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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살아 있는 영웅 신화<드라마 해신과 알렉산더 분석>
    0587100 윤보라살아 있는 영웅 신화-영화 알렉산더와 드라마 해신 분석-1. 작품 분석에 앞서 두 가지 작품을 함께 다루게 된 이유동양과 서양의 영웅 신화적 요소를 가진 두 인물을 비교 분석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 보고, 현대의 인간들에게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를 조망해 본다.2.영웅 신화적 서사구조에 따른 두 작품 분석① 출생 : 장보고는 청해(지금의 완도)에서 천민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 시절 해적들에 의해 어머니를 잃는다. 관아에 소속된 목수이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변화무쌍한 바다를 잘 알았고 선박 건조에도 재주가 있었다. 이와는 달리 알렉산더는 필립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나 13-16 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받고 그의 영향으로 철학과 의학,과학적 탐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또한 부왕으로부터는 전술,행정 등의 실제적인 일을 배웠고 어린 나이에도 여러 전투에 직접 참가하여 경험을 쌓았다.?대조적인 출생: 비범한 탄생이라는 일반적인 영웅 신화의 구조와는 달리 장보고는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노비와는 다르게 자신의 제한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위기의 상황마다 대담하고 침착한 행동을 보이며 극복해 나간다는 점에서 충분히 비범한 자질을 타고 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활쏘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동양 신화를 대표하는 주몽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반면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출생부터 전형적인 영웅 신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② 모험과 시련-장보고: 청해(완도) 선창의 노비인 소년 궁복은 자신의 제한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나라로 가는 상선에 몰래 올라타고 밀항을 시도하지만 발각되어 모진 매질을 당한다. 그 후 그는 살기 위해 검술을 배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해적인 염장과 사랑하는 정화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궁복은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고 당으로 도주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군에게 잡히게 된 궁복은 투기원도형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지만 정화의 도움으로 목숨은 부지한 채 무진주 방마장의 노비가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다가 최무창이라는 무예의 고수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무예를 배운다. 얼마후 그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미부인의 사병이 되고 그 곳에서 정화를 다시 만나게 된다. 위험에 처한 정화를 지키기 위해 자미부인의 비리를 폭로하려던 궁복은 계획이 탄로나 당나라의 노예로 끌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처참한 생활을 하던 끝에 검투사로 전락하여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그동안 힘들게 닦아온 무술 실력으로 검투시합에서 승리하고 설평의 눈에 들어 그의 호위무사가 된다. 설평의 밑에서 상술과 지혜를 배우며 영웅적인 면모를 더욱 갖추게 된 궁복은 드디어 장보고라는 이름을 얻고 자미부인, 이대인과 대결하며 그의 비범한 능력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무령군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공을 세우고 훗날 해적을 소탕하는데 중요한 작용하였던 군사전략가적 소양을 탄탄하게 쌓게 되었다.-알렉산더: 그는 왕위 계승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끝에 부왕이 암살되고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었다. 그리스 대표자 회의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헬라스 연맹의 맹주로 뽑힌 알렉산더는 BC 334년에 마케도니아 군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소아시아로 건너갔다. 여기서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하고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을 해방하였다. 이어 북시리아를 공격하여 이수스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대파하였으며 페르시아 함대의 근거지를 모두 점령하였다. 시리아와 페니키아를 정복한 다음 그는 이집트를 공략하였는데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시를 건설하고 '신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이후로 그는 만인동포관을 지니게 되었고 세계를 하나로 잇는 대제국 건설의 꿈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계속하여 바빌론,수사,페르세폴리스,엑바타나 등의 여러 도시를 장악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 강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 중에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어 어쩔수 없이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 폴리스에 되돌아 왔다.?장보고와 알렉산더는 둘 다 일찍이 모험의 길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둘의 모험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발생한 죽음이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그 불행의 원인이 그들 자신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험에 처한 아들 궁복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맞게 된 그의 아버지와, 알렉산더의 왕위 계승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암살된 그의 부왕의 모습에서 이러한 공통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죽음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이들의 모험의 길은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이들의 삶에서 나는 위대한 영웅의 참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③귀환-장보고: 그는 820년대에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고향인 청해(완도)로 다시 돌아왔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해적들이 신라 근해에 출몰하여 신라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파는 노비매매 현상을 근절시키기 위해서였다. 당과 신라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점점 심해지자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하고 그 곳을 거점으로 하여 해적들을 소탕하였다. 해적 소탕 이후 나라와 백성들에게 큰 신임을 얻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의 동아시아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던 완도를 중심으로 최초로 재일신라인 사회와 청해진 및 재당신라인 사회를 연결하는 일련의 무역망을 구축하여 중개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더 나아가 아라비아까지 이르는 머나먼 바닷길을 개척하여 해상왕국을 건설하였던 것이다.-알렉산더: 세계 재패를 목표로 무려 3,500,000Km에 달하는 8년간의 정복행진을 계속하던 그는 오랜 전쟁에 지친 장병들의 전진 거부로 인해 어쩔수 없이 동진을 단념하고 BC 323년경에 바빌론으로 귀환하였다. 그는 자신의 부재중에 부정을 저지른 관리들을 엄히 숙청하는 한편, 스스로 박트리아 여자와 결혼하고 장병 1만 명을 페르시아 여자와 결혼시켰으며, 동방인을 주축으로 한 신제국군의 편성에도 착수하였다. 새로운 군제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많았으나 이러한 조처를 취한 그의 의도는 동방 각지에서의 도시건설, 그리스용병의 식민정책과 함께 신제국의 기초를 동서의 협조와 융합에서 찾으려는 것이었다.?오랜 여정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들은 그동안의 위대한 도전과 승리에 대한 영광을 누리게 된다. 특히 국제무역가로서 중국에서는 '해상왕', 일본에서는 '해신'이라고 불리어질 정도로 이름을 떨치게 된 장보고는 현대의 영웅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오랜 고난 끝에 부와 명예를 둘 다 거머쥐게 되는 그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영웅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5.10.30| 3페이지| 1,500원| 조회(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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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나는 몇 퍼센트의 한국인인가>를 읽고 평가B괜찮아요
    이번 학기에 수강 신청한 경제원론과 현대 국제 정치의 이해를 들을 때면 나는 가끔씩 혼란에 빠지곤 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흐름에 대해 배울 때도, 현대 정치의 주요 이론적 개념들을 배울 때도 온통 서구적 가치와 현실에 입각한 내용들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혼란은 비단 대학생활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다. 수능을 한창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윤리와 사상을 배우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과 철학의 부재를 실감한 적이 있었다. 사실상 현재 인문사회과학에 걸친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에 있어서 우리는 서양에 예속되어 있다. 왜 우리는 고유의 전통을 뒤로 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의 머릿속에 조용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현대 국제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큰 흐름은 아마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일 것 이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유럽의 문명화, 미국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의한 결과물인데 이는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군주 국가로서 군림하기 위해 과거 역사를 소급하여 재해석, 재창조하였으며 그것에 기반하여 서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서구 예외주의를 확립하였다. 반면 비서구 국가들에 대해서는 왜곡된 시각을 보이며 부재와 일탈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인데 인류를 서구와 비서구라는 이항 대립적 범주로 이원화시켜 진정한 인간적 실재를 억압하고 열등성을 각인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서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정당화 시켰고 전 세계에 대한 서구의 지배를 필연적 결과로 인식시켰다. 이러한 서구 중심주의의 폐해로 비서구인들은 소외당하고 끊임없이 억압 받았으며, 급기야 자신들의 독자적인 문화와 세계관을 포기하고 서구 문명과 일체화 되려는 동화주의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서구 중심주의의 폐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설사 느낀다고 해도 극복할 수 없는 숙명으로 인식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현대 세계에 만연해 있는 서구 중심주의는 과연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첫째로 동화적 담론 전략, 즉 중심 국가에 더욱 가깝게 동화되는 방법이 있다. 이는 중심으로의 진입을 위한 문화의 차용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인정되어야 하지만 결국적으로 서구 중심주의에 동화되어 근본적인 개혁과 쇄신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심각하다. 두 번째로는 역전적 담론이 있는데 서구 문명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비서구 사회의 독자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타자였던 비서구인들을 주체로 전환해주고, 제 3세계인들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어 세계의 중심이 보다 다양화되고 다중심적, 다원적 세계가 도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중심주의"의 논리로 귀결되는 것이고 또 다른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낳게 될 뿐이다. 또한 경제적, 정치적 권력의 뒷받침이 없이는 현실화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담론의 무력성이 드러난다. 세 번째로는 혼융적 담론 전략을 들 수 있다.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를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하여 혼융하고, 각 국가에 적합한 형태의 새로운 종합을 창안해 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도 큰 문제가 하나 존재하는데 그것은 혼융과정이 과연 자주적이고 대칭적이며 평등할 수 있는가이다. 문화적 혼융에 있어서도 통상 권력은 개입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비서구 사회가 자신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구 문명의 긍정적 요소를 적절히 받아들여 혼융할 것인가가 이 방법론의 관건일 것이다. 네 번째로 해체적 담론 전략이 있는데 이는 서구 중심적 세계사 서술과 서구철학에 내재된 이항대립의 해체를 주장한다. 세계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 방법론은 과장되고 특권화 된 서구 문명과 왜곡된 비서구 문명을 비판하고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만 아직까지 그 대안적 해석 및 지식체계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전하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말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전략이 있다. 여러 가지 전략들을 계기적, 동시적으로 추구하는데 각 전략을 적절히 병용하면서 장점은 극대화, 단점은 최소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전략들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한 방법론들을 보다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건과 비서구 사회의지식인이 수행해야 할 현실적 과제를 제대로 견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선 지구주의, 지구적 의식의 출현과 확산을 바람직한 세계사의 조건으로 들 수 있다. 지구주의는 미국에 의해 근대화와 함께 서구 중심주의를 전개하는데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면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전 세계를 하나의 국경으로 생각함으로써 중심과 주변의 구분, 차별을 해체하는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예로 핵전쟁의 위험 공동대처, 생태계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책임윤리, 인권의 국제적 보장, 세계 빈곤한 인민들의 사회 경제적 조건 개선 등이 있는데 이는 일국적 차원의 관리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국가 능력의 약화를 가져와 미국이 주도하는 근대 서구 중심주의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전복하는 바탕이 된다. 다음은 동아시아의 부상으로 다중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동아시아가 강대국의 대열에 올라 기존의 미국의 권력 독점을 막는 하나의 축이 된다는 주장인데 이것 역시 온전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강대국 중심의 질서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복수문명, 강대국들 간의 경쟁과 균형을 형성하여 미국의 단일적 위세를 저지하고 다중심적인 문화적 구도를 추진할 바탕을 마련한 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될 만하다. 이러한 다중심적 다문화주의는 현대의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문화 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문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보완하는 합리적이고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문화적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우리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입지를 마련하지 않는 이상 다문화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서구는 자국의 전통적 사상 체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의 전통과 문명을 비판하고 창조적으로 재해석, 재발견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왔다. 이를 통해 진보적이고 현실에 맞는 자신들만의 사상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전통을 현대화하는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생략하고 서구의 진보적 사상을 수용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전통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들추어 비판하고 그것을 현실에 맞게 재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독자적인 세계관을 잃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 글의 처음에서 언급하였던 현대 한국 사상의 빈곤이 초래되었고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서의 입지에 묶여있게 되었다. 서구 중심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사상의 재구축이 필수적이다. 아무런 학문적 대안 없이 서구를 비판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전통적인 사상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재해석, 재창조, 재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현 시대에 만연해 있는 문화적 편향성을 비판할 수 있는 학문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경영/경제| 2005.10.30| 3페이지| 1,000원| 조회(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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