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의 시대구분국어사를 공부하는 것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국어사의 시대구분이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선을 긋는 것은 매우 곤란한 작업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역사 속에서도 특징적인 사건과 구분되는 시대가 있듯이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언어변천에 있어서도 크게 격동하는 시기가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구분은 아직 명확히 합의된 바는 없으며 학자들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따라서 학자들 간에 다른 주장들의 내용과 성격을 알아보고자 한다.시대 구분에 앞서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 기준이다. 시대는 그 앞뒤시대와의 차이가 있어야만 할 것이며, 한 시대를 구분하자면 그 구분하는 근거가 확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시대구분은 국어변천사를 모두 세밀하게 검토한 후 내려져야 할 것이다. 국어사의 시대구분은 국어학만의 독자적인 것이지만, 언어가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형성되고 변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사회문화까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따라서 국어사를 나누는 기준에는 언어만의 변화를 살펴보는 내적요인, 정치?사회?문화의 영향을 고려하는 외적 요인이 있을 수 있겠다.음운의 변화에 따른 시대구분에는 크게 시대에 따른 음운의 변화와 음운의 변화에 따른 국어사의 시대 구분이 있을 수 있다. 시대에 따른 특징적인 음운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0세기 이전에는 폐쇄음, 폐찰음 부류에 평음과 유기음 두 계열이 존재했다. 또한 유성마찰음 ㅸ, ㅿ의 발생 7모음 체계와 모음조화가 존재했다. 그 후 10세기 초~15세기 초에는 된소리 계열이 출현하였으며, 유성마찰음ㅸ과 ㅿ가 존재했다. 음절 말 자음의 내파화가 점차 확대되었으며 이전시기와 같은 7모음체계와 모음조화가 존재했다. 15세기 중엽에는 어두운 된소리 계열이 존재하였고, 이전 시기 7모음 체계가 추이를 일으킨 결과로서의 7모음체계가 존재했으며 순경음 ㅸ이 소멸하고 모음 ?이 나타나게 되었다. 비음운화(비어두음절 위치에서)와 그에 따른 모음조화의 붕괴가 확산되기도 했다. 16세기에는 ㅅ계 자음군이 된소리화되었고, ㅅ종성이 소멸하고 반치음 ㅿ과 후두유성 마찰음이 특징적이다. 또한 ㆁ과 성조가 소멸하고 음장이 발생하였다. 17세기에는 ㅄ계 자음군이 변이하고 설단자음 ㄷ부류의 구개음화가 발생하였다. 모음 ?이 비음운화(어두음절 위치에서)발생하였고 순음 아래에서 ㅡ의 원순모음화가 발생했다. 18세기 중엽에는 ㄷ부류의 구개음화 및 모음 ㆍ의 비음운화 완결에 따른 6모음체계의 존재가 특징적이다. 19세기에는 이중모음 ㅒ, ㅔ의 단모음화와 그에 따른 8모음체계의 성립이 특징적이며 움라우트 현상이 발생했다. 20세기 이후에는 이중모음 ㅟ, ㅚ의 단모음화가 이루어지고 있다.음운의 변화에 따른 국어사의 시대 구분을 살펴보면 고대, 중세, 근대전기, 근대후기, 현대로 5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대국어는 15세기 이전을 말하며 모음추이 발생 이전의 7모음 단계가 특징적이다. 중세국어는 15세기 초엽부터 16세기 말엽으로 모음추이를 거친 7모음 단계가 특징적이다. 근대국어 는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데, 전기는 17세기 초엽부터 18세기 중엽까지로 모음ㆍ의 비음운화에 따른 6모음체계가 특징이다. 근대후기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엽으로 ㅐ, ㅔ의 단모음화에 따른 8모음체계이다. 현대국어는 이중모음 ㅟ 또는 ㅚ의 단모음화에 따른 9모음 내지 10모음체계가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또 다른 시대구분으로 학자들만의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김형규, 이기문, 최범훈, 박병채, 홍윤표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겠다.김형규(1955)는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국어사의 시대 구분은 크게 훈민정음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으며, 왕조사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훈민정음 이전을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로 구분하였다. 훈민정음 이후 시대는 조선초기, 조선중기, 조선후기, 조선말기, 현대로 구분하였다. 조선초기는 세종, 세조시대이며, 조선중기는 성종 이후에서 임진왜란까지, 조선후기는 임진란 이후부터 경종까지로 구분하였다. 조선말기는 영종 이후 갑오경장까지로 구분하고 현대는 갑오경장이후라고 주장했다.우리의 문자나 언어의 역사는 정치적 역사 시대구분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그래서 우선 우리 글자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후로 크게 나누어, 그 이전을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로 나누 고, 그 이후를 다시 5기로 나누었다. 이는 다만 표면에 나타난 문자의 기록만을 가지고 본 시대구분이 아니라, 조선의 사회, 정치, 문화적 변동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으며, 우리말의 음성이나 어휘 또는 어법의 변화가 이 시대를 계기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김형규는 얼마 후(1962)에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상대어(신라시대) - 934중고어(고려시대) 935 - 1391중기어(이조전기) 1392 - 1591(이조태조 - 임진란)근대어(이조후기) 1592 - 1893(임진란 - 갑오경장)현대어 1894 - (갑오경장 - )시대구분 명칭을 왕조식에서 언어식으로 바꾸었으며, 조선시대를 전기와 후기로만 구분하였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언어사와 사회 정치 문화사를 함께 고려했다는 점이다.다음으로 이기문(1961)의 에서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크게 고대국어, 중세국어 전후기, 근대국어 전후기로 구분한다. 고대국어는 고려시대 이전이며, 중세국어 전기는 고려초부터 훈민정음 이전까지를 말하고, 후기는 훈민정음 편찬 시기부터 16세기 말까지로 구분한다. 근대국어 전기는 17세기 초부터 18세기 후반으로 영조시대까지로 구분하고 후기는 이 후로 주장한다.언어사상의 특기할 만한 대사건의 존재는 시대구분에 편의를 제공하며,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시대구분을 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원칙 하에서 위와 같은 시대구분이 이루어 졌다. 이기문의 시대구분은 언어사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각 시대의 특징으로 제시된 주요 내용이 음운론적인 항목들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위와 같은 시대구분은 일단 음운사적 기준에 상당한 비중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기도 한다.최범훈(1985)은 에서 국어사를 6기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형성기한국어가 첫째시기로 3국이 정립하기 이전을 말하며, 고대한국어는 고대3국의 정립부터 통일 신라 시대를 말한다. 중고한국어는 고려시대부터 훈민정음 창제시기까지를 말하며 중세한국어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부터 임진란까지이다. 근대한국어는 임진란부터 갑오경장까지, 현대한국어는 그 이후를 말한다.이와 같은 시대구분은 기본적으로 언어사 자료에 토대를 두고 있으나, 정치사적 변동도 배체하지 않고 있음이 주목된다. 저자는 이를 시대구분 문제에 있어서 정치사적 시대구분을 따르는 것은 무비판적이요, 사관이 없는 소치로만 보려는 경향이 없지 않으나 정치적 변동은 사회적 변동을 가져오며, 그 사회적 변동은 결국 언어에도 영향을 줄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한다.박병채(1989)는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언어의 외적 요인인 왕조의 교체라는 전환점에 기준을 둘 때, 정작 핵심이 되는 언어의 내적 요인에서 오는 변화의 실상이 흐려질 염려가 있다. 물론 외적 요인인 왕조의 교체. 정치적 중심지의 이동, 원주민의 이주, 또는 인접 민족과의 접촉 등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동이 언어의 변천과 무관할 수는 없으나 언어사 기술에서는 그 주체인 언어내적 요인에 기하는 변동기를 제 1차적 기준으로 삼아 시대를 가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5기로 구분한다. 고대국어 전기는 1103년까지로 계림유사 이전으로 본다. 고대국어 후기는 1103년부터 1443년까지로 계림유사부터 훈민정음 창제까지로 본다. 중기 국어는 1443년부터 1598년까지로 훈민정음 창제 시기부터 임진왜란이 종결된 때로 본다. 근대 국어는 그 이후부터 갑오경장까지로 1598년부터 1894년으로 보며 현대국어는 그 이후로 본다. 이 경우 시대구분은 분명히 ‘언어의 내적 요인에 기인하는 변동기’가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어 그 기반이 言語史에서 나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목 차1. 현실사회와 이상사회의 관계22. 현실사회의 모습32.1.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사회의 모습42.1.1. 현실사회에 대한 거시적 관찰42.1.2. 현실사회에 대한 미시적 관찰52.2. 현실사회 문제들에서 나타나는 ‘자유, 평등, 인간존엄성’과 이상사회의 모습82.3.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시각차이의 원인81)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시각차이82) 시각차이의 원인9① 사람들의 다양한 삶9② 세 개념의 충돌10ⓐ 자유와 평등-인간의 존엄성과의 관련10ⓑ 자유와 평등의 관계113. 이상 사회 실현 조건인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 의 발전113.1. 프랑스 대혁명123.2. 미국 독립전쟁을 통해 본 노예제도 (인종차별 문제)143.3 광주 민주화 운동163.4. 역사 속에서의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184. 이상사회로의 발전18 211. 현실사회와 이상사회의 관계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조선시대의 사회적 모순에 염증을 느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품고 ‘율도국’을 세운다. 허균은 조선시대의 사회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자신이 그리던 이상 국가를 『홍길동전』을 통해 ‘율도국’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즉, 허균에게 있어 당시의 조선사회는 현실사회인 것이고 ‘율도국’은 이상사회인 것이다.현실사회와 이상사회란 어떠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일까. 현실사회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라고 비교적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반면, 이상사회란 어떤 사회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한 가지로 정의 짓기 어렵다. 이상(理想)이란 사전적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마음에 그리며 추구하는 최상·최고의 목표’ 라는 의미로, 최상·최고의 목표는 사람마다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것이며, 그 사람이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가에 따라 제각기 추구하는 이상사회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이상사회의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있으며, 이상사회란 어떤 사회를 의미하는가에 대한 정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그평등한 과세정책이라고 보여질 것이며,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국민들 대다수에게는 평등하고 대체로 시의 적절한 정책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즉, 1가구 3주택이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투기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자신이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해서 얻어 낸 결과에 대해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뿐만 아니라 과세적용까지 한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정책은 매우 불평등한 것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현실사회에서는 '평등'이라는 하나의 가치에 대해서 그 사전적 정의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사건에 적용시켜 판단 내릴 때에는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이것은 교육에 있어서도 수월성과 평등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늘 쟁점화 되어왔던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한 대립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특수목적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이 수시합격비율이 높다는 통계결과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일부에서는 이러한 통계결과가 일반고등학교 재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줄 뿐만 아니라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일반고등학교 학생들이 특수목적고등학교 학생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공평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며, 각 대학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에서 수시를 뽑는 비율을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고교평준화 정책을 보면 오히려 역차별에 해당되는, 한마디로 그러한 정책이 이들에게는 매우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정책 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행초기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교 평준화 정책 자체에 대해서도 일부 사람들은 고교간의 학력 차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강남과 강북, 혹은 수도권과 비 수도권 지역의 학교를 동일한 수준에서 보는 것은 무의미하며 불평등하다고 말한다. 또 이와는 다르게 강북이나 비 수도권 지역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고교평준화 정책 아래에서 고등학교라는 동일한 수준의 교육기관의 지역간의존엄성실현을 위해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완전하게 실현하기란 무엇보다도 어려운 문제의 것이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은 한가지를 실현하자면 다른 한가지의 개념이 손상을 입는 대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이상적인 삶과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서는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다.ⓐ 자유와 평등-인간의 존엄성과의 관련인간이 이상적인 사회에서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곧, 인간의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삶이란 무엇인가? 계몽주의에서는 말하는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삶의 중심은 ‘인간의 존엄’이었다. 즉 인간의 존엄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근거이다. 이 말은 인간이 비록 자연적 존재이기는 하나 단지 “자연적” 의미에서만 이해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인간은 언제나 주체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개의 인간이 그때그때마다 동등하게 자신의 최선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자유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따라서 계몽주의의 최고원칙은 ‘모든 인간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평등한 청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관계, 그리고 각각의 개념을 설명해주는데도 일맥상통한다.한편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의 관계는 절대적인 평등과 상대적인 평등의 개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절대적 평등 인식은 대체로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리하여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인간은 동일해야 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간의 존엄성과 마찬가지로 평등도 인간의 의지와 관계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 평등은 사회적 차별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능력, 업적 등의 차이에 따라 그 사회적 보상도 달라야 한다는 태도이다. 따라서 필요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사회적 불평등은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또한하였다. 물론 지금의 사회로 발전하기까지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도 경험하였지만 결국 자유와 평등과 인간 존엄성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는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겪으면서 현재의 사회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이것은 즉 현재 사회가 과거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구했던 사회의 모습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념이 항상 존재한다.3.2. 미국 독립전쟁을 통해 본 노예제도 (인종차별 문제)인간의 노예화, 노예제도는 인류사회의 큰 죄악으로 불리고 있다. 노예제도가 미국의 독립혁명에서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근 1세기후의 남북전쟁에서 겨우 해결을 보았다고는 하나 그것조차도 그 내용은 아직도 법적,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심각한 문제는 내부에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 세계가 하나의 국제사회를 이루고 있는 처지에서 미국의 문제인 동시에 전인류의 공통의 과제이다. 근본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어째서 인간의 노예화는 전인류의 문제일까?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인권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로마 시대부터 지금의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노예제도는 엄청난 비판은 유명무실하게 이름만 달리하여 계속되고 있다. 적어도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사회에 대한 단면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물적(物的)으로 속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1492년 스페인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된 이래로 노예무역에 의한 이익은 실로 막대하였다. 그렇게 팔려간 전 흑인노예의 수는 전혀 추정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어쨌든 노예제도란 사람을 절취하여 몇 사람씩 줄로 엮어 각인을 찍은 후 무서운 항해 끝에 시장에서 경매에 부쳐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노동이 강요되고 매질을 당하며 무지를 강요 당했다. 이와 같이 인권을 완전히 부정 당하는 것이 노예제도였다. 노예들에게 자유에 대한 인간적 감정이 싹트게 되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폭동으로 나타날 상황5월 20일에는 광주 항쟁에서 주요한 계기를 이룬 차량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제 시위대에는 노인이나 초등 학교 꼬마들까지 섞여 있었고, 군중의 수는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계엄군이 시위 군중에 포위된 상태에서 계엄군의 발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수대의 발포에도 계속적으로 밀려드는 시위대의 필사적인 공격에 계엄군은 후퇴를 하였고, 시민들은 태극기를 휘두르면 “이겼다! 우리가 공수 부대를 몰아냈다!”라고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5월 21일, 광주는 계엄군의 통제력을 거의 벗어나고 있었고, 시민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계엄군과 시위대의 공방전은 계속되었고, 계엄군의 발포에 시민들은 또 다시 분노하였다. 시민들은 무장 항쟁의 필요성을 느끼고, 전남의 각 지방으로 내려가 그 곳 주민들에게 광주의 참상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이 때부터 목포, 함평, 무안, 나주, 영암, 강진, 장흥, 해남, 화순 등지에서 주민들이 시위를 전개하며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내려온 시위대와 함께 광주로 향하였다. 무장 시위대인 시민군은 비로소 전술적으로 유리한 고지와 우수한 화기를 갖추고 도청을 공격하였다.5월 22일, 항쟁 5일째에 계엄군은 퇴각하고 광주 시민들은 승리와 해방의 감격을 맛보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시민들은 정부와 계엄군에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하고 무조건 항복만을 강요 받았다.5월 26일 미국은 계엄군의 진압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광주로 진입했다. 27일 0시에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들어왔고 곧 포성이 들려왔다. 어둠의 격전을 치른 광주는 항쟁의 피로 물들어 있었고 항쟁은 끝났다. 시민들은 끝까지 싸워서 광주를 사수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희생되었다.드디어 항쟁은 끝났다. 그러나 광주 민주화 운동은 결코 실패한 투쟁이 아니었다. 즉,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절규하다가 좌절로 끝나버린 운동이 결코 아니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진척시키고 민중을 각성시키며 민중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다.위
Ⅰ. 머릿말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경과 의사였다. 그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학문의 여명을 개척하고 억압, 투사, 합리화, 반동형성, 외디푸스 콤플렉스 등 많은 개념들을 정립하였다. 환자의 횡설수설이 과학적 자료가 되었으며, 환자들이 제공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자아분석을 시작했다. 자신의 꿈을 분석하고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사념들을 밝힘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작용하는 역학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 자신과 환자들로부터 얻은 이 깨달음을 토대로 하여, 그는 정신분석이론을 창시하였다. 그는 정신분석이론의 창시자로서, 인간의 내면세계와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공헌을 하였다.이 글에서는 정신분석이론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기본가정을 살펴본 후, 정신분석이론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관, 퍼스낼리티 구조의 형성, 정신분석이론에서의 도덕성 발달에 관하여 살펴봄으로써, 정신분석이론을 심도 있게 다루어보고자 한다.Ⅱ. 기본가정정신분석이론은 인간의 행동을 외적인 측면이 아닌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심리학계에 큰 혁신을 일으킨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에 의해 지배되는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합리적 존재’라는 기존의 학설에 반기를 들면서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동안 심리학계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신분석이론이 기존의 심리학 이론과 다른 시각에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특히 다른 심리학 이론들과는 달리, 그 기원을 의학에 두고 있다는 점은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드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경과 의사였다는 점에서 비롯된다.정신분석(Psychoanalysis) 의 ‘정신’(Psycho)이란 말은 그리스어 'psyche‘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어 'psyche'란 말은 정신, 영혼 또는 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신분석이란 말 그대로 마음 또는 영혼의 분석을 의미한다. 정신분석 이론가들은 인간의 행동을 정신 은 인간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욕구에 의해 발달하는 유기체적 존재로 바라본다.정신분석이론의 기본가설은 ‘과거를 중시하고, 무의식을 강조하며, 발달단계에 따른 변화를 중시한다’이다. 기본가설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분석 이론이 상정하고 있는 인간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인간을 유기체적 존재로 바라보았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모든 면은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강력한 본능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확신하였다. 인간은 유기체적 존재로서, 다른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다. 인간의 행동이란 의식적으로 자발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힘, 강력한 본능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능적인 힘의 에너지를 제한된 것으로 바라보면서 그는 인간을 하나의 폐쇄된 에너지 체계로 인식하였다. 즉, 인간의 행동은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라 단일 에너지의 의해서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개인이 정신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제한되어 있으며, 인간 활동의 목표는 불유쾌한 에너지가 계속 쌓여서 생긴 긴장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정신활동의 목표는 바로 인간 자신에게 부여된 불쾌한 감정과 같은 긴장들을 감소시키는 것에 있다. 이처럼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인간을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유기체적 존재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이론에서 자유의지, 자발성, 자기결정과 같은 개념들이 존재하기 어렵다.둘째,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인간을 비합리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프로이드는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서구의 인간관에 반기를 들면서 서양의 관념론의 전통을 뒤흔들었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고, 의식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본능 즉 무의식적 동기가 인간 행동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자아가 현실원리에 지배를 받으며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아는 어디까지나 원자아의 요구에 궁극적으로 종속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자아가우리의 정신세계에서 물 위로 떠오른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활동은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데, 무의식은 전의식과 전형적인 무의식으로 구분된다. 전의식은 지금 의식에 있지는 않지만, 노력을 하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상태이다. 잠재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서, 어떠한 노력을 취하면 회상될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무의식은 의식 상태로 끌어오는 것이 매우 힘들다. 본래적인 무의식적 사고는 저항력이 강해서 의식으로 나타나기가 어렵다. 이것은 억압된 개념들로서, 그것들을 의식 속에서 확인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무의식 상태에 존재하는 억압된 욕구들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서, 그것들이 신경증 징후들이나 강박관념과 같은 질환들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프로이드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갈등을 의식의 상태로 끌어와서 개인이 자신의 갈등을 확인하고, 그러한 갈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인간의 퍼스낼리티는 의식과 전의식, 전형적인 무의식 수준에서 원자아, 자아, 초자아라는 정신 작동인에 의해서 구성된다. 이들 세 가지 작동인은 동시에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아가 가장 먼저 등장하고, 원자아로부터 자아가 형성되고, 자아로부터 초자아가 형성된다.자 의 식초 아 전 의 식자 무 의 식아원 자 아(1) 본능과 원자아(id)원자아(id)는 본능을 표상하는 정신적 동인이다. 모든 성장과 행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무의식에 들어있는 본능들로부터 나오는데, 본능은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으로 구성된다. 프로이드는 우리의 성장과 행동을 활성화시키는 근본적인 에너지를 리비도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리비도는 삶의 본능으로부터 발생하는 에너지다.원자아는 본능을 표상하는 동인으로서, 이것은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날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아는 신생아의 퍼스낼리티에서 나타나는 유일한 동인이가치 있는 형식이자, 대체된 대상이 보다 높은 문화적 목표를 나타내고 있는 전위라고 할 수 있다. 승화는 금지된 본능을 좀 더 가치 있는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행동양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공격성이나 성 본능 등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모습으로 변형시켜서 성과 무관하고 공격성이 없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방출되지 못하고 금지당한 에너지는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문화적으로 창조한 방법을 통해 방출되도록 전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승화는 종교, 예술, 문학과 같은 문화의 중요한 측면들을 확립해 주는 요소이며, 창조적인 행위나 이타적인 행동들은 승화로부터 발생한 결과이다. 승화는 자기방어지제 중에서 가치 있으며 우월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승화 역시 본능의 원천은 그대로 있으며, 다만 긴장을 감소시켜 주는 대상이나 수단이 바뀔 뿐이라는 점에서 불완전한 방어기제이다.⑤ 투사 - 투사란 자신이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이나 태도 등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이나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행동기제를 말한다. 자신의 본능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 때문에 갈등의 인과관계를 외부세계로 돌리고, 다른 사람이나 환경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다. 투사는 불안의 주체는 자신이지만 그것을 변형시켜서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변형의 목적은 원자아와 초자아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오는 내적 위험은 자아가 다스리기 힘들기 때문에, 그것을 외적 위험으로 변경시켜서 자아가 보다 쉽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충동이나 갈등을 외부의 탓으로 변경시키는 것이다.⑥ 고착 - 고착이란 좌절이나 불안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때, 개인의 성장이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히 정지되는 것을 말한다. 고착된 사람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고착된 사람은 불안정, 실패, 처벌이라는 위험이 심리적 발달의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고착은 나이가 들어도 발달이 이루어지지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최초의 양가감정을 갖는다. 이 단계에 고착된 성인들은 타인에 관하여 지나치게 비판적일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누구를 헐뜯거나 호되게 비판할 때 ‘씹는다’,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신랄한’, ‘헐뜯다’는 우리말은 영어권에서 ‘chewing out'와 ’biting‘으로 사용하는데 흥미롭다.2. 항문기(The Anal Period:2~3세)부모들은 2~3세가 되면 아동들의 대소변을 적절하게 통제시키는 데에 관심을 쏟는다. 이 때 아동들에게 만족 혹은 리비도 투입이 지배적인 지대는 항문, 하위 변통의 괄약근, 그리고 오줌, 방광과 관련한 비뇨체계의 근육이다.⒜ 배설단계(expulsion stage - 대변과 소변을 배설하는 데서의 쾌락): 아동은 최초로 본능적인 배변하고 싶은 욕구인 정신집중과 아이가 배설을 통제하도록 하는 부모들의 관심인 외적인 장애와의 심각한 갈등 경험을 한다. 이 단계는 규율과 외부의 권위를 경험하는 최초의 결정적 사건이다.) 이 단계부터 자아가 발달하게 된다. 만약 아동이 배설을 통제하려 한다면, 자아는 배설의 욕구를 느끼는 순간 그 욕구에 저항해야 한다. 자아는 저항하기 위해 리비도를 원자아로부터 빌려와야 한다. 자아에 의한 그런 리비도 힘의 사용을 ‘역정신집중’(countercathexis) 혹은 ‘반정신집중’(anticathexis)이라 한다. 이런 기능은 나중에 초자아에 의해 수행되게 된다. 아동은 청결에 대한 부모의 요구를 만족시켜 사랑을 보유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배설의 만족을 얻기 위한 원자아의 정신집중이 자아의 그 반정신집중에 의해 반격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아동은 사랑, 칭찬, 승인을 학습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아동에게 가혹하게 청결할 것을 요구한다면 공포(두려움), 죄의식, 반항의 잔류물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처벌 위주의 훈련이 되면 아이들은 보복하기 위해 일부러 자기 몸을 더럽히기도 한다. 그런 아이는 나이가 들.
Ⅰ. 서론한글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 체계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져서 현대인의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훌륭한 문자이다. 일제 시대 때 일본의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한글이 한 때 위축을 길을 걷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1933 년)과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1936 년)을 공표하여 바람직한 하나의 통일된 언어 사용과 국어 사랑의 토대를 마련했다. 해방이 된 이후 국어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었고 1988년 남한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면서 표준어는 또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일제시대 때 일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던데 반해 요즘은 오히려 그때보다 우리의 한글 사랑이 덜 한 것 같다. 무분별한 외래어의 사용과 채팅, 메일 등에서 쓰는 통신체 말투, 그리고 국어라 부르기조차 힘든 외계어들로 국어의 맞춤법, 표준어 체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아도 영어 문법이나 스펠링이 틀린 것은 부끄러워하면서 어법에 맞지 않는 국어의 사용이라든지, 표기법의 오류 등은 부끄러워하거나 따로 공부를 하거나 하지 않는 듯 하다.언어는 시대의 흐름과 언중의 언어 습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언중 사이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사회성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8년 발표된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주요 항목에 대해 살펴보고 평소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맞춤법 세부사항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주석 1988년 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총칙, 2장 자모, 3장 소리에 관한 것, 4장 형태에 관한 것, 5장 띄어쓰기, 6장 그밖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장의 총칙과 4장 형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Ⅱ. 한글 맞춤법1. 한글 맞춤법의 원리한글 맞춤법이란 무엇인가? 우리말의 표준어를 적는 규정이다.좋은 맞춤법의 전제는 읽는 사람의 입장신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b와 같은 계열의 표기를 하지 않고 a와 같은 표기를 취하고 있다.a. 밭도, 밭둑, 꽃과, 꽃다발, 덮도록, 덮개b. 받도, 받둑, 꼲과, 꼲다발, 덥도록, 덥개2 동화현상의 반영또한 현행 표기법은 동화현상을 표기법에 반영하지 않는다. 한국어에는 비음 앞에서 폐쇄음이 비음으로 동화되는 현상도 있고 ㄹ 앞에서 ㄴ 이 ㄹ 로 발음되는 현상도 있어서 실제로 발음대로 표기하면 다음 예문들의 b 계열과 같이 될 터인데 그렇게 표기하지 않고 a 계열 쪽을 채택해 쓰고 있는 것이다.a. 국물, 먹는다, 원리, 달님b. 궁물, 멍는다, 월리, 달림3 연철과 분철이제 둘째 쟁점인 연철하느냐 분철하느냐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행 한글 표기법은 되도록 한 형태소의 모습이 늘 같은 모습으로 표기되는 방향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어 여기에서도 그 원칙을 따른다. 즉 분철을 택하는 것이다. 비록 연철 쪽이 발음을 더 충실히 반영해주지만, 굳이 분철쪽을 택하는 것은 그 방식이 형태소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고정시켜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표기법은 분철 표기법을 파생에까지 적용해서 쓰고 있으며 이때의 기준은 접미사의 생산성이다.a. 옷이, 옷을, 잡아, 잡아라, 웃음, 울음b. 오시, 오슬, 자바, 자바라, 우슴, 우름-음 , -이 는 여러 파생어를 만들어내는 접미사들이어서 웃음, 높이 등의 파생은 생산적이다. 따라서 웃으니, 웃어라, 높아서, 높으면 과 같은 규칙적인 활용과 묶어 생각할 수 있으나 마개(막애), 무덤(묻엄)과 같은 비생산적 파생어에서조차 어원을 밝혀 분철을 하는 일은 지나치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4 불규칙 활용에서의 허용현행 표기법은 표의주의를 지향하면서도 때에 따라 표음주의 쪽도 알맞게 수용하는 입장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중화나 동화현상도 반영하지 않고 어간의 모습을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고정시켜 표기하려는 입장을 지키면서도 불규칙활용에서는 발음대로 표기하는 쪽을 허용한 것이다. (1)에서는 a를 '는 '이요'로 적는다. (ㄱ을 취하고, ㄴ을 버림.)ㄱ ㄴ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또 저것은 먹이다. 이것은 책이오, 저것은 붓이오, 또 저것은 먹이다.제 17항 어미 뒤에 덧붙는 조사 '-요'는 '요'로 적는다예) - 스페이스 A의 전생 여행! 기대하십시요( ) vs 스페이스 A의 전생 여행! 기대{하십시오(O) - 내가 최고 명장이요.( ) vs 내가 최고 명장{이오.(O) '요 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 따위를 열거할 때 쓰는 연결 어미 이므로 종결 어미로는 쓸 수 없다.예) 이것은 고소미요, 저것은 새우깡이요, 또 저것은 콘칩이다.# 평서형 종결어미로 쓰일 때에는 오직 -오 만 맞는 것이다. 1988년도에 개정된 맞춤법에서 종결형에 사용되는 어미 오 는 요 로 소리나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 로 적는다고 규정해놓았다. 다만 연결형으로 쓰는 이요 는 그대로 이요 라고 적도록 하고 있다.- 나야말로 천사표요, 예쁜이요, 공주니라.이 밖에 경우 모두 오 로 적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럴 때는 주의해야 한다.(제 17항)- 그 건물은 무척 화려하지요.(O)- 정리해고는 너무 가혹하지요.(O)여기서는 서술형 어미 지 아래에 요 가 존대를 뜻하는 보조사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요 는 적어야 한다. 그리고 명령형 어미로도 역시 오 가 쓰인다.- 당신 먼저 가시요.(X), 당신먼저 가시오.(O)(2) 날으는 슈퍼보드 (X) vs '나는 슈퍼보드(O)' 제 18항날다 는 나니, 난, 납니다, 나오, 나는 과 같이 활용하므로 나는 슈퍼보드 가 맞다.제18항 다음과 같은 용언들은, 어미가 바뀔 경우, 그 어간이나 어미가 원칙에 벗어나면 벗어나는 대로 적는다.1. 어간의 끝 'ㄹ'이 줄어질 적 #불다 : 부니 분 붑니다 부시다 부오2. 어간의 끝 'ㅅ'이 줄어질 적 #긋다: 그어 그으니 그었다3. 어간의 끝 'ㅎ'이 줄어질 적 #그렇다: 그러니 그럴 그러면 그러오4. 어간의 끝 'ㅜ, ㅡ'가 줄어질 적 #푸다: 퍼 펐다 뜨다: 떠 떴다5. 어간의 끝 'ㄷ'이 'ㄹ다 : 미워 미우니 미웠다쉽다 : 쉬워 쉬우니 쉬웠다다만, '돕-, 곱-'과 같은 단음절 어간에 어미 '-아'가 결합되어 '와'로 소리 나는 것은 '-와'로 적는다.돕다[助] : 도와 도와서 도와도 도왔다곱다[麗] : 고와 고와서 고와도 고왔다# 다만 모음 조화의 규칙성에 따라 'ㅏ, ㅗ'에 붙은 'ㅂ' 받침 뒤에 어미 '-아(았)'가 결합한 형태는 가까와, 가까와서 아름다와, 아름다와야 괴로와도, 괴로왔다 처럼 모두 '와(왔)'로 적었으나, 이번에는 현실적인 발음 형태를 취하여, 모음이 'ㅗ'인 단음절 어간 뒤에 결합하는 '-아'의 경우만 '와'로 적고, 그 밖의 경우는 모두 '워'로 적기로 하였다.'와'형 돕다 도와, 도와라, 도와서, 도와도, 도와야,도왔다곱다 고와, 고와서, 고와도, 고와야, 고왔다'워'형 괴롭다 괴로워, 괴로워서, 괴로워도, 괴로워야, 괴로웠다아름답다 - 아름다워, 아름다워서, 아름다워도, 아름다워야, 아름다웠다(5) 만듦(O) vs 만듬(X) 제 19항제 19항 어간에 '-이'나 '-음/-ㅁ'이 붙어서 명사로 된 것과 '-이'나 '-히'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1. '-이'가 붙어서 명사로 된 것 : 길이 깊이 높이 다듬이 땀받이 달맞이 먹이 미닫이 벌이2. '-음/-ㅁ'이 붙어서 명사로 된 것 : 걸음 묶음 믿음 얼음 엮음 울음 웃음 졸음 앎 만듦3. '-이'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 : 같이 굳이 길이 높이 많이 실없이 좋이 짓궂이4. '-히'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 : 밝히 익히 작히다만, 명사화 접미사 '-이, -음'이 결합하여 된 단어라도, 그 어간의 본뜻과 멀어진 원형(原形)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 굽도리 다리[?] 목거리(목병) 무녀리 코끼리 거름(비료) 고름[膿] 노름(도박)어간에 '-이'나 '-음'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품사로 바뀐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 # 귀머거리 마감 마개 마중 무덤(6) 오늘이 몇일이냐?(X) vs 오늘이 며칠이냐?것이므로 돼버리다 라고 써야 한다.제35항 모음 'ㅗ, ㅜ'로 끝난 어간에 '- 아/- 어, - 았 -/- 었 -'이 어울려 'ㅘ/ㅝ, ㅘㅆ/ㅝㅆ'으로 될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 꼬아 꽈 꼬았다 꽜다 보아 봐 보았다 봤다 쏘아 쏴 쏘았다 쐈다 두어 둬 두었다 뒀다 주어 줘[붙임 1] '놓아'가 '놔'로 줄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 좋아, 좌(X)[붙임 2] 'ㅚ' 뒤에 '- 어, - 었 -'이 어울려 'ㅙ, ■ㅙ가'으로 될 적에도 준 대로 적는다.(본말) (준말) 괴어 괘 괴었다 괬다 되어 돼 되었다 됐다 뵈어 봬 뵈었다 뵀다(8) 한글 맞춤법의 게릴라 , 제 51항(제 20항, 제 25항)곰곰(이/히) 생각하다, 깨끗(이/히) 치우다제51항 부사의 끝 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1. '이'로만 나는 것 : 깨끗이 나붓이 느긋이 둥긋이 따뜻이 반듯이 버젓이 산뜻이 의젓이 가까이 고이 날카로이 대수로이 번거로이 많이 헛되이 겹겹이 번번이 일일이 집집이 틈틈이2. '히'로만 나는 것 : 극히 급히 딱히 속히 작히 족히 특히 엄격히 정확히3. '이, 히'로 나는 것 : 솔직히 가만히 간편히 나른히 무단히 각별히 소홀히 쓸쓸히 정결히 과감히 꼼꼼히 심히 열심히 급급히 답답히 섭섭히 공평히 능히 당당히 분명히 상당히 조용히 간소히 고요히 도저히"[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라는 규정은 모호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 [이]로만 나는 것 [히]로만 나는 것이란, 실상 발음자의 습관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고, 따라서 예시된 단어 이외의 경우는 자칫 기록자의 임의적인 해석에 의하여 좌우될 수도 있을 것이다.이 규정의 해석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성이 제시될 수 있다. 음운 형태는 발음자의 습관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규칙성에 대해서도 이견(異見)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단어 하나하나7항
미당 서정주의 시를 보다보면 많은 부분에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설화를 변용 한다.그 중 한 수의 일부분을 예로 들어보면 이런 것이 있다.(전략)……비는 것도 효력은 있던 때였지 바다는 잔잔해져 배는 떠나고 거시기만 혼자서 섬에 남았네 먹을 테면 먹어 봐라 힘줄 돋구며 이왕이면 버텨 보자 버티어 섰네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용왕이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우리보다 센 마귀가 우리 식구들 다 잡아먹고, 나와 딸만 겨우 남았다. 그대는 활 잘 쏘는 화랑 아닌가? 우리 다음은 자네 차례니 맘대로 해라 거시기, 거시기, 저 거시기……. (후략)서정주《떠돌이의 詩》, 거시기의 노래이 시는 미당의 제7시집인 《떠돌이의 詩》, 거시기의 노래 의 4, 5연 부분이다. 이 시의 모티브가 되는 설화는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전하는 진성여왕과 거타지 에서의 거타지 설화이다. 이 설화의 주인공은 영웅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서정주가 거시기하는 바람에 거시기같이 평범한 사람으로 설정해서 시를 거시기 했다는 내용이다.서정주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소설, 시 등 문학의 대부분의 근원은 설화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많은 작품들의 소재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설화로부터 시작되는 예가 허다하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많은 타민족의 침략으로 인해 귀중한 문화재가 많이 소실되었고, 수 천년동안 많은 역사문헌이 쓰여 졌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고려 중엽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그 후 충렬왕 때 쓰인 보각국존 일연의 《삼국유사》가 있을 뿐이니 이 두 사적은 우리나라 고대 역사의 쌍벽으로 지칭된다. 특히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정사(正史)라고 불리는 것과는 달리 여러 신이한 설화들도 싣고 있어 야사(夜史)로 불리며 문학적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된다.《삼국유사》는 중국의 고승전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와 승려에 관련된 기록 이외에도 고문서와 민간기록을 많이 인용하여 민족 기원의 원형 보존에 주력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또한, 향가 14수를 수록하여 민족 문화의 주체성을 살리고 있고,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건국했다는 건국 신화를 실어 우리의 자주의식을 강렬히 표방한 신화서 이자 역사서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연의 《삼국유사》는 다분히 유교적인 입장에서 서술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다 높게 평가되고 있다.《삼국유사》의 체제를 살펴보면 제1「왕력편」은 신라, 고구려, 백제, 가락국 등 역대 왕들의 세계와 연대에 관한 기록이고, 제2「기이편」은 고조선 이후의 남북의 여러 부족국가와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에 관한 신이한 사적에 관한 기록이다. 제3부터 제9까지는 모두 불교의 흥포와 승려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3「흥법편」은 불교의 흥기에 관한 것이며, 제4 「탑상편」은 탑과 불상에 관한 기록이다. 제5 「의해편」은 교리에 대한 해석이다. 제6 「신주편」은 신통한 주술에 관한 것이며, 제7 「감통편」은 감응에 대한 것이다. 제8 「피은편」은 속세를 피해 은거한 이야기이며 제9「효선편」은 효도와 선행에 대한 이야기이다.《삼국유사》는 문학적으로는 많은 소재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보아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고대 국가들의 건국신화들은 모두 《삼국유사》로부터 전하니 얼마나 중요하고 귀중한 책인지 알만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요를 비롯해 풍수에 관한 것에서부터 무속에 관한 것, 인문지리와 풍속에 등에 관한 것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속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역사서답지 않게 전설이 많이 실려 있고 민담도 많이 수록되어 꼭 전래동화와 같은 옛날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기이편 하에 보면 돌석암의 유래담이나 뒤의 감통편에서 신앙이 두터운 욱면이 어느 법당에서 집 들보를 뚫고 나갔는데 그 법당에 지금도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다고 기술한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거기에다 이런 신이한 이야기에는 신뢰를 더하기 위해 혜공과 원효대사와의 교제편의 마지막에 '이상은 『향전』이다.' 라고 전거를 제시해 주어 객관적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책의 내용은 역사서에 걸맞게 짤막한 이야기들이 방대하게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위주로 간략하게 감상을 적어 보았다.성씨에 대한 유래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신라의 김씨는 알지가 금 궤짝 에서 나옴에 의해서 김(金)알지가 되어 김씨가 생겼고, 후에 그의 6대손 미추가 왕이 됨으로써 성씨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박혁거세도 박에서 그가 나왔으므로 박(朴)이라는 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지금의 성씨들이 시조들의 탄생설화와도 연관이 있어 흥미로웠다. 이 이야기들도 모두 제2 기이편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다.《삼국유사》를 읽다가 보면 너무나 친숙한 이야기들이 많이 보인다. 흔히 우리가 전래동화라고 해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나름의 정확한 이름으로 거론되어 신뢰성을 주고 있다. 그 내용은 비록 설화에 가까운 신이한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그 중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가 실제로 신라의 48대 경문대왕 이야기로 서술되어 놀랍다. 《삼국유사》를 읽기 전에는 이 이야기가 문헌으로 전하는 설화인지 몰랐다. 이 이야기는 제2 기이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경문대왕에 관한 설화가 당나귀 귀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왕위에 오를 때의 일까지도 함께 서술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혼자 읽다가 생각해본 소견으로는 경문대왕이 뱀과 함께 자고, 범교사라는 중의 충고를 들어 왕이 되고 귀가 당나귀 귀라는 등의 이야기들은 왕자가 아닌 이가 왕이 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민간에서 퍼진 이야기로 생각된다.역시 제2 기이편의 백제 30대 무왕{ 25대 왕 무령왕을 일컫는 것이라는 말이 유력하다. 제24대 동성왕이 신라에 청혼하여 신라에서는 이벌찬 비지의 딸로 시집보낸 일이 있었으며 또 무령왕은 동성왕의 아들이니 이 사실이 하나의 로맨스가 된 것 같다.과 신라의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 서동요라는 이름의 TV드라마로 제작되어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서동(무왕)이 어린시절 신라에서 살았는데 선화공주와 서동과의 관계에 대한 동요를 퍼트려 후에 혼인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이 동요는 4구체 향가로 우리에게는 매우 친근하다. 이렇듯이 천년 전의 책에서 전하고 있는 무왕에 대한 한두 쪽 남짓의 이야기가 오늘날 현대시대 우리의 안방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다니 《삼국유사》 안의 짤막한 이야기들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무궁무진할 수 있겠다.지난 2005년 7월에 무대에 올려졌던 한중합작 대무용극 꿈, 꿈이었으니 를 보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이 이야기의 배경이 《삼국유사》의 제4 탑상편의 낙산의 두 보살인 관음, 정취와 조신 를 모티브로 한 것임을 팜플렛을 통해서 알게 되었었다. 그때는 《삼국유사》를 읽기 전이라서 조신이야기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그 부분을 읽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 인간이 꿈을 통해서 겪게 되는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에서 역시 짧게 차지하는 이 부분이 2시간 남짓의 무용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 깊었다.《삼국유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문학적 자산인 향가에 대한 언급을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왕의 이야기에서 4구체 향가가 잠깐 언급되었었지만, 제8 피은편, 영재가 도적을 만나다 에서 등장하는 우적가 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한다. 서동요 는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의 향가들은 불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듯 보인다. 우적가 역시 지은이가 승려인 영재이기 때문에 불교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도적을 감화시켜 제자로 삼는 등의 소재는 매우 특이하다. 도적들이 그의 노래에 감동하여 비단을 선물하고, 그가 그것을 거절하자 더욱 탄복하여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향가 자체만 보면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뜻을 함축하고 있어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함께 설화가 적혀있어 훨씬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어서 마치 해설서 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