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올바르게 변호하기 위한 잠정적이며, 시험적인 솔직한 토설과 문제제기에 신선한 자극과 감사를 드린다.종교에 관해서 사실상 아는 것이 별로 없는 하나의 종교적 전통 안에서 살고있는 맹점을 직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히 큰 도움을 주어 왔지만, 신앙생활이나 실제 생활에서는 무의미한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표현을 지적하며, 우리의 심금을 울린 것과 울리지 않는 것 사이의 관련성을 탐구하면서 종교라는 조건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신학적 토론의 세계와 교회의 안팎을 막론하고 전혀 비종교적이며, 이단이라고 까지 보는 대다수 사람들의 세계사이에 통화를 가능케 하는 그리스도교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성서에 나타난 역사적인 사건을, 인간을 위한 신의 행위로 번역하는 역할을 해야할 용어가 도리어 이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용어 자체로 전락한 모순을 지적한다.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진리성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표현 양식의 문제성을 제기하며 원치 않는 혁명이라는 명제를 던진다.신화적인 표현이나 초월적인 형이상학적 설명의 무의미성을 지적하고, 어떠한 방법을 형용하든지 간에 신(申) 개념 자체가 하나의 투영상이나 우상에 불과한 것이면 전환해야함을 말한다.신(申)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낡아빠진 견해로 인해 그리스도교 자체가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투영 행위에 의하지 않는 신(申)의 개념과 복음을 형성하는 일에 신속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일은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공간적인 은유를 더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는 높이에서 깊이로 전위함으로써 단행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모든 것의 밑바닥 깊이에 있는 최종적인 진리와 실재가 되는 신(申)이 곧 사랑이라고 봄으로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는 실재인 우리의 존재 기반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모든 개념을 개념으로서는 무시해버리고, 순수한 인격적 관계의 궁극성을 인식하는 길은 그 아들을 통해서만, 성령 안에서, 즉 새로운 공동체의 화해의 사귐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와의 만남, 오직 남을 위한 관심만을 가지고 있는 예수를 경험함으로서 남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 따라서 십자가에 못박힌 인간 그가 사랑이었음을 말한다.참된 삶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본질적인 죄악은 사랑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고 지적한다.종교적인 사람과 비종교적인 사람을 분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을 예배와 기도로 보고, 예배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영역에서 종교적인 영역으로 은퇴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이것은 통속적인 것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열어 놓자는 것이라고 한다.예배의 기능은 이와 같은 깊이에 대해서 우리를 민감하게 하는 것, 이 세상과 다른 여러 사회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추어 우리의 사랑을 순결하게 바로 잡게 하는 것, 그리고 이미 화해했고, 현재도 화해하고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능력과 은총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이와 같은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다 그리스도교의 예배이며,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이라 할지라도 다 그리스도교의 예배가 아니라고 규정한다.예배의 진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배고픈 자와 헐벗은 자와 집 없는 자와 옥에 갇힌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얼마나 더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있으며, 우리가 예배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그런 사람에게서 그리스도를 더 알아보게 되는 경우에만 그 예배가 그리스도교의 옷을 입힌 종교성의 산물이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예배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그리스도교의 기도를 성육신에 비추어 봄으로써 기도는 이 세상을 떠나서 신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통해서 신에게로 향하는 것으로 정의했다.성서적 의미에서의 마음을 내면적인 생활이 아니라. 신 앞에 있는 인간 전체로 보고 중요한 결정에 관해서 기도를 통한 도움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 그 결정해야할 문제에서 떠나있는 순간(따로이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하는 순간)이 아니라. 남과 함께 그 문제에 관련된 모든 실제적인 문제들을 안고 끝까지 씨름할 때라고 말하며, 이러한 노력 자체가 기도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