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내용 자체는 다분히 통속적이다. 1920년대 미국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지만 작가 피츠제럴드는 작품속 화자를 통해 등장 인물들을 다분히 부유한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고, 안주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는 주인공 개츠비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화자는 주인공을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화자의 입장에서 개츠비는 비록 밀주를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자기가 꿈꾸는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떠한 희생도 각오할 사람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개츠비가 왜 죽어야했는지 결말은 다소 비극적이다. 이 비극은 먼저 현실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형태로 그 앞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츠비가 전쟁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데이지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러나 그가 전쟁후 만난 데이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사회가 인정하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녀와의 사랑을 지속하는 것은 이미 그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개츠비의 삶이 순탄치 않게 되며, 이런 개츠비의 데이지에 대한 사랑은 이를 표현하는 순간 더 이상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 남의 아내를 엿보는 지극히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위대한 개츠비』가 비극적 결말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기본적인 밑바탕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욕구, 욕망과 사회적 윤리와 시선. 이 두가지가 상충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윤리안에서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자 할 때, 이것이 사회와 갈등양상을 보이며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게 된다. 개츠비의 입장에서 데이지를 향한 지고지순하고 맹목적인 사랑이 죄가 될 수는 없으나,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한 셈이다. 사랑을 하는 당사자나 그와 절친한 사람이 아닌 이상 제3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남의 여자나 엿보는 사람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결국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엄청난 부를 축적한 개츠비가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자기가 꿈꾸고, 하고 싶은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인간 개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나 시선에 따라 행복의 가치기준은 달라질 수 있으며, 그 나름의 가치기준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꿈이자 인간의 행복일 수 있을 것이다.한편,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개츠비는 위대한가? 무엇이 개츠비를 위대하게 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으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주인공 개츠비가 밀주를 만들어 갑부가 된 사실,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여자를 다시 차지하고자 하는 사실 등은 분명 위대하다라는 개념과 거리가 있는 것인데도 피츠제럴드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물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결국 그가 위대하다는 것은 주인공 개츠비가 그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며, 그런 그의 삶에 대한 자세에 그 위대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의 마지막 구절 “내일이 되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 어는 해맑은 날 아침에… 그렇게 우리는 과거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가면서도, 흐름을 거스르며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르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면 미래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라 생각되어진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에 대한 성공이든 간에…단순한 고전으로 생각했던『위대한 개츠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즐겨 읽었던 책으로 기억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좋은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인형의 집』은 노라라는 주인공이 남편인 헬메르와 가정을 꾸려가면서 겪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라는 당시에 금지된 사채를 얻어 병든 남편의 치료비용을 충당하게 되고, 보수적이고 완고한 남편인 헬메르는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자신의 명예를 위해 노라를 용서하게 되지만, 노라는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과 번민으로 헤어짐을 선택하게 된다.헨리 입센의 이 작품은 출간되었을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도 그럴것이 19세기말이라고 하는 다소 봉건적인 문화가 남아있었을 당시에, 여성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위해 남편과 이혼한다는 가정은 커다란 사건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의 노라는 남편인 헬메르가 지칭하는 것처럼 가정에서 귀여운 ‘다람쥐’, 혹은 ‘종달새’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결혼전에도 아버지로부터 인형 취급을 받아왔던 노라는 그렇게 취급받는 삶이 당연한 것이라 여겨왔고, 결혼후에도 남편이 자신을 이제 다 큰 인형으로 취급하는 것도 당연스럽게 여겨졌다. 책 내용의 마지막부문에 크로그스타가 차용증을 보내옴으로써 소설의 문제가 곧바고 해결되는가 싶었으나, 그 과정에서 남편 헬메르는 자기 자신이 지켜온 가정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자신의 명예가 허물어지는 것으로만 생각하자, 노라는 가정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그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 결국 가방을 꾸려 나갈 수 밖에 없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즉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으며, 자신이 타인에 의해서 어떻게 살아가지도록 남들의 명예나 시선에 가두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존재에 대한 회의감으로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혹은 여성의로서의 주체적인 삶, 그리고 사회의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반항 등 이러한 모든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보기에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진전된 사회적 민주화로 인해 많은 제도와 법을 통해 사회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늘어나고 있으며, 실생활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가 태동한 서구 민주국가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지 채 100년이 안된다는 사실이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호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전되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불합리하고 다소 비민주적인 제도와 법령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관심하고 관대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만큼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여성으로서의 삶을 떠올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여성의 경제력이 아닌가 싶다.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온전하게 한 개인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급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한편으로 이 책을 읽고 났을 때, 예전에 읽은 윤대녕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90년대 감각적인 언어로 자아를 찾아 떠나는 과정을 세밀히 묘사한『은어낚시 통신』을 비롯해 그의 소설들은 현실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소심한 현대인이 여행이나 낯선 경험을 통해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은 비록 험난하고 어렵지만 또한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해답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유일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한 개인으로서 그러한 과정은 우리 인생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과 느낌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끔찍한 것처럼 여겨지며,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마땅히 거쳐야 할 삶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다양한 욕구를 지니고 살아간다.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것,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 보다 좋은 지위에 오르고 큰 권력을 잡는 것,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등, 인간의 욕구에는 끊임이 없을 듯하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가장 큰 욕구는 영원한 삶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싶다. 옛날 고문서에 의하면 중국의 진시황도 세계 각지에 사신을 보내어 불로초를 구하게 하는 등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욕구가 아닐까 싶다. 이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역설적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느냐의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인간 본성, 내지는 자연의 섭리에 거스를 수 있느냐하는 도덕적인 문제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망과 이것이 자연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도전으로써 나타나는 비극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프랑켄슈타인』에서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과학적 의술-여기에서는 신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소극적 의미(치료)로써의 의술 개념이 나타났다.-을 거부하고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창조하고 연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녔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지금 현대 사회에서 받아들이기에 허무맹랑한 전기 충격요법을 통해 현실화 한다. 이 결과로 다소 초인적인 힘을 가진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며,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 이 새로운 인간은 결국 죽음으로써 그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여기서 새로이 탄생된 인간, 이름조차 없는 이 인간은 탄생의 과정에서부터 추한 몰골-이는 사회와 그 새로운 인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기본적 장치이다-과 어린아이 수준의 지식 상태, 그리고 사회와의 부조화를 통해서 철저히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고립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그러한 결과를 가늠하지 못해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하늘나라로 보내야만하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다.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켄슈타인』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이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상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저자 셸리가 19세기 초무렵에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했던 상황과 현대 사회와는 분명 시간적인, 그리고 과학 기술의 발전적인 측면 등 모든 분야가 상이한 건 사실이지만 최근의 유전자 정보 연구를 통해 인간이 인간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은 셸리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서울대 황우석 교수 등이 유전자 정보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화제가 되고 있고, 더욱이 며칠전에는 실험용 쥐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수컷없이도 난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것은 『프랑켄슈타인』에서 허구라고 여겨졌던 내용들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DNA의 유전자 정보 연구를 비롯해 수 많은 연구와 실험들이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나둘씩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세포와 인간 조직에 대한 신비가 풀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점의 차이가 상당부분 논란이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탄생시키는 것은 신의 고유영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침해이며, 현대사회의 윤리의식의 비재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인간 자체가 아닌 인간의 특정 내장 기관을 생산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면 병으로 고통받는 인류사회에 커다란 축복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 이는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손상된 인간 장기를 새로이 만들어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인간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갖추고 있는 유전자 정보 연구를 통한 새로운 장기나 생명체의 탄생은 이를 활용하는 인간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이나 규범으로써 이를 강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있는 법규범은 인간사회에서 발생가능한 일에 대해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명문화 혹은 사문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이는 결국 인간사회의 법규범을 지키고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남에게 해가 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법이나 윤리가 인간사회에 끊임없이 주문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범죄들은 그러한 사회적 요구들을 결과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목적에 따라 부분적으로 인간 복제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싶다. 만약 가능하다면 인간 복제 자체는 매우 제한적이고, 이례적인 사례로 특별히 관리되어야 하며, 인간의 장기에 대한 복제는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선에서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장기 기증을 통해 생명 연장이 가능한 사람의 경우 현실적으로 장기기증자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지금 현재도 장기밀매라는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의 인간 장기의 복제는 엄격한 관리와 통제하에 허용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견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이 보여주는 비극적인 결과와 같이, 인간의 과도한 욕심은 항상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하게 만든다. 기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인간 복제 자체를 반대하는 견해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하며, 인간사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해나가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사회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자연의 섭리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흉칙한 모습의 괴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서 론여행은 설레임이다. 내가 살던 집과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곳을 경험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슴 설레는 일이다. 특히 우리와 생활방식이나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그러한 설레임이 더할 것이다. 또한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고,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배우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경험이자 산 교육이라 생각된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그들만의 방식을 배우는 기회이며, 문화의 다양성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같은 아시아 국가이지만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는 태국. 불교의 나라답게 온 나라가 불교사원처럼 꾸며져 있는 태국은 내가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일년 내내 온화하고 더운 기후가 있으며, 수많은 열대 야자수와 최고의 휴양지를 가진 태국,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순박하고 착한 태국 사람들. 또한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소수 민족의 원시적인 생활문화가 남아있으며, 삶 자체가 하나의 종교인 나라 태국은 다분히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는 많은 다른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말로써 전해들은 이야기만을 들어봐도 태국은 매력적인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사람들을 태국으로 이끌고 있으며, 왜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곳으로 가서 보고 느끼는지 아직 태국 여행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머릿속으로 그려볼 뿐이다.태국은 한국인에게는 가장 친근한 여행지이며 허니문코스로 많은 사랑을 받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내년에는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예비신부로서 미래의 신혼여행지로 태국을 유력한 후보지로 정하고 있으며, 기회가 닿는다면 태국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본 론1. 태국소개태국은 동남 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태국의 수도는 방콕 (Bangkok)이며, 인구는 약 6천100만명이다. 면적은 51만3,115㎢ 로써 남한 면적의 5배에 달한다고 한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미얀마(옛 버마), 북동쪽으로는 라오스, 동쪽으로는 캄푸치아, 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 20B, 50B, 100B, 500B, 1000B 의 6가지 종류가 있고, 동전은 25St, 50St, 1B, 5B, 10B 의 5가지 종류로 되어 있다.2. 태국에서 지켜야 할 예절(1)태국 사람들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친밀함을 표하는 행동이라도 삼가는 것이 좋다. 혹시 머리를 건드리게 되었다면 즉시 사과 해야 한다.(2)서로 인사를 할 때 악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세와 같이 양 손바닥을 합장한 자세로 "Wai"라는 말과 함께 목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3)타인에게 물건을 건네줄 때 왼손은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국에서 왼손은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손이기 때문이다.3. 태국의 관광지방콕 – 왕궁(Grand Palace), 와트 프라케오(에메랄드 사원 Wat Phra Kaeo),와트 포(열반불 사원 Wat Pho),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왕궁(Grand Palace)1782년 라마 1세(차크리 왕)에 의해 세워진 궁전이다. 탁신 왕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차크리 왕(라마 1세)은 차오프라야 강 건너 방콕으로 수도를 옮겼다. 현재 국왕은 살고 있지 않아 일반인에게도 관람이 허용되며, 국가의 공식 행사에 이용되고 있다.라마 1세가 세운 두시트 마하 프라사트 궁전은 전통 타이 양식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역대 왕들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궁전의 내부는 금박이 입혀진 거대한 불화가 뒤덮고 있어서 장엄한 분위기가 전해져 온다. 유럽풍의 건축물 차크리 궁전은 차크리 왕조 100주년을 기념하여 라마 5세가 세운 것이다. 근대화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던 라마 5세의 서구 지향적인 사고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구 건축 양식을 받아들인 대표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다. 다리가 노출된 옷차림으로는 입장할 수 없으며, 반바지 차림이라면 입구에서 치마를 빌려 입고 들어간다. 또 건물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와트 프라케오(에메랄드 사원 Wat Phra Kaeo)1874년에 건설된 차크리 왕조의 수호 사원이 1세에 의해 건립된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길이 49m, 높이 12m의 거대한 와불상이 볼거리로, 불상의 발바닥에는 바라문교의 세계관을 나타낸 도안이 나전으로 세공이 되어 있다. 본당 내부에는 석가의 일생을 테마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394개나 되는 불상을 볼 수 있다. 본래 이 곳은 승려들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여 세워졌다가 라마 3세 시대에 이르러 의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또 사원 내에 있는 전통 타이식 마사지 스쿨에서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세왕궁에서 북쪽으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선사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00여 점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타이 최대의 박물관이다. 수많은 전시품 가운데서도 타이 동북부 반 치앙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고고학적으로도 귀중한 유물로 인정되고 있다. 본래 이 건물은 라마 1세때 지어진 궁전이었는데, 1877년 라마 3 시대에 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수코타이 지역 - 와트 마하타트(Wat Mahathat)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360km 떨어진 곳으로, 타이 최초의 국가였던 수코타이 왕국(1238~1378)의 수도였다. 유적지는 시의 서쪽 12km 지점으로 곳곳에 유적이 흩어져 있다.▷ 와트 마하타트(Wat Mahathat)사적 공원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왕실 사원이었으며, 수코타이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사방 200m 경내에 수많은 탑과 불당이 흩어져 있는 데다, 중앙에는 높이 8m의 불상이 놓여 있다.치앙마이 - 와트 치앙만(Wat Chiang Man), 와트 프라타트 도이수테프(Wat Phrathat Doi Surthep),산캄팽 온천(San Kampaeng Hot Spring)1296년 멩라이 왕이 건설한 고대 왕국의 수도로서 타이 제2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18만 명. 관광 명소 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트레킹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와트 치앙만(Wat Chian로 수테프 산의 중턱까지 오르면 경내로 이어지는 290단의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의 양 옆으로는 거대한 용이 조각되어 있어 ‘용의 계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사원까지 참배객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산캄팽 온천(San Kampaeng Hot Spring)산캄팽에서 다시 북동쪽으로 20km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있다. 입장료는 30바트. 온천 지역 내에 여러 개의 방갈로가 있어 그 안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가장 싼 1인용 욕조는 20바트이고, 여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욕조(200바트)까지 시설이 다양하다. 마사지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푸켓 - 파통 비치(Patong Beach), 푸켓 타운(Phuket Town), 랑 언덕(Rang Hill),난 화원 & 타이 빌리지(Orchid Garden & Thai Village)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연간 10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섬 내에는 14개에 달하는 아름다운 비치가 있으며, 패러세일링·다이빙을 비롯한 해양 스포츠가 많다.▷ 파통 비치(Patong Beach)푸켓를 대표하는 파통 비치는 3km 정도의 해변이 남북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다. 새하얀 모래와 따듯한 바닷물이 파통 비치의 자랑거리이다. 또 각종 해양 스포츠의 요람으로 명성을 얻고 있기도 하다. 비치 주변에서는 현지 젊은이들이 각종 스포츠 기구를 빌려주거나 사용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비치와 나란히 뻗어 있는 길 안쪽으로는 호텔, 레스토랑, 상점 등의 편의 시설이 펼쳐져 있는데, 번화한 시가지를 연상시킬 만큼 수가 많아 과연 최대의 비치 리조트임을 알 수 있다.▷ 푸켓 타운(Phuket Town)푸켓의 중심지로, 인구 약 5만 명. 섬에서는 최대의 도시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를 연상케 하는 건축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건물이 많아,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이국적인 무드를 만들고 있다. 관공서, 은행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호텔, 영화관, 쇼핑 센터 등이 있다.▷ 랑 언덕(Rang Hill)푸켓 있던 조용한 마을이었으나, 60년대에 이르러 미군의 행락지로 개발된 이래 국제적인 리조트로 발달하였다.▷ 파타야 비치(Pattaya Beach)전체 길이가 약 4km에 수심이 얕아, 패러 세일링을 비롯한 다양한 해양 스포츠의 중심지이다. 해변을 중심으로 그물망처럼 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호텔과 레스토랑을 비롯한 각종 유흥 장소가 많아 해변의 파트퐁으로도 불리운다. 파타야의 유흥가는 남파타야 지역이다.▷ 농누크 빌리지(Nong Noock Village)파타야 비치에서 남으로 약 15km 정도에 있는 대규모 레저 랜드이다. 열대림으로 우거진 원내에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는 갖가지 볼거리들이 있다. 그 가운데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것으로는 전통 타이 민속 무용 공연과, 코끼리 쇼가 있다.4. 태국의 음식태국의 음식은 기타 다른 동남아와 같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음식이 대체로 맵고 짜서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 편이다. 기후가 무더운 탓에 주로 음식을 기름에 튀겨서 먹는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직접 요리를 하지 않고 거리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데, 양은 비록 적게 먹으나 자주 음식을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태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건 볶음밥 계통이다. 이 요리는 가격이 대부분 30바트 미만으로 많은 여행자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요리이다. 그밖에 쌀국수, 볶음국수 등도 여행자들이 즐겨먹는 먹거리이다. 태국인들이 즐겨 넣어먹는 향료중에 '팍취'라는 게 있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사람이 팍취가 들어간 음식은 먹기가 힘들다고 한다.◈ 결 론난 태국을 신혼여행지로 선택했기에 여행정보를 알아보기 전에는 무조건 패키지로 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변했다. 비행기와 숙박만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을 하고 자유여행을 하는 것이 더 많은 관람을 할 수 있고 기억에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태국은 역시 불교국가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원중에 어딜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까지 들게했다. 그런 고민중에 선택한 곳은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이다.영사)
1. 드레스란?.의복을 총칭하는 말, 보통 원피스(one-piece)로 된 여성용·아동용 겉옷.실루엣의 변화, 입는 때와 장소에 따라 명칭이 붙는다. 기본형은 기본 원형의 길과 스커트가 연결되어 있는 원피스로서, 일반적으로 허리선을 강조하고 가슴의 곡선을 드러내는 스타일이다.2. 드레스의 종류. 시프트 드레스(shift dress){허리선이 들어가지 않고 박스형으로 된 스타일이다.장식이 거의 없는 시프트 드레스는 시선의 단절감을 없애주므로 키가 커 보이게 한다.. 시스 드레스(sheath dress){이 명칭은 고대 이집트의 시스 가운에서 유래되었다.시스란 원래 칼집 형태란 뜻으로 신체에 밀착되고 단순하게 디자인되어 가늘고 날씬하게 보이는 드레스를 말한다. 이 명칭은 고대 이집트의 시스 가운에서 유래되었고, 로브 푸로(robe fourreau)라고도 한다. 주로 이브닝 드레스로 입는다.외형이 칼집과 같이 들어가는 슬림룩(slim look)으로 1930년대의 홀쭉하고 날씬한 드레스를 슬림 롱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1961년에 마르크 보앙이 발표하였으며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인 소니아 리키엘은 검은색의 시스 드레스를 즐겨 디자인하였다.. 프린세스 드레스(princess dress){체형에 꼭 맞도록 언더암홀 다트와 허리 다트, 혹은 숄더 다트와 허리 다트를 연결하여 수직의 솔기를 이루는 스타일이다.. A라인 드레스(A-line dress){위에서 스커트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스타일이다.키를 커보이게 하기 위한 디자인으로 어깨선부터 스커트 끝부분까지 가로 절개선 없이 연결된 A라인은 키가작고 통통한 체형을 슬림하고 길어보이게 한다.. 엠파이어 드레스(empire dress){18세기 프랑스 혁명 전후로 가장 많이 대중들에게 급속하게 전파되었던 근대모드의 하나로 루이 16세의 부인이자 모드의 황비로 군림하였던 마리 앙트와네트가 즐겨 입었던 스타일이기도 하다. 가슴 바로 밑에서 허리선이 절개되는 하이 웨이스트라인 드레스이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입혀진 엠파이어 드레스는 코르셋을 벗어버리는 자연스러운 신체미와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가장 귀여우면서도 소녀적인, 그리고 여성스러우면서도 로맨틱한 이미지를 표현할 때 이용하고 있다.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는 허리라인은 길어보이는 효과를 주어 슬림해 보이게 한다. 임신중인 신부에게 권하는 드레스이다.. 플래퍼 드레스(flapper dress){일자형 스타일로 허리선이 없거나 로우웨이스트라인 으로 짧은 스커트 스타일 이다.. 셔츠웨이스트 드레스(shirtwaist dress){칼라와 커프스의 여밈이 와이셔츠 모양으로 스포티한 느낌을 주며, 유행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클래식 스타일이다. 원피스드레스이면서 셔츠나 블라우스 같은 느낌을 주준다.. 로우 웨이스트 드레스(low-waist dress){1920년대 갸르손 룩이라고 하는 보이시한 스타일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던 당시 가장 유행하였던 스타일중의 하나로, 원피스의 라인이 로우웨이스트를 중심으로 스트레이트 라인을 가장 잘 표현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여성의 스타일은 심플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미를 강조하였다.. 스트랩 드레스(strap dress){어깨끈이 달린 드레스로 스트랩은 끈 , 특히 가죽끈이나 가죽띠 를 의미한다. 복식 용어에서는 선 드레스(sun dress)나 캐미솔 등에서 볼 수 있는 어깨끈이나 밴드 모양의 어깨띠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스트랩 드레스는 이러한 디테일을 디자인의 특징으로 하는 드레스를 총칭으로 서스펜더 드레스라고도 한다.끈을 하나로 한 싱글 스트랩(single strap) 드레스, 어깨와 등을 크게 노출시킨 여름용 리조트 드레스인 선 드레스, 끈을 십자형으로 교차시킨 디자인이 특징인 크로스 톱(cross top) 등이 있다. 드롭 웨이스트 드레스{상체를 길게 늘인 로우웨이스트 드레스를 말한다.. 슈미즈 드레스{통형의 직선적인 루스 웨이스트의 심플한 드레스를 말한다. 19세기 초의 엠파이어 스타일, 1920년대의 드레스, 1968년경의 색 드레스 등은 슈미즈 드레스의 일종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이브 생 로랑이 나이브 슈미즈라는 이름으로 채용하였다.. 원숄더 드레스{한쪽 어깨가 노출되어 사선 모양을 이루는 드레스를 말한다.. 티어드 드레스{일명 캉캉드레스 라고도 불리는 티어드 드레스는 몸체에 꼭끼는 상의 부분과 헐렁하게 여유 있고 약간 기다란 플레어 스커트로 된 원피스 드레스이다. 층계 모양으로 재단된 드레스를 겹쳐 있는 층마다 술이 달려 있어 움직임에 따라 섹시한 멋을 더해 준다.. 피시테일 드레스{폭이 좁고 몸에 꼭끼는 실루엣에 뒤가 끌리도록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드레스 밑단에는 러플을 달며 목둘레선을 깊게 판다. 1940년대와 70년대 말엽에 유행했다.. 바로크 드레스(baroque dress){바로크풍 드레스의 총칭이다. 1982~83년 가을 겨울 여성복의 주요한 패션 경향의 하나인 "바로크"에서 볼 수 있었다. 프릴을 장식하든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무늬의 소재를 많이 쓰는 등, 무턱대고 장식적인 디자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장난기가 충만한 패션으로서 바로크는 흥미깊은 패션의 테마가 되었다. 베이비 돌 드레스(baby doll dress){베이비 돌이란 아기인형 이란 뜻이다. 루스 웨이스트의 헐렁한 실루엣으로 어딘지 모르게 유아복 이미지를 가진 디자인의 드레스이다. 나이트 가운에서도 베이비 돌 룩을 볼 수 있다.. 블루머 드레스(bloomer dress){상하가 하나로 이어진 콤비네이션형의 의복으로 보텀이 블루머즈로 되어있다. 본래는 블루머와 짧은 드레스가 짝이었던 유아복을 말한 것이었는데, 최근의 팬츠 붐에서 팬츠 드레스의 하나로 등장했다. 따로 콤비네이션 블루머즈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