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공동체』를 읽고20400xxx 정 xx“민족은 19세기 국가들이 만들어진 과정에서 생겨난 창조물이다.” 역사와 인간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 민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쉽게 쓰면서 살아가지만 정작 이 민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민족됨을 무엇이 결정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민족이라는 것은 나의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어서인지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단순한 지적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민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개념은 어디에서 생겨났으며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해왔던 것일까? 나는 이 궁금증이 해결되길 바라면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집어 들었다.1장 서장“이렇게 나는 민족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를 할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떠밀리게 된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현상은 존재했고 또한 존재한다.” 민족됨(nationess)은 우리 시대 정치생활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치이다. 그러나 이 민족주의가 현대 세계에서 가지는 영향력과는 대조적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은 눈에 띄게 빈약하고, 그 이전에 민족주의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조차도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이 책의 저자인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런 모호한 민족주의 개념에 대한 해석과 제안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주장의 요점은 민족주의가 특수한 종류의 문화적 조형물, 즉 다시 말해 18세기 말경에 민족주의 이전의 문화적 요소들과 그것과 관련이 없는 다른 역사적 요소들이 뒤섞여서 나온 창조물이라는 것이다.그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전에 민족주의 이론가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몇 가지 역설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요점은 민족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역사가들과 민족주의자들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과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위력이 있지만 통치는 성 정치학(Sex politics)에 의해서 확장되고 유지되기도 하였다. 지배자는 경전처럼 신성한 존재에 접근하는 접목점이었으며 인간의 충성심은 반드시 서열적이고 구심점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왕조 국가의 자동적 합법성은 서서히 퇴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많은 왕조들은 기존의 정통성의 원칙 대신에 ‘민족’이라는 표어에 손을 뻗었다.그러나 저자는 왕조국가를 이어서 등장하게 된 이 ‘민족’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종교공동체와 왕국을 잇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되고, 세계를 이해하는 양식의 변화가 다른 무엇보다도 민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동시성의 출현이다. 사람들은 시계와 달력에 의해 측정되는 물리적 시간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동시대인에 대해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재를 재현해 주는 소설이나 신문은 동질적인 시간 안에 존재하는 동시대인이라는 의식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장르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실생활에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자신과 이들이 동시대인으로서 동일한 사회적 실재 안에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상상은 공동체 의식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반을 제공하는 데에는 신문도 큰 역할을 했다. 신문은 같은 시각에 생신 서로 연결되지 않은 사건들을 기사화함으로써 독자들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신문의 발달, 더 크게는 인쇄자본주의 발달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각 개인들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서 ‘수평적이고 세속적이며 횡적인 시간’ 형태의 공동체들이 가능하게 만들어서 민족이란 개념의 등장을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3장 민족의식의 기원저자는 이어서 이런 변화 가운데서 왜 민족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주도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안해서 분리했고, 후에 독립 민족국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식민정책을 들 수 있다. 스페인은 크리올들이 본국정부나 다른 식민 행정지의 관리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크리올들은 독립된 식민 행정단위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런 운명을 가진 다른 관리들에게서 동료 의식을 느꼈다. 셋째는 지역신문의 발달이 독립된 식민 행정단위 백인이주민들 사이에 발달한 동료의식과 공동체의식을 강화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이 지역신문은 자신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었고, 이 공동체 의식은 ‘민족’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되게 되었다. 이런 세 가지 요인들에 덧붙여 크리올을 중심으로 주도된 민족해방운동은 언어나 문화적 전통, 인종에 상관없이 자신의 영토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후에 북아메리카의 동부에 밀접하게 형성된 영령 아메리카 13개주가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일되는 결과를 낳았다.5장 구언어, 신모형이런 아메리카 민족해방운동이 종결될 즈음에 유럽의 민족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유럽의 민족주의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특색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민족 활자어(national print-language)가 이념적, 정치적으로 중심적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오래된 선례들이 제공한 현시적 모형들로부터 모든 것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유럽에서 발달한 민족주의는 종족과 언어를 민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던 기존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갔다.유럽인들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문명을 발견하였고, 이 발견은 오래지 않아 유럽인들의 언어에 대한 사고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은 탐사, 개종, 상업과 전쟁 등의 실제적인 이유로 비유럽어의 단어목록을 모아 간단한 어휘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 와서는 언어의 과학적 비교연구가 행해졌고 그 연구 결과는 그리스나 유대 문명보다 인도 문명이 훨씬 더까지 살펴본 모형들 세 가지(아메리카 대륙, 유럽 언어민족주의, 관주도 민족주의)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유럽언어를 쓴다는 점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의 모형을, 열렬한 대중주의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유럽의 언어민족주의 모습을 그리고 민족동화 정책을 지향했다는 점에서는 관주도 민족주의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런 혼합은 국경이 임의적으로 결정되고,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민족들 위에 2개 언어를 구사하는 지식 계층이 불안정하게 위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창조된 비정상적인 산물이었다.이 식민지 민족주의의 형성은 신생국들의 발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서구의 근대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의 발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후반에 있었던 제국들이 그들이 식민화한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이중언어를 알고 식민행정과 식민지인을 매개하는 다수의 하급관리들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제국의 통치자들은 식민지들에 서구의 근대식 교육 제도를 도입하고 이런 하급관리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 예로 ‘인도차이나’의 식민통치자들이 추구한 교육정책을 들 수 있는데, 이 교육정책은 두 가지 기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식민지 주민들이 인접한 인도차이나 외부세계와 가지고 있는 정치, 문화적 관계를 끊게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정치적으로 믿을 만하고 은혜를 알며 문화 변동을 겪은 토착 엘리트로서 식민 관료체제와 상업적 기업의 하급 일을 맡아 할 인도차이나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이런 교육의 과정에서 식민지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같은 환경에 처한 공동체이자 형제자매로 인식하게 된다. 이들 사이에 유대감은 후에 식민지 민족주의가 크게 확장되는데 무시하지 못할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교육을 마친 후 식민지 지식인들은 제국을 구성하는 민족의 배타성으로 인해 제국의 중심부로는 가지 못하고 각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런 상황은 자신의 언어를 쓸 줄 아는 관리의 지배를 받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하한 나라와 나라간의 영토의 경계가 분명해지고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힘이 위치에 관계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식민지를 특정한 색을 칠하는 로고로서의 지도를 사용했는데, 이렇게 채색된 각 식민지는 조각그림 맞추기 퍼즐처럼 분리될 수 있는 조각처럼 보였다. 그리해서 제국주의자들이 민족을 경계를 확실히 정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바라보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지도의 발달은 확실한 영토의 구분을 가져왔으며 그 영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정체성, 민족성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센서스와 지도 못지않게 식민행정가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박물관이었다. 식민통치자들은 자신들이 복속시킨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고고학적인 노력은 인상적인 기념물의 복구에 크게 집중되어 있었고 이런 강조는 일반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유행을 반영했다. 그런데 이런 강조는 단순히 그 문화가 가진 가치 때문만이 아니었고 세 가지 중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그 시기 진보주의자들은 근대식 교육에 주요 투자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보수주의자들이 그러한 교육의 장기적인 결과를 우려하고 원주민이 원주민으로 머물기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원주민들의 문명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며 진보주의자들의 압력에 저항했다. 둘째는 식민통치자들이 그들을 통치할 대안적인 합법성을 창조해 내야했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식민지의 고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그 결과로 발달된 기념비적 고고학은 국가가 보편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전통의 수호자로 보이게 하였다. 또한 고대 유적에 대한 문명의 힘을 보여주고 동시에 원주민들의 낮은 문명을 강조함으로써 고대의 유적을 복원하는 식민지 지배자가 고대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11장 기억과 망각기억과 망각은 근대에 발명된 민족이 어떻게 해서 원초적이고 오래된 역사적 공동체로 상상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다.
를 읽고과 목 : 역사와 인간학 과 : 생명식품 과학부학 번 : 20400XXX이 름 : 정 X X제 출 일 : 2008. 12. 9『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20400XXX 정 XX책 앞쪽 표지를 보니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세계 지성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 이 책을 통해서 그의 본래 영역인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뛰어넘어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런 극찬을 받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쓰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이 책에서부터 시작된 건 알고 있지만, 이게 그렇게나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는 개념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과학을 전공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전혀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의 이해를 도울 자료들을 찾아보았고, 그러면서 쿤의 학문적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토마스 쿤(Thomas S. Kuhn)은 반증주의를 창시한 포퍼와 함께 20세기 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력은 끼친 과학철학자라고 불린다. 만일 이 둘이 없었다면 과학철학이 어쩌면 20세기 지성사의 변두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과학철학에 있어서 이 둘의 역할은 지대했다. 쿤은 겨우 불혹의 나이에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1962년 초판이 나온 이래로 최소한 16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부가 팔려나갔다. 또한 이 책은 1975년부터 1983년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책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류 지성사에 큰 획을 긋고 다양한 전공 영역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대작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놀랍게도 쿤은 원래 과학철학자도 과학사학자도 아니었다. 1922년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1940년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1943년 최우등으로 졸업한 물리학도였다. 1946년과 1949년에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쯤해서 물리학 자체에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오히려 역사와 철극히 방대하고 미완성인 정보 더미의 어느 특수 부분만을 강조했던 학파일 때가 많았는데, 그들은 부딪히는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할 필요가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못했지만 초기의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전기를 유체로 생각하여 전도 작용을 특히 강조한 학파를 들 수 있다. 그 학파의 주장은 기본 원리에 대한 학파간의 논쟁을 종식시켰고, 또 길을 바로 잡았다는 자신감을 과학자들에게 줘서 보다 정밀하고 심오한 연구가 진행되도록 사기를 진작시켰다. 그리고 이 현상은 초기의 패러다임이 보다 사실-수집과 이론의 명료화에 있어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해서 한 분야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탄생하게 되고 다음 세대의 대다수 전문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보다 낡은 학파들은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하는데, 이때 낡은 이론에 고착되어 있는 사람은 후에 그 전문 분야로부터 소외된다.3. 정상과학의 성격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대안적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교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전문가들 그룹이 시급하다고 느끼게 된 몇 가지의 문제를 푸는 데에 다른 패러다임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 덕분에 그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보다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일한 문제에 대해서 완벽하게 성공적이라든가 또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성공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정상과학이 새롭게 구성되며, 이 정상과학을 따르는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 창안된 것들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주로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그러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화 하는 것을 지향한다. 정상과학에 의해 연구된 분야는 그 시야가 극히 한정적인 왜소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러한 폐쇄성은 정상 과학의 단점으로 분류할 수 있다.과학적 탐구에는 오직 세 가지 정상적인 핵심이 있다. 첫째는 패러다임이 사물의 본질에 대해 규칙들은 매우 광범위한 과학자 집단에 공통적인 것이 상례이지만 패러다임은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똑같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동일한 주제를 학습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전공의 세분화 과정에서는 매우 상이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패러다임의 차이는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양한 결과가 도출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6.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위에서 말한 정상과학의 수수께끼 풀이의 활동은 과학 지식의 범위와 정확성의 꾸준한 확장을 이루어 가는 활동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상 과학은 평범한 과학 연구의 이미지와 잘 맞다. 그러나 이런 정상과학에는 과학적 사업의 표준적인 것 중 하나가 빠져있는데, 바로 정상 과학이 사실이나 이론의 혁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참신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의 발견은 이상(anomaly)의 지각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으로서, 다시 말해 자연이 정상과학을 다스리는 패러다임의 예상들을 어떤 식으로는 위배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변칙성이 있는 장소를 넓게 탐색하게 되고, 그 결과 패러다임이 다소 수정되고 변칙적인 상태까지도 예측이 가능해질 때야 비로소 탐구가 끝마쳐지게 된다.어느 과학의 발달에서나 최초로 수용된 패러다임은 보통 그 과학의 종사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관찰과 실험의 대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듯이 느껴지게 된다. 따라서 패러다임이 더욱 발달함과 동시에 정교한 장치의 제작, 심오한 의미의 어휘와 기술의 개발 그리고 상식에 대한 일치성이 점점 감소되는 개념들의 정련이 요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전문화는 한편으로는 과학자의 시야를 크게 제한시키며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서 상당한 저항으로 작용하고 그 결과 과학은 점점 경직되어간다.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새로운 발견들은 모두 패러다임 원인이거나 또는 기여 요소였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발견들로 인한 과학의 발달은 이미 알려진 기초 이론들의 점진적인 발전과 개량에 이루어지는 것의 요점을 제시하는 일은 거의 없다. 둘째는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서 그 본질은 지적되지만, 그 상세한 것은 이론들을 더욱 명백히 정련함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이것들은 과학자들이 많은 시간 연구를 집중하는 현상들이지만, 그런 연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출 보다는 기존 패러다임의 정리에 목표를 두고 있다. 세 번째는 명백한 정리를 위한 이런 시도가 실패하는 경우에 한해서 발생하는데, 이것은 이미 인식된 변칙들로서 그 특성적인 성격은 기존 패러다임에 동화되기를 강경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 형태의 현상만이 새로운 이론들의 근원이 되며, 이때 패러다임은 이상 현상을 제외한 모든 현상에 대해 과학자가 보는 시야에서 이론-결정적인 위치를 부여한다. 패러다임은 그 패러다임을 생산한 과학을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방법들의 원천이요, 문제 영역이며, 어느 주어진 시대의 어느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서 수용된 문제 풀이의 표본이 된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과학을 재정의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고, 이 때 옛날 문제들은 더러 다른 과학분야로 이동하거나 또는 완전히 비과학적인 것으로 선언된다. 그리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사소해 보였던 여러 문제들이 풀어야 하는 문제들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과학사학자들은 패러다임이 변할 때 세계 그 자체도 패러다임의 변화에 더불어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도구를 채택하고 새로운 영역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연구했던 곳에서 친숙한 기기를 써서 관측하면서도 새롭고 색다른 것들을 보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형태주의 심리학은 과학자 세계에서의 이러 변형을 잘 설명해 준다. 혁명 이전의 과학자 세계에서 여인이었던 것이 혁명 이후에는 노파로 둔갑한다. 이러한 관찰은 관찰자의 배경 지식에 따라 관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관찰은 결국 이론(배경 지식)을 등에 업은 관찰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이 능력 등을 꼽을 수 있다. 다른 패러다임이보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우수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로 경쟁적인 패러다임의 지지자는 상이한 기준과 형이상학적 원리 등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들 수도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그들의 연구를 수행한다. 양쪽이 모두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것들을 보며 또 서로 다른 관계에서 그것들을 보게 된다. 그들 사이에서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려면 한 그룹 또는 다른 그룹이 우리가 패러다임 변동(shift)이라고 불러온 개종(conversion)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과학자 개개인이 하나의 패러다임에 쏟던 믿음을 이와 비교할 수 없는 대안적인 패러다임으로 옮기게 되는 변화를 “게슈탈트 변화” 혹은 “종교적 개종”과 연관시킬 수 있는 것이다.패러다임의 새로운 후보는 당초에는 지지자도 거의 없고 지지자의 동기도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이 유능한 경우에는 패러다임을 개량하고,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것에 의해서 인도되는 과학자 사회가 어떤 것이 되는가를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진행됨에 따라서 설득력 있는 논증들의 질과 양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개종할 것이고 새 패러다임의 탐사 작업이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그 패러다임에 기초한 실험, 기기, 논문, 서적 등의 수효가 점차 불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관점이 효과적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정상과학을 수행하기 시작하고 그전 패러다임에는 결국 소수의 나이 많은 저항자들만 남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루어진다.13. 혁명을 통한 진보모든 과학자들이 정상 과학자이고 정상 과학자로 머문다고 하면 과학의 각 분야는 하나의 패러다임에 덜미가 잡혀, 그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진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그것을 통해 세계를 보고, 그 안에서 기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