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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조선과 고구려 책을 읽고 느낀 점, 비판할 논점, 평가, 질문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기술하시오, 본인의 생각을 쓰시오.
    1. 필자는 과학적인 역사와 비과학적인 역사를 어떻게 구별하는가?비과학적인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 객관적인 사실. 즉, 사실로서의 역사를 역사가가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관이나 편견이 개입되어 기록되어진 역사. 다시 말해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가 지녀야 할 객관성을 상실한 채 위조되고 날조되어진 역사를 필자는 비과학적인 역사라 말하고 있다.과학적인 역사는 이러한 비과학적인 역사를 문헌자료 비교, 유물이나 유적, 고고학적 자료를 참조하는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 분석과정을 통해 오늘 날의 역사학자들이 재구성한 역사를 말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편견이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은 채 과학적인 역사를 정립하려는 역사학자들의 끝없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2. 필자는 ‘민족’, ‘국민’, ‘인종’을 각각 어떻게 정의하는가?민족이란 ethnicity 또는 ethnic group 에 상응하는 개념으로서 문화, 생활지역, 민족의식등을 주요한 지표로 삼아 구분되는 동질적인 인간집단 이라고 규정하였다. 우리가 흔히 단일민족이라는 말처럼 혈연적인 상관관계 속에서 민족이란 의미를 부여하는데 필자는 이런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의 시각으로서 민족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민족이란 언어, 종교, 관습 등의 객관적 지표와 더불어 독자적 정체성이라는 민족의식을 지닌 인간집단이다.국민이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주민의 개념으로서 정치, 경제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국가를 전제로 형성된 개념으로서 한나라에 다양한 민족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들은 같은 민족은 될 수 없지만 그 나라의 국민인 것이다.인종은 인간의 체질적 상이성에 기초한 분류개념으로서 영어의 ‘race'에 해당한다. 흔히 피부색, 눈과 두발의 색깔과 형태 등 인간의 체질적 특성을 이용해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등으로 구분 짓는 것을 말한다. 즉, 혈연적, 체질적 특징을 지표로 인간집단을 구분지은 것이다.3. 부족사회와 군장사회의 정의는? 군장사서 사냥과 목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유목민들을 조선시대 초기 특히 세종조에 신백정이라 불렀으며, 유목민들이 이동생활로 인해 발달했던 가벼운 고리 제품은 나중에 유목민 출신의 백정들이 도살업과 고리제품 만드는 일에 종사하게 된 이유를 뒷받침 해 준다. 「고려사」와「최충헌전」, 「세조실록」, 「삼국사기」 등 고증을 살펴보아도 백정은 북방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유목민집단의 후예임이 틀림없다.6. 우리 고대사를 논하면서 왜 브리튼 섬의 민족 통합 역사를 논하는가?먼서 브리튼 섬의 민족 통합과정을 살펴보면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는 원래부터 서로 다른 민족으로 출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또한 각각의 다양한 민족들이 동화과정을 밟아 형성된 것이다. 이렇듯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는 복잡하고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오랜 시간 동화과정을 밟아 지금의 영국 국민이 됐다. 그러한 문화적 동화과정을 통하여 국민의식이 굳어지게 되는 것을 보며 문화적인 통합이 완전히 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한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들이 국민의식을 가질 수 있음을 영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브리튼 섬의 민족 통합 역사를 우리 고대사를 논하면서 거론한 이유는 그들은 역사를 기술하는 데 민족과 국민을 결코 혼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각자의 민족성을 조금은 가지면서 잉글랜드인, 웨일스인, 스코틀랜드인 모두가 영국이라는 정치적 통합체의 주민이라는 점에서 영국의 국민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민족들이 한반도에 들어온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뿐더러 외부에서 한반도로 유입한 민족들이 오랜 과정을 걸쳐 오늘날의 한민족으로 형성된 과정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국사를 보면서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브리튼 섬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더 많이 동질적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우리도 한반도 국민 형성 과정을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자세를 기를 필요가 있다.7. “단군조선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다. 일찍이 황하유역에서 고대문명이 탄생하였고, 황하문명의 발상지인 황화유역에서는 일찍이 민족 간의 통합이 진행된 반면에 황하유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다양한 민족들이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에 황하유역의 통합된 민족을 한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주변의 다양한 민족들을 동화시켜 갔고 민족적 세력 범위도 넓혀갔다. 요동반도와 한반도는 황하문명의 주변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당연히 황하문명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또한 황하문명권으로부터 지배 민족의 유입이 있었을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우리는 이러한 대전제에 동의하면서도 “주의 무왕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기록을 ‘과학적인 역사’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한다. 그래서 중?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에 기자조선의 내용이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아시아 고대사를 논할 때 한국인과 중국인, 한국인과 일본인 대결구도를 너무나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다. 허나 그러한 대결구도를 고대사에 적용하는 것은 ‘과학적인 역사’ 탐구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뿐이다.10. 위씨조선을 건국한 위만은 중국인인가 아니면 한국인인가? 왜 그런가?‘위씨조선을 건국한 위만은 중국인인가 아니면 한국인인가?’ 라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필자가 말했듯이 중국인이다 한국인이다 하는 것은 후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기록에 의해서 볼 때에도, 위만은 한족이 아니라 연인이였다. 어떤 국사학자들은 위만이라는 인물이 상투를 틀고 조선옷을 입었다는 점, 국호를 여전히 조선이라고 했다는 점 등을 내세워 위씨조선을 건국한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역사 서술이다. 기원전의 한반도에는 다수의 민족들이 살고 있었고, 고조선 사람들은 대동강 유역 혹은 요동 지방에 살고 있었던 하나의 민족에 불과했었다. 한민족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과 외부에 유입된 사람들이 오랜 시간 통합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지. 기원전에 이미 형성되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도 이와 마찬모습에서도 올바른 개념의 역사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13. 한제국(漢帝國)은 왜 한강 이남에 군헌을 설치하지 못하였는가?보통 국사학자들은 목지국에서 그 답을 찾고 있는데, 한사군을 설치할 당시에 한강 이남에목지국이 있었는데, 이 목지국 때문에 한사군의 설치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이목지국은 마한 54개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맹주국이었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목지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맹체를 진국으로 보고, 이 진국은 낙랑이라는 한의 식민지가 갖는 경제력이나 문화력에 의하여 해체되었고 독립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다고 보고 있다.14. 필자는 고구려족과 고구려인(고구려 사람)이 어떻게 다르다고 주장하는가?책에서 고구려족과 고구려인을 구분하는데, 고구려족은 지배계층, 즉 개국공신으로 한 민족으로 본다. 하지만 고구려인을 국가를 세우고 같은 문화를 형성하여 동화되어 같은 민족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15.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나타난 “동이족의 분포범위”의 문제점은?오늘날 고조선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우리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였기 때문이 아니다. 한사군이 설치되기 이전에 만주와 한반도에는 다수의 민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러한 민족들의 대부분은 넓은 의미로 동이족에 속하는 민족들이었지만, 그 민족들은 결코 단일 민족이 아니었다.당시에는 동이족에 속하는 민족이 수십 혹은 수백여 민족에 달했기 때문에 동이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강역이 만주에서 아무리 넓었다고 해도 고조선의 남변이 압록강이었다면, 고조선은 우리 민족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실체가 될지도 모른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동이를 고대의 한민족으로 오해를 부추기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을 설명하는 부분에 ‘동이족의 분포 지역’과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함께 보여주는 지도를 게재하고 있다. 이 지도에서는 동이족이 한반도와 그 주변의 만주 일대에서 산동 반도까지 대단히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음을 나타내 올바르게 이해할 수는 없다. 3가지의 이유를 들어 고구려를 우리 한민족이 세운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첫째: 통일신라는 고구려의 일부 영역을 정복하여 통합하였다.둘째: 고구려를 구성하던 마한계 사람들만 통일신라에 편입되고 나머지 민족들은 편입되지 못하였다.셋째: 우리 한민족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형성되어 있던 민족이 아니었다.19. 왕건이 북방의 여진족을 회유하기 위해 앞세운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건국하는데 여진족들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이러한 여진족들을 통합하기 위해 왕건이 앞세운 이데올로기는 ‘너(평양의 여진족)’와 ‘내(개성의 왕건세력)’가 다함께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이다. 왕건이 이 이데올로기를 앞세움으로써 여진족을 회유하여 평양과 그 일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또한 실질적으로 북방의 여진족으로부터 군사적인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고대 건국의 주역들은 북방의 여진족을 통합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함께 고구려의 후예이다”라는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이를 적절히 이용하였다. 또한 이런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고 정당화시키기 위해,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명조차도 고려라고 칭하였던 것이다.20. 발해는 우리 한민족이 세운 국가인가? 대조영은 어떤 인물인가?근래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발해조차도 우리 민족이 주도적으로 건국하였다고 주장하여, 통일신라와 발해의 시대를 남북국시대로 지칭하기도 한다. 발해 사람들은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자처하였다, 통일 신라 사람들 또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발해는 고구려의 장군 출신인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들이 발해를 세워 고구려를 계승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 국사학자들은 발해가 우리 한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통일신라 위주의 역사 인식을 극복하고 발해와 통일신라 모두를 균형 있게 취급하기 우해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지만 발해는 여진족의 국가였음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민족이 다.
    독후감/창작| 2007.10.11| 10페이지| 3,000원| 조회(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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