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분석철학은 철학의 방법론에 대한 명칭으로 이해될 수 있는 동시에 영국이나 미국 등의 영어 문화권 속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철학적 사조로서도 이해될 수 있다. 철학의 방법론으로서 분석철학은 그 이름이 나타내 주듯이 철학은 일종의 분석적 활동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어떤 사유적인 형이상학적 작업이 철학의 진정한 기능이 아니라, 제시된 논증들의 명료한 분석과 비판이 바로 철학의 일차적 임무라고 주장한다.분석철학이라는 이름 속에는 무어에서 시작하여 러셀과 같이 진행한 초기 실재론,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원자론, 일상언어의 의미분석을 시도하는 오스틴의 일상언어학파, 검증 원리를 토대로 하여 철학의 과학화를 시도하는 슐리히, 바이스만, 파이글 등의 논리실증주의자들 등등 이러한 철학적 활동 모두를 말한다. 다양하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들 철학적 활동은 모두가 논리적, 언어적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데 공통점이 있고,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이들은 모두 분석철학이라고 불린다. 분석철학자들은 이처럼 언어를 통하여 세계의 기초 개념을 선명하고 분명하게 들어내려 하였다. 즉, 언어분석을 통하여 세계의 구조를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분석철학은 다른 분야의 철학과 비교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너무 복잡하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일정하게 나누기가 힘들 것으로 보이는 분석철학의 역사를 그로스(B.R.Gross)는 아래와 같이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 단계는 무어와 러셀 등에 의해 수행된 분석철학의 정초 단계로서 철학적 문제나 명제들을 명확하게 재구성함으로서 그것들의 의미를 확실히 파악하고 명확한 답을 얻으려한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진리함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상적인 형식언어를 구성하여 이 형식언어에 대한 환원적 분석을 통해 세계의 모습을 이해해보고자 시도한 논리원자주의의 단계이다. 셋째 단계는 형이상학을 배제하고 동시에 과학을 설명하는데 적합한 이상언어를 건설하려 시도한 논리실증주의의 단계이다. 넷째 단계는 라일과 비트렷한 철학운동을 태동시키기 이전 시기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할 수 있는 무어나 러셀, 프레게 등이 있다.무어는 관념론자들이 그 체계적 완비와 통일성 때문에, 명확함과 정밀함을 희생으로 하고 있는 것을 공격하고, 인식론적 측면에서 관념론이 지각작용과 지각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적어도 지각작용과 지각대상이 구분되는 이상,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지각주체나 인식주체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또한 러셀과 프레게는 만약 관념론이 참이라면 수학이나 논리학이 지니고 있는 필연성이 해명되지 않는 점을 공격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관념론이 참이라면, 수학적 필연성이나 논리적 필연성은 기껏해야 우리의 주관적인 필연성, 즉 심리적 필연성에 지나지 않게된다.러셀과 프레게는 이러한 관념론에 대해서 그것은 언제나 실재적인 것을 무시하고, 의식작용과 의식작용의 대상을 구분치 못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적어도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사유나 언어의 대상들은 단지 의식내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의식 초월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실재적인 것이다. 이러한 의식 초월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언어나 사유의 대상들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왜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필연성이 성립하는지를 해명할 수 없다.존재론적 측면과 인식론적 측면에서 감행된 관념론 비판, 즉 실재론의 철학이 그 이후에 전개되는 분석철학의 흐름에 결정적인 문제배경을 마련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관념론의 주장처럼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전체적인 자아나 정신에 의존한다면,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독일 관념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체성에 있는 것이라면,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것을 조각내는 분석이라는 활동 자체는 기껏해야 진리에 대한 왜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실재론의 철학은 분석이라는 철학적 작업에 대한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실재론의 철학은 기호논리의 작업으로 구체화되고, 또 경험주의의 옷을 보다 세련되게 걸침으로써 소위 분석철학이라고 부를존재하는 사태와 대응되어 그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원자문장의 결합꼴로 환원시킬 수 있고, 마찬가지로 단순한 원자문장으로서 그 자체는 세계와 정확하게 대응되지 않는 복합문장들을 구성할 수 있다. 복합문장들이 바로 이렇게 구성되기 때문에 복합문장에 대응되는 복합사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적 원자론은 요소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데 있는 데, 이러한 주장은 헤겔의 관념론이 주장하는 형이상학적 전체론(holsim)과 대조될 수 있다.논리적 원자론은 원자주의와 요소주의라는 기본적 논제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러한 세계관이 우리의 언어나 논리적 구조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언어의 단어적 의미는 그 외연적 대상이며, 더 나아가 문장적 의미는 참과 거짓이 가능한 진리조건 하에서 규정될 수 있는 진리값이라는 외연성의 논제를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작업을 문장들의 외적 구조의 영역에서 탐색해 나간다. 이러한 작업이 오늘날 우리가 진리함수적 문장논리라고 부르는 기호논리학의 한 부분을 이룬다.문장들은 이렇게 외적인 논리관계로 나타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름과 기술이라는 내적 구조로 표현될 수 있다. 전통적인 표현법으로 주어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을 지칭하며, 반면에 술어항은 이름처럼 독립되어 존재하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아무런 의미가 없고 문맥 안에서 사용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얻는 함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름은 밖에 존재하는 개체들을 지칭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함수인 술어나 기술들은 비록 그러한 기술의 표현들이 주어의 자리에 온다고 해도 밖에 존재하는 대상을 지칭하지 못한다. 문장의 내적 구조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기호논리학의 양화이론에서 유지되는 기본적 주장을 이루고 있다. 러셀은 그의 기술이론(theory of description)에서 이러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주장을 통해 자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너무나 많이 인정해 놓았던 사이비 대상들의 실재성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이런 호언어의 구조를 확보하기 위해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인식하는 경험명제들과 우리의 심적인 판단을 보여주는 믿음 등의 지향성 명제에 환원적 분석을 가했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논리실증주의는 인식론에서 현상적 대상, 즉 감각소여에 대한 문장으로 물리적 대상에 관한 문장을 번역함으로써 경험대상과 경험인식 사이에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복합사태를 부정하는 현상주의적 입장으로서 달성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적 태도, 또는 믿음문장이 산출하는 복합적인 사태를 행동적 성향으로 분석해 내는 논리적 행동주의 철학에서도 이러한 과제가 추구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현상주의적 분석과 행동주의적 분석을 용인한다면, 우리의 인식론적인 구조는 경험적인 현상명제들이 기초적이고 요소적인 문장들을 구성할 것이고 그 이외에 모든 것들은 단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관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바로 세계에 대해 인지적 정보를 제공해 주는 종합문장이며, 이러한 종합문장들의 연결과 구성은 분석적인 문장들이 담당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 유명한 논리적 실증주의의 분석과 종합에 대한 이분법과 검증주의적 규준이 과학성과 유의미성의 규준으로 성립한다.그러나 이와 같이 수학이나 경험 과학 외에 인식을 공급하는 것이 없다고 하면, 철학의 학으로서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의문이 당연히 생긴다. 논리실증주의는 이 물음에 대하여 철학에 인식을 공급할 자격이 없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철학의 임무는 언어표현의 명석화에 있고 그 이상에는 나아가지 않는다고 답한다. 즉, 그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일상의 언어에 있어서는 언어를 지배하는 논리구조가 나타나 있지 않고 이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전혀 이질의 명제가 문법상 서로 닮은 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만의 이유로 같은 것으로 취급되거나 명제 닮음이 본래적인 명제로 잘못되거나 한다. 이 결과 많은 혼란이 생기고 이 혼란의 결과 형이상학이 생긴다. 철학의 임무는 언어표현의 논리구조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러한 혼란을 제거하는 것에 있고 또 그것으로 다 문제와 과학적 문제를 분명히 구분한다. 무엇보다도 철학은 경험과학의 일종이 아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철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경험적 실험과 관찰을 근거로 해서 철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철학적 문제의 특수성을 언어의 오해에서 찾는다. 초기에 그는 언어의 논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이러한 논리만이 언어의 유일한 기능이 아님을 깨닫고 좀더 광범위한 철학적 탐구에 몰입한다. 마침내, 그는 철학자들이 언어의 오용에서 비롯된 일종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질병의 원인을 찾아 철학자들로 하여금 자기치유의 능력을 함양하는데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5. 일상언어분석일상언어학파는 논리실증주의에서 발전해 나온 학파다. 이들 두 학파는 전통적인 철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철학의 명료성과 정밀성을 덕으로 삼았지만, 서로간의 철학은 무척 다르다. 논리실증주의가 과학주의적이고 반형이상학적이었던 반면, 일상언어학파는 반과학주의적이었고 형이상학에 대해서 중립적인 입장이었다.일상언어학파가 반과학주의적이었던 것은 과학이 기술적(technical)이지 않은 개념들에 논리적으로 의존하는 기술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기술적인 단어들에 의존하지만, 모든 기술적 단어들은 일상적 의미를 가진 단어나 다른 기술적 단어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 만약 기술적 단어들이 다른 기술적 단어에 의해 정의된다면, 결국 이들은 일상적 의미를 가진 단어들에 의해 정의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기술적인 단어들은 그 개념에 있어서 이미 이해된 것들에 의한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과학은 세계에 대한 이론 이전의 이해에 의존한다.일상언어의 철학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언어는 논리원자론자들이 생각하듯이 언어의 다양한 기능들을 무시하고 마치 언어의 본질이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 나름의
서 론단 두권의 철학서로 서구 철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진 비트겐슈타인은 일찍이 칸트처럼 칩거와 은거 생활 속에서 철학을 한 차가운 철학자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언어실천을 테마로 하는 그의 후기 언어관은 그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메마른 논리실증주의자와는 달리 뜨거운 것이었다. 그의 전기 철학은 논리철학논고 에 담겨있다. 논리철학논고 는 실재의 구조가 언어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견해에 입각해있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은 이 견해를 거부하면서 그 대신에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언어에 의존한다는 생각을 전개하였다. 즉 언어는 단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느슨한 상호 연결을 나타내는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전후기 철학은 모두 언어와 언어의 한계에 연관된 것이다. 그러나 전기 철학은 정확하게 잘 짜인 체계인데 반해서, 후기 철학은 단편으로 되어 있으며 주장, 기술, 질문, 추측의 형태로 쓰여져있다. 본서에서는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전추기 철학을 비교하여 분석철학의 대들보였던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본 론1. 생애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비엔나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네 명의 형과 세 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음악에 소질이 많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렸을 때 기계류에 관심을 키웠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공학을 공부한 뒤에 1908년에는 멘체스터로 가서 연구생이 되었고 그곳에서 제트엔진과 프로펠러를 고안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버트란트 러셀의 수학의 원리 를 읽었고 그 뒤 1911년에 수학자인 프레게를 만난 후에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던 러셀의 수하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1912년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입학 허가를 받아 그곳에서 종종 러셀, 무어, 케인즈 등과의 토론에 참여하면서 다섯 학기를 보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으로 참전했으며 용맹을 떨쳐서 몇 차례 훈장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남부 티롤에서 이탈리아 군 그는 불행히도 전에 제자였던 정신이상 학생에게 암살 당하였다. 그후 빈학단의 주요 멤버였던 카르나프가 미국의 시카고대학교로 옮겨가, 여기서 미국의 프래그머티즘과 독일의 논리실증주의를 융합하여 이른바 '빈·시카고 학파'가 탄생하였다을 비롯한 다른 철학자이나 수학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 시작된 철학적 활동 결과 그는 연구생으로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갔고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 논리철학 논고 { 이 책은 1921년에 출간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논리학과 철학의 문제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 원고를 완성하였고 석방된 뒤 B.러셀의 도움으로 출판하였다. 구성은 일련의 간결한 명제를 체계적으로 배열하고, 소수점을 사용해서 번호를 붙인 형식으로 되어 있다. 분량은 75쪽에 불과하지만 광범위한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언어의 본성,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 논리학, 윤리학, 철학, 인과성과 귀납, 자아와 의지, 죽음의 신비, 선과 악이 주요 내용이다.를 제출했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는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의 강의는 스타일이나 내용과 표현 면에서 아주 독창적이었으며 그는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비트겐슈타인이 1933년에서 1935년 사이에 자신의 철학 수업에서 했던 강의를 기록한 두 개의 노트는 각각 푸른 책 과 갈색 책 으로 알려져 왔다. 두 책은 감각, 상상력, 자발적 행위 등과 같은 개념들을 다루는 심리철학에 대한 그의 관심 방향을 보여준다. 1935년에 그는 소련을 방문했고, 그 뒤에는 노르웨이를 방문했는데 거기에서는 그 이전에 자신이 지어 놓은 오두막에서 살았다. 1939년에 그는 무어가 맡고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철학 과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부임하기도 전에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전쟁 기간 동안 그는 위생병으로 복무했으며 결국 1945년에야 철학 교수 자리에 취임하게 된다. 그러나 2년 뒤에는 직업적인 철학자로서의 삶이 견딜 수 없을만큼 인위적이라고 생각해서 의 세계의 그림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탐구의 언어게임의 이론을 보충한다.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2. 전기비트겐슈타인은 30년간격을 두고 출판된 두 권의 출판 저서( 논리철학논고 와 철학탐구 )로 그의 철학을 드러낸다. 전기철학을 나타내는 논리철학논고 의 서문에서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나는 철학적 문제들이 제기되는 이유가 우리가 쓰는 언어의 논리가 오해되고 있음에서 비롯됨을 이 책이 보여준다고 믿는다. 고 진술한다. 그는 논리철학논고 가 비판의 여지가 없는 확정적인 진리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러한 진리들을 주장하면서 그 자신이 문제들의 최종적인 해결 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는 논리학을 사유의 법칙에 관한 학문이라고 간주하면서 철학적 문제들은 현실 구조가 의미 있는 언어의 영역을 결정하고 논리학의 과제는 우주를 비춰주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줌으로써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논리학은 단지 다른 학문들 중의 하나이거나 그것들과 견주어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논리철학논고 의 전개가 시작된다.논리철학논고 는 번호가 붙여진 7개의 주요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주요 부분의 주제는 명제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즉, 명제는 사실들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의 주제는 요소 명제{ 비트겐슈타인은 요소명제를 정의하기를 명제들 가운데 어떠한 기본적 명제로도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의미론적 최소단위로서의 단순명제라 정의한다.에 관한 것이다. 즉, 의미 있는 모든 명제들은 궁극적으로 요소 명제로 분석 가능하며 이 명제들은 논리적으로 고유한 이름들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유한 이름이란 이름을 담지하는 사물들을 정확하게 지칭하게 해 주는 이름이다. 세 번째 부분의 주제는 두 번째 부분의 결과이다. 그것은 세계가 더 이상 분해 될 수 없는 단순한 대상들로 이루어지며, 이것은 논리적으로 고유한 이름들의 담지자로서 사실을 구성하도록 배열된다는 것이다. 네 번째 부분의 주제는 모든 명제들은 단순한 대상들의즉, 하나의 논리적 그림은 그것이 표현하는 상황의 가능성을 포함하며 게다가 현실과의 비교를 통해서 참이나 거짓으로 판명된다. 복합 명제의 진리성은 비가 오거나 오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와 같은 가능한 모든 조건하에서 참인 동어 반복적인 명제나 비가 오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 와 같이 모든 조건 아래서 거짓인 모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것의 요서 명제의 진리성에 따라 좌우된다. 이러한 두 가지 경우에 우리는 그러한 명제들을 현실과 비교해서 검토할 필요는 없다.비트겐슈타인은 동어반복과 모순을 무의미한 것 으로 기술하는데 왜냐하면 현실에는 그러한 명제들이 부여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윤리학, 미학, 종교, 형이상학 등의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 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명제들이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려고 하면서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의도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그런 명제들은 논리철학 논고 의 마지막에서 우리에게 침묵할 것 을 요구한 내용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것 은 자연과학의 명제들뿐이다.3. 후기비트겐슈타인이 1918년에 논리철학 논고 를 완성하고 지속적인 철학적 작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약 10년의 공백이 있었다. 1953년에 출판된 철학적 탐구 { 비트겐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53년에 출간된 유작으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의 핵심이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논리철학논고》(1921)과 달리《철학적 탐구》는 언어의 오용으로 생기는 문제를 비판하려 했다.《철학적 탐구》는 서양근세철학 이후에 인식론적 출발점이자 근거로 설정되었던 자아를 사적 언어비판에 기초해 공박했으며, 그 결과 심신이원론을 논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아울러《철학적 탐구》는 기술적 분석이란 새로운 철학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언어분석철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는 그의 전기 사상과 후기 사상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그러나 또한 그 연관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비트겐슈타인리 앞에 모든 것을 제시해 줄뿐이며 그것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을 연역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것의 결과들은 명백하게 무의미한 것의 이러저러한 편린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즉 철학적 문제들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항상 알고 있는 것들을 정리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들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질병을 다루는 것과 유사하다. 고 말한다. 즉 철학적 작업은 문제 - 해답의 형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질병의 경우처럼 그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면 문제가 해소되는 것이다.4. 전후기 비교비트겐슈타인이 전기 철학과 후기 철학의 비교를 우선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고찰한 방식으로 살펴보고, 다음으로 의지와 관련한 난점들을 다루는 방식을 비교하여 그의 사상에서 발생한 변화의 내용을 살펴보겠다.1)언어와 세계의 관계 변화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에서 언어와 세계라는 개념의 의미,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기초적 형태를 살펴보자.1. 언어는 명제의 총제로서 모든 명제는 요소 명제의 진리함수다.2. 세계는 사실의 총체로서 모든 사실은 원자적 사실에 의해 구성된다.3. 언어와 세계는 이원적 동형성을 유지하면서 세계가 언어에 의미를 주는 방식으로 관계한다.후기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도구와 게임에 비유한다. 도구가 삶의 세계에서 쓰여 질 때 제 기능을 하는 것처럼 언어도 구체적인 삶의 세계에서 쓰여질 때 의미가 있으며, 게임이 규칙에 의해 규정되는 활동인 것처럼 언어도 일정한 규칙에 의해 규정되는 행위이다. 이처럼 오구에서 유추된 쓰임의 개념, 게임에서 유추된 규칙의 개념, 그리고 도구와 게임이 공통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삶의 세계와 행위의 문맥에 의해서 언어의 개념은 삶의 세계에서 그 쓰임의 규칙에 의해 행해지는 언어 게임의 개념으로 구성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의 규칙을 문법이라고 부른다.언어 게임에는 언어와 그것에 연관되는 삶의 세계 또는 언어 행위의 문맥이 함께 짜여져 있으며 이것들은 언어 게임.
서 론현시대에 있어 철학의 의무는 무엇보다도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제시에 있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바라보고, 일반 사람들이 생각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여 그들의 앞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에 이러한 책임이 부과되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반성과 사유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지나간 과거를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철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보다 더 환경이 어렵다는 요즘,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나아갈 길,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인도하는 것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당연히 수행해야 될 의무이다.그 중에서도 우리 한민족의 삶을 이끌어가야 할 철학은 당연히 한국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아도 한민족의 민족적 주체성이 각 시대를 움직이는 힘이 되어 그 시대를 이끌고 나아갔다. 선도, 불교, 유교 철학 등의 모습을 빌어 나타난 우리 고유의 주체적 철학이 그 시대의 원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우리 본래의 한국철학의 모습을 찾아 자각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아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국철학의 본래적 모습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인가?본 론한국철학의 고유성과 그 역사적 원리어느 학문의 분야이든 그에 맞는 성격과 방법에 맞는 연구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국철학도 한국철학의 고유한 특성이 있기에 그에 맞는 연구 방법으로서 한국철학의 본성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철학을 연구함에 있어 기존의 연구 방식인 자료를 분석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이론을 정립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철학의 원형이 되는 한국 상고 시대와 고대 시대의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철학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방법론이 아닌 한국철학만의 고유한 방법론이 필요하게 된다.그 방법론이란 한국철학을 한국철학으로 존재케 하는 고유성을 찾아내어 그 고유성이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하여 왔고, 또 현시대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함으로써 한국 철학의 본질을 자각하고 또 그 본질을 자각함으로 한국 철학의 미래적 이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우리가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한국철학의 고유성이 어떠한 원리로서 그 모습을 변화시켜왔는지 알아내야 한다. 어떠한 역사든 사상사든지 그 변화에 있어서는 하나의 원리를 형성하면서 전개하고 있고, 그것이 그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원리를 알아야 과거의 한국 철학을 구분 할 수 있고 또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 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철학의 역사적 원리로서의 역학적 원리앞에서 제시한 한국철학의 원리로서는 역학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이유는 역학이라는 학문이 갖는 특징 때문이다. 역학은 유가 사상의 존재론적 근거인 역도를 인간의 주체적 자각을 통해 천명하는 학문이다. 역학의 학문적 과제인 역도는 크게 천도와 인도로 구분 할 수 있다. 그런데 양자의 관계는 천도에 근거하여 인도가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천도에 인도가 포함되는 동시에 천도가 인도를 통해 밝혀지는 관계이다. 따라서 역도의 본질적 내용은 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천도는 시간성의 구조와 그 작용 원리는 내용으로 한다. 시간성은 시간의 본질 내지 존재 근거로 그것이 시간의 지평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시간성의 시간적 자기 전개가 역도이다. 즉, 역도는 형이상적 존재이자. 원리적 존재인 동시에 인격적 존재인 시간성이 형이하적 존재인 객관적 시간의 지평에서 자신을 구체화, 객관화하는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역도는 인격성의 측면에서는 인격적 존재의 생성원리가 되고, 물리적 존재의 측면에서는 만물의 생성 원리가 되며 시간성의 측면에서는 우주 역사의 전개 원리가 된다. 이처럼 역도에 의하면 역사의 전개원리와 인간의 생성 원리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역사 정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한국인은 개체로서 존재하는 동시에 한국 민족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의 세계관과 인간관에는 그것을 형성시킨 한국 민족의 민족 정신이 담겨 있다. 따라서 한국 철학을 연구하는 것은 한민족의 민족 정신을 연구하는 것 일 뿐만 아니라 나의 본성을 해명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역학적 원리에 의한 한국 철학의 시대 구분앞에서 다루었듯이 역도(易道)의 생성 원리에 의하면 인격적 존재인 인간이 형성되는 원리와 한국 철학이 형성되는 원리는 동일하다. 한국 철학사를 인간의 생장에 비유하면 부모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선천적 과정으로서의 포태기(胞胎期)와 부모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와서 이루어지는 후천적인 생장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포태기(胞胎期)는 한국철학의 근원적인 고유 철학이 담겨져 있고, 생장기(生長期)는 이 포태기(胞胎期)에 형성된 씨가 싹이 트는 과정이다. 그러나 갓 태어난 생명이 그대로 꽃을 피울 수가 없듯이 출생기(出生期)의 한국 철학은 반드시 생장기(生長期)와 장성기(長成期)의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포태기에(胞胎期) 담겨진 성인적 부모의 뜻이 드러나게 되었다. 장성기(長成期)를 거친 한국 철학은 성가기(成家期)에 이르게 되었는데 성가를 통하여 비로소 성인이 되는 동시에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그 다할 바를 마침내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으로 한국 철학의 역사를 나누어 보면 한국철학 포태기(胞胎期), 한국철학 출생기(出生期), 한국철학 생장기(生長期), 한국철학 장성기(長成期), 한국철학 성가기(成家期)로 나우어진다.역학적 원리로서의 한국 철학사를 살펴보면 한국 철학이 포태기(胞胎期), 출생기(出生期), 생장기(生長期), 장성기(長成期), 성가기(成家期)의 모습으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실제 한국철학사에 있어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는지 살펴보자.1. 한국철학의 포태기(胞胎期)먼저 포태기(胞胎期)로서의 한국 철학을 살펴보면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한 새 밝힘 (光明,白,神明)의 원리를 인간고유의 본질로 하고 천지만물의 이질성의 조화를 인간 본래성으로 보는 인간주체적 자각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한국 고유의 신도사상(神道思想), 즉 밝달 사상 이 드러난다.2. 한국철학의 출생기(出生期)한국철학의 출생기(出生期)에는 포태기(胞胎期)로서의 고유사상을 부계로 하고 중국의 선도 사상을 모계로 하여 한국의 선도 사상이 형성 되었다. 한국 선도 사상의 초기는 중국 선도 사상이 전래되어 수용되는 시기로서, 삼국의 건국 설화를 통하여 고찰이 가능하다. 중기는 중국 선도 사상이 한국에서 발전하는 시기로서, 고구려의 조의 선인( 衣 仙人)제도를 통하여 고찰이 가능하다. 말기는 한국 선도 사상의 완성기로서 그 결과가 신라의 화랑 국선(花郞 國仙) 제도로 나타난다.3. 한국철학의 생장기(生長期)한국철학의 생장기(生長期)는 한국 불교 사상의 시대로 역시 세단계로 살펴 볼 수 있다. 초기는 삼국에 불교가 전래 수용되는 시기이며, 중기는 불교가 삼국에서 성장 발전하는 시기로서, 그 시대에는 승랑(僧郞)과 자장(慈藏) 그리고 원효(元曉)등이 활동하였다. 말기는 한국 불교 사상의 완성기로 민족 주체성의 자각을 통하여 단군 사상을 자가함으로써 연등불(燃燈佛)사상이 형성된다. 이 연등불(燃燈佛) 사상은 한국 불교 사상의 결정체라고 하겠다.4. 한국철학의 장성기(長成期)한국철학의 장성기(長成期)는 고려 말기에 이르러 송나라로부터 성리학이 전래되면서 시작된 유학 시대이다. 한국 유학 시대의 초기는 고려말, 조선초로서 중국의 성리학이 전래되는 시기이다. 초기의 학자로는 이언적(李彦迪)과 서화담(徐花潭)을 꼽을 수 있다. 이 시기의 성리학의 성과가 집대성되어 나타난 것이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조선 초기의 송대 역학에 대한 연구 성과가 집대성되어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기는 성리학이 성장 발전하는 시기로 대표적 사상가로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을 들 수 있다. 말기는 성리학의 한국화가 완성되는 시기로서 성리학의 비판적 검토를 통해 선진 유학의 본래 정신을 회복하고자 하였던 시기로 실학 사상이 대표적인 사상이다.하지만 한국 성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한 실학마저도 난국을 헤쳐나가지 못하자 다시금 한국 고유 사상을 자각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 결과가 동학 사상으로 나타난다. 동학은 그 개념에서 나타내듯이 당시의 서양 외래 문화에 대항하여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한국 고유의 사상임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종교적 성격이 너무 강하여 한국 고유 사상의 본질을 재 자각하여 학문적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서 론현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이상적 삶을 그려놓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 이상적 삶은 개인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굳이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그것은 누구도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형식적인 틀, 즉 이 사회 전체가 이미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 삶, 사회가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이상적 형태가 이미 우리의 마음 속에는 자리 잡고 있고, 또 거기에서 벗어나는 이상과 삶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와 달리 우리 사회에는 일상적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윤리적 삶을 추구하거나 예술적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이른바 기이한 몽상가나 초현세자(超現世者)들도 있다. 이들의 윤리적 삶과 예술적 삶이 사회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의 차이로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들과 마찰, 갈등, 반목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현실에서는 이처럼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언제나 갈등을 보인다. 그 이유는 일상적 삶이 무비판적으로 현실적 가치를 긍정하는 태도에서 출발한 삶의 모습이라면 초현세자들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현실적 가치를 반성하고 이를 개선하거나 나아가 그것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대안적으로 제시된 삶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현세자들 중 주어진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제시하면서 관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장자가 대표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장자의 비판문제와 그 비판과 부정으로 인한 반성과 사유를 토대로 장자가 추구한 또 다른 세계를 잠시나마 엿보도록 하자.본 론장자(B.C. 약 370~약 280)는 전국시대의 참혹한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구속하는 온갖 물질적, 육체적 욕망과 조작되고 편벽된 일면적인 지식에서 비롯되는 일체의 정신적 질곡 및 부자유에서 벗어나 무위자연의 대도와 일체가 되어 무한한 절대 자유의 정신 경계에서 소요유하는 것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수 있다. 장자는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장자는 우화를 통한 우회적 서술기법을 통하여 깨침의 상승효과를 기대한다. 그래서 장자에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 과장과 역설의 언어가 동원되고 있다. 이것은 장자가 부조리한 현실에서 초탈하고자 하는 소요유의 경지에 다다르고자 하는 일종의 방법론이다.장자는 일반적인 현실적인 삶이 아닌 현실로부터의 비상 즉,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래서 장자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비판하면서 이상을 동경한다. 하지만 장자는 단순히 비판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을 포함하는 부정이다. 장자가 이 비판과 부정, 해체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도의 세계이다. 이 비판을 통한 해체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도의 세계이다. 이러한 해체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도의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 도는 자연성을 지닐뿐이기 때문에 도에 강제되었던 일체의 외재적 요소가 해체되기만 하면 자신의 본원성을 저절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더 이상 비판과 부정, 해체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을 때 세계는 드디어 본래 도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긍정진술을 포기하고 부정진술을 통한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그렇다면 장자의 현실비판과 해체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자.절대와 상대의 상호관계우리는 장자가 현실을 초탈하여 절대적 도의 경지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장자는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포기하고 절대적인 도 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실 비판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는 장자철학은 극단적인 허무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자는 절대와 자연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현실과 인간에 대해서도 외면을 하지 않는다.絶對라는 개념에 있어서 絶의 대상어는 對이며 對의 의미는 상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절대의 개념은 상대적인 것들을 끊는다. 는 의미 내지는 구속으로부터 풀려난다. 는 의미를 가진다. 즉, 절대란 일체의 대립에서 면제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 않는다. 그런데 장자철학에서는 상대적인 것에 절대적인 것이 계기로써 요청이 된다. 이것은 만일 절대적인 것이 없으면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로의 환원으로부터 진리와 참된 인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적이라는 계기를 생략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의 세계란 의미론상에 있어서 모든 상대적인 제 조건들이 사라진 세계를 의미하며 그것은 다름 아닌 도의 세계이다.그러나 이 도 라는 초월적 개념 안에는 이미 상대적 존재라는 이항대립적 존재구조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자의 도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장자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도가 상대적 관점으로부터 파악되어지는 어떠한 개념이나 범주 속으로 흡수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무를 말한다. 이때의 무는 일차적으로 의미차원에서 파악되는 절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絶-對란 우리의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초래되는 일체의 주관적 관념의 다발을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장자는 특히 인간이 자기의식의 모형으로 규정하여 집착하고, 또한 타인과 자연에 대해 강제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일체의 모든 그릇된 양태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것이다.이처럼 절대는 긍정과 부정의 일방적인 어느 한쪽만을 편들지 않고 이들을 포월한다. 왜냐하면 절대는 일반적으로 표상과 정립, 그리고 상대를 벗어나는 의미론적 가능태로서 부정과 관련되며 그 존재론적 근거로서 어떠한 타자와도 대립되지 않는 자기 내지는 자재적인 자연으로서의 긍정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에 절대라는 것이 없다면 절대적인 도가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기에 장자는 상대적 절대를 통하여 절대적 절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도와 관련된 존재물음의 해소도는 장자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장자는 도를 대부분의 중국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동적인 것으로 파악했기에 도는 언어를 통하여 개념화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언어는 역동적인 세계를 오히려 고정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자에게 있어 도와 관련된 존재물음이란 사실상 별의미가 없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장자는 도와 관련된 그릇된 존재물음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답변하지 않는다. 도리어 장자는 이러한 존재물음을 발생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이것을 먼저 비판하고 해체시키고, 물음 자체를 원점으로 환원시키려고 한다. 장자는 그릇된 존재물음 자체를 부정하는 동시에 참된 문제를 찾는 독특한 방법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제 자체를 해소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해소한다는 것은 철학적 난국의 기원이 오류, 혹은 오해, 말하자면 관련된 문장의 논리적 방법을 잘못 이해한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이처럼 그릇된 존재물음의 해소를 통하여 장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이 비판을 통하여 다시 한번 물음으로써 문제 자체를 다시 철저하게 점검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물음의 문제됨을 해체하여 문제 자체를 원점으로 환원시킨다면 물음의 출발선상에 존재하던 기존의 그릇된 제 전제는 자연히 무전제성을 담게 된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었다.주관적 평가의 해체와 자연의 도래장자는 인위적인 것을 부정하고 비판함으로써 자연에 복귀하고자 한다. 인위는 세계를 대상화하는 주관적 평가로부터 유래하지만 자연은 오히려 주관적 평가의 비판으로부터 도래한다. 왜냐하면 주관적 평가는 인간의 감정의 체계 위에 서기 때문에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와 같은 감정의 체계로부터 떠오르는 인간의 주관적 호오를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일상의 태도를 부정한다.따라서 장자는 인간이 자신의 주관적 평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사물을 임의로 평가하거나 재단하여 단절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주관적인 평가는 사물의 진실을 왜곡하고 나아가서는 사물의 본디 그러한 모습을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이다.이처럼 감각 지각을 통하여 형성된 각종의 개념들은 추상적이고 허구적이다. 장자는 이러한 추상과 허구를 비판하고 해체하려 하였다. 우리가 이러한 추상과 허구를 해체하고 혼돈의 미분화 상태에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자연은 저절로 도래한다의식은 무분별한 혼돈과 같이 근원적으로 통일된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다. 장자는 존재와 의식의 통일을 지향한 것이다.본원존재로서의 도와 그 자연성도는 스스로가 근본이 되는 것으로서 어떠한 타자와도 대립하지 않는다. 사실상 도에 있어서 타자는 무의미하며 도는 자신의 본래 그러한 자연성만을 가질 뿐이다. 장자에 있어서 도는 곧 자연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때의 자연이 물상적 자연이라는 말은 아니다. 장자에 있어서 자연은 기계론적인 것도 아니며 목적론적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자연의 내재적 존재 질서를 지니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도이다. 도는 자신만을 본받을 뿐 어떠한 타자에 의하여 영향받는 일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근본이 되고, 상제나 귀신의 존재보다도 앞서는 존재이다. 따라서 도는 절대적 근원자이자 어떠한 타자와도 양립할 수 없는 비대상적 존재이다. 그래서 도는 언어를 용인하지 않는다. 도라고 불리워진 도조차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라는 개념은 자기 부정적 요소를 떠나서 생각 할 수 없다. 이것은 규정을 거부하는 도의 존재방식을 보여준다. 즉 도는 있다는 할 수 없으며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도는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무한하다. 세계는 끊임없는 자기 전개로부터 유동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데 그 존재론적 근거가 다름 아닌 도이다. 그리고 도는 포월적인 동시에 철저하게 내재적이다. 어떠한 현상적인 사물도 도가 내함되지 않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현상적 사물의 존재근거가 도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도는 안도 없고 밖도 없다. 도는 공간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자는 두를 유가 아닌 차라리 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무도 참된 무가 아닐 수 있다 하여 무무라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장자는 무무의 철학체계를 세워 무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강한 부정정신을 보여준다. 또한 도는 현상적 사물로 전개되었다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존재의 운동방식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도의 존재질서는 스스로가 그러한 .
독립운동사의 시기별 특징들어가며한국독립운동사는 넓게 보면 1894년 7월 경복궁을 난입하는 갑오왜란을 일으킨 일제에 대한 의병전쟁으로부터 그 시작을 볼 수 있을 것이나,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태동은 한일합방이 일어난 1910년을 그 시작으로 본다.1910년을 시작으로 1945년 광복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전개된 독립운동은 일차적으로 민족독립을 위한 자주수호운동이었고 더 나아가 반인류적 제국주의에 대항한 인류의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인도주의운동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당시 지구상의 80%를 차지하였던 피압박민족들의 독립운동과 비교하여 볼 때 여러모로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은 민족의 역량을 성숙해나갔으며, 근대사회 발전의 길을 열어갔다. 독립운동에 의해 민족의식과 민족주의가 발전하였고, 근대 정치이론과 민족문화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독립운동사는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나, 여기에서는 각 시대적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독립운동사 전체를 조망하는 계기를 가질 것이다.1910년대 독립운동사의 특징1. 1910년대의 상황과 무단통치의 실상1910년대 추진된 한국독립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시기 일제가 획책한 식민지 통치의 실상과 그 성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0년대 일제의 식민지 통치성격은 무단통치 였다. 이 무단 통치를 제일 잘 나타내는 정책이 바로 식민지 조선에서만 유일하게 실시되었던 헌병경찰제이다. 헌병과 경찰에게는 범죄 즉결처분권과 민사소송조정권을 비롯해 세금징세권, 산림위생감독권등과 벌금 및 구류권등 30여종에 이르는 민간인들의 일상생활업무를 독단전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주어졌다. 이 같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경찰과 헌병들은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한 헌병분견, 순사주재소, 파출소 등에 배치되어 조선인의 일상생활을 감시 감독하였다. 이 밖에도 각종 법적 장치를 통해 일체의 사회활동을 통제한 사실과 식민지 경제 침탈행위 또한 1910년대 일제의 무단성을 잘 시사해의식을 고양하여, 계몽주의 계열의 지식인, 종교계, 농민, 노동자, 학생층 등 다양한 참여계층의 항일의식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항일의식이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독립운동을 위한 저변이 확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배경과 토대아래 전민족과 전계층이 참여한 3.1운동이 가능했다.3. 1910년대 국외독립운동의 경향과 특징1)독립전쟁론에 입각한 준비기국내의 경우 일제의 탄압 때문에 제약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국외에서는 1910년 초방부터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독립운동이 만주 및 연해주, 상해, 미주지역등 이미 한인사회가 성립되어 있는 나라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2)독립군 양성기관의 설립독립운동의 방략을 독립전쟁론으로 세운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군 양성이었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서 독립군 양성기관이 속속 설립되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한인소년병학교, 하와이의 대조선국민군단이다. 그리고 멕시코와 연해주와 서간도에도 군사교육기관이 성립되었다. 이는 이시기 한국독립운동이 독립전쟁론에 따른 독립전쟁준비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3)독립운동계의 연대와 분화구한말 계몽운동론과 의병투쟁론으로 양분되어 있던 한국독립운동계는 국권상실이후 독립전쟁론이라는 새로운 노선 아래 모이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1917년 7월 발표된 대동단결선언 {) 이 선언서의 요지는 1. 주권불멸론에 의한 국민주권설 2. 재정.인물.신용 등 국가적 행동의 가 능성 3. 통일기관. 통일국가. 원만한 국가의 달성이라는 3단계 요령 4. 국제환경의 유리한 변화 등과 임시정부의 수립과 국민외교의 실행, 동지간 유대와 결속 등을 강령속에 담고 있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임시정부적 성격을 갖는 통일된 기구의 수립과 민족대동의 회의 개최를 주장함으로써 각지의 독립운동단체들 사이의 연대를 통한 새로운 독립운동 방략을 불식시키고 공화주의를 천명하였던 것이다. 이 강령과 운동방향은 3.1운동과 함께 임시정부 출범의 사상적 기반을 조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서게 되자 독립운동의 양도 극대화되었다. 그러나 3.1운동의 무엇보다 큰 의의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를 거부하며 독립을 원하고 있음이 세계 만방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3.1 운동과 그 후의 독립운동과정을 통해 일본의 지배를 거부한다는 뜻이 분명히 펼쳐졌기 때문에 뒷날 일제가 패망한 후 연합군들이 카이로선언 등에서 한반도를 독립시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결정했다. 둘째, 3. 1운동으로 인하여 만주지방의 무장독립운동이 활성화되었고 그 후에는 복벽주의가 도태되고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공화주의독립운동만이 남게 되었다. 셋째, 3. 1운동 후 사회주의 사상이 급격히 밀려들어왔고 곧 사회주의 독립운동노선이 나타난다.2. 문화정치의 본질3.1운동은 독립운동사의 큰 분수령이었을뿐만 아니라 일제의 한반도 지배정책을 바꾼 운동이기도 했다. 3.1운동 후 일제의 지배정책은 문화정치 라는 이름의 민족분열정책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독립운동세력의 일부가 말려들어 절대독립 노선에서 타협주의운동으로 전환되었다.그러나 우리는 이 문화정치가 민족분열정책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1. 일제는 헌병경찰제를 폐지하고 보통경찰제로 전환하였으나 실제로는 경찰병력이 훨씬 더 증가하였고, 새로운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사상통제와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2. 이전까지의 친일파로는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친일세력을 양성하였고, 조선에 참정권이나 자치권을 줄 수도 있다고 기만술을 써 그것에 일부 우익단체들이 현혹되었다. 3. 3.1운동 후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사회주의 운동과 소작농민 및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한편 지주와 자산가 계급을 보호하여 그들을 새로운 개량주의자 혹은 친일파로 만들어 독립운동을 분열시켰다.3. 1920년대 초반 만주지방의 무장독립운동3.1운동 후 만주지방에서는 무장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동녕, 이상용 등과 이동휘, 김좌진, 홍범도 등은 서간도와 북간도 지방의 교포사회를 근거로 해서 무관학교, 사관연성소 등을 설립하여 운동1923년의 국민대표회{)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주장을 계기로 임시정부 활동과 독립운동전체의 방향전환을 위 해 1923년 1월 상해에서 개최됐다. 해외 동포사회의 70여단체 대표 125명이 모인 이 회의에서 임시정부 개조파와 새정부 창조파가 팽팽히 맞섬으로써 회의는 결렬되었다.가 실패한 후 민족유일당 운동은 여러 단체에서 일어났다. 가장 성공한 예는 만주지방의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를 비롯한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운동이다. 그러나 결국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의 3부가 국민부와 혁신의회의 두 세력으로 개편되었을뿐 완전한 통일전선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2)국내의 신간회 운동국내의 유일당운동인 신간회 운동은 1927년 2월 성립되어 민족통일전선운동에 결실을 거두었다. 조선공산당과 비타협적 민족세력이 협동하여 성립한 신간회는 농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을 지도하면서 국내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투쟁운동. 광주에서 기차통학을 하던 한·일 학생 사이의 싸움이 도화선이 되어 광주의 2,000여 명의 학생이 궐기하였다. 점차 일반 시민 들이 합세하여 광주학생시위의 여파는 마침내 전국으로 번졌다. 3·1운동 이후의 가장 거센 항일운동으로, 일제강점하 최대 규모의 학생항일운동이었다.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전국 규모의 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신간회는 광주학생운동 이후 일제의 개입과 방해공작으로 그 성격이 변질되면서 급기야 1931년 5월에 사회주의 진영의 주도 아래 해체되고 말았다.7. 1920년대 독립운동의 특징과 그 의의1920년대 독립운동은 민족총력적으로 또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직과 이념이 산만하여 정비되지 못한 점 또한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양쪽 모두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3.1운동을 필두로 6.10만세 운동, 신간회, 민족유일당 운동 그리고 광주 학생운동은 모두 이 시대 독립운동의 귀중한 결실이다.1930년대 독립운동면서 좌익편향을 벗어나고 있었다.또한 1930년대는 문화독립운동이 민족문화보전 및 국학진흥 운동으로 성격을 정돈해갔다. 1931년 개편된 조선어학회의 주도로 1933년 한글 맞춤법통일안 이 제정되고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에 착수하였던 것이나 1936년에 일장기말소항쟁{)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을 언론기관 특히 동아일보의 민족의식을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우 리는 흔히 알고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보다 10여일 앞서 일장기 말소 사진을 게재했다가 정간 당한 뒤 폐간한 에 대해서는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 말기에 해마다 1월1일 1면을 털어 일왕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싣고 “천황 폐하의 성덕” 을 찬양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또 일왕의 생일을 민족의 명절인 양 봉축하는가 하면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제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고 후방의 백성들에게 전쟁물자를 내놓도록 독 려하는 친일매족에 앞장섰다. 이들의 폐간도 항일의 결과가 아니라 전시체제하 물자절약 차원 이었음도 이미 밝혀졌다.(한겨레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4/005*************91856861.html)이나 종교분야에서의 신사참배거부항쟁의 지속적 전개 등이 있었다. 그러나 문화운동은 대중운동에 비해 전반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했고, 독립운동적인 면모나 성격도 후기로 갈수록 퇴조를 보였다. 그 이유는 지식인층의 저항 자세 약화와 전향사례의 속출에 따른 것이다.4. 1930년대 독립운동의 특징과 그 의의세계대전의 재발로 치닫는 격동과 혼돈의 정세 속에서 독립운동 단체들은 민족혁명과 민족대단결이 이 시대 독립운동에 있어 제일 필요한 것이라 판단하고 이념정당의 형태로 단결하였고, 단순한 독립이 아닌 사회 구조에 대한 변화를 희망하는 대중의 사회운동까지도 독립운동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 이것은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의 근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1940년대 독립운동사의 특징1. 1940년대의 시대적 상황1940년대 전반의 민족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