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문제 제기Ⅱ. 공인중개사 제도1. 공인중개사의 개념 및 시험제도2. 공인중개사의 역할Ⅲ. 공인중개사 과다 배출에 대한 문제점1. 빈익빈부익부(貧益貧 副益副) 현상2. 전문성 결여Ⅳ. 공인중개사 제도의 개선방안1. 전문교육기관 설립 및 일정기간 이수2. 채용 방법의 전환3. 사회 인식의 변화 및 다양한 취업 기회의 확대Ⅴ. 결론Ⅰ. 문제의 제기지난 10월 28일 전국적으로 제 18회 공인중개사 시험이 치러졌다. 총 82,465명이 응시하여 19,593명이 합격하였으며, 연령별로는 10대부터 60대 이상의 합격생이 존재한다. 10대의 경우 2명(0.2%), 60대 이상까지 222명(1.2%) 합격하였고, 대부분은 30~40대의 합격생들이다.) 이것으로 볼 때, 공인중개사란 직업은 많은 사람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이고, 거의 전 연령에서 관심을 갖는 직업이 되었다.그렇다면 공인중개사 직업이 주는 메리트(merit)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이토록 전 연령대에서 관심을 갖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과다?과열 현상이 혹여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합격하였다 하여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인지? 라는 물음에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도 없고, 장밋빛 미래 보장에 Yes라는 대답은 선뜻 나오지 않는다. 최근 신문에 보도 되었던 39세의 100억원대 자산을 가진 부동산 전문가인 이진우씨 같은 경우는 드문 케이스이고, 모든 공인중개사가 다 그렇게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며, 과다배출로 인한 제 살 깎아 먹는 경향도 벌어지고 있다.또한 매년 몇 만명씩 배출이 되고 있으나, 전문성이 떨어지고, 전문성 결여는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공인중개사 시험이 자격 취득 후 실제 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 내용이 아니어서 전문성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때문에 현재의 상태로 계속 간다면 공인중개사 과대배출에 대한 문제 역시 사회문제로 대두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객주?거간제도에서 알 수 있듯이 토지의 특성 중의 하나인 득점하여 합격자로 한다. 1차 시험에 불합격한 자의 2차 시험은 무효로 한다.2. 공인중개사의 역할1) 부동산 시장의 중심부동산의 부동성 특성은 일정 장소에 모이지 못하고 사방에 흩어져 있게 만든다. 매매 당사자는 부동산에 물건을 내 놓고, 수요자는 부동산을 통하여 물건을 확인?구입 가능하도록 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곳이며,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공인중개사이다. 부동산에서 거래하는 물건을 한 곳에 모아 진열할 수 없으므로 매수가자 물건을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인중개사를 필요로 하는 요인이 된다.2) 부동산 정보의 제공매수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각종 온? 오프라인 부동산을 통하여 물건을 확인하고, 물건에 대한 정보를 공인중개사를 통하여 습득하게 된다. 다른 재화에 비하여 상당히 고가의 물건으로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전?월세 계약 같은 경우 계약기간이 2년 이상이고 계약 파기 시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더욱더 신중해 질 수 밖에 없고, 좋은 물건을 찾고자 한다. 이때 도움을 주는 역학을 공인중개사가 담당을 하게 된다.3) 부동산거래사고 방지부동산은 거래 금액이 크기 때문에 거래가 안전하게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내고서라도 부동산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악용하게 되면 부동산의 거래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때문에 중개업자가 중개행위를 함에 있어 고의 또는 과실로 거래당사자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면 그 손해를 보상할 책임을 지게 되는데, 이를 보장하기 위해 공제?보증보험?공탁 등에 중개업자로 하여금 반드시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공인중개사는 계약 성립 시 공제?보증보험 증서의 사본을 계약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4) 중개의뢰인의 재산보호공인중개사는 부동산 거래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그들의 공정하지 못한 행위는 매도자나 매수자의 일방에 재산상의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중개의뢰를 받은 공인중개사는 당해 물건의 권리관계, 이용제한 상황, 경제적 가치, 기술적 가치 등을 매수의뢰인에게 성울지역 중개업소들이 성사시킨 시내 아파트 거래 건수는 8478건에 불과하다. 전체 중개업소의 35.5%만이 3개월 동안 한 건 정도 거래를 성사시켰다. 나머지 3분의2가량은 ‘개점휴업’인 상태였다.부동산 중개업소의 어려움은 전국 휴·폐업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해 전국에서 새로 중개업소를 연 중개업자는 2만7277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기간 휴·폐업한 중개업자는 2만6213명으로 개업업소 대비 휴·폐업 비율이 96.1%였다. 지난 2002년 65.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올 들어 개업업소 대비 휴·폐업 비율은 지난 1월 77.9%였으나 2월 80.2%, 3월 92.4%로 높아지고 있다.< 표-2 연도별 중개업자 증?감 현황 >구 분계공인중개사중개인중개법인비 고2007. 3/480,73869,17511,137426200678,61166,27611,910425200576,16462,43213,203529200472,24757,36214,331554200367,38451,35415,490540200258,92041,66316,673584200149,68031,45817,566656200045,84526,45218,776617199944,42824,13119,879418199840,08318,61721,286180199741,42418,25122,971202199640,81316,09124,502220199541,18914,37326,523293199442,86513,79728,712356199345,43913,05532,036348199249,73514,10835,154473199155,37915,58439,3134821987~1990년 생략, 모든 항목에서 지속적인 증가추세198650,0685,98844,04931198545,9234,17341,721294. 외국의 사례1) 미국미국의 부동산 중개업은 1917년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부동산자격시험제도를 채용한 이래 현재 거의 모든 주가 자격제를 실시하고 있다.미국에서는 부동산중개업 취득하는 것이다.이상의 과정을 거친 뒤에 RICS의 전무가 시험에 합격하면 자격을 얻는다. RICS의 회원자격을 살펴보면 일반 실습 적산사, 계획, 개발적산사, 토지?농업적산사, 적산사, 토지?수로 적산사, 광물적산사 등이다.3) 일본일본에서는 택지건물거래업(부동산중개업)이 면허제이다. 택지건물거래업의 면허는 지사면허(知事免許)와 대신면허(大臣免許)의 2종이 있다.두 개 이상의 도도부현(都道府縣)의 국역 내에 사무소를 설치, 운영할 경우에는 건설대신의 면허를 받아야 하며 하나의수무소를 도도부현에 설치하려는 S업자는 지사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택지건물 거래주임자(부동산중개업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 택지 및 건물의 거래에 관하여 2년 이상의 실무경험을 지닌 자, 지사가 동등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는 자가 될 수 있다.택지건물 거래주임자 채용제도에 있어 택지건물거래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거래 주임자를 두어야 하는데, 거래 주임자의 수는 사무소에서 택건물업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종사자 수의 1/5 이상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Ⅲ. 공인중개사 과대 배출에 대한 문제점1. 빈익빈부익부(貧益貧 副益副) 현상모든 부동산이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개업하는 곳이 있으면, 폐업하는 곳도 발생하고 있다. IMF의 영향으로 묻지마식 무조건 창업이 유행했던 것도 한 영향이고, 과다배출로 인하여 부동산 거래 물건보다 중개인이 더 많아 개업하는 만큼 휴?폐업하는 업소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개업업소 대비 휴폐업의 비율은 점점 높아져 올해의 경우는 96.1%에 달한다. 또한 서울시의 전체 중개업소의 35.5%는 3개월 동안 거래 1건 이상 성사를 시켰고, 나머지 3/2 정도는 개점휴업 상태이다. 세 명 중의 한 명은 유지가 가능하거나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반면, 세 명 중의 두 명은 아예 수입이 없어서 잠시 문을 닫거나 아예 업종을 접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39세의 백억원대 부자가 된 이진우씨의 같은 개선방안1. 전문교육기관 설립 및 일정기간 이수공인중개사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요구되는 문제는 실제 업무에 많은 활용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공인중개사 시험자격 요건도 학령, 연령 등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를 배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공인중개사의 업무는 부동산이라는 것을 거래하는 직업으로 금액단위도 크고, 건물이나 토지를 평가 할 수 있는 안목과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무도 중요할뿐더러 등기, 계약서 작성, 특히 요새는 경매 물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경매 물건 취급 등 법률과의 연관성이 밀접한 분야로 관계 법령에 대한 숙지가 충분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최소 2년 이상 실무경험과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을 병행한 사람에게 자격증 취득을 주어지게 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도 전환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부동산분석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나 공인중개사 시험응시생들은 중개사들에 대한 사전(실무)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공인중개사는 55.1%, 시험응시생이 60.6%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앞선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최소 2년 이상의 실무경험이나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친 후에 해당 자격증 취득이 가능 해 진다.실무경험과 전문지식 습득의 경우, 실현가능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대학단위별로 부동산 관련 단과대학을 신설하여, 지식습득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산?학 협동장학 시스템을 통하여 실무경험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다. 2007년도의 경우 우리나라의 단과대학은 977개가 설립이 가능하다.) 단과대학 977개 중 부동산 학과가 설립된 대학의 경우, 4년제 대학의 경우 건국대, 단국대, 강원대, 한남대등 17개교 정도 , 2년제 대학의 경우는 29개 정도이다. 이것은 공인중개사에 대한 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동산을 전문적인 분야로 인식이 저조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 습득을 위해 부동산 학과 설립이 시급하다고 하겠다.이 경우는 단과대학 수는 정.
바티칸(The Vatican City State)목 차Ⅰ. 개관Ⅱ. 약사Ⅲ. 바티칸 시국의 제도 및 기구1. 교황2. 국무원3. 성과 평의회4. 법원Ⅳ. 대외관계1. 목적2. 대외정책 기조3. 주요정책Ⅴ. 결론-Report를 마치며< 바티칸시국>종교인이든 아니든, 이천년 동안 변함없이 서양사의 중심이 되었고, 요즘도 신문과 방송을 통해 근황이 전해지는 교황과 바티칸에 대해서 궁금했던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은 교황 한 사람에 의해 불가분으로 통합되었기에, 여기에서는 바티칸 시국은 즉 교황청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로 하겠다. 가톨릭 교인이든 아니든 이천 년 동안 변함없이 서양사의 중심이 되었고, 요즘도 신문과 방송을 통해 근황이 전해지는 교황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지만, 영적으로 가장 큰 신비의 나라, 바티칸에 대해 알아보자. 일단 바티칸의 역사와 지리적 요건 등에 대해 알아보고, 바티칸 정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Ⅰ. 개 관)국명바티칸 시국) (Citta del Vaticano, The Vatican City State)교황청(La Santa Sede, The Holy See :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자 대변자)위 치로마시(바티칸 시국과 이탈리아 공화국 사이의 국경은 성 베드로 광장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그어진 하얀 선이다)면 적0.44㎢수 도바티칸(Vatican)인 구921명(2005년 기준))종 교로마 가톨릭화 폐 단 위유로(Euro)국 가 원 수교황 (행정, 입법, 사법을 총괄)언 어불어(공식언어),라틴어, 이탈리아어, 영어외교기조복음의 전파, 세계평화, 인권 수호기 후5~9월은 덥고 건조한 여름이며, 9~5월 중순까지는 따뜻한 기온을 나타냄연 평균기온 : 15℃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734㎜이다.Ⅱ. 약 사ㅇ 313년 :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그리스도교 공인(밀라노 칙령)ㅇ 392년 : 테오도시우스 황제,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지정ㅇ 395년 : 로마제국, 동로마와 서로마로하고, 이탈리아왕국과 교섭을 금했으며, 이탈리아왕국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황속권(敎皇俗權)의 폐기에 관여하는 사람은 모두 파문(破門)할 것을 선언했다. 그해 10월 로마를 포함하는 교황령에서 주민투표가 이루어져 압도적인 다수로 로마의 이탈리아왕국 병합이 지지를 얻었다. 71년 1월 이탈리아의회는 <자유국가내의 자유교회>의 원칙에 따라 교황보호법을 만들어 교황의 바티칸·라테란궁전·카스텔간돌포궁전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 경영비로서 보조금을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교황청에 주재하는 외국사절에게 외교상의 불가침권을 부여할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교황은 이러한 결정들을 거부했다. 교황의 이러한 입장은 비오 11세 때까지 계속 되다가 1929년 라테란협정으로 화해하였다. 산조반니인라테라노대성당에서 이탈리아의 총리 B. 무솔리니와 교황청의 대표인 추기경 데 가스 페리가 2개의 의정서를 교환했다. 하나는 국가와 교황청의 화해조약으로 가톨릭이 이탈리아에서 유일한 종교라는 것을 확인했으며, 교황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는 바티칸시국의 성립을 인정했다. 또 하나는 정교협약(政敎協約)으로 결혼을 교회의 통제하에 둘 것을 용인, 학교교육에서 종교과목의 의무화 등이 인정되었다. 이 두 개의 의정서로 이탈리아 통일 이후 계속된 국가와 교황청의 대립은 종지부를 찍었다. 라테란협정이 체결된 시기의 교황 비오 11세는 제 1 차세계대전 후의 세계 여러 나라의 교회 재건에 힘쓰고, 여러 나라 정부와 정교조약을 체결했다. 62년 12월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하여 보편적 교회의 사목(司牧) 책임과 권한을 전세계 주교단과 서로 분담하고 가톨릭·프로테스탄트·그리스정교 등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가 평화와 정의실현을 위해 일치 협력할 것을 제창했다. 78년에 교황이 된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 출신으로 최초의 공산주의국가 출신의 교황이다. 84년 2월 이탈리아와 바티칸시국 사이에는 가톨릭을 이탈리아국교로 한 라테란협정을 개정하여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정교조약에 조인하기 능을 제외한 교황청의 국제기구 참석 및 활동업무 담당· 공보실, 바티칸 신문 및 라디오 관리· 기타 소관업무 처리· 외국과의 외교관계 및 기타 국제법 주체와의 관계 증진· 교회와 일반사회의 복지증진을 위한 제반 공 공 문제 처리· 관계부서와의 협의 하에 공공 성격을 지닌 문제에 관해 국제기구와 국제회의에 교황청 을 대표· 특정분야에 있어 해외주재 교황청대사관에 관한 문제를 처리· 특정경우 관계부서와의 협의 하에, 현지교회 의 조직 및 구성 등에 관한 모든 문제 처리※ 참고사항결과적으로 제 1국의 언어별 창구와 제 2국의 국가별 창구의 업무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제 1국에서는 제 2국에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초안을 작성하는 식으로 두 국은 세속 정부들과의 통교 업무를 자주 같이 한다. 제 2국에서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위해 주교의 임명에 관한 문제 를 처리하는 반면, 제 1국은 대사나 로마 교황대사의 전반적인 일을 처리한다. 때로는 바티칸 사 무관들조차도 두 부서의 업무를 혼동하기 때문에 국무원 장관에게 연락해서 그 문제가 적절한 사 무실로 배정되도록 한다.3. 성과 평의회 : 9개의 성과 11개의 평의회로 이루어짐.1) 성과 평의회 비교구 분성(Congregation)평의회(Council)임기5년(연임 가능)5년(연임 가능)임 원추기경, 주교추기경, 주교, 평신도 포함성 격특정분야의 업무 담당자문기구대 표장관(교황의 참모 역할)의장(교황의 참모 역할)구 성?장관-차관(secretary)-차관보 (undersecretary)-참모진으로 구성?의장-사무총장(secetary)-사무차장 (undersecretarty)-참모진으로 구성?차관 : 대주교? 사무총장 : 신부가 할 수도 있음? 차관보 : 부서의 관리자 역할,보통은 신부가 이 직책을 맡음.? 사무차장 : 부서의 관리자 역할.보통은 신부가 이 직책을 맡으나, 평신도가 하는 경우도 있음- 전문적인 참모진은 대부분이 신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조 참모진(support staff)은 대부분 이탈리아 인으로 구il for Justice and Peace)주교성-교구의 창설 및 폐지, 교계제도가 설정된 각국의 교구장 및 주교들에 대한 인사업무(Congreation for Bishops)사회복지평의회- 교회의 여러 원조 단체들을 통괄하고 전세계적 규모의 인간 개발 조직이나 계획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교회 기관들의 원조 활동을 조정함(Council Cor Unum)인류복음화성-전세계 교회의 일치와 선교 활동을 주 업무(Congregation for the Evangelization of People)이주사목평의회(Council for the Pastoral Care Migrants and Travelers)- 대 사회의 인구 유동과 관련하여 이민, 유목민, 난민, 관광객, 해상 및 항공 여행객, 선원과 승무원들의 사목, 해양 사도직 등에 관한 문제를 담당함성직자성-종교 관련 규정 제정, 교회의 세속재산 보호 관리.(congration for the Clergy)보건사목평의회(Council for pastoral Assistance to Health Care Workers)병자들과 교회의 연대 의식을 드러내며 인간 고통과 질병의 종교적 측면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인식시키고, 지역 교회와 협력하여 보건 분야의 사목 활동을 촉진시키며, 이 분야의 국제 가톨릭 단체들의 연구, 교육, 활동을 격려 후원하는 업무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성)약칭:수도회성)-수도자의 훈련, 수도원과 그 기구의 설립 및 폐지 및 수도원 활동 감독(Congregation for Institutes of Consecrated Life and for Societies of Apostolic Life)교회법해석평의회-회법에 대한 공적인 유권 해석을 주 업무(Council for the Interpretation of Legislative Tents)종교간대화평의회(Council for Interreligious Dialogue)-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인들 사이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대시키기 위한 대화와 연 바티칸에서 보기에 그가 지역 법원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염려된다면, 그 소송은 직접 로마공소법원에서 접수한다. 또한 주교들 사이의 분쟁과 교황 직속 인물들이나 기관들 간 의 분쟁에 대한 재판권을 본연의 권한으로 보유하고 있다.- 다루는 몇 안 되는 혼인 무효 소송 이외의 사건들은 주로 돈 문제나 계약의 문제.- 로마공소법원에는 검찰관(Promoter of Justice)과 성사 보호관(Defender of the Bond)이 있다. ? 성사 보호관 : 혼인 무효 소송에서 혼인이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할 근거들을 모색.? 검찰관 : 마치 세속의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형사 사건들에서 검찰 역할.교회의 법규와 그에 따른 법질서를 수호하고 재판관들에게 법리적인 사항들과 절차적인 사 항들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제출한다.- 청구인을 위해서(만약 당사자가 원한다면 피청구인을 위해서도) 변호사가 변호한다. 로마공소 법원에는 약 78명 정도의 변호사들이 등록되어 있다. 그들은 특별히 교육받은 이탈리아인 교 회 법조인들이고, 거의 대부분 평신도이며, 최근에는 여성이 증가하는 추세.수임료는 로마공소법원에서 정한다.3) 사도좌대심법원(Signatura Apostolica)가. 교회의 최고 법원으로서 7명의 추기경들과 4명의 주교들이 동시에 합의부로 재판나. 첫 번째 분과교회 법원들 간의 분쟁들(예를 들면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관할권에 거주할 경우 생기는)을 해결하고, 로마공소법원에서 상고된 사건들을 재심.다. 두 번째 분과바티칸의 성에서 내린 행정 조치에 대한 항소를 다루는 행정 법원으로서의 사도좌대심법원의 업무를 수행한다. 약 10건 내지 30건의 상고가 해마다 사도좌대심법원에 올라온다.대부분은 참모진 선에서 기각된다.한 해에 대략 6건 정도만 추기경들과 주교들의 합의부에서 심판하고 판결까지는 약 3년 정도 가 소요Ⅳ. 대 외 관 계1. 목적교회와 정치 권력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을 피하거나 해소시킴으로써 가톨릭의 선교에 유리한 상황조성이 목적이며, 이를 언급
Ⅰ. 서론(Introduction)-작품 선택의 배경마티스와 피카소는 12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 시대, 20세기를 살아가면서 뛰어난 화가로 꼽히는 두 거장은 서로 끊임없는 경쟁과 우정을 통하여 각 자의 작품을 발전시키고, 또 상대방에게도 영향을 미쳐 발전케 하였다. 마티스와 피카소가 서로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어, 서로의 작품에 대한 반응이 각 자의 예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이제까지 아무도 간 적 없는 새로운 길로 가도록 서로 독려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작품이 지금처럼 풍요롭지는 못했을 것이다.)20세기의 두 거장의 그림 비교로 선택한 것은 마티스의 와 피카소의 이다. 두 작가의 많고 많은 작품 중에서 이것을 선택한 것은 솔직히 마티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수업을 통해 피카소와 비교되는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미술에 문외한 인만큼 마티스에 대해 잘 알리도 만무했다. 또한 피카소도 일반인들이 아는 것보다 약간 덜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여러 책을 찾아보면서 어떤 그림을 선택하여 비교, 감상할지 무척 고심을 했지만, 고심 끝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아왔던 것을 평가하는 것이 더 진실하고, 더 많은 감상평을 늘어놓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은 워낙 유명하여 어렸을 적부터 보아왔던 것이라서 에 대한 친숙함 때문에 선택을 한 것이고, 과 구조가 비슷하면서도 피카소의 반대쪽에 서있는 마티스를 부각시키고자 선택한 것으로써 마티스의 가 비교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다.실제로 피카소가 을 그린 이유는 마티스의 에 대한 지독한 비판이기도 했다, 의 야심적인 주제와 터무니 없는 크기는 지기 싫어하는 피카소의 기질에 불을 당겼다. 피카소는 에서 가능한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를 글자 그대로 해체한 듯이 보인다.) 그렇기에 두 작품은 좋은 비교 작품이 될 것 같았다.우선 마티스와 피카소의 생애에 대해 알아본 후, 선택한 그림에 대해 일반적인 평카소를 중심으로 한 입체주의(큐비즘)의 방향으로 눈을 돌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10년의 뮌헨 ‘근동미술전’의 인상, 1911∼1913년 두 번에 걸친 모로코 여행으로 왕년의 포브 시대와 다른 장식적인 현란한 색채를 사용하여 특히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성이나 순수색의 병치(竝置)로 독특한 작풍을 창조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목련꽃을 든 오달리스크》가 있다.그 후 그의 예술은 차차 성숙해져 보색관계를 교묘히 살린 청결한 색면효과 속에 색의 순도를 높여 1923년경부터 1930년대에 걸쳐 확고한 마티스 예술을 구축함으로써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지침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9년 남(南)프랑스 니스의 방스성당의 건축 ·장식 일체를 맡아 여기에 모든 기법과 재료를 동원, 그의 예술의 집대성을 이룩하고 니스에서 죽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세계 각국에 존재하고, 20세기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된다.2.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1881~1973))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 바 르셀로나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 부를 시작하였다. 이 무렵 당시 바르셀로나에 들어와 있던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 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르누아르, H.툴루 즈 로트레크, E.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는데 힘썼다1897년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가 바르셀로나에서 최초 의 개인전을 열었고 1900년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 다음해 재차 방 문하여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제작활동을 하고 있던 젊은 보헤미안의 무리에 투신하였다. 당시의 그의 작품에는 위에 열거한 화가들 외에 P.고갱, V.고흐 등의 영향도 많이 반영되었으나, 점차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소위 ‘청색시대(靑色時代)’로 들어갔으며, 테마는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의 참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그러나 1904년 몽마르트르에 정주하면서부터는 색조가 청색에다.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는 에스파냐에서 지냈으나 다음 해 독일군의 파리 침입 직후 파 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투사들과 교유하고, 1944년 종전 후는 프랑스공산당에 입 당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주로 남프랑스의 해안에서 생활하면서 그리스신화 등에서 모티 프를 취하여 밝고 목가적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독특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3. 마티스와 피카소)마티스와 피카소와의 만남은 리오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중개로 이루어졌다.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아폴리네르는 이 두 화가에게서 프랑스 아방가르드의 미래를 간파했다.모든 면에 마티스와는 대조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피카소의 회화와 화가로서의 질투심을 말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은 흑인 미술이나 1905년의 가을 미술전에서 전시된 앵그르의 에 크게 감회되면서, 같은 영향 아래 각자의 예술 세계를 발전시켜나간다. 마티스의 (1906)나 (1907)는 앵그르나 흑인 미술에 보내는 그의 화답이다,그들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각자의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나간다. 그러나 마티스는 1908년의 앵데팡당전에서 드랭과 브라크가 피카소의 입체주의적 경향에 합류하는 것을 보자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이후 3년여 동안 그들 사이에 소원한 관계가 지속되다가, 두 사람은 다시 가까워진다. 그들은 1911년과 1912년에 런던에서 열린 전시회(마네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 전)에 함께 출품한데 이어, ‘표현주의자들“이라는 표제 아래 쾰른의 존더분트에서 개최된 전시회(1912)에도 나란히 참가한다. 마티스는 1912년에서 1913년의 모로코 여행을 토대로 한 작품들에서 형태의 단순화를 추구해 나간다. 한편, 피카소는 색채로의 희귀를 이행한다. 아폴리네르가 폴 기욤 화랑에서 ’마티스-피카소‘전을 개최한 것은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의 일이다.두 화가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우정을 지속시켜나갔다, 프랑수아즈 질로는 피카소가 마티스에게 기울인 진지한 관심, 진행 중인 작업들에 관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피카소의 견해데, 화면에 팽배한 긴장과 대조는 일종의자기도취적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된다.비록 의 주제가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목가적인 풍경화의 전통 안에 분명하게 속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매우 생소한 방식으로 그 전통의 다양한 요소를 뒤섞기 때문에 서구 회화 전체의 요약이자 종합일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도 보인다, 이것은 특히 세속적인 기쁨의 정원이라는 명목상의 목가적인 주제를 표현 양식상의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며 몹시 원시적인 효과에 의해 광범위하게 해체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티스는 목가 전통을 욕망의 근원에 대한 몽상으로 변화시킨다.)2. 피카소의 ,1907, 243.9×233.7cm)캔버스에 그린 유화이며 크기는 243.9x233.7㎝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상세 이름은 《바르 셀로나의 아비니호가의 여인들》이다.화면에는 5명의 벌거벗은 여인들이 기하학적 구성의 몸을 가지고 있다.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조각을 나눈 뒤 한 화면에 종합하여 배열한 듯하다. 공간적 배경은 푸른색과 흰색의 기하학적 윤곽만을 표현하여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가운데 두 여인은 최초의 구상 단계를 유지한 편이나, 양쪽의 여인 셋은 신체의 조각들을 섞어 조 합한 듯한 모습이다. 왼쪽 눈은 정면을 보지만 오른 쪽 눈은 4분의 3 각도로 옆을 쳐다본다. 또 등을 보 이고 앉은, 아프리카 가면을 쓴 듯한 여인은 정면을 응시한다.파블로 피카소는 세탁선(Bateau-Lavoir)에 머물면서 1905년 이 작품을 구상하였다. 그는 100여 장이 넘 는 소묘를 그리고 무수한 덧칠 끝에 사방 6m에 이르 는 대작을 완성하였다. 그림 속의 여인들은 바르셀로 나 아비뇽 거리의 매춘부인데 작품에 이름이 붙기도 전에 그의 동료나 선후배들은 이 혁명적인 작품에 혹 평을 퍼부었다. 매춘부의 나체 모습은 남성을 유혹하는 여인이 아닌 기괴하고 혐오감까지 주는 비상식적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원근감과 명암법에 기초를 두었던 르네상스 미술의 전통을 완전히 저렇게 예쁜 색과 곡선을 이용하여 따뜻하게 그리는 화가-이것은 내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다. 단색과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여 대비가 뚜렷하여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그림, 그림에 대한 별 다른 장식이 없는 단순한 그림도 있었다-이고, 피카소의 경우는 기하학적 무늬이고, 사람의 얼굴 형태를 제대로 그리지 않고, 말 그대로 피카소는 추상화가, 추상적인 그림이 주류를 이루는 그림이 많다고 생각했었다.에서의 사람들과 의 여인들은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에서는 앞 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생긴 것 같다. 에서는 사람을 부드러운 곡선형으로 처리를 하고, 주위 배경의 색이 불러오는 느낌 때문인지 평온해 보인다. 또한 흔들리는 듯한 식물들이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듯하여 평온한 분위기를 더 하는 듯 하다. 그리고 저 뒤에 보이는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는 장면은 -댄스를 그리지 전이지만-를 보는 듯하여 삶의 경쾌함마저 한층 더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의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정감이 가는 그림이다.그러나 의 경우 동물적인 에너지로 들끓는다. 동시에 피카소의 인물들은 어딘가 비인간적인 데가 있어 보인다. 인물들이 거칠게 묘사되었고, 조각난 유리들이 왠지 날카로움을 강조하는 듯하다. 의 경우, 창녀라는 직업적 특징 때문인지, 정말 남자를 유혹하는 도발적인 창녀들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수원역의 사창가(prostitute quarter)를 지날 적에 무서운 생각이 들었었다. 그 무렵에 이 그림을 처음 그림책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여자이고, 사창가(prostitute quarter)를 지날 적에 그런 느낌인 것을 알겠는데, 두 가지가 한꺼번에 겹치다 보니 그림에 대한 무서움이 2배가 되는 듯 했다. 특히, 오른쪽의 두 여자를 봤을 적에 끔찍했다. 얼굴에 스크래치가 있는 여자와 제대로 된 얼굴의 형태가 아닌 여자를 봤을 적에 말이다. 그리고 여자들의 온전하지 못한 형태는 깨진 유리 조각, 조각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면 올록볼록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