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무정 에 나타난근대소설적인 면모目 次Ⅰ . 序 論 ........... 1Ⅱ . 無情의 近代小說的인 면모1. 근대소설의 정의와 특징1정 의 ......... 12특 징 ......... 22. 등장인물1 인물성격 . 32 근대소설적 면모 .... 33. 스토리1 줄거리 ...... 42 근대소설적 면모 ..... 44. 문 체 .............. 55. 주제의식 ........ 6Ⅲ . 結 論 ....박영채의 변모는 가장 두드러진 예이다. 이야기 중심의 고대소설, 개화기 소설과는 다르게 인물 성격의 창조에 중점을 둔 소설이란 점에서 近代小說이라 부를 수 있다. 서술 시간의 구조 또한 주인공의 출생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형식이 행복한 고민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영웅적인 인물이 아닌 일상적이고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1910년대 당시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여 家父長制의 批判, 早婚의 弊習 등을 이야기하였으며 자유연애 등을 주창하는 등 春園 이광수는 과거와는 다른 소설을 추구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표현, 새로운 내용은 無情 을 근대소설의 모습을 갖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게 한다. 개화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시대 적응 양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각에서 어설픈 그대로 그 시대 인물의 모습을 비교적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다.이제부터 한국 근대소설의 한 획을 그은 이광수의 대표작인 無情 에 나타나는 근대소설적인 면모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無情의 近代小說的인 면모1. 근대소설의 정의와 특징1) 정 의無情 의 세부적인 近代小說的인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근대소설의 정의를 우선 내릴 필요가 있다. 근대 소설의 개념은 근대 사회의 출발과 관련을 가진다. 다시 말하자면 근대소설은 근대 시민사회가 추구한 자유와 평등과 개인주의의 산물이며, 각성한 시민 계급의 성장이라는 역사적 문맥과 나란히 성장해 왔다. 서사 문학 발달의 단계를 통해 판단하자면 근대 소설은 중세의 로맨스를 대체한 새로운 서사 양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근대 소설은 재미는 있지만 더 이상 황당무계한 모험담이나 연애 담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근대 소설은 인간 경험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심미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며 인간의 참다운 면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한국 서사 문학사에서 근대 소설의 개념을 확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기준의 모색이 선행되어야 할화, 전설, 역사, 성서 또는 전시대의 문학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 살고 있는, 지저분하기도 한 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스나 로마의 서사시와 비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6세기의 셰익스피어의 극시만 하더라도 당대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다. 설사 그들의 이야기가 진지하고 완미한 것일지라도 바로 이 세상의 보통 사람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 경험은 아니었던 것이다.2 개별화된 인물의 제시두 번째로 구체적인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개별화된 인물은 유형적인 인물이 아닌 자기 나름의 개성이 강한 인물이란 뜻이다. 환상적이지도 않고 우의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인물의 이름도 성격적 유형을 나타내는 이름이 아닌 그냥 당대의 흔한 이름이다. 구체적인 환경이란 인물의 행동과 사건의 진행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좌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사회현실을 의미한다.3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셋째로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사건의 진행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시간이고 인물의 발전, 변화에서도 시간이 크게 작용한다. 과거가 현재의 원인이 되고 현재는 미래의 원인이 되는, 사건 진행을 시간의 인과관계로 보게 되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의 20년을 거치고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율리시스는 근대소설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근대소설은 시간을 통한 인과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을 중시한다는 것은 곧 시간적 배경을 중시한다는 뜻이고 시간적 배경을 중시한다는 말은 곧 소설이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긴밀하게 관련됨을 뜻한다.4 공간적 배경의 중시네 번째 근대소설의 특징은 공간 묘사, 환경 묘사, 집이나 직장과 같은 장소 묘사를 중요시한다. 배경 중시는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자연과학적 원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당대의 현실을 소재로 하는 근대소설이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현실감을 주기 위해서도 공간적 배경을 눈에 잡힐 듯이 그려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2. 들 김현수에게 청량사에서 겁탈 당한 뒤 평양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러 떠났다가 병옥을 만나 신사상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형식과 선형(신혼여행 겸 유학길)을 기차 안에서 만난다.4 김병욱 : 반봉건적, 진취적인 신여성 - 신교육을 받은 적극적 여성으로 불쌍한 영채를 도와 유학까지 시켜 줌.2) 근대소설적 면모역사적 시대 상황이 반영되는 것이 근대소설의 특징이므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역시 신구 질서가 충돌하던 격변기의 조선 사회를 대변하는 다양한 인물들로 그려진다. 형식은 일본 유학을 하고 온 지식인이며, 영채는 전통적 유교 교육을 받은 인종의 여성에서 자아 각성을 통하여 근대적 윤리관을 갖춘 여성으로 변화하는 입체적, 유동적 인물이며, 선형은 신교육을 받았으면서도 피동적인 삶을 영위하는 수동적이고 온순한 인물이며, 병욱은 반봉건적, 진취적 인물이자 영채를 변하게 하는 중개자적 인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여러 인물상을 보여줌으로써 격변기 조선사회의 가치관의 혼란을 보여준다. 또한 형식과 영채, 선형의 삼각 관계는 단순한 애정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가치와 근대가치의 대립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소설에 반영한 것 외에도 무정 에는 등장 인물들의 각성이 돋보인다는 점과 개별화된 개성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점에서 근대 소설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3. 스토리1) 줄거리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 경성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형식은 미국에 유학하려는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개인 지도한다. 그러던 중 형식은 선형에게 차츰 연정을 품게 된다. 이 무렵, 형식의 어린 시절 동무이자 옛 恩師 박 진사의 딸인 영채가 형식의 하숙집에 찾아온다. 영채는 애국지사로 투옥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어 있었다. 비록 몸은 기생이라 해도 아버지의 말을 굳게 믿고 형식을 사모하며 절개를 지켜 왔다. 형식은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이때 영채에게 黑心을 품고 있던 경성 학교 교주의 아들 김현과 선형은 영채와 병욱을 만나게 된다. 영채는 병욱의 도움으로 마음을 가다듬게 되었고, 이제 일본으로 음악과 무용을 공부하러 가는 길이었다. 기차는 삼랑진 수해 현장에 이르러 출발이 지연된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수재민 의연금 모금을 위해 자선 음악회를 열고, 민중 계몽과 민족의 미래를 담당할 주체임을 역설한다.2) 근대소설적 면모無情 은 이야기 위주의 소설이 아니라 인물 성격의 창조에 중점을 둔 소설이란 측면에서 본격적인 근대소설이라 부를 수 있다. 즉, 스토리의 흥미보다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중심을 두었기에 현실성 있는 사건 전개가 가능할 수 있다. 無情 의 스토리를 보면 주요 인물들의 관계 구조가 가르치고 배우는 즉 師弟지간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 순수하고 그 관계만이 진정한 관계이며 그것만이 민족과 시대의 운명이며 이것이 무정 이 가진 힘이다. 이런 사제관계의 구조는 단순한 애정관계에 입각한 스토리 진행이 아닌 계몽 혹은 의식을 가지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근대문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이 근대소설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개별자로서의 인간의 욕망을 성리학적 윤리관으로부터 해방시켜 그 자체로 선악을 논할 수 없는 價値中立的인 것으로 정립했다는 점이다. 이는 형식을 중심으로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형성되는 삼각관계라는 서사적 설정과 연관되어 있다. 형식에게 있어 영채와 선형은 당위와 욕망이라는 모습이 되어 서로 대등한 무게로 맞서고 있다. 삼각관계가 해소되고 난 이후에도 이 둘은, 형식의 심리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선택을 고수하고 합리화하려는 생각과 영채에 대한 죄책감 사이의 대립으로 전환되어, 서사가 종결될 때까지 지속된다. 형식의 내면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양자의 힘 겨루기에서 어느 편이 승리하는지는 且置하더라도 현실적인 욕망의 논리가 당위적인 질서와 대등한 위치에서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소설이 그 전까지의 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소설의 규범 속에서는 의.
혜강 최한기의 교육사상★ 혜강 (1803-1877)- 서구 근대 문명의 대세를 놀랍게 인정하면서도 주체적인 대응을 했던 대표적인 사상가- 기독교를 배제하면서도 서양의 지식과 학문적 방법을 수용하면서 동도에 터하여 새로운 철학을 전개하였다.- 혜강의 교육사상적 가치는 옳고 그름의 준적이 인간 자신의 경험축적에서 형성되고 끊임없이 변통된다는 상대성에 있고, 그러면서도 인간 각자의 진리가 보편적인 것이 되는 데 교육이 목적을 두고 있다. 진리의 상대성과 보편성의 교묘한 결합이다.★ 전통교육이란 대체적으로 인간완성을 목적하고 이를 위해서는 마음 닦음 내지는 본성함양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이를 한마디로 심학이라 할 수 있는데 심학은 불가나 양명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선철학자 모두가 자신이 하는 학문이 진정한 심학임을 자처했다. 인간은 오늘날과 같이 대상적 지식이 학습만으로는 인간됨을 꿈꿀 수 없으며 오직 인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닦아나가는 노력이 있어야만 인간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전통교육의 목적이다.1. 본체로서의 운화기(運化氣)* 혜강(1803-1877)의 본체개념에 해당되는 것은 운화기이다. 운화의 기가 천지 사이에 가득 차서 천지의 생명에너지와 인물의 호흡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 氣로 인하여 조화가 생기고 정신이 생기며 모든 생명은 바로 이 운화기를 얻어서 형체를 이룬다. 따라서 이 기를 떠나서는 생명도 없다.* 인간이 눈으로 보는 것이 氣의 모습이요 귀로 듣는 것이 氣의 소리이며 코로 맡는 것이 氣의 냄새이다. 또한 살갗으로 기의 감촉에 통하는 것으로 기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혜강은 옛날 사람들이 이 氣를 보고도 氣라 하지 않고 天이라 했는데 순천(順天), 법천(法天), 봉천(奉天), 사천(事天)의 天字는 마땅히 천지운화의 氣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천즉기(天卽氣)’이다. 천가 괴는 항상 함께 한다. 형체에 구속된 氣는 天이라 할 수 없고 단지 형체의 이름에 따라 기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혜강에 있어 氣와 운화기의 관계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이다. 대소만물이 기의 활동으로써 서로서로 응하고 섞이어 만물의 운화를 이루기 때문에 개체를 표현할 때는 氣라는 말을 붙이고 통체(전체)를 지칭할 때는 운화기란 말을 쓴다. 운화기란 활동운화기로서 천지인물(天地人物) 가운데 항상 움직이고 두루 운전(運轉)하여 변화하는 氣를 뜻한다.* 혜강은 전체와 개체 간의 기를 대기와 인기로 나누었듯이 우주 전체의 운화기에 의해 얻어지는 理를 유행지리(流行之理)라 하고 인간 개인의 일신운화기에 의해 얻어지는 리를 추측지리(推測之理)라 구분하고 있다. 유행지리는 천지의 도이고 추측의 리는 人心의 공부에 의한 것이다. 유행지리는 곧 천지운화지기(天地運化之氣)의 조리로서 곧바로 기즉리(氣卽理)가 되지만 추측지리는 인위적인 것이어서 氣와 合하는 일이 적고 부합(부합)하는 일이 많다. 천지의 유행지리는 형체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그 자체가 어긋남이 없어 인간 개체의 표준이 된다. 인간은 자기 몸에 국한된 氣를 가지고 천지운화기와 통한다. 그 ‘통’만 이루면 인간의 상대적 리도 보편적 리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2. 추측지리의 형성 과정과 공부원리* 혜강의 理는 사물의 추측에서 나오는 것으로 모두 견문에서 나온다. 즉 인간이 기억하고 생각하고 보고 들어서 사물을 추측하는 것이 理로서, 이 理란 고정되게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라 만사만물에서 인간의 추측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진리는 본유적인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험-축적-추측-증험-준적-경험의 순환고리를 통해 理가 형성된다. 혜강은 인간에 부여된 기운의 작용에 따른 추측의 理를 말하고 이것이 얻어지는 과정을 감각장용, 기억과 궁구, 습염과 통찰, 시의(時宜)에 따른 변통, 性(流行之理)에서 얻어지는 추측의 理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1) 감각경험과 선행후지(先行後知) 공부* 혜강은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는 감각작용으로부터 인식된 것을 미루고 헤아리는 것이 추측의 大用이라 설명한다.* 혜강은 心學을 전공하는 자들이 제규 제촉을 우습게 여기고 성명의 이치를 탐구한다 하여 제멋대로 규준을 정해가지고 천하의 사물을 증험하고자 하는데 이는 부질없이 애쓰는 것과 같아 통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행후지(先行後知)의 공부 방법을 그는 말한다. 혜강에 있어서는 知보다 行이 먼저 있는 것이다.* 양명의 양지, 양능이라는 것도 그 앎이 생긴 뒤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인간이 추측을 통한 앎이 생기기 이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혜강은 말한다.2) 기억과 궁구의 확산* 혜강에 있어 추측은 인간의 감각장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만 또한 인간에게 감각장용만 있고 기억과 궁구의 작용이 없다면, 평생동안 여러 번 듣고 자주 보는 사물이라도 매양 처음 대하는 사물과 같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은 기억과 궁구를 통해 추측을 넓혀 나가고 보다 더 완성된 理를 형성해 간다. 진리(理)란 끊임없이 창조되는 것이다.* 혜강은 일과 사물에 접하여서 얻어지는 모든 경험적 지식을 중요시한다. 그 대상적 지식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질과 양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교육은 문화교육이다. 유형 무형의 모든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얻는 경험의 질과 양이 풍부할수록 새로운 진리를 창조해 갈 수 있다.3) 습염과 통찰에 의한 선 ? 악의 결정* 추측에서 얻어지는 理는 神氣의 통찰과 습염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간은 경험 속에서 외부로부터 거두어 안에 저장할 때는 그 사물을 제거하고 이치만 보존하며 거친 것은 버리고 정수한 것만 남겨 신기에 습염한다.* 사람은 밖에 있는 인정과 물리를 감각기관을 통하여 안에 거두고 모으는데, 그 거두어 모을 때 선악이 갈린다. 그러므로 개인 각자의 선과 악의 분별은 바로 여기에서 뚜렷이 갈라지는 것이다.* 인간 삶에 있어서 聖人이 되고 못 되고는 신기의 습염과 통찰에서 결정된다.* 혜강은 신기가 유형이라 하지만 한 것으로도 말한다. 담연허명하기에 끊임없이 습염의 생멸변화가 가능하다.4) 시의(時宜)에 따른 변통과 개방성* 추측은 감각작용과 기억하고 궁구하는 신기가 있다 하여도 물아(物我)를 참작하여 임기응변하는 변통이 없다면 옛것에만 얽매이는 폐단이 생긴다. 추측의 理란 결국 시의에 따라 변통하는 권도가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시의적 변통이 없으면 理는 죽은 것이 된다.
Ⅰ. 내용요약* 한국불교 : 화엄과 선(禪)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 의상(625-702)* 원효(617-686)1. 화엄사상의 사법계 세계관* 법계연기 : 고정된 실재나 불면변하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이것이 있기에 저 것이 가능한 연기의 생성 관계로 봄* 이사무애법계 : 본체와 현상이 하나로 융섭됨을 설명하는 말* 사사무애법계* 존재 전체는 개체 가운데 구현되어 있는 까닭에 하나 속에서 무량한 전체를 볼 수 있고 하나는 전체이므로 무량한 전체 가운데서 하나를 알 수 있음* 화엄사상의 비유들- 8각형으로 만들어진 방의 모든 면이 거울벽이고, 그 가운데 촛불을 놓아보자. 각기의 1 면은 다른 7면에 비친 모습을 서로 비추어 내고 있다. 거울 1면에 비친 모습은 처음부터 있는 실재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 이외의 것을 비추는 관계 속의 사물이다. 거울 자체는 텅 비어 있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물을 비추어 낼 수 있다.- 그물망 : 그물을 이루는 수많은 그물코는 전체와 분리되어서 존재할 수 없다. 동시에 그물코 하나하나가 없이는 그물망도 없다. 그물망은 처음부터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짜여지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바다와 파도 : 각기의 파도들은 바다와 분리되어서 존재할 수 없고 바다와 파도는 물이 라는 점에서 둘이 될 수 없다.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 없이 바다와 파도는 서로를 의지 해 무상함의 생성을 이룬다. 실체가 아니면서 생겨나는 까닭에 걸림이 없다.- 분수 : 각기의 다양한 물줄기가 끊임없이 생겨나 사라지면서 분수라는 존재를 지속시킨 다. 분수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의 물줄기가 빚어내는 조건 속에서 줄기차게 이어진다. 이것이 인간 자신과 세상의 실상이다.2. 『화엄일승법계도』와 교육인간상1) 화엄일승법계도* 일승법계도 : 화엄종의 종지를 이루는 7언 30구 210자의 반시와 이에 대한 의상 자신의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음( 그림 및 해석 출처 ↓ )http://cafe.naver.com/bealltheworl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289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법성은 원융하여 두 상이 없으니,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모든 법이 움직이지 않고 본래 고요하다.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이름도 상도 없이 일체 여읨도 없으리.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깨달아 알 바요 여지의 경계는 아니다.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진성은 심히 깊고 미묘하여,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성수연성)자성을 지키지 않건만 인연 따라 이룬다.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하나 가운데 일체요, 일체 가운데 하나라, 하나가 곧 일체이며 일체가 곧 하나이다.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안겨 있고, 일체 티끌 가운데 또한 이와 같네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한량없는 먼 시간이 곧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무량한 시간이다.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상호즉) 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난격별성)구세 십세가 서로들 그것이면서. 조금도 뒤섞임 없이 분별하게 되니,初發心時便正覺 (초발심시변정각) 生死般若常共和 (생사열반상공화)초발심 할 때가 곧바로 깨달음이다. 생사열반이 항상 함께理事冥然無分別 (이사명연무분별) 十佛普賢大人境 (십불보현대인경)진리와 현실이 환해 분별이 없으니, 10불 보현은 대인의 경계라.能仁海印三昧中 (능인해인삼매중) 繁出如意不思議 (지출여의불사의)부처님의 해인삼매 가운데서. 부사의한 도리가 같게 나와라.雨寶益生滿虛空 (우보익생만허공) 衆生隨器得利益 (중생수기득이익)허공에 가득한 단비에, 중생은 그릇 따라 이익을 얻는다.是故行者還本際 (시고행자환본제) 回息妄想必不得 (파(회)식망상필부득)그러므로 수생자가 본원(本源)에 돌아가서, 망상이란 있을 수 없고無緣善巧捉如意 (무연선교착여의) 歸家隨分得資糧 (귀가수분득자량)무연대비의 여의주로서 자리에 나아가 위(位)를 얻으니,以陀羅尼無盡寶 (이다라니무진본) 莊嚴法界寬寶殿 (장엄법계실보전)다라니의 무진한 보배로써, 법계의 보전을 장엄케 한다.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마지막 실제중도상에 앉아서, 예로부터 부동하여 불(佛)이라 한다.2) 의상의 이이상즉* 理라는 것은 공성이고, 현상을 통해서 리는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에(탁사현법) 이사는 상 즉한다. 이사가 상즉하므로 현상간의 사사상즉이 가능하고 동시에 이이상즉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존재에의 철저한 긍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3) 표원의 오관석과 화엄의 교육인간상* 오관- 인연관 : 나(我)라는 거은 곧 모든 인연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또한 이러한 존재인 나를 통해 연(緣)을 이룸- 연기관 : 인연으로써 이루어진 나이지만, 나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나로써 나를 통해 연 이 이루어지지만 연 또한 고정불변한 자성이 없음- 성기관 : 모든 존재는 있고 없음이 원래 하나이고, 있으면서 없는 모든 존재는 본래 둘이 아님- 무주관 : 있음이라 할 때는 있음이 아니요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고, 없음이라 할 때는 없음이 아니요 유(有)로 돌아가는 것- 실상관 : 모든 존재가 본래 옮기어 움직임이 없는 것* 인간이 유나 무에 집착하여 번뇌를 끊지 못하면 성불(깨달음)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한 편의 집착을 떠나 실상을 알면 이미 오래전부터 깨달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곧 중생을 이익되게 함이라 말한다.* 화엄의 교육인간상 시사- 첫째,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정되고 향상한 존재가 아니라 無가 떠받치고 있는 관계의 존재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학생에게 유무의 중도로 세계관에 따라 어떤 고착된 분리를 갖거나 사회나 세계를 자기와 대립시켜 보는 견해를 삼가라고 가르친다.- 둘째, 실체 없이 생겨나게 하는 이사무애의 사상은 인간 개체의 존중과 다양성을 인정하게 한다. 모든 존재는 원인과 인연에 따른 결과로서 이유를 갖고 있고 그것은 전체와 관련된 이유이기에 각기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들 각자가 자신의 개별성을 통하여 세상을 이익 되도록 목적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임무이다.- 셋째, 개체는 자기 자신 이외의 타자, 즉 전체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전체 또한 개체 상호간의 관계의 존재이므로 세계를 자기 한몸으로 여기는 공동체 의식을 지향하게 한다. 대립과 투쟁보다는 자타불이의 대아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라 불렀다.- 넷째, 우주를 한 몸으로 하기에 개인의 역사창조는 우주의 역사창조와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에 의해 변화, 생성되는 우주를 개체의 삶으로 살면서, 죽을 때는 우주 전체로 돌아가 또 다른 가체로 생성한다. 이것이 영겁회귀의 생사관이자 역사관이다.Ⅱ. 토론주제화엄사상이 지향하는 교육관Ⅲ. 토론전개* 불교에서 화엄학은 천태학과 더불어 교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고, 오늘날 현상학을 이해함에 있어 많은 도움을 조는 철학이다. 화엄사상은 화엄경을 주요 경전으로 하여 정립된 사상인데,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화엄 사상은 일찍이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매우 중시되었으며, 한국 불교의 한 전통으로 정립되었다.의상은 신라 왕족출신으로 구법을 위해 입당유학하여 지엄 문하에서 하엄학을 대성시켰고 같은 지엄의 제자이자 도반이었던 법장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다. 의상의 저술인 ‘화엄일승법계도’는 오늘날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인간이 유나 무에 집착하여 번뇌를 끊지 못하면 성불, 즉 깨달음이 아니다. 교육에 있어서 의 깨달음은 인간 삶에서 핵심적인 문제인데, 교육자는 교육이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진리추구에의 열정을 불어 넣어주고 각자가 진리에 도달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 해방은 깨달음에 따라 자신과 타인을 해방하고 사회와 세계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므로,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 하고자 직업을 택해야 한다.
Ⅰ. 내용요약★ 지눌 (1158~1210) ★* 1158년 황해도 서흥군에서 국학의 학정인 정광우의 아들로 태어남* 8세에 출가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계의 종휘 선사에게 구족계를 받음* 25세(1182)에 승선에 합격한 후 보제사 담선법회에서 도반 10여 인과 결사 결의* 담선법회를 파한 후 남하하여 창평 청원사에서 3년을 머무름* 33세(1190) 무렵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문을 짓고, 정혜결사를 위한 도량을 물색하던 중 1197년 송관산 길상사를 발견하여 9년 만에 확장공사를 마치게 됨* 1205년 정혜결사문을 다시 인쇄하여 발표하고 정해결사의 청규법으로서 『계초심학인문』을 저술하여 사중의 일상생활을 경책★ 지눌이 정혜결사에 있어서 제시한 근기에 따른 세 가지 문 ★*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 정혜결사를 창도한 이래 지눌의 필생의 과업*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 육조단경과 화엄론을 통한 돈오의 길* 경절문(徑絶門) : 언어분별의 알음알이를 타파하는 해결사★ 정혜결사문 ★* 지눌이, 고려불교의 타락된 현실을 직시하면서 불교의 본질을 되찾고 사회를 제 도하고자 결성* 화엄론절요-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얽매임에 들어가기를 감당할 수 있고, 얽매임에 처해 있어도 속박되지 않 아야 비로소 속박을 풀어버리는 가르침을 중생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라 보살 행을 실행하려면 먼저 깨달음을 이루어야 한다.∴ 지눌은 사회 濟度를 위해서 깨닫고자 했고 깨달음에 뛰어들어 깨닫고 보니 그것 은 사회제도의 길이었음을 자신의 사상편력인 깨달음의 3전기를 통해서 확인1. 지눌에 있어서 깨달음의 세 轉機1) 육조단경* 하루는 우연히 서가에서 육조단경을 보다가 “진여의 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므로 비록 지각으로 보고 들어 깨달아 안다 하더라도 진여의 성품은 외부의 현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자재하다.”는 대목에 이르러 놀라고 기뻐하며 지금까지 체험 하지 못했던 것을 증득하였다고 지눌은 말한다.- 지눌은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던 진여자성, 즉 불성이 보고 듣고 지각하고 인 식하는 일상 활동을 떠나 따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일상적 삶 의 자리에서 만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2) 화엄경론 ( 이통현 )* 하루는 어떤 자가 지눌에게 “단지 자심만을 관하고 사사무애를 관하지 않는다면 불과의 완전한 덕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지눌은 대꾸도 하지 않으며 속으로 “단지 마음이 맑고 지혜가 깨끗하기만 하면 한 오라기 머리털과 온 세계가 혼용하는 것이 기필코 자기 마음 바깥의 경계가 아니리라.”고 했다. 그리고 화엄론을 읽다가 ‘여래의 지혜는 중생의 몸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나 단지 우둔한 자들이 알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 리는 대목을 접한다.- 지눌은, 이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이요, 밖에서 구하 는 것이 아님을 체험하고, 화엄경의 근본 취지가 선과 일치한다는 확신을 교가 의 글로부터도 확인했다3) 종고 어록 ( 대혜 )* 지눌이 보문사에서 뜻을 얻어 부지런히 닦았지만 정견을 잊지 못해 마치 원수와 함께 머무는 것 같던 중, 대혜선사의 어록을 읽게 된다. “선은 고요한 곳에 있지 않으며 생각하고 분멸하는 곳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 시끄러운 곳, 일상사에 응하는 곳,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구해서는 안 된다. 홀연히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일임을 알게 되리라.” 이에 깨우침을 얻어 안락해졌다고 한다.- 지눌은 교가들이 사사무애를 관하라고 할 때도 마음 안으로 잦아들었지만 마 음 밖의 세계와 융회하는 성속일치의 문제가 항상 과제로 남아 있었다. 진성에 의해 일상이 일어나고 일상 속에 진성이 있다는, 그리고 진성이 일상과 융회하 면서도 일상에 물들지 않는다는 활연한 대오로 인하여, 그동안 가슴에 걸렸던 원수가 사라졌던 것이다.2. 진심으로 들어가는 돈오점수* 지눌의 있어서 마음닦음의 목적은 자기 안의 진심을 깨닫고자 함이다. 인간이 깨달아야 할 진심의 ‘진’이란 허망을 떠난 것을 이름하고 ‘심’이란 신령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 진심은 누구나 동일하지만 지혜를 얻지 못 한자는 망령된 마음으로 사물을 그릇 인정함으로써 진심을 드러내지 못한다. 지눌은 이 진심을 ‘공적영지’라 했다. 보고 고요하면서도 신령하게 아는 마음!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래의 마음이다.1) 진심은 깨달아 알고 이를 믿는 믿음에서 얻어진다.* 진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돈오에는 신해가 함께 해야 한다. 화엄경에 “믿음은 물을 맑게 하는 구슬과 같아서 능히 흐린 물을 맑게 한다.”고 했다. 믿음이란 참된 성품이 사람마다에 갖추어져 있음을 믿는 것이다. 진심은 자기 안에 진리가 갖추어져 있음을 믿는 것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이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보고 과 이 바르고 참되어야 진심을 회복할 수 있다.2) 깨달아 앎은 空의 이치에 의지한다.* 깨달음의 기초가 되는 믿음과 앎이란 공통적인 이해와 이를 의심치 않은 믿음을 말한다.* 나(我)가 없음을 단박 깨닫고 모든 것의 空性을 깊이 믿고 통달하는 것이다. 지눌은 「종경록」을 인용하면서 보이는 대상만이 진실이라 하여 그것의 空性을 함께 보지 못하면 아무리 수행을 일삼더라도 바른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3) 깨달았으면 점차 닦아야 한다 - 돈오점수* 깨달은 후 점차 닦아 가는 점수의 수행 방법은 곧 성성적적의 정혜쌍수다. 선돈후점을 말한 지눌의 사상은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그 다음에 점진적인 수행의 노력이 따르게 됨을 나타낸다. 돈오를 먼저 전제하지 않는 수행은 동기를 모르는 수행이 되어 맹목적인 고행에 빠지고 점수를 동반하지 않는 직각적 깨침은 단순히 이론적 차원의 일시적 깨임에 그쳐 곧 흐려지고 만다. 점수(漸修)란, 비록 본래의 성품이 붓다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렵기에 점차 닦는 것이라 말한다.3. 마음 닦음에 있어서 정혜쌍수(定慧雙修)* 선정과 지혜의 두말은 바로 三學의 준말로서 갖추어 말하면 계율과 선정과 지혜이다. 마음을 깨친 후 습기를 닦음에 있어 선정과 지혜를 겸하는 뜻에대해 지눌은“만약 법과 그 뜻을 말한다면 진리에 들어가는 천 가지 문이 모두 선정과 지혜 아님이 없다. 그 강요를 들면 단지 자기 성품의 본체와 작용의 두 가지 뜻에 불과하니 앞에서 말한 공적과 영지가 그것이다. 선정은 본체며 지혜는 작용이다. 본체가 작용이므로 지혜는 선정을 떠나지 않았고 작용이 본체이므로 선정은 지혜를 떠나지 않았다. 선정이 바로 지혜이므로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지혜가 선정이므로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이라고 말하였다.* 화엄에서 모든 존재의 근본은 이사무애 ? 사사무애의 이치를 갖는다고 말한 바 있다. 지눌은 본체를 선정이라고 하고 작용을 지혜라 한다. 본체는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선정 혹은 공적의 상태이고 작용은 밝히 아는 지혜, 즉 영지의 상태이다. 선정이 바로 지혜요 지혜가 바로 선정이다. 이 세계가 ‘ 진공모유(眞空妙有)’로서 공하면서 작용을 일으키듯이, 우리 마음 역시 고요하면서 신령하게 안다.따라서 정혜쌍수라 했을 때는 마음이 고요하고 밝히 알도록 마음의 산란함과 어둠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산란하면 혼침한 것이고 혼침하면 산란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는 요체는 무란심(無亂心)과 무치심(蕪痴心)의 견지에 있다고 하겠다. ‘마음에 산란없음이 자기 성품의 선정이요, 마음에 어리석음 없음이 자기 성품의 지혜이다.’
< 중국 禪宗의 성립과 주자(朱子)의 공부론 >Ⅰ. 내용요약★ 6세기 초엽 북위 말기 달마를 초대 조사로 하여 직지인심(直指人心), 교외별전(敎外別傳), 이심전심(以心傳心)을 표방한 선종은 인도로부터 전해 온 불교가 중국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중국 선(禪)은 이 현세에서의 수행으로 단번에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초기 중국 선종가들은 명상의 실천에 의한 사유의 전환을 목표로 했다.★ 달마를 초조로 하여 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으로 이어지는 사자전등은 혜능이후 하택 신회에 의해 남종과 북종으로 구분되고 혜능의 또 다른 제자였던 남악-마조도일의문하에서 나온 위산 ? 양산의 위양종과 임제종 그리고 청원 문하에서 갈린 동산종 운문종 법안종 세파를 합쳐 5가를 이루어 전체 5가7종의 계파를 형성했다.★ 주자는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 극근과 그의 제자이자 간화선의 주창자인 대혜 종고의 사상 속에서 젊은 날을 보냈다.★ 주자가 비판하는 불교는 불교 전반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선불교에 국한된 얕은 지식 속에서 비판을 가한 것이었고 주자의 그러한 불교 비판은 선종 내부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기도 하였다.1. 선종 육조1) 제1조 달마*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로, 범어로는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로 불리우는데, 달마는 그 약칭이다.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의 뤄양에 이르러 동쪽의 쑹산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을 제자 혜가에게 전수하였다. 그의 전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최근 둔황에서 출토된 자료에 따르면, 그의 근본사상인 ‘이입사행(二入四行)’을 설교한 사실이 밝혀졌는데,오늘날의 학계의 정설로는, 달마는 사권능가경을 중시하고 이입과 사행의 가르침을 설파하여 당시의 가람불교나 강설불교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그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한 사람이다.2) 제옷을 주었다.4) 제4조 도신* 스님의 속성은 사마(司馬)이고, 태어난 곳은 하내이다. 스님은 7살에 출가했다. 그러나 스승의 계행이 단정하지 못해, 섬기기는 하나 미진함을 느끼던 중, 14세(592)에 사미(沙彌)의 몸으로 오랫동안 환공산에 은거하고 있던 82세의 3조 승찬을 만난다. 사미 도신은 승찬스님에게 절하면서 말하였다. “화상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해탈하는 법문을 일러주소서.” 스님이 대답했다. “해탈이라니 누가 너를 묶었더냐?” “아무도 묶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묶은 이가 없다면 그대는 이미 해탈인이다. 어째서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 도신은 이 한마디에 크게 깨달았다. 이후 스승 승찬이 환공산을 떠날 때까지 9년간 보필하였다.도신이 중국 선종사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대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수일불이’의 구체적인 실천법이 좌선행이고, 이것이 뒤에는 화두로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좌선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항목들을 제시함을 통해서, 불교 본래의 가치인 수행력을 회복하게 하였다는 점과, 이를 통해서 선종이 비로소 중국화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두 가지 점을 특별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5) 제5조 홍인* 스님의 속성은 주(周)씨이고, 태어난 곳은 호북성 황매현이다. 그는 태어나면서 영리하여 신동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며 동네 사람들은 그를 무성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4조 도신스님이 황매현으로 볼일이 있어 가던 중 길에서 한 어린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의 골상이 남달리 빼어났으므로 도신이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성(姓)이 무엇인가?” 무성이는 대답하기를, “불성입니다.”라고 하였다. 도신은 기특하게 여기면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성이 아니더냐?”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무성은 대답하기를, “불성은 공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도신은 그 아이가 큰 법의 그릇이 될 것임을 알고 부모의 허락을 얻어, 12살 어린 무성이를 제자로 삼고 불명을 홍인이라 지어주었다.홍인은 다름과 같이 가르쳤다. “허공 저편의 시야가 다하는북종과 남종으로 분리된다. 하택 신회는 남종의 돈오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종을 점수로 몰아붙이면서 달마의 정통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남종선을 계승한 종밀은 북종선의 특색을 요약하여“번뇌의 티끌을 털어내고 청정한 마음을 직관하며 명상의 방편에 의거해 진리에 통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북종남종분별의식이라는 상념을 그친다고 하는 의미에서 이념(理念 )주장무념(無念)을 설함점오로서 단계적인 수행을 설함직관적인 깨달음, 즉 돈오(頓悟)를 주장* 일반적으로 북종과 남종의 구분은 각기의 이념(理念)과 무념(無念)의 주장에서 찾는다.* 신회의 북종 비판-“신수선사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마음을 집중시켜 명상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고요한 상태를 지키고 마음을 가다듬어 외계를 통일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안에서 깨달음을 구하라고 한다. 이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자의 가르침에 지나지 않는다. 유마경에도‘마음을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밖으로 향하게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좌선이니, 부처는 바로 이러한 좌선을 인가하신다.’라 말한다. 예로부터 6대 조사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마음을 집중하여 명상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고요한 상태를 지키고, 마음을 가다듬어 외계를 통일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안에서 깨달음을 구한 적이 없다.”→ 신회의 북종비판의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불교의 본질이 그러한 명상이나 정신집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념의 근저에 있는 자각 그 자체가 아니면 안 된다하는 입장이다. 신회는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디에도 머무는 일이 없는 마음의 자유로운 활동에 눈뜸 을 가능하게 하는 본래적인 저절로 아는 작용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안으로부터 저절로 아는 것으로, 북종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밖으로부터 관(觀)하는 깨달음의 대상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혜 바로 그것은 텅빈 마음의 본질 그 자체이다. 어디에도 머무르는 일이 없는 마음은, 무주(無主)이며 이 무주라는 본체로부터 일체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선불교 연구자들은 북를 대표했던 이들은 하택의 본지보다도 투철한 현실의 작용에 그 본질을 두는 것이었다. 훗날 주자가 비판하는 불교는 선에 국한되고 또한 얕은 지식 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당의 종밀이 행한 홍주비판의 연장에 불과하다.2) 평상심이 도다(平常心是道)* 평상심 :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으며 취하고 버림이 없고 끊어짐과 항상함이 없으며 범인과 성자가 없는 마음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마음 그 자체가 바로 부처인 것과 같은 마음이며 수행을 빌리지 않으며 좌선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알지 못하여 미혹에 빠져 dLT는 마음 그 자체가 이미 깨달음의 장소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평상심이라는 것은 그러한 마음의 전체이며 미혹과 깨달음의 전부를 포함아며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바로 그것이다.3) 선문답 : 새로운 대화의 발견* 선문답이란 가장 편이하고 평범한 생활의 기록이었다.* 선문답의 어떤 것을 후대에는 공안(公安)이라고 부른다. 공안이라는 것은 본래 재판의 판례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그것이 어디까지나 특수한 것이고 사사로운 것이면서도 역사에 살아있어 현실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공적인 의의를 떠맡는 것이다. 흔히 1700칙의 공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북송 초기에 편집된, 그리고 최초의 완전한 선종사라 할 경덕의 에 등장하는 선승의 수가 1700인인 것에서 유래한다. 이 책이 국가가 공인하는 새로운 불교자료의 하나로서 대장경 가운데에 엮여지고, 한문으로 변역된 경전이나 그 밖의 많은 주석서와 동일시되었던 것은 이 시대의 선종이 근세불교의 대표세력이 되었음을 나타낸다.법연은 송대의 침체된 선을 다시금 일으키고자 공안선 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사용한 것은 유명한 조주무자의 공안이었다. 공안은 생각하는 자에게 있어 어디까지나 자기의 본연의 자세와 관계된다.4) 간화선* 당나라 시대 선이 일상생활 속에서 숨 쉬고 있었던 것에 비해서 송대의 선은 의식적인 문자의 공부와 마음의 수양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송대의 선을 특징짓는 간화선은 이러한 요구로부터 생겨나는 가르침을 깨닫고 일상의 일륜을 등한히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인륜을 중시하는 유교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다.6) 주자의 불교비판과 공부론* 주자가 불교를 비판하는 데는 연평이라는 스승의 영향과 관리로서의 현실 경험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 주자 자신이 처한 조국의 정치적 정황과 그러한 정황을 초래하게 된 사상사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였다. 주자는 북송이 멸망한지 3년이 지난 때에 태어났는데, 주자가 보기에 당시의 사회와 역사가 처한 위태로운 현실은 당시 사회의 주된 이념이었던 불교가 사회와 역사를 방기한 때문이었다. 그는 결코 사회와 역사를 외면한 채 조사선처럼 인간 본래의 완전성을 노래하며 누릴 수 없었다.특히 선불교에서 “작용이 성(性)이다”라고 말한 데 대해 주자는 고자의 “타고난 본능을 성(性)이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 하여 이는 지각하고 운동하는 것을 바로 성과 연결시키는 견해라고 비판했다.주자에 의하면 선불교는 현실과 초월을 조화시키고 일치시킬 줄 모른다. 불교에 대한 주자의 비판은 불교의 윤회론, 궁극적 실재로서 천리를 부정하고 실체를 부정하는 존재론, 마음을 본체로 놓는 심성론 등에 대해서 특히 공격이 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자의 사상에는 불교의 자취가 곳곳에 붇어나고 있다.① 격물치지의 공부와 활연관통* 주자는 궁리를 해가는 방법으로서의 격물이 무수한 사물과 눈앞에 드러난 구체적인 인간현실에 입각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주자의 격물 공부 방법첫째, 사물이 이치를 궁구함에 있어서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으로 하고 또 간략하고 눈에 보는 것에 의지하여 정미로운 것에 이르도록 궁구해야 한다.둘째, 앎의 대상을 자신에게 필요한 일로부터 선택해야 한다.셋째, 앎을 추구해 나갈 적에 이미 안 것에서부터 의거하여 점차적으로 쌓아나가야 한다.넷째, 사물을 궁구할 때 궁구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 완전히 터득한 후에야 다른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다섯째, 독서를 하거나 사물을 접하여 그 도리를 궁구할 때에 널리 자세하게 묻고, 신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