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대미 통상 마찰목 차1. 포스코2. 미국의 철강 산업3. 미국의 철강 산업분야의 수입규제, 보호무역주의4. 미국 철강 산업관련 규제 현황5. 각 국, 각 기업과의 통상마찰6. 철강제품과 관련한 한미 간 통상마찰 역사7. 포스코에 행사한 수입규제조치들8. 미국의 수입규제조치들이 포스코에 미친 영향9. 결론1. 포스코1)연혁■창업기 : “꿈” (1945~1969)- Vusion1967년07종합제철소 입지 포항으로 확정1967년11월종합제철사업 추진위원회 회의1968년03월20일회사창립 총회1968년04월01일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포항건설기 : “땀” (1970~1981)- Dvelopment1970년04월01일포항제철소 1기 설비 착공1973년07월03일포항제철소 1기 설비 준공(조강연산 103만 톤)1973년10월10일국제철강협회(IISI)가입1976년05월31일포항제철소 2기 설비 준공(조강연산 260만 톤)1978년12월08일포항제철소 3기 설비 준공(조강연산 550만 톤)1981년02월08일포항제철소 4기 설비 종합준공(조강연산 850만 톤)■광양건설기 : “힘” (1982~1992)- Growth1983년05월25일포항제철소 4기 2차 설비 준공(조강연산 910만 톤)1985년12월05일광양제철소 1기 설비 착공1986년12월03일포항공과대학교 개교1987년03월03일포항산업과학연구원 창립1987년05월07일광양제철소 1기 설비 준공(조강연산 1,180만 톤)1988년06월10일기업공개(국민주 1호)1988년07월12일광양제철소 2기 설비 준공(조강연산 1,450만 톤)1990년12월04일광양제철소 3기 설비 준공(조강연산 1,750만 톤)1992년10월02일포항제철소 4반세기 대역사 종합준공(조강연산 2,080만 톤)■대역사 완성 이후 : “꽃” (1993~2003)- success1993년12월09일ISO 9002 인증 획득1995년09월01일포스코센터 개관1995년10월27일런던증시 상장1995년11월28일포항제철소 신재선공장 준공199도하게 되자 절정에 이르러 미국은 1960년대 말까지 자유무역을 선도하면서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주역으로 등장한다.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국은 다시 보호주의적 입장으로 선회한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1974년 통상법이다. 1974년 통상법은 반덤핑·상계관세제도의 강화, 상대국의 불공정무역관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복을 가할 수 있는 301조 등 새로운 조항의 신설을 통하여 미국의 개별기업이 외국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또한 국제무역협정에 대해 의회의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신속승인절차가 도입됨과 아울러 미 무역대표부(USTR)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때의 보호주의는 비관세장벽에 기초하여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사양산업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관세장벽에 기초하여 유치산업을 보호하는데 초점을 맞춘 1920년대까지의 보호주의와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미국은 통상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자간 협약으로부터 점차 양자간 교섭으로 그 중점을 이행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4. 미국 철강 산업관련 규제 현황주요 철강 생산국들은 현재 철강 산업의 어려움이 전세계적인 철강 과잉생산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도 전세계의 철강 산업은 과잉 공급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잉생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철강 생산국 정부들이 철강 생산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더욱이 미국은 과잉 생산용량이 발생한 이유를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 부당한 정부지원을 바탕으로 한 과도한 시설투자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철강생산국 정부들이 시장원칙을 준수하고 과잉생산 용량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OECD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해왔다.OECD에서는 이러한 과잉생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간 협상이 미국, EU를 중심으로 약 40여 개국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어왔다. 회원국들간에 가장 큰 합의는 지난 2001년 12월에 열린 제2차 철강 고위급 회담으로서 주요 생산국들은 철강 과잉생산과 가격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향후 10, 일본, 유럽연합 등 6명이 '원고', 미국 한명이 '피고'에 해당하는 격이었다. 패널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미국의 철강 세이프가드가 WTO협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패널리스트 선정 등에 들어갔다.2002.03.05미국, 철강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조치 발표(판재류 등 14개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 향후 3년간 8%~30% 의 관세를 부가하기로 함)2002.0307EU,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를 WTO에 제소2002.03.20우리나라 및 일본 제소2002.03.26중국 제소2002.04.03스위스 제소2002.04.04노르웨이 제소2002.04.11양자협의 개최2002.05.21브라질 제소2002.07.08EU, 한국, 일본 등 8개국 공동 WTO 분쟁 패널설치2003.03.26패널 중간보고서 배포2003.05.02최종보고서 당사국들에게 배포5) 일. 미 통상마찰1998년도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가 대폭 증가하고, 이에 대해 미국은 일본의 대미 철강수입 급증에 따른 제재 검토 발언 및 수퍼 301조 부활 발표 등으로 일.미간 무역 마찰이 심화될 가능성을 보였다.□ 일본의 무역흑자 대폭 확대일 대장성이 발표한 무역통계속보에 의하면 98년 일본의 총 수출액은 50조6,454억엔, 총 수입액은 36조6,603억 엔으로 무역흑자는 13조 9,851억 엔으로서 전년대비 40.1%로 대폭 증가세를 보였으며, 무역흑자 액으로서는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또한, 대미수출은 15조4,701억 엔으로 전년대비 9.2%가 증가한 반면 수입은 8조7,730억 엔으로 4.1%가 감소, 무역흑자는 6조6,972억 엔으로서 전년대비 33.4%의 대폭 증가를 기록하였다.이와 같이 무역흑자가 대폭 증가한 이유는 수출이 전년대비 0.6%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 국내 경기 침체와 원유가격 하락 등으로 수입이 10.5%나 감소한 데 주로 기인하고 있다.□ 미 정부내의 반발 심화98년 1월-11월 간 미국의 무역적자 누계 액이 전년동기대비 53.9%나 급증하고 년간 적자 액도 과거 최고치를 갱거치게 되는데 조사개시로부터 구제조치 발효까지는 약 1년의 기간이 소요된다.부시 대통령의 세이프가드 조치의 직접적인 배경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자국 철강 산업에 대한 보호였다. 그 당시 미국의 철강 산업은 세계적인 철강 과잉생산과 수입 증가, 그리고 생산력 저하에 따른 경쟁력 하락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다. 2001년 말 기준으로 미국 내 철강 가격은 지난 20년 이래 최저이며, 2002년 기준으로 미국 내 약 31개의 철강관련 회사가 파산하였고 이에 16개 공장이 폐쇄되었다. 또한 미국 내 6위 업체인 내셔널 스틸(National Steel)을 비롯하여 18개 업체가 파산보호신청을 냈고 2001년 4/4분기 미국 내 철강가격은 20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보호조치가 없을 경우 미국의 모든 철강 산업은 도산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따라서 미국 철강업계와 노조는 대선 당시부터 부시 대통령에게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철강에 대해 40%의 관세를 부과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미국 철강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미 행정부의 「강한 달러」정책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뒤젠베르그 유럽중앙은행(ECB)총재는 미국의 고율의 관세 부과가 달러 환율과 무관치 않음을 지적한 바 있다.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수년 전부터 원가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 철강업계로서는 달러 강세가 치명타로 작용하였기 때문에 정부에 수입규제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정치적인 배경에서 세이프가드 조치를 살펴보면, 부시 대통령이 그해 11월에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시점과 그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부시 대통령이 세이프가드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펜실베니아, 웨스트버지니아와 오하이오처럼 철강 산업에 이해가 걸려있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유권자들로부터 미래에 외면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 착안을 두어서 갑작스러운 세이프가드 조치를 시행했다는 것이다.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우세지역으로 분류 되어진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세이프 가드 조치유럽연합(EU)도 2002년 9월 세이프가드를 정식 발동하였고 신흥 경쟁국 이었던 중국마저 11월20일자로 열연강판 등 5개 철강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확정조치를 발동하게 되면서 세계 철강시장은 견고한 보호무역주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철강ㆍ석유화학 등은 이미 무관세거나 관세율이 낮고 미국 측이 자국산업 보호에 강한 의지를 보여 긍정적 영향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1) 포스코에 미친 영향미국의 세이프가드 결과 포스코의 냉연제품 등은 관세 부과로 인해 대미수출량 이 크게 감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UPI에 공급되는 열연코일의 예외조치로 이번 201조 발동은 결과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포스코에는 오히려 기회와 이득의 기회가 생겼고, 30% 관세로 인한 대미 수출량 감소는 미국 내 철강 가격 상승을 초래해 열연코일 수출가격도 올라가고 UPI의 수익도 개선될 수 있게 하였다.또한 포스코는 열연코일을 제외하고는 대미수출 수량이 미미하므로 세이프가드로 인한 영향이 적고, 최고의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세가 인상된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었다.(2)통상마찰에 대한 포스코의 대책정부차원 - 대미통상외교 강화: 정부에서는 대미통상사절단 파견하고 사전협의를 통해 통상문제 해결하고자 하였다. 또한 철강수출에 부당한 보조나 덤핑이 없었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고 자동차와 가전, 건설 등 미국 내 철강 수요업체를 상대로 부당한 철강 수입규제가 가져올 문제점을 충분히 알려 미국 내 여론을 환기시키는 방안을 병행하였다.또 다른 대응 방법으로 대미 협상에서 유럽연합(EU), 일본 등 8개의 철강 수출국과 공조체제를 마련하여 WTO에 보복 관세 승인을 제소하였고, 결국 2005년 9월 WTO가 한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브라질, 칠레, 인도, 캐나다, 멕시코 등 8개국이 요구한 양허 정치 조치를 허용하여 철강산업에 대한 미국의 30% 관세를 저지하는 결과를 얻었다.당사 차원먼저 포스코는 한미철강 협력의 필요성 강조하였고 UPI공급 열연의 예외인
Ⅰ. PM 이론PM 이론은 일본 오사카 대학의 미스미교수를 필두로 하여 일본에서 정립된 것으로 집단 기능의 개념으로부터 리더십을 유형화한 이론이다. 이들은 집단 기능을 목표 달성 기능(Performance the goal)과 집단 유지 기능(Maintenance the group) 의 2개의 차원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리더십 행동을 구분할 때 쓰이는 과업 행동, 관계성 행동과 각각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이 두 가지 기능을 통해 리더십 유형을 설명하고 있으며, 집단의 기능은 목표 달성 기능과 집단 유지 기능의 2분법으로는 불충분하고, 이 두 기능이 합쳐진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하였다.1. P 기능과 M 기능PM 이론은 리더십을 P기능과 M 기능이라는 두 개의 기능을 중심으로 하여 접근하였다. P 기능과 M 기능에 대해서 자세한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P 기능 (목표 달성 기능)이는 조직이나 집단이 가지는 목표를 지향 ? 달성하는 기능을 말한다. P기능은 지위나 역할의 무엇이냐에 따라서 변화를 겪고, 지휘의 상하 관계에 있어서 상급자의 P기능에 의하여 하급자의 P기능도 영향을 받는다.지도자의 목표 달성 기능이란, 조직 구성원인 부하에 대하여 새로운 방안의 제시하고 업무를 비판하며 직무 역할을 명확히 해주고 결정된 의사를 부하에게 지시하며 때론 충고나 조언을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지도 조건으로서의 P기능”은 실제로 목표를 달성한 “결과로서의 P기능” 과는 본질적으로 상이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 조건으로서의 P기능”은 실제로 강화해도 이것이 업적의 강화 향상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 M 기능 (집단 유지 기능)집단을 존속, 유지하며 강화하는 기능으로 집단이나 조직에서 발생하는 긴장의 해소, 대립 항쟁의 화해, 격려와 지지 등으로 구성원 상호간의 우호적 상호 의존성을 증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집단이나 조직 내에서 볼 수 있는 구성원의 욕구 불만으로 인한 분열 등이 표면화하는 것을 통제하며, 구성원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 집단의 응집성을 촉진하는 것들도 집단 유지 기능에 속한다.2. P기능과 M 기능의 관계 유형위에서 언급한 P기능과 M기능, 이 두 가지 기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총 4개의 리더십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Pm형PM형pm형pM형고P 차원저 저 고M 차원1. Pm형생산 중심적 리더십이나 생산성에는 한계가 있으며 조직의 유지라는 측면에서는 위험 부담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리더형이다. Pm형의 리더는 업무목표달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인간관계가 서먹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2. PM형가장 생산적이며, 구성원들이 만족하고 업무를 능률적으로 하는 리더형이다. PM형의 리더는 업무목표달성도 중요하게, 동시에 인간관계와 조화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는 BLACK & MOUTON의 관리격자 이론 중 팀형 리더에 해당되는 리더형이라고 볼 수 있다.3. pm형비생산적인 리더로 pm형의 리더가 운영하는 조직의 구성원은 적의와 불만이 많다. pm형의 리더는 업무목표 달성에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 유형이다. 이는 BLACK & MOUTON의 관리격자 이론 중 방관형 리더에 해당되는 리더형이다.4. pM형pM형의 리더는 우호적이며, 즐겁게 업무를 이루기는 하나, 생산성을 높이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유형의 리더는 업무목표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와 조화도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미스미 교수 등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Pm형은 구성원의 내부적 저항에 의하여 생산성의 한계가 있고 pM형도 구성원의 업무에 대한 흥미나 만족도에 있어서 최대는 아니며 PM형이 P기능이나 M기능에서 최고인 것은 구성원의 업무나 지도자에 대한 기대의 정도와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3. 결론PM 이론은 Blake & Mouton의 관리격자이론과 상당 부분이 유사하나, 관리격자이론이 과업 완수보다는 대인간의 관계에 관심이 높은 컨트리클럽(1.9)형을 과업과 직무 중시형인 권한-순응(9.1)형보다 높게 평가한 반면, PM이론은 목표 달성을 중시하는 P형을 집단 구성원간의 상호 조화와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M형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이렇듯 PM 이론은 성과지향은 효과적 리더십에 필수적이지만 같은 강도의 관계지향 성향이 동반되지 않으면 리더의 성과 지향적 행위를 집단구성원들이 압력 또는 통제로 해석하게 되는 반면, 성과에 대한 강조와 함께 유지노력이 주어지면(PM형) 하급자들은 리더의 성과 지향적 행동을 지시나 압력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계획수립을 도와주기 행동으로 평가한다고 말하고 있다.4. PM 이론의 응용지금까지 살펴본 PM 이론은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간단히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고 실생활에 적용해 보도록 하자. 우선 첫 번째로 만약 우리가 비즈니스로 사전협상을 해야 한다면, PM 이론에 따라 사전 협상 대상들을 만날 수 있다. 사전 협상은 사전에 어떻게 협력을 얻어낼까 하는 것이 최대 목적이로 사전 협상의 가장 어려운 점은 까다로운 상대를 어떻게 설득하여 예측되는 반대활동을 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업무목표달성에 큰 비중을 두는 P형을 가장 먼저 찾아가 설득하고,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모두 비교적 무딘 pm형인 사람을 제일 나중에 찾아가 협상하는 것이 유리하다. 즉, 사전협상의 순서로 Pm형 -> PM형 -> pM형 -> pm형의 순으로 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 수 있다.
-국제 마케팅-오리온 초코파이해외 진출 사례목차서론Ⅰ 오리온 소개1. 오리온 연혁2. 사업분야본론Ⅰ 오리온 초코파이의 위기1. 업계 현황2. 국내시장 대응 전략 정책Ⅱ 오리온 초코파이의 해외 진출1. 90년대 이전까지의 수출 상황2. 수출 마케팅 정책의 변화3. 해외 시장 개척Ⅲ 현지 생산을 통한 중국 진출1. 중국 진출의 배경2. 국내 업계와 중국 시장의 초코파이 관련 현황3. 중국 투자 결정4. 중국에서의 마케팅 전략5. 중국에서의 성공Ⅳ 오리온 초코파이의 경쟁력의 원천Ⅵ 동양제과의 권역별 거점 전략결론Ⅰ 대체품의 필요성Ⅱ 초코파이의 당면 과제Ⅲ 초코파이의 향후 전망서론Ⅰ 오리온 소개1. 오리온 연혁(1) 1950년대 (창업기)•국내 2위의 제과업체인 풍국제과 인수(1956. 7. 25)- 시장점유율 약 60%로 업계 선도•현대식 제조시설 확충- 1957년 국내 처음으로 캔디제조 시설 도입- 건빵, 하드비스킷, 캬라멜, 웨하스, 드롭프스 등(2) 1960년대 (성장기)•제조기술에 대한 과학적 연구 시작- 빠다볼, 소프트캔디, 마미비스킷 등 신제품 개발 박차• 캔디 제조시설 확충 및 포장의 기계화• 생산능력 확대에 따른 판매조직 체계 구축(도매상 제도)• 판 초콜릿 제품 생산으로 인기 독점(3) 1970년대 (위기와 극복기)• 1971년 9월 10일 동양시멘트 법정관리로 제과 부도직면• 재정안정화, 월간 경영계획제도 확립 등 경영합리화 추진• 껌제품 본격적 생산 체제 구축- 중동지역에 껌 수출 시작(1976년)• 1974년 4월 세계 최초로 `초코파이' 생산• 1975년 6월 27일 기업공개(166만주)• 스낵제품 생산 시작• 판매조직을 도매상, 대리점 체제에서 직조직체제로 전환(4) 1980년대 (도약을 위한 준비기)• 시설현대화, 신기술 도입 강화- 비스킷 제조 전문 제2 익산공장 건설(1980년)- 초컬릿 제조 전문 제3 익산공장 건설(1983년)• 담철곤 사장(현 오리온그룹 회장) 체제 출범- 업계 처음으로 마케팅부 신설(1985년)- 美, 펩시코社와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또한 과자의 주소비층인 저연령층의 인구 감소, 패스트푸드와 외식 산업의 확산 등도 제과업이 저성장을 촉진시킨 요인이었다. 4대 메이저 제과 회사의 무분별한 경쟁 상황도 침체 요인이었다. 제과업계의 메이저 회사인 동양, 롯데, 해태, 크라운은 당시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었고 선진국 제품의 카피와 히트제품에 대한 경쟁사의 모방 등의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이와 같은 경쟁으로 인해 신제품 개발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위기 상황에 대한 책임은 동양제과에게도 있었다. 경쟁사들의 유사제품 출시는 독점적이었던 초코파이 시장점유율을 분할하게 하였고 변신을 위해 출시한 패밀리 제품으로 인해 오히려 초코파이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여 매출이 급락하는 등 잘못된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과업계는 기능성 제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한 건강기능성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 소비자 욕구를 바탕을 한 새로운 아이템 상품의 출시, 제품 패키지와 디자인의 변화로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국내 시장의 경쟁 상황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시장을 새로운 전화점이자 주력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2. 국내시장 대응 전략 정책이전까지 침체를 걷던 동양제과의 초코파이는 89년부터 초코파이 情광고를 통해 제2의 성장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93년에 들어서면서 초코파이는 성숙기를 맞이하여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동양제과는 광고, 판촉활동 강화, 情광고 시리즈의 계속적 유지, 품질 강화 정책을 전개하는 한편, 도서벽지 초등학교의 책, 걸상 바꿔주기 캠페인 등을 통해 초코파이의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미 성숙기에 들어간 초코파이 시장은 전략의 재정립이 요구되었고, 동양제과는 두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도약을 하게 된다. 그 첫번째가 국내 시장에서의 초코파이 가격 차별화 전략이고, 두 번째가 해외시장에서의 초코파이 현지화와 세계화 전략이었다.초코파이의 가격 통해 해외사무소가 자치권을 가지게 되었고, 현지 시장에 보다 능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과하였다.이렇듯 시장 개척을 통해 보다 관리해야할 것이 많아지면서 보다 효율적인 관리 경영르 이루기 위해 하나의 전략을 중심으로 지역별로 집중화시키는 전략을 통해서 동양제과는 보다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3) 물류 • 영업망의 구축물류와 영업망을 구축하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뉠 수 있는데 1단계는 93년부터 94년까지의 약 1년 동안, 해외시장 침투’를 목적으로 하는 수출입상을 통한 간접유통판매 전략의 실천하였다. 보다 많은 수출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多바이어 전략을 채택하여 개방된 시장을 지향하였다. 94년 말부터 96년 말까지는 강력한 시장 확대전략인 Master Sole System 전략을 통해 물류와 유통의 현지화를 추구하였다. 이 같은 전략은 동양제과에게 안정된 수급망의 확보와 일관된 가격정책을 유지하게 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높였고 결론적으로 지속적 수출 확대에 큰 기여를 하였다. 마지막 3단계로는 Area Sole System으로 이는 2단계 전략을 통해 확대된 해당 국가 시장 내에서 문화적, 지리적으로 차별화된 시장을 거점으로 세분화하고 이를 통해 거점 시장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였다. 현재 동양제과는 현지법인의 설립 등을 통해 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Ⅲ 현지 생산을 통한 중국 진출1. 중국 진출의 배경1995년에 들어서면서 동양제과의 초코파이 수출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더 크고 시급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가 그때까지 러시아가 초코파이의 최대 시장이긴 했지만 중국이 최대시장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제과시장은 개혁․개방 덕분에 세계 모든 브랜드에게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는 곧 중국이 세계 모든 업체 간 브랜드 파워의 각축장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전 세계 30여 개 국에서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리며 각 업 판매가 유리한 입지적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인구 1억명의 하북성을 근거로 향후 상해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이기도 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랑방 공장을 통해 동양제과의 생산의 현지 거점화 전략이 본격적으로 실시되게 된다.4. 중국에서의 마케팅 전략(1) 제품 전략초코파이가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제품의 네이밍이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94년 중국에 진출한 오리온 초코파이의 중국 이름은 하오리요우 (好麗友․좋은 친구) 파이로 우정을 컨셉트로 하는 동시에 오리온과 비슷한 발음의 다른 이름을 생각하다 만든 상표였다. 오리온의 중국어 이름을 ‘好麗友[하오리요우]’로 변경한 것은 ‘아름다운 좋은 친구’의 의미로, 원래 ‘ORION’ 영문에는 없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어 이름은 원래영문의 의미에는 없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중국 소비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특성이 있다. 또한 ‘好麗友’는 ‘好朋友[하오펑요우]’라는 슬로건(Slogan)과 함께 사용되면서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더욱 증대됨 점이 히오리요팀의 강한 의지력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재해석 할 수도 있다. 이는 다른 경쟁사가 이미 중국에 초코파이를 상표로 등록해 놔 고육책(苦肉策)으로 만든 이름이기도 했으나, 오히려 결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다른 외국과 달리 중국시장의 제품브랜드는 중국어로 표기하며 중국어의 특성상 음과 뜻을 모두 고려하여 제품 브랜드를 사용하는 마케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이처럼 오리온 초코파이는 브랜드의 현지화를 통해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색인 적색으로 포장을 바꾼 것 역시도 효과적인 현지화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2) 가격 전략동양제과는 주 소비자 층으로 고소득층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가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의 ‘애니콜’이 중국 고소득층 1% 겨냥하여 기존에 진출해있던 노키아, 모토로라 보다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이 하고 , 경쟁 기업보다 한 수 위여야 하기 때문에 꾸준한 자구 노력으로 경쟁기업보다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최고 경영층자의 강력한 의지, 끊임없는 소비자의 욕구 파악과 철저한 조사와 같은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과 노하우, 경영 전략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은 품질은 만들자는 신념이 있었기에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Ⅵ 동양제과의 권역별 거점 전략동양제과는 랑방지역의 초코파이 현지생산거점을 시발로 한국, 중국, 인도차이나, 동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권역별 초코파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거점 간에 제품, 원료, 부재료, 자금, 기술, 인력을 상호 이동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경쟁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초코파이를 비롯한 코아 브랜드를 글로벌 제품으로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는 1단계인 권역별 해외시장에 대한 시장 테스트로부터 현지 생산판매 거점 및 거점간 네트워크 구축까지 5단계로 추진된다.이는 세계 1위 또는 강력한 2위 달성이 가능한 경쟁력 있는 제품에 대해 역량을 집중하고 초코파이 이외에도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선정하여 권역별 마켓에서 테스트를 거친 후 좋은 반응이 있을 시에는 그 시장에 투자해서 시장 선점을 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현지 사무소를 개설해서 그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 시장에 맞는 마케팅을 펼쳐서 더욱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밀착 마케팅을 사용하면서 시장 확대를 추구하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후에 현지 생산판매 거점 및 거점간 네트워크 구축을 하는 5단계가 이뤄진다. 만약에 진출한 시장에 많은 수요가 예측되면 현지 공장을 설립하여 인근 국가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거나 인력 등을 상호 이동시켜서 시너지 효과를 노리기 위함이다.이와 같은 권역별 거점화 전략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전략은 크게 4개의 거점에서 4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가 한국을 거점으로 APEC 권역에 종합 제과 및 계열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이 단계에서는 이미 한국을 비롯한 극동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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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마케팅-디즈니랜드의해외 진출목 차1.회사 소개1) 월트 디즈니사 소개2) 유로 디즈니랜드 소개2.디즈니 사의 해외 진출 결정.3.해외 진출 시장의 선정.1) 도쿄 디즈니랜드의 설립- 일본의 도쿄 디즈니랜드- 일본 시장으로의 진입2) 디즈니랜드의 유럽 진출- 유럽으로의 진출- 스페인과 프랑스의 유치 경쟁4. 유로 디즈니랜드의 진입 방식- 유로 디즈니랜드의 계약 내용5. 마케팅 믹스의 결정- 유로 디즈니랜드의 현지화 전략6. 유로 디즈니랜드의 실패- 실패와 그 원인7. 디즈니사의 홍콩 진출1) 아시아의 매력적인 시장, 홍콩2) 프랑스에서 얻은 교훈8.디즈니사의 한국 진출1) 서울 디즈니랜드의 설립 추진2) 서울 디즈니랜드의 향후 전망1. 회사 소개월트 디즈니사 소개월트 디즈니사는 만화영화 제작가인 W.디즈니가 1928년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을 설립하면서 비롯되었다. 빨간 셔츠와 노란 신발의 ‘미키마우스’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을 시초로, ‘백설 공주(1937)’, ‘피노키오(1940)’, ‘신데렐라(1950)’, ‘메리 포핀스(1964)’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2) 유로 디즈니랜드 소개1985년 12월 : 유로 디즈니랜드의 대상지 프랑스 파리근교가 결정,유로디즈니랜드 S.C.A사 설립1987년 3월 : 유로디즈니 리조트 사업을 프랑스정부와 합의1989년 10월 : 유로디즈니 리조트의 공사시작1992년 4월 : 유로디즈니 리조트의 오픈2단계 사업은 2017년까지 계속 확장 계획으로 디즈니 -MGM스튜디오, 컨벤션 센터,워터 파크, 제2의 주제공원, 과학공원, 골프장 등 건설예정2. 디즈니 사의 해외 진출 결정.일반적으로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경영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고, 성공을 거두게 되면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을 고려하게 된다. 해외 진출을 하게 되는 동기는 다양한데, 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여, 수익 증대를 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 여부를 결정한다.디즈니 사의 경우, 이미 자국오히려 더 좋은 조건을 디즈니랜드에 제시하였다. 거의 3억 5000만 불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파리의 철도를 공원까지 연장함으로써 공원과 다른 유럽 지역을 연결하고, 4800에이커의 땅을 1에이커당 7,500달러의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며 공원 건설에 소요되는 자금의 22%를 대여해 주겠다라는 것이었다.디즈니사로서는 프랑스에 유로 디즈니랜드를 설립하는 것이 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스페인에 디즈니랜드를 설립하였을 시 장점으로는 건설비용의 부담이 적었고, 예상 관광객의 수도 많았으며, 스페인의 기후가 겨울의 서비스에 더 적합한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장점은 스페인의 장점보다는 훨씬 많았고, 디즈니사에게 유리하였다.프랑스의 장점으로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사가 유로 디즈니랜드를 프랑스에 세울 부지는 1억 5천만명의 인구를 접할 수 있는 위치, 미국의 인구를 초과하는 유럽인구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1700만 명의 사람들은 차로 2시간이내의 거리에 살고 있고, 1억 9백만 명의 사람들이 차로 6시간이내의 거리에 살고 있으며 3억 1천만명의 사람들은 비행기로 2시간이 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다. 1994년에, 계획된 유로 터널개시는 차로 4시간에 영국으로부터 유로 디즈니랜드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파리와 같은 유럽의 중심에 디즈니랜드를 건설할 경우 유럽 각지에서의 관광객을 기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파리의 경우 연간 관광객 수가 2600만 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도시라는 점도 디즈니사로서는 매력적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파리 시민들이 가지는 유로 디즈니랜드에 대한 생각들도 호의적이었다. 프랑스인들이 디즈니 제품에 대한 유럽 제 1의 고객이었기에 디즈니랜드를 친숙하게 생각하였고, 1988년 프랑스에서 수행한 여론 조사는 인구의 85%가 유로 디즈니랜드를 환영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비록 파리의 추운 날씨 때문에 타 지역 디즈니랜드보다 더 많은 실내공연, 전략적으로 전략적으로 설치된 벽난로, 찻잔 통의 직원 선발에 다양한 시도를 하였을 뿐 아니라, 프랑스인들의 개인주의 성향을 반영하여, 지원자들의 용모 규정을 일부 완화해 프랑스 지원자들이 채용을 수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이렇듯, 인위적인 적응화 노력 외에도 어떤 것은 유럽의 문화적 차이나 관습으로 인해 미국의 공원보다 더 편리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해 주었다. 한 예로 레스토랑 이용 시간의 차이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방문객들의 레스토랑 이용시간을 다르게 하기 위해 다른 시간대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해야 하였지만, 유로 디즈니랜드의 경우, 유럽인들의 국가별 식사시간에 차이가 있었기에 이와 같은 이벤트를 실시하지 않아도 되었다.6. 유로 디즈니랜드의 실패실패와 그 원인유로 디즈니랜드는 개장에 맞춘 대대적인 마케팅 캠페인에 2억 2000만불은 쏟아 붓는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불행히도 첫해의 입장객 수는 예측치의 20%정도 미달하였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는 프랑스인들의 저조한 방문 때문이었다. 총 입장객 중 프랑스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당초 예상치인 50%정도에 훨씬 못 미치는 29%에 불과했다. 이처럼 실망스러운 결과는 방문객이 음식과 기념품에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비용도 기대 이하 여서 더욱 악화되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유로 디즈니랜드는 계획에 잡혀있었던 엠지엠 스튜디오(MGM Studio)관광공원을 포함한 공원 주변의 부동산 개발을 연기해야 했다. 개장 후 5개월 안에 유로 디즈니랜드의 주식가격은 164프랑에서 68 프랑으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유로 디즈니랜드의 손실은 첫 회계연도 동안 9억불 이상에 달했다. 이에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950명을 해고하는 반응을 보였다.그렇다면 무엇이 유로 디즈니랜드를 이렇게 실패로 몰았을까. 그 문제점들을 크게 살펴보면, 디즈니사가 유럽 시장과 고객들에 대한 철저한 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점과 프랑스와 미국간의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환전으로 인한 경제적인 요소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만의 레저 습관먼저, 디즈니사가 유럽인들비스 관리가 문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예컨대 프랑스인들은 자유분방하여 개성 있는 자기 표현을 중시한다. 미국인 직원들은 웃으라면 웃는데, 프랑스 직원들을 "내가 웃고 싶으면 웃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미국에서도 엄격하기로 유명한 디즈니 랜드의 직원 용모 지침은 1938년 디즈니랜드 창설 때 결정되어 오늘까지 계속되어 왔다. 여직원은 색깔있는 매니큐어를 칠할 수 없으며, 화장은 엷게, 스타킹은 살색만 허용되었다. 남자직원은 수염을 절대 기를 수 없고, 머리는 귀와 목을 깨끗하게 드러내야 하다. 손님이 시설에 입장하면 6초 이내에 깍듯이 인사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든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한다. "언제나 손님이 옳다"는 것이 디즈니랜드의 질서이다.그러나 디즈니랜드가 요구한 근무태도는 프랑스식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디즈니가 이러한 문제들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규정을 좀 더 완화하여 유럽과 미국의 가치 기준이 다른 만큼, 무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화를 추구하였다. 한 예로 여직원들은 빨강 매니큐어를 칠할 수 있고, 빨강 입술 연지와 색깔 있는 스타킹도 ‘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한’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지켜야 하는 지침은 여전히 프랑스식 사고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유로 디즈니랜드에 근무하다 그만 둔 한 프랑스인 직원은 유로 디즈니랜드 사원의 60%를 차지한 프랑스인들이 이 같은 용모 규정, 근무 태도를 지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고 언급하였던 점에서 안일한 변화로는 현지화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유로 디즈니랜드의 시장 진출 실패’라는 판정은 너무나 명확한 것이었다. 디즈니사는 막대한 돈을 투자한 유로 디즈니랜드를 끝까지 살려보려고 노력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더 늦기 전에 철수하는 것까지고 고려하기도 하였다. 현재 유로 디즈니랜드는 이와 같은 적자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무환경을 개선하고, 디즈니파크를 개장하는 등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유로 디즈니랜드의 사례는 제품의 해외 시 현재 디즈니랜드 동쪽에 있는 부지 54헥타르(약 16만 평)를 구매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하지만 디즈니 관계자들은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으며 단지 중국에는 2개의 디즈니랜드를 설립할 수도 있지만, 2010년까지는 2차 건설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8. 디즈니랜드의 한국 진출.1) 서울 디즈니랜드의 설립 추진디즈니사는 이미 상하이 디즈니랜드와 북경 디즈니랜드를 계획중이다. 80만~100만평 이상을 확보한 뒤, 일부에 놀이시설을 건립하고 나머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을 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최근에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홍콩, 상하이 다음의 4번째 디즈니랜드를 한국에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것이 각종 언론을 통해 알려 졌고, 구체적인 장소까지 언급되고 있다.서울시에 따르면 디즈니사는 2004년 11월부터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으로부터 테마파크 후보지를 추천받아 인천 영종, 용유, 청라, 서울대공원 등 4곳을 놓고 시장성과 타당성 등을 검토해 오다 최근 서울대공원을 유력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아마도 서울 대공원을 후보지로 선정한 것은 서울대공원이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에 위치해 서울을 비롯한 주변 지역과의 교통로가 잘 정비돼 있어 2000만명에 달하는 수도권 주민을 흡수하는 데 유리하고 북쪽으로는 남태령을 넘어 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 등 서울 중심 부로, 동쪽으로는 서울 동부 지역과 성남시로, 서쪽으로는 안양시로 통하는 등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울대공원은 식물원 121만㎡를 포함해 총면적이 667만㎡(약 200만평)에 달하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이중 디즈니랜드는 약 282만㎡ 규모인 동물원 용지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 된다.디즈니랜드의 서울 건립에는 서울시 역시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적극 추진 중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 전 공약사항으로 "서울을 상징할 수 있는 국제 수준의 대단위 레저시설이 미흡해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 하겠다"고 약속하는가 하면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