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ssues on Korean English Education System- it's time to change!Lever Ⅲ Kim, Mi-jin (Emily)Have you ever heard about this article? There was an interesting article recently that criticized the reality of the English education system in Korea. The article says that in Korea, there are many people who score high points in the TOEIC test, but they still cannot have a basic conversation with foreigners. It also informs us that this kind of phenomenon is caused by our poor English education system. That is focusing only on grammar. As it is commonly known, earlier is better in acquiring listening and speaking skills. So, young generations can naturally learn about English listening and speaking. To learn English well, there is no wonder that grammar is important, because grammar is the basis in language learning. However, our education system is focusing on grammar too much. It is no use teaching student English grammar only. If this situation continues without any change, we will end up with a big tragedy. According to the research, Koreans spend a lot more money and time to learn English than any other country, but the efficiency is much lower. In order to stop this, our English education system must be innovated.To make the education system better, we had better keep in mind the following two things. First, we should know that reading, listening, writing, and speaking are different processes. When we study reading and listening, the ability to interpret is important because they are the processes involved in analyzing given texts. Unlike the above, writing and speaking are totally different. When we speak and write in English, what we have to do is to create English sentences. They are more difficult processes than reading and listening because creating sentences requires more knowledge, for example, grammar, word order and word choice.Secondly, we should know that our English education system has focused only on reading and listening until now. After we graduate from high school, most of us can basically understand normal-level English articles. Of course, I admit that there are difficulties when we try to fully understand difficult articles, but we have no problem when we try to roughly understand the meaning. However, our level of writing and speaking is far lower than that of reading and listening. We make many mistakes when we write sentences and talk with foreigners using basic conversation.So, how can we make our education system better? Here are some solutions. First, we must know that what we need is a harmony. I think that learning English is like a construction process. When we build a house, if we omit some important elements, the building will collapse someday. Likewise, when we learn English, if there is no balance, our English might crumble. It must be built on a solid foundation. Secondly, we have to train our English teachers regularly. Some teachers, especially old people, are not comfortable speaking English during their classes. If they taught students in English, students would have a much easier time speaking English as well. Majority of high school students are ashamed when they speak English in front of other people. So, I think we have to make them feel free and comfortable when they express their thinking and feeling in English. Finally, we have to change the standardization of English tests like TOEIC. These days, more than 80% of university students have to study TOEIC to graduate school or get a job. As I mentioned earlier, there are many people who score high points in the TOEIC test, but they still have some problems when they talk with foreigners. I think that is an useless and dead language. In my opinion, we have to find more effective and practical ways to evaluate them, not only TOEIC test.In short, the English education system in Korea is in a serious crisis now, because of an unbalanced focus among reading, listening, speaking, and writing. To settle this problem, I suggest that we change our education system in a harmonious way because balancing the studying in language learning can bring us a miraculous effect. Speaking and writing proficiency is steadily becoming more and more important in this international and global society.However, our education system puts the importance on reading and listening only. Moreover, we cannot improve our English ability just by achieving high English reading and listening level. We'll experience great development in English education only if we change our English education system harmoniously. It’s time to change.PAGE PAGE 2
2007-2 영미희곡 기말과제‘세일즈맨의 죽음’ 조사 분석하기영미언어문화학부 4학년2004046811 김미진목차[당시 미국의 사회적 배경]-------------------------------[작가 소개 - Arthur Miller]-------------------------------사회주의적 작가-도덕주의자-무대표현에 뛰어난 극작가 - 표현주의 기법[작품 - 세일즈맨의 죽음]--------------------------------Ⅰ. Willy의 내면적인 정신적인 갈등과 아버지와 자식들의 관계Ⅱ. '세일즈맨의 죽음' 줄거리Ⅲ.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윌리의 자살 동기-미국자본주의 사회구조-인간적인 면 (성격 / 직업적성)Ⅳ. 성공의 법칙과 그로부터 소외된 인간- American DreamⅤ. 세일즈맨의 죽음이 이전의 전통 비극과 차별화 되는 이유Ⅵ. 이름 없는 소시민들에게 보내는 동정과 연민Ⅶ. 윌리의 가족들Ⅷ .‘세일즈맨의 죽음’에 대한 조사 분석의 마무리미국은 Eugene O'Neill, Robert E. Sherwood, Elmer Rice, Sidney Howard와 그 외의 1920년대 극작가들의 극에서 비로소 미국적인 것으로 성숙하였다. 특히 E. O'Neill은 1920년대에 있어서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되었다. 1930년대 극단에 새로 등장한 사회극작가들인 Clifford MacLeish 등은 사회 체제 비판과 경제적 압력과 전쟁의 위협 및 그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정인 자세로 작품을 씀으로써 그들의 정의의 기준에 따라서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고 영원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에서 가장 존경을 받은 극작가 Tennessee Williams와 Arthur Miller는 전전 작가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연극계에서 최초의 성공을 거두고, 구라파 각지에도 알려진다. 아서 밀러의 모든 작품을 통하여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특징 혹은 극작가로서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사회주의적 작가먼저 밀러는 ‘사회주의적 극작가’라가 법정이고 극자체가 재판인 것 같은 작품이 적지 않다. 항상 누군가가 재판되고 있다. 그 재판은 세속의 법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깊은 마음속의 소리인 양심에 의한 재판이다.위에 언급된 두 가지 분류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맞물려 있는 작가의 생각이다. 밀러의 신념은 진정한 극작가는 사회악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사회극은 단순히 사회악이나 병폐의 고발이 아니다. 그가 완전 연극이라고 부르는 진정한 사회극은 인간이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존재이며, 또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속해 있다는 사실을 형상화시켜 좋은 것이다.무대표현에 뛰어난 극작가 - 표현주의 기법연극은 무대 위에 올려 상연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밀러는 기교적인 면에 있어서도 상당히 뛰어난 극작가이다. 그의 극작술에 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수법과 사실주의를 초월한 수법, 즉 ‘표현주의 연극의 아이디어와 장치와의 관계’인 것이다. 밀러는 어디까지나 사실주의를 기초로 하면서 그것을 초월한 실험적 수법을 대담하게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밀러극의 주인공 대부분이 정서 불안정으로 정신적 동요가 심하고 사실주의 수법만으로는 그 복잡한 심리의 기복을 그릴 수 없다고 하는 이유만은 아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바람이 현재와 공존하는 인간 의식의 다층 구조를 뭔가 연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싶다는 밀러의 실험 정신의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밀러의 극작품에서는 표현 형식이 극의 내용과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기교의 분석을 게을리 해서는 작가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와 인간'이란 사실주의적 문제가 담긴 작품을 작가는 표현주의 기법으로 다루었다. 즉, 윌리의 현실 세계는 사실주의적 시각에 맞추어져 있고, 한편 그의 내면세계는 표현주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가 무대 위에서 동시에 교차되는, 주인공의 양분 들려간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 극 자체가 단순히 외면적인 사건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 윌리의 내면적인 정신적인 갈등과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심리적인 것을 다룬 드라마이다. 그리고 이 극의 전환점도 느슨하거나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설정되어 긴밀한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말 부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윌리의 자살 경우에는 지극히 용의주도하고 면밀하게 진행된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살이 아니라, 이전부터 자살의 의도가 ‘가스고무관의 발견’에 의하여 몇 번이나 암시되고 있다. 그래서 윌리의 죽음은 당연한 귀결로 여겨진다. 또한 윌리의 자살의 직접적인 동기는 비프가 마음 밑바닥에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갖고서 그 아들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최후로 해줄 수 있는 걸을 실천할 목적으로 전부터 계획해 온 것을 실행한다. 윌리는 그의 말대가 비프가 인간쓰레기나 건달이 아니라 제 일인자(well-liked number-one man)라는 꿈을 꾼 채 자신의 자살이 비프로 하여금 “Florida idea"의 성취를 위해 2만 달러의 보험금을 타게 함으로써 사업 자금을 마련케 하고 성공의 기틀을 마련 해 줄 것이라 믿으며 죽어 간다. 어찌 보면 윌리의 죽음은 일단 자신의 죽음을 각오한 굳은 신념을 재확인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죽음이다. 그는 세상에 온대로 가지 않으려고 애썼고, 무엇인가 훌륭하게 되려고 꿈을 꾼 사람이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꿈 자체를 포기하기보다 그 꿈을 위해 죽는다. 물론 이런 해석의 관점은 단순히 윌리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자세한 극의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하자.Ⅱ. '세일즈맨의 죽음' 줄거리윌리 로먼이 이날따라 갑자기 일찍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그는 34년 동안이나 줄곧 와그너 회사 외판원으로 근무해 오면서 본사가 있는 뉴욕보다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개척자로서 아직도 그 지역에서 긴요한 인물로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은 어떠한가. 집에는 착한 아내가 있었고 월부지만 집도 한 채 있고, 그의 변명대로 집 밖을 돌아다닐 때 때로는 고독해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미래 희망을 걸었던 자식들도 있고, 일면 독선적이라 할 만치 단순한 삶을 살아 왔다. 그러나 속으로는 월부에 시달리는 생활이었다. 주택과 냉장고 등의 월부금 ,또한 보험료를 내야 되고, 지금은 그 걱정에 자동차 운전이 위험할 만큼 환상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의 걱정과 권유로 젊은 사장을 만나 외판원에서 뉴욕 본사 내근직을 요청해 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그뿐 아니라 흥분하여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아주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까지 듣고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비프도 직장을 구하나 실패하고 만다. 실은 그가 오랜만에 집에 온 것도 그 동안 절도죄를 범하여 약3개월 동안 형무소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실토한다. 비프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감, 그가 평범한 샐러리맨에 불과하면서도 필요 이상의 자부심으로 현실 감각을 상실한 탓에 있다고 그를 원망한다. 윌리에게 한때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그의 형 벤은 그보고 세일즈맨을 그만두고 광산에 가도록 권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일즈맨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허세와 안정된 현재 직업에 안주하려 하는 아내의 영향도 있어 그런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형에 대한 환상은 지금 그의 가슴에 엄습해 오는 회한으로 점점 심해져 그는 형이 아프리카에 건너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여 대성공한 모습을 환영으로 뒤쫓는다. 그런 환상 속에서 윌리는 정신없이 자동차를 몰고 나가 스스로 자살의 길을 택한다. 그의 장례식 날 묘지 앞에 모인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옆집의 찰리뿐이다. 아내 린다가 이제 집의 월부금 내는 일도 다 끝난 마당에 정작 집에 살 사람은 가고 없다고 슬퍼하면서 이 극은 끝난다.Ⅲ.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윌리의 자살 동기다음으로는 윌리의 자살의 직접 동기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통해 주제적인 측면에서 살펴였다. 비프가 고등학교 시절 풋볼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때였다. 즉,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시시각각 그의 현실 세계에 분계선 없이 들락날락하여 그의 불안을 은폐시키고 자위함으로써 삶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차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극 시작에서 보는 주인공은 끝에 가서도 정신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인물로 남는다. 직업인으로서의 실패와 자식의 실패를 그의 삶 전체의 실패로 간주하기 때문에 어디에 서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인간적인 면 (성격)인간적인 면에 있어서의 결점은 성격적인 면과 직업 적성상의 면에서 파악될 수 있다. 우선 윌리의 성격상의 결점으로 누가 보아도 곧 알아차리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약점 투성이며 남을 쉽게 믿거나 의심을 많이 가지며, 현실적이지 못하고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낙관적인 달콤한 견해를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 가운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짓이 많이 들어 있다. 그는 늘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성공과 결부시키면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는 실현 가능성이 있으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냉혹한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시대의 흐름에 올바르게 비판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뒤떨어지고 실패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소질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얼마간 물려받은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일확천금의 꿈에 유혹되어 가족을 버리고 사라진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윌리는 자신이 세일즈맨으로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현실 그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또 자식 비프까지도 사회인으로서 실격이 된 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 윌리는 고교시절 스타플레이어인 비프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공부를 게을리 해도 나무라지 않고, 도벽이 있는데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두둔해 줌으로써 비프로 하여금 성공이라는 환상에 취해 현실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하게끔 부추기게 되고 결국 부랑자가 되게 한다. 윌리는 자기의 아내 린다를이다.
《 목차 》Ⅰ. 오페라 파우스트에 대해서Ⅱ. 독일의 파우스트 박사 전설Ⅲ. 원작 소설 괴테의 파우스트Ⅳ. 괴테와 음악Ⅴ. 괴테와 음악가들Ⅵ. 오페라 속에 나타난 '파우스트'Ⅶ.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VS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Ⅷ. 오페라 감상문 : 한양대학교 오페라 파우스트를 보고Ⅰ. 오페라 '파우스트' 에 대해서-대본 J. Barbier(1825~1901), M. Carre(1819~1872), 프랑스어.원작은 괴테의 파우스트 1부-때 16세기 경-곳 독일-초연 1859년 3월 19일 파리 리릭극장-연주시간 제 1막 약 30분, 제 2막 약 30분, 제 3막 약 50분, 제 4막 약 45분, 제 5막 약 35분 = 총 3시간 10분-등장인물 파우스트(T), 메피스토펠레스(B), 마르게리트(S), 발렌틴(Br), 지벨(MS), 마르테(MS), 바그너(Br) 등-시대적 배경이 작품은 문호 괴테의 동명희곡을 바르비에와 카레 두 사람이 만든 대본에 구노가 작곡한 곡이다. 괴테의 광범위한 내용의 원작을 이 오페라에 모두 담을 수 없어서 주로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트와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다. 이 작품이 파리에서 초연되었을 때 그 당시 파리 사람들은 비극적인 내용을 즐기지 않아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그 후 1869년 5막에 무용음악을 첨가하여 공연하였을 때 호평을 받았다.-기본 줄거리서곡평상적인 제 1부와 제 2막 발렌틴이 노래하는 카바티나 선율을 연주하는 Adagio molto, F단조, 4/4 박자의 곡이다. 그리하여 점차 Andante-a-tempo-Largo로 고요하게 끝난다.제 1 막 파우스트의 서재뷔르템베르크의 파우스트 연구소이다. 파우스트는 세상을 헛되이 살았다며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청춘을 그리며 늙음을 한탄한다. 그는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독약을 마시리라 결심한다. 신을 저주하며 그가 악마를 부르자 돌연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 '나는 젊음을 열망하오(Je veux la jeunesse)'라며 자신의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보석의 노래(Air des Bijoux)'를 들떠서 부른다. 이웃에 사는 마르테가 등장하여 보석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역시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도 나타나 이들은 멋진 4중창을 부르게 된다. 파우스트는 이제 사랑의 제일보를 성공적으로 내딛게 된 것이다.메피스토펠레스가 마르테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가자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트가 피할 수 없는 사랑을 ' 나 그대의 얼굴 응시하지 않을 수 없소(Laisse-moi contempler ton visage)'라고 이중창으로 표현한다. 그는 기쁨에 몸둘바를 몰라하고 그녀는 환희에 넘쳐 '오, 사랑하는 밤이여!(Oh nuit d'amour)'를 외친다. 둘은 서로 생명을 바쳐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밤이 이슥해지고 파우스트가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오! 다시 돌아와 주오, 그대 제발!(Ah, press ton ertour, cher bien-aime! Viens!)하고 애타게 부르는 그녀의 노래소리를 듣고 서둘러 걸음을 돌리고 만다. 메피스토펠레스만이 냉소적으로 엷게 웃음을 머금는다.제 4 막 마르게리트의 방마르게리트 방에서 그녀가 혼자 눈물짓고 있고 길가는 처녀들은 조소를 던지며 놀려댄다. 지벨이 그녀를 위로하려고 애를 쓰면서 '행운이 그대를 찾아오리(Si le bonheur a sourire t'invite)'를 노래한다. 그녀는 파우스트의 애를 배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며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교회를 간다. 그리고 애처롭게 기도를 드리는데 그곳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며 소리를 지른다. 그녀는 기도를 하던 중 그만 졸도를 하고 만다.병사들의 합창이 울리는 가운데 행진곡 '영원한 영광이여(Gloire immortelle)에 발맞추어 발렌틴이 그들 틈에 끼어 개선한다. 발렐틴은 지젤에게 자기 여동생에 대해 먼저 물어보지만 주저하는 그의 태도에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다.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마르게이트의 창 아래에서 '잠자는 척 하를 악마에게 맡기겠다."는 계약을 한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악마의 도움을 받아 별세계, 지옥을 탐방하고 그리스 신화의 미녀 헬레나와 결혼해 아들도 낳게 된다. 세월이 흐른 뒤 파우스트는 죽게 되고, 그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벌을 받는 것이 전설의 줄거리이다. 독일 시인인 J.W. 괴테가 이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의 최대의 걸작이라고 알려진 파우스트를 저술했다.Ⅲ. 원작 소설 괴테의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 Goethe, 1749-1832)가 영국의 셰익스피어, 이탈리아의 단테와 함께 세계 문학사에 끼친 영향이나 작품의 완성도에서 대등한 평가를 받는 최고의 작가임은 누구나 공인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의해 영어가, 단테에 의해 이탈리아어가 다듬어졌듯이, 독일어는 괴테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괴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83세까지 장수를 누리면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친화력",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등을 남겼고, 음악, 자연 과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바이마르 공국의 정치에도 참여하여 총리로서도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그러나 괴테를 세계의 대문호로 인정하게 한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파우스트"였다. 그만큼 그는 파우스트 한 작품을 평생 동안 다듬고 또 다듬어서 내 놓은 것이다. 그 제 1부는 59세 때에 발표했다. 그러나 제 2부는 그가 사망하던 해에 유고집으로 출판되어 전작을 완성하기까지 거의 60여 년이 걸렸다.이 소설의 주제는 파우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물을 두고 신(神)과 악마가 벌이는 대결 구도이다. 파우스트라는 인물에 대한 전설은 이미 유럽 전역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전설적 이야기가 괴테에 의해 비로소 소설로 완성된 것이다.제 1 부괴테가 24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이다. 신학, 철학, 법학, 의학 등 모든 학문을 탐구해도 마음에 충족을 느끼지 못해 한탄하던 파우스트는 절망한 나머지 독배를 든다. 그러나 부위치하고 있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1832)는 음악사에 있어서도 매우 강렬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문학사에서 괴테만큼 음악 속에 심오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작가는 없었다.괴테가 남긴 방대한 문학작품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끊임없는 창조의 원천이 되어 많은 영감을 제공하여 주었으며, 그러한 괴테의 문학 정신은 음악의 모든 장르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다. 괴테의 문학작품은 텍스트로 사용되어 징슈필 (Singspiel), 오페라, 극부수 음악, 오라토리오, 칸타타, 리트(Lied) 등으로 재창조되었고, 텍스트가 직접 사용되지 않았어도 독주곡에서 실내악, 관현악,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기악곡 속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괴테의 희곡, 산문 작품 중 음악의 소재로 사용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고, 수많은 서정시들 중에서도 리트로 작곡되지 않은 시를 찾기란 매우 힘들다. 이렇듯 괴테의 시 중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고 애송하는 시에 대한 세팅(setting)들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괴테는 자신의 작품들이 음악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시들이 노래로 불려지기를 원했다. 괴테는 자신의 시가 노래로 불려지기를 원한만큼, 그에 따른 만족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패로디의 방법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그의 서정시의 상당수가 근본적으로 콘트라팍타였다.괴테가 선택한 선율은 광범위하여서, 독일의 민요를 비롯하여 루터의 코랄, 영국, 이탈리아의 음악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괴테는 이러한 선율을 모아서 출판하려 했다. 당연히 괴테의 콘트라팍타는 기존의 텍스트보다 훌륭했고 게다가 그 선율에 더 적합하고 더 잘 어울리기도 했다고 평가된다.이러한 콘트라팍타와 패로디의 이용은 '파우스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천사의 합창(Chor der Engel, 737-741행)', '신비의 합창(Chorus Mystictus, 12104-12111행)', '메피스토펠레스의 세레나데(3690-36하여 '파우스트'가 음악화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괴테의 주변에는 그의 대작 '파우스트'에 어울릴 만한 작품을 쓸 만한 인물이 없었다. 괴테는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 1791-1864)라면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작곡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탈리아 작곡가 롯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도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작곡할 만한 뛰어난 작곡가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작곡가는 모차르트였다. 결국 '파우스트'는 괴테 시대에서 대작으로 재탄생하지 못하고 다음 시대에 가서야 역작들이 나왔다.* 괴테와 베에토벤은 1812년 7월 휴양도시 테플리츠에서 만났다. 베에토벤은 괴테를 방문하여 자신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하였고 괴테의 원작에 의한 '에그몬트'의 서곡도 들려주었다. 그러나 고전주의 양식의 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괴테는 베에토벤의 격렬한 음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하였거나, 이후에 베에토벤은 괴테에 대한 존경심을 버렸고, 괴테 또한 베에토벤의 음악 속에 깃들어 있는 열정적인 낭만주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란한 음악으로만 평가하였다.Ⅵ. 오페라 속에 나타난 '파우스트'오페라의 표현 양식이 매우 다양하여 희곡 작품인 '파우스트'를 어느 장르보다도 충실히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괴테 자신도 오페라만이 자신의 작품을 충실히 수용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만들 수 있는 작곡가로 마이어베어, 롯시니, 모짜르트 등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에게서는 오페라 '파우스트'의 완성을 보지 못했고, 낭만주의 시대에 와서야 오페라로써의 '파우스트'가 빛을 보게 되었다.구노(Charles Francois Gounod, 1818-1893)는 파우스트를 애독하면서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을 중심으로 합창곡을 쓰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던 중에 레온까발로(R. Leoncavallo, 1857-1929)의 권유로 '파우스트Ⅰ'을 오페라로 작곡하게 되었다. 이.
< Cover Letter >Dear Mr. Kim,I would like to apply for the position of marketer advertised in the May 20 issue of the Job Korea. I enclose a copy of my resume, as requested.As you can see from my resume, I will graduate from Hanyang University next February. Although my work experience is limited, I believe I have the necessary skills for the position of Marketer. I speak English, French, and Korean.
영미문화가 우리나라 문화에 끼친 영향'영미문화가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이라고 했을 때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였다. 아무래도 나이 지긋한 어른들보다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또 새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젊은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그들에게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가 아닌가. 그래서 내 보고서의 주제를 이것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나는 대중문화를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영화'를 살펴보자. 과거 우리나라의 영화가 가족적인 내용이나 멜로드라마와 같이 잔잔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의 영화 사업은 규모나 내용면에서 무척 다양한 시도를 추구하고 있다. 내 생각에 그러한 현상은 세계영화를 주름잡고 있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미권의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바로 대규모 자본으로 이루어진 소위 '블록버스터' 라는 것인데, 영미권 영화들이 수입되면서 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우리 영화시장에 침투해 들어와 관객으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고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한 영향으로 멜로 영화 중심이었던 우리나라 영화산업에 자극을 주는 동시에 때로는 '선의의 모방'을 하게 하면서 좋게 말해 우리나라 영화가 스스로 '자기발전'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이다. 과거 IMF시절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우리가 실시했던 금 모으기는 '타이타닉' 이라는 거대한 배에 의해 침몰되어 버렸던 적이 있다. 그만큼 외화를 모아 국가적인 위기를 넘기려 했던 우리 국민들의 노력을 물거품 시킬 만큼 그 하나의 영화가 미치는 영향이 대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한 때는 영미권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이나 스펙터클적인 요소들이 우리나라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영화는 정말 시시하다'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어 관객들의 등을 돌리게 했을 만큼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블록버스터와 경향의 가장 큰 단점은, 문화로서의 우리영화가 설 자리를 잃는다는 데 있다. 사실, 우리나라 영화가 스케일이나 특수효과로 영미권 영화를 이길 수 없다면 예술적으로 성숙된 영화를 시도해야 마땅하겠지만, 우리 영화 문화에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가 절대적으로 빈곤한데다가 영미권 영화에는 거대한 영화 시장과 마찬가지로 그를 뒷받침해주는 예술적 토대가 있는데, 우리는 바로 그런 점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의 문화는 유럽에서 왔고 유럽은 영화라는 예술의 근원지라는 것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요소들이 우리 영화계에 자극이 되어 우리도 미개척 분야인 무협 장르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고 겉모습이나 질적으로 보다 성숙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관객들을 다시 한국 영화로 끌었고 영미 문화권에서만 보이던 '장르의 다양성'이라던가 '시각적 볼거리' 때문에 관객 역시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무려 4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다며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한다는 많은 홍보를 해 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했었다. 와이어 액션이나 특수효과 부분에서 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영미권 영화 못지않았지만,전체적으로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실망시켰었다. 즉 한국인의 정서나 우리의 주체성을 살려 만들었다기보다 단순히 영미권 영화의 겉모습만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었다. 영화에 대해 심도 있게 알지 못하는 내가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는 부끄럽지만, 어쨌든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한 사람의 관객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또, 내가 어렸을 적 꿈과 환상에 젖어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던 만화책을 영화화 한 도 마찬가지였다. 그 밖에도 , , , , , , , 등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우리나라 영화도 정말 놀라운 발전을 해서 나 , , 와 같이 할리우드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 한 아주 훌륭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국민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두 번째로 '음악'이라는 대중문화의 한 장르에 대해 생각해보자. 음악은 영국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영국과 그 영향이 매우 깊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 이 부분에서는 '음악'이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가요'라는 전제하에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음반시장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가요시장은 그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대규모이며, 전 계층을 막론하여 공감대를 얻고 있는 대중 문화의 한 분야로 성장한 지금 결코 무시하고 넘어갈 정도로 작은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영미 대중문화와 연계시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미권의 음악이라고 하면 영화와 함께 전 세계 어느 곳이든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음악이라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 음악을 들음으로써 사람들의 기분을 완화시키거나 고조시키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또한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음악의 장르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가 다양한데, 음악은 그 선호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만큼 장르의 다양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영미 문화 속에서 음악은 힙합, 레게, 라틴, R&B 등 다양한 장르를 소유하고, 또 그러한 것들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이 우리문화 속에서도 자리를 굳게 잡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이들 음악과 함께 들어오는 패션이나 문화적인 요소들 역시 또 하나의 음악문화를 형성하여 우리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세 번째로는 바로 '패션'인데, 요즘 우리는 패션잡지나 케이블 방송,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할리우드 스타들의 연애와 같은 사생활과 그들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동경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는 그 관심이 좀 더 비상한데, 스타들의 옷이나 액세서리 등의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화려한 셀러브리티들을 모방하고자 노력하고, 또한 이들과 비슷해짐으로써 자부심을 느끼거나 보상심리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타들은 전 세계 십대나 이십 대의 젊은 여성들의 패션을 주도하는 등 그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나와 같은 평범한 경우만 보아도 'VOGUE GIRL' 등의 외국잡지를 거의 매달 구독하는 편이고, 'ON STYLE'등의 케이블채널에서 자주 방영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에 관한 프로그램을 아주 재미있게 보며 요즘 십대 여자아이들의 우상이자 패션 아이콘인 '린제이 로한'이나 '올슨자매', '커스틴 던스트' 등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요즘의 대세는 그렇다 치고, 영미문화가 우리나라 패션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청바지문화' 일 것이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옷, 누구나 한 벌씩은 꼭 가지고 있는 옷. 바로 청바지다. 청바지는 우리가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또 그만큼 많이 퍼져 있다. 정말 청바지가 세상에 없었다면 이것 대신 어떤 옷을 입었을까 싶을 정도로 '청'은 우리 의복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청바지는 미국 광부들에 인해서 처음 만들어 지게 되었다고 한다. 청바지는, 질기고 잘 닮지 않는 활동하기 매우 편한 옷으로, 1950년대 말부터 청바지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중요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청바지는 미국인들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정신과 함께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로 큰 성공을 이룬 것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우리들이 즐겨 입고 다니는 청바지 하나만 보아도 영미문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가 청바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물론 실용적이고 편한 면도 많이 차지했지만, 영화나 TV의 영향도 컸다. 특히 이유 없는 반항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딘'이 입고 나온 청바지를 보면서 당시 10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