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을 바로 알자 >>1. 북의 국가 목표는 무엇인가?- 저는 군 복무를 할 때 “선군정치”란 단어를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물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학우들도 군대에서 “선군정치”란 단어를 처음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한자어로는 先軍政治, 영어로는 Military First Policy입니다. 선군정치란 군을 최우선시하며, 군을 앞세워 국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입니다. 2004년 이후 김정일 정권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선군정치입니다. 이런 정책에 따라 지금 북한은 국내총생산의 약 1/3이 군대를 위한 비용으로 투입되고 있고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주민들의 생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더욱 특이한 점은 예전과는 달리 군대를 정치를 주도해 나가는 역량으로 새롭게 인식하고 군대에 새로운 혁명의 임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항상 양면적이었던 북의 태도를 잊지 말고 항상 그들의 행동을 주시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발생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만약 발생한다면 그들의 목적을 명확히 알고 반드시 이겨야하기 때문입니다.2. 혁명의 성숙기는 언제인가?- 저는 장군님의 수업을 듣기 한참 전에, 그리고 제가 군대에 복무하기 전 대학에 갓 들어온 때에 멋모르고 선배들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와 국보법 폐지라는 말들을 제 입으로 떠들고 다녔습니다. 제가 군 생활을 마치고 장군님의 수업을 듣고 있는 지금엔 그 당시 철없던 제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만약 국보법이 폐지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바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한반도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모습이 어떨지는 군 복무를 마친 남자들이라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반공의식이 거의 잊혀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군대에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바로 알 수 있지만 현역이 아닌 곳에서 복무한 사람들이나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반공의식을 고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또한 지금의 대학생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쉽게 듣고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지금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조금씩 잊혀 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끔씩 언론 매체에 젊은 사람일수록 통일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고 그냥 지금의 체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3. 북은 계급투쟁을 어떤 식으로 전개하나?- 가난한 자의 있는 자에 대한 투쟁이라는 계급투쟁이라는 단어는 억지스러움이 묻어나는 단어입니다. 열심히 일한만큼 자기의 대가를 받는 것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심지어는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사람들 또한 내가 훨씬 더 많이 일했는데 나보다 일을 덜 한 사람과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남보다 조금 덜 자고 덜 쓰고 덜 먹어서 자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부가 어떤 나라에서는 ‘있는 자’라고 혁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완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절대 완벽의 이념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도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는 공산주의는 몇몇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그 모습을 찾기 힘들게 되었습니다.4. 가공할 북의 군사력- 현재 북한의 군사력과 대남 군사위협은 대략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핵, 생물·화학무기, 단거리 미사일, 장거리탄도미사일), 특수부대 등으로 설명되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김정일정권이 남한의 우월한 경제, 한·미 동맹의 견고성, 이라크에서 보여준 미국의 첨단무기 위력 등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 내부의 혼란 및 동요와 한·미 동맹의 약화가 그들의 군사전략을 공격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약 117만에 달하는 정규군과 5백만을 넘는 예비군대로 구성되어, 세계 제5위를 랭크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상군은 8개의 보병군단, 4개의 기계화군단, 1기갑 군단, 그리고 2개 포병군단으로 구성된다. 해·공군은 9만2천명의 공군력과 1천7백여대의 항공기, 그리고 4만6천여명의 해군력과 800여척의 함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12만 2천여명으로 구성된 세계최대 규모의 특수부대(SOF: Special Operations Force)입니다. 이들은 고도로 훈련되어 있고, 충성심이 강한 조직입니다. 더욱 염려되는 것은 이들의 규모가 최근 증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특히 평양-원산을 잇는 선 이남 지역에 지상군 전력의 70% 이상이 집중배치되고 있어, 언제든지 남한에 대한 기습공격이 가능하다고 알고 잇습니다. 수도권은 물론 한반도전역이 북한군의 집중 포화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론 재래식 무기이기 때문에 성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한 번 공격하고 버리는 일회용 무기로는 손색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수도권 지역에 대한 장사포 위협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1~2개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파키스탄과 공동 핵실험을 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 평가도 있습니다. 또한 핵무기 여러개를 생산할 수 있는 10~12kg의 플루토늄 및 그 생산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2500~5000t의 화학무기와, 생물무기의 경우 탄저균, 천연두등 13종 세균을 보유하고 있어 가히 위협적이라 할 만합니다. 특히,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500여기의 SCUD 단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가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점입니다. 우리 언론에서 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만 언급되고 있으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단거리 미사일의 위협이 더 큰 것 같습니다. 2003년도 실제 북한군사비는 한국군사비의 40%에 달하는 50억 달러였습니다. 이는 북한의 일반 물가·생계 지수를 고려할 때, 엄청난 수준인 것입니다.
공산 혁명(革命)과 학살(虐殺)? 서론- 북한은 항상 화전양면전략을 추구해 왔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항상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평화회담이 진행될 때에 땅굴을 팠었고 2002년 월드컵 때는 잠수함의 도발 등, 그들의 목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혁명을 통한 한반도의 공산화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버릴 바에는 전쟁을 택할 것입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의 목표를 버리는 것은 곧 북한의 붕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장군님께서 걱정하고 계시는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군님을 정말 존경하며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저도 이 글을 읽고 한 걸음 더 발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1) Karl Marx의 전쟁- Karl Marx는 전쟁을 ‘전쟁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이를 강화하며 확대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사회집단 상호간의 무력 투쟁이다’ 라고 정의 했습니다. 즉, 생산수단의 소유를 위한 수단과 방법 및 행위가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계급투쟁은 가난한 자의 있는 자에 대한 투쟁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Karl Marx의 공산주의 이론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2차대전 후에는 전 세계가 이데올로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Karl Marx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면 Karl Marx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외침과 함께 종교소멸론을 주장하며 세계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종교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이다’ (die Kritik der Religion ist die Vorausset-zung alter Kritik)라며 유물사관적 무신론에 입각한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하며 기독교를 박멸코자 한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포이에르 바하(Ludwig Feuerbach)의 무신론적 유물사관에 의거한 심리학적 종교비판과 브르노 바우어(Bruno Bauer), 쾨펜(K.P.Koppen), 쉬트라우스(David Straus) 등의 영향을 받은 칼 마르현의 왕국을 위해 미래적 이상사회론을 제시한 마르크스는 계급과 불평등이 지배하는 사회에 인간, 계급, 민족에 대한 원리적인 계급과 불평등 그리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억압과 착취가 끝날 것이라는 환상적인 사회론을 제시하였습니다.이런 점에서 칼 마르크스는 어느정도 성경이 말하는 원시초대교회를 이용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공산주의 이론을 세우는데도 이들을 교묘하게 조작(造作)해서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칼 마르크스는 기독교를 향하여 종교는 아편이라며 사유재산과 계급대립의 폐지 이후에 종교가 소멸될 것이라며 기독교에 대하여 정면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그의 이와같은 주장은 자본주의로 말미암아 팽배해져 가던 계급과 불평등 사회 그리고 자연주의적 무신론이 확산되어져 가던 당시의 상황에 편승하여 가히 혁명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세계 공산화를 위한 발걸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게 됩니다.2) 월남의 공산화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월남이 공산화 된 이후 지식인, 공무원 등 월남정부에 협조한 사람들은 전부 재교육을 받게 됩니다. 탄압과 차별, 폭정으로 국민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가혹한 육체노동과 전 재산의 국유화, 모든 것들의 배급, 화폐개혁 등으로 이전의 모든 사회 기능을 뒤엎어 버리는 정책들을 단행합니다. 그리고 비인간적인 조치로서 수용소 시설이 있었는데 한 수용소에 역 2000여명 씩 수용하여 학대와 추악한 짓거리를 밥 먹듯이 일삼았으며 의료 시설도 전무하여 수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자유 월남 시절의 사이공 대학생이었다가 1985년 탈출한 한 학생의 수기 중에는 나라가 망한 이유가 적나라하게 나와 있습니다.“ 나라를 망친 이유는 행정관료의 부정부패와 정당간의 극한 대립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산분자에게 관용을 베풀고, 처형을 못하고 감옥에 가두어 오히려 보호를 해주고, 반정부 과격데모를 중지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우리 나라가 공산화된다면 월남이 공산화되고 난 후인 이 모습들보다 일들이 일어났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하루하루 방송되는 뉴스들을 보면서 제가 살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안보불감증’에 빠져있는 사람들,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라는 안이한 마음가짐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에도 우리 나라 국민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여러 나라들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55년 전의 한국전쟁보다는 엄청난 인명, 재산 피해, 그리고 상상하기도 힘든 복구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보도를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우리 국민들이 지키는 것이지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와서 지켜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3) 러시아 혁명 후에는?- 소련이 공산혁명을 일으킨 후에는 국내정치가 안정되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가 2차 대전을 일으켜 소련을 침공함으로서 스탈린으로 하여금 공산혁명의 완성을 결정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스탈린은 혁명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징집하여 자연스레 제거했고 무자비한 처형을 단행했습니다. 5000여명이 넘는 고급장교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처형해버린 것입니다.스탈린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통계가 다르니까 일률적으로 말할 수가 없지만 여하간 그 숫자는 적어도 수백만에서 천만 단위로 헤아리는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 History Channel에서 하는 스탈린 시대에 관한 프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스탈린에게 숙청자 명단이 올라오면 스탈린은 명단에 서명을 하면서 "6천명 더"라고 기입을 하면서 서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KGB에서는 6천명을 더 잡아 넣어서 숙청을 해야 합니다.스탈린이 행한 공업화에 대해서는 소련의 공업화는 농촌 사회의 철저한 희생 아래에서 가능했습니다. 연이은 기근으로 수백만명는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지만 결국 더욱 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불러옵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거해버립니다. 칼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실제로 그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공산화가 되어 버린 나라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 나라 국민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4)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은 중공에서 1966년 5월부터 76년 10월까지 모택동에 의해 계획, 추진된 대규모적인 상층구조의 이념투쟁 및 권력쟁탈 운동으로 그 배경으로는 1956년경부터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대중노선과 공업우선 전문가 우선의 노선 간에 뚜렷한 대립이 나타나기 시작 58년부터 대중노선이 추진되었으나 그 위 복잡한 경로를 거쳐 62년 과도기 투쟁이론으로 정식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주의란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 이르는 과도기이며 게급 투쟁이 존속하고 있다는 생각에 따라 63년부터 농촌의 인민공사에서는 사회주의 교육운동이라는 대중투쟁이 전개되고 중공군 내에서는 모택동사상 학습운동이 예술분야에서는 갖가지 혁신이 때맞춰 일어났습니다.문화대혁명은 1962년 이래 당의 최고지도부 내부에 생기고 있던 내외정책을 둘러싼 대립항쟁의 연장선상에서 모택동의 주도로 발동되었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중국의 현실은 사회주의의 진정한 모습으로부터 일탈되어 있는 것으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당과 국가의 중추기관을 지배하며 혁명대중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택동이 목표로 한 것은 중앙으로부터 지방말단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게 존재하던 유소기, 등소평파의 영향을 일소하여 행정기관, 학교, 기업, 마을조직, 농촌에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고. 이에 의해 과거 수천년 동안 모든 착취계급이 남겨놓은 낡은 사상, 문화, 풍속과 싸울 것을 그는 목표로 하였던 것입니다.문화대혁명은 10년 동안 중공을 혼란에 몰아넣었고, 장기간 대학을 폐쇄하여 교육 과학 기술 등 전문분야의 지도를 으로 피해를 본 부류와 이를 통해 부상한 그룹의 대립문제, 구간부의 복직으로 인한 관료포화 상태 등은 중공의 당면문제로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언론 매체에서는 중국이 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건국이래의 몇 가지 역사문제에 관한 당의 결의를 통하여 문화대혁명을 평가하면서 이는 당 국가 인민 에게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모택동의 극좌적 오류이며 그의 책임이라 규정하였다고 합니다.5) 한국전쟁시에는- 김 일성은 6?25 전쟁시 남한의 청년 40만명을 강제로 징집하고 각 감옥소에 수감되어 있는 우익 반공죄수들을 의용군이라는 명목으로 낙동강전선에 대거 투입하였습니다. 러시아의 스탈린이나 중국의 모택동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혁명에 저해가 되는 인물들을 사전에 자연스럽게 제거하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사상에 맞는 ‘없는 자’ 들 중에서도 특히 불만이 많은 사람을 골라 각종 연맹 위원장에 그들을 임명하였습니다. 소위 그들의 ‘혁명’을 이루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도구였던 셈입니다. 방앗간의 머슴, 이발소의 머리 감아 주던 사람 등을 월북하도록 하여 충분히 교육시킨 후 남파하여 이들을 앞장세워 그 지역의 유지들을 인민재판으라는 이름 하에 제거하도록 했습니다. 정말 어이없게도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귀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진 것입니다. 캄보디아나 러시아, 중국보다는 우리 나라의 이야기가 많이 와 닿는 것이 사실이고 많은 책자들과 영상매체에서 몇 번씩 이런 내용들을 접해보았습니다만 장군님께서 10살의 어린 나이에 인민재판을 눈으로 직접 보셨다니 공산주의자들의 행위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게 위해서는 어떠한 잔인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치 금수와 같은 짓거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공산화는 기존의 모든 기본질서를 철저히 파괴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간접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지입니다.
월남 패망을 다시 생각한다? 서론- 장군님께서 쓰신 ‘월남 패망을 다시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55년 전의 우리 나라의 상황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의 이 시대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강대국과 약소국의 구분이 명확히 되어있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세계 정세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빴던 제 자신을 따끔하게 질책하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저에겐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서 경석 장군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우선 월남이라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와 여러 가지 비슷한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조사해 본 결과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과거로 관료를 선발하는 문치주의 국가는 그 제도의 본고장인 중국을 제외하면 조선과 월남이 대표적인 표본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주변국에서 민족이 소멸당하지 않고 생존한 약소국가였다는 점도 두드러지는 유사점 중의 하나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 나라에서 한 번 성립된 왕조는 그 수명이 500년이었던 것에 반해 월남은 약 110년으로 그 주기가 우리보다 상당히 짧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월남 민족이 우리 민족보다 분열이 더욱 심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지배권에 있다가 식민지를 경험한 것도 비슷하며, 식민지에서 해방될 때 남북의 허리가 잘려 분단된 사실, 그리고 북에는 공산정권, 남에는 자유민주주의정권이 수립된 것 역시 비슷합니다.양측이 무력을 동원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인 사실도 동일한 역사적 패턴입니다. 지역감정이 드센 것, 식민잔재 청산문제로 인한 정통성 논쟁, 각 정치세력 간의 끝없는 분파와 이합집산, 그리고 정쟁을 벌이는 것까지 아주 많은 부분들이 비슷하고 월남전쟁으로 인해 후진국으로 전락한 베트남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 월남과 미국의 내부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1) 월남전쟁은 내전(內戰)이 아니다.-는 승리할 수 있었지만 정작 전쟁에서는 패배한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단 전쟁뿐만이 아닙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던 지 그 일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차후에 일어날 모든 의사결정에 튼튼한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도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기본적이거늘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전쟁에서 사소한 것이라고 해서 홀대했던 것이 연합군이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2) 월남의 적은 누구였나?- 정작 싸워야 할 월맹과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월남정부는 내부의 수많은 적들과의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전쟁은 한 사람의 힘이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피할 수 없을 때는 국가원수에서부터 학생들까지 전국민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군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것처럼 북에 대해서 바로 알고 세계의 정세에 대해서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일 것입니다.3) 월남 지식인과 학생들은 무엇을 했나?- 자기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그 어떠한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지만 월남은 단합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나라의 상황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또한 공산당의 행동조직에 가담해 사회를 어지럽히는 자들 또한 많았습니다. 공부에 전념해 자국을 발전시켜야 할 대학생들은 허황된 공산주의에 빠져 그들의 도서를 읽고 반정부 활동을 수행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1950년의 6,25 전쟁 때는 우리 나라의 수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지원했고 많은 학도병들이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월남은 대학생들의 시위와 학생운동,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주요 인사들의 입장 때문에 월맹에게 패배했지만 우리 월남의 Diem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주의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호 지명은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으며 전 재산은 대나무 침대와 기본적인 생활품들이 전부였습니다. 반면에 Diem 대통령의 월남은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고 많은 정책들 또한 장기적인 안목없이 관리들의 배를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3년 10개월 동안 정권교체가 무려 10번이나 일어났다는 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고 파탄의 길로 치닫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좋은 예입니다. 또한 군인들은 재물을 모을 수 있는 보직을 찾기 위해 뇌물을 바쳤고 싸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가 내리는 모든 명령 또한 그 나라에서는 지켜지지 않은 것입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전쟁을 치르고 있을 당시 백성들에게 해가 되니 보리를 밟지 말고 조심스레 행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을 어기는 자는 참수형에 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말이 놀라 보리를 밟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목을 베어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차마 군주의 목을 벨 수는 없는 노릇이고 조조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직접 베어 자신이 내린 명령을 스스로 따른 것입니다. 이 일화는 월맹과 월남의 지도자들을 판단하고 현재의 지도자, 그리고 앞으로의 리더가 될 여러 학우들에게도 많은 교훈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5) 미국과 월남의 국민의지는?- 월남국민은 전쟁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제마저도 미국에 맡겨버리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자기들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인데 그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국민들은 이미 전쟁에 패배했다는 신호입니다. 국가는 그 나라의 국민 스스로가 지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6) 힘의 중심이 된 언론은?- 전쟁의 목표는 승리입니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그런 전쟁사진을 보 대한 전국민적인 촛불시위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7) 위험에 대한 극복노력은?- 전쟁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 편견과 선입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전쟁상대국의 위협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월남전쟁에서 미국은 자국의 많은 군인들이 죽거나 다치면서 국내 여론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휴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일에는 여러 가지 일에 몰두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한 가지, 승리만을 위해 모두가 하나되어 노력을 해야합니다.8) 국내 조건은?- 월남은 지식의 수준이 낮은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택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가 가난한 나라에서는 사용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월남전쟁에서는 이것 때문에 전쟁을 수행하는데 많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국가적인 철저한 통제와 질서확립, 그리고 월남국민 속에서 섞여 있는 친공분자들을 통제하고 무력화시키는데 많은 결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월맹은 동원령을 엄격히 이행함으로써 군기질서를 확립하고 전체주의적 사상과 경찰국가의 통치 방식을 통하여 국내 질서와 평온을 유지함으로써 남과 북이 대조적인 현상을 보였습니다. 전쟁은 군사력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국가 질서와 사회의 안녕 또한 전쟁의 보이지 않는 승리의 중요한 요소입니다.9) 공포의 통제와 공황의 현상- 제가 비록 전쟁을 몸소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영화나 책으로 간접경험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온 사방에서의 굉음과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 거리의 수많은 시체들, 혼란스러워하는 시민들, 이 모든 것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전쟁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중의 국가의 질서는 승리의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사회가 평온한 때의 모습이지 전쟁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 전쟁원칙에서 본 패전의 원인1) 전략과 전술의 개념의 적용은?- 월맹은 모 택동월남 정부가 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대 게릴라 전략은 월맹의 궁극적인 목표인 월남의 공산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전략적인 활동 중의 한 부분인 전술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큰 착오였습니다. 이는 적이 월남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한 결과였으며 전쟁의 개념을 월남만으로 한정지어 버렸습니다. 적이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전술을 쓰는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의 기본적인 출발점입니다. 미국과 월남 정부는 그 과정을 충실히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월맹의 본토 침공 한 번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월남의 게릴라만을 상대하다가 휴전하고 패배의 오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2) 목표선정은 적절했나?- 군인은 싸움을 하는 사람입니다. 군사적인 목표가 아닌 다른 목표는 직접하기가 힘듭니다. 월남의 경우 주월미군이 전쟁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인 부분까지 도움을 주어야 했으므로 그것은 노력과 집중의 낭비를 가져왔으며 자신들의 본래 임무인 군사작전마저도 등한시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목표는 두 번째의 목표들입니다. 가장 큰 목표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한 월남의 경우에는 전쟁은 미군에게 맡기더라도 월남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월남 정부가 나서서 정치, 경제적인 계획을 수립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3) 공세의 원칙은 잘 적용되었나?- 장군님의 글 중에 공격전투는 결정적인 목표에 지향되어야 하며, 행동의 자유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방어시에도 주도권을 획득하고 공세행동으로 결정적인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말이 저에게 크게 와 닿았습니다. 비단 전쟁 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이루고자하는 것들 모두가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면 1년이고 2년이고 그 여자를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사랑을 얻을 수가 없고 운동경기에서도 시종일관 수비적인 모습만으로는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장군님께서 수업시간 중에 하신 말씀 중에 성공하려면 적절한 아부는 필수다라는 말 또한 이와 일맥상통 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