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음악에 감동을 받다.나는 선교사들이 나오는 종교 영화를 본다기에 선교사들이 오지의 원주민들에게 선교를 하는 시시콜콜한 종교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달리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귀와 눈, 그리고 마음은 이미 영화 속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특히, 사랑에 대한 것과 음악은 나의 마음을 녹이고, 울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1750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와 브라질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에 더욱 그러 하였다.사랑... 사랑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The Mission"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어떤 것이였기에 나의 마음을 울리게 했을까. 그 건 바로 용서를 포함한 사랑 이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증오하고, 복수 하려고 하지 않고,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을 이 영화에서는 과라니족과 악랄한 노예상 이었지만 과라니족의 용서와 사랑에 신부가 된 멘도자, 그리고 멘도자를 권유하여 신부로 만든 가브리엘 신부가 보여 주었다. 자신의 종족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동생까지 죽였던 멘도자를 복수와 증오가 아닌 용서를 통한 사랑을 베풀었던 과라니족. 사람을 사랑하는게 정말 이런게 아닐까.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또, 멘도자가 용서받고 신부가 되어 다시 과라니족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것처럼, 사랑은 또 다시 사랑을 낳는 다는 것도 느꼈다.영화 속의 제일 큰 감동이었던 음악. “Gabriel's Oboe".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에게 접근하고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 연주했던 이 음악은 천상의 음악이었다. 가브리엘 신부보다 먼저 선교하러 갔었던 신부를 십자가에 매단 채 폭포에 떨어뜨려 죽인 과라니족까지 적의를 없애고 타인 이었고, 경계의 대상 이었던 가브리엘 신부에게 마음을 열게했던 이 음악.
한국 경제 내의 학벌간 차별의 실태와 대책“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면 대부분은 학벌이 좋아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을 학벌이라고 하는 데는 어떠한 이유가 있는걸까. 이 이유는 한국 사회의 학력 차별. 초, 중, 고졸에서부터 전문대졸, 4년제졸, 더 나아가서는 일류대인지 아닌지까지 수 많은 차별들이 있기 때문이다.능력은 있지만, 학벌위주 한국 사회에서 학벌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이 있는 한국의 학벌/학연 차별 실태.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내도 기업들은 먼저 학벌부터 본 다음에 일류대학들만을 가려내 뽑고 있는 현 실태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력 차별”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에서 한 여론 조사를 바탕으로 살펴 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 보았다.64.4% "일류대학 나오는 게 중요"… 38.6% "차별받은 경험 있다"은 2000년10월27∼28일 이틀간에 걸쳐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국사회의 학력·학벌문화에 대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능력이 뛰어나도 학력과 학벌이 좋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나타낸 응답자가 전체의 63.4%에 이르렀다. '학벌과 학력이 좋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38.3%가 '좀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므로', 21.4%는 '학연에 따른 인맥이 좋으므로'를 꼽았다. 개인의 '능력'(12.0%)이나 '노력'(24.3%)보다는 학력·학벌에 따른 기회조건과 인맥(59.7%)이 성공요인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65.5% "공부 더 하고 싶다"'한국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일류대학을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64.4%. 국민들의 인식 속에 세칭 일류대학 졸업은 여전히 사회적 성공의 기본 조건으로 뿌리박혀 있는 셈이다. 일류대학 졸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특히 경영 관리직(80.8%), 사무기술직(71.0%) 등 조직사회엣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영업자들(71%)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이른바 일류대·비일류대간 차별에 대해 응답자의 83.5%가 '취업기회'에서부터 차별이 크다고 답했고, 79.4%는 '직장 내 승진'에서 차별이 크다고 응답했다. 이런 인식은 특히 40대 연령층(87.1%)에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일류대-비일류대 차별은 임금·소득수준(70.7%)이나 사회적 대우(80.0%)면에서도 차별이 크다고 응답했다.이런 차별의식은 고졸/대졸 출신사이에서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졸·대졸간 학력차별에서는 취업기회(86.5%), 직장 내 승진(88.6%), 임금·소득수준(83.4%), 사회적 대우(86.1%)등 모든 면에서 차별이 많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런 학력·학벌 차별은 높은 교육열로 이어지고 있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부를 더 할 의향이 있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65.6%가 희망한다고 답했다. 특히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의향은 중졸 이하 54.5%, 고졸 65.5%, 대졸 이상 69.2%로 나타나, 학력이 높을수록 오히려 더 높은 단계의 교육을 받길 희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에서 한 여론 조사를 보듯이 한국 내에 “학벌 차별” 은 매우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여론 조사는 표면적 수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학벌 차별의 실태는 더욱 심할 것이다.창의성을 중시하는 21세기 시대에 한국의 “학력/학벌 차별”은 결국에는 한국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학벌 차별 문제가 요즘에 와서 불거진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전에도 학벌을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95년 ‘학벌파괴 채용’ 을 삼성이 먼저 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직도 입사 지원 이력서에서 학벌을 먼저 보고 있는 실정이며, 학벌타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쉬쉬거리고 있다. 이런 일은 삼성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들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학벌타파를 하겠다고 했지만, 삼성과 똑같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어느새 슬그머니 ‘현실’로 돌아갔다.이러한 ‘현실’ 로 인하여 학벌타파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나라가 새 시대를 열어갈 나라가 되려면 학벌 타파는 피해갈 수 없는 장애물이다. 지금까지는 목소리만 높여 학벌타파를 외치다가 쉬쉬하고 그랬지만, 좀 더 현실적인 문제등을 고려하여 학벌/학력 차별중시문화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사회적인 구체적 해결 방안이 어서 마련되어야 한다.학벌타파를 위한 구체적 해결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학벌위주의 기업인사문화가 변화야 한다. 요즘 기업에서는 사내 직원이 추천을 해서 입사를 하는 제도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제도는 학벌에 연연하지 않고 능력있는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자기가 졸업한 학교의 후배를 추천하는 부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신입사원을 뽑고, 추천 할 때 학벌,학연에 연연하지 않고, 능력으로 인재를 뽑는 기업인사문화가 자리잡는다면 학벌 차별에 대한 문제가 줄어들 것이다.두 번째로, 대학 제도 개선등을 통한 방법이다. 지방대학의 경우 교육환경 개선등 명문대에 대해 약한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고, 필요치 않은 대학 서열화를 없애야 한다. 또, 대학 입학은 곧 졸업으로 연결되는 이상한 한국만의 대학제도는 일정 실력이 되지 않으면 졸업이 되지 않게 하는 제도로 바뀌어서 대학서열간의 경쟁이 아닌, 학생들의 능력으로 경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점은 높지만 지방대학 졸업이라는 이유로 학점도 낮은 명문대학 졸업생보다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영국의 전무후무한 최고의 왕. 엘리자베스영국 역사에서 가장 번성하고 강력했던 시대에 영국을 통치했던 왕. 엘리자베스.엘리자베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정치적, 종교적으로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 돼 혼란스러운 시기에 여자인 몸으로 강력한 리더쉽으로 영구을 하나로 만들고 세계에서 제일 강대국으로 만들었던 영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최고의 왕이었다.엘리자베스 여왕은 헨리 8세와 앤 블린의 딸로 1553년 9월 7일 그리니치 로열 팰리스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헨리 8세의 첫째 부인인 캐더린 이 아들이 없어 이혼 후 앤 블린과 결혼 하게 되어 태어나게 됐다. 이렇게 태어난 엘리자베스가 영국의 왕이 되기까지는 여자로서는 견딜 수 없을만큼 혹독한 시련들이 있었다.대를 이을 아들의 탄생이 권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때에 어머니인 앤 블린이 엘리자베스를 낳자 그녀는 사생아라고 불리웠고, 런던에서 추방당해 외롭게 자랐다.그 이후 런던에 돌아왔고, 그 때 영국의 국왕은 배다른 언니인 메리 여왕 이었다.이 시게에 영국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특히 종교는 카톨릭 내에서 구교와 신교가 분열돼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구교는 로마카톨릭으로 교황에게 충성 하였지만, 신교는 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으로 당시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로마 교황청에 정면 대립을 하는 것이었기에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됐다.이 신교는 헨리 8세가 첫 번째 부인과의 아들이 없자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려고 했지만 당시 믿고 있던 구교에서는 이혼을 금지하고 있어서 생겨나게 됐다.구교와 신교가 대립되고 있는 그 당시 국왕인 메리 여왕은 독실한 구교 신자였는데, 엘리자베스는 신교 였기에 신교를 탄압하던 메리 여왕 때문에 죽을 고비도 맞아야 했었다.그 후, 메리 여왕이 죽고 왕위 계승 서열이 메리 여왕 다음이었던 엘리자베스는 25살에 영국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엘리자베스는 약했던 국력 때문에, 다른 강대국의 권력자들과 정략결혼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 ‘버진 퀸’을 결심하고 강력한 왕권 확립을 위해 정치적으로는 왕위를 노리는 반대파를 제거하고, 종교적으로는 구교와 신교를 통합하는 성공회를 만들었다.
흑인 인권 운동이라는 씨앗을 뿌린 말콤X말콤X. 이 사람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미국 이라는 비옥한 땅에 흑인 인권 운동 이라는 씨앗을 뿌린 선구자 라고 말하고 싶다.인종 차별이 지금 보다 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 했을 때, 평등 이라는 교리를 가진 이슬람을 널리 퍼트리며,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선자, 전도사, 인권 운동자가 되었던 말콤X.그러나, 말콤X가 처음부터 흑인들을 선도하고 이끄는 선구자는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아왔다.1924년 5월 29일 생으로 미국 중부 에부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던 말콤X는, 침례교의 행동주의 목사인 아버지를 7살 때 극우 백인 우월주의 폭력단체 KKK단에 의해 여의고,형제들 또한 모두 잃었다. 이 후에 목사가 되어 백인은 악마라고 보는 이분법적인 관념들이 이 때부터 형성 되었던 것 같다.성적이 우수했던 소년기에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백인 교사에게 흑인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의에 빠져, 백인들에 대해 벽을 쌓고 타락과 방황을 하다 절되죄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이 감옥 시절에서 말콤X의 중대한 인생 전환점이 시작 되었다.감옥에서 베인즈라는 흑인 회교 경건주의자에게 이슬람교의 한 지파의 교주인 일라이자 무함마드에게 깊은 감동을 받아 이슬람교에 귀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출감 후 무함마드의 가름침을 전파하고 백인들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이끄는 회교 행동주의 전도사가 되어 많은 활동을 했지만, 무함마드가 신앙르 통해 부를 축척하고, 사리 사욕을 채우고 잇다는 점을 알고 진정한 이슬람을 알기 위해 성지 메카로 순례를 떠난다.성지 순례를 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이슬람교의 근본 교리와 백인들에 대한 저항 운동을 계속 하였지만, 1965년 2월 21일 OAAU 연설회에서, 정체 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아 죽게 되었다.흑인 이라는 이유 만으로 백인들에게 억압받고, 아버지까지 여의고 또 자신까지도 희생 되어야만 했던 말콤X. 그런 그는 모든 사람이 평등 하다는 교리를 가진 이슬람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며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