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서평내가 읽은 ‘사람풍경(아침바다, 2004)’ 이라는 책은 김형경이라는 작가의 심리/여행 에세이이다. 작가가 여행하는 동안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내면들에 작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더해서 모든 인간의 심리로 확대시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처음에 많은 추천 도서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사람풍경’이라는 제목이 나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평소, 심리에 관심이 많아서 심리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설명이 너무 어렵고 생소한 전문용어들이 자주 등장해서 책을 소화해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잘 써진 것 같다. 이 책속에는 27편의 에세이가 있다. 읽는 내내 책 속에 책이 있는 느낌이었다. 또한 한권을 읽고도 여러 권을 읽은 것 같은 이유는 작가가 기억에 남는 유명한 사람의 말이나, 글을 많이 인용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사람들에겐 무의식이라는 것이 존재 한다. 작가는 고대 로마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을 무의식에 비유한다. 로마 지하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고대 유적이 어마어마하게 매장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내부에도 감히 접근해보지 못한 거대한 무의식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무의식은 사람들의 마음 밑에 깔린 카펫이라는 말 같았다. 이런 무의식 위에, 가장 중요한 마음인,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다. 이 책에선 가장 중요하고 모든 문제의 핵심이 되는 사랑은 아기 때 엄마와 나누는 최초의 사랑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유아기의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이 책의 핵심어였다. 사랑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감정이 이 때 형성되고 발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전문용어로는 ‘대상선택’이라고 하며, 그 내용에서는 의존적 대상선택과 자기애적 대상 선택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분노는 사랑의 뒷면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고 전문용어로는 ‘대상상실의 감정’이라고 한다. 이 분노가 또 다른 가면을 쓰고 다른 대상에게 옮겨진 것을 공포라고 한다. 때문에, ‘겁이 많다’라는 것은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면에는 엄청난 양의 분노가 억압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히 우울이라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여가며 가장 공감하면서 읽었다. “우울이라는 것은 마음의 요술부리기 이다”라는 구절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베이징을 여행할 때, 사스라는 괴질이 발생하였는데, 어떤 가족은 두 겹으로 마스크를 뒤집어 쓴 채 긴장과 불안이 가득 찬 눈빛으로 여행 가방을 꾸려 집을 떠나는 장면과 어떤 가족은 공원에서 밝고 유쾌하게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똑같은 상황 안에서 반응하는 방식이 다름을 보고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정의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불안정하게 느끼는 것은 내면의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로마로 가는 길에서 전화카드 수집가를 만나는데 그 남자가 수집한 전화카드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작가는 의존성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인간은 애착을 주고받을 대상을 필요로 하는데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의존이다. 이런 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를 중독이라고 한다. 대상에 대한 의존이 너무 심해 그것이 없이는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없고 일상생활이 유지되지 않을 때, 그것을 중독이라고 한다. 중독에 대해 얘기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20년 흡연생활을 회상한다. 또, 다음으로 질투와 시기심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질투심이 세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그 심리적 배경이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이라면 시기심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그 심리적 배경은 ‘상대방이 가진 것이 내게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투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작가가 인용한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내 머릿속은 뻥 뚫렸다. 이 외에도, 사람들 마음속엔 세상을 반으로 축소시키는 태도인 ‘분리’와 작가의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던 ‘회피’ 타인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동일시’,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인 ‘콤플렉스’, 자신의 모든 부정적인 면들을 인식하고 끌어 안을 때 획득되는 건강한 ‘자기애’, 자기 자신을 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자기존중’, 작가가 유일하게 운동하는 사람과 운동하지 않는 사람을 이분법으로 본다는 말을 하면서 설명한 ‘몸 사랑’, 생의 에너지이자 예술의 지향점인 ‘에로스’, 암스테르담과 베이징을 관광하면서 작가가 느꼈던 ‘뻔뻔함’, 폼페이를 관광하면서 느꼈던 ‘친절’, 인간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후원의 힘인 ‘인정과 지지’, 오클랜드 미술관에서 회화작품을 보면서 느낀 ‘공감’, 두려움과 절망감을 안은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능력인 ‘용기’,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인 ‘변화’, 억압이나 회피 방어를 벗고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인 ‘자기실현’이 있다.
노신단편소설집《?喊》,《彷徨》속등장인물의 분석魯迅은 1881년에 태어나 1936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군벌사회라는 구질서가 붕괴하고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문화가 뿌리내리는 역사적 격변기였다. 그러한 사회에서 그는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조국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그의 이러한 혁명적 노력은 그의 작품 속에 잘 나타나있다. 신기하게도 그의 대부분의 단편소설들은 1918년에서 1924년 사이에 쓰여 졌는데, 그만큼 魯迅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문학작품으로서 그의 혁명적 사상을 알리고 일깨우려는 노력을 한 것이다.《?喊》과《彷徨》의 사이에는 1921년 중국공산당 창설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경계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魯迅이 등장인물을 보는 관점도《?喊》과《彷徨》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흥미롭게도 노신의 글을 읽으면서 당시 집필년도상의 중국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일기를 쓰고 난 후,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일기를 읽어보았을 때 일기를 썼던 날 무슨 일이 있었고, 기분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을 토대로 《?喊》,《彷徨》의 작품들에 대해 등장인물들의 성향을 중심으로 재해석해보려고 한다.魯迅 소설속의 등장인물을 계급적으로 살펴보면 그다지 다채롭다고는 할 수 없으나 《?喊》,《彷徨》의 25편을 놓고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의 계급적 구성은 농민, 노동자, 여자, 아이들로 구성된 피지배 계층과 지배계층인 지주 그리고 지식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농민과 지식인이며 노동자, 여자, 아이들, 지주들은 주로 주변인물로 등장한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魯迅이 등장인물을 서술하는 관점도《?喊》과《彷徨》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喊》에서는 피지배계층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만보고 안타까워하는 반면,《彷徨》에서부터는 서서히 그러한 비현실적이고 나약한 피지배계층들을 공산주의 노선으로 계몽함으로써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1)피지배계층魯迅소설華老栓부부는 찻집을 경영하는 피지배계층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자식이 폐병으로 고생을 하게 되자 죽은 혁명가의 피를 만두에 묻혀서 구워 먹이면 낫는다는 미신을 믿고, 두려워하면서도 은전과 바꾸어 먹이고는 기뻐한다. 특히 아내인 華大?는 만두를 자식에게 먹인 뒤 “정말이예요, 만일 康大叔께서 돌봐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라고 감격해 한다. 單四嫂子는 길쌈을 하면서 병든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청상과부이다. 그녀는 자식의 병을 고쳐보려고 무당을 찾아가 살풀이도 해보고, 漢方醫도 찾아가 진료를 받지만 아무런 효험도 보지 못하고 자식을 잃고 만다. 華老栓 부부와 單四嫂子의 무지 몽매함으로 말미암아 죄없이 죽어 가는 華小栓과 寶兒은 바로 광인이 생각하는 식인사회의 제물이 된 것이다.또한 에서는 장명등이 꺼지면 마을이 바다로 변해버리고 사람들은 미꾸라지로 변해버린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기서 보여지는 것들은 극히 피상적인 것들이다. 진짜 우매와 마비는 봉건적 질서에 길들어 노예 근성이 뼛속까지, 영혼 깊숙이까지 스며들었다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봉건 사회의 모순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어떻게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맹목이며, 오히려 자신들이 어떻게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자들에 대해 존경심과 복종심을 지니고 있고, 자신들이 익숙한 질서가 정의이고 진리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봉건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려는 혁명과 혁명가에 대해 그들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은 봉건적 지배 계급이 그러는 것 이상으로 혁명가를 학대한다. 그런가 하면 그들 내부에서도 상호간에 가해-피해의 관계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잔인한 가해자들이다. 이 민중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사회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스스로 헌신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들이라는 점에서 자학 내지 자해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계층이다.예외적인 인물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아주 드물다. 의 인력거꾼과 의 祥林, 의 阿順등이 그 예들인데, 인력거꾼가 비참하게 죽지만 선량하고 성실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阿順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은 극히 예외적인 존재일 뿐이거나, 일방적인 피해자일 뿐이다. 또 하나의 예외적인 인물은 ?Q이다.?Q는 무식한 雇農으로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는 경멸한다. 이러한 사실은 평소에 경멸하고 있던 王?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자 "군자는 입으로 말하지 손으로 때리지 않는다. "는 말을 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혁명이 발발하자 처음에는 모반이라고 생각했다가 擧人老爺등의 봉건지주세력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알게 되자, “혁명이란 것도 좋구나...(중략)....이런 빌어먹을 놈들을 죽여 버리자! 더러운 놈들! 미운 놈들을..., 나도 혁명당에 투항해야지.” 라고 하면서 혁명에 참여하려 하지만 趙秀才와 錢秀才등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 세력에 의해 고발되어 공개로 처형을 당한다.여기서 ?Q는 부정적 민중의 온갖 모습을 한 몸에 집약한 인물인 동시에 긍정적 민주의 잠재적 가능성을 초보적으로 나타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Q의 이 이중성이 그를 魯迅 소설의 인물들 중 가장 독특한 인물로 만들어준다. 의 愛姑도 예외적인 인물이다. 愛姑는 봉건적 풍속에서의 여성의 소외에 대해 정면으로 저항한다. 마지막 순간에 부정적 민중 속으로 후퇴하고 말지만 그녀의 저항은 선량한 피해자인 祥林이나 阿順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흥미로는 것은 긍정적 극중 인물들 중 祥林 , 阿順 , 愛姑 등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이다.이는 중국여성을 봉건유교라는 낡은 사회의 불행한 인간의 표본으로 생각했던 魯迅의 생각을 발전적 의지로 승화시키려는 노신의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2)지배계층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을 겪어 오면서 봉건지주에 대한 중국의 국민적 반감은 극에 달하였다. 신해혁명이 발발하면서부터 개혁에 대한 논의는 문학방면에도 크게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魯迅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魯迅은 소설을 통하여 봉건지주의 지배층의 위선과 봉건주의 농민에 대한 가혹한 착취 등을 신랄하姑의 저항을 좌절시키는 역할을 하고, 의 띵 거인은 孔乙己를 때려 그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의 魯四老爺은 제사 일에의 참여를 금지시킴으로써 祥林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신 소설에는 지주 계급의 인물이 직접적인 묘사의 경우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의 丁擧人만 해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그 존재가 이야기 될 뿐이고 의 七大人은 작품 말미에 잠깐 등장할 뿐이며 의 魯四老爺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정도 이다. 루쉰 소설 중 지주계급의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직접적 묘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작품은 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趙老爺 ,趙秀才, 假洋鬼子가 그들이다. 그들은 민중에 대한 가해자이다. ?Q가 생계의 위협에 부닥치는 것은 趙老爺 때문이고, 중흥에서 말로로 떨어지는 것도 趙老爺 때문이며, 강도로 몰리는 것도 趙老爺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혁명조차도 민중에게서 탈취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만든다. 趙秀才, 假洋鬼子이 먼저 혁명을 해버리고 ?Q에게는 혁명을 불허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에 대한 가장 심각한 가해이다. ?Q의 삶의 가능성은 모두 그들로 인해 차단된다.이상에서 살펴 본 바 지배계층은 잔혹하고 비굴하며 야비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해혁명이 봉건주의 지배계층을 완전히 타도하지 못한데 대한 작가의 현실비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3)지식인舊中國에 있어서 몰락한 지식인들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으며 그들의 운명은 처참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활모습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고, 현실에 대한 참여의식 마저도 제자리인 상태에 있었다. 이에 魯迅은 증오와 경멸을 서슴지 않으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魯迅 소설 속의 지식인은 크게 舊지식인과 新지식인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①舊지식인의 孔乙己와 의 陳士成이 그들인데, 그들은 이미 몰락하여 사실상 민중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결코 긍정적 인물이 아니며 비판의 대상으로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들의 참혹한 최후는 연민의 을 잃고 밥을 빌어먹어야 할 정도까지 이른다. 다행히 남의 책이나 베껴주고 근근이 연명해 나갈 적도 있지만, 술을 좋아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끝내는 丁擧人의 집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들켜서 다리가 부러지고, 죽어가는 모습에서 봉건제도의 모순으로 희생되는 당시 지식인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孔乙己와 그를 놀려대는 咸亨酒店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열 두세살 먹은 일인칭 화자의 시선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咸亨酒店의 주인과 다른 단삼 손님들은 孔乙己를 놀려대면서 희열을 느낀다. 그것은 일종의 가학인데 그러지 않아도 비참한 지경인 孔乙己는 그 학대에 더욱 상처 받는다. 孔乙己 개인으로 말하자면 비록 몰락한 舊지식인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태도에서 보듯 인간적 선량함을 지니고 있다. 소년 화자의 시선은 孔乙己를 놀려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띠고 있고 孔乙己에 대해서는 연민을 띠고 있다. 다만 그 반감과 연민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갈무리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소년 화자의 의식 이전의 느낌이기 때문일 것이고 작가의 서술 의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가 노리는 것은 몰락한 그 지식인을 옹호한다거나 혹은 비판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민중의 왜곡된 공격성을 비판하고 있다. 출신이야 어떻든 현재의 孔乙己는 넓은 의미에서 하층 계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孔乙己에 대한 咸亨酒店 사람들의 학대는 결국 민중적 자해의 한 양상이 되는 것이다.②新지식인新지식인을 다시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는데, 그 중 완전히 긍정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희생당하는 혁명가이다. 의 夏瑜가 그 좋은 예이다. 夏瑜의 혁명은 反淸민족 민주 혁명인바,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는 처지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동시에 계몽자이기도 해서 끝까지 계몽적 실천의 임무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 모습이 드러날 뿐 직접적인 묘사의 다.
李白 - 將進酒이태백이라고도 불리는 이백은 주로 호방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했다. 이백의 시는 화려함 속에 편안함이 있고, 귀족적인 수려함이 있다. 내용은 경쾌하고 호탕하며, 기교 또한 뛰어나다. 이백은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백은 詩仙이라 불린다.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사실 이백은 선천적인 재질이 뛰어나서 주변의 온갖 것을 시화(詩化)해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일체가 시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까 이백에게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무엇보다 이백은 술을 좋아했던 시인으로 유명하다. 술에 취해 채석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남겨질 정도로 이백이 술을 좋아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이백의 시는 술을 제재로 한 것들이 매우 많다. 게다가 술을 마시는 도중에 문득 떠올라서 지은 시들도 매우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라는 작품이다. 장진주는 이백의 천재성이 가장 잘 나타난 명편 중의 하나이다. 시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술을 손님에게 권하는 노래이다. 이 작품이 명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이백의 거세고 당당한 기세를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어의 선택 하나하나가 그의 시상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 처음 도입부분은 자연을 빗대어 시간적 과장으로 시작한다. 그 시간적 과장은 인생의 덧없음으로 이어져서, 마지막 부분엔 “만고의 이 시름 잊어 보리라” 라는 시구가 나오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술로 달랜다.” 라는 이백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주인장, 어찌 돈이 부족하다 말하시오. 오색 말 값진 옷 다 팔아다 술로 바꿔오소.” 라는 시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작품 속에는 진사왕(조식)이라는 유명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백은 술을 좋아했던 유명한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의 술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시킨 것이다. 이백의 시에는 흐르는 물, 떠도는 구름 같은 자연의 리듬이 있다. 언제나 청신하고 쉬운 시어가 마치 자연의 음악처럼 흐르듯 나온다. 그러나 그 스케일은 매우 광대하다.枓甫- 石壕吏두보는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가시밭길을 걸었던 성인(聖人)이었다. 두보는 인간의 고뇌에 깊이 침잠하여 시대적 아픔을 깊은 울림으로 노래했다. 두보의 시가는 대부분이 안사의 난 때 백성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쓴 것이다. 풍부한 문장력과 현실을 꿰뚫는 그의 시는 후세에 시를 통해 표현한 역사 즉 '시사(詩史)'라는 이름으로 널리 추앙받았다. 두보의 시에 담겨 있는 기쁨과 슬픔은 바로 당시 백성들의 기쁨과 슬픔이었던 것이다. 두보는 각지를 방랑하는 가운데 전란과 부역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들었다. 두보 자신도 초근목피로 연명하였다. 이와 같은 분노와 비통함은 두보의 숱한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동양에서 시의 관심을 사회 현상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당시의 보편적인 문체인 미문(美文)과는 거리가 먼 진솔한 문체를 사용한 까닭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같은 이유로 후세에 와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 한시 또한 그러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이다. 이 시는 완전한 소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인은 경이적이라 할 만큼 방관자가 되어 민초들이 겪는 비극적 삶을 그려내어 독자에게 공감을 주고 있다. 당시 중국은 당 현종(唐玄宗)의 치적을 뒤로 하고 내란의 시대로 접어들어 하층민들은 물론 비교적 상류 사회에 속해 있던 시인 또한 유랑 생활을 하는 등 크게 고통을 받는다. 이 시는 민초들이 겪는 이러한 고통에 눈길을 맞추어 실정을 비판하며, 아울러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있기 때문에 시를 한번만 보아도 두보가 이 시를 지을 때 어떠한 광경이 펼쳐졌는지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한밤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자 그리고 그 며느리가 살고 있는 집에 아전이 들이닥쳐서 할아버지를 장정으로 데려가려 한다. 할아버지는 담장을 넘어 도망을 치고, 할머니가 나와 아전에게 하소연하는데, 자기의 자식 3명이 장정으로 끌려가서 2명은 죽고, 1명은 목숨을 겨우 건졌다고 한다. 집안에는 사내라고 젖먹이 손자 한명이 있는데 손자 때문에 며느리는 아무데도 못 간다며, 자신이 가겠다고 한다. 아전들은 할머니를 데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흐느껴 운다.’ 라는 내용이다. 그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한스러운가는 작품 내용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할아버지가 담을 넘어 도망친다는 시구와 할머니가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하소연 하는 시구, 그리고 그러한 할머니를 끌고 가는 아전들을 보았을 때 상황은 너무나 안타깝다. 두보는 아마도 그러한 한스러운 서민들의 삶을 애통해하며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그 시대상이 얼마나 암울하였는지 이 사실적인 작품을 통해 잘 알 수 있다.소식 - 念奴嬌 赤壁懷古
도가 사상의 현대적 응용현대 사회는 많은 것을 성취하였다. 현대가 이루어 낸 많은 성취들이 우리들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제 이런 것들 없이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대의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심각한 환경문제, 모든 관계의 악화, 내적 불안의 고조, 물질주의, 문화의 팽배 등을 포함해서 많은 것들이 현대인의 행복한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문명의 존속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사회 문제들은 바로 현대적인 성취를 추구하고 이루어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현대는 많은 것을 성취하였지만 현대의 사상만으로는 현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명의 대 전환기에 처해서, 우리들은 ‘무용지용론, 제물론, 소요유’라는 장자의 사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찾을 수 있다.무용지용론에는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장자의 생각이 담겨있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하는 의문에 대해서, 장자는 두 가지 답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권력, 지위, 돈 등과 같은 자기 바깥에 있는 외물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데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 내재해 있는 ‘참된 자기’를 깨닫고 실현하는 데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들 자신에 내재하여 있는 ‘참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장자의 주장은 탈현대의 새로운 문명을 형성해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장자의 무용지용론은 현대 사회의 황폐성을 직시하고, 탈현대의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제공한다.제물이란 ‘물을 가지런히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인간을 포함해서 우주만물 간의 절대적 평등을 주창하는 사상이다. 장자는 “도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에 귀천은 없다.” “도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하단 말인가?” 그러므로 “만물은 한 결 같이 평등하다.” 고 말했다. 현대의 전형적인 인간관은 ‘욕망 추구자’로서의 인간이다. 인간을 세계와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내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이용하고 극복해야만 할 대상이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인간과 자연 등을 포함해서 모든 관계가 혼란스럽고 악화되어 있다. 생태계 붕괴를 포함한 심각한 환경 문제는 관계의 파탄의 큰 예이다. 장자의 제물 사상은 탈현대의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수 있는 확고한 기초를 제공해 준다. 인간을 포함해서 우주만물은 지극히 존귀하며, 우리들은 나 자신과 세계를 지극한 존중감을 갖고서 대해야만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들 모두가 서로 사랑으로 맺어지는 창조적인 관계의 수립이 가능하다.소요유란 도와 하나가 된 상태에서 어떠한 집착과 얽매임도 없이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완전한 자유의 경지를 가리킨다. 제물론이 절대 평등의 사상이라면 소요유는 대 자유의 사상이다. 자유의 사상은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장자 철학은 욕망에 구속되어 있는 인간이 어떻게 부자유한 현실을 벗어나서 ‘참된 자기’를 회복하고 즐길 수 있는가를 밝힌 것이다. 탈현대의 새로운 문명을 일구어 나가고자 할 때,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현대의 가치의 하나는 노동의 가치이다. 장자의 소요의 사상은 ‘참된 자기’를 자유롭게 향유하는 보다 높은 수준에서의 탈현대적 삶의 전형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준다. 더군다나 오늘날 생산 활동은 환경 문제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과학의 발달과 끝없는 기술 혁신의 결과로 우리들의 생산력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그러나 우리들이 더 많은 것을 생산할수록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더욱 급속하게 붕괴하는 아이러니한 구조를 현대 사회는 갖고 있다. 현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형태는 저생산-저소비의 바탕 위에서 낙도 하는 삶이며, 이것은 바로 장자가 말하는 소요하는 삶이다.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에 도달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들의 행복과 사랑을 통해서 이 세계를 더욱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유가 사상의 현대적 응용유가사상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유가의 인간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질 수 있다.첫째는 인간은 도덕적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핵심적 특징이라고 파악하였다. 맹자는 인간 내면에 도덕적 본성이 내재함을 확인하였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절대적으로 선한 본성이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맹자는 “성인과 나는 같은 유이다”라고 하고, “모든 사람이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모든 인간에게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도덕적 본성이 내재하여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본성을 지키고, 확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본성은 지극히 선하고 거짓 없는 순수한 것으로 공자나 맹자의 인(仁 )은 모두 이런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유가적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이란 자신에 내재한 도덕적 본성을 남김없이 발휘한 사람을 의미한다. 도덕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고,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고,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의 본성을 상실하고 짐승과 같은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유가의 입장은 현대사회 현실 속의 인간의 비인간화의 문제에 대한 논의와 비판적 현실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둘째는 유가 사상가들은 인간을 총체적 존재로 인식한다. 서양인들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실체로 여겼다. 이에 반해서 유가 사상가들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사회, 정신과 육체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연관된 일체이며, 서로를 포함한다. 자연 속에 인간이 있고, 인간 속에 자연이 있어, 주체와 객체가 서로 포용한다. 그러나 유가 사상가들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 감각적 즐거움, 부귀와 명예를 근본적으로 긍정하고, 추구하였지만, 이런 것들을 삶의 궁극적 목표나 추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욕망에 대한 긍정과 추구는 그것이 도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용인되었다. 즉, 자기 수양을 통해서 내면의 도덕적 본성을 자각하고 실현한다는 것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것이다. 유가는 다양한 인간 본성을 근본적으로 긍정하는 가운데, 성정(性情)의 조화를 포함해서 다양한 인간 본성과 도덕적 본성과의 합체를 추구한다.셋째는 유가 사상가들은 참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 구조의 변화보다는 행위자의 자기 변화를 위한 주체적 노력을 강조한다. 사회 구조의 변화는 이런 내면적 변화의 결과로 간주한다. 또한 외부 대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노동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변화 노력을 강조한다. 유가 사상가들은 도덕적 본성의 내재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이 저절로 도덕적 존재가 된다거나,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도덕적 본성은 잠재 능력으로 우리들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실현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선천적 본성은 유사하나 후천적 학습이나 습성에 따라 인간은 서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본성을 유지하고, 확충시켜 나갈 때에만, 인간은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의 유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 사람들은 자신의 바깥에서 오류를 찾는 것보다, 자신의 안에서 잘못을 찾고 반성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유가 사상은 자기실현의 문제에 관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환경 친화적이고, 다가오는 정보 사회화 정합성을 갖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