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 중간고사 리포트시민교육이란 과목의 중간고사 리포트 주제가 두 가지로 제시되었다. 그 중 첫 번째, 민주사회의 시민적 덕목에 대해 강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시민사회의 성숙과정에는 시민들이 시민적 덕목을 갖추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시민사회에서 시민들이 갖추어야 하는 시민적 덕목은 크게 두 가지 핵심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자율성과 책임성이다.먼저 자율성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함으로써 성취 할 수 있는 ‘나의 독립성’이다. 이러한 자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적 성숙성(지적 능력)이 요구된다. 자율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일들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며,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사회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중에는 자신이 잘못된 판단과 사고로 인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이러한 삶은 경륜이 쌓일수록 경험이 축적되기 때문에 점점 성숙한 모습을 갖게 되며, 잘못된 판단이나 사고를 줄일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적 성숙성의 과정이고 이것이 자율성에 요청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두 번째 시민적 덕목인 책임성은 자유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율성이 지적 능력을 요구한다면, 책임성에는 윤리적 성숙성(윤리적 능력)과 사회적 성숙성(사회적 능력)을 요구한다. 이는 지식을 실천하려는 노력과 그것이 사회관계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연대하는 사회적 능력으로서의 윤리적, 사회적 성숙성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윤리적 성숙은 지식과 실천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사회적 활동을 했을 때 그것이 지식과 실천의 측면에서 겸비되는 것과 윤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윤리적 성숙성이 결정되어 진다. 사회적 성숙은 개인 혹은 집단 사이에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소통, 연대, 협력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것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적 현실들을 이해하고 해석하여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을 여러 각도에서 볼 줄 아는 능력을 만들어준다.그 이외에도 비판적 사고와 관용의 능력 또한 요구된다. 비판적 사고란 타인을 비난하고 비방하는 사고행위가 아니라 논리적, 분석적, 합리적 사고 능력을 뜻한다. 비판적 사고를 통하여 우리는 어떤 정보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어떤 사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을 분별하며, 자신의 주장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사회적 이슈의 해결 방안을 합리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관용의 능력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주장을 듣고 이해하려는 능력을 말한다. 관용은 공존의 윤리를 지키려는 삶의 자세로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러한 관용의 능력의 중요성은 볼테르의 ‘관용의 가치’에서도 알 수 있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나는 내 목숨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하며 관용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처럼 관용의 능력은 위에 소개된 세 가지 덕목에 못지않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사회에 필요한 시민적 덕목이다.그리고 두 번째 주제, 한국 현대사에서 시민의식의 성장과정을 ‘정체성의 변화와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자 한다.인간은 보편적으로 실현해야 할 가치, 인간이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사회의 특수한 분단과 더불어 특수한 경험 등 역사적 한계 때문에 일부 제한되어 있었다. 그 제한된 것을 보편적 권리와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시민의식의 성장 또한 실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와 보편적 가치의 단절, 상실, 붕괴가 존재한다. 이 연결 지점을 찾아 우리는 전통 속 고귀한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하나의 시민 의식의 성장 속에서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통상 한국인의 정체성이라고 하면 전통에 집착하는 보수성, 또 권위주의 등에 대한 인성적 특징을 가진 경향이 많다. 이것은 전통사회의 특징인 가족과 가문, 그리고 사회계층과 신분, 국가 등을 강조한 유교적 가치관의 이산물이다. 정체성 변화의 일반론은 위에 설명하였듯이 역사적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산업화 이후 전통성과 근대성이 혼재하는 가운데 변화가 일어난 이중적 구조이다. 이중적 구조라 함은 압축적 근대화 과정 혹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렇게 변화된 구조로 인해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배적인 사회의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물질이 우리에게 주는 풍부함 및 편리함 등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에 반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정적 측면은 더할 나위 없이 매우 많다. 이는 젊은 세대일수록 경쟁의식, 이기심, 자아 존중감, 합리성 등으로 나타나며, 특히 경쟁의식은 우리의 교육제도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다보니 자신의 이해관계를 챙기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우리 가진 이중적 의식과 태도 또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겉으론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경멸하며 비난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앞 다투어 물질적 가치와 돈에 집착하고 있다. 이 근원을 추적해보면 사람이 더불어 함께 살고자 하는 도덕적 규범이나 합리적인 인간관계, 공동체 의식을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가 있는데, 이것이 회복된다면 물질의 풍요함도, 생활의 편리함도 즐기면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의식 또한 회복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정체성’과 ‘보편적 가치’를 중심 가치로 삼고 다양성을 통일시킴으로써 우리는 세계 시민적 사회의식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서평어린 시절부터 독도는 한국 땅이라 외치고, 또 한일전 축구 경기에서 한국이 이겼나 졌나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정작 볼펜, 샤프, 지우개는 일본 것을 써야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 스스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학창시절 영어 공부하던 카세트 테잎도 소니, 파나소닉 것이 아니면 영 폼이 안 났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는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자 동경의식이 반영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 세대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식이자, 역사 교과서, 매체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히 세뇌된 감정이라는 점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실제 학교에서 일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역사를 배워가면서 구체적인 피해의식으로, 한편으로는 동경으로 나타나는 모습, 증오가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것은 가히 한국인으로서 가져야할 운명일지도 모르겠다.한편으로는 드라마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일본에 한국이라는 뜨거운 바람, 그야말로 ‘한류 열풍’이 불었고, 한국 길거리에서도 그리고 연예인 콘서트 장에서도 일본인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우리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다소 가까워진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또한 삼성의 해외에서의 입지, 갤럭시의 압도적인 선전 등으로 전자제품도 일제가 좋았던 시절이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상황이다.하지만 지금. 엔저현상과 일본에서의 반한감정 확대, 독도 관련한 일본 초등 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다시 일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듯하다.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여행마저 꺼리면서 더욱이 가깝게 느껴졌던 일본이 멀어져 버리고 있는 것 같다.이 책은 저자의 경험담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중 프롤로그에는 저자와 그의 부인의 경험담이 담겨있었는데, 저자 부부가 처음 타지 생활을 위해 이사를 갔다가 적응을 하지 못해 호텔에 간 이야기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호텔에 갔을 때 일본어로 대화하는 저자 부부에게 호텔리어가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도적이었는지 비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저자가 이 책에서 주로 언급한 열등의식, 우월의식, 피해의식이 담긴 행동인 듯 하다.나는 저자가 인용한 ‘한일우호를 위해 일본과 한국, 이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역사인식을 좁혀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마찬가지로 동의한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틈이 벌어진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역사에 대한 일본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비록 역사에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오랜 기간 지배를 해왔지만, 현대에 와서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정중한 사과를 표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우리나라와 일본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은 사과는 커녕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고만 하였고, 과거 일본의 통치는 한국 국민들에게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며 유익했다는 합리화뿐이었다. 또한 그러한 합리화와 정당화를 사실로 만들기 위하여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는 한국에게 행한 잔학행위, 자신들이 저질렀던 추악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그 역사 교과서에 기록된 내용을 모두 사실이자 진실로 믿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두 나라 간의 벌어진 역사인식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들을 점점 더 멀어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알고 있는 역사가 진실이든 아니든 두 나라 사이에 정확한 사실만을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게 알려 그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또한 저자는 이원복의 ‘새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우리가 일본을 ‘일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수백 개 나라의 하나인 ‘외국’으로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시각이 중요하다는 말을 인용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의견을 말하였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역사적으로나 어떤 면으로 보나 별로 교류가 없던 나라도 아니겠거니와 한일관계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을 ‘일본’으로 보는 동시에 이 세계 수백 개 나라의 하나인 ‘외국’으로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을 ‘외국’으로도 보되 ‘일본’으로도 보자며 말을 살짝 바꾸었다. 이 또한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이성적으로 본다면 ‘새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의 말처럼 일본을 그냥 ‘외국’으로, 즉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사료되지만, 앞서 많이 얘기했듯이 우리나라와 일본은 역사적인 면이나 지리적인 면에서나 어딜 봐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요소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그 때문에 감정적인 요소가 들어가 좀 주관적인 관점으로 일본을 ‘일본’이라고 보는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일우호를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한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이지만 말이다.
‘다른 듯 같은 듯 : 언어와 문화의 한·일 비교’ 서평일어 시험에 부득이하게 응시를 못하게 되면서 ‘다른 듯 같은 듯 : 언어와 문화의 한·일 비교’와 ‘일본인의 사랑과 문화사’ 두 가지 책 중, 전자의 책을 선택하여 서평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일본이란 나라는 물론 일본어를 매우 좋아하여 불과 2주 전에도 도쿄에 다녀오면서 언어와 문화 등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전 2011년 초에도 오사카를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책의 내용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책은 챕터가 제 1부-말과 언어 행동(말, 행동, 감각)과 제 2부-한국과 일본의 문화(몸, 마음)으로 나뉘어 있어서 읽기에 편리했다. 그 중, 제 1부-말과 언어 행동은 읽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특히 가장 공감되었던 언어 행동 중 하나는 ‘사과’의 표현인데, 일본에서는 사람이 많은 길거리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몸을 피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물론 서로를 위하여 행하는 동작이지만, 부딪힌 뒤의 행동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타인과 부딪힐 위험에 닥쳤을 때에도 양보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이후 피하지 못하고 부딪혔을 경우에도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많다. 서로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인해 부딪히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과 한 마디 없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자신의 몸이 타인에게 살짝 닿았을 경우에도 미안하다는 사과의 표현을 한다. 2주 전 도쿄에 갔을 때 나는 지하철에서 일본인의 발을 밟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상대방이 미안하다는 표현을 해서 몹시 당황했었다. 이는 두 번의 일본 여행 중에 가장 깊이 내 머릿속에 박힌 한국인들이 본받아야 할 일본인들의 좋은 언어 습관인 듯하다.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친절’의 표현이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았던 나는 한국과는 다른 일본의 교통이 어려워 한참을 헤맸었는데, 일어 수업을 통해 배운 미숙한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도움 책자를 해석하고 해석하다가 결국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한국에서의 나였다면 요청을 무시하고 갔을 법 한데, 그 일본인은 본인이 가려던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접 JR선을 통과하고 지하철 앞까지 데려다준 뒤에 웃으며 자리를 떴다. 이를 보며 절실히 느꼈다. 일본이란 나라는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어릴 적부터 배워온 역사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적대감이 자리 잡아 있었는데 그렇지 않구나, 역사와는 별개로 일본인 자체는 정말 친절하다는 것을 말이다.마지막으로 대인 관계 속도의 차이에 대한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인은 어느 정도 친해지기 전까지는 개인적인 질문은 삼가하고 고작 날씨나 스포츠같이 무난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한국인은 궁금한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상대방과 조금이라도 빨리 친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면 상대방이 남자든 여자든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깊이 알려고 한다. 더구나 질문 공세를 하여 상대방을 알려는 욕구만큼이나 자신을 알리려는 욕구 역시 높다. 즉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여 상대방이 빨리 알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적인 이야기까지 첫 만남에서 상당히 솔직히 말해준다.최근에 일본에 다녀와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한국과 일본의 언어 및 문화 차이에 많은 공감이 갔던 반면, 그 밖에 의아했던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버스나 지하철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보면 거북함에 당황할 때가 있다고 한다. 뒷사람이 묘하게 가깝게 서있기 때문이다. 길거리나 학교에서 선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또한 일본에 비해 거리가 가깝다고 하는데, 내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전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일본 또한 가까웠으며, 동성 간에 팔짱을 끼고 걷는 여자들 또한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자는 같은 동아시아에 있는 한국에서는 자전거가 그다지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은 게 신기하다고 한다. 나는 과연 이것이 신기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자전거 이용률에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다. 내가 일본에 머물었던 날이 많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피프틴이라는 공용 자전거가 길거리에 비치되어 있을 정도로 이용률이 많다고 생각된다. 내가 이 책에 이러한 반기를 드는 것은 일본에 머물었던 아주 짧은 경험 때문일 수도 있으나, 2006년에 책이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10년이 되가는 만큼 서로의 문화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인데, 저자가 개정판을 내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숫자@세금] 218개‥올해 바뀌는 세법 조항매년 8월경 정부는 조세제도를 보완·개선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한다.경제상황이 급변하면서 세제 개선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세법이 너무 자주 바뀌면서 국민들은 다소 혼란을 겪기도 한다. 특히 정부가 매년 세법을 뜯어고치기 때문에 '누더기 세제'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8년 세제개편안'에는 소득세법, 법인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 총 16개 세법이 개정 대상에 포함됐으며, 이 가운데 218개 세부조항이 바뀔 예정이다.우선 양적으로는 지난해 세제개편안에 제시된 172개 개정세법 조항보다 46개가 늘어났다. 질적으로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세제개편안인 만큼, 각종 세목에 대한 파격적인 감세 방안들이 대거 포함됐다.다만 세법이 너무 자주 바뀌는 점에 대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한 조세전문가는 1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이제는 세법을 바꾸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세발심은 조세에 대한 중장기적 큰 그림을 제시하고, 정부가 여기에 맞춰 입법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매년 정부가 '의무적으로' 세법을 바꾸지 말고,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세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국민들이 세금에 대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용어나 세법체계 자체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정부가 매년 세법을 뒤집어놓은 탓도 있다. 시대변화에 맞게 세제상의 미비점은 고쳐나가되, '쉬운 세제'로 가는 방법도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2008년09월02일 14시20분 조세일보 / 임명규 기자 nanni@joseilbo.com예링은 그의 명저 에서 ‘목적은 모든 법의 창조자’라고 하였다. 법 에 의하여 실현될 인간 사회의 목적이야말로 법의 질서를 전체적으로 체계적으 로 통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존재근거로서 목적은 인간이 실현 하기를 바라는 가치요, 개인의 자의에 의하여 움직일 수 없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즉, 법이 법으로헌하려는 법은 필연적으 로 그 목적에 대하여 수단의 관계에 서게 된다. 법의 목적도 다양성을 띄고 있는 만큼 일률적으로 단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법은 바른 사회질서를 실현하고 또는 실현하려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 다. 그러나, 법은 정의의 목적에 합치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왜 냐하면, 법은 사회생활 질서의 유지와 발전을 위하여 유용하기도 하고 더불어 편 리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적 안정성과 법의 합목적성이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법은 합목적성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안정성을 요구하는 것 이다. 문화의 향상, 생산의 확대도 안정된 사회질서 아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 러므로, 안정성의 요구야말로 법의 목적의 중요한 것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그러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우리나라의 세법은 법적 안정성을 흔들고 있다.1998년 이후 각종 세금을 면제 또는 감면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은 해마다 두세 차례 바뀌어 지난 7년동안 무려 20차례나 개정됐다고 한다. 같은 기간동안 국민생활과 밀접한 소득세법은 14차례, 법인세법은 8차례나 바뀌었다. 그러나 정부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감세로 세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야 물론 납세자로서 반길 일이지만, 그런 혜택을 빌미로 세법이 너무 자주 바뀐다면, 납세행정비용만 증가하고, 오히려 혼란만 부추긴다는 사실이다.물론 세법은 어느 나라나 복잡하고 난해하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세금을 회피하려는 납세자와 세원(稅源)을 악착같이 추적해서 과세하려는 국가의 입장이 동서고금이라고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조세법전 한 권이 3600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적용 법규나 조항, 시행령·시행규칙 등도 사사건건 달라 고등교육을 받은 일반인들조차 뭐가 뭔지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기업체의 조세전문가들까지 접근이 쉽지 않다고 하니 이것은 분명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세법이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일선 세무 공무원이나 최고 전문가인 세무사들도 자칫 잘못하면 실수하기 십상일지, 연중에도 여러 번 바뀌기 때문에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왜 이렇게 자주 세법이 바뀌는 것일까? 그 이유로는 급변하는 세제환경의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인들이 문제만 터지면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세금만능’ 발상이 가장 큰 원인인 것이다. 조특법이 남발된 것은 걸핏하면 경기부양을 구실로 내세운 탓이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면 세금으로 제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빈번한 세법 개정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세정(稅政)을 단기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법의 안정성 확보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한 나라의 세법이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조세후진국으로 되새겨볼 일이다. 감세로 조세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 이전에 먼저 선행돼야 할 일은 세법에 최소한의 일관성이라도 도입하는 일일 것이다.또한 기사 맨 마지막에서 ‘쉬운 세제’로 가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것에도 해답이 필요하다. ‘개정 세법에 대한 실효성 있는 홍보’가 기초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은 홈페이지를 이용해 세법이 개정될 때마다 주요내용을 홍보하거나 세무서에 자료를 배치하는 정도에 불과해 적극적인 납세자가 아니라면 혜택을 못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보다 실효성있는 홍보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들어 자동차세 홍보는 주유소 입구의 간판을 이용하여 한다거나 재산세 등은 아파트 단지 입구의 게시판이나 경비실앞에 붙여놓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어느정도 ‘쉬운 세제’로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갈길 먼 '존엄사법'... 사회적 합의 '난관'국회 공청회서 종교계 반대 입장 분명히..."논의 자체가 어리석은 시도"지난해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내 처음으로 말기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 시행됐으나, 이 같은 '존엄사'를 제도화하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험난해 보인다.국회 보건복지위원회(위원장 변웅전)는 23일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존엄사 관련 법안에 대한 심의에 앞서 사회 각 분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특히 존엄사 자체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서 연명치료 중단의 대상과 절차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치료중단의 대상과 범위는?김장한 울산의대 교수는 "연명치료중단의 대상에 말기 환자 뿐만 아니라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를 포함시켜야 한다"며 "중단할 수 있는 치료범위에 인공호흡기 등 특수연명치료를 포함하고, 영양공급 등 일반연명치료의 중단 여부는 법원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허대석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도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는 환자의 의사를 거쳐 중단될 수 있다는데 입장을 같이 했다. 다만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는 의학적으로 다양한 상황을 내포하고 있어 이를 규정화 하는 것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환자의 의사표시...어떻게 확인하나?존엄사 논의의 핵심적 쟁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정범위와 의사표시의 '추정'을 허용할 것인가의 여부다. 신현호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해울)는 "어차피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작성 당시의 의사와 치료중단 단계의 의사는 다를 수 있다"며 "결국 환자의 의사를 어떻게 객관적인 절차와 방법을 거쳐 추정하느냐가 제도화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이와 관련 이인영 홍익대 법대 교수(경실련 보건의료위원)는 "환자가 직접 작성한 사전의료지시서를 통해서만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의사표시 능력이 없는 말기환자의 경우에는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확인을 거쳐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고 밝혔다.가톨릭계 "존엄사법은 안락사법"그러나 이동익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장)는 존엄사법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 자체를 거부했다. 이 신부는 "인간의 존엄성은 삶의 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부여되는 것"이라며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존엄사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안락사를 부추기는 법안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특히 그는 "아직 연 계속하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라고 비판했다.기독교계를 대표해 나온 이상원 총신대 교수(신학대학원)도 "존엄한 죽음은 '자연사' 뿐" 이라며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려는 시도는 존엄한 죽음이란 용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행위에 대한 법적 지원장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표현 이외의 어떠한 추정이나 대리판단은 허용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약 1천5백명 환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한편 이날 허대석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전국 256개 의료기관에서 총 1555명의 중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7년 사망자 중 만성질환자 18만23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4.1%가 임종 직전에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를 적용한 것으로 밝혀졌다.2010년 04월 23일 (금) 16:16:18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닥터스뉴스(http://www.doctorsnews.co.kr)사람의 죽음과 관련하여 커다란 법률적 쟁점이 있다. 바로 안락사와 존엄사의 문제이다.“안락사(安樂死, Eutanasie)”란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 또는 빈사상태의 환자에게 그 고통을 없애거나 줄이기 위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생명을 애써 단축시키지는 않는 자연스런 안락사는 ‘진정한 안락사’라고 하여 특별히 법적으로 문제될 여지가 없는 반면,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부진정 안락사’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경우 고통을 없애기 위하여 직접 사람을 살해하는 ‘직접적 안락사’는 살인죄의 죄책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고통제거의 부수적인 결과로 생명단축이 발생하는 ‘간접적 안락사’의 경우는 일정한 요건 하에 이를 허용하려고 하는 것이 법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이다.즉, 환자가 불치의 질병으로 사망이 임박하였고, 환자의 고통이 극심하며, 그 고통을 제거 또는 완화하기 위한 것이고, 환자가 스스로 진
중세 유럽 역사에서 스테레오타입이 끼친 영향 연구Ⅰ. 머리말Ⅱ. 스테레오타입이란 무엇인가Ⅲ. 중세 말의 마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변화1. 초기 마녀에 대한 인식2. 마녀에 대한 개념의 변화3. 스콜라 철학자들의 영향Ⅳ. 중세 유럽사회의 돈과 상업에 대한 스테레오타입Ⅴ. 맺음말Ⅰ. 머리말전 세계를 강타했던 영화 ‘아바타’에 이어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은 우리가 문명된 삶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자연의 섭리에 폐를 끼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원시의 인간들은 쉽게 화를 내는 법이 없었고, 자연에서 얻은 것은 자연 속에서 함께 누리는 이웃들과 나누었다. 결혼도 서로 좋아하면 남녀 할 것 없이 혼인을 하는 자연스러운 다처다부제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 간엔 질투나 다툼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이 돕고 화목한 삶이 바로 아마존, 즉 인간 원시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저 평온해 보이는 이들 원시의 삶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간의 독특한 인식과 일방적 관습도 존재했다. 어느 나라든 남자들은 식솔을 이끌고, 여자들은 가정을 잘 꾸려야 하는 책임이 있듯이 아마존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시부족 남자들은 사냥을 잘해야 결혼을 할 수 있고, 여자들은 살림을 잘 해야만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여자는 초경을 시작하면 1년 이상 집에 격리되야 한다는 독특한 사고가 존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서도 안되고 화장실도 격리된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격리가 끝나야 결혼준비를 위해 살림을 배울 수 있었다. 마을 중앙에는 남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신성시된 공간도 있었다. 여자가 들어가면 저주가 있는, 하지만 남자들끼리 모이면 마을 여자들의 성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이처럼 아마존 원시의 삶 속에서도 현대와 마찬가지로 ‘나와는 다른 사람’ 즉 타자(他者)에 대한 정형화된 고정관념, 즉 배타성과 편협함과 일방성에 근거한 우월주의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이러한 편협한 사고는 우리 역사 속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허다하게 존재해 왔특정 지역의 마녀사냥에 관한 연구나 마녀사냥이 갖는 역사적 의미, 그리고 여성사적인 입장에서 진행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연구는 마녀사냥을 통해 당시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나 마녀사냥의 의미를 알아 볼 수는 있지만 마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알아보는 데는 미흡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에 전 유럽에서 발생했던 마녀사냥의 대상인 마녀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갔으며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 스콜라 철학자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중세 초기에 나타난 마녀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살펴 본 후 여러 영향으로 인해 변화된 마녀와 관련한 스테레오타입에 대해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스콜라 철학자들이 이런 변화들을 이끈 사상적 기반과 실질적으로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1. 초기 마녀에 대한 인식마녀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이미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고대 인도나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속에서도 마녀에 대한 모습들을 살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유럽 중세 말기에 나타나는 마녀 상에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중세 초기에 나타난 관념적인 마녀상은 고대부터 이어진 마녀에 대한 관념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데 겉모습이 추악하며 가난하고 혼자 살고 있는 늙은 여성으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마녀상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마녀에 대한 사회의 탄압은 늦어도 11~12세기에 이미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사건들은 주로 마을의 주민들이 자신 혹은 마을의 농사에 해를 끼치는 마술을 부린 마법사들을 지방 재판에 고발하는 것이었고 처벌받은 자들은 단순히 악의적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로 인식될 뿐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마녀사냥은 후에 일어나는 대규모의 마녀사냥과는 달리 각 지역별로 간헐적으로 나타났고 그 처벌도 극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하지만 이러한 마녀에 대한 처벌과 탄압은 마녀가 행한 부정적인 행위들 때문에 일어난 유일신 야훼였기 때문에 악인 사탄 역시 야훼가 창조한 것으로 보아 사탄을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탄은 구약성서 중 후기에 집필된 역대기 상권에 이르러서야 악의 화신이며 신의 적이라는 신분을 갖게 된다. 구약성서와 달리 신약 성서에서 사탄은 좀 더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마귀(demon) 위에 군림하는 사탄은 예수와 적대되는 물질과 육신의 지배자로 예수를 유혹하고 예수의 죽음을 유도했으며 인간을 나쁜 길로 인도하는 존재였다. 성경에서의 변화로 초기 기독교인들은 사탄을 악의 화신으로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악마와 사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후에도 초기 교회는 이들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예수의 재림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인간에 대한 힘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아프거나, 정욕에 사로잡히거나, 우물이 마르거나 흉년이 드는 것과 같은 현상도 사탄의 짓으로 간주하게 된다.특히 12세기 이후부터 예수가 수난기 동안에 겪은 인간적인 고난으로 인해 사람들은 악마의 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었고 그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사탄은 단순히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탄이 이렇게 강한 힘을 갖게 되면서 악마는 그 힘으로 인간을 무력화 시키는 공포의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악마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확립되어 가던 중 12세기 중반에 서유럽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단인 카타르가 유입된다. 카타르는 발칸 반도에서 발생한 이단으로 무역로를 따라 전파되었으며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 프랑스, 라인 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이들은 강력한 이원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는데 우주에는 정신적인 힘과 물질적인 힘이 서로 대립하고 있으며 전자는 선한 것이고 후자는 악한 것이라고 규정했다.카타르 파는 기존의 기독교와는 달리 악마의 힘과 악마가 물질 세계를 지배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이원적인 신관을 가진 자들이었다. 카타르는 악마가 지닌 힘을 강조하마와의 계약과 더불어 마녀의 실재성의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콜라 철학자들의 주장은 마녀와 악마의 성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중세 유럽에는 사람의 꿈에 나타나 남자 혹은 여자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몽마 夢魔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었다. 12세기 이전까지 몽마에 대한 개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마가 공기로 된 그들의 몸을 압축함으로써 인간의 형상을 하며 여자의 형상(수쿠비)을 하고 남자와 성교를 해 정자를 받은 다음 다시 남자의 모습(인큐비)을 한 후에 여자와 성관계를 가져 아이를 갖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퀴나스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악마와 인간의 성관계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을 수 있게 했다. 아퀴나스의 이론적인 근거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이 이론은 마녀가 악마와 계약을 맺고 성관계를 한다는 사바트의 존재를 사실로 믿게끔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12세기에 들어서 마녀는 사바트에서 악마와 의식적인 성관계를 맺는다는 새로운 인식이 나타나게 된다.마녀가 남자보다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을 확립한 것도 스콜라 철학자들이었다. 중세의 마녀사냥은 남자와 여자 모두가 재판의 대상이었지만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중세에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퀴나스는 뱀의 형상을 한 악마에게 이브가 유혹되었으며 아담의 갈비뼈에 의해 생겨난 존재이고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출산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보다 쉽게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다고 주장하였다.아퀴나스의 마녀에 대한 이론적인 정립은 15세기에 출판된 마녀의 망치 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마녀의 망치 는 1486년 독일의 신학자인 인스티토리스와 스프렝거가 공동으로 지은 책으로 마녀의 실재성과 그들의 행위, 그리고 마녀 재판에 대한 절차가 자세히 수록 되어있다. 이 책은 15세기 말부터 시작되는 대규모 마녀사냥의 이론적 근거로 이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을 빌리고 원금과 함께 엄청난 이자를 상환해야 했다. 가난과 굶주림으로 시달리던 농민들은 더욱더 기댈 곳을 찾게 되었고, 그들이 찾은 안식처는 종교였다. 이들의 불안은 다름 아닌 구원에 대한 갈망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안식처로 선택한 기독교와 그 교리를 무시할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돈과 상업에 대한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은 중세인에게 더욱 크게 작용하였다.2. 성서에 나타나는 부정적 인식위에서 본 바와 같이 중세는 기독교의 시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기독교적 가치관이 전 사회를 압도하고 있던 시대였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성서에 명시된 돈에 관한 여러 구절들이다.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너희를 위하여 지상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예수의 산상설교)“너는 하느님과 재물 두 가지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19-24)“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 (마가복음 10:25)“돈을 사랑함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디모데전서 6:10)“황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로울 수가 없고 그것을 좇는 자는 속속들이 썩게 된다.” (집회서 31:5)“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마태오복음 6:24)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내쫓고 환전상들의 좌판과 비둘기 장수의 의자를 둘러 엎으며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서에 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라 했는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마태복음 21:12-13)위와 같은 성서 구절에서도 보이듯이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하느님과 돈을 대립시켜왔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에게 돈주머니와 영생 중 하나를 고를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중세에서의 신앙이란 당시 사람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었으므로 이러한 기독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