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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문화론]풍수와 그 현대적 의미
    풍수와 그 현대적 의미※ 목 차 ※Ⅰ. 서론Ⅱ. 풍수의 이론적 고찰1. 풍수의 개념2. 풍수설의 개요(1) 풍수설의 발생(2) 풍수설의 내용3. 풍수설의 전래와 보급Ⅲ. 풍수설이 민족성에 미친 영향Ⅳ. 풍수의 현대적 의미1. 풍수가 가지는 현대적 의미2. 풍수, 현대 과학에 의한 해석 가능성3. 풍수의 적용 문제Ⅴ. 결론Ⅵ. 참고문헌Ⅰ.서론풍수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란 쉽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땅의 모양에 따라 인간의 길흉화복이 결정되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풍수가 신뢰할 만한가에 대해서는 풍수의 효능이 증명된 역사적인 사례들도 있지만, 사실 풍수의 특성상 그 원리가 실증적인 증거로 구성된 것도 아니고,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장치 또한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때문에 풍수는 과학과 거리가 먼 한낱 미신으로 치부되어 전통지리학으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배척받아 왔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풍수사상은 위로는 한 나라의 도읍을 정하는 일에서부터, 아래로는 부모의 묏자리와 집터를 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영향력을 미쳤는데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에 중국대륙으로부터 풍수지리설을 수용하였고, 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천 년하고도 수 백 년이 훨씬 넘도록 풍수설에 탐닉해 왔다. 이처럼 풍수는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생활에 친숙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이 풍수의 본질적인 이론이나 적용에 대한 그 동안의 평가에는 전체적으로 ‘긍정’ 또는 ‘부정’등의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즉, 풍수에 대한 여러 문헌에서도 ‘풍수는 묘상(墓相)과 가상(家相)으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미신’ 또는 ‘지형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전통과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등으로 연구의 관점에 따라서 그 정의도 서로 미신과 과학의 상반된 견해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풍수지리설의 과학성과 미신성의 한계에 대한 일련의 분석적인 연구결과는 풍수지리설의 이론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자연법칙에 대한 동양적인 해석으로 인정하여 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더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자리를 찾으면 추위와 같은 기후 속에서도 살아가는데 편리할 뿐 아니라 사나운 맹수나 적으로부터 자신과 동족을 보존하며 번창시키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수설의 기원이 상고시대까지 소급해 가지만 초기 형성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응용적으로 온전한 체계를 갖추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다가 풍수설은 본격적으로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전국시대는 곳곳에 약육강식이 자행되고 국가의 흥망이 빈번한 시대인 만큼 이러한 시대에 의타적 운명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풍수설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으로 등장한 것은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제까지 이름도 없는 미천한 사람이 오늘은 황제나 재상의 자리에 오르는가 하면 반대로 오늘의 왕족, 귀족이 내일은 몰살되는 불운이 수없이 행해졌다. 그래서 그 당시에 지세(地勢)는 개인이나 국가 운명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는데, 이는 전란의 피해를 입지 않고 일가친척이 죽임을 당하는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주지를 선택하거나 피난지를 선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불안한 생에 대해 의타적 운명관을 가지고 조상의 보호를 구하는 염원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으로서 정립된 것이 풍수설인 것이다.(2) 풍수설의 내용 : 본질, 종류, 길지 선정 원리풍수설은 정기설(精氣設)과 감응설(感應設) 두개의 원리를 바탕으로 성립된 이론이다. 풍수에서 기의 개념은 한마디로 정의되고 있지 않으나, 우주만물에 존재하는 에너지이며 생명체?무생물체 등의 생(生)?장(長)?수(收)?장(藏)에 관여하는 역동적인 기운으로 이해되어진다. 즉 만물의 생성(生成)?변화(變化)?소멸(消滅)을 기의 작용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렇게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살아서 움직이는 정기(精氣)로 충만해 있다는 것이 정기설인데 이 정기는 산맥을 타고 지하로 흐르고 있고 또 바람과 물에 실려서 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정기는지 말아야 하고 일단 가져온 정기는 다시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풍에 필요한 장치가 혈(穴))의 주위에 있는 산(이를 砂)라고 한다)으로 사신사(四神砂))와 조산(朝山)), 안산(案山)) 등이다. 셋째로 중요한 것이 득수법이다. 물은 바람보다 짙은 물질인 까닭에 물이 실어오는 정기는 바람보다도 더 강하다. 그러므로 풍수설에서는 장풍보다 득수를 더 중요시한다. 성국상(成局)上) 내수(來水)를 득(得)이라 하고 거수를 파(破))라고 하는데 수류(水流)의 방향, 장단, 완급(緩急), 활협(闊狹), 곡절(曲折), 요포(繞抱) 등이 득수법의 내용이 된다. 넷째로 어느 지점이 정기가 가장 왕성하게 집결되어 있는 곳이냐를 판단하는 것이 점혈법인데 상지(相地)에 있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양택(陽宅)이나 음택(陰宅)의 위치와 방향에 관한 것을 좌향이라고 하는데 12간지(干支)를 방향으로 하여 보통 12방위로 나뉜다.3. 풍수설의 전래와 보급우리나라에 언제 풍수사상이 전개되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 고유의 자생적 풍수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4대 왕인 탈해가 집터를 잘 잡아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분 벽화에 그려진 사신도와 당시의 고찰이 가진 지형의 이용 등은 삼국 초기부터 풍수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자생 풍수가 중국 풍수의 영향을 받은 것은 통일 신라 말기로 짐작되는데 당시 선종 계통의 승려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돌아오면서 풍수설을 배워와 일반 대중을 포교하는 방법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도선은 이를 우리의 자생 풍수와 접목하여 풍수지리를 집대성한 것으로 해석된다.)고려 시대에 들어와서 풍수설은 사회의 상층부에서 신봉되었고 특히 고려는 왕도풍수설이 강조되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왕도의 지기가 성하냐 약하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고 서경천도운동과 각종의 왕도(王都), 지덕(地德), 비보(裨補)에 주력한 것을 본다. 아직 불교가 국교로 되어 있었던 고려 관계이다.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독특한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른바 계세(繼世)사상으로 이것은 불교의 환생이나 또는 기독교의 내세사상과는 달리 인간의 이승과 저승은 이어져 있다는 사상이다. 즉, 생사는 같은 차원의 삶이라는 사상이 계세사상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조상에 대한 숭배와 인친척간의 일체감을 더욱 강하게 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손들은 조상을 극진하게 모셔야 하고 이에 조상들은 자손들에게 특별한 은덕을 베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상 숭배 사상은 풍수설을 미혹되게 하는 사상임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조선 시대 유교 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더 심화된 조상 숭배는 풍수설을 지나치게 신봉하게 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만든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 중에는 풍수설과 그 바탕을 같이 하는 사상이 있어서 풍수설의 수용과 보급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그렇다면 풍수설이 우리 민족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질문에 대해 식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므로 일률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그 피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사상적으로 풍수설은 의타적인 운명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 속담에 ‘잘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잘되면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잘못되면 남의 잘못으로 돌리는 인정 세태를 풍자한 말이긴 하나, 문맥 그 자체에서 풍수적인 사상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내가 잘되든 잘못되든, 혹 내 집안이 번창하거나 망하는 것이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조상의 음덕에만 돌리는 사고방식이 묻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풍수설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나 그래도 풍수설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강화되는 면이 적지 않음은 또한 부인할 수가 없다. 명산을 둘러싸고 집안간의 산송으로 불화가 일어나고 백성들끼리 대립하는 것) 등은 과거에 풍수설이 진리라고 믿었던 까닭에 일어난 불행이라고 할 수가 있다. 스스로 잘 살려풍수 자체의 타락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현대의 사람들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으로 변질된 그것을 풍수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풍수는 본래 땅을 생명체로 인식하고 인간과 공존하는 대상으로 여기는데 반해 오늘날의 풍수는 묏자리를 잘 잡아서 후손의 발복을 보려는 이기적인 속신으로 가득하여 땅의 종말을 더욱 앞당기는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오늘날 풍수 연구의 중요한 목적은 현대의 시공간 내에서 풍수의 올바른 해석과 이용을 재점검하는 것이며 그 적용 또한 서구식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인간에게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합리적인 대안으로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서구의 영향으로 20세기 초 이래 우리의 땅은 개발되고 근대화라는 명목 아래 변질되어 왔다. 그리하여 사람은 땅을 죽이고 죽은 땅은 다시 사람을 죽이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악순환적 고리를 만든 것이다. 이에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사상적 측면부터 시작되어 땅에 대한 우리의 토지관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땅을 만물의 근원으로 인식하고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졌던 지모사상(地母思想)을 되새겨 볼 수 있어야겠다. 물론 오늘날 이러한 사상이 현실과 부합되지 않기는 하나 땅을 어머니와 같이 귀하게 여기며 소중히 하는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을 위해 땅을 개발했으나, 정작 인간이 제외된 채 진행된 비인간적인 공간개발과 파괴된 생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했듯이 풍수 자체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풍수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으로 시대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나, 오히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위해 난해한 풍수가 특정인만의 도구가 아닌 쉽고 보편적인 전통과학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고 이에 대한 체계도 현대적으로 재해석 되어야겠다. 또한 사회적으로 소수의 개인 즉, 있는 자들의 소유로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의 생활터전에 관심을 가지며 유익을 줄 수 있도록 연구되어야 한다.2. 풍수, 현대과학에 의한 해석 가능성풍수는 다.
    인문/어학| 2006.06.06| 9페이지| 4,000원| 조회(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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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배경론]심청전에 나타난 배경 사상
    에 나타난 배경사상Ⅰ. 서론은 우리 고전 소설 가운데 효행을 다룬 작품으로서, 판소리나 연극, 오페라 등을 통해서도 그 맥락이 이어져 내려오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하나의 문학작품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정서에 부합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영원성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심청이가 보여준 지극한 효성과 그로 인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전개 과정은 민중들이 동경할 만하며 일상에서의 충족되지 못한 소망이 충분히 발현되어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우리가 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 의식이 바로 ‘효(孝)’라는 것은 누구나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중에 중심이 되어 나타나는 ‘효(孝)’ 사상은 그 사상적 배경이 풍부하여 ‘종교소설’ 혹은 ‘사상소설’)로까지 구분되기도 한다. 이에 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고자 할 때, 작품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연구는 필수적인 과제라 여겨진다. 따라서 본 과제에서는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작품 중에 나타난 유 ? 불 ? 도의 배경사상을 고찰하고자 한다.Ⅱ. 에 나타난 배경사상동양사상이라 하면 여러 가지 사상을 들 수 있으나 이 중에도 유교 ? 불교 ? 도교(신선사상 포함), 이 세 가지가 동양사상의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유교 ? 도교는 중국에서 일어난 중국 고유의 사상이고 불교는 인도에서 일어나 중국에 들어 왔지만 불교 역시 중국의 고유한 사상의 영향을 받고 중국불교로서의 독특한 사상적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유 ? 불 ? 도 사상은 지리적으로 가장 접근하여 있고 역사적으로 가장 관련성이 깊은 우리 한민족의 정치, 사회, 문화, 풍속 등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지난 날 우리 국문학에도 이 사상은 깊이 스며들어 특히 고전문학에 나타나는 사상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양사상과 더불어 무격(巫覡)사상 배경적 측면을 부인하기도 했다.지금까지의 주장들은 작품의 주제가 유교적인 효라는 것을 들어 유교적 측면을 강조하거나, 혹은 효를 불교적 측면에서 부각시키려 했으며 도교적인 측면에서 작품의 주제나 사상을 검토하려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실제 작품을 살펴보면 주제의식인 ‘효’는 일반적 관념으로 유교를 떠오르게 하며 불교와 도교의 성향이 양면적으로 강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일부 불교사상을 갖추었다고 해서 불교소설이라고 하거나 반면 도교사상을 가졌다고 하여 도교소설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극단적인 결론인 것이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떤 한 사상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유교와 불교, 도교와 민간신앙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풍부한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는 것이다.다시 말해 이 유 ? 불 ? 도 ? 무 어느 사상과도 각도에 따라서 관련이 있다고 하거나 혹은 이들 여러 사상들이 혼합된 채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삼국시대로부터 전승된 도교와 불교가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유교적 테두리 안에서, 훨씬 전부터 깊숙이 자리 잡은 민속신앙과 더불어 상호간에 영향을 주며 융화된 채 생활화되었던 것인 만큼, 에 그런 양상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본다. 그럼 이러한 혼합적 성격의 사상이 어떻게 작품화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심청의 어미 곽씨가 자식을 얻기 위해서 치성을 드리는 장면과 심봉사가 심청을 얻고서 처음으로 기원하는 장면들은 어느 한 사상만으로 분석하기 어려워 보인다. 굳이 말하자면 첫 번째의 장면은 불교적 용어가 많이 쓰였다고 할 수 있을 뿐이며 두 번째 장면에서는 삼신상을 바쳐 놓고 삼신께 빌고 있는데, 사용되어지는 용어들이 유 ? 불 ? 도 ? 무의 혼합된 상태이지만 기원(祈願)의식은 본래 속신적 행위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무격사상이 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또한 곽씨 부인의 태몽에서는 도선적(道仙的)인 분위기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다른 사 심청과 이별할 때도 오랜만의 모녀 상봉이었지만 옥황상제가 맡긴 그녀의 직분에 순종해야 되기 때문에 조금도 어기지 못함을 엿볼 수 있다. 모친과 이별한 심청도 그 후 옥황상제의 하교(下敎)에 따라 인당수로 환송되는데, 이 때에도 신선계의 모든 선녀들이 정중히 모시고 있으며 천상화(天上花)인 연꽃에 넣어 인간 세상으로 보내지게 된다.도교가 말하는 만물의 주재신인 옥황상제의 명에 의해 작중 인물과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옥황상제는 도교에서 최고신이며 천상과 천하, 지하 모든 세계에 존재하며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가 있다. 심청이 천상에서 쫓겨나고 용궁에서 다시 지상으로 옮겨가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에는 옥황상제의 지시가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천상의 많은 신들과 수중에 있는 용왕들까지도 명령하며 부릴 수 있는 존재임이 작품 속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의 사상적 배경의 일부에는 이러한 옥황상제가 최고 지존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도교적 사상을 짙게 암시하고 있다. 또한 도교에서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최종 목표는 바로 신선이 되는 것인데 심청의 모친 곽씨 부인이 살아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결국에는 신선이 되었음 또한 도교적 세계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지금까지는 도교사상의 입장에서 작품을 살펴보았는데 도교사상만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가령 심청이 천상에서 죄를 짓고 지상으로 내려온 것과 용궁에서 인간 세상으로 다시 보내지는 과정은 불교의 인과응보와 윤회사상과도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전소설에서의 권선징악이라는 유교적 이해도 여기서는 유교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발견된다.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곽씨 부인이 죽어서 신선이 되는 것은 도교에서 유교적 윤리를 흡수)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즉 신선이 되려면 윤리적인 실천이 있어야 된다)는 것인데, 고전소설에서 보여주는 권선징악이 이 작품 중에서는 도교사상도 유교나 불교와 함께 중요한 권선징악적 배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쉬지 않으며 정성으로 다하는 심청의 효는 현세에서 선한 업(業)을 쌓아 바로 황후라는 결과를 또한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과응보의 과정에는 윤회사상이 작용하여 천상(선녀)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수중으로, 수중에서 다시 지상(황후)으로의 과정을 거치는데, 심청이 황후가 되는 결론에서의 지상은 천상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공간이 되기도 한다.다음으로, 심봉사가 몽운사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겠다고 허언(虛言)을 해 버리는데 여기서는 심청과 심봉사 모두 불교의 영험함을 기대하는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길 경우 어떤 벌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심봉사는 이미 알고 있으며 심청이 이를 위해 자신을 파는 행위도 바로 이러한 영험사상을 의식한 결과이다. 이것은 심청이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황후가 되었어도 그 부친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데 부처님의 영험을 끝까지 믿는 까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참석하였을 때 황후가 자기 부친인가 확인하려 물으니 ‘요망한 중’, ‘눈도 못 뜨고 자식만 잃었사오니’하며 불교의 영험을 불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만을 가지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불교사상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심봉사 자신이 저지른 공양미 삼백 석 사건과 관련하여 사랑하는 딸이 팔려가 죽게 된 것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자신에게 올 영험에 대한 기대보다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후회와 고통이 더 당연한 결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화주승의 예언대로 눈도 뜨고 영화를 누린 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에 나타난 대부분 불교사상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그려졌으나 이 부분에서는 극히 적은 일부이기는 하나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배불숭유 정책이 시행되어 불교가 배척되는 상황에 놓여짐에 따라 여태껏 숭앙되던 불교가 천시된 것이다. 비록 서민층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신앙의 대상이긴 했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된 조선이 불교를 배척했을지라도 오랜 세월에 걸쳐 민족의 사상과 일상에 반영된 불교의 신앙심은 한 순간에 버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어려운 삶을 사는 민중들에게는 유교적 이념보다도 현실의 고통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대상이 시급했던 만큼 불교를 안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불교사상은 문학 작품에도 쉽게 담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보면 도교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들을 불교의 힘을 빌려 실현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사상은 심청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는 구조를 가능하게 함으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호응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한 수단이기도 하다.3. 무격사상(巫覡思想)오늘날까지 원시사상은 불교나 도교에 결합된 채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는 아마도 다른 많은 종교와 더욱 밀착하여 그 어떤 사상보다 더 큰 영향을 주며 믿어져 왔을 것이다. 따라서 에 나타난 무격사상(巫覡思想)을 분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내용만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먼저 곽씨 부인이 자식을 낳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드리는 대상을 보면, ‘성주신’, ‘조왕(?王)’, ‘지신(地神)’등은 모두가 원시종교에서 숭배되는 신들이다. 또 갓 태어난 딸의 장래를 삼신께 비는 행위는 물론, 심봉사가 권선문(勸善文)에 적은 공양미 삼백석의 소원을 들은 심청이가 그 날부터 목욕재계하고 집을 깨끗이 하며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일월성신’과 ‘하지후토(下地后土)’, ‘산령’, ‘성황’, ‘오방강신(五方江神)’, ‘하백(河伯)’에게 비는 것 또한 지극히 무격사상에 바탕을 두었다 할 수 있다.이러한 사상은 사공들이 죽음을 면하기 위해 십오 세 된 처녀를 구할 때와 이들이 인당수에 당도하여 풍랑이 갑자기 일자 위태하여 고사를 지낼 때의 풍경도 보면 잘 나타나 있다.무속은 도교, 유교, 있다.
    인문/어학| 2006.06.06| 8페이지| 4,000원| 조회(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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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문교육과] 중고등학교 한문교과서 수록된 작품 종합
    漢 文 文 法▷漢字語의 짜임◁‘한자어의 짜임’이란, 한자를 기본 단위로 하여 보다 큰 의미로 짜여진 형태의 결합 관계를 말한다. 두 자 이상의 한자가 결합하여 한 단위의 의미체(意味體)를 형성하는 한자어를 이룰 때에는 반드시 기능상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한자어의 짜임을 문법적 기능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주술 관계(主述關係) : 주어와 서술어 관계로 짜여진 한자어로, 서술어는 행위, 동작, 상태 등을 나타내고, 주어는 그 주체가 된다. ‘∼가 ∼함’, ‘∼이 ∼함’의 관계로 성립되기 때문에 주어를 먼저 새기고, 서술어는 나중에 새긴다.日∥出: 해가 뜸.年∥少: 나이가 젊음.? 술목 관계(述目關係) : 서술어와 목적어 관계로 짜여진 한자어로, 서술어는 행위나 동작을 나타내고, 목적어는 그 대상이 된다. ‘∼를 ∼함’, ‘∼을 ∼함’의 관계로 성립되기 때문에 목적어를 먼저 새기고, 서술어를 나중에 새긴다. ‘술목 관계’의 한자어는 어순이 우리말과는 다르다.卒?業: 학업을 마침.修?身: 몸을 닦음.? 술보 관계(述補關係) : 서술어와 보어 관계로 짜여진 한자어로, 서술어는 행위나 동작을 나타내고, 보어는 서술어를 도와 부족한 뜻을 완전하게 해 준다. ‘∼이(가) ∼함’, ‘∼에 ∼함’의 관계로 성립되기 때문에 보어를 먼저 새기고, 서술어를 나중에 새긴다. 술보 관계의 한자어도 그 어순이 우리말과는 다르다.有 / 罪: 죄가 있음.無 / 限: 한이 없음.? 수식 관계(修飾關係) :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로 짜여진 것으로, 수식어에는 명사류를 수식하는 것과 동사류를 수식하는 것이 있다.靑 山: 푸른 산(명사류를 수식)必 勝: 반드시 이김.(동사류를 수식)? 병렬 관계(竝列關係) : 같은 성분의 한자끼리 나란히 병렬되어 짜여진 관계를 말한다. 이에는 서로 상대 되는 의미를 가진 한자가 나란히 놓여 이루어진 경우와, 서로 비슷한 의미를 가진 한자가 나란히 놓여 이루어진 경우가 있다.興亡: 흥하고 망함.(서로 상대 되는 의미)困難: 어려움(서로 비슷한 의절은 백운 속에 있는데/ 흰 구름을 스님은 쓸지도 않네./ 손님이 와서야 비로소 문이 열리니/ 온 골짜기에 송화가루 날린다.送元二使安西 -王維-渭城朝雨?輕塵하니 客舍靑靑柳色新이라. 勸君更進一杯酒하니 西出陽關無故人을. ▶위성에 아침 비 가는 먼지를 적시고/ 객사 앞 버들잎은 싱싱하기도 하다./ 그대에게 다시 한번 한잔 술 권하노니/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구도 없을 것을.有客 -金時習-有客淸平寺하니 春山任意遊라. 鳥啼孤塔靜이요 花落小溪流라. 佳菜知時秀요 香菌過雨柔라. 行吟入仙洞하니 消我百年憂로다. ▶나그네 청평사에 있으니/ 봄 산 속에 뜻에 맡겨서 떠돈다./ 외로운 탑 꼭대기에는 새가 앉아 울고/ 꽃 떨어지니 시냇물은 흘러가네./ 아름다운 나물은 시절을 알아 빼어나고/ 향기로운 버섯은 비를 맞아 부드러워지네./ 흥얼거리며 선동으로 들어서니/ 나의 오랜 근심이 사라진다.스무나무 아래에서 -金炳淵-二十樹下三十客이 四十村中五十食이라. 人間豈有七十事리오 不如歸家三十食이라 ▶스무나무 아래에서 서러운 나그네/ 망할 동네에서 쉰 밥을 주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집으로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는 것만 같질 않네.山居 -李仁老-春去花猶在요 天晴谷自陰이라. 杜鵑啼白晝하니 始覺卜居深이라. ▶봄은 지났어도 꽃은 여전하고/ 하늘이 맑아도 골짜기는 그늘졌네./ 두견새가 대낮에 울어대니/ 비로소 내 사는 집 깊은 줄 알았네.月溪途中 - 劉希慶-山含雨氣水生煙한데 靑草湖邊白鷺眠이라. 路入海棠花下轉하니 滿枝香雪落揮鞭이라. ▶산은 비 기운 머금고 물에선 안개 피어나는데/ 푸른 풀 우거진 호수가엔 백로가 졸고 있네./ 길이 해 아래로 구비져 돌아드니/ 가지 가득 향기로운 눈이 휘두르는 채찍에 떨어지네.夢魂 -이옥봉-近來安否問如何오 月到紗窓妾恨多라. 若使夢魂行有跡이며 門前石路半成沙라. ▶요즘 안부가 어떠하신지요/ 달빛이 사창에 비치니 저의 한이 많습니다./ 만약 꿈속의 혼에도 다닌 데 흔적이 있다면/ 문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것입니다.天王峯 -曺植-請看天石鐘하라 非其子 擇高婚 初謂惟天最尊 遂求之於天 天曰 我雖兼包萬有 非日月 則無以顯吾德 野鼠 求之於日月 日月曰 我雖普照 惟雲蔽之 彼居吾上乎 野鼠 求之於雲 雲曰 我雖使日月 失明 惟風 吹散 彼居吾上乎 野鼠 求之於風 風曰 我雖能散雲 惟田間石佛 吹之不倒 彼居吾上乎 野鼠 求之於石佛 石佛曰 我雖不畏風 惟野鼠 穿我足底 則傾倒 彼居吾上乎 野鼠 於是 傲然自得曰 天下之尊 莫我若也 遂婚於野鼠 《旬五志》▶두더지가 그 자식을 위해 좋은 혼처를 택하고자 하여 처음 오직 하늘이 가장 존귀하다 생각하고 드디어 하늘에게 그것을 구하다. 하늘이 말하길 내 비록 만물을 포함하고 있으나 해와 달이 아니면 나의 덕을 드러낼 수 없도다 하다. 두더지가 그것을 해와 달에게 구하니 해와 달이 말하길 내 비록 널리 비추나 오직 구름이 그것을 가리니 저것이 내 위에 있도다 하다. 두더지가 그것을 구름에게 구하니 구름이 그것을 가리니 저것이 내 위에 있도다 하다. 구름이 말하길 내 비록 해와 달로 하여금 밝음을 잃게 할 수 있으나 오직 바람이 불어 흩어지게 하니 저것이 내 위에 있도다 하다. 두더지가 그것을 바람에게 구하니 바람이 말하길 내 비록 구름을 흩어지게 할 수 있으나 오직 밭 사이 석불은 불어도 넘어가지 않으니 저것이 내 위에 있도다 하다. 두더지가 그것을 석불에게 구하니 석불이 말하길 내 비록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오직 두더지가 내 발 밑을 뚫으면 넘어지니 저것이 내 위에 있도다 하다. 두더지가 이에 오만에게 스스로 만족하여 말하길 천하의 존귀한 것이 나만한 것이 없다. 하고 드디어 두더지에게 혼인하다.[伯兪之孝] 伯兪有過 其母笞之泣 其母曰 他日笞 子未嘗泣 今泣何也 對曰 兪得罪 笞常痛 今母之力 不能使痛 是以泣 故曰 父母怒之 不作於意 不見於色 深受其罪 使可哀憐 上也 父母怒之 不作於意 不見於色 其次也 父母怒之 作於意 見於色下也 《小學》▶백유가 잘못이 있거늘 그 어머니가 회초리로 치니 울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다른 날 회초리를 칠 때에는 네가 일찍이 울지 않더니 지금 우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였다. 대답개를 세우다. 정남쪽을 숭례라 하고 정북쪽을 숙청이라 하다. 정동쪽을 흥인이라 하고 정서쪽을 돈의라 하다. 동북쪽을 혜화라 하고 서북쪽을 소덕이라 하다.[宮城] 宮城 在京城之中 周一千八百十三步 高二十一尺一寸 立門四 南曰光化 舊名 正門 北曰神武 東曰建春 西曰迎秋 《新增東國輿地勝覽》▶궁성은 경성의 가운데에 있으니 둘레니 1,813보라. 높이는 21척1촌이다. 문 4개를 세우니 남쪽을 광화라 하고 옛이름은 정문이다. 북쪽을 신무라 하고 동쪽을 건춘이라 하고 서쪽을 영추라 하다.虛子曰 “古人云 ‘天圓而地方’ 今夫子言 ‘地體正圓’ 何也?” 實翁曰 “甚矣! 人之難曉也 萬物之成形 有圓而無方 況於地乎 月掩日而蝕 於日蝕 體必圓 月體之圓也 地掩日而蝕 於月蝕 體亦圓 地體之圓也 然則月蝕者 地之鑑也 見月蝕而不識地圓 是猶引鑑自照 而不辨其面目也 不亦愚乎? ▶허자가 말하기를, “옛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하였는데, 지금 선생님께서는 땅의 형세가 정원이라고 말씀하시니 어찌 된 것입니까?” 실옹이 말하기를, “심하도다! 사람들의 깨우치기 어려움이여. 만물의 이루어진 형체는 둥근 것은 있어도 네모난 것은 없거늘 하물며 지구에 있어서라! 달이 해를 가려 먹어 들어가니, 일식에서 그 형체가 반드시 둥근 것은 달의 모양이 둥글기 때문이다. 땅이 해를 가려서 먹어 들어가니, 월식에서 그 형체가 역시 둥근 것은 지구의 형체가 둥글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월식이라는 것은 지구의 거울이어늘 월식을 보고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거울을 끌어당겨 스스로 비춰 보되 그 얼굴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또한 어리석지 않은가?”夫地體之圓 可驗者 非特一二 而大槪論之 月爲地影所蔽 以爲月食 影者 隨形而生矣 形方者影方 形圓者形圓 今看月食 所蔽之地影常圓 則可知地體之圓 且以南北極出入地推之 向北愈深 而北極愈高 向南漸遠 而南極之出地上 與北極無異 亦可知地體南北之圓 又以日出入早晩 有東西之差 則亦可知地體東西之圓 ▶대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 논리를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녹을 받지는 않겠다.[張保皐] 張保皐 新羅人 如唐 爲武寧軍小將 騎而用槍 無能敵者 後保皐還國 謁大王曰 遍中國 以吾人爲奴婢 願得鎭淸海 使賊不得掠人西去 淸海新羅海路之要 今謂之莞島 大王與保皐萬人 此後 海上 無賣鄕人者 《三國史記》▶장보고는 신라 사람이다.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의 소장이 되었는데, 말 타고 창을 쓰는데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장보고가 고국으로 돌아와 대왕을 뵙고 말하였다. 중국을 두루 돌아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을 노비고 삼습니다. 원하옵건대 청해에 진을 설치하여 도적으로 하여금 사람을 붙잡아 서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청해는 신라 바닷길의 요충지이니, 지금은 이 곳을 완도라고 한다. 대왕이 장보고에게 군가 만명을 주니, 이후로는 해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파는 자들이 없었다.[錦繡江山] 京城 有十一歲女學生 以獨立運動 而被捕 日警 嚴訊曰 汝何故 執旗而喜樂耶 女兒 答曰 吾有失物之復得者 故喜爾日警曰 汝失何物乎 女兒曰 我大韓民族世傳之三千里錦繡江山也 日警曰 汝 小兒 何知而樂此耶 女兒 更以溫言 答之曰 爾 實無知識矣 向日 吾母失一小針 覓至半日 乃得而喜形於色 況三千里錦繡江山 復爲我有 何樂 知之日警 亦爲之感而落淚云 《朴殷植 全書》▶서울에 11세 여학생이 독립 운동으로 체포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일본 경찰이 엄하게 신문하기를 너는 무슨 까닭으로 깃발을 잡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느냐? 하였다. 여자아이가 답하기를 나는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얻은 것이 있다. 때문에 기뻐할 뿐이다. 하였다. 일본 경찰이 말하기를 너는 무슨 물건을 잃었느냐? 여자아이가 말하기를 우리 대한의 민족에게 대대로 전해 오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다하였다. 일본 경찰이 소리 높혀 말하기를 너는 어린아이이다. 무엇을 안다고 이것을 즐거워하느냐? 하였다. 여자아이가 다시 온화한 말로 답하기를 당신은 진실로 아는 것이 없군요. 전날에 나의 어머니가 작은 바늘 하나를 잃었는데, 한나절에 이르도록 찾아 마침내 얻고서야 기쁨이 낯빛에 드러났거늘 더구나 삼천리 금수강산이
    교육학| 2005.02.06| 61페이지| 5,000원| 조회(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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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정서법] 한글맞춤법 오용사례
    1. 들어가며정보화 사회를 맞아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는 모두 언어를 매개체로 하고 있는데, 그만큼 언어의 표준화가 시급하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하지만 우리는 맞춤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 우리말을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언어 소양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해도 생활 언어 중의 실수는 누구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교양 있는 언어 표현과 올바른 국어 생활을 위해서 그 실수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이러한 현상은 일상 생활 언어에서뿐만 아니라 대중 매체인 방송 언어나 신문, 잡지, 각종 서적, 유인물 등에서의 국어 요용 실태는 심각할 정도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우리의 국어는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심각성을 생각하여 우리 주변에서 언어 지식의 부족이나 관심 부족으로 인하여 알게 모르게 저질러지는 국어의 오용 사례를 모아 한글맞춤법 및 표준어 규정에 의거하여 바르게 고치고 올바른 언어 생활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2. 본 론1) 어둠 속을 날으는 일 역시 그만두게 되어 ⇒ 나는 우리는 ?날다?라는 동사의 관형사형으로?날으는?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서 자동사 ?날다?는 맞춤법 제18항에서 나오는 ㄹ 불규칙활용을 하는 동사이므로 ?나니, 난, 나는, 납니다?등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나는 일?로 써야 한다. 그러나 간혹 ‘나르는’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 ‘나르다’는 ‘옮기다, 운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나르는’이라고 하면 ‘하늘을 옮긴다’라는 뜻이 되어 버리므로 이 또한 제대로 써야 한다.2-1) 참석하지 못한 회원께도 년회비를 갹출하기로 하였습니다. ⇒ 연회비2-2) 님의 침묵 ⇒ 임 2-3) 나 류 석우에게 박 진서의 존재가 뭐 그리 대단하길래. ⇒ 유석우“년회비, 님, 류 석우” 등은 맞춤법에 어긋난다. 한글 맞춤법 제5절의 규정을 보면, 한자음 ‘녀등의 행사를 치르실 수 있습니다. ⇒ 돌옛날 맞춤법에 ‘주년(週年)’을 나타낼 때는 “돐”이라고 쓰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행 맞춤법에서는 “첫돌”의 줄임인 “돌”도 ‘돌’, ‘주년(週年)’을 나타내는 “돌”도 “돌”이라고 표기한다. 이것은 표준어 규정이 개정되면서 돌과 돐 중에서 단어들의 의미를 구별함 없이, 한가지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표준어 규정 제6항으로 인해 통일된 결과이다.4) 어서 오십시요. ⇒ 오십시오 ?~요?와 ?~오?는 종결형에 사용되는가 연결형에 사용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것은 맞춤법 규정 제 15항의 [붙임2]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어미 ?-오?는 ?요?로 소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라는 규정과 제 15항 [붙임3] ?연결형에서 사용되는?이요?는 ?이요?로 적는다.?는 규정에 의한 것이다.5) 하늘이 감동하도록 열심히 일하면 세상에서 않되는 일이 없다. ⇒ 안되는‘않-’은 ‘아니하-’의 준말로 제40항 [붙임1] “「ㅎ」이 어간의 끝소리로 굳어진 것은 받침으로 적는다”라는 규정에 따라 받침으로 적게 되는 경우이며‘안-’은 ‘아니-’의 준말로 제32항 “단어의 끝 모음이 줄어지고 자음만 남은 것은 그 앞의 음절에 받침으로 적는다”라는 규정을 따른다. 따라서 이 둘을 구별해서 적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6) 전세?월세방 있슴 ⇒ 있음 맞춤법 제19항 ?용언의 어간에 ?이?나 ?-음/-ㅁ?이 붙어서 명사로 된 것과 ?-이?나 ?-히?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는 원칙에 따라 '있음'으로 표기해야 한다. ‘있다’와 ‘없다’의 명사형 표기는 흔히 ‘있슴’과 ‘없슴’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읍니다’, ‘-습니다’를 ‘-습니다’로 통일시킨 《표준어 규정》 제17항의 규정에 잘못 유추되어 적게 된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있음’과 ‘없음’으로 밝혀 적어야 한다.7-1) “...사랑을 할꺼야 사랑을 할꺼야 아무도 모르게 너만을 위하여 나를 지켜봐 줘 나 를 지켜봐 빛 따위가) 바래다’의 명사형으로 ‘바라다, 소망하다’의 ‘바람’과는 다르므로 구별해서 적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름’은 ‘얼음’과 흔히 혼동하여 사용되기 쉬운데 ‘어름’은 ‘ 두 물건이 맞닿은 자리, 물건과 물건의 한가운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또한 ‘얼다’의 명사형인 ‘어름’과는 구별해서 써야 한다.9-1) 노래말은 민요가 지니는 특성을 보이고 있어... ⇒ 노랫말9-2) 자장가처럼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 혼잣말 9-3)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말처럼 말했다 ⇒ 혼잣말 9-4) 그는 20년간 지역사회에서 농삿일을 하면서 ⇒ 농사일9-5) 지난 13일치 1면 머릿기사에, ⇒ 머리기사 9-6) 당분간은 중간 계투로 나서 투구 회수를 늘려갈 계획이다. ⇒ 횟수이 경우는 모두 사이시옷과 관련된 한글맞춤법 제30항 규정의 오용된 예들이다. 9-1,2,3)은,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어야 한다. 9-4)는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날 때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 그러나 ‘농사일’은 표준 발음이 [농산닐]이 아니고 [농사일]이므로 사이시옷을 적을 필요가 없다. 9-5)의 ‘머리기사’는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지 않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쓸 수 없다. 또한 9-6)의 경우, 두 음절로 된 한자어 중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는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 규정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0) 몸을 깨끗히 해야 한다 ⇒ 깨끗이 위와 마찬가지로 또한 공중 화장실에 가보면 ‘깨끗이’와 ‘깨끗히’를 잘못 쓰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여기서 ‘깨끗히’는 잘못된 표기이다. 이것은 원칙은 없지만 구별하기 쉬운 방법은 ?하다가 붙는 말은 ?히를, 그렇지 않은 말은 ?이로 쓰면 된다. ?깨끗이?와 관련된 규정을 찾아보면 맞춤법 제 2귀 역시 시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구법과 귀법, 문구와 문귀, 인용구와 인용구 등이 있다. 주의할 점은 예외가 있어서 '글귀'의 경우는 그대로 '귀'로 읽는다. 그리고 ?싯귀?에서는 구가 귀로 잘 못 쓰인 것 뿐 아니라 사이시옷 역시 잘못 들어가 있다. 이는 맞춤법 제 30항 “두 음절로 된 한자어는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만 사이시옷을 인정한다”에 어긋나기 때문이다.12) 뿌셔뿌셔 ⇒ 부숴부숴 과자 이름 중에 ?뿌셔뿌셔? 라는 것이 있다. 이 과자는 라면같이 생겨서 손으로 과자를 부숴 먹는 것이다. 따라서 ?뿌셔뿌셔?라는 표기는 아무리 소리대로 썼다고 해도 의미상 ?부숴부숴?가 되어야 한다. 왜나하면 '여러 조각나게 두드려 깨뜨리거나, 어떤 물건을 파괴해서 못 쓰게 만든다'는 말은 '부시다'가 아니라'부수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시다'는 '그릇을 부시다'와 같이 그릇 따위를 깨끗이 씻는다는 뜻이 있고, 또한 '눈이 부시다'와 같이 쓰인다. 이는 표준어 모음 제1부에 의거한다. 또한 자세히 보면 상품명 위에 제조 회사 이름이 ‘오뚝이’가 아닌 ‘오뚜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맞춤법 규정 제23항 ‘-하다-, ’‘-거리다’가 붙는 어근에 ‘-이’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고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음을 따라야 할 것이다.13) 아니면 내려가서 직접 얘길 듣던가 ⇒ 듣든가 한글 맞춤법 규정 제56항에 따라 지난 일을 나타내는 어미는 ‘-더라, -던’으로 적으며 물건이나 일의 내용을 가리지 아니하는 뜻을 나타내는 조사와 어미는 ‘-든지’로 적는다. 여기서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선택할 것에 대한 표현이므로 ‘-든지’로 써야 정확한 표현이다.14) 39명의 친구들이 사망한지 39일이 흘렀습니다 ⇒ 사망한 지‘지’가 어미 ‘-은’ 뒤에 쓰여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낼 때에는 의존 명사이므로 맞춤법 제42항에 따라 띄어 써야 한다.15) 누네띠네 ⇒ 눈에 때문으로 보인다. 굳이 맞춤법에 따라 적지 않고 ?누네띠네?로 적어 소비자들에게 잘 기억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 또한 한글맞춤법 오용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16) 증권정보 업체 중 계시판이 가장 활성화된... 거쳐 퇴출 종목들의 토론 계시판을 삭 제하지 않기로... 바꿔 계시판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그는 "앞으로도 주 주들의 활동이 활발한 퇴출 기업의 계시판은 삭제하지... ⇒ 게시판역시 많이 틀리는 맞춤법 중의 하나이다. 한글맞춤법 “제8항 ‘계, 례, 몌,폐, 혜’의 ‘ㅖ’는 ‘ㅔ’로 소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ㅖ’로 적는다.”의 규정 아래 예외로 제시된 “다만, 다음 말은 본음대로 적는다. ⇒ 게송(偈頌) 게시판(揭示板) 휴게실(休憩室)”를 따라야 한다. ‘폐품’이나 ‘사례’ 같은 경우에서 보면 발음이 이중모음인 'ㅖ‘가 아니라 ’ㅔ‘로 발음된다. 즉 〔페품〕〔사레〕등으로 단모음으로 발음된다. 게시판도 이와같은 경우인데 발음이 〔게시판〕으로 되어서 ’계시판‘으로 적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게(揭)는 본래 한자의 음이 ’게‘임으로 ’계‘로 적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17-1) ... (그림 2-3)은 막대 그림표를 이용하여 절선 그림표를 작성한 것이다. (그림 2 -3) 절선 그림표 4) 누가백분률 곡선 누가백분률 곡선을 오자이브(Ogive)이라고도 하는데, 백분점수를 파악하는데 이용한다. X축에는 각 급간간의 정확상한계에 해당 하는 누적... 17-2) ...실시 시기 N=37 ( )은 백분률 구 분 방과 후 주로 방과... 월 보수 N=37 ( )은 백분률 구분 40만원 이하 50만원... 대한 견해 N=99 ( )은 백분률 구... 대한 견해 N=99 ( )은 백분률 구분 도움이 된다...)17-3) 백분률 안전생활과 관련된 행사 나... 09(87명) 백분률 안전교육을 실시... 04(9 명) 2002. 09(9명) 백분률 학생 안전 교육에... 04(9명) 2002. 09(9명) 백분률 안 전 교육
    교육학| 2005.02.06| 7페이지| 3,200원| 조회(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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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맞춤법의 역사적 변천
    《맞춤법의 역사적 변천》Ⅰ. 한글 맞춤법 통일안(조선어학회, 1933)1. 제정 경위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공표한 우리 나라 어문 규정에 의한 국어정서법 통일안이다. 1948년 공식적으로 채택한 뒤 한국 정서법의 법전이 되었다. 한글맞춤법은 주시경(周時經)에 의하여 개척되었고 주로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발전된 국어 연구의 결실로서,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학회 총회의 결의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기로 하고, 권덕규(權悳奎)?김윤경(金允經)?박현식(朴賢植)?신명균(申明均)?이병기(李秉岐)?이희승(李熙昇)?이윤재(李允宰)?장지영(張志暎)?정인승(鄭寅承)?최현배(崔鉉培) 등 위원 12명이 2년 동안 심의를 거듭한 결과 1932년 12월 원안을 완성하였다.다시 김선기(金善琪)?이갑(李鉀)?이만규(李萬珪)?이상춘(李常春)?이세정(李世禎)?이탁(李鐸) 위원 6인을 더 뽑아 같은 해 12월 25일부터 다음 해인 1933년 1월 4일까지 개성(開城)에서 원안을 축조(逐條) 심의하여 제 1독회를 마치고, 수정위원으로 권덕규?김선기?김윤경?신명균?이희승?이윤재?장지영?정인승?최현배 등 10인을 선출하여 수정안을 만들게 하였다. 그 후 1933년 7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화계사(華溪寺)에서 6개월 만에 그 수정안을 재검토하여 제 2 독회를 마치고 이를 전체적으로 마무리짓기 위하여 정리위원 9명(권덕규?김선기?신명균?이희승?이윤재?정인승?최현배 등)에게 마지막 정리를 하게 한 뒤 1933년 10월 19일 조선어학회 임시총회에서 이를 시행하기로 결의하였다. 3년에 걸쳐 125회의 회의를 통해 완성된 <한글맞춤법통일안>은 1933년 10월 29일 한글 반포 487돌을 기념하여 한글날 공표되었다. 이 때 온 사회가 이 민족적 큰 사업에 크게 환영하여 신문, 잡지 등, 그 밖의 모든 인쇄물이 이를 따라 실행하였다.2. 내용〈구성〉 우리말의 맞춤법에 대한 규칙을 체계적으로 세운 것으로서 총론 3항, 각론 7장 63항, 부록 1?2로 이루어져 있다. 총론은 통일안의 않느냐를 다루었다. 체언과 조사, 어간과 어미를 구분하여 표기하고, 피동형과 사역형을 <먹이다?얽히다>처럼 역시 원형을 밝혀 적도록 하였으며, 그때까지 쓰지 않던 받침들인 <ㄷ?ㅈ?ㅊ?ㅋ?ㅌ?ㅍ?ㅎ?ㄲ?ㄳ?ㅆ>을 모두 쓰게 하여 종래보다 형태소(形態素)의 기본형을 밝혀 적는 원칙을 많이 취하였다. 그러나 변칙용언의 변칙활용은 <나으니?들으니?고우니>처럼 원형을 밝혀 적지 않게 하였으며 파생어의 경우 <깊이?손잡이?웃음?움직이다>처럼 <음>이나 <이>가 결합된 것은 어원을 밝혀 적고 그렇지 않은 것은 <마개?너무?모가지?지붕?미덥다>처럼 원형을 밝혀 적지 않도록 하였다. 다만, 의성어?의태어인 <개구리?얼루기> 등이나 <하다>를 결합시키지 못하는 어근(語根)에서 온 <동그라미?반드시?슬며시> 등은 비록 <이>가 결합되더라도 원형을 밝혀 적지 않도록 하였다. 두 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복합어는 두 단어의 원형을 그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나 어원이 불분명한 <며칠?이틀> 등이나 <ㄹ>받침이 떨어지는 <소나무?부삽> 등은 소리나는 대로 적고 두 단어 사이에 <ㅅ?ㅂ>을 넣어 <냇가?콧등?멥쌀>로 적는 규정을 두었다. 제 4 장 한자어에서는 종래의 ?녀(子女)? 일(每日)?샤회(社會)?긔챠(汽車) 등의 < 어> 및 치찰음(齒擦音) 다음의 <야?여?요> 등을 버리고 <료리(料理)?리장(里長)?락수(落水)> 등의 경우 어두(語頭)에 <ㄹ>을 쓰지 않고, <디구?텬디> 등 구개음화 이전의 형태를 <지구?천지>로 바꾸어 쓰도록 규정하고 기타 속음(俗音)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었다. 제 5 장은 <나는 → 난, 고프어 → 고파, 흔하다 → 흔ㅎ다(또는 흖다)>처럼 준말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었다. 제 6 장은 외래어 표기를 할 때에 표음주의를 취하라는 규정만 두고 예는 전혀 들지 않았다. 제 7 장 띄어쓰기에는 총론 3항을 되풀이하고 수는 십진법으로 적고 복합고유명사는 단어단위로 띄어쓰는 등의 규정을 두었다. 부록1은 표준말에 관한 규정이고, 부록2 부호에는 구두점을 비롯한 여러으로의 진정한 복고(復古)라고 믿고 있었다. 이런 점을 제외하면 통일안의 문자체계는 대체로 종래의 관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곧, ?ㅇ?이 그 위치에 따라 음가(音價)를 달리하는 점, 또는 ?ㅐ?ㅔ?ㅚ? 등이 18~19세기 교체기 이전까지 글자구조 그대로의 이중모음(二重母音)이었으나 그 이후 단모음화(單母音化)하여 [æ?e?ø]로 되었는데도 자형(字形)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특징〉 한글맞춤법통일안의 핵심은 제3장 ?문법에 관한 것?에 대한 제규정들로서 이는 당시의 문법가들의 형태론(形態論) 연구의 결집이었다. 제3장은 7절로 이루어졌으며 제1 ?2 ?4절은 굴절(屈折)에 관한 것, 제3 ?6 ?8절은 파생(派生)에 관한 것, 제7절은 합성(合成)에 관한 것으로 이 제3장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원리는 가능한 한 굴절과 파생 또는 합성을 통하여 어간이나 접사(接辭) 등 각 형태소(形態素)는 구별 표기해야 하며, 동일한 형태소는 동일한 표기형식에 의하여 대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총론에서 규정한 ?어법에 맞도록?이란 구절의 의미이며 ?원형을 밝혀 적는다?는 말의 뜻이다. 이와 같이 형태소의 기본형태를 가려 그것을 항상 고정적으로 표기하도록 한 것은 말의 뜻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소리대로 적게?되어 있다. 첫째 본형태를 표시해서는 발음에 지장이 있을 경우이거나 기본형태와 변이형(變異形)이 너무 동떨어진 경우(제26?56항, 한자음으로는 제42?43?44항), 둘째 파생에 있어서 한 형태소나 국한된 형태소와만 결합되는 접미사와의 표기(제13?15항), 셋째 통시적(通時的)으로 보면 분석이 되는 것일지라도 공시의식(共時意識)으로 보아서 용이하게 분석되지 않을 때(부터, 개구리, 고치다, 결코 등: 제20?22?58항 등), 또 공시의식으로 전혀 분석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분석을 일반화하기 어려울 경우(나쁘다, 바쁘다 등: 제17장, 파랗다, 무겁다 등: 제27장), 띄어쓰기는 단의 문장부호를 증보?수정하였다. 1946년 제 3 차수정은 제10항?48항?61항에 단서를 추가하고 제30항의 <사이시옷>을 다시 폐지하였으며 제62?63?64항을 폐지하고 제65항을 제62항으로 보내는 대신 63항을 신설하였다. 그 뒤 1948년과 1958년에는 국한문혼용의 통일안을 순 한글로 바꾸거나 문법용어를 고유어로 바꾸었을 뿐 개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1988년 제 4 차수정에서는 명칭을 <한글맞춤법>으로 고치고 본문과 부록의 체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였으며, 필요없게 된 규정을 삭제?정비하였다. 한편 사전에 올릴 때의 자모(字母) 순서의 규정, 한자음의 두음법칙에 관한 세부규정 신설, 된소리로 나는 접미사의 표기규정 신설, 문장부호 규정의 보완?정비 등 종전 규정들의 미비점들을 보완하였다. 또 실용상 지켜지지 않는 종전규정과 띄어쓰기 규정을 현실화하여 허용사항을 늘려 사용상 융통성이 있게 하였다.Ⅱ. 한글 맞춤법(한글학회, 1980)1. 제정 경위1980년 8월 28일, 한글 학회(옛 조선어 학회)가 1933년에 처음 발표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원안을 바탕으로 개편하여 내놓은 글자 적기에 관한 규정이다. 한글 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이 발표된 지 거의 반 세기를 지낸 때에 와서 현대 언어학적인 이론과 현대 언어 생활에 맞는 적기 규정이 요구되었으므로, 1979년 1월 16일 한글 학회 이사회에서 그 원안의 규정을 바탕으로 이를 전면 개편하기로 결의하고 "한글 맞춤법"(1980)을 내놓은 것이다. 1980년 이전에도 일부 수정, 개정, 용어 수정 등을 거치었다.한글 맞춤법이란 한국어를 한국 언어사회의 규범이 되도록 어법에 맞게 표기하는 방법으로 국어 정서법(正書法) ?국어 정자법(正字法)이라고도 한다. 국어정서법은 한자를 비롯한 외래문자체계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라 할 수 있고 한글맞춤법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이전에는 한자어로서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 또는 조선문철자법이라고도 하였으나, <철자법>이라는 용어는 개화기에는 문자의 되는데,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는 명사와 조사, 용언과 어미를 분리하여 표기한 예가 있고 다른 문헌들은 받침을 뒤의 조사나 어미에 내려 썼다. 받침을 조사나 어미에 내려 쓰는 연철 표기의 전통은 16세기부터 조금씩 무너져 점차 명사와 조사, 용언과 어미를 분리하여 표기하는 분철 표기의 방식이 행해졌다.초기 한글 문헌의 특징 중 하나로 8종성법을 들 수 있는데 《월인천강지곡》과 《용비어천가(龍飛御川歌)》는 8종성법을 지키지 않고 ?ㅈ, ㅊ, ㅍ, ㅌ? 등의 받침을 썼다. 그러나 나머지 문헌들은 모두 8종성법을 지켰고 17세기 말부터 7종성법으로 바뀌어서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19세기 말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한글 신문이 간행됨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맞춤법 제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1907년 학부 안에 국문연구소를 설치, 1909년 8명의 연구위원이 국문연구의정안을 보고하였다. 이 안은 받침에 ?ㄷ, ㅈ, ㅊ, ㅋ, ㅌ, ㅍ, ㅎ?을 쓰고 된소리 표기에 ?ㅺ, ㅼ, ㅽ, ㅾ?을 버리며 ?ㄲ, ㄸ, ㅃ, ㅆ, ㅉ?을 쓰도록 하여 오랜 전통을 깼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 안은 공포, 실시되지 못하고 국권피탈을 맞아 사장되었다. 국권피탈 후 일제는 조선어 교과서를 만들었고 이에 통일된 한글맞춤법이 필요하게 되어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이라는 맞춤법통일안을 만들어서 12년 4월 공포하였다. 이 표기법은 받침으로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 ㄺ, ㄻ, ㄼ?만 허용하고 된소리 표기를 ?ㅺ, ㅼ?처럼 하여 19세기 말까지의 전통적 표기법으로 돌아간 면이 있었다. 반면 ? ?를 폐기한 것은 진일보한 면이었다.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은 이후 21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대요?라는 이름으로, 1930년 2월에는 ?언문철자법?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되었는데, 언문철자법은 된소리는 ?ㄲ, ㄸ, ㅃ, ㅆ, ㅉ?의 병서로 하고, 받침은 ?ㄷ, ㅌ, ㅈ, ㅊ, ㅍ, ㄲ, ㄳ, ?, ㄾ ,ㄿ, ㅄ?을 더 쓰며 어간과 어미, 체언과 토는 구분하여 적도록 하여 .
    교육학| 2005.02.06| 6페이지| 3,000원| 조회(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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