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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살인의 추억을 보고
    살인의 추억을 보고나서.이 영화가 처음 개봉될 때 난 영화제목이 주는 어떤 역설적인 매력에 쉬이 이끌리는 것을 느꼈다. “살인의 추억”이라니... ‘살인’이 주는 끔찍한 거부감의 이미지가 ‘추억’의 이미지를 함께 달고 있다. 이 생경하고 모호한 이미지의 제목은 영화를 본 후에 가슴에 남아 있었던 어떤 느낌과 상당히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영화제 상 중에 제목에다 주는 상이 있다면 단연 이 영화가 받았으리라 할 만큼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겠다.영화의 프롤로그 장면은 송강호가 경운기를 타고 시신이 있는 살해현장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꾸며진다. 황금빛 가을 들녘을 털털대는 경운기에 몸을 싣고 가는 송강호. 뒤따르며 깔깔대는 아이들. 그들에게 손으로 욕지거리를 날리는 송강호의 익살(?). 그리고 여전히 깔깔대는 이들의 손에 쥐여진 피해자의 속옷과 조용히 잠들어 있는 피해자의 시체. 이야기로 풀어헤치자면 당연 끔찍한 장면일텐데 감독은 가벼움으로 일관된 시선으로 장면 장면을 관객이 삼키기 좋도록 포장해 놓았다.하지만 지나친 가벼움은 중심을 잃기가 쉬운 법임에도 감독은 이야기의 중심을 위해 대립된 어떤 것을 마련해 놓았다. 바로 김상경의 역할이 그 역할인 것 같다. 김상경은 송강호의 가벼움을 보완하며 무거움의 역할로 극을 이끌어 간다. 이 무거움은 이 잔인한 이야기를 함께 듣는 가운데 그저 웃기만 하게 두지 않음으로서 관객을 더 깊이 빠져들게 하는 것 같다.송강호의 가벼움과 김상경의 무거움, 이 대립되는 이미지는 제목에서의 그 어우러짐과 같이 극중에 동일 목표로의 치열함 속에 함께 녹아들며 나중에는 동화되어버리는 모습까지 보여진다. 유력한 용의자를 잡고도 물증이 없어 어찌 할 수 없는 절정의 상화에서 김상경은 전과는 다른 가벼움으로, 송강호는 무거움으로 그려지는 것이 그것이다. 감독의 이런 뒤썩기의 작업은 이놈은 나쁜놈, 저놈은 착한놈 식의 삼류적인 견지를 없애준다. 관객을 누구의 편도 아닌 단지 관객으로서 함께 고민하고 괴로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끝내 범인이 정확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것까지 이러한 관객참여의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리라. 나는 이렇게 극중인물과 함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영화가 좋다.그리고 이 영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의 인간미이다. 우둔한 자를 우둔하게 몰아세우지 않고 오히려 웃음으로 주는 요소로 정하여 주는, 하지만 미화시키지는 않아면서 그 우둔한 모습을 확실히 드러내며 오히려 안타까워 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비인간적인 이야기를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을 통해 그려내며 그것을 보는 관객까지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입으로 웃기보다 가슴으로 웃는 영화라 하고 싶다.
    독후감/창작| 2006.06.22| 2페이지| 1,000원| 조회(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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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베르테르에게 보내는 글.안녕하신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OOO이라고 한다네. 요 며칠 동안 자네가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어보았네. 면식도 없는 자가 함부로 남의 편지를 읽었다고 기분이 상했다면 정중하게 사과하겠네.지금 자네의 편지는 매우 유명해져서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두루 읽는 글이 되고 있다네. 이것이 자네가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자네의 편지는 연인들, 혹은 감성을 읽어버리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네. 죽어서도 사람들 속에서는 이렇게 살아남아 있으니 이 어찌 행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 또한 포함이 되어 자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네. 직접 만날 수만 있다면 술이나 한잔 하면서 묻고 싶은 말들이 많이 있으나, 불행히도 자네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몸이 되어 그저 자네의 넋에다 대고 대답없는 대화를 하고자 하네.나 역시 한명의 젊은이라, 내 나름대로는 뜨겁고, 때로는 무모하다 할만한 사랑을 경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베르테르여, 자네의 사랑 앞에서 그 누구가 ‘나도 사랑해 본적이 있네.’라고 경솔한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그녀를 만나자!’ 이 외침으로 자네는 가질 수 있는 다른 모든 소망을 이 하나의 소망에 삼켜져버린다고 고백했었지.(1771년 7월 19일자 편지.)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마주앉아 대화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흠향하고, 그날이 정말로 운이 좋은 날이라면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듣고 싶다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소망들을 무위로 돌려버릴 수 있는 그 소망이 - 그 사랑이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네.친구여. ― 섣불리 친구라고 하는 것을 용서해주게.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자네를 친구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게나. ― 그토록 깊은 사랑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을, 그 고통을 자네는 어찌 그리도 용감하게 시작했는가. 자네와 같이 공연히 떠들썩하게 굴면서 우스운 흉내도 내고 미친 사람 같은 행동도 해보면(1771년 7월 30일자 편지.) 참아낼 수 있는 것인가? 자네는 그렇게 해서 정말 참아지던가? 그럴 바에야 그저 단념하라고 한다면 자네는 나에게 욕설을 퍼붓겠지. ‘제발 이런 멍청이들은 내쫓아주세요!’(1771년 7월 30일자 편지.)하고 말이야. 그러나 먼저 자네와 같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풋내기로서는 그 말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네. 하지만 자네에게는 그녀를 단념하기가 이 세상살이를 단념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테지.사실 알베르트가 돌아오고 난 뒤의 자네의 행동들은 과히 질풍노도와 같이 느껴졌네. 알베르트가 보는 앞에서 권총의 총구를 눈앞에 갖다대던 일(1771년 8월 12일자 편지.)이나, 자살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일(1771년 8월 12일자 편지.)은 알베르트를 자극하여 다소 흥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외에는 자네 스스로를 깍아내리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네. 자네 스스로도 그렇게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을테지. 그래서 더욱이 그녀를 떠날려고 마음먹은 것이라 생각하네. 아니, 다시 말하겠네. 알베르트와 함께 있는 그녀를 떠날려고 마음먹은 것이라 생각하네.친구여, 자네의 영혼은 진정 무엇으로도 다스려지지 못하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네. 새로운 부임지에서 채 반년도 보내지 못하고 사직서를 재출해 버리다니.(1772년 3월 24일자 편지.) 자네야 말로 정신의 넓은 세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야생마라 할 수 있을 것이야. 마음껏 그리워하고 마음껏 사색하며 넓은 정신세계를 감성이란 에너지로 한없이 뛰어다니는 그런 야생마 말일세. 그러나 친구여, 이를 주체하고 절제하는 역량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네.어쩌면 자네의 삶의 마침은 로테를 처음 만난 날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네. ‘오오, 나의 천사여! 너를 위해 나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1771년 7월 1일) 이렇게 고백하던 자네의 편지를 기억하고 있네. 로테를 위해 살아가던 인생이었으니 로테를 잃은 이상에 살아간들 무엇을 위한 삶이라 하겠는가. 하지만 친구여, 나는 자네의 죽음에 동정심 외에는 그 이상의 것을 건넬 수는 없네. ‘죽어버리자! 이것은 절망이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지금까지 참고 견디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목숨을 바친다는 확신.’(1772년 12월 21일 월요일 아침. 로테에게 쓴 편지.) 자네에게 묻고 싶네. 진정으로 자네의 죽음은 로테를 위한 것이었는가? 허면 어째서 로테를 위해 더 행복하게 살아줄 수는 없었는가. 로테의 자네를 향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자네는 로테에게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소주한 사람이었네. 로테가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나 느낀 것은 무엇이든지 자네와 함께 나누던 것을 자네는 잊었는가. 자네가 죽어버린다면 로테는 이제 누구와 그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로테는 자네가 자신의 오빠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고민도 해보고, 자네를 결혼시키기 위해 자신의 친구를 하나하나 재어보기도 하는 등의 노력을 하며 자네가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네. 그런데도 자네는 이 사랑스러운 로테를 두고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로테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텐가. 거기에다 로테가 건네준 총에 맞아 죽다니! 정말로 로테를 위해선 죽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 어디 먼 곳으로 가서 홀로 조용히 죽었어야 했다. 그리고 자네가 죽었다는 사실이 로테의 귀에 죽는 날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최소한 로테는 자네를 그리워하며 가벼운 미소라도 지을 수는 있었을테니. 그런데 로테가 건네준, 로테의 남편 ― 알베르트의 총으로 죽음을 가져가다니! 자네는 자네를 위해 죽은 것이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자네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자신을 구하고자 한 것이네.
    독후감/창작| 2006.06.22| 2페이지| 1,000원| 조회(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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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글루미 선데이를 보고
    영화 를 보고.- 소유로서의 사랑과 자유로서의 사랑.과 목 : 유럽영화예술지도교수 : 교수님소 속 : 국어국문학과학 번 :이 름 :영어에서 LOVE는 명사로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하다’라는 자동사로서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은 자신이 스스로 ‘하는’것이란 말이다. 사랑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아가페(agape)의 사랑, 즉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사랑의 참 모습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에게 줄때의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하지만 요즘 사회에서의 이러한 참된 사랑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어버렸고, 자신 옆의 친구가 이러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서슴없이 ‘바보, 왜 그리 손해보냐.’라고 타이르게 된다. 물질적이고 이해타산적인 현대의 인간관계에서 ‘주기만 하는’ 사랑은 영화 속 환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대의 사랑관은 준만큼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이 준 사랑만큼 상대의 사랑까지도 강요(다행히 노골적으로 그러는 경우는 드물겠지만)하게 된다.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절대 외부의 어떤 것에도 강요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이제 영화얘기로 들어가 보자. 일로나의 생일날 안드라스의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일로나는 안드라스에게 반한다. 그것을 안 자보는 “누구나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고 얘기하고는 일로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먼저 걸어간다. 잠시 후, 자보는 뒤를 돌아보지만 일로나는 이미 가고 없다. 이 장면이 나올 때에 강의실에 있던 많은 남학생들의 입에서 “가시나, 짜증난다.”식의 가벼운 불평이 새어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자보에 대한 ‘같은 남자로서’의 동정 때문인 듯 했다. 나 역시 남자이지만 솔직히 그 장면에서 자보는 꽤 멋있는 남자로 내게 다가왔었음을 고백한다. 일로나의 사랑을 인정하고 그 결정을 지지함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통 사람들의 계산적인 사랑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일로나 역시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안드라스와 자보와의 관계를 아름다운 삼각관계로 만들어간다. 이 영화가 비극적인 실화를 영화라고는 하지만 이들 셋의 사랑을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이루어 냄으로 인해 그저 안타깝고 슬프기만한 것이 아닌 아름다운 비극으로 꾸며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06.06.22| 1페이지| 1,000원| 조회(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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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서정주, 중기시의 영원성문제에 관하여
    1. 들어가는 말.원래 이 리포트는 하나의 논문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적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논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서정주에 대한 여러 논문들을 읽어 본 결과 대체로 비슷한 내용들이 많고 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좋은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이왕에 읽어낸 것들을 종합하고 첨가하여 서정주에 대한 새로울 것은 없지만 나름의 글들을 풀어내었다.논문은 손진은, 이광호의 것을 보았고, 미당 작품의 시기구분은 인터넷의 문서를 참고 하였다.2. 서정주 중기시의 ‘영원성’문제.첫시집 『화사집』(1938)에서부터 마지막 15번째 시집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에 이르기까지 정열적으로 새로운 시세계를 일궈내 해외에 한국의 대표시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서정주는 등단 이후 60여년간 미발표작 포함 1천편에 가까운 시를 다산(多産)하였는데 이는 국내에 유례가 없고, 외국에서도 독일의 괴테나 헤르만 헤세 정도가 비견될 정도이다.이러한 그의 시세계는 『화사집』에서 해방전까지의 초기시와 『귀촉도』~『서정주 시선』까지의 중기시(I), 『신라초』~『동천』까지의 중기시(II), 『질마재 신화』이후의 후기시로 나눈다.)이 글에서는 서정주의 중기시에서 주로 나타나는 ‘영원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하고자 한다.서정주의 시는 현실의 간섭과 역사적 조건, 그리고 시대적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압력을 행사하던 반서정시적인 영향 속에서 끈질기게 자기 목소리를 유지해 온 드문 경우에 속한다. 서정주는 무자비하게 흐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위되는 삶의 누추와 결핍 너머에 있는 인간 영혼과의 ‘영원’의 세계에 대한 천착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 영원성은 『화사집』의 세계를 정리하면서 뚜렷하게 천착하기 시작한 주제이다. 그 배경은 일제강점과 분단을 거치면서 질곡을 거듭해 온 민족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다시 말하면 현실 너머의 세계, 특히 영원에 대한 집착은 질곡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제약하고 있는 연대기적 시간질서로부터 해방되려는” 몸짓이며, “극심한 체험의 모순을 극복하고 자아의 연속성과 동일성을 회복하려는 정신적 투쟁”)에 그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서정주 시의 영원성을 구체적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 『서정주 시선』에서 『동천』에 이르는 서정주의 시 속에서, 우리는 빈번하게 ‘영원’이라는 시어를 발견한다.ㄱ) 석류(石榴)꽃은영원(永遠)으로시집가는 꽃.구름 넘어 영원(永遠)으로시집가는 꽃. -「석류꽃」중에서ㄴ) 당신과 동행을 하기라면어느 가시덤불 돌무더기영원을 가자해도피곤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범산선생 추도시(梵山先生 追悼詩)」중에서ㄷ) 햇볕 아늑하고영원도 잘 보이는 날우리 데이트는 인젠 이렇게 해야지 -「우리 데이트는」중에서ㄹ) 초원장제(草原長堤) 위의 긴 영원을 울던 뻐꾸기 소리들은그렇다, 할 수 없이 그 고요의바닷바닥에 가라앉는다.그대 반지 속의 한 톨 붉은 루비가 되어가라앉는다. -「밤에 핀 난초꽃」중에서ㅁ) 내 영원은물 빛라일락의빛과 향의 길이로다.ㅂ) 삼천년전자는 영원을 불러 잠을 깨우고,거기 두루 전화(電話)를 가설(加設)하고우리 우주(宇宙)에 비로소작고 큰 온갖 통로를 마련하신석가모니(釋迦牟尼)의 생일날에 앉아 계시나니 -「부처님 오신 날」중에서그의 ‘영원’은 이렇게 다양한 빛깔과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영원’은 시간적인 관념어이다. 하지만 그의 시 속에서 ‘영원’은 그 추상성을 벗고 눈에 보이는 살아 잇는 대상으로 표현된다. ㄱ), ㄴ), ㄷ)에서 ‘영원’은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이미지로 드러난다.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불가시적인 ‘영원’은 이렇게 하여 가시적인 구상적인 이미지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우리의 삶에서 문제되는 것은 추상적 논리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경험적 시간의 질적 측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은 시적 자아가 ㅂㄴ것, 경험한 것, 구체적으로 꿈꾼 것의 한 형태로 드러난다. ㄹ), ㅁ), ㅂ)에서 ‘영원’은 보다 복합적인 심상으로 드러난다. 이 은유들은 ‘영원’을 내적 경험의 시간으로 가시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추상의 범주 속에 있는 영원을 지각의 범주로 변화시키는 노력은 영원의 경험적 내포를 풍요롭게 해준다. 그리하여 서정주의 영원은 자연적인 공간, 인간적인 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영속적인 진리의 일부이다.)서정주의 이러한 영원성을 구체적인 현실을 도외시한 도피나 초월로 보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서정주가 영원성의 탐구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을 이해하고 그것에 접근하는 것”)이라는 보편적 입장에서 서정주의 영원성을 보고자 한다.내게 있어 현실인식이란 목전의 현대만을 상대하는 그 것이 아니라, 인류사의 과거와 현대와 미래를 전체적으로 상대하는 ‘역사의식’ 그것이다.)우리는 여기서 서정주의 ‘영원성’이라는 것이 현상의 변화에 영향받지 않는 항상적인 본질의 문제를 탐구함으로써 구체적인 현실을 상대하는 동시에 넘어서는 것이라는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서정주의 영원은 현실도피의 자세가 아니라, 시인 자신의 내면에서 서정시의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원이다. 이 영원은 세속적 자아에 함몰되지 않고 그 “폐허의 현실을 건너가게 해주는 충일한 에네르기”)로서 존재한다.서정주의 영원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신라정신’이다.신비도 때로는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약과이기도 한 것이고, 목전에 보이는 것이 모두 본딸 만한 게 없을 대에도 상대 이천년을 소급해 올라가서 모색할 필요도 생기는 것이고, 체념도 소용되어 체념 중 상체념이 낳은 동양적 풍류에 의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현실은 인간을 주위해 있는 무엇이나가 다 현실이고, 그 현실적 정신이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고 있는 무슨 정신이나가 다 현실 정신인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서정주의 ‘신라’가 “본딸 만한 게 없”는 “목전의 현실”에서 하나의 이상향으로 존재하고 있음과, 현실의 범주 역시 대단히 넓고 깊고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신비’, ‘체념’, ‘현실’, ‘현실정신’ 같은 용어들이 신라적인 정신의 요소를 이루고 있음도 알 수 있다. 확실히 서정주에게 신라는 삶의 현실적 내용을 이루는 온갖 비극과 오욕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비범한 통찰로 그의 시를 이끌어간다. 유한한 개체적 존재의 경계를 넘어 보다 광대한 생명의 영역에 진입하는 초월적 체험의 순간들을 제시하여 주는 것이다.)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자.그리고 몇 십년 뒤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어서내가 못본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나그네의 꽃다발」위의 시는 세대가 지나도 이어질 사건들의 연속을 그리고 있다. 소통의 상대자는 사람과 사람이다. 단회적인 사건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십년이고 몇백년이고 뒤이어서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다시 말해 “인생행로를 제한받고 또 스스로도 제한하며 얼마만큼만 가고 말려는 한정된 단거리주의가 아니라, 한정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고 또 가려는 무원불지(無遠不至)주의”)에 의한 것이다.사람은 자기 당대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자손을 포함한 다음 세대들의 영원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 이 영원한 유대 속에 있는, 우리 눈으론 못 본 선대의 마음과 또 후대의 마음 그것들을 우리가 살아있는 마음으로 접하는 것은 신라정신의 이해가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위의 글은 서정주의 ‘신라정신’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해준다. 그의 ‘신라’는 역사적인 실체로서의 것이 아닌 그의 내면에 구축하고 있는 조화와 안정의 코스모스적인 하나의 미의 세게이다. 그는 신라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정신의 어떤 지혜를 수용하여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현실을 투시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6.06.22| 4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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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 ] 김광균에 대하여-외인촌을 중심으로
    김광균에 대하여 -을 중심으로1. 생애와 가족 관계)1) 출생과 행복했던 유년기1914년 1월 19일, 김광균은 경기도 개성)에서 3남3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본시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 출신이었으나, 부친 김창훈이 모친 한씨와 더불어 집안의 곤궁함을 덜기 위해 상업계로 진출하면서, 일체의 허식을 벗어버리고 실리를 중시한 결과 당시로는 거부라고 할 정도의 상당한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부친이 남대문 근처에서 포목 도매상을 크게 벌였던 관계로, 어린 시절 김광균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넉넉한 살림살이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아무튼 유년 시절의 그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다.2) 부친의 죽음, 고난의 청소년기그가 열두살이 되던 해인 1925년, 그의 부친이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행복했던 그의 유년 시절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부터 미처 헤어나기도 전에, 그는 안타깝게도 집안의 경제적인 몰락을 어머니의 곁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부친이 그간 사업상 진 빚을 청산하기 위해 상점과 살던 집을 포함한 전재산을 채권단에게 내주어야 했던 까닭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랜 고난의 날들이 이어졌다.3) 상업학교 진학과 문학을 향한 열정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개성에 있는 송도상업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하였고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 무렵 처음 자신을 세상에 알릴 기회를 얻게 된다. 중앙 일간지인 ≪중외일보≫에 (1926)이라는 시를 기고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 때 그의 나이가 불과 13세였으니 아직은 어리다고밖에 할 수 없는 나이였다.이후 졸업 때까지 그는 간간이 ≪동아일보≫를 비롯한 중앙일간지 몇 곳과 기타 잡지 등에 자신의 글을 발표하여 문학을 향한 정열을 쌓아간다.4) 취직, 결혼, 군산에서의 생활1932년 상업학교를 졸업한 김광균년 그는 함경남도 이원 출신의 신부 김선희(당시 20세)를 만나 결혼하고, 공장 일은 잠시 접어둔 채 고향인 개성으로 올라와 몇 달 동안 그 곳에서 신혼 생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개성에서 서너 달 보낸 이후 그는 다시 아내를 데리고 군산으로 내려가 공장에 복귀한다. 이 시기 이미 그는 점점 더해 가는 문학에의 열정과 더불어, 틀에 얽매인 직장 생활에 어느 정도 염증을 느꼈을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군산에서의 시기는 그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5) 서울 상경, 그리고 시작 활동의 절정기1936년 봄, 그는 회사로 부터 서울 본사 근무를 명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 무렵 그는 김기림과 오장환, 서정주, 함형수 등을 자주 만나며 교유하게 되고, 서서히 문단의 중심부로 진입하게 된다.1938년 초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그의 투고작 가 시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됨으로써, 그는 마침내 오랜 숙원이었던 정식 등단의 절차를 밟게 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문단 내외에서 기성의 대우를 받고 있던 터였으나, 그로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검증의 기회를 갖고 싶었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이 시기를 전후하여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집안의 밀린 빚을 청산하는 한편 사업을 하던 동생에게 남은 자금을 대주어 가족들을 부양한 후 자신은 시작에 몰두한다.이후 일제 말기와 해방기를 거치는 동안은 그의 창작 활동의 절정기로서, , , , , 등 지금까지 우리가 그의 대표작들로 거론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텍스트들은 바로 이 시기 동안에 발표되었던 것들임을 알 수 있다.6) 동생의 납북과 사업가로의 변신시인으로서의 이러한 절정의 삶도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수도 서울은 단 3일 만에 맥없이 함락되고, 이어 사업을 하던 그의 동생 익균이 정치보위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서대문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끝내 동생은 패주하는 북한군들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서는 이후 다시 만나볼 길이 없게 되었다.동생의 납북으로 인해 그는 훗날 자신의 문집 『와우산』과 시집 『추풍귀우』의 말미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8) 경영 일선에서의 은퇴와 문단 복귀1984년 『현대문학』지에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그의 문단활동은 비로서 재개된다. 그는 이후 아들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고 이듬해인 1985년에 문단의 원로들의 모임인 『회귀』의 동인으로 참여하여 다시금 본격적으로 창작에 힘을 기울인다. 제 4집인 『추풍귀우』(1986)가 발간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그의 나이 75세 되던 1988년, 뇌혈전증 증세로 한 차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약 5개월여에 걸친 투병 기간을 거쳐 얼마간 건강이 회복되는 듯 보였다. 김기림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보는 한편, 그간의 문예 활동의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시 (1988)으로 제 2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한다.9) 사 망1993년 11월 23일, 그는 결국 악화된 건강을 이겨내지 못하고 80세의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그의 유해는 평소의 뜻을 따라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지추리(현,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에 소재하는 와우산 자락 어머니 무덤 곁에 안장되었다.2. 김광균 시 연구-을 중심으로한국현대시사(韓國現代詩史)에 있어서 김광균은 그의 작품 속에 모더니즘을 구현한 대표적 이미지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모더니즘 시의 표현적 본질인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우리 시의 현대화에 일익을 담당한 그는 특히 내면정서의 감각화에 성공한 시인이었다.)특히 그가 시각화에 초점을 둔 작가)라는 통설에 의해 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수작(秀作)으로 꼽혀 온 시이다. 이 시에 대하여 문덕수는 ‘공간적 구도와 회화적, 감각적 이미지의 조형’에 의해 ‘외인촌의 전경을 회화적 수법으로 열거’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색채어는 고사하고라도, 마차가 가는 모습을 ‘잠기어간다’라고 시각화시킬 정도로 김광균의 회화적 조형성이라는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1) 분석○하이얀 모색 : 저물녘의색채이기도 하다. 특히 이 색채는 ‘소멸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그 특징인데 이것은 김광균의 색채어 이미지의 성격을 전반적으로 어두운 쪽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파-란 역등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 산협촌의 좁다란 길로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는 정경은 쓸쓸함과 소멸의 이미지를 준다. ‘파-란’색도 확산되는 빛이 아니고 움츠러들고 바랜 느낌을 준다. 외롭게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소멸의 울적함이다.이러한 청색의 이미지는 그의 시에서 ‘슬픔, 소멸, 희망’등으로 나타나며 백색 다음으로 많이 쓰여진다.)○바다를 향한~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 멀리 바다가 보이는 산마룻길.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의 이미지는 적적함. 외로움. 무기력함 따위의 이미지를 자아낸다. 전신주에 걸려 물들어 있는 구름 또한 ‘하나’라는 고독감의 이미지에 의해 ‘새빨간’ 색마저 역동적으로 느껴지지는 않고 오히려 희석되고 만다. 김광균은 이 적색의 이미지를 주로 ‘노을’과 함께 쓰며 그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작품 속에 반영하여 강렬한 인상의 시어를 쓰고 있다.)○작은 집, 작은 시내 : 바람에 불리운다는 것에서 왜소함, 연약함의 가련한 이미지를 준다. 그러기에 바람을 막으려 내리는 창에서도 가련한 느낌을 받게 되고, ‘작은 시내’도 마찬가지이다.○공원의 정경 : 벤치에 안개가 자욱하다. 이것 역시 허무와 쓸쓸함의 정서를 유발한다. ‘시들은 꽃다발’, ‘가벼운 웃음’은 통사상 같은 의미이다. ‘시들은 꽃다발’이 버려진 것, 소외된 것, 허무한 것 등의 이미지를 주듯이 ‘가벼운 웃음’은 허망함과 서글픔의 정서를 자아낸다. 공원은 그것들이 버려져 있는 공간이다.○외인 묘지, 퇴색한 성교당 : 외인 묘지, 어두운 수풀은 시간적으로 좀 더 깊어진 것임을 알려 준다. 공포감, 칙칙함의 이미지이다.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린다는 것도 창백하고, 가녀리고, 파리한 느낌을 준다. 하늘마저도 텅 비고, 시계 바늘도 야윌 대로 야윈 이미지로 그려지며 동시에 성교당도고 있다.이 유명한 것은 이 마지막 행 때문)이라고도 말할 만큼 뛰어난 표현이다. 종소리는 색깔이 없지만 주위 의미환경(소멸, 슬픔)과의 조화로 인해 푸른색의 이미지와 소리의 이미지가 잘 만날 수 있고,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음상을 분수의 흩어지는 이미지로 바꾸고 있어서 표현기교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광균 시의 변증법적 심상체계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변증법적 구조란 대립적 성격의 이미지가 서로 만나 더 큰 이미저리(imagery, 집합적 심상)를 이루며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심상체계는 의 전체에서 실현되고 있다.)2) 그 외 작품들(1) 와사등(瓦斯燈)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내 홀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래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공허한 군상(群像)의 행렬에 섞이어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悲哀)를 지니고 왔기에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내 어듸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여 있다.≪조선일보≫(1938. 6)이 시는 ‘비인 하늘’에 걸려있는 등불을 초점으로 하여 원근법에 의해 도시의 풍경을 그리고, 그에 대한 화자의 정서를 진술하고 있다. 여기서 그려지고 있는 도시공간은 ‘창백한 묘석’과 ‘무성한 잡초’와 같은 황폐하고 비인간화된 문명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 속에서 화자는 방향감각을 잃은 채 낯선 군중의 ‘아우성 소래’를 들으며 장소성을 잃어버린 도시에서의 소외된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따라서 김광균의 ‘산책자’ 역시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시 전편에는 비애감이 짙게 깔리고 있다. 비인 하늘에 걸려있는 ‘등불’은 바로 그러한 서정 주체의 내면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주는 매체가 된다. 즉 그 등불은 타자와의 상호 소통가능성을 잃어버린 채, ‘고요히’뇨.
    인문/어학| 2005.04.12| 7페이지| 1,000원| 조회(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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