 주게.
자크데리다(1930년~2004년 10월 8일)19910301철학과한영철어느날 아침 뉴스를 보는 중이었다. 뉴스의 보도에서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죽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뉴스에서 어떤 특정인의 죽음을 보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상당히 유명인사일 경우에만 나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는 더 엄격한 사회인지도가 있어야만 한다. 내가 철학과였던 관계로 철학자의 죽음이 뉴스의 한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철학의 거장들은 칸트, 헤겔, 니체 등이었고 이미 오래 전에 죽었던 사람들이었다. 최근에 철학자라해도 기껏해야 하이데거, 샤르트르 정도였을 뿐이었고 살아있는 사람중에서는 철학의 거장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난 최근의 철학의 거장들이 누가 있는지를 주목하게 되었고, 그들중 몇몇의 이름을 겨우 알게되었다. 하이데거, 야스퍼스, 샤르트르, 메릴리 퐁티, 푸코, 하버마스,뒬레즈, 그리고 자크 데리다였다.내가 가지고 있던 이때까지의 서양 철학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헤겔까지였다. 헤겔 이후의 철학이 현상학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현상학에 대해 알고 싶어서 철학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정도의 마음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 뉴스를 접하기 전까지였다. 내가 살아있는 동시대에 철학의 거장이 같이 숨쉬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하나의 충격이었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최근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철학이 앞선 철학자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발전되어왔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앞선 철학자의 내용을 이해해야 다음 세대의 철학자의 논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현시대인으로서 내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철학에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철학과 헤겔의 철학을 배울때 “와~~그렇구나.”라는 느낌보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 이유가 철학적으로 논리정연하게 비판할 수는 없지만 막들을 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 그의 철학에 대해 완전히 배운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해결할려고 했던 문제들은 이 텍스트를 배우기 전에 나도 했었기 때문에 그가 이야기 하려고 했던 것은 나에게 바로 바로 느껴지게 되었던 것이다.그리고 다른 철학 교과시간에 잠깐씩이긴 하지만 하버마스와 푸코, 메를리 퐁티에 대해 살짝씩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이들은 현대 철학들은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왔고 난 이들에게 동질감마저 느낄 정도로 친숙해졌다. 그리고 이들의 논의를 더 정확히 알고 싶어졌다. 현대철학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식의 논의를 하였는지 알게 된다면 나의 이 세상에 대한 답답함이 많이 풀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그 중 자크 데리다는 가장 최근에 철학자인 것이다. 아직은 앞선 철학자들의 논의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있지만 지금까지 논의된 철학적 사고는 어느정도 수준까지 나의 답답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지가 무척 궁금하다. 그래서 난 철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중에서 가장 최근의 철학자인 바로 몇일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숨쉬었던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의 철학을 알고자 한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였는지 그리고 어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해줄 것인지 그것을 알고자 하여서 자크 데리다를 선택하였다. 특히 이 과제가 나온 바로 다음날 자크 데리다가 죽었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굉장히 최근의 철학자이기 때문에 아직 그의 이론들이 철학계 내에서도 해석이 완전한 것이 아니지만 내가 할려고 하는 것은 그의 논의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보다 데리다라는 사람이 가진 철학을 조금이라도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즉 난 그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다.◆주요개념◆?text자크 데리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중에 하나는 text이다. 물론 이것이 데리다만의 독창적인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데리다는 텍스트로서 세상에 대한 해석을 중요한 방법으로서 차용한다. 텍스트는 해석학자들 사이에 단순한 문장이나 글의 fer)’라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 ‘differer(디페레)’가 포함되어 있다. 즉 ‘differance(디페랑스)’는 동음어인 ‘differer(디페레)’가 결합되어 만들어졌음을 알리기 위해 어미 ‘-ence’를 ‘-ance’로 바꾼 것이다.그래서 차연은 차이(변별성)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연기 또는 지연이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자크 데리다에게 있어서 단어도 아니고 개념도 아닌 이 용어는 두 가지 의미(차이 ·지연)를 모두 작동시키며, 어떤 순간에도 어느 한쪽만의 의미로는 환원되지 않는다. 즉 ‘difference’의 ‘e’에서 ‘differance’의 ‘a’로의 미묘한 이동은, 결과적으로 텍스트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결정되어 있거나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작용의 연쇄 속에서 하나의 대체 가능한 언어해석으로부터 다른 해석으로 지연된다는 자크 데리다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차연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사전에서 단어의 정의를 찾는 원리로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떤 단어는 그것이 아닌 다른 단어에 의해, 즉 단어들간의 차이에 따라 정의되고, 그러한 정의는 의미의 가능성에 한계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의미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어는 그와 다른 단어에 의해서만 정의되는데, 그 다른 단어 역시 또 그와 다른 단어로 이루어진 정의를 필요로 하게 되는 등 이런 식으로 끝이 없기 때문이다.한편, 차연이라는 용어 자체도 자크 데리다의 용법에서는 불안정하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용어를 확정된 개념으로 고정시켜 사용한다면 이 용어가 지닌 효력과 불확정성에 대한 강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deconstruction데리다의 사유와 글쓰기는 매우 난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잘 짜여진 철학적 체계나 용어에 대한 빈틈없는 과학적 정의, 그리고 이를 기술해나가는 데 필요한 고전적 문체 등으로 대변되는 이론 정연한 담론의 양식을 독자에게 선사하지 않기 때문인 것라톤, 칸트, 헤겔, 후설, 하이데거 등)이 데리다에 의해 연구되었지만, 이들에 대한 데리다의 독서는 ‘교과서적’ 독서와는 구별되는 전략에 의해 수행됨을 볼 수 있다.서구 형이상학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른바 로고스중심주의, 음성중심주의, 민족중심주의가 어떻게 작용하면서 이러한 철학적 텍스트를 결정짓는가에 관심을 두는 데리다는 그 텍스트들을 통하여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개진하고 이제까지 망각되어 왔거나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방법론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데리다는 어떤 텍스트가 의식적으로 의도하는 부분과 실제로 텍스트를 통해서, 혹은 글쓰기의 작용에 의거해서 실천된 부분 사이의 불일치, 긴장, 모순의 관계를 추적하고 들추어냄으로써 작가 스스로가 단일하고 매끈한 의미의 표면이라고 믿는 텍스트를 균열시키고 파편화시키며 그럼으로써 그 텍스트 속에 다양한 의미들을 ‘흩뿌린다’.한편 데리다가 실천하려는 해체의 전략은 결코 자신의 주장이나 결론을 성급하고 완고하게 어떤 텍스트에 적용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해체적 전략은 철저히 임상적이며 수행적이다. 즉 해체의 전략은 텍스트의 여러 층위들을 추출해내고 그것들이 서로 부딪히게 함으로써 텍스트가 그 자신의 모순된 논리로 붕괴하도록, 다시 말해서 ‘그 내부에서’, ‘스스로’ 해체하게 한다. 그러기 위해 데리다는 가능한 한 전통적 형이상학의 경계나 가장자리에 머무르면서 그것의 함의를 드러내고 그 맹점을 밝혀내려고 한다.그러므로 일찍이 니체와 하이데거가 제기했던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계승하고 있는 해체는 탈(脫)형이상학이라는 계획을 내세우면서도 성급하고 무모하게 형이상학의 ‘바깥’이나 ‘피안’을 설정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논리적 궁지 속에 몰아넣으면서 그것들을 무장해제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이 ‘바깥’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철학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데리다는 이러한 모순을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하며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데리다의 사유에 있어 가장 것은 형이상학 자체의 기원이자 본성인 것이다.형이상학의 시대는 차연과 흔적의 망각 안에서 성립된다. 이 망각 속에서 형이상학은 언제나 자기 동일적이고 자기 현전적인 순수한 기원을 욕구하고, 이 욕구 속에서 외면적인 것, 물질적인 것, 우연적이고 특수한 것과 같은 차이를 배제한다. 그러나 이 차이는 형이상학이 추구하는 정신적인 것, 필연적인 것, 보편적인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이항 대립적 개념 체계로서 조직되는 형이상학의 시대에 언어는 음성 언어 위주로 이해되고 책의 관념 속에서 형이상학의 진리 개념을 보존한다. 언어는 자기 동일적 의미를 대신하는 기표이다. 그러나 기표로서의 음성은 내면적 의미를 외면화시키자마자 즉각 소멸한다. 내면성은 거기서 비매개적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의미한다는 것은 목소리 현상으로서의 말하는 것이고, 이는 자기 자신을 듣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해 내면은 비매개적 자기 현전과 자기 감응을 통해 본래적인 말을 스스로 듣고, 이를 통하여 현전성 안에 머물러 있게 된다.이런 음성 중심주의 안에서 문자는 음성적 기표를 대신하는 이차적 기표이다. 문자는 음성에 종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성이 대신하는 개념적 의미에 종속되어 있다. 문자의 존재 이유는 음성을 담고 개념적 의미를 담는데 있다. 그러나 현대의 범람하는 기호들은 대다수가 음성에 대응하지 않고 않으며, 자기 동일적으로 고정된 의미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전화기나 컴퓨터 자판에 나오는 *과 # 같은 기호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여기서 이 기호들은 다만 기표의 기표로서, 기표와 기표의 관계 안에서만 기능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언어 이해의 범위를 이탈하는 것들은 에크리튀르라 부르고 이들이 여전히 기호학적 의미 작용 속에 놓이는 것은 오로지 차연이 개입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차연이 개입하여 부재하는 타자들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차연이 직조해가는 시공간적 차이의 연쇄적 그물망이 곧 텍스트이다. 책의 은유 속에 보호되고 있는 형이상학적 진리들이 어떤 닫혀진 체계를 이루고 있다이다.
실존철학과 교육19910301철학전공한영철1. 실존철학의 배경대부분의 전통 철학은 형이상학적이거나 회의적이다. 형이상학적철학은 경험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어떤 고차원의 실재로부터 추구한 논의에 의해 경험의 근본적 특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회의적 철학은, 인간의 모든 경험은 오류 투성이므로 인간은 어떤 것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또한 모든 형이상학적 개념은 잠정적인 것이라고 한다. 실존철학은 이러한 전통적 철학에 대해 반대하며 일어난다.)실존 철학의 시초는 자기 이해를 무엇보다도 전통적 형이상학에 대한 논쟁적 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이 형이상학의 반대 운동으로 파악했다. 실존철학의 ‘창시자’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키에르케고르는 이런식으로 명확하게 자신을 본질 철학으로서의 전통적 형이상학이 그 절정에 이른 헤겔에 대한 반대이며, 대립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전통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대는 철학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물리학에서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이 고전물리학을 비판하고 나섰고, 수학에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대두하고, 심리학에서는 게스탈트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 새로운 면을 개쳑하고, 인접 특수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이에 대한 새로운 입장의 제시가 시도되었다.이 경향은 19세기 후반기의 전반적인 비합리주의 경향과 합류하여 현대 20세기 사조를 그 밑바닥에서부터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불안과 허무에 허덕이는 현대인을 위한 사상적 모색이며 동시에 유럽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합리론적 이성주의 전통에 대한 반항적 흐름이었다. 실존철학은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1920년 후반부터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의 이후 인간에 대한 새로운 평가로서 실존철학은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다.인간에 관한 실존적 논의는 크게 유신론적 입장과 무신론적 입장으로 나뉘어진다. 유신론적 입장은 유신론의 명제들을 나름대로 독특하게 수용하며, 무신론적 입장은 실존주의와 혼합되어 20세기의 신학조되는 이유는 현대가 바로 인간 소외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운동은 고도로 발달한 기계 문명이 인간을 평균화, 획일화, 익명화하고 인간적 실전을 억압하는 데 대한 반항 운동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군중 속에 묻혀 있는 개인의 고도하고 비참한 상태를 19세기 초에 러시아에 있었던 농노의 취악대에 비유하고 있다. 이 취악대는 20인의 악사가 각각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등 자기에게 배당된 한가지 음만을 내도록 되어 있어서 자기의 음을 낼 순서가 되었을 때에 일정한 음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악사들은 자신의 이름이 없이 각자에게 배당된 음으로 불린다. 그래서 이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저기에 어느 지주의 ‘도’가 지나간다. 어느 지주의 ‘레’ 가 지나간다. 어느 지주의 ‘미’가 지나간다고들 말한다. 이들 악사는 배당된 하나의 음이상도 이하도 아닌 익명적인 (이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거대한 기계의 조그만 부속품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고 스스로 기계화된다는 것은 각자의 개성이 완전히 무시되고 대중화, 평균화, 익명화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화되는 것을 ‘인간의 소외현상’이라고 한다. 인간적 실존을 집단의 한 단위, 기계의 한 부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부조리와 위험, 인간 상실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 실존철학이다.2.실존철학의 사상가들이러한 실존철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20년대 후반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 의해서이지만 키에르케고르와 니체가 그 이전에 실존 문제에 대한 선구자적 입장에 서있다.키에르케고르는 실존을 우선 현사실성과 이상성 사이의 , 그리고 존재와 사유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로 규정한다. 실존은 “감자의 존재와 같은 그런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념의 존재와 같은 존재도 아니다. 인간의 실존은 이념을 자신 안에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념적 실존은 아니다.”) 오히려 개별자의 현사실적 존재는 어떤 중간 존재의 운동이다. 즉 사유의 추상화를 통한 가설적 단일성과이다. 즉 이 사유는 추상된 것의 무차별과 무관심 속에서 자신을 잃어 버려 사유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유로서 사유자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니체는 불안한 인간, 그것은 ‘던져진 존재’라고 외쳤다. 인간을 ‘던져진 존재’라 한 것은 ‘신은 죽었다’라고 한곳에서 연유한다.기독교적으로 볼 때 모든 것은 피조물이요, 신이 있음으로 인해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요, 인생의 뜻도 신에 의해 비로소 있게 되는 것이다. 신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동시에 모든 가치의 근원이 기도 하다. 따라서 ‘신은 죽었다’ 함은 모든 존재와 가치가 그 근원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인류의 있어서의 이런 존재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역사와 인생을 허공에 빠뜨려 버린다. 사람들은 그러인해 가치를 상실하고 목적을 잃어 버린 허무주의에 빠지게된다. 목표도 없고 무엇때문인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없는 그런 상황속에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은 불안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이런 인간은 실존의 근거가 없는 무의 상태에서 극단으로 몰고가면 바로 그 끝에서 불가피하게 회귀해오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자체 그대로의 삶, 즉 현실존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현존재에 대한 긍정적 실존자를 그는 초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초인사상을 토대로 한 니체의 허무주의 극복의 노력은 세계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야 사람들을 니체의 예언을 깨닫게 된다.이 세계 1,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샤르트르가 실존철학자로 활약하며 실존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고, 인간 실존에 대한 나 자신의 대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찾아 나아가게 된다.하이데거의 경우 인간을 ‘현존재’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간을 논리적, 추상적,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지금 여기에 살아움직이고 있는 구체적인 인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구체적인 인간은 존재(Sein)가 드러나는 곳(Da)이라는 의미에서 ‘현존’(Dasein)라고 말한 것이다. 파악하는 핵심으로 사용하는 것이 ‘한계상황론’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유일한 단독자로서, 실존으로서 특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특정한 부모 사이에 태어났고, 남자 그리고 이시대에 이 땅에 태어났다와 같은 특정한 한계성과 규정성은 일반적 규칙으로부터 끄집어 낼 수 없는 우연한 운명인 것이다. 자유 존재임을 자처하는 우리는 여기서 자기 존재의 한계에 부딪치게된다. 이것을 야스퍼스는 ‘일반적인 한계상황’이라고 하고, 이에 대해 ‘특수한 한계상황’으로는 죽음, 고뇌, 싸움, 죄 등 네 가지를 든다. 이들 한계상황은 실존의 유한성을 깊이 깨닫게 하며, 그 좌절에서 초월자에로의 비약을 불가피하게 한다.실존은 이러한 한계상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함과 동시에 초월자가 주재하는 현실에 눈을 돌려 존재의식을 변혁시킴으로써 본래의 자기 존재에로 회생한다. 즉 한계상황은 실존을 각성케 하는 근본 계기가 된다. )샤르트르의 경우, 실존이란 탈자적, 자기 초월적인 존재 방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의식은 자기 자신을 벗어나 자기를 넘어서 자기 아닌 것으로 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식이 속성을 샤르트르는 탈자적, 자기 초월적인 존재 방식이라고 말한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밖으로 자기를 내던져 미래르 fgid해서 현재를 뛰어넘는 모험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샤르트르 실존철학의 제1원리이다.샤르트르의 의하면 실존이란 미래를 향한 자유로운 행동이 맹목적이나 자포자기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각자의 실존은 가자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고 모험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실존이다. 따라서 실존은 각자의 존재 방식에 책임을지지 않을 수 없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함은 바로 인간의 본질은 실존함에 있다는 뜻이다.실존주의란 현대사회적인 원리나 규범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각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실존하는 주체자로서의 태도를 갖는 것을 가르친다. 주체적 자각과 결단, 그리고 실천하는 전인적인 인간육성의 교육이 목적인 것이다. 스스로 가치있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하고 선택에 대한 자기 책임이기 때문에 가치에 대한 인격교육이 중요시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인지에 대한 교육과정을 중요시 여긴다.실존주의 교육방법으로는 교사 ? 커리큘럼 ? 시설 ? 환경 따위는 한 인간이 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도구로써만 파악한다. 학생들에 이런 교재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그 교과목을 다르는 방법을 배우게 될 뿐이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들의 자유를 신장하고 창조적인 개성을 갖도록 격려해야지, 적응 또는 관습에 순응하도록 압력을 가해서는 안된다. 실질적으로 실존주의 철학은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학교와 같이 보편화된, 집단적인 획일화 교육을 비난한다. 그래서 학교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실존주의자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교과서를 통한 지식 교육을 아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을 실존철학자들은 반대한다. 그들은 교과서에 들어 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학생의 마음을 개방시키고 자유러운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촉진키겨야 함을 강조했다. 즉 교사는 학생들이 인간 실존의 부조리 등의 궁극적 의문들을 가지고 인간실존을 탐구하도록 조성하는 촉진적 교육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이러한 실존주의교육이론은 많은 교육적 시사점은 주고 있다. 교육의 장에서 비연속적 형성가능성을 주목하게 하였고, 보편화 ? 집단화 ? 획일화하는 현대교육의 경향을 인간의 개성과 주체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교육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여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함으로써 전인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의 자율성이 더욱 강조됨에 따라 실존적 아이디어들이 교육에 제공되기 위해서는 인간교육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역할이 매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