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案과 義和團)Ⅰ. 머리말Ⅱ. 19세기 후반의 ‘교안’-반기독교운동1. 교회세력의 확장과 ‘民敎’대립2. 반기독교운동의 전개양상3. 주도세력의 轉移와 지도이념의 轉變4. ‘교안’의 처리과정Ⅲ. 의화단운동1. 의화단의 ‘源流’와 산동성2. 의화단세력의 확대와 청조의 태도3. 열강의 대응과 ‘東南互保’4. 의화단운동의 좌절과 辛丑條約Ⅳ. 맺음말Ⅰ. 머리말이 글에서 다루는 ‘교안(敎案)’)은 전개된 시기와 지역이 길고 넓을 뿐 아니라 중국근대의 모든 역사주체를 직접?간접으로 포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더욱이 외국세력의 침략에 대한 ‘민중적’ 응전이란 성격이 부각됨으로써 태평천국운동과 함께 중국 근대민중운동사의 중심적 연구대상이기도 하였다. 중국근대사의 또 하나의 접근방식으로 주로 구미적 문명사의 입장에서 ‘서구의 충격(Western Impact)’과 그에 대한 ‘동아시아의 대응(Eastern Response)'을 추구하는 흐름이 있다. 이러한 관점은 교회와 선교사를 구미 자본주의 또는 제국주의와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서구 기독교문명의 대표로 간주한다. 따라서 기독교가 중국에서 야기한 여러 문제는 중국의 전통적 사유방식이자 관습의 틀이라 할 수 있는 유교와의 충돌에 그 초점이 모아지게 된다. 반기독교운동에서 유교의 주된 지지계층인 관료와 신사(紳士)가 주목받는 것은 그러한 까닭에서이다.교안과 의화단운동은 교회세력 및 중국 주재 구미 외교당국과 청조의 마찰로 이어졌으며 그 배경에는 불평등 조약체제가 가로놓여 있었고 그 처리는 외교교섭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중외관계를 새로이 교정하여 중국근대사의 전개에 대외적 조건을 변화시켜 나갔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때문에 외교사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Ⅱ. 19세기 후반의 ‘교안’-반기독교운동1. 교회세력의 확장과 ‘民敎’대립제 1차 중영전쟁의 패배로 기독교의 선교가 근대적 형식의 국제조약에 의해 허여된 후 기독교는 중국의 역사 전개에 큰 의미를 띠은 주로 관신에 의해 창도되었다.하지만 기독교의 내지 선교사업은 관신뿐 아니라 일반 민중 사이에서도 강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관신에 의한 반기독교 여론의 형성도 하나의 요인이겠지만 아울러 기독교로 표상되는 서구세력의 압박이 점차 심각한 현실의 문제로 감지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민간신앙을 통해 극단적 배외감정을 배양시켰다. 교회세력을 등에 업은 교민의 비행이 반감을 자아냈으며 송사에 교민이 연류되면 선교사의 지방관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패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향촌공동체의 유지비용을 교민은 부담하려 하지 않았고 교안 처리에 수반되기 마련인 배상금 지불도 그 부담이 민중에게 전가되었다. 이로 말미암은 배외감정은 풍수사상등 민간신앙에 의해 증폭되었고 영아 살해 따위의 갖가지 뜬소문의 유포에 의해 격화되었다. 관신이 창도한 초기의 반기독교운동에 민중이 참여하고 점차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해 간 배경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2. 반기독교운동의 전개양상반기독교운동의 전개는 주도층과 운동의 성격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860년 북경조약의 체결부터 1884년 중불전쟁, 중불전쟁부터 1894년 중일전쟁, 중일전쟁부터 1900년 의화단운동까지의 세 시기이다.제 1시기에는 지방관 및 신사층이 운동을 주창, 지도하였고 그 주된 양상은 선교사, 교민 및 교회에 대한 공격으로 점철되었다. 초기 교안의 대표적 사례인 귀주(貴州)교안은 기독교의 내지선교가 인정되자마자 귀양(貴陽)에서 잠복 활동해 오던 카톨릭 주교 파우리(Louis Faurie)가 관아에 기독교의 보호를 강요하며 조약체결을 경축하는 시위를 벌여 귀양 관신의 반발을 자아내어 발생하였으며 그 이후 호남과 강서 지방의 교안에 영향을 끼쳤다. 양무운동에도 간여한 바 있는 당시 강서순무 심보정은 관신의 행동을 ‘충의’의 표현이라 부추겼으니 당시 지방관들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1864년부터 1869년까지는 교회세력이 두드러지게 발호하면서 거의 중국 전역에서 소규모의 교안이 발생하였다. 이처抗租;소작료거부)’?‘창미(?米 ;미곡탈취)’ 풍조가 만연하였다.3. 주도세력의 轉移와 지도이념의 轉變태평천국운동과 염군(捻軍) 및 소수민족의 반란이 토벌되어가면서 체제에 대한 거대한 도전의 격랑이 지나고 그 재편이 시도되어 갔다. 그 시도는 ‘양무적’입장과 ‘수구적’입장의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는데 후자는 지방 관신 다수의 지지를 얻어 그들이 주도하는 ‘청의(淸議)’적 대외강경론에 뒷받침되었다. 태평천국운동 이래 향촌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한 노력으로 징세권?사법권?군사권의 일부가 지방의 관신에 위임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의 약화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지방의 관신들로서는 기득권익의 수호로서 통치체제의 유지를 자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세력의 존재가 점차 지방의 사회?경제?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관신의 우월적 지위를 잠식하자 그것이 곧 체제 자체에의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도전에의 대응이 관신 주도로 반기독교 문건의 간행?유포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그러나 ‘수구적’ 관신은 서구 열강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청 정부의 탄압으로 점차 반기독교운동에서 이탈하고 회당을 중심으로 한 민중세력이 운동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891년 양자강 중?하류 유역에서 본격화 되었는데 지역경제가 열강의 자본주의에 개방됨으로써 농업이 피폐되고 전통적 상업의 쇠퇴, 특히 차(茶) 수출의 격감과 기선의 운항으로 말미암은 운수 노동자의 실업이 그 배경이 되었다. 1894년 중일전쟁 이후에도 회당이 여전히 반기독교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주목되는 것은 민족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전래의 반청적 색채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지방관을 포함한 관신이 교안에 대해 다시 동조하게 된 것은 그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신의 태도 변화가 1900년 의화단 운동을 급격히 고조시킨 정치적 동기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관신층은 반기독교운동을 주도할 때 그 이념을 유교적 명교질서의 수호에 두었다. ‘정(正)’과 ‘사(邪)’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와로 총리아문에 항의하는 한편 포함을 동원하여 시위하여 압력을 가했는데 정부에 의해 책임자 처벌 등이 이루어지며 ‘수구적’ 관신으로 하여금 반기독교운동에서 물러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1년 양자강 유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교안은 가로회를 비롯한 민중세력이 주도함으로써 청 정부의 대응양태도 변화가 나타났지만 열강측이 교안을 빌미로 이권을 요구하고 나선 점을 주목할 만하다. 통상의 여러 특권과 함께 특히 영국은 호남의 개방을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청 정부측의 태도는 냉담하였다. 배상금 지불이나 주모자 처벌 등은 양보하더라도 그와 무관한 이권은 넘겨주진 않는가는 것이 기본입장이었다.중일전쟁을 계기로 중국의 배외감정이 고조되고 이에 대한 청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열강은 자국의 중국 거류민을 직접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중일전쟁 이전에는 선교사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정책 요구에 비판적이던 미국도 미국인 선교사의 교회가 피해를 입은 1895년 성도교안을 계기로 보다 강력한 조치를 고려하였다. 미국공사는 영국공사의 협조로 외교적 압력을 가하였고 청 정부를 굴복시키는데 성공하여 내지진입이 가능하였다. 1890년대 후반의 교안은 열강의 영토할양 요구의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 1897년 거야교안이 전부터 독일이 강요해 온 교주만 강점의 계기가 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독일의 교주만 조차는 열강의 열토할양 경쟁을 심화시켜 프랑스와 영국이 교안을 이용하여 각각 광주만 및 구룡반도와 심천의 할양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Ⅲ. 의화단운동1. 의화단의 源流와 山東省의화단운동은 20세기 벽두에 화북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을 동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했을 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국 최대의 반외세 운동이었다. 일반적으로 의화단운동의 발단은 1898년 4월경부터 활발해진 산동?직예 교계지역 의화권(義和拳) 조직의 움직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의화권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의화권의 원류를 밝히는 문제는 단지 의화단운동이 어떻게 양키는 계기가 되었다. 의화단은 철도와 전신시설을 파괴하면서 북진하여 북경에 육박하였다.의화단의 주된 구성원은 농민이었으며 그 외에 전통적 운송노동자, 도시빈민, 해산 병사 그리고 승려나 도사의 참여도 보인다. 농민의 대대적인 참여는 자연재해가 주된 요인이었으며 철도개통으로 실업한 다수의 운송노동자들이 세력을 크게 확대하였고 그 밖의 일부 중소 지주의 참여도 보이며 운동이 고조되면서 수구적 관신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의화단 운동의 이념과 관련하여 주목받는 것은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구호이다. 1898년 산동?직예의 의화단 활동지역에서 조청멸양(助淸滅洋)의 구호가 사평에서 흥청멸양(興淸滅洋)의 구호가 제시된 뒤 각지의 의화단이 보청멸양(保淸滅洋), 부청멸양의 기치를 내걸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천, 호북, 절강 등지의 교안에서도 순청멸양(順淸滅洋), 보청멸양, 호국멸교(護國滅敎) 등의 구호가 제시되어 비밀결사를 매개로 한 영향관계가 추정되기도 한다. ‘부청멸양’을 둘러싼 논의의 쟁점은 그 의미의 해석과 평가에 있다.)의화단의 부청멸양 구호는 청조의 대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정은 의화단 세력이 강해지자 초무책(招撫策)으로 전환하였고 더욱이 의화단에 이만 석의 쌀과 서태후 명으로 은 이만 량을 지급하였다. 이에 향응한 일부 의화단 세력은 ‘봉지의민보청멸양(奉旨義民保淸滅洋)’의 기치를 내 걸었다. 한편 열강 8개국 연합군이 북경으로 진격을 개시하자 의화단과 일부의 청군은 연합군과 교전상태에 들어갔다. 조정의 주화파 세력은 의화단을 난민으로 규정하여 철저히 진압해야만 열강의 북경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전파는 항외적(抗外敵), 설국치(雪國恥)를 내세워 민심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고 서태후가 이들을 지지하여 일단 주전파가 득세하였다. 그러나 서태후는 열강에의 선전포고를 결정하고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강화를 추진하였다. 의화단 세력은 청조의 태도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전면에 나섰으나 연합군의 압도적 무력에 궤멸될 수밖에 없다.
문제중심학습(Problem-Based Learning: PBL)1. 문제중심학습의 개념문제중심학습은 실제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수업상황을 구조화하는 교육적 접근이다. 학습자들이 소그룹 학습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문제를 협력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이를 통해 문제해결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도록 하는 교수 학습 형태로서 '문제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루어지는 활동과정에서 산출되는 학습'으로 정의할 수 있다.문제중심학습은 전통적인 교육환경이 지닌 문제점, 즉 수동적 학습자, 탈상황적 지식, 학교지식의 사회적 비적용성 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출발하였으며, 또한 정보화시대에 요구되는 지식통합능력의 고양을 위한 방안으로서 제시되었다.대부분의 교육자들은 문제 해결이 학습 및 사고에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문제해결의 과정은 이미 배운 원리를 응용하여 자신이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발견하고, 이전에 배운 규칙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여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실제적이고 자신과 관련이 있는 주제 혹은 과제를 분석하고 그 해결 방안을 탐구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학습활동을 하게 되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자신에게 의미있는 지식과 기능 및 사고체계를 획득하게 된다.2. 문제중심학습의 특징 및 목적1) 문제중심학습의 특징1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제를 통한 수업 진행2 학생중심의 학습, 학생들이 학습목표를 스스로 도출3 수업방법은 토의와 학생간의 협동적 작업4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발적, 능동적 학습5 교수자는 조력자로서 학습 촉진과 학습 안내자6 문제는 학습요점 조직 능력과 문제해결기술 발전의 수단7 자기지향적 학습을 통해 새로운 정보 습득8 전체 학습과정을 통해 통합된 지식 습득2) 문제중심학습 목적1 현실상황에서 실제로 사용가능한 지식의 기반을 습득2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추론 능력의 함양3 지식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의 고취4 자율적 학습의 능력 배양5 협동적 학습을 통해 co-work 능력과 communication skill의 함양3. '문제'의 성격과 문제해결과정1) 문제의 성격: 문제중심학습에서 다루는 '문제'는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1 비구조화된 문제비구조화된 문제란 문제 해결에 어떤 개념 규칙 원리들이 필요한지, 그것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어떤 해결 방안이 가장 좋은 지에 대해 다양한 해결 방안과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문제들을 지칭한다. 또한 학습자의 수준과 학습정도에 따라 도출되는 결론이나 해결안의 수준, 질 등이 달리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이다.2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문제문제중심학습에서의 '문제'는 소위 학교라는 상황에서만 통하는 인위적이고 비실용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문제여야 한다.3 학습자와 관련 있는 문제학습자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문제여서 학습자의 내적 동기유발이 가능하여야 한다. 이런 경우에만 학습자가 문제 상황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학습과정을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4 학습자의 역할과 결과가 명확히 제시되는 문제문제중심학습의 특성상 교육과정에서 어느 것도 미리 구체적으로 결정되어 제시되거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므로 학습자의 역할과 결과물에 대한 확실한 방향이 제시되는 문제이어야 한다.2) 문제해결과정위와 같은 복잡하고 비구조화된 문제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므로 구체적인 문제해결도구가 있으면 그 문제해결 과정을 좀더 용이하게 할 수 있다.문제중심학습에서 문제해결의 과정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가설/해결안(ideas), 알고 있는 사실들, 더 알아야 할 사항, 실천계획의 4단계로 진행한다. 이상의 4 단계는 학습자들이 학습을 진행함에 따라 수정, 변화하게 된다. 흔히 이 과정을 적어도 2번 정도는 되풀이하여 최종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문제해결과정{가설/해결안(ideas)알고 있는 사실(facts)더 알아야 할 사항(learning issues)실천계획(learning plans)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알아야 할 사항은?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구체적 실천 계획은?4. 문제중심학습의 단계1 문제의 설정학습자들은 풍부한 상황과 맥락으로부터 중요한 사실을 분리해 내고, 문제를 확인하며, 가설을 만들어 낸다.2 자기 주도적 학습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학습자들은 능동적으로 가설을 검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제기한다.3 문제의 재검토집단 구성원들은 그들의 조사결과를 활용하여 근거 있는 가설을 첨가하고, 삭제하고, 보완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에 몰두하게 된다.4 요약이 단계는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과정으로서, 구성원들은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서 얻어진 지식의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인지적 관련성을 만들어가면서 사례들을 비교하고 대조하게 된다.5 성찰과 반성학습자들은 집단으로서 그간 누적된 경험을 정리 보고하고, 학습과정 중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는 영역을 확인하는 활동을 한다.5. 문제중심학습 진행문제설정과 학습목표가 결정되면 다음의 과정을 거쳐 수업이 진행될 수 있다.{학습단계학습유형교수-학습 활동1. 수업 분위기 조성단계- 수업의 특징 및 학습목표에 대한 설명을한다.- 교사와 학습자의 역할을 안내한다.2. 문제제시 단계- 문제에 대한 주인의식을 느끼도록 한다.- 제출할 과제물에 대한 소개를 한다.3. 잠정적 문제해결 시도 단계조별학습- 역할을 분담한다.(진행자, 기록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한다.- 잠정적인 해결안에 대한 생각을 종합한다.4. 자율학습 단계개별학습- 각각 주어진 과제를 해결한다.-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문제해결을 위한현재 자신의 상태와 나아갈 방향 등)5. 협동학습 및 토의학습 단계조별학습- 조별로 모여서 다른 학생들의 다양한 견해나 관점을 접하며, 개인이 지닌 사고의 영역 과 범주를 넘어서, 관련 지식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더 넓힌다.- 모든 사회현상과 문제는 하나의 지식과 해 결책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상대주의적 관 점을 배운다.- 새로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재 종합한다.6. 토론결과 발표 학습단계- 자기 조의 견해를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지 식을 공유한다.- 전달내용은 개별 정리한다.- 보고서 작성 및 발표능력을 기른다.7. 정리 및 평가전체 및 개별학습- 자기학습 평가지, 팀원 학습평가, 팀간 학습 평가- 오늘의 학습과정 반성하기{수업전개1. 수업소개2. 수업분위기 조성(교수자의 역할 소개)문제제시1. 문제제시2. 문제에 대한 주인(소유)의식을 느끼도록 한다(목적: 학생들이 문제를 내재화하도록 하기 위함)3. 마지막에 제출할 과제물에 대한 소개를 한다.4. 그룹내 각자의 역할을 분담시킨다(한 학생은 칠판에 적고, 다른 학생은 그것을 다른 곳에 옮겨 적어놓고 또 다른 학생은 그 그룹의 연락망을 맡는다)생각(가정들)사실학습과제실천계획주어진 문제에 대한학생들의 생각을 기록: 원인과 결과, 가능한 해결안 등개인 혹은 그룹학습을통해 제시된 가정을뒷받침할 지식과 정보를 종합한다.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 자신이 더 알거나 이해해야 할 사항을 기록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해야 할 구체적 실천계획5. 주어진 문제의 해결안에 대하여 깊이 사고를 한다: 칠판에 적힌 다음 사항에 관하여 과연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생각(가정들)사실학습과제실천계획확대/집중시킨다.종합/재종합한다.규명과 정당화한다.계획을 공식화한다.6. 가능할듯한 해결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비록 학습되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7. 학습과제를 규명하고 분담한다.8. 학습자료를 선정, 선택한다.9. 다음에 하게될 토론시간을 결정한다.문제 후속 단계1. 활용된 학습자료를 종합하고 그것에 대해 의견교환을 한다.2.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다음 사항에 대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생각해 본다.생각(가정들)사실학습과제실천계획수정한다.새로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재종합한다.(만일 필요하다면) 새로운 과제 규명과 서로간에 분담을 한다.앞서 세웠던 실천안에 대해 재설계한다.결과물 제시 및 발표문제 결론과 해결 이후1. 배운 지식의 추상화(일반화)와 정리작업(정의, 도표, 목록, 개념, 일반화, 원칙들을 작성)2. 자기 평가(그룹원들로부터의 의견을 들은 후에)·문제해결과정에 대한 논리적 사고를 하였는가?·적합한 학습자료를 선정하여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어 내었는가?·주어진 과제를 잘 수행함으로서 그룹원들에게 협조적이었는가?·문제해결을 통해 새로운 지식 습득이 이루어졌다든지 혹은 심화학습되었는가?PBL 학습과정의 예(Barrows와 Myers, 1993)6. 문제중심학습의 중요성문제중심학습은 능동적 학습을 촉진시키기 위한 교육 전략이다. 변화하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단순한 정보 수용자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생산, 기획,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기대됨에 따라 부상되는 교수 학습 방법이다.현재의 새로운 학습환경은 대학졸업자들이 전지구화되고 복잡한 직업 환경과 사회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대학의 수업에서는 '실재 삶'의 문제와 상황을 제공하도록 수업을 재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실제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과 집단적 문제해결 능력의 함양이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문제중심학습은 의학, 경영학, 교육학, 건축학, 법학, 공학 그리고 사회학을 포함하여 수많은 고등교육의 분야에서 적용되어왔다.문제중심학습은 이러한 상황속에서 기본적으로 학생의 수업에 대한 자발적 참여와 학생들의 co-work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학생의 과학적 사고능력 지식의 확장, 적용력, 비판적 지식창출 능력,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7. 문제중심학습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교수자의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