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진 ? 선봉무역지대 (1991년 12월 지정)1) 추진배경북한은 지난 1991년 12월에 체제 유지와 심각한 경제난 해소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나진 ? 선봉 지역을 자유경제무역대)로 설정하여 경제특구를 통한 개방 모형을 제시하였다. 지대 선정의 배경은 나진 ? 선봉이 평양과 멀리 떨어져 있어 제한적 개방의 상징적 실험장 및 선전장뿐 아니라, 시장경제와 계획 경제간의 완충 지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2) 개발계획과 실적북한은 나선지대를 ① 동북아의 국제적인 화물중계기지, ② 관광 ? 금융 ? 서비스기지, ③ 수출가공기지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갖춘 국제 교류 거점 도시로 발전시킨다는 목표 를 세우고 이를 위해 2010년까지 2단계 개발 계획을 수립하였다.)구분제1단계 (당면과제 : 1993~2000)제2단계 (전망단계 : 2001~2010)개발목표* 국제 화물 중계기지* 수출 가공 기지 건설* 종합적, 현대적인 국제 교류 거점도시 (제2의 싱가포르)중점사업* 나진 지역을 거점 육성* 중국, 러시아와의 중계 수송망 체계 형성* 항만 하역능력 확장 (3000만톤 규모)* 가공수출산업기지형 공단 조성* 수출가공지대 형성 및 국제관광기지 개발* 항만 하역 능력을 1억톤 규모로 확장* 중계 무역, 수출가공, 제조업, 금융, 서비스, 관광기능을 종합한 지대 건설* 21C 국제 수준에 상응하는 시설과 산업구조, 제분야 서비스의 고도화, 현대화 추구도시건설* 인구 35만명 규모 (1996년 13.9만명)* 나진지역 중심개발, 선봉지역에 확대* 나선지대 주변에 10개의 지역별 공업지구를 배치하고 신흥공업지구를 우선개발* 인구 100만명 규모* 후창, 신흥공업지구 등 나진 외곽 지역과 사회, 홍의공업지구 등 두만강 지역에 신흥도시 개발이외에도 나선지대를 수출 가공 기지로 건설하기 위해 10개의 지역별 공업 배치 계 획을 작성하여, 제1단계에 국제 화물 중계 기지로 개발한 후 점차 중공업과 경 공업이 적절히 조화된 수출 가공 기지로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북한은 나선지대 개발 계획 이행을 위해 외국인 투자 관련법을 지속적으로 제정, 개정하는 한편, 1995년부터는 김일성 유훈 사업의 일환으로 별도의 대내외 투자설명회와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벌였다. 특히, 1997년 6월에는 통화와 환율 체계변경), 자영업 허용과 자유시장 개설, 독자적인 관리운영(독립재산제 실시), 외국기업들의 투자 ? 무역업무 지원 차원에서 인재 개발을 위한 ‘나진기업학교’ 개설, 행정 절차 간소화 등 나선지대 활성화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는 사적 소유와 시장 원리를 인정하고 경영 계획의 수립, 판매, 가격 결정까지의 모든 경영 활동에 대해 자율성과 책임 경영을 강조하는 획기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음. 또한, 중앙에 의해 행정 지도 ? 통제되던 종전과 달리, 나선지대를 여타 지역과 철저히 구분하여 중앙계획경제와 분리된 시장경제 지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특구 의미를 가진다.)이로 인해 1996년 한 해 동안에 관련 법 ? 규정은 총 21개나 새로 제정되었고, 투자 집행 실적도 1991~96년까지의 83.1%를 차지할 만큼 급속히 늘어남. 1996년 9월의 나선 포럼에서 2억 8500만 달러의 계약이 성사되었고, 이후 계약고가 계속 늘어나 1997년말 현재까지 총 111건에 7억 5077만 달러의 계약 체결과 5792만 달러의 집행 실적을 보였다.)3) 긍정적 측면 (성과)통화와 환율 체계 변경, 자영업 허용과 자유시장 개설, 독립채산제 강화 등 나선 지대 활성화 조치의 대부분은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의 내용과 비슷하다. 이는 나선 지대가 비록 실패한 특구로 평가되고는 있지만, 7.1 내부 개혁 조치 단행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4) 부정적 측면 (실패요인)1998년의 아시아 외환 위기에도 이유가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① 부족한 SOC시설과 불투명한 내수 및 수출 시장으로의 발전 가능성 ② 내부 자원의 빈곤과 최악의 대외신용 상태 ③ 국제금융기구 미가입 등의 경제적 투자 환경 미비 ④ 체제적 ? 정치적 요인 ⑤ 남한 기업에 대한 투자 배제와 유인책 부족 ⑥ 체제 우선의 소극적인 개혁 ? 개방 정책 추진 ⑦ 미국의 방해)가 있다.이외에도 법령의 구체성 결여에 의한 자의적 판단 개입 여지와 함께, 복잡한 행정절차와 노무 관리의 경직성, 미숙한 행정력, 외자 유치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일관된 정책 추진의 부족, 자금 조달 계획 등 개발 경험의 부족에 따른 전략 자체의 구체성과 실행 계획이 결여되어 있는 점도 나선지대의 개발 속도와 성과를 부진하게 했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2. 신의주특별행정구1) 추진배경신의주는 북한 내에서 평양 다음으로 생활 수준이 높고, 주민들은 이미 동북 3성과의 인적 ? 물적 교류를 통해 중국의 개혁 ? 개방 사정을 잘 알고 있엇으므로 특구 경계선에 담을 세워 외부와의 자유 왕래를 통제할 경우 개방의 영향을 신의주 특구 주민에 국한하여 북한 전역으로의 확산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 신의주가 단동과 접경 지역으로 중국계를 포함, 외국인으로부터 금융, 무역, 서비스, 정보통신, 관광업 분야의 투자를 유치하여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붐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또한 중국의 반대로 중단된 압록강 북한 측 강변의 카지노 선박 운영 수입을 만회하기 위한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2) 개발계획양빈(楊斌) 초대장관이 제시한 신의주특구의 모습은 10년 이내에 상주인구 250만명, 유동인구 100만명의 유럽풍 신도시로 개발하고, 여기에다가 금융업과 무역업, 첨단산업, 상공업 및 관광사업을 육성하여 국제적 도시 서비스 기능이 포함되는 종합형 경제특구로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특구 지정 → 홍보 → 투자 설명회 개최 등의 치밀한 계획과 함께, 북한 최초로 증권거래소를 설립하여 한국과 일본 기업의 상장을 유도할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3) 현황신의주 특구 개발 계획은 양빈의 구금과 북핵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면서 당분간 보류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북한이 신의주특구 개발을 발표(9.19)한 것은 7.1조치로 경제 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한 뒤,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방북 및 북일 평양선언 발표(9.17) 등 한반도 정세가 빠른 속도로 개선되던 때였고, 네덜란드 국적의 양빈 장관을 임명한 것도 외국 자본 유입을 겨냥한 조치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핵 마찰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및 청구권 협상이 막히고 유럽 각국과의 관계 개선마저 지연되어 자본 유입이 불가능해졌다. 북한 당국이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국제정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의주특구 개발은 양빈 장관 한 사람의 거취 문제를 넘어, 북한을 둘러싼 미국 및 유럽,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4) 전망신의주 특구를 둘러싼 양빈 문제 돌출과 중국과의 이견)에 북핵 파문까지 겹쳐 특구 개발은 상당 기간 지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측은 김일성 시절부터 신의주 개발의 필요성이 지적되었고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결정한 계획이기에, 일정 기간 냉각기를 거치면서 내부적으로 간단한 기반 공사는 계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즉 일정 기간 냉각기를 가진 후 적절한 시기에 신의주특구를 이끌어나갈 행정장관을 임명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성과 금강산 등의 여타 특구 지역과 함께, 후보지로 예상되는 통천과 원산, 함흥 등지를 중심으로 계속 개발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