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가 말하는 아바론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옛날에 한동안 롤 플레이(role play) 게임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여러 게임을 조금씩 맛보는 것이 아니라 한 게임을 시작하면 거기에만 몰입하는 편이다. ‘위자드’와 ‘드래곤 퀘스트’를 좋아했었다. 지금은 프로게이머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왜 게임 플레이어에 관한 영화가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부터 의 기획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5년 전 개를 키우게 되면서부터는 게임을 안 하고 있다. 영화를 폴란드에서 폴란드 배우들과 작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이외의 언어로 영화를 찍고 싶다고 줄곧 생각해 왔었다. 에 등장하는 가공의 도시가, 오래되고 음침한 느낌을 갖게 하는 폴란드의 이미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워낙에 폴란드 영화를 좋아했고 폴란드 발성도 좋아해서 언젠가는 폴란드어로 된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들입니까? 개인적으로는 안제이 바이다의 가 떠올랐는데요. (웃음) 폴란드 영화는 학생시절에 많이 봤었다. 요즘의 폴란드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에 남아있는 감독들도 안제이 바이다를 위시한 과거의 폴란드 감독들이다. 폴란드에서 특별히 어떤 영화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폴란드 영화의 느낌을 떠올리며 로케이션을 했기 때문에 그 중에 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영상을 만들다 보면 자신이 봤던 영화의 영상이 어디에선가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폴란드에서 일본인 감독이 영화를 찍으면 그것이 폴란드 영화일까, 일본영화일까? 한동안 그런 의문에 고심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혼란스럽다. 과연 나는 일본감독이라고 할 수 있나? 일본영화라는 정의는 어떤 것일까? 애슈와 쿠사나기가 갖는 이미지의 유사성, 가상공간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 등에서 은 의 후속편처럼 보이는데요. 에서 당신이 만족스럽게 끝내지 못했다고 생각한 무엇이 있었습니까? 혹은 이 에서 더 나아간 문제는 못 느꼈지만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실사 영화에서 그것들을 보니까 애니메이션에서의 내 연출이 얼마나 거칠고 과장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실제 인간이나 물리적인 현실과 가깝게 하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유치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아마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는 다른 감독이라면 누가 봐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작인 는 좋게 봤다. 그들이 다음 영화를 만든다면 보다는 차라리 와 같은 영화가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확실히 재능이 있다. 전차 폭파 장면을 보면, 워쇼스키 형제는 공간을 돌려서 3차원으로 봉합시키려 했던 것과는 반대로 당신은 ‘거짓말 말아라’라는 식으로 2차원 CG라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워쇼스키 형제가 다시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웃음) 아마 그런 식의 표현방법이 나왔던 것은 그들이 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젊은이들은 그런 치기 어린 시도들을 많이 한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런 식의 장난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까 그들이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최근 당신의 영화들에서 여전사의 이미지가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주인공은 폴란드에 가기 전에 여성으로 변경되었다. 기획의 준비단계에서 줄곧 남성 주인공을 염두에 두고 추진해왔지만,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 주인공으로 바꿨더니 나 자신이 활기를 얻을 수 있었다. 옛날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피했었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통 내 나이 또래의 남자 주인공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40이 넘고 를 하면서부터 여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여성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강한 여성이다. 자기 혼자만의 존재감을 가지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는 맞서 싸울 수 있는 여성이 개인적인 이상형이다.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묘하게 여성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소시지와 음식을 강조하려고 매스킹을 통해서 주위의 배경과는 다르게 색을 입혔다. 그를 들개와 같이 보이게 하고 싶었다. 애슈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도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다. 반면에 개는 따뜻한 진수성찬을 먹는다. 그 두 장면을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여담인데 나는 원래 개에게 차가운 밥을 먹이는 것을 싫어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감자가 개에게 안 좋고 고구마가 좋은데 폴란드에 고구마가 없어 감자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감자가 개에게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쇼크를 받았다. 그게 속상하다. 의 컴퓨터는 윈도우가 아니라 도스 시스템에 가깝더군요. 그러한 디자인은 글자를 좋아하는 당신의 취향에 의한 것입니까? (웃음) 맞다. 귀로 듣는 말보다 눈으로 확인하는 언어가 더 많은 의미와 정보를 준다. 나 자신이 자막이 들어간 외국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것도 똑같은 이유이다. 영화 속에서 간판이나 책과 같이 문자들을 찍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대사는 폴란드어지만 컴퓨터에 뜨는 글자들은 영어로 했다. 또 한가지는 일단은 과거의 폴란드 영화들을 생각했기 때문에 미술의 전체적인 컨셉트를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고전적이고 단순한 식으로 가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의상이랑 주위 배경이 현대적인 컴퓨터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구형 컴퓨터로부터 발전시킨 어떤 것을 떠올렸다.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적인 디자인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것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식의 어떤 것들이 배경도 폴란드고 인물들과 배경도 어둡고 하니까 어울릴 것 같았다. 연극적인 방식을 사용한 와 를 보면서 전공투 세대인 당신이 고다르나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요. 그러한 실재하는 것과 그것을 중계하는 매체에 대한 고민이 지금의 와 의 문제의식에 도달하게 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웃음) 학생시절에 반정부 운동을 많이 하기는 했다. 학생운동 하는 시절에도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을 바꿔야지 하는 생각이 많시 감독의 연출의도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전동차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경직되어있고, 같은 화면이 반복되지만 인물들은 항상 같은 곳에 같은 모습으로 배치되어있다. 절대로 애쉬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 장면은 암울하게 보여 졌다. 가까운 미래라고 하지만, 마치 너무나 낯선 세상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영화 후반부, 현실이라는 곳과 비교가 되면서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컬러가 확실하고 사람들의 이동과 활기찬 모습이 보여지는 현실의 모습과는 확실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효과도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감독의 연출력에서 나온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상현실의 공간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심각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의 게임의 역할은 오락성의 제공과 함께 돈을 벌 수 있는 수단도 함께 하고 있다. 즉, 철저히 상업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상공간을 그냥 현실화 시키며 철저하게 가상공간에서의 삶이 현실인냥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 자체가 현실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자신의 몸은 병원에 있더라도 가상공간에서의 자유로움으로 만족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게임속 공간에서의 전투장면에서 총 맞은 사람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게 아니라 비명을 지르며 유리조각처럼 깨져 버린다. 가상현실에서는 생명이라는 가치는 그곳에서 만큼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데, 만약 이 영화에서처럼 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다. 이러한 가치판단은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한번은 생각해 봐야할 과제라는 느낌 또한 주고 있다.@아바론에서의 ‘현실’상막하고 황폐화되고 단절의 느낌이 드는 곳이 현실로 표현되고 있다. 애쉬의 집이나 거리, 전철 등에서 보여지는 현실의 모습은 가까운 미래라는 설정이지만 너무나 암담하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내가 생각하라던가, 오페라가 끝나고 갑자기 텅 비어버린 공연장 등의 장면은 이 짐작을 무너뜨린다.특히 현실에서는 식물인간이 되어 있으면서도, 클래스 리얼에서는 멀쩡한 꼬라지로 우아하게 살고 있는 머피가 죽는(사실은 데이터가 말소되는) 장면은, 클래스 리얼의 정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부분에서 애쉬와 머피, 그리고 관객은 '클래스 리얼'이 아무리 현실같아 보여도 그건 게임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거다.결국, 애쉬는 텅 빈 공연장 무대 한가운데에서 '아바론' 게임을 완전히 깰clrear 수 있는 열쇠인 '고스트'와 일대일 대면을 한다. 그 '고스트'를 쏴 맞추면 게임은 완전히 끝나고, 애쉬는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Ghost = Gate ]그런데 그 애쉬와 마주보고 있던 그 '고스트'는, 천사의 모습에서, 고개를 코딱지만큼 숙이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악마의 모습으로 돌변해버린다.이 섬찟하고도 기막힌 마지막 장면은 무엇을 말하는가.그렇다. '고스트'는 애쉬에게, 완전히 아바론을 깨고 추레한 현실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머피처럼) 현실세계에서는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안락하고 화려한 게임 속의 세계에 영원히 남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너는 과연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라면서.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머피가 애쉬를 향해 일갈하던 그 결정적인 대사 한마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여기가 현실이라면 뭐가 나쁜거지?"머피가, 같은 패거리('파티') 동료들에게 배신을 때려가면서까지 레벨을 끌어올려, 클래스 리얼에 오고 싶어했던 이유는 결국 이것이다. 현실보다 행복하다면 가상현실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법한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에서 '인형사'의 대사로 읊어지는 '인간의 존재는 결국 정보와 기억의 총체다' 라는 생각은 에서 이런식으로 드러나고 있다.그리고, 이전까지의 '비현실적'인 화면이, 클래스 리얼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완전 현실적인 컬러 화면으로 돌변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즉, 영화는, 애쉬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