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지방자치단체간 관할구역 갈등사례분석현행 지방자치법은 자치구역에 대해 제4조제1항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구역은 종전에 의하고 이를 변경하거나 시도의 관할구역 경계변경은 법률로, 시군구의 관할구역 경계변경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2항은 지방자치단체의 폐치분합이나 명칭 또는 구역변경 시 관계지방의회의 의견청취나 주민투표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1950년 1월 1일 거제군설치에관한법률이 제정된 이래 지방자치단체의 폐치분합 또는 구역변경에 관한 수많은 단행법령이 제정되어 왔다. 1896년 8월 4일 지방제도관제봉급경비개정의건 이 반포되어 종전의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도입된 이후 1909년 6월 25일 지방구역과 명칭의 변경에 관한 건을 통해 구역변경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즉 도(道)와 부(府)군(郡)을 폐치분합하거나 명칭 또는 구역을 변경할 때에는 칙령에 의하고(제1조), 면(面)의 폐치분합 및 기타 명칭변경은 내부대신이 정하도록 하였다. 이후 1913년 12월 29일에 조선총독부령인 도의위치와관할구역및부군명칭위치관할구역 에 따라 현행 지방행정구역체계와 명칭이 확립되고, 건국 후에는 1948년 11월 18일 대통령령인 지방행정기관의 명칭위치 및 관할 구역에 관한 건을 통해 시도의 위치와 관할구역이 규정 되었다. 이후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어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 구역은 종전의부(府)를 시(市)로 하는 이외에는 모두 종전에 의하도록 규정하였다.한편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 단체 간 분쟁조정에 대해 자발적 해결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제140조에서 중앙정부 혹은 시도지사에 의한 분쟁조정을 규정하고 있지만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제도의 실효성이 현저히 감소하였다. 140조 1항은 지방자치단체 상호간 또는 단체장 상호간 다툼이 있는 때에는 행정자치부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조정할 수 있고, 그 분쟁이 공익을 현저히 저해하여 조속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직권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치구는 2000년 보라매우성 아파트와 우성캐릭터아파트를 동작구로, 해태보라매타워는 관악구로 조정하고자 하였으나 학군과 구이미지 등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관계는 물론 세수감소 등을 우려한 구의회의 반대로 조정에 실패하였다. 서울시 역시 현행법상 강제조정권한이 없어 해당 자치구들의 합의 없이는 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⑤ 사례5: 서울 동대문구와 성북구의 관할구역 갈등사례동대문구와 성북구 경계지역에 위치한 샹그레빌아파트 중 1개동(104동) 55가구는 동대문구 청량리2동에, 3개동(101∼103동) 297가구는 성북구 월곡2동에 편입되어 관할구역분쟁이 야기되고 있다. 이미 감사원 감사를 통해 2002년 7월 15일 서울시와 동대문구, 성북구가 주민의견을 수렴해 행정구역단일화안을 마련하기로 함에 따라 동년 8월에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 311명 가운데 165명이 투표해 동대문구 편입 158명, 성북구 편입 7명으로 나타났으나, 성북구의회가 이를 승인하지 않아 관할구역분쟁이 3년 이상 지속되었다. 동대문구는 현재는 1개동 55가구만 동대문구에 편입돼 있으나 주거환경정비사업 전에는 절반이상의 가구가 동대문구에 편입돼 있었으며 무엇보다 주민의견에 따라 동대문구로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성북구는 현재 3개동 297가구가 성북구에 편입돼 있고 주민 대부분이 성북구의 각종 편의시설과 교통, 공공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또한 주민의견이 동대문구 편입으로 나온 것은 부동산 가격 때문인데 부동산 가격에 따라 행정구역을 조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⑥ 사례6: 대구시 달서구 등 관할구역 갈등사례대구광역시는 광역시 차원에서 자치구간 행재정적 격차를 완화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한국행정연구원의 연구용역결과를 토대로 2001년 6월 언론사를 통해 자치구간자치구역조정안을 공론화시켰다. 조정안에 의하면 달서구 두류 1,2,3동, 감삼동, 죽전동, 장기동 일부를 서구로, 달서구 성당 1,2동, 송현 1,2동을 남구로, 북구 고성동을 중구로, 수성되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제도 하에서 자치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국가 혹은 지역 전체 차원에서 주민편의성과 행정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갈등해결의 관점에서 구역개편기준 및 분쟁해결절차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1. 관할구역 설정기준의 정립기존의 관할구역 개편법령들은 구역개편에 있어 자연적지리적 조건에 따라 경계를 조정함으로써 공동생활권과 주민편의성, 행정효율성 제고를 우선시하고 있다. 즉 하천의 위치변경 및 매립, 택지개발사업, 도로건설로 인한 경계변경 등에 있어 대다수 법령들은 새로운 자연적지리적 경계를 기준으로 관할구역을 재조정하였다. 더욱이 구역개편의 핵심쟁점들을 고려할 때 합리적 구역개편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들을 고려하여 명확한 구역설정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첫째, 자연적지리적 조건 등의 변화에 따른 경계변경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공동생활권을 보장함으로써 주민편의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관련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정치적재정적 이해관계가 구역분쟁의 보다 중요한 이슈로 등장함으로써 합리적 구역개편이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연적지리적 조건을 고려한 주민편의의 극대화가 필요하다.둘째, 구역개편에 따른 재정적경제적 효과와 인구규모의 적절한 배분 등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이 요구된다. 구역분쟁해결에 있어서도 당사자 간 합의가 중요하므로 구역개편에 따른 재정적행정적 효과가 적절히 배분되지 않을 경우 분쟁해결이 어렵다. 물론 이것은 지리적 조건에 따른 공동생활권 보장과 주민편의성 등의 측면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셋째, 토지이용과 관련된 역사적 관행이나 관습 역시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현행 지방자치법 제4조의 규정만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하기보다 해당 지역주민들의 오랜 토지이용 관행이나 거주실태 등 보다 포괄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지역주민들의 공동생활권이 갖는 역사적 관행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넷째, 지리적 조건 등의 변경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간 구역개편을 92). Negotiating Intergovernmental Development PolicyConflict: Practice-Based Guidelines, Journal of the American PlanningAssociation, Vol. 58.Jones, G. & J. Stewart. (1983). The Case for Local Government, London: Allen& UnwinKingdom, J. (1991). Local Government and Politics in Britain, London: PhilipAllan.Kjellberg, F. (1985). Local Government Reorganization and the Development ofthe Welfare State, Journal of Public Policy. 5(2).Leemans, A. F. (1978). 이성덕 역. 지방정부개혁론 . 서울: 법문사.Lewicki, R. J., Barbara Gray, & Michael Elliott. (2003). Environmental Conflicts:Framed and Cases. Washington, Covelo, London: Island Press.Lulofs, R. S. and D. D. Cahn. (2000). Conflict from Theory to Action, MA: Allyn& Bacon.Ostrom. (1992). Community and the Endogenous Solution of Commons Problems.Journal of Theoretical Politics, 4(3).Sharpe, L. J. (1988), Local Government Reorganization: General Theory and UKPractice, in B. Dente and F. Kjellberg eds., The Dynamics of InstitutionalChange: LocaI Government Reor풍수해 예방, 구호복구농어업재해예방 및 대책, 응급복구, 피해보조, 지원수질 및 환경 관리환경부환경부환경부환경부환경부환경부환경정책기본법수질환경보전법하수도법오수분뇨축산폐수 처리에 관한 법률수도법먹는물관리법환경보전 장기께획의 수립폐수배출규제, 폐수종말처리시설, 공공수역 수질보전하수도정비 기본계획수립 및 정비, 종말처리시설 관리오수정화시설, 정화조, 분뇨처리시설, 축산폐수배출시 설허가 및 정화시설수도기본계획, 상수원보호, 음용수수질기준먹는물의 수질관리 및 먹는샘물 제조허가 등기 타내무부농림수산부온천법농어촌발전특례법자료: 김 광묵, “수자원 관리체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국토정보」, 1996. 3. 54쪽.나. 「개발보전」을 다루기 위한 정책집행의 혼재지방자치시대가 당면한 문제 중의 하나는 지역주민의 경제적 가치 증진욕구 및 「삶의 질」향상을 위한 환경쾌적성 수요를 상호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방안도출에 있다. 이에 지방자치제의 공과(功過)를 환경성과 경제성의 조화에 바탕을 둘 경우, 지역개발과 환경보전에 대한 지역갈등의 합리적 조정은 필수적이다. 특히, 개발과 보전에 대한 지역갈등이 첨예하게 대두될 분야는 수계자원의 보전이용에 관한 것으로 집약되고 있어, 수계이용 및 보전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기 위한 정책체계의 확립은 지방자치제의 조기정착을 위한 실험장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데, 광역수계의 경우 수량수질토지이용 등의 삼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이를 순리적으로 해결하고 조정하며, 또한 유인하기 위한 지역내지역간 정책집행체계의 마련이 절실한 시기이다.다. 보전지역과 비용지역의 불일치환경오염과 같은 외부불경제가 존재할 경우, 사회적 후생을 최적상태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이의 지역적 내부화(localized internalization)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오염발생과 영향지역간 물리적 범위가 상이하게 되면 내부화의 성취정도는 미약하게 되어 자원의 사회적 낭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이에 의한 지역내지역간 갈등소지는 높아지게 된다. 특히
목 차들어가기중국 음식 문화 형성 요인2. 중국 음식 문화의 지역적 특징3. 중국 음식의 사회 문화적인 측면맺음말참고문헌들어가기의식주(衣食住) 중 ‘식’이라는 것은 사람이 먹는 것을 통칭하여 나타내는 말로, ‘음(飮)’과 ‘식(食)’이 모두 포함된 말이다. 전자인 ‘음’이라는 것은 마시는 것을 말하는데, 액체 형태의 것으로 물과 술 또는 식혜나 수정과와 같은 음료수를 지칭한다. 또 후자인 ‘식’이라는 것은 마시는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고체의 형태를 띄고 있으나, 반고체나 액체에 가까운 형태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쌀밥이나 빵, 고기와 같은 주식류에서 화채와 과줄과 같은 간식류도 속한다.이러한 분류에 들어가기 애매한 것들도 있지만, 대개 먹는 것이라고 하면 크게 이러한 두 가지 대분류로 나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음식은 단순히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식문화’라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식문화는 음식의 재료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즐기는 방법, 더 나아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화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까지 포함하는 용어이다.예를 들어 서양에서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에 전해진 후추는 단순히 조미료로서 음식에 변화를 준 것만이 아니라, 그 당시 비싼 가격에 거래되면서 상업과 경제생활에도 영향을 주었고 귀족들의 식탁에 접대용으로 올려 접대 문화까지 바꿔놓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마치 작은 돌멩이 하나가 잔잔한 호수에 파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조용하고도 널리 번져나가 파문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게다가 중국 사람들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먹는 것을 특히 즐기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국의 음식문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럼 지금부터 중국의 음식문화를 면밀히 고찰 해보고자 한다.중국 음식 문화 형성 요인중국은 5천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국토가 넓어 각 지방의 기후, 풍토, 산물 등에 각기 특색이 있다. 따라서 요리의 종류와 조리법의 다양화는 기나긴 역사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각 지방마다 독특한 음식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북방지역은 산악지대가 많고 겨울이 몹시 추워 밀과 잡곡류가 주로 생산되었으며 내륙으로 갈수록 민물 생선요리, 쇠고기, 양고기, 오리고기류를 많이 사용한 구이 문화가 발달하였다. 남방지역은 바다와 강이 인접한 화남 지역은 민물고기,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로 주요 해산물 근거지의 길을 터놓을 수 있었다. 반면에, 서방지역은 토지의 비옥함으로 서쪽은 풍부한 농산물은 풍부했지만 지리상 원거리의 국토여건상 채소와 강한 향신료를 이용한 음식과 저장음식이 발달하여 추후 발효문화가 발전하였다. 동방지역은 양자강 하류의 민물 생선과 해산물 요리 강 하류의 퇴적지에서 생산되는 쌀을 이용한 요리문화가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다음으로 정치 경제적 요인으로 중국은 다수 민족을 차지하는 한족을 비롯하여 56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북쪽지역의 몽골, 서쪽의 위구르족, 서남 고원 지역의 티벳족, 동부의 조선족 등 상당수가 식생활 문화를 보존 계승해 왔으며 덕분에 이런 민족 간의 식문화의 교류는 중국 식문화의 다양성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① 실크로드: 서아시아를 비롯한 유럽 문화와의 교역, 티벳을 거쳐 인도 및 파키스탄과의 교역 그리고 해로를 통한 동남아시아 국가와 교역을 하여 향신료를 포함한 농산물을 도입하고 토착화시켰다.② 계습사회 : 왕과 호족, 지주 등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향락과 사치가 심해짐에 따라 더 맛있는 음식, 불로음식, 희귀한 음식에 대한 갈망이 다양한 음식 개발로 이어졌다.③ 전쟁식량 : 왕권 획득을 위한 전쟁이 늘어남에 따라 한재와 수재로 인한 식량 부족으로 흙, 곤충, 벌레, 제비집 등과 같은 구황 식품을 많이개발하여 식량 부족을 대비한 식품 저장, 가공 방법이 발전하였다.2. 중국 음식 문화의 지역적 특징중국요리는 지역적인 특징에 따라 베이징요리[北京料理]난징요리[南京料理]상하이요리[上海料理]광둥요리[廣東料理]쓰촨요리[四川料理]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①베이징요리일명 징차하는 튀김(炸) 요리와 볶음(炒) 요리가 특징이다.②난징요리중국 중부의 대표적인 요리로, 난징[南京]상하이[上海]쑤저우[蘇州]양저우[揚州] 등지의 요리를 총칭한다. 중국대륙의 젖줄인 양쯔강[揚子江] 하구에는 오랜 옛날부터 난징을 중심으로 풍부한 해산물과 쌀을 바탕으로 한 식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9세기부터 밀어닥치기 시작한 서유럽의 대륙 잠식은 상하이에 조계(租界)를 다투어 설치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외세의 입김은 결국 상하이를 중국 중부의 중심지가 되게 했다. 이 남경요리 중 서양풍으로 국제적인 발전을 한 것을 상하이요리[上海料理]라 한다. 상하이는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농산물, 갖가지 해산물의 집산지로서 다양한 요리가 만들어졌고, 특히 이 지방의 특산물인 장유[醬油]를 써서 만드는 요리는 독특하다.③광동요리중국 남부의 요리를 대표하는 광동요리는 광저우[廣州]요리를 중심으로 푸젠[福建]요리차오저우[潮州]요리둥장[東江]요리 등의 지방요리 전체를 일컫는다. 광동요리는 흔히 난차이[南菜]라고 하는데, 광저우[廣州]는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하여 이미 16세기에는 에스파냐포르투갈의 선교사상인들이 많이 왕래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요리와 국제적인 요리관(料理觀)이 정착되어 독특한 특성을 이룩하였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이 매력 있는 식생활의 고장을 일러 식재광주(食在廣州)라고 상찬했다. 남쪽의 더운 지방인 광저우의 요리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맛을 잘 살려 내는 담백한 것이 특징인데, 서유럽 요리의 영향을 받아 쇠고기서양채소토마토 케첩우스터 소스 등 서양요리의 재료와 조미료를 받아들인 요리도 있다. 이러한 재료는 전통요리의 맛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었고, 그것을 소화하고 중국화하는 데 능한 그들은 서유럽풍이 섞인 다채로운 맛의 연회요리로까지 발전시켰다. 볶음에서는 재료가 지니고 있는 자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재료를 지나치게 익히지 않고 비교적 간을 싱겁게 하며 기름도 적게 쓴다. 하오유[油]칭정[淸蒸] 같은 조리법으로 담백한 맛을 낸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구운이 쓴 요리가 발달하였다. 매운 요리와 마늘파고추를 사용하는 요리가 많다. 오지(奧地)이기 때문에 소금절이건물(乾物) 등 보존식품이 발달하여 채소를 이용한 자차이[搾菜] 같은 특산물을 낳기도 했다. 산악지대에서 나오는 암염(岩鹽)은 소금절이의 밑받침이 되었고 신맛과 매운맛, 톡 쏘는 맛과 향기가 기본을 이루었다. 두부와 다진고기를 이용한 마포더우푸[麻婆豆腐], 회회교도(回回敎徒)들의 양고기 요리인 양러우궈쯔[羊肉鍋子], 새우고추장볶음인 간사오밍샤[干燒明蝦] 등이 유명하다.3. 중국 음식의 사회 문화적인 측면①음식은 문화다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당연히 살기위해 먹는 것이지 무슨 실없는 소리냐고 탓하겠지만, 중국인이라면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답할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호텔을 ‘판톈’(飯店)이라 한다.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이 판톈은 무궁화가 서너 개 이상이 되어야 달 수 있는 명칭이고, 그 이하 급은 ‘빈관(貧官)’이라 부른다. 고급 호텔의 최우선적 기능이 ‘밥가게’인 셈이다. 또 “백성은 먹거리를 하느님으로 여긴다”거나 “음식과 남녀에 인간의 큰 욕망이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인은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해도 좋을 성 싶다. 따라서 음식은 중국 문화를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핵심 코드중 하나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음식이 바로 하느님인 이상 이름도 예사로울 소가 없다. 중국인은 뱀과 고양이를 삶아 놓고 ‘용쟁호투’라고 부른다거나 맛조개를 데쳐놓고 ‘귀비설두’(양귀비의 혀)라고 부르는 등 요리에 거창한 이름을 달기 일쑤이다. 심지어 물고기 한 마리를 올려 놓고 연년유여(年年有餘)(해마다 물고기 즉 넉넉함이 있게 하호서. 魚와 餘는 중국어로 같은 소리이다)라고 부른다거나 여러재료를 함께 섞은 잡탕을 두고 전가복(全家福)(온 집안이 복되다)이라고 부르는 등 지극 정성을 다해 자신들이 꿈꾸는 소망을 빌기조차 한다. 또한 중국인은 특히 ‘색(色), 향(香), 미(味)’ 세 요소의 조화를 따지고, 중국 요리는 월채(菜), 천채(川菜)푸스기이전으로 고착되는데, 이로인해 구장기적 특성이 두드러져 자연히 먹는데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성 비만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중국의 음식 문화는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가부장제니 유교니 하는 것들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음식은 인간에게 있어 중심담론으로 등장하였다. 중국인들은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는 그 시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리에 있어서도 그 시조가 있는데, 중국인들은 800여년을 살았다 하여 장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팽조(彭祖)라는 인물과, 은(殷)의 재상이었던 이윤(伊尹)을 요리의 시조로 꼽기도 한다. 팽조가 뛰어난 음식 솜씨로 요(堯) 임금을 섬겼다고 하지만 별다른 기록이 없는 전설 속의 인물이라면, 이윤은 성군 탕(湯)임금을 도와 하(夏)의 폭군 걸(桀)을 멸했던 엄연한 역사적 인물이다. 정사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사기(史記)’에서도 이윤이 솥(鼎)과 도마(俎)를 짊어지고 자미(滋味)로 탕 임금을 설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보아 대략 기원전 100년 무렵부터 국사를 논의하는 조정에서 요리가 주요 담론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②음식은 권력이다.요리 솜씨로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한 인물들을 중국 역사에서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역아(易牙) 역시 그 중 한 사람인데, 그의 행적은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 을 정도로 엽기적이다. 두 강물을 섞어 놓아도 그 맛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미각 을 소유한 역아는 온갖 산해진미로도 모자라서 자신의 아들을 삶아 진상함으로써 제齊 환공 桓公의 절대적인 총애를 얻었다고 한다. 물론 극단적으로 특별한 예에 속하겠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중국의 요리사는 천자나 제후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섬기는 직책이 었음을 알 수 있다. 유교 13경의 하나인 ‘주례(周禮)’는 주공(周公)(기원전 12세기)이 지었다고 알려진 책이다. 이 책에는 388개의 관직을 천관(天官), 지관(地官), 춘관(春官), 하관(夏官), 추관 (秋官), 동관(冬官)등으로다.
1. 자신의 학문적 성향저는 MBTI의 16가지 성격유형 중에서 열성적이고 창의적 ENFJ형입니다. 이 유형의 소유자의 특징은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을 가지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잘 시작하며 즉흥적으로 일을 재빠르게 해결하는 솔선수범력과 상상력이 있으며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열성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성장 발전할 가능성을 잘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들을 잘 도와줍니다. 또 상담이나 교육 과학방면에서 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저의 전반적인 성향을 보았을 때 제가 인재개발과 연관된 학문들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직접 산업장면에서 실용화할 수 있는 직업이 저의 적성에 맞다고 확신합니다.저는 심리학과에 입학하자마자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심리학과 스터디 동아리와 싸이코드라마를 공부하는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을 했었습니다. 심리학과 스터디에서는 여러 심리검사들의 목적 시행방법 해석 등에 대해 깊이 공부하였으며 검사도구들을 집에 가지고 와서 동생들에게도 검사를 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시행 후 검사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실제로 몸소 느껴볼 수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뿌듯하였습니다. 그리고 싸이코드라마를 공부하고 시연하는 동아리에서는 무대 위에서 Director역으로 싸이코드라마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저는 평소에 심리학의 모든 과목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나 대학교 2학년 2학기 때 OOO교수님께서 강의하셨던 임상심리학과목을 들은 후 마치 제가 물 만난 고기 같은 감정을 강하게 느꼈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명성과 전통 깊은 OO대학교 대학원생을 꿈꾸며 학부생활을 해 왔었습니다.2. 진학동기 및 목표저는 책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동화나 소설을 읽었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 역사 등의 전문 서적도 조금씩 접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다보니 드디어 저의 마음을 사로잡는 분야를 찾게 되었습니다. 문화와 사회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연구하여 인간 행동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찾아내는 심리학이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평소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인간의 정신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제 성격과 흥미에도 잘 맞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심리학이 임상 심리, 상담 심리, 사회 조직 운영 등 많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평소 저의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위해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던 저에게는 아주 기쁜 일이었습니다.따라서 저는 심리학에 대한 정보와 지식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접하려고 노력했었고 더 나아가 ‘사람들은 각기 생각과 행동들이 다른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끊이질 않는 의문점들을 알고 깊게 공부하고 싶었고 평소 사람들과 관계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심리학으로 유명하다는 OO대학교 심리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과목들에 흥미를 느꼈었지만 임상심리학을 접하고 난 뒤부터 임상심리학의 매력에 강하게 끌리게 되었습니다.제가 정신건강, 임상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학년 때, 처음 배우게 된 임상심리학 수업 때문이었습니다. 임상심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저는 임상분야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정신 질병에 대하여 배웠던 수업시간이 너무 흥미로웠고 임상분야를 조금 더 깊게 배워보고 싶었습니다.또 심리평가 수업을 들으면서 임상심리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직접 SCL-90R, MMPI-2를 검사를 받고 검사에 대한 평가를 해봄으로써 많이 부족했지만 어떤 식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평가하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이번 학기에는 임상심리실습 과목을 들으면서 나주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항상 이론으로만 배웠던 질병들을 실제로 겪고 있는 환자분들을 보고, 환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직접 증상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병원실습 후,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임상분야를 좀 더 깊게 배워보고 싶었습니다.이처럼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오는 긴장과 압박감, 혼란으로 고민하는 사람들, 정서적 장애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등 여러 가지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임상심리학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고 연구해보고 싶었습니다.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인을 배출해 내는 본 대학원에 입학하여 임상심리학과가 추구하는 목표인 실무형 인재 되기 더 나아가 이를 전공으로 하는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문화역량 핵심인재 양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저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것입니다.3. 미래의 연구계획임상심리학은 부적응과 장애의 불편감을 이해하고 완화시키며, 인간의 순응과 적응 및 개인적 발달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과학과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는 학문입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권과 모든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전 생애에 걸쳐 인간 기능의 지적, 정서적,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행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춥니다.이러한 학문의 기저를 기반으로 임상심리학자가 수행하는 연구는 바로 임상 현장에서 정신과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정신 병리의 진단을 위한 방법이나 도구 개발을 하는 것이 임상심리학자의 역할입니다. 또한 어떤 치료방법이 특정 문제의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지, 어떤 질병에 걸리기 쉬운 사람들의 특성이 따로 있는지 등을 조사하는 것도 임상심리학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이처럼 임상심리학(Clinical Psychology)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심리적 부적응 및 이상행동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연구하는 응용심리학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욱 포괄적인 정의로서 심신의 건강을 위해 예방과 치료, 재활 활동에 심리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학문으로 더욱 폭넓게 규정되고 있습니다.한국의 임상심리학 역시 개인의 내적인 변화 및 이상심리상태의 치료라는 전통적 관심에서 가정 및 조직체(학교, 직장 등), 지역 사회 등에서 행복한 적응의 확대라는 방향으로 강조점을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임상 심리학은 그 발전 정도로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며 앞으로 그 역할이 훨씬 증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임상 심리학 연구들을 익혀 좀 더 다양한 검사도구들을 연구하여 효율적인 복리후생법들을 연구하여 실용화시킬 수 있는 임상심리학자가 될 것입니다. 졸업 후 1년 동안 수련 후 정신보건임상심리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여 현장에서 병원현장에서 사회에 도움을 주며 내담자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어공부도 열심히 병행하여 기회가 된다면 차후에 해외활동도 활발히 하고 싶습니다.1. 성장과정 및 가족관계저는 늦둥이로 태어나 언니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고 부모님께서도 늦게 얻은 자식이기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왔습니다. 집에서는 막내이기 때문에 부모님께 응석을 부릴 때도 있지만, 맞벌이 부부이자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저는 저의 일은 항상 제 스스로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부모님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제 일은 제가 스스로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성장해가면서 제가 맡은 일을 누구에게 맡기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2. 장단점, 핵심역량“오랜 끈기와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파트타임 2년 4개월간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훌륭한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2012년도에 대학생 아르바이트 공모전 있었습니다. 다들 많은 경쟁률과 면접,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꺼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움보다는 도전해보고 싶은 열정이 컸습니다. 준비한 일주일간 체력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인 끈기 덕에 저는 큰 경쟁률을 뚫고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끈기, 노력, 최선을 다하지 않지만 저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노력해서 최대한의 결과를 얻었습니다.또한 저는 과제나 어떠한 일이 주어지면 즉시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며,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편보다 성격상 깔끔히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자주 듣는 편입니다. 그리고 힘든 일이라도 쉽게 포기 하려고 하지 않아 어디서든지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끈기를 가지고 몸에 익숙해 질 때까지 이겨내는 편입니다.
한국사회 배우자 선택 및 혼전교제 과정의 변화Ⅰ. 연구배경 및 목적이혼율이 급증하고 동거와 독신이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결혼을 선택하고 있다. 통계청이 2000년에 조사한 "인구 총 조사" 자료를 연구자가 재분류해 본 결과 35세 이상 한국인 중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는 남성이 전체 인구의 4%, 여성이 2%로 결혼한 사람에 비해 매우 적었다.이혼한 사람들의 재혼율이 높은 것도 결혼이 아직 최선의 대안임을 입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결혼의 중요성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Giddens(1983)는 도시의 삶에서 사랑과 결혼은 가족 이외의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깊이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남녀 모두에게 있어서 피상적인 삶의 도피처로 사랑과 결혼이 새삼스럽게 기대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Cherlin(2000) 역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라는 문화적 이익이 있으며, 결혼은 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결혼이 중요하다는 것은 함께 결혼생활을 해 나가게 될 배우자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배우자 선택은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사항이고, 당사자들의 행불행뿐만 아니라 일생동안 생활의 질, 자녀, 친족관계 등에 영향을 미치므로 누구를 배우자로 선택하느냐는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가족학연구회,1997).따라서 현재까지 한국사회는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한 '배우자의 선택과정에 있어서 통시적 흐름'을 살펴보려한다. 다시 말해, 본 연구는 혼전교제 및 배우자 선택의 변화과정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으로서 혼전 이성교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혼인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과거의 중매혼 위주의 혼인결정방식으로부터 자유 연애혼이 크게 증가하게 된 시점이 언제이며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가를 밝혀 보고 연애혼과 중매혼 각각의 전개과정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하는 사람이 과묵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와 같다. 두 번째 유형은 만족하려는 욕구 분야가 서로 다를 때 매력을 느끼는 경우이다. 이러한 이론은 동질성의 이론과 상반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의 특성은 매우 다양하므로 한 쌍의 부부에 있어서도 동질적인 요인과 이질적인 요인은 섞여있게 마련이다. 즉 학력, 종교, 소득 등이 비슷하여도 관심분야, 태도 등이 보완적일 수 있다.2. 배우자 선택의 변화(1) 결혼에 대한 태도의 변화한국 사회는 194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으며, 이에 따라 결혼에 대한 가치관 및 태도가 변화되어 시대변동에 따라 결혼문화가 다르게 나타난다.결혼은 통과의례-가계계승이나 가문의 명예를 위한 중매혼ㆍ조혼산업화 및 도시화의 진행-남녀 교제에 대한 긍정적 인식평등사상, 여성 교육기회 및 수준과 사회참여의 기회증가남녀 간의 자유로운 교제 가능, 연애혼의 보편화결혼은 선택-연애과정의 연장된 부분, 동료적인 부부관계 지향(2) 결혼과정 연구에 있어서의 시대구분우리 사회의 구조는 1964년의 경제개발 1차년 계획의 시작과 더불어 급속한 공업화,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196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그 전과 후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전후의 베이비붐세대가 결혼하게 되는 시기가 1980년대 이후이며 이 시기의 경제 성장과 정치, 사회적 변동이 1980년대 중반을 시기구분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것은 혼인연령, 배우자선택유형변화 등 통계적 자료 등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전환점이다. 다시 말해 문헌고찰 및 통계자료의 검토를 통해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구조적인 변동시점에 의거하여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를 3시기로 구분하고 1945년부터 1960년대 중반, 1960년대 중반이후에서 1980년대 중반, 1980년 중반에서 현재까지에 이르는 변화를 파악하고자 한다.(3) 혼인연령의 변화결혼연령은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조건의 이 크게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5) 배우자 선택 조건 : 동시성의 비동시성우리나라의 결혼 과정에서 배우자 선택 조건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여전히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임을 의미하는 전통적 요소와 결혼 당사자들의 개인적 자질을 고려하는 근대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적 요소가 강조되던 것으로부터 개인적 요소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이 관찰된다.배우자 선택조건으로 중요시되는 대표적인 요인들을 살펴보면, 이효재(1985)의 조사에서는 학력, 성격, 가문, 최신적(1974)의 조사에서는 성격, 건강, 가문, 이동원(1981)의 조사에서는 건강, 성격, 장래성, 직업, 공세권 외(1990)의 조사에서는 성격과 장래성, 그리고 이동원 외(!991)의 조사에서는 부모세대는 건강과 성격, 자녀세대는 성격과 애정, 장래성이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가문이나 재산과 같은 전통적 요인은 이효재(1958)의 연구에서는 22.7%로 나타났으나 이동원(1981)의 조사에서는 5.2%, 공세권(1990)의 조사에서는 3.1%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동원 외(1991)의 조사에서는 가문이나 재산을 고려하겠다는 비율이 자녀의 경우 1.0%, 부모의 경우에는 11.0%로서 부모와 자녀세대 간에 차이를 보인다.학력, 직업, 장래성과 같이 경제적 안정성과 결부된 조건을 보면, 이효재(1985)의 조사에서는 29.0%, 이동원(1981)의 조사에서는 25.5%, 공세권 외 조(1990)의 조사에서는 27.0% 등으로 비교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적 안정성을 선택한 비율은 미혼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최신덕(1974)의 조사에서 14.2%, 이동원 외(1991)의 조사에서 16.2%로 나타나 역시 일정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외모, 건강, 성격과 같은 개인적 요인은 이효재(1958)의 조사에서는 40.7%, 이동원(1981)의 조사에서는 61.8%, 공세권 외(1990)의 조사에서는 69.2%로 증가하였다.이동원 외(1991정에 관한 연구는 혼인과 출산에 관한 조사연구, 결혼시장에 관한 연구, 혼인거래관행에 관한 연구, 특정계층의 혼인관행 연구, 결혼연령변화에 관한 연구, 배우자선택 과정 변화양상과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들이 있다. 이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도 서구 산업사회와 유사한 방향으로 배우자선택과정 및 혼인관행의 변화를 보인다는 점이다. 즉 변화의 기본원리는 배우자선택에 있어 부모나 가족의 영향력이 감소되고 당사자의 결정이 확대되는 개인의 자율성확대로 특징지어진다. 이현송. 1997.「배우자선택과정의 변화와 결정요인」.『가족학논집』9. 3~28쪽.과거에는 혼인결정에 있어 당사자의 의견이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이러한 경향은 변화하여 당사자의 의사가 주가 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본다. 즉 여전히 부모의 동의는 혼인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지만 변화의 과정에서 부모가 결정하고 본인이 동의하는 형태에서 본인이 먼저 결정하고 부모가 동의하는 단계로 진행되어 왔다.당사자의 자율성 확대는 결혼상대를 만나는 경로에도 차이를 가져온다. 전통사회에서는 부모나 친척의 주선으로 배우자를 만나게 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당사자의 활동영역에 있는 직장동료 및 친구 등이 주요 통로가 되고 따라서 배우자에 대한 조건도 개인적 취향이나 관심사 등의 개인적 요인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또한 결혼까지의 교제기간도 당사자의 자율성이 확대됨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부모나 친척의 소개에 의한 중매혼의 경우보다 친구, 동료에 의해 소개받는 경우가 대체로 교제기간이 늘어난다.그러면 배우자선택의 유형변화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통해 전반적 변화양상을 알아보기로 하자. 배우자 선택의 유형은 중매혼과 연애혼의 분류기준이 다소 애매한 점이 있어 중매혼, 절충혼 (중매후 연애), 연애혼으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교제경로 및 선택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전통사회의 중매혼으로부터 현대사회의 연애혼으로 넘어오는 단계에 있어서 이효재 이효재. 1993. 『가족매혼의 비율이 54%, 70년대에는 53%였으나 80년대 전반에는 36%, 80년대 후반에는 23%로 크게 줄어들었다.앞에서 든 도시저소득층연구에서 배우자선택의 경로가 60년대에는 전문중매장이의 선에 의한 중매혼이 28%, 친척, 집안어른에 의한 소개혼이 49%이던 것이 70년대에는 중매혼이 6%로 크게 줄어들고 소개혼은 45%로 약간 감소하였다. 80년대 전반에는 중매혼이 5%이나, 소개혼이 51%로 증가하였고 80년대 후반에는 중매혼이 2%, 소개혼이 31%로 줄어들어 상류층 혼인과 중류층 혼인에서 전문 중매인의 역할이나 전문중매업체가 출현하여 배우자선택의 중요경로로 등장한 것과 대조된다.3. 사례분석(1) 연애혼의 사례분석이 연구의 조사대상 가운데 연애결혼을 한 사례들의 교제경로와 교제기간, 데이팅과 신체접촉, 결혼결정계기, 가족의 반대여부를 중심으로 알아본다.① 해방 ~ 1960년대 중반까지조사대상 사례 중 이시기에 연애결혼을 한 사례의 수는 매우 드물었다. 3사례가 발견되었는데 농촌의 한 동네에서 성장하면서 알고 지내다가 서로 좋아하게 되어 어른들 몰래 만나고 결국은 알려져 양가 부모의 허락을 얻어 결혼하게 된 경우가 2사례, 대도시에서 대학의 서클활동에서 만나 교제하다가 결혼한 경우가 한 사례 있었다. 앞의 2사례 가운데 한 사례는 양가의 부모들이 모두 반대하였으나 혼전 임신이 되어 부랴부랴 결혼하게 되었고 또 다른 사례는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알고 있어 교제를 용인하고 허락한 경우이다. 대도시의 사례 역시 교제를 부모들이 수용하고 결혼을 서둘러 하게 되었다. 이들의 교제기간은 1년~3년까지이며 데이팅은 시골에서는 사람들 이목이 적은 곳을 걸으면서 주로 대화를 나누고 도시에서는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고 주변의 다방에서 만나거나 많이 걷는 데이트를 하였다고 하였다. 임신한 경우를 제외하고 신체적인 접촉은 손잡고 걷고, 포옹하는 정도라고 하였다. 부모가 반대한 사례의 경우는 남자 쪽에 비해 여자 쪽이 홀어머니슬하이고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하였다.② 1준다.
2009-1사회변동과 발전팀 프로젝트 페이퍼세계 금융위기와 사회변동1.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원인과 영향, 시사점2. 금융위기의 역사적 사례와 이론적 논쟁: 대공황 고찰3. 금융위기의 역사적 사례와 이론적 논쟁: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미국의 금융위기4. 제도화된 협정 형성의 역사적 과정5. 국제 금융기구와 회의체6. 국제 기축통화 패권 체제의 전망Part 1.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원인과 영향, 시사점Ⅰ. 들어가며미국 부동산 부문의 국지적 위기로 처음 시작된 서브프라임 사태는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이어져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2008년 말을 지나면서 금융권 내부의 위기는 진정 국면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글로벌 자금시장이 마비된 데 따른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여겨지며, 실물 경제에 대한 여파는 여전히 사람들의 노동조건과 삶에 거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부동산은 각국의 영토적 경계의 구속력 하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경제 영역 중에서도 가장 세계화가 덜 진전된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는 부동산(주택대출)의 영역에서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즉 경제 영역에서의 세계화의 진행 정도를 보여주는 명시적인 사례로 파악될 수 있으며, 각국의 자율에 맡겨진 느슨한 규제 체계와 시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향후 경제체계의 재편 및 진행 방향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의 변화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이 글에서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낳게 된 21세기 금융위기의 발생과 파급경로, 원인에 대해 간략한 고찰을 함으로써 국지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문제가 어떻게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문제로 파급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사태에 대한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현 사안에 대한 발생 경로와 배경에 대해 정확하게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자료: Bloomberg, 하나금융경제연구소 인용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불안감으로 인해 환율 급등과 지수 하락의 여파는 각 국의 통화정책과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안겨주었다. 달러 대비 일본 엔화의 절상률이 18.2%로 가장 높았던 반면 원화 가치는 가장 큰 폭(35.2%)으로 하락했으며, 미국발 금융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루지수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반면(-31.5%), 대부분의 신흥시장 증시는 폭락해서 러시아 지수는 72.5%, 중국은 60.3%, 인도는 54.9% 하락하였다.자료: 삼성경제연구소주요 신흥국의 통화가치와 주가 하락률이 크게 나타난 것은 금융위기로 자금난에 직면한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해외에서 투자자금을 급격하게 회수하는 ‘디레버리지 현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6월부터 3개월 연속 200~250달러씩 총 92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자금이 회수되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브라질, 러시아의 각국 통화위기 당시 누계 회수액은 약 640억 달러였던 것을 볼 때 훨씬 큰 규모의 자금 이탈이 일어난 것이다.구분아시아중동 산유국러시아중남미채권2,3671,3472944,909주식13,270990965-4,546합계15,6372,3371,259363주: 중남미의 경우 2008년 4~6월 기간 약 13.8억 달러의 자본이 이미 유출된 상태자료: Bureau of Analysis. U.S. International Transcations Accounts Data. (삼성경제연구소)기록적인 대외증권투자의 역류현상이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신흥국 금융시장이 대혼란을 경험하게 되어 신흥국 10개국 신흥국 10개국은 2008년 11월 IMF가 ‘Global Financial Stability Report’를 통해 금융위기를 경고한 국가 중에서 경제권별 주요국을 임의 선정중 대부분의 국가에서 통화가치와 주가가 20~40%씩 하락하였다. 해외차입이 곤란해지거나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에 직면하게 된 신흥국을 중심으로 IMF의 구제금융 지원이 진행되었다., 대전 중에는 실질소득이 거의 2배로 증가하였다.4. 정부 대책 (뉴딜 정책)의 성립과 그 배경1920년의 연방정부는 경제적 현실을 좀 더 직시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여 즉각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Hoover대통령은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에 입각한 개인주의적 경제철학을 신봉하여 여전히 경제의 자동조절원칙을 주장하면서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개혁이나 새로운 제도의 창설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는 대공황의 원인을 국제금융구조라는 국제적인 측면에서 찾았기 때문에, 그 해결도 각국의 협력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루스벨트는 대공황이라는 위기상황을 국내적 문제로 보았기에, 가장 중요한 해결책들도 국내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무성,「New Deal 연구: 1930년대의 미국 정치·경제사」(서울:단대출판부, 1981), pp.64 - 941932년 대통령 선거가 루스벨트의 승리로 끝나고 정권이 이양되는 6개월여의 기간 동안 경제는 악화일로의 상태였다. 거의 모든 은행은 파산하였으며, 생산량의 40%가 감소되었고, 노동인구의 25%가 실업상태에 처해 있었다. 루스벨트는 취임하자마자 전국적으로 은행휴일(Bank Holidays)을 실시하여 과도기를 넘기면서 새로운 은행제도를 입안하여 의회의 승인을 얻은 후, 이 긴급은행법을 효시로 하여 광범위한 개혁과 제도개편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뉴딜정책이라고 부른다. 뉴딜정책은 사실상 어떠한 이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구호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루스벨트의 재임기간동안 새로운 요소들이 가미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정립되어 오늘날 혼합경제체제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5. 정부 대책이처럼 1932년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은 대공황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노동자의 25% 정도가 실업자였고, 농촌은 먼지만 휘날리고, 9000개 이상의 은행이 파산하고, 기업들은 연쇄부도에 줄줄이 무너지고임한 행동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실제의 경제적 과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를 막는 것만을 유일한 우선 과제로 삼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유통 중인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재정정책은 성장률과 고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따라서 재정 정책도 통화적 안정에 기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완전고용 같은 것을 정책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은 노동의 비효율적인 배분과 노조의 노동공급 과점 때문에 임금이 경제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랐기 때문이다.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지구화된 금융시장에서 환율이 차츰 자유화되더니 고정환율제도와 함께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각국의 경제정책을 감싸고 있던 케인스주의라는 틀이 붕괴되면서 본격화되었다. 특히 세계경제의 핵심적인 가격인 환율과 금리에 대한 결정권이 각국의 정부당국과 관료의 손을 떠나 국제은행, 투기적 투자펀드, 초국적 기업 등의 손안으로 들어간 것 자체가 그 뒤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는 민영화의 첫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영국은 1979년 들어선 강경우파 대처정부에 의해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공평하다"는 논리에 따라 본격적인 민영화가 추진되었으며, 국가의 통제를 줄이고 규제를 없앤 본보기로 평가된다. 영국통신 (British Telecom, BT), 영국가스 British Gas, 영국항공 British Airways, 영국철강 British Steel, 영국철도 British Rail, 영국석탄British Coal 등이 차례로 민영화되었으며, OECD 22개국 중 ‘경제적 자유 (Economic Freedom)’ 의 1위를 차지한다.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함께 규제완화와 감세를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삼은 영국의 대처리즘은 신자유주의를 단시간에 전파했다. 영국보수당 정부의 통화주의 정책 (인플레이션을 공공의 적 제 1호로 규정하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통해 정부의 재고 있다.-“신 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강상구 저, 문화과학사(2000)-“새로운 부의 탄생” 모하메드 엘-에리언, 한국경제 신문사(2009)- 대공황과 뉴딜정책에 관한 연구 (조민경)- 동아일보 “선진국도 신흥국도 ‘보호주의 물결’” 2008.11.18- 프레시안경제 "대공황 때 실패한 토목공사를 다시 벌인다고?" 2008.11.07- 오마이뉴스 “상위 5% 세금 늘린 오바마가 감세정책? ” 2008.11.6- 문화일보 “美 ‘제2 경기부양책’ 약발 설전” 2008.11.18- 연합뉴스 “미 의회, 자동차구제안 본격 논의…통과 난항” 2008.11.18- 한겨레 “79년전 ‘대공황’에서 배운다” 2008.10.29- “금융공황과 외환위기 1870-2000” 차명수 저, 아카넷 (2004)Part 4.제도화된 협정의 변화과정으로 살펴본 오늘날 경제체제의 현황1. 논의의 배경과 문제제기-‘미국 발’ 경제위기의 세계적 확산.지난 2008년 하반기에 발생한 ‘미국 발 경제위기’는 한 국가의 위기가 더 이상 국가 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특히 자유무역 연결망의 중심부에 서 있는 미국 사회의 경제위기의 파급력은 실로 대단했다. 부실한 부동산 담보 대출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제위기는 영국, 독일 등의 서유럽에 즉각적인 파급 효과를 주었고, 전 세계적으로 거대 기업의 ‘도미노’ 도산과 매수, 매각이 일어나면서 금세 전 세계적 경제위기로 진행되었다. 지난 30년간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국가 번영의 도식이 일궈낸 무역과 금융의 복잡한 연결망이 전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게 된 것이다.GDP 성장률 산업생산 및 무역* 그림 1 > 자료 : IMF G-20 Note(2009. 2.3일)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2009.2.9 위의 자료에서 보여주듯, 오늘날의 경제위기의 심각성은 이전 시대에 비해 남다르다. G20의 발표에 따르면, 선진국은 09년 경제성장률 △2.0%로, 2차 대전 후 최대 경기위축을 기록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