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조제1장 세 가지 고전적 창조 이야기들그리스도교 세계관을 형성한 바빌로니아 창조론, 헤브루 창조론, 그리고 그리스의 창조론을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교 관점 안에서 이 세 가지 창조론을 어떻게 융합하였는지 드러내고 있다.창조자 마루둑이 최초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의 몸에서 하늘과 인간을 만드는 바빌로니아 창조론은 모권사회에서 군사적이며 구조적인 부권사회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반면, 헤브루 창조이야기는 태초의 갈등이 없어지고 물질들은 창조자의 명령에 유순하게 반응한다. 흙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름 역시 땅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아담은 인간과 지구사이의 깊은 혈족관계를 드러내며 인간의 청지기적 소명을 보여준다. 그리스 창조론인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고 영적이며 본래적인 세상과 만들어진 눈에 보이는 세상의 근원적 이원론을 전제한다. 영적인 세상에 있는 창조주 데미우르고스는 지구중심적이며 계층적인 우주(육적인 세상)를 만든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플라톤의 계층구조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인간의 동물에 대한, 지배자의 노동자에 대한 계급구조를 정당화하였다.서구 그리스도교는 바빌로니아 창조론의 영향을 받은 헤브루 창조론을 그리스 과학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면서 헤브루 창조론과는 또 다른 개념을 포함하게 되는데, 한 예가 무로부터의 창조이다. 헤브루 창조론과 그리스 창조론은 혼돈으로부터의 창조를 이야기하지만, 그리스도교 철학적 신학은 혼돈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 하느님의 선재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최초의 물질을 창조하신 분으로 하느님을 상정하고 하느님의 역사적인 개입은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설명하였다. 또한 플라톤에게 물려받은 계층구조적인 세계상은 17세기 과학과의 갈등을 빚었다. 플라톤은 영혼은 육신이 되기 이전에 본래적으로 우주의 상층부에 존재한다고 믿었는데, 이는 영혼을 몸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로 보던 헤브루 사고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대 근동사회의 묵시적 이야기는 고대사회의 홍수나 가뭄 등의 자연재해와 자연의 재생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헤브루 세계는 이러한 고대 근동의 원형을 이어받았으나, 자연 재해와 역사적 고난을 초월하는 유일한 하느님에 대한 징벌로 이해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징벌은 어디까지나 회개를 위한 경고로써, 최후에는 하느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유대인의 묵시론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또한 기존 헤브루 종교는 죽음을 자연적인 것으로, 축복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나,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죽음을 극복해야할 것으로, 부활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그리스도교는 이러한 묵시적 전통을 이어받아 초기에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최후의 심판으로 인식했고, 중세 이후 종교개혁 때 프로테스탄트가 로마가톨릭교회와의 전쟁을 최후의 심판으로 인식했다. 이후에도 영국과 미국에서 꾸준히 사회적 혼란을 최후의 심판으로 인식하는 견해들이 있었으며, 미국 개신교의 특정 종파는 특정년도를 지정하여 휴거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1950년에서 80년대 냉전과 핵전쟁의 위협, 이스라엘의 팔래스타인 점령은 새로운 묵시적 근거를 제공하였는데, 오늘날 묵시론의 신봉자들은 중동지역의 핵전쟁을 최후의 심판과 동일시하고 있다.저자는 이러한 세계파괴의 종교적 이야기 안에 있는 예언자적 메시지, 지배 계급에 저항하는 억압당하는 민중의 염원 등을 읽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지는 예언자적 힘이 자신과 다른 것을 악이요, 죄로 치부하고 파괴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는 이원론적 사고로 인해 순수성을 잃었으며, 현대의 군국주의와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일조하였다고 주장한다.제4장 세계 파괴의 새로운 이야기들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세계 파괴의 이야기에 직면하고 있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 제3세계는 만성적 가난에 시달리며, 가난이 야기하는 문맹, 영양실조, 식수부족, 의료 서비스 부족, 실업,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등의 문제를 안고구원의 삶을 최초의 창조된 삶보다 더 초월적이고 월등한 것으로 간주한 점이다.그러나 이러한 바오로의 이원론적이며 영지주의적인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였는데, 200년까지 가장 지배적인 그리스도교의 죄와 악에 대한 견해는 창조의 본질적인 선과 구원을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악은 창조 때 주어진 하느님의 본성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생기며, 구원은 율법과 예언자 안에서 시작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며 교회를 통하여 완성되는 과정인데, 창조물이 화해되어 태초에 세계를 창조했던 로고스와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 이것이 반영지주의적인 교부 마터와 이레네우스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이다. 한편 오리게네스는 영지주의적 방법으로 죄와 죽음의 관계를 설명하였는데, 최초의 창조를 로고스에 속해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지적인 영들의 영적 공동체로 보고, 이 영들이 존재의 근원에서 벗어나 외부의 암흑세계에 떨어져 눈에 보이는 우주를 조직하였다. 구원은 이렇게 타락하여 물질화된 영혼들이 다시 하느님의 의지에 재결합하는 교육의 과정인데, 결국 마지막에는 모든 물질, 심지어 악마까지도 하늘의 영적 공동체 안에서 최초의 일치상태로 돌아간다고 보았다.4세기 말, 5세기 초에 살았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바오로의 관점을 다시 재구성하는데, 신플라톤주의의 일원론에 힘입어 이원론을 거부한다.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며, 인간의 영과 몸은 본질적으로 선하게 창조된 존재로 자유의지를 부여받는다. 이 의지가 선과 악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데, 악은 반대적 힘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선의 결핍으로 정의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번 악을 선택한 인간은 다시 선을 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상실하며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서만 다시금 하느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하게 창조된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인간은 죄의 상태로 떨어졌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는 구원받을 것이다. 구원받은 자아는 단지 최초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것이다. 샌데이는 자신이 연구한 사회 중에 32%를 성평등의 사회로 보고 28%를 가부장적 사회로 보았으며, 40%를 중간집단으로 보았으며, 성적으로 동등한 사회의 특징으로 남녀 상호간 권력에 대한 정교하고 조직적인 인정과 성 역할의 유동성을 꼽았다. 특히 샌데이는 중간집단에서 가부장적인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모친 중심의 사회에서 자라는 남성들의 정체성 혼란이 여성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현된다고 하였다.저자는 결론적으로 남성 분노의 요소들이 모친중심의 사회패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따라서 오늘날 성동등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 남자가 위대한 어머니의 아들로만 남아있고 책임있는 성인이 되지 못하는 성인 남성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며, 남성과 여성의 상호양육의 새로운 패턴을 통해 남녀 간 책임의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제7장 지배체제의 구성고대 지중해의 수메르 도시들은 기원전 4천년에서 3천년경에 세워지면서 부계가족제도, 노예제도, 귀족 성직제도, 전사귀족제도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이러한 도시국가와 제국들은 3천년 역사를 통해 여성의 신분이 꾸준히 쇠퇴하고 있다. 신화의 영역에서 여신의 개념은 남아있지만, 이 여신들 역시 남성신들에게 종속된다.고대 이스라엘의 여성 신분 역시 소농 유목민의 강한 가부장적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헤브루 사고 안에는 남성들 사이의 평등에 대한 이상이 있지만, 여성은 사회적으로 엄격히 무시되어 율법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정한 대상이 된다. 여성을 남성의 갈빗대에서 만드는 헤브루의 창조신화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희생제물로 바칠 때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가 부정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헤브루 사회에서 성계층 구조는 신과 인간의 영역 그리고 거룩한 영역과 부정한 영역을 구별하는 데 사용되고, 여성은 피조물과 부정한 것을 대표한다.고전 아테네는 오래된 여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지배체제가 확립되기는 다른 지중해 국가나 이스라엘과문명이야기 안에는 분명 죄의 요소들이 있고, 이러한 악의 근원은 지배의 패턴 속에 있으며, 이 지배는 자신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허위의 문화를 계속해서 재생산한다. 이러한 악의 재생산 고리를 끊고 생태학적인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요소가 그리스도교 문화 안에 있는가?4. 치유제8장 세계치유 : 계약 전통계약전통_헤브루적 근원들 : 생태학적 관심에서 시작된 성서에 대한 연구는 역사와 자연에 대한 이원론이 성서적 관점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헤브루적 이해는 하느님을 하늘과 땅의 주로 이해하며, 하느님의 힘의 삶의 모든 양상에 가득차 있는 것으로 본다. 물론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헤브루의 견해는 남성 중심적이며 인간 중심적이고 민족중심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더욱 포괄적인 관점, 다른 백성과도 관계를 맺고(요나서) 여성과 직접 관계하며(하갈), 자연과 직접 통교하는 하느님(시편)을 배재하는 것은 아니다. 성서에 대한 생태학적 비판 중 많은 부분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연에 대한 지배 개념에 집중되어 있으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위는 언제나 위임이며,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연에 대한 청지기직을 요구한다. 또한 헤브루의 희년 정신은 생태학적 정의의 한 모델이다. 희년 정신은 구원에 대한 묵시적 모델과는 달리 악에 대한 일회적이며 완전한 파괴를 약속하지 않는다. 희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메시아적인 미래안에서 표현되는데, 창조의 계약이 완전히 성취되어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회복되며 자연의 반목이 치유되는 미래를 상정한다.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계약 :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계약전통은 많이 퇴색되었다. 신약 성서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예수의 가르침이 희년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의 관심은 인간 사이의 정의이지 땅에 대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의 정의에 대한 관심조차도 점점 사라져, 새 계약의 백성을 주장한 그리스도교는 새 백성을 제국적인 견해로 대체하여 약속의 땅을 하늘나라로 재해석하였다. 구체적인 생태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