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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학생이 들어도 좋고, 직장인이 들어도 좋을 공부의 이유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이런 말씀 많이 하실 거에요. 공부 잘 해야 잘 먹고 잘 산다. 그리고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는 너무 뻔해서 안 하려고 합니다. 외부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사실 별로 동기 부여가 되지가 않습니다. 저도 학생 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 내부적으로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한국사회에서는 공부를 통해 자꾸 경쟁해서 남을 이기는 것만 가르치는데 그게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죽음 앞에 후회가 없기 위해‘죽음의 순간에 스스로를 돌아 봤을 때, 하나도 해낸 게 없네’ 라는 생각이 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인생이 짧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각자 원하는 걸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한한 인생에서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한테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죠. 최선을 다해 성장해 왔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주어지는데 죽음의 순간에서 본다면, 어떤 사람은 이만큼 이뤘고, 또 어떤 사람은 이룬 게 하나도 없습니다.공부를 통해서 스스로를 성장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10대에 한 사람과 30대에 한 사람과의 격차는 어마어마합니다. 만약, 단지 명문 대학을 들어가는 것에만 목표를 둔다면 그 이후에 발전은 요원해 질 것입니다. 미국에서 아이비리그에 들어가는 한국학생수가 외국인 비율에서 3위안에 든다고 하는데, 재미난 사실은 중도 유급 숫자는 가장 제일 높다고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고 배움에 대한 진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합니다.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취업 후 끊임없이 발전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실력의 차이와 생각의 폭이 엄청나게 벌어집니다. 이건 학벌과 전혀 무관하게 차이가 납니다.내가 선택권을 쥐기 위해‘목표가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어요.‘ 라고 하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목표가 없으니 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면서 목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때 가서 공부를 못한다면 내가 선택권을 질 수 없습니다. 원하는 공부가 있는데 그걸 성적 때문에 못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억울 한 일 아닐까요? 제가 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선택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사회이던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공부를 통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심지어 상사나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직장 밖의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지식이 많고, 정당한 논리를 펼 수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두 가지로 말씀 드렸습니다. 짧은 인생 동안 후회 없이 자신을 최대한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내 인생의 선택권을 내가 가지기 위해서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공부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자각하면 더 많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셔서 많은 성취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독후감/창작| 2018.01.31| 2페이지| 1,000원| 조회(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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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아하는 일을 찾는 법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1. 맨 처음 혼자 만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밥도 혼자 먹어보고, 혼자 커피도 마셔보고, 혼자 산책도 해보면서 나와 오롯이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한번에 몰아서 가질 수 없다면 매일 일정한 시간을 혼자 보내보면 좋습니다. 의식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 거기 때문에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스스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봅니다.2. 우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봅니다. 이건 하루 만에 적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정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날 때마다 적어보면 됩니다. 사소한 것도 좋습니다. ‘목젖을 열고 한번에 와인 원샷하기’ 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것도 좋습니다. 단점은 너무 많이 적지는 마시고, 자신이 생각할 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편함을 느꼈던 자신의 부분에 대해 적는 정도면 되겠습니다. 적다 보면 장점은 잘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친구들을 동원합니다. 만나는 친구마다 자신의 장점을 알려달라고 말해 봅니다. 갑자기 왜 이러냐고 물으면 ‘하얀매 발전소를 보라’고 하시면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친한 친구가 제 엉덩이가 아주 탄력이 있다고 칭찬을 해줬습니다. 이런 별볼일 없는 것도 장점으로 적어도 좋습니다. 일단 장점은 많이 적어 봅니다. 웬만큼 다 적었다고 생각되면 단점을 다시 한번 살펴 봅니다. 단점 중에 때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단점은 진짜 단점이라기 보다는 남들과 다른 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말을 타는 기수인 안도 미츠아키 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유난히 키가 작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게 생각하기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자기는 기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즉 생각하기에 따라서 단점이 강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3. 다음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봅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았거나, 누군가를 어떤 일로 도와줘서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면 그건 그 일을 잘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린 시절에 좋아했다가 그만 뒀던 일 중에서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이가 많다고 좌절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자신이 뭘 좋아했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4. 네 번째로 우선 맘이 가는 몇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순서대로 한 가지씩 몰입해서 계속해봐야 합니다. 조금하고 그만 둬서는 안 됩니다. 우선 흥미를 가지고 시작했으면 계속해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정말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를 저절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누구라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이라는 것은 해보지 않으면 잘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상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면 큰 장해물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먼저 실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것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일단 도전해 봐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실행을 잘 할 수 있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독후감/창작| 2017.12.21| 1페이지| 1,000원| 조회(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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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관계론
    인간관계론‘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를 쓴 저자 크리스 길아보는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일에 주력해야 할지 잘 모를 때는 시간의 반은 창의적인 개발에 투자하고, 나머지 반은 인간관계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업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모든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의 모든 일은 인간관계로 절반 이상은 결정되게 된다. 그래서 기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인재로 꼽는 것 아닌가.처세술 전문가 데일 카네기는 “상대하기 싫은 사람과 어떻게든 가까워지려는 것은 쓸모 없는 일이며 그런 일에 단 1분이라도 인생의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없다” 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을 느끼는데도 필사적으로 잘 지내려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정도라면, 그와는 최소한의 접촉으로 그치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서로 마음이 맞는다는 표현처럼,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어쩐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지 않은데도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 사람과는 잘 맞네'라고 느껴지는 사람, 함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되도록 그런 사람과 많은 시간을 가지면 그만이다. 진심으로 끌리는 사람은 자신과 파동이 잘 맞는 사람, 즉 함께할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 봐도 무방하다.파동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가 짧게 느껴지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사람도 좋아 보이지만, 어쩐지 함께 있는 자리가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는 당신과 파동이 맞지 않는 사람이다. 반대로 몇 번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이야기를 나눠보니 주거니 받거니 말이 잘 통한다면,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데도 문득 시계를 봤을 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느껴진다면 당신과 잘 맞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되도록이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 파동이 맞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관계를 잘 맺는 방법이다.하지만, 회사생활에서는 안 맞는 사람과 부딪히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때마다 이들을 무작정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때 일부러 이 사람과 잘 맞추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이 과정이 심한 스트레스로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로 나와 안 맞아서 문제가 되는 사람은 내 상사일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 일부러 친해지거나 일부러 그 사람 성격에 맞추기 보다는 그 사람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게 가장 좋다. 왜냐하면 이런 마음가짐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당신의 상사는 불쌍한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지만, 리더의 자리는 더 고독하다. 그런 점을 이해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기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친해지거나 적대적으로 대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중도의 평상심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것이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큰 방패가 될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남을 대해 남 또한 상처받지 않게 하도록 나아가야 한다.
    독후감/창작| 2017.12.21| 1페이지| 1,000원| 조회(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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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행을 잘 하는 방법
    실행을 잘하는 방법세상모든 일의 성취는 계획과 실행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계획은 잘 세운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서 무너지거나 실행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나 또한 이런 경험이 많기 때문에 실행에 대해 오랜 기간 고심해서 실행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런저런 책을 통해 연구를 많이 했다. 우선 실행을 가로막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두려움, 둘째는 귀찮음이다. 두려움의 경우에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결과가 실패하게 될지 몰라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다. 둘째로 ‘귀찮음’은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먼저 두려움의 경우라면 해결책이 아래와 같다. 우선 두려움은 막연한 실패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된다. 이런 경우 실패했을 때도 얻을 것이 있다면 우선 해보는 것이 크게 두렵지 않다. 얻을 수 있는 것과 실패했을 시에 손해 보는 것들을 잘 따져본 후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이 더 크다면 실행하도록 내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다. 또한 하고 싶은데 막연한 두려움의 경우에는 안 해서 후회가 남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해보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평생 못해본 것에 대해 후회가 남을 바에는 해보고 실패하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 편이 낫다.다음으로 실행을 해야 하는 데 ‘귀찮음’의 경우에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까? 실행을 하고 싶은데 귀찮아서 안 하게 되는 경우에는 억지로 하는 것이 옳을까? 실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더 큰 경우인데, 이런 경우라면 실제로 나한테 지금 꼭 필요한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진급을 준비하라고 영어 점수를 획득하라고 했다고 치자, 그런데 당장 업무에 영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서 그리 동기부여가 되지도 않고 당장 진급에 관심도 없어서 영어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귀찮은 마음’은 오히려 우선순위를 알려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중요하고도 급한 일이라면 그 일을 먼저 하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귀찮은 마음이 들 때는 이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까? 사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실행 목록에 포함시킨 건 아닌지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아야 한다.이와는 반대로 중요하고 해야 하는 일이지만, 특정한 상황 때문에 귀찮고 하기 싫은 경우도 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반드시 해야 하는데 귀찮은 일,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 이라면 해야 하는 일을 잘게 쪼개는 작업을 하는 게 좋다. 그런 다음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체중 때문에 운동을 해야 하는 데 하기 싫다면, 하루에 해야 하는 운동량을 정한 후 바로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면 자전거를 사거나 헬스장을 알아보기 보다 바로 운동복을 입고, 동네를 뛰는 방식을 택한다. 지금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대체한다면 나중으로 미루는 것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실행을 미루고 있는 것을 매일 제일 먼저 하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하면 그것이 점차 습관으로 자리잡게 된다.다음으로 실행을 지속하는 단계다. 지속하는 단계에서는 실행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꾸준히 해야 한다. 문제는 꾸준히 하는 것이 대부분 힘들다는 거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21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3주정도 꾸준히 하게 되면 습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찾은 습관을 만드는 요소로는 재미, 발전, 의지가 있다.우선 무엇이든 지속을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없는 일은 재미가 있게 만드는 방법은 그럼 무엇일까 고민해 볼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당장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 일도 ‘발전’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흥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습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을 통해 내가 해온 것의 축적된 양을 확인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발전 상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양은 적지만 꾸준히 모이면 많은 양을 해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띄게 발전이 보이는 일이라면 걱정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발전 속도가 눈에 띌 정도가 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기록을 통해 나의 발전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단, 기록할 대상은 몇 가지로 한정하는 게 좋다. 목표를 단순하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울름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세운 목표는 러시아군이 도착하기 전에 오스트리아군을 격멸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위해 작전 계획도 명확하고 단순하게 세웠다. 울름에 빨리 도착한 뒤에 다뉴브계곡을 통해 북쪽으로 쳐들어 간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군이 먼저 울름을 점령하자 곧바로 방향을 돌려 마크 장군을 기습 포위하는 쪽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나폴레옹이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목표가 단순했기 때문이다.다음으로 실행의 지속을 가로막는 의지를 꺾는 요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강한 의지도 중요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게 의지를 막는 내 맘속의 방해꾼이다. 이러한 방해꾼을 잘 설득해서 의지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스스로를 잘 설득해서 논리적으로 마음속의 방해꾼을 잠재우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습관으로 만들기는 힘들다. 그런 경우 그 공부가 왜 필요한지, 하고 나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나에게 먼저 설득을 시켜야 한다. 그런 내면의 설득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완전히 납득 시키면 무의식 속에서 나를 방해하는 요소를 잠재울 수 있다.실행을 막는 것두려움귀찮음실행을 지속하는 것습관재미발전 (목표단순화)강한 의지 (부정적인 부분은 제거)
    독후감/창작| 2017.12.18| 2페이지| 1,000원| 조회(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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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당쟁의 역사
    조선시대 당쟁의 역사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 정치의 중심이었다.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나 모든 것을 왕의 마음대로는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왕은 대신들이 논의해 올린 정책을 승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왕이 강하게 반대하면 대신들은 다시 논의해 다른 정책을 올리게 된다.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신들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파벌을 한 명이라도 더 들여서 세력을 강화하고 반대파는 숙청을 하기 위해 때를 노렸다. 조선 초기의 훈구파와 사림파 갈등은 중기로 넘어가면서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당쟁’이다.1. 동서붕당과 당쟁의 시작당쟁의 시작은 이조전랑 선출에서 시작되었다. 이조전랑은 인사를 담당하는 직책이었는데, 상당한 영향력이 있어서 여러 파벌이 노리고 있었다. 1572년 (선조 5년) 이조 전라에 김효원이라는 인물이 추천되었는데, 그는 문과 급제에 청빈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젊은 선비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른바 소장파의 대표격인 인물이었다.이런 사람은 이조전랑에 추대하자 노장파가 반발에 나섰다. 노장파의 대표는 명종의 부인이었던 인순황후의 동생 심의겸이었다. 그는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명분은 아래와 같다. “김효원은 을사사화를 일으킨 윤원형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따라서 그를 믿을 수가 없다.” 이 방해공작이 처음에는 먹혔으나 2년 후인 1574년,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그 뒤 1년 후 다시 이 문제가 거론된다.1575년 (선조 8년) 김효원이 이조전랑에서 물러날 때, 후임자로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이 추천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반발하고 나선다. “심씨는 왕의 외척이다. 외척이 이조전랑이 되면 공정한 인사가 이뤄질 수 없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 사건 이후 김효원과 심의겸은 철천지 원수가 되게 된다. 대신들도 이들을 중심으로 나눠져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김효원은 서울 동쪽에 살아 동인, 심의겸은 서쪽에 살아 서인으로 추천했다. 동인의 리더인 이산해도 이에 동의를 하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딴 마음을 품고 있었다.이산해는 선조가 총애하는 후궁 인빈 김씨에게 접근하여 이간질을 시작했다. 정철이 광해군을 밀면서 김씨의 아들을 해코지 할 수도 있다고 자극했다. 이 작전이 성공하여, 인빈 김씨는 선조에게 한탄을 하게 된다. 선조는 화가나 정철을 파직해 버렸다. 다른 서인들도 파직되거나 지방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이제 동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하지만 자기들끼리 옥신각신 하다가 파가 다시 2개로 나눠지게 된다. 온건파는 남산 주변에 몰려 살았던 남인, 강경파는 북쪽에 살았기 때문에 북인으로 불렀다. 남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류성룡이었고, 정인홍, 이산해, 이발이 북인의 대표 인물이었다. 학문적으로는 남인이 이황이 학문을 따랐고, 북인은 조식의 후학들이었다.동인 정권은 큰 실책을 저질렀는데, 이는 왕세자 책봉 1년 전인 1590년에 있었던 통신사 파견에서 일어난다. 통신사의 정사는 서인 황윤길, 부사는 동인 김성일 이었다. 황윤길은 통신사 파견 후 일본이 대대적으로 군선을 보강하고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꾀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반대로 김성일은 전쟁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히데요시도 그럴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폄하하는 발언을 한다.동인 정권은 서인의 발언을 완전히 무시하고, 일본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결국 일본은 무방비의 조선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4. 광해군과 북인정권임진왜란이 일어날 무렵, 정권은 남인이 잡고 있었다. 그러나 1602년 북인은 정인홍을 중심으로 뭉쳐 남인의 최고 실력자 류성룡을 탄핵하는데 성공한다. 게다가 북인의 영수인 정인홍을 비롯하여 곽제우 등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 대부분 북인이었다. 선조가 그런 공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북인 정권이 탄생하게 된다.북인은 정권을 잡은 후 또다시 분열하게 된다. 이번에는 대북과 소북으로 나눠진다. 선조의 후계문제로 대북과 소북은 대립하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진 후 선조는 광해군서인은 와신상담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1623년, 서인은 남인과 함께 반정을 일으켰다. 폭군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치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하에 인조반정을 일으킨다. 인조반정으로 서인은 3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더불어 광해군을 지지하던 대북은 완전히 몰락한다. 동인 세력은 남인과 일부의 소북만이 남게 된다. 병자호란을 치르는 사이에 서인은 정권을 지켰다. 서인과 함께 반정을 일으켰던 남인도 서인만큼은 아니지만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조정에 평화가 유지되었다.6. 예송 논쟁과 사색당파 (서인의 경신환국)현종의 시대, 당쟁이 다시 격해진다. 아버지 효종의 장례식이 발단이었다. 할아버지 인조의 두 번째 부인 자의대비는 아버지 효종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 때문에 이 무렵까지도 생존해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아들 효종’의 장례를 위해 상복을 입어야 하는 기간이었다. 이른바 예송논쟁이다. 소현세자가 급사했을 때 자의대비는 3년간 상복을 입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의대비는 소현세자가 맏아들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예의를 지켰던 것이다. 남인은 이 사례를 들어 왕통을 이은 효종에게도 자의대비가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인은 효종이 장남이 아니니까 자의대비가 1년간 상복을 입는 게 적당하다고 맞섰다. 이 1차 예송 논쟁에서 서인이 승리했다.1674년 숙종이 열세 살의 나이에 왕에 올랐다. 이 무렵 효종의 부인, 숙종의 할머니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자의대비는 이때까지 살아있어서 15년 전과 같은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서인의 영수 송시열은 자의대비가 9개월간 상복을 입는 것을 주장했고, 남인의 영수 허목은 1년을 주장했다. 이 2차 예송논쟁에서 숙종은 남인의 손을 들어줬다. 그 결과 남인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정권을 빼앗긴 서인은 이를 갈았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반역의 혐의를 남인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무렵 조선은 북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성을 쌓았는나인이 있었다. 숙종은 곧 그녀에게 푹 빠져버리고 만다. 장옥정의 가문은 남인이었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나 부인 인현왕후는 모두 서인 가문출신이었다. 따라서 숙종이 장옥정을 후궁으로 앉히면 남인이 득세하게 될 것이 뻔하므로 서인들은 그녀를 경계하고 나섰다. 장옥정은 간사한 여자였다. 이를 빌미로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장옥정을 궐 밖으로 내 쫓게 된다. 어머니의 명령이므로 숙종도 이를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명성왕후가 죽자, 다시 장옥정을 궐 안으로 들이게 된다. 숙종은 장옥정을 가장 낮은 후궁인 소의에 앉혔다.그 소의 장씨가 1688년 아들을 낳았다. 당시 인현왕후는 오랜 기간 아들을 낳지 못하고 있었는데, 게다가 숙종은 소의 장씨를 무척이나 아꼈다. 그래서 남인들도 이틈을 노려 장씨의 아들을 세자에 책봉하도록 독촉을 했다. 결국 1689년 1월 숙종은 아들 윤을 세자로 책봉한다. 더불어 소의 장씨는 장희빈으로 승격하게 된다. 그 뒤 그녀의 기세는 등등해 지고 하늘을 찌른다. 인현왕후까지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게 되어, 인현왕후는 점점 초조해 지게 된다. 장씨의 권력이 세질수록 서인들의 불안도 함께 커져만 갔다.결국 서인 노론 영수 송시열이 총대를 매고, 정비인 인현왕후가 아들을 낳을 수도 있으니 장씨의 아들을 너무 빨리 세자에 책봉하지는 말자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이를 본 장희빈은 분노에 폭발하게 되고, 숙종을 설득해 송시열을 유배지로 보내게 된다. 얼마 뒤 숙종은 인현왕후까지 내 쫓게 된다. 인현왕후는 졸지에 폐비가 되고, 희빈 장씨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다. 서인 80명이 인현왕후를 폐출해서는 안 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를 본 숙종은 그들에게 잔인한 형벌을 내린다.남인의 영수 권대운을 중심으로 새로운 남인 정권이 꾸려진다. 이 환국이 ‘기사환국’이다. 남인은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했다. 하지만 이들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희빈 장씨가 너무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또한 남인이 서인의 씨를 말리겠다는 의지로 반발이 의외로 강해 숙종도 주춤하게 된다. 그러던 중 숙종의 병세가 악화되어 1720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숙종은 죽기 전에 영의정이자 노론의 중심인물인 이이명을 불렀다. 숙종은 원세자를 왕으로 하되, 그 다음 국왕은 연잉군으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이 유연에 따라 장희빈의 아들이 경종이 된다. 그러나 실권이 없는 왕이었다. 노론은 기세 등등하여 경종에게 연잉군을 왕세자로 책봉하라고 요구했다. 1721년 경종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연잉군을 왕세자로 책봉한다. 뜻을 이룬 노론은 기고만장해졌다. 이 참에 왕을 바꾸기로 작정을 했다. 경종에게 연잉군이 대리청정을 하도록 요구한다. 힘없는 경종은 또다시 이를 받아들인다. 노론은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소론에서 곧바로 반발이 나왔다. 소론은 대리청정은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경종은 이에 힘을 얻어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 이이명과 김창집을 유배 보냈다.노론과 소론의 기세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단골메뉴인 반란 소식이 들려왔다. 노론의 영수인 이이명이 반란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경종은 유배지로 사약을 보냈고, 궁에 있는 노론을 모두 제거했다. 이를 신임사화라고 한다. 왕세자인 연잉군도 이 사건에 연루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연잉군은 결백을 주장하며 죄가 입증되면 세자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죄를 확인하기도 전에 경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연잉군은 영조에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 조선 중기의 당쟁의 역사다. 그 이후에는 영, 정조의 탕평책에 힘입어 이 전만큼 당쟁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이후에는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조선 후기 망국의 길로 접어드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총평조선 당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계속해서 서로를 물고 뜯고 정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당대 권력자의 모습이 보인다. 현대 정치판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도 든다. 역사가 그대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붕당정치의 좋은 점도 있었다. 하나의 정권이 집권하여 마음대로기다.
    인문/어학| 2017.12.14| 7페이지| 2,0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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