抵抗詩人 尙火 李相和 論목 차Ⅰ. 1920년대 시문학1. 시문학 개관 ‥‥‥‥‥‥‥‥‥‥‥‥‥‥‥‥‥‥‥‥‥‥‥‥‥‥ 1쪽2. 특징 ‥‥‥‥‥‥‥‥‥‥‥‥‥‥‥‥‥‥‥‥‥‥‥‥‥‥ 1쪽3. 시문학의 양상 ‥‥‥‥‥‥‥‥‥‥‥‥‥‥‥‥‥‥‥‥‥‥‥‥‥‥ 1쪽Ⅱ. 이상화1. 들어가며 ‥‥‥‥‥‥‥‥‥‥‥‥‥‥‥‥‥‥‥‥‥‥‥‥‥‥ 4쪽2. 생애 ‥‥‥‥‥‥‥‥‥‥‥‥‥‥‥‥‥‥‥‥‥‥‥‥‥‥ 4쪽3. 작품분석 ‥‥‥‥‥‥‥‥‥‥‥‥‥‥‥‥‥‥‥‥‥‥‥‥‥‥ 7쪽4. 문학사적 의의 ‥‥‥‥‥‥‥‥‥‥‥‥‥‥‥‥‥‥‥‥‥‥‥‥‥‥ 19쪽참고문헌 ‥‥‥‥‥‥‥‥‥‥‥‥‥‥‥‥‥‥‥‥‥‥‥‥‥‥ 20쪽Ⅰ. 1920년대 시문학1. 詩文學 개관3.1 운동, 좌익 이데올로기의 등장, 본격적인 서구 문예사조의 유입 등이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3.1 운동의 실패로 민족적 좌절을 겪었으나 일제가 '문화정치'로 전환함으로써 1920년 와 가 창간되었고, , , 등 동인지와 종합지가 간행됨으로써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었고 전문 문학인의 등장으로 문학적 기반이 확립되었다.2. 특징1)문학적인 저변 확대일제의 문화정책으로 1920년대「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었고,「창조」를 비롯한 「백조」, 「폐허」, 「장미촌」등의 문학동인지가 속출하면서 전문적인 문인들이 등장하여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었다.2) 본격적 현대 문학 모색현대 문학의 다양한 경향을 실험하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현대문학을 모색했다.3) 예술로서 문학을 추구문학을 계몽의 수단으로부터 분리시켜 예술 본연의 문학으로 위상을 정립시켰다. 이 시기의 전반기에는 낭만주의의 경향이었으나, 후반기에는 이를 극복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사실주의의 경향을 보였다.4) 계급문학이 대두하고 국민문학파 등장좌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신경향파'가 등장하자,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국민문학파'가 등장하여 '신경향파'를 계승한 '카프'와 대립하였다.3. 시문학의 양상1) 특징① 서구의, 추천제를 둔문예종합지.민족주의 경향. 1936년 폐간.Ⅱ. 李相和1. 들어가며)이상화가 주로 활동하였던 1920년대 식민지 시기 한국의 근대 시문학은 그 이전의 시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며 전개되었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이 시기는 서구의 낭만주의 시로부터 자극을 받은 ‘외래지향의 시’와 민요와 시조의 영향을 받은 ‘전통지향의 시’, 그리고 신경향시 혹은 프로 시로 불린 ‘이념지향의 시’가 대거 등장하는 등 이전의 ‘개화기 시가’와는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다채로운 시적 경향이 나타났다.이상화는 식민지 시대 한국 근대시의 전개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가 낭만주의를 표방한 『백조』창간호에 처음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다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는 정항적인 성격이 강했던 『개벽』에 왕성하게 시를 발표하였고, 이후 『문장』폐간호에 마지막 시를 발표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이상화의 시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대체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초기 「나의 침실로」의 내면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가 후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외면적이고 저항적인 세계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시적 여정을 현상적인 변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를 가져온 내적 동인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기존의 논의들은 그 변화의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한 시인의 시세계가 192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급격한 변모의 양상을 보인다고 서술함으로써 지속의 측면을 간과해 버리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본 자료에서는 1920년대 시문학의 복잡한 사적 전개 과정에 유념하여 지속의 측면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식민지 치하 우리 근대 시문학 전개의 한 단면을 일정한 체계 하에서 조망해 보려 한다.2. 생애)생애작품19014월 5일 대구부 본정 2정목(현 중구 서문로2가)12번 침실로」가 수록 됨.교남학교 교가 가사 문제를 가택 수색을 당하여 자신의 시고와 보관 중이던 고월 유고까지 압수당함.1941시「서러운 해조」(『문장』25호)19433월 박돈수와 빙허 따님 현화수 혼사를 주선했으나 병고로 혼례식에는 참석치 못함.3월 말 대구 도립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상경.4월 25일 자택에서 운명.3. 작품분석1) 초기 시 - 1920년대 관념주의가) 초기 시의 시대적 배경그는 19세인 1919년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백기만 등과 함께 학생운동을 배후에서 조종 하다가 발각되어 서우로 피신할 만큼 식민지 현실에 대해 강한 저항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나, 3.1만세 운동의 실패는 그의 현실적 관심과 외면지향성을 일시적으로나마 내면으로 침잠(沈潛) 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울분을 삭히고 한탄을 하던 중 서구의 낭만주의를 수용하여 유미적인 ‘침실’의 세계로 도피)한다.자신의 우울한 내면과 시대적 고통을 서구의 세기말적 정조에 실어 표현하는 이러한 시적 경향은 이상화가 22세 되던 해인 1922년 프랑스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불어 공부를 하게 되면서 더욱 심화된다.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세기말적 사상을 식민지 종주국 수도에서 간접적이나마 체험)하면서, 이 무렵에 쓰여 진 작품들이 『백조』1, 2호에 발표된 「말세의 희탄」「가을의 풍경」「나의 침실로」「이중의 사망」등의 이른바 퇴폐적 감상주의의 시편들이다.나) 초기 시 경향시편들은 거의가 퇴폐적이고 허무적이며 관능적인 것이 그 특색으로 되어 있어서 1920년대 초기의 시화 그 경향을 같이하고 있으며, 이 시기 이상화 시인의 시들은 감정의 과잉노출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1920년대의 관념주의시의 흐름이 국권상실이라고 하는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어느 문화에도 동일화 될 수 없었던 자기상실의 심리적 압박감에서 유래한다. 또한 당대의 문학적 환경, 즉 상징주의나 러시아의 우울문학에 편승하여 그 깊이를 더하고 있다.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서만 있고 현실에는 없다는 허무의식는 시인의 감상성과 관능성을 가장 뚜렷이 보인 작품으로 자유분방한 호흡을 위해 퇴폐적인 표현과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배경을 설정함으로써 기존의 규범과 인습에 저항하고 있다.2) 중기 시 - 1925년 이후의 현실지향가) 중기 시의 시대적 배경1924년 귀국 후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공허한 환상에서 벗어나 왜곡된 현실을 직시하고 요기 있게 노래하는 적극적인 열정을 갖게 된다.초기에는 주로 동인지『백조』에 작품을 발표하였지만, 카프에 가입한 이 시기 이후부터는 발표지면을 바꾸어 주로 『개벽』이나 『조선일보』『시대일보』등 시류에 민감한 일간신문에 시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본격적으로 평문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첫 단평은 동아일보 1924년 7월 14일에 실린 「선후에 한마듸」라는 글인데, 이 평문 이후 그는 주로 『개벽』과 일간신문 지상에 ‘민중’과 ‘생활’을 강조하는 평론을 기고하였다.이러한 시인의 입장 변화는 주지하다시피 이상화의 귀국 후 문단의 주도적 담론이 변화했기 때문인데, 1920년대 중반기를 고비로 새로운 경향의 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카프 가입 후 이상화 역시 『백조』로부터 『개벽』으로 지양된 이러한 담론의 변화를 일정 부분 수용하였으며, 그 새로운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감상성 낭만주의를 버리고 궁핍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시를 발표하게 된다.나) 중기 시 경향1922~3년에 걸쳐 일본에 유학하였는데, 그 때 관동대지진을 경험하고 일본 동경과 비교되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대해 인식하게 되며, 1924년을 전후한 국내 각처의 소작쟁의, 노동운동, 대량의 간도 및 만주 이민 등을 경험함으로써 민족을 발견하고 민족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쓰게 된다.1925년 경향파 문학에 가담하게 되고 그의 시 경향에 일대 획을 긋게 되는데, 프로문학파들이 주장하는 계급투쟁이나 민중해방, 이데올로기 편향성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다만 식민지 조국 동포들의 처절한 삶, 따뜻한 민족애를 표현하고 있으은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는데, 낭만적 사고 특유의 몽상이나 허위에서 벗어나 지금 이곳의 열악한 현실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다는 의미 이외에도,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외래 사조의 영향으로부터 탈피하여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독자적인 안목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진정한 현실성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차원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와 같은 이상화의 진정한 현실성의 회복은 후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일정 부분 성취되었다.나) 시에 나타난 관념과 현실「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경향성이나 저항성을 본다면 다른 후기의 작품들 보다 강도가 낮고 열정과 환상적 도취는 오히려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당대가 요구하는 저항이라는 현실감과 시가 갖추어야 할 자체의 미적 특질을 고루 갖추고 있다.다) 작품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