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떻게 기독교를 서구화 시켰나.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의 모든 부분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서구화는 다른 말로하자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대부분(계시신학적인 부분을 제외한)을 말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첫 번째로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토대가 되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특히 플라톤 철학)에 대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이 결합되었나를 알아야 할 것이다.그리스도교는 하나의 계시 종교로서 세상에 나타났다. 즉 그리스도교는 추상적인 이론적 체계로서가 아니라 속죄, 구원, 사랑에 대한 가르침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도를 파견했던 이유는 철학적인 논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하기 위함이다. 특히 바울의 회심이후 그의 전도활동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교가 이스라엘 지방에서부터 널리 유럽까지 전파해지고 그 교세가 견고하게 뿌리를 내려 성장함에 따라서, 이교도의 지식 계급과 학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혐의와 적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교를 겨냥했던 숱한 공격들에는 단순히 무지한, 경솔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들에서부터 철학적인 근거에서 가해진 공격까지 많은 공격들을 받게 되었다. 그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철저한 철학적인 근거에서 가해진 공격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이들 공격에 대처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신학적인 논증만이 아니라 철학적인 논증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들, 호교가들의 저서 가운데 그 철학적인 질문에 답변하기 위한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러나 거기서 철학적인 체계를 구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의 관심사는 본래 신학적인 것, 즉 신앙을 옹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보다 견고하게 확립되고 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되며, 또 그리스도교의 학자들이 그 시대의 사상이나 학문을 발전 시켜나감에 따라서 철학적인 요소가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특히 이교의 전문적인 철학자들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했다. 그리스도교 철학의 성장에 대한 호교론의 영향은 우선 앞에서 언급했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요인, 즉 적대적인 공격에 기인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성장에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이교도들의 철학적인 근거에서 가해진 공격)과는 관계없는 또 다른 내적인 원인도 있었다. 보다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연히 가능한 한 많은 계시의 내용을 통찰하여 신앙의 관점에서 세계와 인생에 대한 하나의 포괄적인 견해를 형성하고 싶어했다.이 당시의 철학은 플라톤주의 철학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수정, 발전시킨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발전했었다. 신플라톤주의는 만물의 본원인 ‘일자’로부터 모든 실재가 계층적으로 ‘유출’하여, 보다 낮은 계층은 그 상위의 것을 모방하며, 보다 복잡 ·불완전하다. 또 만물은 ‘관조’에 의해 일자에 계층적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쓰고 이 상하 두 방향에의 운동이 실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이 운동에 의해 감각적인 것을 벗어나 일자로 향하며, 이것과의 직접적인 합일, 즉 ‘탈아’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희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신플라톤주의 철학와 그 토대가 되는 플라톤주의 철학을 그리스도교의 교부들은 자신의 종교를 호교하는 철학으로 사용하였다. 거기에는 그리스 호교가인 유스티노스, 아리스티데스등과 라틴 호교가인 테르툴리아누스, 펠릭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게서 체계적인 철학적 종합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의 관심사는 본래 신학적인 것, 즉 신앙을 옹호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들 호교론자들에게서 철학적 체계를 찾는 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러나 라틴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만은 달랐다.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의 주요한 희랍 철학인 플라톤,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그리스도교와 접목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자신이 주장한 것처럼 하나님에 관한 자기의 설, 즉 하나님에 관한 건전한 기독교적 교리는 플라톤을 기초로 하는 철학적 전통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물론 그가 본 플라톤은 플라티노스가 본 플라톤이었으며, 그가 플라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설은 다름 아는 플라티노스의 일자설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나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의 유출물이라고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기독교 신학 속에 유출설이 도입되었을 때에는 언제나 그것은 범신론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과 세계와를 비단 존재성의 정도에서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종류에 있어서도 다르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신플라톤주의를 수정케 한 것은 유태교적 기독교 전통과 그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었다. 전자에 의하면 하나님은 천국과 지상 세계를 창조하였다. 후자에 있어서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 속에, 그리고 자신과 맞서 있는 의지를 생생하게 깨닫고 있었으며, 반항적 의지가 생겼을 순간에도, 호응적 의지가 생겼을 순간에도, 그는 하나님의 의지와 마주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조설을 지지한 까닭도 이 설이 의지의 면에서 하나님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는 기술상 유출과는 다른 것이다. 즉 창조는 하나님의 존재의 형식적 본질로부터 결과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유력한 권능으로부터 결과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창조의 이념에는 아무런 범신론의 시사도 내포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티노스의 철학에서부터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리스도교를 분리시켰다. 그렇지만 신플라톤주의의 신 관념과 더불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돌보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성서적 견해를 받아드렸다. 신은 지성과 의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신은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그가 설계한 신적 계획에 따라서 세상을 조정해 나간다.악의 문제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식론 등 그리스도교의 많은 부분을 단순히 신앙의 부분으로 놓아두지 않고 그 부분들을 철학적인 해명을 가했다.
화씨 9/11을 보고먼저 이 영화는 정통 필름(Film)영화 형식이 아니라 다큐멘터리(Documentary)형식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한계를 많이 뛰어 넘었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흥행을 위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화씨 9/11은 미국에서만 $32,314,000를 벌어들인 다큐멘터리 형식에서는 정말 예외적인 흥행작이지만) 이 말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 밝히고 싶어하는 것, 즉 자신이 만들고 싶은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각색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화씨 9/11은 더욱더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미국의 총기 사용에 대한 영화(볼링 포 콜럼바인), 멍청한 백인들 (Stupid White Men)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무어가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직설적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서 접근하고 또 여러 가지 물음(미국 부시의 9/11 테러와 아프카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던지면서 그것에 대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2가지 의견들을 보여주고 시청자 여러분의 선택에 결정을 맡기는 형식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그럼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먼저 이 영화는 크게 3가지 내용(부시, 911테러, 이라크 전쟁)으로 나누어진다. 그 3가지 내용이 서로 연관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는 하나하나씩 다루어 보려고 한다. 영화에서는 첫 번째로 911테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01년에 미국의 W.T.C.(World Trade Center)에 2대, 국방부(Pentagon)에 1대의 비행기가 추락해 총 3021명의 사망자를 만든 이 참사의 주요한 계획자는 결국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니고 부시라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부시의 선거자금과 그가 텍사스 주지사였을 때 맡았던 회사들의 자금들의 내용을 보면 명백해 진다. 마이클 무어는 부시가 젊었을 때 실패한 텍사스 석유회사(Harken Energy, Spectrum7, Abusto drilling등)경영과 그 회사들의 사우디 석유 자금들과의 유착관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특히 부시가 칼라일 그룹을 경영할 때에는 사우디 왕가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을 포함 빈 라덴家의 일가들과의 관계가 단순히 친분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사업적인 연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사우디의 석유 자금들과 빈 라덴家의 자금이 부시가 맡고 있는 볼품없는 석유회사인 칼라일 그룹에 들어오고 그로 말미암아 그 회사를 미국에서 9번째나 되는 큰 석유 재벌로 만든 사실 또 그것을 통하여 거기에 엄청난 투자를 했던 사우디, 빈 라덴家의 자금이 눈 덩어리처럼 불어났다는 것 또 9.11테러 직후 미국의 모든 공항들이 안전을 위해서 폐쇄 되었지만 F.B.I. 수사 없이 미국의 공항을 통하여 빠져나간 사우디 그리고 빈 라덴家의 사람들, 이 모든 사건들이 결코 9.11사건과 관계가 없지는 않다고 무어는 말하고 있다. 또 그것들(엄청난 자원으로 졸지의 미국회사 칼라일 그룹을 단숨에 엄청난 재벌로 만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대통령이자 현 대통령의 부친인Gorge Bush의 보이지 않는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G.W.Bush는 스스로 말한다. 또 케네디 센터의 건너편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에서 무어와 정부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에 대한 사우디의 엄청난 투자에 대해서 알 수 있다. $8600억(미국경제의 7~8%규모)를 매년 미국에 투자를 하고 있고 그 돈들이 미국의 노른자들 시티뱅크나 AOL Time Warner에 투자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1조$가 미국 은행에 들어있다고 주장 그러한 돈들이 일시에 빠져나가면 미국은 큰 혼란에 직면해 있다고 말을한다. 무어는 이러한 사우디가 바로 9.11테러의 중심축으로 지목했던 알카에다를 만든 사람들이라고 말을하고 911테러와 부시와의 직접적 관계성을 드러낸다.그러면 왜 미국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했을까? 마이클 무어는 미국인들의 분노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했다고 말을한다. 3000여명에 가까운 희생자들을 만든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인들의 분노는 극에 치달아 있고 그 분노를 위해서 아프카니스탄이 희생되었다고 말을한다. 또 아프카니스탄에는 덤으로 미국의 괴뢰정부를 세우고 그것들을 통해서 아프카니스탄의 가스 석유관을 자국을 위해서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아프카니스탄에 있던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정부를 무력으로 몰아냈다. 또 미국은 9.11테러의 핵심 주동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위해서 많은 인력들을 동원하여 아프카니스탄을 뒤졌지만 실패했다. 그 이유로 미군들이 2달 동안이나 빈 라덴이 살고 있는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 왜 2달 동안이나 그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여기서 빈라덴과 부시와의 연관관계를 무어는 미국을 공격한 대 살인마가 도망갈 시간을 2달이나 벌었다? 제 정신이라면 누가 그런 짓을 할까? 라고 말을한다. 이러함으로 911사건은 마치려고 한다. 그러면서 What kind of president was he? , I'm war president 라고 질문을 무어와 부시가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하면서 이라크 문제를 들어낸다. 어떻게 이라크 전쟁을 자국민(American)에 대해서 정당화 시키고 그러한 생각을 고취시켰나? 그것은 방송을 통한 대중화 우매화라고 생각한다. 즉 공포심 조작이다. 미국은 이젠 안전하지 않다고 부시 대통령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고 , 나라의 Defence Level(오렌지에서 레드로)을 격상시키는 등 미국민들에게 스스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미 정부는 테러조직들과 반 미국에 대한 나라들에 대해서 선재공격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라크를 지목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이른 새벽 미국의 걸프만에 있는 이지스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을 쏘는 것을 시작으로 몇 일 내에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공격으로 인해서 아무런 이유없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수많은 민간인들의 참상을 보여준다. 또 이라크에서 실전 전쟁에 투입되어 있는 미군병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번 전쟁의 부당성을 일깨우고 그들도 부시 정부의 피해자인 것을 나타낸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 본토에서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고통 받는 가족들의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라크 전선에 파견된 미군들이 직면하는 끔찍한 현실과 환멸감을 대비시킨다. 반면, 이런 끔찍한 현실 앞에서 부시 행정부는 전쟁 승리를 공포하며 참전 군인들의 보너스와 건강보험 공제 삭감을 제안한다. 즉 대통령이 이번 의미없고 명분없는 전쟁에 국가를 위해 장병들의 장렬한 죽음에 대한 영애를 말하는 동안 참전 군인들의 건강보험과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보상자금을 대폭 삭감하자고 말하고 국군 모집원들은 또 다른 이라크 희생자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미국의 가장 빈곤한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입대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미국의 굴지의 기업(Microsoft, G.E. 등) 경영진들이 이러한 비인간적 비극 앞에서도 이라크 석유와 자기 기업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 건지 계산하고 그 이라크 재건사업(Re-Build)을 통하여 미국의 근로자의 이익을 얼마나 창출하는가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다. 그곳에 나타난 연설자는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실이 되는 것보다 득이 되는게 많지 않느냐? 얼마있지 않으면 석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우리 미국은 어떻게 그것에 대처하며 나아갈 것인가? 이번 기회가 중요하다. 여기에 투자를 해서 이윤을 창출하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연설이다. 이 연설은 이라크 전쟁이 명분이 없는 전쟁임을 확신하는 연설이고 이 전쟁은 테러분자들을 이 세계에 축출하는 전쟁이 아닌 철저히 미국의 이득을 위해서 일으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