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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람들의 이념 논쟁에서 탈피한, ‘아래’ 사람들의 전쟁이야기
    ‘위’ 사람들의 이념 논쟁에서 탈피한,‘아래’ 사람들의 전쟁이야기- 1950 한국전쟁의 “태극기 휘날리며”- 1946 베트남전쟁의 “지옥의 묵시록”Ⅰ. 서론Ⅱ. 본론1.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ⅰ)한국전쟁① 왜 한국전쟁인가?② 한국전쟁의 역사적 배경ⅱ)베트남전쟁① 왜 베트남전쟁인가?②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배경ⅲ) 두 전쟁의 공통점ⅳ) 두 전쟁의차이점2.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ⅰ)태극기 휘날리며ⅱ)지옥의 묵시록Ⅲ. 결론Ⅰ. 서론‘의 윌라드 대위는 미군의 전쟁 영웅 커츠대령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의 진태는 잘 알고 지내던 용석을 죽여야 한다. 단지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두 영화는 냉전시대의 주요 전쟁을 다루었지만, 절대 ‘이념’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무엇에 중점을 두어 표현하고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이데올로기’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나 가족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영화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사실들을 밝혀냈고 이해하고 있지만,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작지만 엄청난 일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영화는 그 작은 일부분에 집중한다. 특히, 전쟁터 한복판에서 거대하고 거친 상황과 싸워야했던 한 개인에게 일어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왜 주인공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까.는 큰 틀을 뒤로 한 채, 한국전쟁 속의 작은 ‘우리’를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가 이데올로기와 전쟁 영웅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는 한국 전쟁을 바라보는데 있어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시선이다. 전쟁이라는 담론을 ‘위’ 사람들의 이념 논쟁에서 탈피하여, ‘아래’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한 것이다.대부분의 헐리웃 영화처럼 많은 단점을 가지지만, 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은 베트남전쟁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와 제국주의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인다. , 이를 통해 현재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구조를 극복하려는 데서 찾아진다. 다시 말하면, 분단의 조건, 논리 과정, 원인, 결과, 영향을 총체적으로 해명하고, 그것의 극복을 위해 통일의 조건과 논리를 창출하는 대안 모색의 지적 작업이 한국전쟁연구의 기본적 의의라고 할 수 있다.② 한국전쟁의 역사적 배경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체제 구축과정에서 일어났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간의 복잡한 동맹구도 구축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1945년 광복직후의 국내적 상황은 국제적 구도에 따라 귀결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국제적 요인이 한국전쟁의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냉전의 양대 축인 미-소 관계라는 국제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한국전쟁 발발의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던 스탈린은 ‘지원과 은폐의 이중주’를 구사했다. 스탈린이 미국과의 3차 대전을 많이 의식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처음 한국전쟁을 시작하려 했을 때 소련은 지원하면서도 다소 방관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이 개입한 이후로 소련은 자신의 지원을 숨기기 위한 은폐를 더욱 강화하고, 북한과 중국을 통제하려고 했다. 따라서 스탈린의 태도는 ‘지원과 방관’의 경향성에서 미국의 개입 이후 ‘통제와 은폐’의 경향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스탈린이 미국을 대단히 의식한 것이다.미국 또한 한국전쟁 당시 이 전쟁의 배후에 소련이 있다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은폐했다. 케난은 한국전쟁의 발발에 대해 소련에 공개 책임을 물을 경우 소련과의 세계대전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므로, 소련의 개입사실을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애치슨에게 권고했고, 이것은 그대로 이행되었다. 이렇게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의식했으므로, 미-소관계가 전쟁이 가장 중요한 국제적 변수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다.이제는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자. 그 중에서 한국 전쟁에 관한 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소련이었다. 소련은 처음부터 북한에 물. 결과적으로 일본의 강화는 공산권의 결속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도미노가 발생해 자국의 핵심적 이익이 걸려있는 일본이 공산화될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가지고 한국전쟁에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따라서 일본은 김일성의 전쟁발발과 미국의 즉각적 개입에 있어 배경적 요인이었다.따라서 각자의 역할을 평가해 보면, 남침을 단행한 북한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소련은 물적적-정신적 후원자이자 조언자였다. 중국은 핵심적 행위자 (미.소.남.북)는 아니었지만 북한을 도와 일정한 역할을 하고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다. 이상 공산권이 전쟁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나머지 서방권 국가들은 부차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은 소련 다음으로 중요한 국제적 역할을 했고, 남한은 피해자이면서 미국 다음으로 일정한 역할을 했다. 강화된 일본의 존재는 전쟁발발과 미국개입에 있어 하나의 배경이었다. 이러게 보면, 전체적으로 공산권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서방진영이 수동적으로 대응했다고 할 수 있다.ⅱ)베트남전쟁① 왜 베트남전쟁인가?베트남 전쟁은 과 함께, 현대사에서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두 전쟁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근대에 들어서 동양에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서만도 전체 지구를 덮은 전쟁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런데도 유독 이 두 전쟁을 가리켜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라고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베트남전쟁은 그 성격과 배경이 복잡하다. 그 전쟁의 한쪽 당사자가 공산주의 세력이고 다른 한쪽이 반공산주의 세력이라는 사실만으로 베트남전쟁을 로 획일화했던 단편적 도식화는 진실에서 너무나 먼 것이다. 바로 그 반공산주의의 주도자로 그 전쟁에 뛰어든 미국이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은 베트남 전쟁의 복잡한 성격과 배경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도식화했던 결과이다.베트남전쟁은 단순한 의 대결이 아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독립투쟁과 식민주의, 혁명과 반혁명, 통일과 분열, 독립과 의존, 백인과 황인, 아시아와 서양, 현대식폭격기 총선거를 통해, 베트남의 미래를 향후에 결정하도록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은 총선거에서 호치민의 승리가 확실할 것을 예상했고, 사태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베트남의 공산화는 인도차이나반도에 도미노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프랑스를 대신해서 남베트남의 실권을 장악하고, 친미주의자 ‘응오 딘 지엠’을 통해 총선 실시의 거부를 선언케 했다. 이 시점부터 제 2차 베트남전쟁이 시작된다. 1956년부터 1975년까지 20년간의 전쟁이다.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내전에의 참전구실을 만들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ⅲ) 두 전쟁의 공통점간단하게 두 전쟁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첫 째, 민주주의세력과 공산주의세력 간의 전쟁이다(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전쟁이다).둘 째, 공산주의가 그 세력을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전쟁이다.셋 째, 두 전쟁 모두에 미국이 참전 했고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유일한 전쟁이다.(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패배 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한국 전쟁의 경우는 승자와패자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미국과 자유주의 세계의 패배로 보는관점이 강하다)넷 째,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련 역시 두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다섯 째, 주요 당사국들은 같은 민족 같은 국가였으나 외세의 힘에 의해 분단되었고 내전인 동시에 국제전적 대리전 양상을 가진다.여섯 째,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간이 핵이라는 위험 부담을 가지고, 직접적인전쟁을 회피하려는 상황에서 두 국가 사이의 ‘힘의 균형’과 ‘충돌’이 외부적으로 돌출된ⅳ) 두 전쟁의차이점첫 째,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공산주의 확산 저지에 성공했으나(일본, 대만),베트남 전쟁 이후에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공산주의가 급속도로 확산 되었다.둘 째, 한국 전쟁은 단순히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 구도였지만베트남 전쟁은 이 이외에 독립 전쟁과 맥락을 같이하는 반외세 전쟁의 성격이 짙었다.셋 째, 북베트남의 또한, 진석을 죽었다고 생각한 진태가 남한에게 복수하기 위해 북한의 정예부대인 깃발부대의 선봉이 되고, 그런 형을 구하기 위해 진석이 서슴없이 북한군에 투항하는가 하면, 마지막 전투에서 진석을 살리기 위해 다시 깃발부대로 총구를 겨누는 진태의 모습은 이들의 형제애에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감독은 분단의 옳고 그름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에게 가하는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악’은 북한군도 남한군도 아닌, 인간성을 황폐화하는 전쟁 그 자체일 뿐이다. 즉, 이들에게 한국전쟁을 둘러싼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좌익의 것이든 우익의 것이든 부정되고, 전쟁의 상흔이 보통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가를 가족애에 기대어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다음은 에서 전쟁의 참혹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① 전투를 거듭할수록 진태는 스스로가 전쟁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인민군에 대한 적개심과 잔인한 폭력성이 점차 증폭되어 살인 병기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영화 후반부의 포로에 대한 비인간적 태도 등에서 잘 드러난다. 포로를 싸움 붙이는 장면에서“어떤 새끼가 국방군 할래?”라는 진태의 대사는 국방군은 착한 놈, 북한군은 나쁜 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킨 전쟁의 비합리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포로들을 짐승처럼 부리며 싸움을 붙이는 진태의 모습에서 극도로 인간성이 상실된 전장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전쟁의 비극성을 심화시킨다.② 진태가 무공 훈장을 받았을 때에도 정작 진석은 기뻐하지 않는다. 진태를 보며 울부짖는 진석의 대사는 "그 훈장, 대체 누굴 위한거야!"였다. 물론, 동생 진석을 위한 훈장이었지만 진태는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이는 진태 자신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워왔고, 전장에 나서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나아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사이다. ‘위’로부터의 전쟁에 왜 싸워야 .
    사회과학| 2010.12.20| 11페이지| 1,500원| 조회(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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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동 감상문
    영화 우동은 자그마한 우동가게의 아들인 주인공 마츠이 코스케(유스케 산타마리아)가 세계적인 개그맨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뉴욕에 갔다가 억대의 빚 만지고 그의 고향인 우동의 본고장 사누키에 돌아와 생각지도 않게 우동 열풍을 일으키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이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는 우동이라는 음식과 한 지역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우동을 정말 먹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이 영화가 지역홍보영화 혹은 다큐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지울 수 없는 느낌은 ‘사누키 우동’에 대한 욕심이었다.영화를 보고 찾아 본 자료에 따르면, ‘우동’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가장 일본다운 음식이다. 그리고 영화 속 배경이 된 사누키 마을의 경우는 우동이라는 음식을 통해 식도락관광을 크게 활성화시킨 경우로 식도락관광산업에 있어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사누키는 인구 100만 명이 채 안되는 도시이지만, 이 마을에는 각각 다른 우동을 판매하는 우동가게가 900개가 넘는다(동경소재 맥도널드의 수가 500개가 채 안되는 점과 비교하면 이는 상당한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가게는 젓가락과 그릇을 가지고 가야만 먹을 수 있고, 어떤 가게는 우동에 넣을 파를 직접 뽑아 넣는 가게도 있으며, 영업시간이 단 한 시간뿐인 가게도 있다. 이러한 각각의 우동가게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과 더불어 일생동안 혹은 대를 이어 우동 만드는 일을 해온 장인정신이 어우러져서 그 어떤 다른 음식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우동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특별함은 자연스럽게 식도락관광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이는 우동과 사누키 마을만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각지에 유명한 음식들이 많이 있다. 물론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도 맛 볼 수 있지만, 현지에서 특화된 음식들은 그 맛부터 다르다. 대표적인 예가 춘천 닭갈비, 부산 고갈비와 같은 것들이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속초의 ‘실로암막국수’의 경우와 같이 단지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 해당 고장을 방문하고 관광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금에 만족하고 안주할 것인가와 다른 방편을 도모해 식도락 관광을 활성화시킬 것인가의 고민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 이미 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미 충분히 늦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비빔밥, 불고기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홍보되는 한국 음식 속에 우리가 그토록 자신 있어 하는 가지각색의 대한민국 식도락문화의 가치가 가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10.12.20| 1페이지| 1,000원| 조회(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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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84’ 무엇이 그들을 존재하게 하고, 사라지게 했는가
    영화속의 국제관계‘684’ 무엇이 그들을 존재하게 하고, 사라지게 했는가- 에의 앨리슨 모델 적용을 통한 대북정책 의사결정 과정의 분석목 차Ⅰ. 서 론Ⅱ. 영화의 역사적 배경Ⅲ. 이론적 분석 틀- 앨리슨(G. Allison) 모델 -Ⅳ. 실미도 ‘684 부대’의 창설은 박정희의 합리적 선택- 제 1모델 : 합리적 행위자 모델 (Rational Actor Model)Ⅴ. 실미도 ‘684 부대’의 운영은 조직행태의 결과- 제 2모델 : 조직 행태 모델 (Organizationl Process Model)Ⅵ. 실미도 ‘684 부대’의 제거는 정치적 게임의 결과- 제 3모델 : 정부 정치 모델 (Governmental Politics Model)Ⅶ. 결 론- -Ⅰ. 서 론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60여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북관계는 결코 마음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1950~60년대는 적대적 대립시기로 위기감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써 그 정점에는 68년 북한 124부대 31명의 게릴라에 의한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다. 반면에 71년에는 남북 당국간 최초의 대화인 적십자 회담이 열리는 등 위기감보다는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이 시대는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격렬하게 요동치는 남북관계의 변화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어쩌면 한국전쟁 이 후의 가장 긴박한 3년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영화 는 이 3년간의 남북관계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한 31명의 ‘684 부대’원들의 모습을 그린다. 는 ‘684 부대’의 부대원들이 일으킨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남북의 직접적인 대립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남북관계의 변화양상을 충분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684부대’와 그들이 일으킨 ‘실미도사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몇 가지 핵심적인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 배경에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가 있음은 분명하다.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은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을 분석함에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철희에 의해 만들어졌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부대가 창설된 지 3년 4개월 동안 체포되면 죽는다는 교육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받았고, 북한 침투훈련을 위해 북한 지형 모형을 만들어 훈련하기도 했다. 그들은 혹독한 지옥훈련 3개월 만에 북한 주석궁을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었다.하지만, 예정되었던 68년 8월에 북한침투 명령이 떨어졌다가 전격 취소되고 당초에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나면서 상부로부터 보급과 지원이 줄어들었고 실미도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3년이나 견디어 내면서 작전 명령을 기다렸지만 그들에겐 단 한 번도 북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이는 당시 실미도 밖의 상황이 남북 화해분위기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장은 ‘684 부대’를 만든 김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고 실미도 처리문제는 계속 미루어졌다. 국제 데탕트의 영향을 받아 남북한 역시 대화노선으로 나아갔고, 양국은 마침내 평화통일안을 천명하고 남북회담으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북한 침투를 목적으로 창설한 ‘실미도 684 부대’의 존재가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 없이 버려진 684부대. 그리고 1971년 8월23일. 실미도 ‘684 부대’는 창설 3년 8개월 만에 하극상, 청와대행, 자폭과 함께 훈련원 31명이 모두 사망하게 된다.Ⅲ. 이론적 분석 틀 - 앨리슨(G. Allison) 모델 -앨리슨 모델은 제 1모델로 합리적 행위자 모델, 제 2모델로 조직과정모델, 제 3모델로 정부정치모델로 나뉜다.) 흔히 앨리슨(G. Allison) 모델이라고 하면 제 3모델인 정부정치모델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초기의 엘리슨 모델이었던 제 1모델 합리적 행위자 모델, 제 2모델 조직과정모델, 제 3모델 정부정치모델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다.제 1모델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국가의 행위를 개인의 행위와 같이 의인화한다. 인간이 최의 유기체”다. 예를 들자면 군대는 조직이지만 폭도는 조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조직은 능력을 창출한다. 사람들이 선택한 목적을 달성하고 그에 필요한 과제를 수행한다. 그와 같은 목적과 과제는 조직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셋째, 조직은 그 조직이 만든 프로그램과 절차로 인해 행동의 제약이 따른다. 새로운 일도 익숙한 방법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넷째, 조직에는 공식, 비공식적 규범과 그에 따른 조직문화가 생겨 구성원의 행위를 제약한다. 즉 자신만의 정체성과 행위패턴을 가진 별도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섯째, 조직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한 꾸러미의 집단 능력으로 보여 진다. 따라서 조직과정 모델에서 정책은 관료들이 표준행동절차(standard operating procedures; SOP)와 같은 프로그램 속에서 업무가 행해짐으로서 발생되는 업무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제 3모델 정부정치모델은 제 1모델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느 한 행위자의 합리적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제 2모델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직의 일상절차가 작동한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정책결정이라는 게임의 장에서 모인 여러 사람들의 흥정과 협상의 산물이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정책은 정치의 산물이며 한명의 지도자의 생각이 정책에 직결된다고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이것은 지도자의 권한이 분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데 노이스타트(Richard E. Neustadt)의 명저 ?대통령의 권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권력은 여러 기관이 공유한다. 정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독자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공유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어떤 사안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지시에 전적으로 복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권력은 설득하는 권력이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권력은 최고이다. 그러나 그 권한을 독단적으로 하기 보다는 각 부처의 관료들을 조율하고 협상하는 설득자의 입장에 더욱 가깝다. 셋째 흥정은 과정에 따라 진행된다. 정부 관료의 흥설명하는데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결국 ‘684부대’ 창설은 박정희 대통령이 개인적인,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 내린 하나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제 능력이 필요했고 자신의 안전과 자존심을 위해서도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국이 철저히 배제되고 미국에 숨겨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한적이지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바로 비정규군인 ‘684부대’의 창설이었던 것이다.그렇다면 ‘684부대’ 창설을 통한 북파와 북파하지 않는 선택에 따른 효과는 무엇일까. 우선 김일성 제거를 목적으로 비인간적인 교육을 통한 비밀특수부대의 창설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에 야만적인 정부라는 악명을 얻을 수 도 있다[‘오’의 말]는 위험이 있었다. 이에 따른, 신뢰 악화에 따른 대외 지원의 축소는 당시 상황에 있어 대단한 안보적 위험일 수밖에 없었다.이런 군사안보적인 문제와 함께 남한은 이 기회를 이용해 대외적인 정보 유출 없이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과 동시에 북파작전이 성공할 경우에는 북한에 큰 혼란을 제공할 수 도 있었다. 즉, 북파 성공시에 얻을 수 있는 이득들은 당시 정부의 제1목표였던 통일과제의 수행이라는 매우 이상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 박정희 정권의 ‘684부대’ 창설은 창설하지 않는 선택보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684부대’는 북한의 124부대를 뛰어넘는 인간병기로 거듭났고, 만약 북파 되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이런 결과들을 봤을 때 박정희 정부의 ‘684부대’ 창설은 합리적 행위자 모델로 적절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하지만, 이 모델만으로 전체를 분석하려고 할 경우, 우리가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 방식에 따를 경우, 결정 행위를 설명하는 가장 만족스러운 방법은 결정 행위를 개인들의 합목적적 행동에 유추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는데, 이는 거대조직인 정사형수나 무기수들이 한 순간에 자신이 군인이 되었음을(비록 숨겨진 진실은 달랐지만) 인지하고, 주어진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표준행동절차를 부여받게 된다.그리고 그들이 부여받은 표준행동절차는 다른 군인들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초라한 식사를 하는 기간병들과 달리, 각종 영양가 풍부한 음식이 제공되는 훈련병들의 대비되는 모습과 스무 번도 넘게 평양을 드나들면서 한 번도 주석궁 폭파나 김일성을 죽이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재현의 말, 넌 언제나 생각을 하지. 우리에게 훈련 같은 건 없다. 이게 옳은가 저건 틀리지 않았나. 네가 어디에 있는지 있지 마라. 여긴 실미도야 [조중사가 박중사에게 하는 말] 와 같은 표현은 그들이 가지게 된 표준행동절차가 특별한 것임을 알게 한다. 대북 비밀 특수부대 ‘684부대’는 이 표준행동절차에 따라 철저히 운영된다.또한, 우리는 조직행태모델의 모습을 ‘684부대’를 지키려는 ‘재현’과 중앙정보부의 ‘오’ 와의 의견대립에서 찾을 수 있다. 평화 통일안이 천명되는 시점에서 ‘684부대’의 해체라는 정책 목표가 설정되고, 이에 대립하는 양측에서는 자신들의 표준행동절차(SOP)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판단하여 자신들의 표준행동절차에 부합하는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 이때, 중앙정보부(‘오’)는 대북정책의 변화에 따른 과거정책의 비밀유지라는 표준상황에 맞는 표준행동절차에 부합하는 대안을 내어놓는다. 바로 ‘684부대’ 전원의 제거이다. 하지만, 재현은 ‘684부대’의 교육대장이자 지난 3년여를 함께 한 대장으로서 제거가 최선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최선을 다해 부대를 생존하게 하는 것이 표준행동절차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는 ‘684부대’를 버리지 않기 위해 공군의 정규군으로 포함시키거나 베트남에 파병하는 등의 대안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여기서 대립이 발생한다. 이러한 결과는 상이한 조직의 문화와 목표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둘 다 강압적이고 타 부서에 비하여 폐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며, 군사력을 통한 안보라.
    사회과학| 2010.12.20| 9페이지| 1,5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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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