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는 낭만주의 작가지만 사실주의의 면을 나타내는 글로써 사회와 인간의 둘 사이의 관계묘사를 나타내고 있다 .귀족사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동경,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많이 다루고 잇는 것 같다.1830년대 파리의 한 화려한 살롱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유혹하려 하고 있는 서술자가 거기에 나타나 어떤 백세 노인의 신비스런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1830년대의 신비스러운 서술자는 어느 화려한 살롱의 분위기와 유령같은 분위기를 대조함으로써 백세 노인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긴장감을 더해주면서 시작하게 된다.야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랑티 가족의 내력이나 재산의 근원 ,그리고 기괴한 모습의 어떤 백세 노인을 등장시켜 놓고 각자 나름대로 추측한다. 랑티 가족 모두는 무척 조심스레 노인을 살핀다.이구절을 볼 때 "엘리제 부르봉 궁의 시계가 막 자정을 치고 난 뒤였다.나는 창틀 벽구멍에 앉아."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나오듯이 이 소설의 도입에는 장소와 시간을 제시하고 있다.몸의 반을 살롱의 축축한 열기를 느끼고 잇는 동안 나머지 반을 동결 시키는 그런 외풍 때문에 나의 한쪽발은 결국 얼 어 붙었다"이 구절에서는 삶과 죽음의 생사를 대립적으로 비현실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여기에는 차갑고 음침하고 슬픔 속에 잠긴 자연이 저기에는 환희에 찬 사람들이 있었다.다양한 방식으로 수없이 반복되어 파리를 세계에서 가장 즐겁고 가장 철학적인 도시로 만드는 바의,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그 두 광경의 경계에 있던 나는 반은 유쾌하고 반은 음산한 정신적 혼합물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왼발로 노래박자를 맞추면서도, 다른 발은 관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초두에 이러한 비밀스러움과 긴장감을 제시함으로써 어느 한 재능있는 조각의 생애를 비롯하여 자기 자신의 자서전적 인생을 펼치게 된다. 사라진느의 생애를 제시함으로써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사라진느는 예술가로써 로마에 있는 동안 잠비넬라라는 여성에게 반하여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잠비넬라는 거세당한 남자였다. 로마의 극장에서는 거세당한 남자들이 여자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사실을 알게된 사라진느는 잠비넬라를 납치해 죽이려 하지만 오히려 추기경 하수인들로부터 칼침을 맞는다. 잠비넬라는 무도회에 나타난 그 노인이고 백작부인의 삼촌인 그 노인이 랑티백작의 재산의 근원이었다.어떤 다른 가치보다도 물질의 가치를 상위에 두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발자크는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그녀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가 하는 말에서 그녀를 사랑한게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점을 마지막 부분의 구절에서 볼수 있다. 소설 속의 사라진느가 하는 사랑은 그 당시에 여자의 외적인 면이 얼마나 중시되었는가를 알게 해준다. 사라진느는 극장에서 잠비넬라를 보자마자 그의 미모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에만 극도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잠비넬라의 조각상을 만들어놓고 사랑을 꿈꾸는 장면은 이런 점을 잘 나타내준다. 사라진느는 잠비넬라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잠비넬라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가 하는 말에서 이러한 점을 살펴볼 수 있다.너한테 닮은 누이가 있니? 아니지 그럼 죽어"나는 실제의 여자를 보면서도 이상 속의 여자를 끊임없이 생각할테니까".......사라 진느에게 잠비넬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사라진느의 잠비넬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이야기가 전개 되는 중 한 이야기 속의 다른 이야기로 하는 것이다.여성의 외면적 모습이 이 소설에서 중요함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다,당시의 거세문화가 어떠한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잠비넬라가 남성이라는 사실과 사라진느가 모르는 또다른 숨겨진 욕망은 성의 이완적 대립 구조가 표출된다.사라진느의 절망은 잠비넬라의 실체가 거세된 남자라는 사실로부터 직접 연유하지는 않는다. 사라진느의 절망은 오히려 잠비넬라의 부재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 잠비넬라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잠비넬라는 사라진느가 만들어낸, 바로 그 자신의 환상의 그림자에 불과했을 뿐이며, 그것을 실제로 믿었던 것은 사라진느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스스로 창출해낸 환상앞에서 이제 주체는 더 이상 주체가 될 수 없다. 주체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의 시선에 의해 역으로 굴절되고, 굴절되며, 읽기보다는 읽혀지는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절대적인 순종을 부르는 이 마력은 아마도 진실이 숨겨져 있는 한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권력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당대의 권력에 대해, 그것이 실제 행사할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막강한 힘을 행사할수 있는 것이라는 환상이 개인을 덮쳐올 때, 아니 혹은 개인이 적극적으로 권력의 힘을 과장되게 받아들일때-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할 때, 종종 이러한 대상의 과장이 일어나며, 이러한 극단적 과장은 푸코의 글에서 보여지듯, 공개처형 혹은 그와 유사한 제도에 의해 야기된 바가 클 것이다.-개인의 환상은 집단적으로 수렴되어 권력의 심장으로 붉은 자신의 피를 흘려 보낸다. 그리하여 자신의 묽어진 피는 검붉게 응축된 피를 역류시킬수 없게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환상은 다시말해 객관적 시선의 상실은 결국, 잠비넬라처럼, 환상 저편에 위치한 시선을 보다 강력하게 만든다. 한번은 실재처럼 보이는 환상에 의해, 그리고 또 한번은 실제로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앞에서. 그것의 영향력은 개인을 광기로 몰아갈 만큼 가혹한 정신적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