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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M] CRM(고객관계관리) 평가A좋아요
    목 차CRM의 정의 CRM의 변화 DBM 과 CRM CRM 도입의 필요성 CRM 의 핵심 요구조건 CRM의 기대효과 CRM의 성공전략 CRM의 사례CRM의 정의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 고객관계 관리선별된 고객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 고객과 장기적으로 긴밀한 관계 유지를 통하여 평생 고객화하고 고객 생애 가치(LTV: Life Time Value )를 향상시켜 고객 및 기업 만족을 극대화 하는 것고객에 대한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적합한 차별적 제품/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마케팅/경영혁신 활동학술적 정의CRM의 구조마케팅 / 고객관리분석 및 해석데이터 베이스****기능적 측면의 구조CRM 전략수립기반구조 구축Action 계획Action 실행Action 평가학습과정적 측면의 구조CRM의 정의판매 (1970년대)CS (1980년대)DBM (1990년대)CRM (90년대 후반)대 고객 관점수동적 구매자선택적 구매자개성화, 다양화된 구매자능동적 파트너고객과의 관계전체 시장에 일방적 공급(배급)고객 만족도(CSI) 측정, 일방적 관계그룹화된 고객과의 일방적 관계개별 고객과 쌍방향 의사소통고객 관리단순 영업 위주영업과 판매 중심 서비스IT 기술팀 위주전사적 관리기업의 고객관리 변화 : CS - DBM - CRMCRM의 변화DBM과 CRMDBM과 CRMCRM 도입의 필요성기존의 마케팅 방식의 한계. 뚜렷한 방향 및 본질적인 필요조건을 정의하지 못함. 변화하는 시장환경을 따라잡는데 급급함 고객에 대한 요구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고객의 요구는 급속히 변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음. 지속적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의 부재. 고객에 대한 정보가 있어도 어떻게 서비스를 할지, 어떠한 방향으로 고객을 만족시킬지, 대책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투자라도 무용지물. 전사적이고 고객 지향적이어야 함. 사내 어느 부서에 근무하는 그 누구라도 항상 고객을 위해, 고객에 대해 준비해야 함.CRM도입의 필요성CRM 핵심요구 조건CRM 핵심요구 조건고객정보 통합 데이타베이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고객, 상품, 거래등에 관련된 데이터를 데 웨어하우스 관점에 기초하여 통합 고객에 관련된 전사적인 정보의 공유체계가 확립 고객특성을 분석하기위한 데이타마이닝 고객 개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한 모형을 구축 (Predictive Behavioral Modeling) 통합채널을 통한 고객과의 상호작용 고객이 웹을 사용하거나, 노트북에서 SFA(영업자동화, Sales Force Automation) application을 사용하는 영업사원을 통하거나, 또는 콜센터 직원을 통해서 조직과 상호작용. 일관되고 효율적인 상호작용 웹기반 기능지원 웹은 e-business를 위한 채널 통합된 워크플로우 문서 및 작업항목의 경로 지정으로 자동화된 업무 처리CRM의 기대효과기대효과 우수고객 유지 및 이탈 고객 줄이기, 잠재고객 활성화, 고객 충성도 증진, 신규 고객의 획득, 고객신용도 상승, 교차판매, 재구매(Re-Sell), 판매액 및 단가 증대(Up-Sell) 틈새시장 개척, 가망고객 탐색, 비용절감, 보다 향상된 영업망 형성,판촉 효율 증대, 고객 가치 파악, 품질의 개선, 고객만족 증대CRM의 기대효과CRM 성공전략123456Customer Acquisition 보다 Customer RetentionCustomer Satisfaction이 아닌 Customer Loyalty의 구매 결정력시장 점유율 보다 고객 점유율규모의 경제 보다 범위의 경제마케팅 부서 차원에서 전사적 차원으로구축과 재구축의 끝없는 순환 고리CRM 성공전략CRM 사례`Brent Frei, President and CEO오닉스 소프트웨어의 공동 창시자, 1994년에 CRM을 도입하므로 오닉스 소프트웨어는 기하 급수적으로 성장 CRM은? - 잠재적인 그리고 현재의 소비자와 사업자의 마케팅, 세일, 서비스에 대하여 중요하게 표현. (CRM의 목표는 기업의 수준에서 최대한으로 가능한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소비자와 기업가의 만족, 세입, 회사능률을 가장 최적화 한다는 목표) - 성공적인 CRM은 완벽한 조직의 분배를 통해 모든 관계의 전체적인 접근을 필요 그러나 그전에 기업은 CRM시스템 또는 심지어 CRM시스템의 효과를 분석브렌트 프라이가 정의한 CRM 회사목표는 2년~ 5년 정도의 전략적인 목표를 명백히 정의 해야한다. 즉 목표는 소득, 마케팅 분배, 그리고 목표의 한계를 포함 목표는 “소비자 중심의 회사” 또는 “서비스의 차이” 로 기업의 스타일에 영향. 즉 목표가 달라짐에 따라 회사의 방침이 달라지기 때문. 프로그램 발단은 전형적으로 “적정의 시가에 판매하는 것” 과 “소비자의 기본(base)에 초점을 확대하는 것” “소비자의 만족을 향상하는 것” 이것들의 발달은 특별한 측정을 통하여 성공적인 방향을 명시해 줄수있다. 즉,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수 있기 때문. 프로그램 발단은 각 부분의 계획에 영향을 받는다. 각 부분의 계획은 조직내의 업무의 구조형태의 과정과 절차를 말함 예를들어 이메일 답변시스템, 소비자 스스로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것, 짧은 시간내에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을 말할수 있다. 각 부분의 계획은 기술의 영향을 받는다. 기술은 사업의 과정과 개인적인 것의 모든 것을 자동화가 가능하게 함. 즉 통합된 기본의 문제 해결을 기술 가능한 사업의 목표성취를 가능하게 함.CRM 사례`CRM 사례`시티뱅크는 「한번 고객을 평생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가동함. 시티뱅크의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물건을 구입한 후, 30일 이내에 그 가격보다 더 저렴한 곳을 고객이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면 차액을 돌려줌.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할인점이 고객확보의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시티뱅크는 가격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금융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수행한다는 점이 특징임. 이외에 시티뱅크 카드로 물건을 구입한 후 도난당할 경우 그 제품 값 전액을 돌려주기도 하고, 분쟁이 발생하면 일단 고객에게 환불조치를 한 후에 판매자와 분쟁을 해결함. 이 때문에 고객은 다른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시티뱅크의 것만을 사용하게 됨.시티뱅크의 고객 고착 프로그램CRM 사례`Stat Oil-Norway노르웨이의 국영 기업체로서 석유류 관련 모든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기업. 스칸디나비아 전체에 1600여개의 주유소를 보유, Statoil은 유류 제품과 관련된 고객들을 유지하여 모든 제품과 관련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고객관리를 가능케 하고자 하였다. 고객정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실시하여 Statoil에서 발행하고 있는 프리미엄클럽 카드시스템을 철저하게 재정립하였다. 기존에 구축되어 있었던 데이터 웨어하우스는 고객세분화를 실시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제공하였다. 고객에 대한 철저한 분석작업 즉, 고객세분화 작업의 실시는 프리미엄클럽 가입자의 20%가 기업의 수익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프리미엄클럽은 기존가입자에서 약 100,000여명을 퇴출시킨후 프리미엄클럽 플러스를 신설 즉, 기존의 프리미엄카드와 차별화된 고객관리를 실시. 이러한 결과는 엄청난 마케팅비용을 감소시켰으며, 매 분기당 50만부를 발간하는 프리미엄클럽 플러스 매거진의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다. 또한 우수 고객들을 차별화되게 관리함에 의해서 우수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가 있게 되었고, 만족도의 증가는 Statoil로 하여금 스칸디나비아에서만 연간 수백만불을 절약할 수 있게 하였다.Robert Thompson, President, Front Line Solutions, IncFront Line Solutions, Inc.,설립자이자 회장.Robert Thompson가 정의한 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CRM)은 장기의 가치를 최적화하기 위해 고객을 선택하고 관리하는 사업 전략. Customer-centric 사업 철학과 효과적인 매매하는 지원과 판매와 서비스 과정으로 문화를 요구CRM 결론`기업 자신의 업종과 능력에 맞는 CRM을 도입. 이익 창출을 감안하여 단계적으로 CRM을 도입. 결과에 대한 성급한 기대를 금물. 민감하고 지속적인 고객관계관리가 필요.결 론{nameOfApplication=Show}
    경영/경제| 2005.07.11| 16페이지| 1,000원| 조회(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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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읽고...처음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란 책을 접했을때 우선 콘스탄티노플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콘스탄티노플이 비잔틴 제국의 수도란 것을 알게되었고 더욱 나아가 지금의 터키의 한 도시인 이스탄불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또한 이 책을 읽어 나아갈수록 이제껏 역사의 흐름만 줄줄이 써내려갔던 역사책과 달리 한편의 소설같이 읽으면서 읽는 내내 흥미를 자아내고 당시 상황에 처한 각 개인의 실존적 고민까지 담아내려고 하였던 시오노 나나미의 뛰어난 감각을 보고 느끼며 점점 역사에 한 현장에 서있는 듯 그 시대의 역사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새로운 로마제국의 수도가 된 후로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웅장한 모습으로 당당히 제국의 수도로써 군림해 온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의 20세의 젊은 술탄 메메트 2세에게 함락 당하는 모습을 보며 술탄 메메트 2세가 나와 비슷한 나이에 어마어마한 큰 대군을 이끌고 한시대를 풍미했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했다는것에 놀라게 되었다.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메트 2세는 매우 야망적이고 강력한 군주였다.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은 유럽을 압박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대제국이었던 지난 추억만 간직하고 있을 뿐 이제는 콘스탄티노플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약간의 영토만 갖고 근근히 생존해 있는 비잔티움 제국은 언제 함락될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메메트 2세가 보스포루스 해협 연안에‘아나돌루 히사리’가 있는 지점 맞은편에‘루멜리 히사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아마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벽을 파괴할만한 강력한 대포를 만들수 있다는 헝가리인 우르반이란 사람이 메메트 2세에게 나타나 그를 사로잡았고 그는 우르반을 고용하고 대포를 만들게 함으로써 더욱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공격이 다가왔음을 알수가 있었다. 여기서 우르반이란 헝가리 사람이 콘스탄티노플에 먼저 다가갔지만 콘스탄티노플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 못하고그를 받아들여서 대포를 만들었다면 콘스탄티노플의 군사력은 더욱 막강해졌을 것이고 삼중 성벽으로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였던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이 투르크군에게 쉽사리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의 위기를 알고 베네치아공화국에 원조를 요청하여 베네치아공화국에서는 트레비사노가 이끄는 갤리선 두척을 보냈지만 베네치아공화국이 투르크간의 관계 때문에 갤리선을 두척밖에 못보낸던 점과 원군을 요청하러 각국에 보낸 사자들도 낭보를 가지고 돌아온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 그리고 가장 믿음직으러웠던 헝가리 조차 투르크와 동맹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서 콘스탄티노플이 생존 할 수 있는 기간의 한계가 서서히 보여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총 병력 16만일지 20만일지 추정하기 힘든 강력한 포병대까지 갖추고 있는 메메트 2세의 공격에 대해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해 적에 맞선다. 16만의 대군이 성밖에 포진해 있다는걸 보면 기분이 어떨까란 생각을 해봤다. 아마도 아주 많이 겁이 났을 것 같은데 숫적으로 엄청난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군대와 맞서서 싸웠던 7천명 밖에 안되는 콘스탄티노플의 병사들이 대단해 보였다. 투르크에 대항하는 콘스탄티노플의 병력은 겨우 7천명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정말 병력 숫자만 봐도 이건 분명 투르크의 압도적인 승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차이가 많아 보였다. 그 대군을 전부 이끌고 공격한다면 하루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될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4월 12일 처음으로 투르크군의 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수비군측은 탄환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만든 가죽이나 양털을 쑤셔넣은 주머니를 만들었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방법이 있다는것에 흥미로웠지만 투르크군의 대포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하지만 대포를 발사하는 투르크군도 대포의 조작에 애를 먹고 있었고 한번 발사할때마다 대포는 크게 요동칠 뿐만 아니라 토대에서 굴러떨어지는 일도 있었다.지만 이 일곱 발의 포탄이 준 피해는 다른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준 피해를 다 합친 것을 능가할 정도로 정말 강력하였다. 대포의 힘은 좋았지만 그 당시 시대에 이러한 큰 대포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아직 기술이 받쳐주지 못하여 대포를 다루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이런한 투르크 공격에서도 콘스탄티노플은 파괴된 성벽을 매일 복구해서 성벽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콘스탄티노플측에서 성벽을 매일 복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란 생각을 했다. 이렇게 힘들게 하는 대포가 자기들이 문전박대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했을것이다. 여기서 보여 주듯이 기회란 올때 잡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여러 요소들을 보아 전쟁 하루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꺼라 생각했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투르크군의 총 공격을 막아내고 어마어마한 대포의 위력에도 콘스탄티노플을 지켜내며 서로 막상막하 인듯한 전쟁이 되가고 있다는것에 놀라게 되었다. 여기서 전쟁은 꼭 군사력만가지고 안된다는 것을 느꼈고 군사력 못지않게 전략과 전술도 많이 필요하고 전략과 전술이 잘 갖춰져 있다면 숫적 열세도 충분히 이겨낼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서로 공방전만을 계속하다가 콘스탄티노플에게 희망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해전에서의 승리였다. 그 동안 교황이 자금을 내어 조달한 무기와 탄약을 실은 세 척의 제노바 배는 강한 북풍으로 인해 에게 해에 있는 키오스 섬의 항구에 발이 묶여있었는데 세 척 모두 대형 범선이어서 역풍을 안고 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남풍이 불기 시작하자 바로 다르다넬스 해협을 향해 북상하기 시작했고, 해협 근처에서는 황제의 명으로 식량을 실은 그리스 배와 마주쳐서 함께 네 척이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들어서게 되고, 콘스탄티노플 근처까지 온 네 척의 함선들은 투르크군과 교전을 치르게 되는데, 여기서 투르크군들의 배 보다 뛰어난 제노바인들의 훌륭한 항해 기술로 압도적인 수의 투르크 함대는 했고 그들이 금각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도 못한다. 100여척의 투르크 배가 네 척의 배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숫적으로 엄청난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 이 사건을 보고 정말 놀라웠고 이런일이 과연 정말 가능한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혹시 역사의 허구가 아닌지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콘스탄티노플은 투르크군를 상대로 이길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해전의 패배로 메메트 2세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이 사건으로 인해 메메트 2세는 해군력의 열세를 만회할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육상을 통해 함대를 금각만 내로 진입시키는 일이었다. 투르크함대가 금각만 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콘스탄티노플 측에서는 작전회의를 하였고 마침내 베네치아 함대의 소수정예로 야습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결정된 다음날 야습을 하기로 계획을 잡았으나 이 소식을 들은 제노바측에서 자기네들도 동참하게 해달라고 하며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야습을 28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를 수락한게 크나큰 실수였다. 어디를 가나 스파이는 있는법이므로 갈라타 거류구에 사는 제노바인들 중 술탄과 내통하는 사람이 계획을 알고 투르크 측에 정보를 제공한다.결국 야습은 콘스탄티노플의 참패로 끝나게 되었다. 이 결과로 투르크 함대는 더욱 수비를 견고하게 하며 금각만 안에 둥지를 틀게되었다. 무슨일이든지 때가 있는 법인데 그 때를 놓친 이유로 해상전에 이어 콘스탄티노플은 또 한번의 승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물거품이 되었고 또한 투르크군의 사기를 완전히 꺽어서 투르크군에게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메트2세는 콘스탄티노플의 육지 쪽 성벽과 금각만 쪽 성벽이 만나는 지점 앞 해상에 부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부교에 대포를 설치하였는데 이콘스탄티노플측에서는 상당히 위협이 되는 일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지금까지 금각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소수의 수비병만을 배치해 두었지만 더 큰 문제는 콘스탄티노플이 성으로 고립되어 있다 보니깐 점점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원군을 요청하는 사신을 베네치아로 보냈고 베네치아에서는 그 요청을 받아드렸고 원군을 콘스탄티노플로 보냈지만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지게 되었다. 하지만 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못들은 콘스탄티노플은 날이갈수록 점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사기가 떨어지게 되었다. 원군과 콘스탄티노플 둘다 서로가 얼마나 필요하고 급한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같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전화 한통으로도 소식을 접할 수가있는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정말 얼마나 답답했을지 알수가 있었다.계속되는 투르크군의 총 공격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삼중 성벽은 많이 망가지고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투르크군은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뚫지 못했다. 결국 메메트 2세는 지하에 갱도를 파서 성벽까지 파고 들어가 화약으로 성벽을 날려버리는 계획을 세우고 세르비아 은광에서 갱부 일을 한 자들을 이용해 갱도를 파 들어가기 시작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측에서 이 일을 알아채고 갱도를 파는 것이 발견된 하루 만에 콘스탄티노플측 기술자인 독일인 그란트가 인솔하는 그리스군은 역으로 파고 들어가 공격해서 투르크군을 격파하게 된다. 하지만 투르크군은 또 거대한 공성탑을 건설하여 공격을 가해오고 이는 비잔틴 측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이에 콘스탄티노플 군은 결사대를 내보네 공성탑을 폭파시켜 버린다.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성벽을 뚫기위해 메메트 2세는 많은 노력을 했지만 계속되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고 이것을 보며 콘스탄티노플의 내부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 투르크군에 대항해 이렇게 까지 버틴 점에 대해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은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근처에 있을꺼라고 생각한 원군 베네치아 함대에게 급박한 상황을 알려 주려고 사자를 파견한 일이었다. 그러나 몇일뒤 도착한 사자에게선 희망이 아닌 절망적인
    독후감/창작| 2005.07.11| 8페이지| 1,000원| 조회(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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