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실습을 마치고...교생 실습을 나가기 전 난 무척 설레었다. 아이들을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할까? 내가 다니던 중학교 시절과 지금 중학생들은 많이 다를텐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선배 선생님들께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조언과 지도를 받게될까? 등 모든 것이 날 들뜨게 했던 것 같다.중학교에서 교생으로 있는 일주일! 학교를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였지만 교사의 목표를 갖고 있는 내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였던 것은 분명하다.우선 중학교에서의 교사의 역할은 교과 및 지식 전달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특히 생활지도 측면이 강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관심을 갖고 계셨고, 자아개념이 형성되는 청소년시기의 민감성에 대해 다루고 계셨다. 학생의 성별은 물론 성격에 따라 다르게 대처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교사가 학생을 다루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생을 부드럽게 포용하다가도 때로는 단호하고 카리스마 있는 또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나도 나중에 현직 교사가 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매일 교육 실습생을 위해 조언과 지도를 해주신 많은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내가 보지 못하는 학교의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학교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고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교사-학부모의 관계 또한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주일동의 참관실습으로는 알지 못하는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흡연문제, 왕따 문제와 같은 부분도 지도 선생님들의 특강을 통해 알 수 있었고 내가 나중에 교사가 된다면 이러한 문제에 나는 어떤 대처와 지도를 해야할까? 라는 고민도 해 볼 수 있었다.대학교에서 배웠던 교육이론과 실제 학교 현실은 많은 차이점이 있기에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교사의 유연성도 필요 할 것이고, 급변하는 세계에 맞춰 학교현실도 급변하기에 교사도 이에 맞는 태도와 능력을 갖추어야겠다고 느끼기도 했다. 교무기획부장 선생님의 “교사는 끊임없는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 라는 말에 적극 공감했다.
동북공정동북이란 랴오닝, 지린, 헤이롱장 등 중국의 동북에 위치한 3성을 가르키는 말이고, ‘공정’이란 연구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즉, 중국의 동북 3성에 대한 이 지역의 역사를 연구가 동북공정인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국책 연구 사업으로 국가기관인 ‘변강사지연구중심’이 주관한다.세부적인 연구 내용으로는 고대 중국의 강역(국경)과 지방사, 민족사, 고조선, 고구려사, 발해사, 중조 관계사, 조선한반도의 형세 변화와 그것이 변경지역에 안정을 미치는 영향 등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만주, 한반도의 각 분야 연구를 포괄하고 있다.동북공정의 목표동북공정의 표면적인 목표는 그동안 등한시 되었던 동북 3성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면의 목표는 조금 다르다.소련이 여러나라로 독립하여 갈라진 붕괴를 목격한 중국은 자신들의 기반에 대한 어느정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혹시라도 있을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혹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목표이다. 즉 소수민족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지방역사로 두어 역사적 연고권을 공고히 하고자 함이다.더불어 우리나라 한반도 북부(현재의 북한)의 고조선이나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도 자신들의 중국 역사의 지방정권으로 포함하여 자신들의 역사를 확장시키고 ‘중국화’를 목표로 이 지역에 대한 영토권과 정치권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속셈이다.이는 향후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노린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즉, 영토지상주의 역사관을 토대로 역사를 패권으로 좌지우지하겠다는 중국 측의 검은 의도가 깔린 것이다.동북공정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사실 이 프로젝트는 2002년 2월 28일부터 2006년까지 5년 계획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로 지금은 표면적으로 종료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국책 사업으로 추진한 동북공정으로 인해 중국 내 학자들에게 동북 지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그로인해 여러 기관 및 대학들의 지지와 참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이다.또한 동북공정의 결과물로 발표한 출간 자료들은 역사연구에 있어 선행연구자료로 계속해서 이용 될 수 밖에 없다. 연구나 학문의 목적을 넘어서서 결과물 스스로가 비대해지고 있는 것이다.국가차원의 지원만 끝났을 뿐, 중국 내에 보다 많은 수의 연구기관이 오히려 더 많이 생겨났으며, 그들의 연구제제가 고구려사에 집중되고 있다. 노골적으로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정권, 지방정권으로 편입하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동북공정의 노림수에 유린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우리나라에서는 동북공정이라는 이름보다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 공작’ 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동북공정 사업 초장기에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이 고구려사였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도 쟁점도 고구려사이다.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고구려 관련 주장 몇가지를 소개해본다.1.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2.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3. 고구려의 민족은 중국 고대의 한 민족이다.4. 수당과의 고구려 전쟁은 중국 국내 전쟁이었다.5. 고려를 세운 왕씨 왕조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다.6. 한반도 북부(현재의 북한지역)지역은 중국의 역사이다.허무맹랑한 주장의 끝은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간다.우리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 고조선도 이들은 부정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중국의 지방정권이며, 이때의 사람들도 중원 민족으로 중국이라는 것이다. 단군신화의 경우,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낸 이야기라고까지 주장한다.실제로 중국 길림성에 가면 ‘백의신녀상’라는 18m에 무게가 500t이나 되는 상이 세워져있다. 우리에게 생소한 백의신녀의 정체는 누구일까?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단국의 어머니 ‘웅녀’가 중국에서 백의신녀라는 이름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중국은 안내판을 통해 백의신녀를 한민족의 어머니가 아닌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의 시조모로 표현하고 있으며 하고 있는 모양이 완벽한 중국풍에 가깝다. 이 같은 커다란 상이 길림성 선녀봉에 세워진 시기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하던 시기 바로 직전에 세워졌다.어안이 벙벙해지는 또 다른 이야기는 만리장성에 관련된 이야기다. 중국은 만리장성을 새롭게 연구해 낸 결과물에서 본래의 연구결과 총 6350km에서 8852km라고 수정하여 발표하였다. 느닷없이 늘어난 만리장성의 길이를 중국인들의 자부심의 표현이라 해석해야 옳은가? 여기에도 중국의 또 다른 속내가 숨어있다. 만리장성의 말단에 압록강 주변의 고구려 유적을 포함, 고구려의 성이 만리장성의 끝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만리장성 동단에 관한 새로운 표지판을 내걸었고 역사학계는 역사 교과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