科 目 : 한국한문학론敎 授 :學 科 :學 番 :姓 名 :綜囚論을 거울로 삼아 現實을 論하다구양수(歐陽脩)의 종수론(綜囚論)을 읽고 내가 처음 갖게 된 생각은, 인간의 양상(樣相)이란 어디서나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항상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역사를 중요시 여기는 것, 무언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언제나 앞선 사례(事例)를 먼저 살피는 것 등이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종수론을 통해 구양수는, 당태종의 중요한 치적(治績)으로 알려져 있는 극악한 사형수 390명을 가석방한 뒤 그들이 모두 돌아오자 죄를 사면(당태종 6년 서기 632)한 그의 행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400년도 더 전에 일어난 당태종의 행적을 구양수가 당시에 날카롭게 비판한 것은 아마도 그것을 통해 현실에 적용하여 그들의 삶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시대와 지역을 훨씬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한다 해도 그 비판의 칼날은 조금도 녹슬지 않아 보인다. 당태종의 행적을 바라봤던 당시의 시각처럼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 상대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현혹(眩惑)되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진짜 의미를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구양수의 종수론의 논리(論理)를 지금 현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적용하고, 당태종을 칭송(稱頌)했던 그들의 우매함이 역사적으로도 비일비재한 일이였으며 우리도 쉽게 그러한 오류에 빠지고 있음을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올바른 문제인식 함양(涵養)과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 사고를 기를 수 있을 것이며 개인적 명예와 만족이 아닌 진정한 대의 추구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첫째로 내가 지적(指摘)하고 싶은 것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할 수 있는 촛불집회에 대한 것이다. 2008년 5월 2일, 10대 여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처음 연 뒤로 많은 시민들이 수입조건 재협상을 외치며 촛불집회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러던 것이 금세 전국으로 확산되어 한국은 2 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바로 ‘국민의 건강(健康) 과 생활의 안전(安全)’이였다. 다시다, 조미료, 라면스프 등 쇠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쇠고기가 수입되면 국민들의 건강은 결코 보장할 수 없다며 그들은 가족의 건강 보호를 위해 그토록 열정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정말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원하였던 것일까? 사실 미국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광우병의 발생건수는 단 3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마저도 2명은 영국에서 살다 온 것이고, 1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다온 것이다. 미국 내에서 쇠고기를 통해 광우병에 걸려 죽게 될 확률(確率)은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혹자는 0.01%에 못 미치는 확률일지라도 국민의 건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할 일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국민건강을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여길 것으로 바란다면 그들은 애초에 ‘쇠고기 수입 반대’를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흡연과 음주의 소비량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른 질병과 사고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에서만 1250만명이 넘는 성인이 흡연을 즐기고 있으며 그 악영향이 더욱 크게 미칠 청소년 흡연인구까지 생각한다면 이 흡연인구 비중은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비중은 선진국(先進國), 개발도상국(開發途上國)을 통틀어 1위를 차지하는 부끄러운 수치이다. 굳이 여기에서 흡연과 음주로 인한 건강 폐해에 대해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흡연과 음주가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고 있으며 간접흡연으로 인한 폐암발생률도 상당히 높은 수치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러한 건강악화의 주범인 담배와 술을 유통하는 것도 정부의 일인데 왜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지적하지 않는 것일까? 세상 모든 각종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모두 합친다 해도 폐암(肺癌)으로 인)가 떠오르는건 지나친 비약(飛躍)일까? 감히 말하건대, 그들에게 촛불집회는 자신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민’, ‘정부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울 줄 아는 인물’로서 자기 스스로를 기만시키는, 그럴듯한 명분(名分)있는 하나의 문화행사가 아니었나 의심하게 된다. 개그우먼 정선희의 발언과 관련된 그들의 대응을 보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더욱 깊게 파악할 수 있다. 개그우먼 정선희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광우병 촛불집회와 관련된 발언(發言)을 한 적이 있다. 촛불시위를 하는 국민들 중 석상이나 육교의 쇠붙이, 맨홀 뚜껑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나라 물건 챙겨서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집회에 참석하더라도 환경오염 시키고 맨홀 뚜껑을 가져가는 사소한 일들이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다.”라고 말이다. 그녀의 이러한 발언으로 라디오 방송국과 그녀의 홈페이지는 그녀를 비난하는 글로 쇄도했고, 네티즌들은 그녀와 관련된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항의 전화와 광고제품 불매운동과 같은 협박성 댓글로 열을 올렸다. 이에 그녀가 출연 예정이던 모든 프로그램이 잠정 보류되었고 그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던 협찬광고들도 대부분 해지되었다. 조금이라도 의식(意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발언이 조금도 틀린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혹, 그녀의 발언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을지라도 국민들을 위한다는 미명(美名)하에 모인 이들의 대응으로서는 너무도 어이없는 것이었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 길고도 길었던 촛불의 행렬은 어느새 사라지고 미국의 쇠고기는 결국 한국에 개방되었다. 진정으로 가족을 생각하는 진실된 마음 없이 허울에만 치중한 촛불집회가 결국 남긴 건, 촛불에서 떨어진 촛농으로 인해 노랗게 말라 버린 복구공사를 기다리는 시청 앞 잔디뿐이다.당태종의 선례와 같은 사례(事例)를 우리는 미국의 역사를 통해서도 찾아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아버지, 노예해방해방선언’을 발표하여 수많은 흑인들을 노예 신분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크게 공헌(貢獻)한다. 그 이후 링컨에게는 ‘위대한 해방자’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니는데 그 실상을 살펴보면 이와 전혀 다르다. 남북전쟁(1861~1865) 또한 노예제도의 폐지에 반대했던 남부의 반발로 노예해방을 둘러싸고 벌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노예를 해방시켜 우리와 정치적,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만든다고요? 내 안의 감정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어요.” 이것은 실제로 노예해방에 회의(懷疑)적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의 말이다. 북부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된 아브라함 링컨은 남부지역을 뒤로 하고 북부지역 국민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농업 중심이였던 남부는 공산품의 관세(關稅)를 낮추기를 원하였고, 공업 중시의 북부는 공산품의 관세를 높이기를 원하였는데 이에 아브라함 링컨은 공산품의 관세를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여 버린다. 이와 같은 갈등을 기반하여 ‘무역 정책’을 둘러싸고 남북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아브라함 링컨은 평화로운 화합(和合)이 아닌 전쟁에 이기기 위한 의지만을 키워간다. 이는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도의 문제는 아니다.” 라는 링컨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그는 수세에 몰린 북군의 전세를 뒤집기 위해 전격적으로 노예해방을 선언한다. 백인 군인들의 자리를 대신하여 해방된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흑인노예들은 전세를 역전시키며 결국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이후 미국은 공업국가로서의 당당한 첫발을 내딛게 되고 ‘위대한 해방자’를 통해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은 100년이 넘도록 완전한 참정권(參政權)을 얻지 못한다.이렇듯 우리가 무언인가를 직면하여 판단할 때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여 그 내면의 본질을 정확히 살펴야 함을 보여주는 인물은 당태종과 아브라함 링컨뿐만이 아니다. 그의 동화를 접하지 않고 자란 아이가 거의 이미지를 심어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어린이의 친구는 아니었다. 만년의 병석에서 그를 위한 기념비(記念碑) 건립 계획이 문제되었을 때 그는 자기 동상 주변에 어린이들의 동상이 추가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금하였었다. 또한 그는 여체(女體)에 대한 혐오와 젊은 남성에 대한 선호를 평생토록 지속하였다. 이를 숨기기 위해 그는 몇몇 여성들에게 열렬한 구애 편지를 써 보내었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다른 남성에게 깊이 쏠려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의 일이었다. 안데르센의 절친한 친구들도 이러한 연애편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그러한 방식으로 평생 이중생활을 계속하였다. 국내에서는 표가 나지 않는 품행방정한 생활을 영위하며 어린이의 절친한 친구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한편 끊임없는 탐색(探色)을 위한 해외여행 길에 올랐다. 특히 이탈리아가 그가 즐겨 찾은 행복의 나라였다. 그는 철저한 이중생활을 위해 동성애의 행복을 숨기고 객지생활을 불평하는 편지를 꾸준히 써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대표적 동화인 등은 ‘남과 다른 자신’이라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외적 이미지와 실제적 자기 자신의 커다란 차이가 이런 동화가 쓰여지도록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의 경우에서도 결혼 혐오자가 여성 숭배자로, 자기 중심적 우울증 환자가 어린이들의 벗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우리가 이들의 경우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사물을 판단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릇된 사실을 그것이 진실인 양 온전히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인간은 자신을 높이며 미화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더 좋은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각고(刻苦)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더욱이 권력을 쥐고 있거나, 영향력있는 인물일 경우 이러한 기만의 방법이 더욱 교활할 수 있으며, 그러한 기만의 파
지역사회복지론학번 :이름 :과제 A. 영국 지역사회복지의 역사에서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의 비교 서술 -1. 자선조직화운동(Charity Organization Movement)과 사회사업자선조직화운동이 대두한 186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한다. 그 당시는 산업혁명 이후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각하던 시기였고 기근과 전염병이 만연했으며 빈곤문제가 심각하였다. 개정 구빈법체제 하의 구빈행정은 빈곤문제의 감당에 역부족이었으며 빈곤에 대한 급진주의적 관심과 움직임으로 이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1834년 구빈법의 개정을 통해서 빈곤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노동계층의 빈곤은 해결되지 않았다. 경제적인 위기와 실업으로 많은 자선조직들이 불규칙하게 난립하는 현상이었고 1860년대 런던에만 100여개가 넘는 자선사업기관들이 구호를 남발하고 있었다. 여론은 이러한 자선사업기관들의 구호활동이 대중들을 거지로 만든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래서 조직적 자선을 위한 움직임의 대두로 자선조직협회(COS)가 창설되었다.자선조직협회의 사상과 목적은, 개인은 궁극적으로 빈곤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구호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존중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빈곤한 사람은 그 자신의 생활유지를 위해 그의 모든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관점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도덕적 의무로 보았다. 가난은 개인의 잘못, 게으름, 음주, 도박과 죄가 원인으로 보았으며 우애방문원을 통해 따뜻한 충고와 취업 지원, 돈의 대부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인 성향을 강화시킬 수 있고 자조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공적 빈민구제보다는 사적인 구호기관에 의한 구호활동을 전개하였고 공적인 빈민구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진취성과 도덕성을 약화시킨다는 찰머스의 신념이 있었다. 공적 구호는 아사직전과 같이 극도로 궁핍한 경우에만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은 스스로 자조하거나 그들이 도움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조사한 후에 사적인 재원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고 여겼다. 이들의 목적은 중복구호의 방지를 위하여 여러가지 자선활동을 조정하는 것이였다. 구호서비스가 가치있는 가족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사적 및 공적 자선 조직을 운영하였고 자선단체 상호간의 업무연락을 통한 협력체계를 유지하였다. 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해당 자선단체에 등록시켜 이중으로 여러 자선단 체로부터 구제를 받으려는 직업적인 클라이언트 방지하였다. 이들의 원칙은 자조를 통한 자립, 독립에 있었고 자조와 근면의 가치에 근거한 도덕적 판단기준을 적용하였다. 구제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과 자격이 없는 빈민으로 구분하였고, 구호신청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각 빈곤가족을 개별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곤궁한 개인 중 자존심이 있고 보호받을 가치있는 빈민에게는 친절하게 성의를 가지고 대우하고, 그외의 자에게는 공공기관에서 억압적인 방법으로 취급할 것을 원칙으로 하기도 하였으며, 자선조직협회의 특징은 과학적인 자선개념을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구제기관사이의 업무 중복과 경쟁을 피하고 돈의 낭비를 지양하여 빈민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것이었다. 모든 지역사회의 자선조직들을 대상으로 위원회를 구성, 중앙등록제를 실시하였다. 위원회에 의한 사례 결정이 있었다. 방문자에 의한 면밀한 조사 및 광범위한 사례조사를 실시하여 개별적인 케이스마다 각 개인에게 필요한 분량을 결정하기 위한 우애방문원을 통해 모든 구제신청자들의 사회적 조건을 심사하였다. 사회사업가의 훈련과 유급워커의 고용배치가 있었는데 우애방문원은 빈곤한 가구를 방문하여 빈곤의 원인을 조사하고 판단하며 분류하였다. 도덕적 문제를 가진 빈민들에 대한 상담 및 감화 또한 빈곤의 원인을 도덕적 결함이 아닌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요인에서 찾는 경향이 대두한 것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우애방문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가 있었고, 봉사활동의 전문직화 추구 움직임에 따라 역할이 감소되기도 하였다. 특징으로는 빈민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 것을 말할 수 있다. 빈곤을 개인책임으로 인식하여 능력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고 보는 사회진화론적 이데올로기 관철 기능을 수행하였다. 우애방문원들의 활동은 체계적 교육과 훈련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고 케이스워크로 발전되었다. 그것은 방문구제를 통해 현대적 의미의 사회사업방법론이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애방문원들의 빈곤가정 조사는 사회사업조사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지역단위 자선활동 조직화 및 조정활동으로 자의적이고 선발적인 구제사업의 조정, 합리화할 수 있었다. 자선사업을 전문적 사회사업으로 발전시킨 것을 이들의 의의로 볼 수 있다.2. 인보관운동(Settlement Movement)과 사회사업세틀먼트에서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지역적 접근의 기초를 이루고 진단원조기술을 육성하고 조사활동이나 사회행동의 발전으로 연결시키는 등 사회사업의 근대화 민주화로 이끌어온 활동이다. 지식인들이 도시 빈곤지역에 들어가 직접 생활하면서 하층노동자에 대한 인격적 접촉을 통하여 빈민교육을 실시했으며 생활개선과 자립향상, 지역적 통합을 촉진하며 지역환경이나 제도개선을 실천하도록 하는 사회개량운동의 한 형태로 교육, 복지향상, 지역개선을 도모하였다. Samuel Barnett 목사에 의해 1884년에 런던에 토인비 홀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인보관을 설치하였고 중산층 출신의 개혁가들이 참여하여 빈민의 어려움을 나누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빈민과 접촉하여 상호이익을 가져오도록 하는 사회개량운동을 전개하였다. 목적은 빈민들과 교육받은 계층간의 상호교류를 통하여 계급간의 차이를 좁히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기 인보관 운동가들은 사회개혁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신앙을 가 지고 빈민지역에 뛰어들어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환경과 제도를 개혁하려고 노력하였다. 데니슨 목사는 기독교사회주의자로서 혜택받지 못한 사회계층에게 교육을 통해 도움을 주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고안하였으며 시혜물의 분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동부의 빈곤지역인 스테프니로 가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였다. 성경과 역사, 경제지식을 교육하였다. 극단적인 빈곤상태가 아니면 빈곤티켓을 주지 않았으며 개인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 원조에 열중하였다. 바네트 목사는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화이트 챠펠지역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상당수 주민들이 실업, 질병, 더럽고 열악한 밀집가옥에서 살고 있음을 발견하고 대학생들과 함께 빈민들의 생활을 연구하고 그들의 교육을 도와주고 개인적인 문제를 돕기 위해 대학생들을 빈곤지역에 초청하여 함께 살면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 개발하였다. Toynbee Hall의 목적은 빈곤한 사람들의 교육과 문화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었고,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환경에 관한 정보와 긴밀한 사회적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사회 및 건강문제와 사회입법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였으며 빈민들과 교육받은 계층간의 상호교류를 증진시켰다. 또한 공동활동과 연구를 통해 서로 문화를 공유하기도 하였다. 19세기 말엽까지 사회복지는 가난을 완화시키는데 대부분의 노력을 경주했으나 빈곤의 실질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1880년대 인보관 사상이 대두되었으며 도시민의 생활환경이나 노동조건 향상에 별 관심이 없었던 자선사업에 반대하였다. 그 목적의 보통의 가족의 사회화에 있었고 사회개혁을 추진하여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환경에 개인을 적응시키는 것과 사회환경 을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였다. 3가지 프로그램으로서 여가선용과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근린단체 조직, 가족과 지역사회의 욕구에 관한 사회조사, 법률적?정치적 변화를 이끌기 위한 사회행동이 있었다. 사회조사를 통해 다수의 통계자료를 법률제정에 활용토록 하였고 지역주민들에 대한 아동위생, 보건교육, 소년소녀들에 대한 기술교육, 문맹퇴치, 성인교육 등의 교육사업이 있었다. 체육관을 설치하여 옥외활동을 장려하고 오락, 예술활동을 권장하였으며 인보관을 설립하여 주택, 도서관, 시민회관 등으로 활용하였다. 특징으로는 구제보다는 계층간, 인종간 차이를 인정하고 빈곤의 원인을 제거하고, 도시민의 생활환경과 노동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한 것을 들 수 있다. 인도주의, 박애주의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상류계층인들이 빈민지구에 이주하여 빈민지역을 실지로 조사, 그 지역에 대한 생활실태를 자세히 파악하고 구제의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조력하였다. 사후치료적 방법보다는 사전예방적 접근을 실시하였다. 그들의 관점은 가족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개인은 게으를 수 있으며 그렇다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보관운동의 특징은 강조점은 참여와 민주주의이며, 기존의 사회질서를 비판과 더불어 사회개혁적 입장에서 활동하였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또한 빈민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들의 생활에 어느 정도 동정을 표하였으며, 지역주민과 인보관 워커들간에 토의를 통해 주민들의 욕구와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내고 주민 상호간의 관계를 저해하는 요인을 제거하였다. 지역사람들에게 폭넓은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강좌의 집단토의에 참여함으로써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간의 협조와 배움을 나누는 환경을 증진 시키기위해 노력한 것이 그들의 의의이다.
지역사회복지를 테마로 프로그램 기획학번:이름:1. 노인복지의 개념과 필요성인간의 생에 주기에서 마지막 단계에 해당되는 노년기에는 생리적, 육체적으로 약화되고, 사회적. 경제적인 지위가 하락되며,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 아울러 조기퇴직, 노후생계대책의 미흡, 질병 및 장애발생률의 증가와 이에 따른 보호의 어려움, 주거문제 역할상실과 여가문제, 고독, 소외 등의 문제도 등장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과정에 따른 이동 및 도시화 현상 등으로 가족의 형태가 핵가족화 양상을 띠면서 전통적인 대가족제도와 경로효친사상을 기초로 해 온 노인에 대한 가족부양기능의 약화현상은 노인문제를 더 이상 가족이나 개인문제로 돌릴 수 없는 사회문제로 대두시켰고 이는 국가나 민간부문이 담당해야 하는 노인복지의 필요성을 야기 시켰다고 볼 수 있다.노인복지는 `노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기가 속한 가족과 사회에 적응하고 통합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관련된 공적 및 사적 차원에서의 조직적 제반활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인간다운 생활이란 그 노인이 속한 국가사회의 발전적 수준에 비추어 의식주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사는 것을 뜻하며, 가족과 사회에 적응하고 통합되는 것은 노인이 그가 속할 수 있는 사회적 조직망에서 사회적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이용 가능한 인적 및 물적 차원을 찾아 연결 시켜주거나 또는 보충하여 주며, 사회적 적응에 있어서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아가서 개인의 발전을 위한 욕구충족에 필요한 서비스까지 제공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복지에 관련되는 활동은 공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적차원(민간적 차원)에 있어서의 활동을 포함하며, 그것은 간헐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획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이루지는 활동이어야 한다.2. 프로그램 기획프로그램 명전문노인자원봉사활동을 통한 행복한 각 지역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2 : Happy Maker기관명노인종합복지관프로그램 목적서울시 전문노인자원봉사 활성화를 통한 지역사회 변화 프로그램 “전문노인자원봉사활동을 통한 행복한 서초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 Happy Maker”의 2단계 지속사업으로 전년도의 성과 중 저소득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활동 영역을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노인에게 까지 확대·전문화하여 봉사활동 전문영역으로 확립하고 노인자원봉사자의 역량을 강화, 전문성 있는 노인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지역사회 다양한 노인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더불어 교육 강화를 통한 노인자원봉사자의 역량강화와 지역연계로 긍정적인 노인 상, 즉 노인을 복지 서비스의 생산자로 적극적이고 능동적(활동적)인 이미지로 부각시켜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노인 역할모델을 조직화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인성 ? 지성 ? 영성의 전당과 목 명장애인복지론담당교수학 번성 명과 제 명장애인복지 프로그램1.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관 프로그램 안내1) 학습지원 프로그램① 영어회화교실② 일본어회화교실③ 중국어회화교실④ 방과후학습지도학년당 자원봉사교사가 3명∼5명의 학생들을 학습지도함.과목 : 국어, 영어, 수학⑤ 대면낭독·대필서비스짧은 시간 내에 읽어야할 학습 관련 도서를 자원봉사자의 낭독으로 시각장애인과 대면하여 제공.시험이 있을 경우 자원봉사자가 시험장에 파견되어 시험문제를 낭독, 답안작성.2) 정보화 교육사업3) 재활지원 프로그램① 저시력 아동 사회적응훈련보행훈련, 시기능재활훈련, 화폐개념훈련, 공공시설 이용하기 활동을 통하여 저시력으로 인 해 파생되는 장애를 최소화 함.② 저시력 아동 체육활동③ 저시력 아동 인지활동글개념 습득 및 읽기·쓰기 능력 함양을 통해 학업 성취도를 향상시킴.* 꿈꾸는 한글Ⅰ: 한글 습득 프로그램(기초반)* 꿈꾸는 한글 Ⅱ : 한글 습득 프로그램(중급반)* 꿈꾸는 한글 Ⅲ : 학교 수업 선행학습(읽기·쓰기)4) 단기보호 프로그램시각장애로 인해 사회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중도실명 시각장애인들에게 기초적인 재활교육과정을 통하여 정보접근에 대한 어려움을 없애고, 이동에 대한 불편을 최소화하며, 사회적, 직업적 기술을 습득함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제공함.* 상담 및 사례회의 : 시각장애인의 재활 방법 모색 상담, 재활욕구 강화 상담, 효과적인학습 운영 상담, 친밀한 교육관계 형성, 교육생의 진로 설정 상담,원활한 교육을 위한 사례회의* 점자교육 : 점자이론, 점자감지능력키우기(감각훈련), 점자익히기학습(한글/수학/영어), 점자활용능력키우기학습(정독, 속독, 옮겨쓰기, 작문학습), 점자 읽기능력평가 실시* 보행교육 : 보행이론, 안내보행법, 흰지팡이터치법, 실내보행훈련, 실외보행훈련,응용보행훈련 실시* 컴퓨터교육 : 컴퓨터의 이해, 키보드 익히기 및 기초기능 학습, 응용프로그램 활용* 사회적응훈련 : 고적답사, 도자기공예, 비즈공예, 무료관람 등 다양한 경험과 체험서비스 제공. 산책, 체력단련 등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 직업적응훈련 : 직업능력평가(심리평가/적성검사/체력평가 등), 구직기술훈련(인성교육/직업인식/직업탐색/구직상담 등), 기관방문(서울맹학교 이료전공과,대한안마사수련원 등)* 행사 : 개강식 및 수료식, Workshop(야외활동, 일상생활훈련 등)* 간담회* 동호회지원 및 사후관리(아이프리 동호회 '새벽을 여는 사람들' 운영)* 진로지도2. 복지관 탐방을 하고나서..본관 건물 3층에 위치한 프로그램실에서 사회재활 선생님으로부터 시각장애 및 지적장애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들은 후 몇 가지 학습도구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눈을 감고서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공의 방향을 맞히려 노력해 보기도 하고, 점자로 된 책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인성 ? 지성 ? 영성의 전당 한일장신대학교과 목 명담당교수학 번성 명과 제 명노인에 대한 사례연구1. 신상정보① 이름 : 강 ○ ○② 생년월일/나이 : 1944.09.08 / 64세③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④ 성별 : F (a Female)⑤ 종교 : 불 교⑥ 직업 : 상 업⑦ 결혼 여부: 기 혼⑧ 진단명 : alchol - induced Dementia⑨ 입원경로 : 남편 사망후(30년전)부터 알콜 다량섭취(알콜리즘), 15년전 CVA로 인한 Dementia진단받음. 아들,며느리와 걸어서 입원하심.⑩ 입원일/사례개시일: 07.11.01 / 08.03.24⑪ 병역 : 해당 사항 없음⑫ 의료보장 형태 :⑬ 경제적 상태 : 중 상⑭ 주거형 : 주 택⑮ 정보제공자 : 환 자?정보신뢰도 : 중?약물복용상태: Ativan 0.5-0-0.5mg (Antianxiety Agents), levopride 1-1-1mg(Agents for Gastric Emptying), Aricept 5-0-0-mg(Neurodegenerative Disease Drug)?주치의 : 최 종배2. 문제점 제시(1) client가 제시한 문제“ 난 한글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나 ”- 어릴 적 학교를 다니지 못해 한글을 배우지 못함. 20살에 다니던 회사에서 한글을 배우려고 하였으나 배움을 시작한지 10일만에 문제가 생겨 중단됨.( 기간 - 20살때부터 ~ 현재까지 )- 한글을 읽고 쓰는 일이 생기면 상당히 위축됨.(2)Worker가 제시한 client의 문제-고집이 너무 쎄시고 자기 주장이 강하여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음.(client에게 Palm eczema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손에 물을 묻히며 청소하려고 하여 주의를 주고 자제하도록 하였지만 말을 듣지 않고 청소를 고집하심.)3. 현재의 병력2004~2006년 5월경 치매와 뇌졸중으로 경기도립노인전문병원(본원)에 입원.2008.7월경 부천가람병원 입원2008.11.01 부천가람병원에서 4개월 정도 생활하시다가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이 많아폐쇄병동으로 옮기려다 본원에 입원.2008.11.01 본원 재입원2008.11.04 다른 병실을 다니며 상관하는 모습을 보임2008.11.21 자신이 청소 안하면 병실이 지저분해진다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임(손에 물을 묻히면 피부질환이 안 낮는다고 해도 본인은 청소안하면 못 산다고 함.)2009.08.02 단기기억력 이상 있음. 의사결정 및 표현(스스로 일 찾아서 하려는 모습 이해시키는 능력가능.)2009.08.30 대걸레 가지고 병실을 돌아다님. 거동자유, 스스로 행동하나 과다행동으로 이해 감독필요2009.09.13 병실 변경 요구함. (옆 환자와의 트러블)4. 환자의 성장배경(1) 아동기 & 청소년기 : 전라북도 홍천군에서 농사하는 집안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남. 맨 위에 쌍둥이가 있었으나 너무 일찍 죽어 특별한 기억을 하지 못함.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일을 많이 도왔으며 어머니가 농사일이나 시장에 가시는 날이면 혼자 물을 기어놓고 마당에서 간단하게 노는 등의 일을 하였다고 함.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음.(2) 초기 성인기 : 16살에 작은 언니를 따라 서울 영등포로 귀경함. 빼어난 미모로 여러 남성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연애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함. 그러나 회사를 다니던 도중 자신을 엄청나게 쫓아다니는 남성과 우여곡절 끝에 원하지 않은 결혼을 22살에 하고 남성의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살았다고 함. 하지만 작은언니가 대구에 쫓아와 돈을 주었고 그 돈으로 방을 얻어 시부모님과 따로 살다가 작은언니가 사는 영등포로 올라와 살았다고 함.(4) 중년기: 처음에는 옥수수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해삼, 멍게 등을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함. 그리하여 8층 집도 짓고 1남 2녀의 자식을 두고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다고 함. 남편은 이발소를 그만두고 도박을 하며 놀았으며, 환자는 발병 직전까지 장사를 하였다고 함.(5) 노년기 : 배우자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중 갑작스레 사망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함. 그러다가 아들과 며느리의 권유로 병원에 처음 오게 되었다고 함.5. 가족관계①아버지(강인화): ‘법 없이도 사실 분’이라고 한다. 매우 정직하시며 온유한 성격이신 아버지는 어릴적부터 막내인 환자를 이뻐하시고 한번도 매를 든적이 없다고 한다.②어머니: 성격이 아버지와는 반대로 불같으시고 환자도 이런 어머니의 성격을 닮았다고 한다. 88세에 돌아가시고 형제들을 차별없이 똑같이 이뻐해주셨다고 한다.③큰언니&큰형부 (전주, 농사지음) : 부모님의 농업을 이어받아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살아계시고 환자와 나이차이가 많이 났지만 매우 아껴주었다고 한다.④작은언니 (48세 사망, 서울)& 작은형부 : 작은 언니는 “넌 시골에서 농사짓게 할 순 없다”며 환자를 서울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이잣놀이를 하여 돈을 엄청나게 벌었고 영등포에서 굉장한 멋쟁이로 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술을 먹다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또한 작은 형부는 언니의 두 번째 남편으로 이북사람이였지만 환자를 매우 아끼고 이뻐하였다고 한다.환자도 형부의 소탕한 성격 때문에 형부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⑤오빠 & 올케 :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며, 올케는 환자의 친구로 서울에 오기 전 같이 수를 놓았다고 한다. 올케와는 매우 허물없이 지냈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⑥남편 (1977년 사망) : 환자는 남편과의 원치않은 결혼을 하였지만 결혼 후 가정을 꾸리면서 많은 정이 들고 서로 많이 아껴주었다고 한다. 남편은 직업이였던 이발소 일을 관두고 집에서 놀았으며 환자 자신이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남편은 허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하였는데 의료사고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한다. 환자는 남편이 죽기 전까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