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의 공간에서 흐름의 공간으로.. 감상문‘벨의 패러독스(Bell’s paradox)’에서 정보통신과 공간간에 존재하는 복잡성이 이미 전화시대부터 있었음을 말해주듯이 정보통신과 산업입지와의 관계는 간단하지 않다. 일부 미래학자들이 인터넷의 도래가 ‘도시의 소멸(death of cities)’, 또는 ‘거리의 소멸(death of distance)’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와는 상반되거나 아니면 매우복합적인 것이 사실이다.중요한 것은 인간이나 조직이 실제로 접근 가능한 정보를 자신 혹은 사회나 환경의 이익을위해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있다. 개인이나 조직, 사회 혹은 제도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실질적인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정보시대의 공간현상을 보다 역동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할 것이다.정보통신기술과 공간과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술결정론적 관점을 피하고적용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하기에 앞서 단순반복업무, 부서간 중복업무, 병목현상, 과도하게 세분화된 업무관행 등 기업이 기존의 프로세스를 재설계할 때, 기업공간의 변화도 나타난다는 것이다.정보통신기술의 적용이 어떠한 공간을 낳게 될 것인가에 대한 접근도 기존의 산업조직 및기업조직이 당면해 있는 잠재수요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기업, 특히 대기업의 조직구조는확장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물리적 공간에 기반한 ‘공간적 고착(spatial fixity)’으로밖에대응할 수 없다. 생산단위인 공장은 물론 특히 유통을 위한 지사나 사무소 등 현대사회를구성하는 대부분의 경제단위들이 ‘배치의 공간(space of location)’이라는 형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가전기업들이 도입한 콜센터는 서울전역에서 발생하는 서비스접수를 집중적으로 처리하는 곳으로서, 소비자의 주소를 파악하여 인근지역에 대기중인 기사에게 업무를 할당한다. 콜센터의 설립은 정보통신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공간분업이 나타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온라인으로 거리를 초월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접수업무는 콜센터로 집중되고, 서비스업무는 ‘흐름의 공간’의 한 면을 보여준다.분리된 본사 - 공장, 본사 - 지사, 공장 - 연구소 등이 정보통신 네트워크로 연결될 경우업무의 흐름이 입지를 초월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기능단위간의 통합은 최근 시장환경의 급변과 경쟁의 심화로 기업의 신속한 대응능력이 강조됨에 따라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공간의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이 주어진 공간을 보다 차별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공간분업이 더욱 강화될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공간분업도 나타나게 된다. 정보통신에 기반한 기능의 통합은 새로운 기능이 분화되고 그들이 ‘흐름의 공간’ 위에서 보다 적합한 입지로 재배치되는 결과를 낳게 한다.상기한 논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논리와 교훈은 무엇인가?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비즈니스, 그리고 온라인 콘텐츠의 발달은 어떠한 공간변화를 낳을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우리의 공간과 지역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첫째는 전자적 공간에서 유통되는 상류(정보, 디지털 제품, 거래처리)와 물리적 공간에서 유통되는 물류의 분리와 보완관계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물류와는 별개로 수행할 수 있는 행위가 많아질수록 대도시 주변의 공간은 보다 다양한 활용의 기회를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둘째, 거리의 장벽과 공간의 마찰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강화된다는 점이다. 정보통신기술로 이동시킬 수 없는 공간적 특성이 정보사회의 공간수요 및 기술환경과 결합할 때, 지금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역들이 새로운 기능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셋째, 사이버 공간과 현실공간간의 상호보완성이다. 사이버 공간은 현실공간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며, 따라서 그곳에서의 공간행위는 전혀 다른 양상을 지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이버 상에서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지역 등 전통공동체가 여기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식정보화와 산업입지와의 관계는 단순한 기술적 가능성을 넘어서는 역사적, 조직적 관점
영화 ‘SISTER ACT’과 목 명 : 도시계획이론담당교수 : 이주연 교수님학 과 : 도시공학과학 번 : B013140성 명 : 정 민 재제 출 일 : 2012. 12. 13영화소개도시의 죽음살기좋은 도시살고싶은 도시1. 영화소개시스터 액트 (1992) Sister Act요약정보뮤지컬, 코미디|미국|100분|개봉 1993-05-01감독에밀 아돌리노출연우피 골드버그(들로리스/클라렌스 수녀역)매기 스미스 (원장수녀님 역)카지노에서 무명가수로 일하던 우피 골드버그(들로리스 역)가 우연히 살해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목격자 보호 차원에서 범인의 재판일까지 수녀원에 숨어 살기로 합니다.수녀원에서 지내는 동안 성가대 일을 하게되고 엉망진창이던 상가대를 교육시켜 노래를 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전의 성가 방식을 대중들에게 좀더 쉽에 다가설수 있도록 바꿨습니다.말썽 부리는 들로리스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원장 수녀님이지만, 결국 위기의 순간에 들로리스를 구해 줍니다. 결국 범인도 체포하고 수녀원은 흥하게 된다는 훈훈한 내용입니다.이 영화에서 제가 주목한 점은 바로 들로리스가 슬럼가에 위치한 수녀원에 들어가서 수녀원 사람들을 설득하여 슬럼가 주민들과 소통을 하고 그 지역을 바꾸게 된다는 점입니다.철문으로 막아놨던 수녀원의 입구를 부수고, 벽화그리기 거리환경을 개선 하기위한 모금활동, 주민들과 함께 소통을 하면서 한사람이, 지역단체가 그 마을, 도시를 바꾸는 활동을을 보여줍니다.결국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모금행사와 언론에도 소개가 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영화관련 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j5hOxjrBtEA&feature=fvwrel2. 도시의 죽음도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고, 사람이 도시를 만듭니다.해당 지역을 이용하는 인간의 행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처참할 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St. Louis의 Pruitt-Igoe 라는 주거단지 계획이 있었습니다.Pruitt-Igoe-준공년도 : 1956.-단위주거 수 : 2,870-거주인원 : 12,000 명-철거일시 : 1972.3.16Pruitt-Igoe는 St. Louis Missuri에서 1950년대 초에 건축된 대규모 공공주택건설 프로젝트였습니다. 그것은 전후세대의 선두 건축가 르 꼬르뷔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고 Minoru Yamasaki(WTC설계 책임자)를 포함한 여러 유명한 건축가들에 의한 디자인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거의 60에이커 정도의 장소에 전체 2800여세대의 11층, 33개동의 건물로 구성되었습니다.Pruitt-Igoe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추구안에서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용가능한 임차료 보조금을 지급하는 아파트를 만드는 정부개입의 형태를 추구하는 모더니스트 원칙에 따른 건축디자인의 조합이었습니다.The new housing development next to the slums in the 1950s.서민을 위한 주택단지계획이고 계획당시 이슈화 되었지만 오픈 후 곳곳에서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엘리베이터는 고장났고 수리되지 않았습니다.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적절히 모니터되지 못한 복도나 계단에서 놀다가 다쳤습니다.범죄는 강도들이 계속 숨을 수 있게 허락된 큰 규모의 디자인에 기인해서 거주자들을 공포에 떨게하기 시작했습니다.사람들은 친구들과 이웃으로부터의 고립을 불평했습니다.임차료 보조금을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픈한지 짧은 5년 안에 점유율은 거의 기울었습니다.1970년까지 건물의 공실율은 50% 이상에 다다랐습니다.이 주택단지가 이렇게 되기까지 대표적인 몇 가지 문제점들로는이용자의 생활패턴이 반영되지 않은 계획.정부와 지자체의 관리 소홀.‘깨진유리창 효과’로 인한 범죄충돌유발 등이 있습니다.결과해체됨.http://www.pruitt-igoe.com3. 살기좋은 도시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곳인가 생각해 봅니다.Maslow의 인간 욕구 5단계 중 안전의 욕구는 도시계획가로서 해결해 주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이는 도시 환경설계를 통해서 충분히 해결 가능한 부분입니다.▷ 범죄 충동 감소시키는 푸른 가로등일본 미야기현에 설치된 푸른 가로등 (사진출처 : panoramio)푸른색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2000년 영국에서 경관 미화용으로 처음 설치된 푸른 가로등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치안 대책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 2005년 나라현에서 이 가로등을 처음 설치한 이래 시마네현과 히로시마현, 시즈오카현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파급되었습니다.▷ 어둡고 위험한 지하주차장은 이제 그만!필로티 설계의 예 (사진출처 : 조인스랜드)어둡고 인적 드문 지하주차장은 여성이나 노약자에게 매우 위험한 공간입니다. 따라서 다른 장소보다 조명을 많이 설치해 최대한 밝게 만들고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곳곳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에는 지하 대신 1층에 주차장이나 주민공동시설을 만들고 2-3층부터 주거공간으로 만드는 필로티(pilotis) 설계 방식도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동시설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단지 중앙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사진출처: 부동산뱅크)몇 년 전 온 국민을 경악케 했던 조두순 사건은 아동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놀이터 등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을 개방된 장소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그 근처를 지나다니는 주민들에 의해 자연적으로 감시가 이루어짐으로써 범죄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몹시 불편한 장소가 되고 설사 범죄가 일어나더라도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구석진 장소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라꽃과 나무는 환경을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이고 밝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와 관련된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항상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에 꽃이 핀 화분 몇 개를 놔뒀더니 그 이후론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범법 행위가 자주 일어나는 장소가 있다면 그 곳에 꽃밭을 만들거나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아름답고 안전한 도시 조경의 예 (사진출처: SPARC Online)가로수의 경우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이까지 가지치기를 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개방적인 환경을 만들어 범죄자가 무성한 나무 수풀 뒤에 숨어 범죄를 저지를 수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한국전통민가의 평면유형 분류에 관하여1. 전통민가의 뜻2. 지역을 중심으로 구분한 민가형 분류2.1. 이와스키의 분류2.2. 노무라의 분류2.3. 이영택의 분류2.4. 장보웅의 구분류3. 평면을 중심으로 구분한 민가형 분류3.1. 주남철 교수에 의한 분류3.2. 장보웅 교수에 의한 분류3.3. 김홍식 교수에 의한 분류4. 남부지방 전통주거의 평면유형4.1. 일반형4.2. 중앙부엌형4.3. 남동해안형5. 소 결5.1. 시대성5.2. 지역성5.3. 계층성1. 전통민가의 뜻한국의 민가(전통 살림집)는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우리에게 물려준 전통이 담겨진 민중의 주택을 의미한다. 민가를 잘 분석해 보면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의 풍토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우리 조상들이 장기간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 풍토에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는 형태와 구조의 민가를 우리에게 물려주었음을 알 수 있다.민가는 어느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경우보다는 민중문화의 확산 결과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민가를 통해서 그 확산 경로와 분포도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비해서 민가가 지역적으로 비교적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음은 한국의 반도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민가는 민중의 건축 문화이며,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전통민가를 연구함에 있어. 우선 그 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민가의 민(民)은 을 일컫고, 가(家)는 을 말한다. 따라서 민가란 곧 을 말하며 이는 궁궐(宮闕), 관아(官衙), 사찰(寺刹) 등의 공적인 건축공간과는 다른 사적인 건축공간으로서 위로는 공경대부로부터 아래로는 천민에 이르기까지 을 뜻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헌에 라는 말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것으로서, 이 말이 최초로 문헌상에 나타나는 것은 『三國史記』「百濟本記」5 법왕 때의 기록으로 추정되고 있다.흔히들 민가라고 하면 초가삼간(草家三間)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는 무척 막연한 의미이다. 또한 주거건축을 지.1 중부형(中部型) : 기본형은 ㄴ자형이며, 가옥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ㄷ자형 또는 口자 형으로 된다. 대청이 있는 것이 중부형의 특징이다.2 남부형(南部型) : 기본형은 一자형이며, 二자형·ㄴ자형도 있다. 중부 이북의 가옥이 한 랭 기후에 적응하는 가옥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비해서 남부형은 온난한 기후에 적당 한 개방적 가옥 구조이다. 일반적으로 툇마루가 전면에 있다.3 관서형(關西型) : 一자형이 과반수이고 ㄴ자형, ㄷ자형도 있다.4 관북형(關北型) : 기본형은 田자형이다.{「민가형의 분류(장보웅, 1974년)」이영택씨의 분류는 조사 지역의 수와 자료가 부족하여 이와쓰키의 분류보다도 많은 결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에 중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는 이씨의 분류가 많이 채택되었다. 남부형에 제주도형을 포함시킨 것은 잘못된 점이다. 관북형의 분포가 남한계가 강원도의 중간으로 된 것은 현지 조사를 하지 않은데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전자형(田字型)은 동해안을 따라서 경상북도를 중부 해안까지 분포되어 있다.2.4. 장보웅의 구분류(張保雄, 1974년)한국의 민가를 종래와는 달리 산지형 민가와 평야형 민가 및 도서형 민가로 크게 3분류하였다.1 산지형(山地型) 민가 : 대체로 한국의 북동부 산 지, 즉 함경남북도·평안북도 압록강 연안 산지, 강원도 동부,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양사면 지역 에 분포되어 있다. 과거의 화전민 분포 지역과 일치하고 있다. 북선형 또는 관북형이란 용어 대 신에 산지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분포 지 역이 대부분 산지이기 때문이다. 평면은 겹집의 밭전자형(田字型)이며, 직가·곡가의 구분도 했 다. 산지형의 민가는 혹한의 겨울을 지내기 편리 하게 만들어진 폐쇄적인 가옥 구조이다.2 평야형(平野型) 민가 : 분포 지역은 한반도의 남 서부 평야 지대이다. 민가의 평면은 홑집의 一자 형·ㄴ자형·口자형·ㄷ자형·二자형 등이 있다. 평야형을 다시 3분류 하여 관서형·중부형·남부형으로 구분하였다.3 도서형(島嶼型) 민가 : 제주도형 민가가 여기에工字型) 평면을 이루고 있다.3.1.9 전자(田字)집밭 전자(田) 모양의 평면을 이룬 집으로 함경도 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이들 앞뒤에 방들을 배치, 열 손실을 적게 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겹집이라고도 한다. 또 명칭도 일정기(日政期) 일인에 의하여 붙여진 것이며, 이것은 생산을 뜻하며 길상(吉祥)과 관계된 것이 아니고 전술한 대로 추운 지방의 자연환경에 연유된 것이다.3.1.10 홑집이 형은 각실들이 한 줄로 연이어 있고 겹집모양, 앞뒤로 겹쳐져 있지 않은 집으로 평안도 집방과 경상도, 전라도 지방 등에 널리 분포된 것이며 또 서울의 ㄱ자집도 홑집이 많다.3.1.11 겹집일명 양통집이라고도 하는데 함경도 지방에 널리 분포된 전자(田字)집 모양으로, 실들이 앞뒤로 붙어 있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양통집을 한 용마루 아래 방들이 두 줄로 배치된 집을 일컫고, 겹집은 부엌을 상하로 나누어 정지방을 두거나 건넌방을 상하로 나누는집으로 한 용마루 아래 방이 두 줄과 한 줄로 배치된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황철산, 「우리나라 과거주택의 유행과 그 형성발전」, 고고민속 3호, 1965.김홍식, 『韓國의 民家』, (서울:한길사), 1992.이 형은 강원도 등 전국적으로 많이 나타난다.{「보은 선씨집 工자 평면」3.2 장보웅 교수에 의한 분류{10) 張保雄, 『韓國民家의 地域的 展開』普晉齋, 1996.3.2.1 겹집형 민가의 특징과 분포지역한국형 민가는 대들보 아래에 방을 1렬로 배치한 홑집형 민가와 2열로 배치한 겹집형 민가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를 편통식(片通式) 민가, 후자를 양통식(兩通式) 민가라 부르기도 한다. 겹집형 민가의 분포 지역은 한반도 동북 지방이다. 즉 관북지방, 평안남·북도의 압록강 연안의 산지, 강원도 동부의 태백산맥 양사면, 경상북도의 중부 지방에까지 분포하고 있다. 대체로 과거의 화전 경작지대와 일치한다.겹집형 민가와 홑집형 민가가 접촉하는 경계 지대에는 겹집형이 점차로 홑집형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홑집형 분포 지상방이 위치한다. 상방은 대부분 판자를 깐 판상으로 되어 있으나, 판자를 깔지 않은 경우에도 상방이라 부른다.제주도의 민가는 원래 토좌식(土坐式) 주거로서, 흙바닥의 상방이었으나 후에 판자를 깔게 되었다. 상방의 기능은 다양하다. 즉 조상의 제사, 가족의 집회, 여름의 침소, 접객, 식당 등으로 이용된다..구둘(온돌방) : 제주도에서는 온돌의 설비가 없는 상방·고팡 등의 공간을 방이라 부르고, 온돌의 설비가 있는 공간을 구둘 이라 부른다. 즉 방 과 구둘 을 구별해서 호칭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혼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제주도의 온돌은 육지의 것과 비교하면, 퇴화(退化)한 상태라기보다는 미발달의 상태에 있다. 구둘 고래의 모양은 중앙에 넓은 고래, 그 양 옆으로 4-5개의 작은 고래를 만들었고 아궁이에서 중앙 고래에다 건마분(乾馬糞)·건우분(乾牛糞)·고시락을 깊숙히 밀어넣고, 입구에다 불을 붙인 다음, 돌로 막아 두면 밤새 연소되어, 제주도의 겨울 기온에 적당한 온도가 구둘에서 유지된다. 이러한 온돌의 구조와 연로로 보아 육지부의 난방 방법과 다른 유목민 난방법이라 할 수 있다..고팡(고방) : 주로 곡류, 두류, 유채 등을 담은 항아리를 넣어 두는 수장공간(收藏空間)이다. 바닥은 지면보다 높은 토상이며, 온돌의 설비는 없고, 부농의 경우는 판상(板床)으로 된 경우도 있다. 벽은 석벽 내부에 흙을 바른 정도이며. 1-2개의 채광용, 환기용의 창문이 있다. 고팡의 넓이는 대개 1.8m×3m 정도이다.제주도 민가의 대지는 그 형이 일정치 않고 불규칙한 것이 특색이다. 대지내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은 안끄리(안채)와 부속 건물로서 바끄리(바깥채)·모커리(안끄리와 바끄리 사이에 놓인 건물)·이문끄리(대문간) 등이다. 건물 배치의 형은 마당의 한 변에 안끄리만 있을 때는 一자형이 되며, 안끄리와 모커리가 직각을 이룰 때에는 분리된 ㄱ자형이 된다. 마당의 3변에 안끄리, 바끄리, 양모커리가 배치될 때는 분리된 口자형이 된다. 안끄리와 바끄리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칭히 마루라면 판자를 깐 방을 생각하나 판자가 보급되기 전에는 흙을 돋아서 만든 방의 경우에도 그 기능에 의해서 마리 라 불렸다.{「중앙 부엌형 민가(전남 완도군 청산도」.정지 : 정지는 큰방과 모방 사이에 위치하며, 두 방의 아궁이가 정지에 있기 때문에 불지피기에 편리하다. 조왕신을 모시기 위해 큰방쪽 벽의 중간에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정화수를 떠 놓은 사발이나 종지를 놓아 둔다..큰방 : 큰방은 정지와 마루의 중간에 있는 방이다. 가족 중에서 가장 연로한 부부가 큰방을 사용한다. 즉 조부모가 생존해 있으면 생활 능력이 없더라도 큰방을 차지한다. 또한 조부나 조모 중 어느 한 편만 생존해도 계속해서 큰방을 사용하고, 조부모가 모두 사망했을 경우에만 다음 세대의 부부가 큰방으로 이전할 수 있다.{「口자형 민가(경기도 강화군 송해면)」.모방 :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2) 곡가형 민가곡가형(曲家型) 민가는 ㄴ자형이 기본형이며, 여기에 부속 건물이 부가되어 ㄷ·口·「」자형을 형성한다. 곡가형은 멸악 산맥 이남의 황해도 남부와 경기도, 강원도의 서변부, 차령 산맥 이북의 충청남·북도 지방에 분포한다. 「」자형은 강화도에 많다.안방·대청·건넌방으로 배열된 직가의 좌측에는 앞쪽으로 부엌이 돌출하여 ㄱ자형을 형성한다. 중국에서도 양쯔강 하류의 양단에 위치하는 장쑤성과 저장성에 경기지방의 ㄱ자형 구조와 같은 민가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또 대청, 대문 등의 용어는 중국식 표현이다. 원래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에는 홑집의 직가형 민가가 분포되어 있었으나, 중국의 양쯔강 하류 지역으로부터 곡가형의 민가가 서울에 전파되어 그것이 경기 지방으로 확산되어 현재와 같이 홑집 곡가형을 남과 북으로 분리시키는 결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ㄴ자형에는 건물의 맞은편을 담으로 둘러싼 폐쇄형과 담이 없는 개방형이 있다. 전자는 도시에 많고 후자는 농촌에서만 볼 수 있다. ㄷ자형과 口자형도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 많고 농촌에서는 중농 이상의 농가에 많은 형태이다.{「ㄷ자형 민가(하였다.
목차머리말 ……………………………………………………2Ⅰ. 조선시대 주택의 형성1-1 자연환경1) 지형적 특성…………………………………………22)기후적 특성………………………………………… 21-2 사회 문화 환경1)유교사상………………………………………………32)생활문화………………………………………………3Ⅱ. 조선시대 주택의 공간 배치1)형태에 따른 분류……………………………………42)생활 문화에 의한 공간배치……………………… 43)가족관계와 공간………………………………………5Ⅲ. 현대 주택의 형성3-1 도시형 한옥의 등장1)도시형 한옥의 출현…………………………………62)도시형 한옥의 주거사적 의미…………………… 63-2 해방과 도시화1)해방이후 도시의 주거상황………………………… 72)아파트형식의 도입과 정착………………………… 73-3 아파트 주거문화의 정착1) 주택문제의 발생배경……………………………… 72)아파트형식의 도입과 정착………………………… 83) 아파트 주거문화의 영향……………………………8Ⅳ. 현대주택의 상황과 문제1) 바뀌어진 전통 주거관념………………………… 92) 사랑과 마당…………………………………………93) 생활을 표현하는 주택…………………………… 9어느 나라에서나 원시시대의 주택은 매우 단순한 형태로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양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주택은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또는 종교적 활동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발전되어 각 나라마다 또는 지역에 따라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주택이 형성되기까지는 자연과 사회문화 환경, 사회구성원들의 이념과 가치, 생활을 담는 그릇으로서 그 사회에 소속된 집단의 역사적 경험과 전총을 반영하는 동시에 생활 문화의 총체적인 산물인것이다.이와같이 주택은 지형, 기후 등의 자연환경과 사상, 생활 문화 등의 인문 사회 환경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 예로 전통주택의 경우에는 대가족 제도와 남녀의 유별 등으로 인한 주택이 형성되고 현대주택은 서양적인 면들이 많고 핵가족화와 사회에서 다양한 시설들을 분리해 집은 휴식의 기능에만 집중택에서 발달하여 점차 남쪽 지방으로 전파되면서 기후에 따른 평면의 변화△상류주택에까지 확산되었다. 또한 마루는 여름이 길고 무더운 남쪽지방의 상류주택에서 발달하여 점차 북쪽지방으로 전파되면서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서민주택은 방, 대청, 부엌의 세공간을 기본요소로 하여 발전되었는데 지방별로 주택의 평면을 분류하여보면 각 지방의 연평균 기온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1-2 사회문화 환경1)유교사상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이념을 정치뿐만 아니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규범의 원리로 삼았다. 따라서 사회를 지배하는 사대부 계층은 유학을 학문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들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의 가르침을 숭상하였으며, 특히 양반들은 유학을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거나 일상생활에 실천하여 인품과 덕망을 쌓는 것을 기본으로 여겼다.또한 유교에서는 삼강오륜을 삶의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유교의 원리에 따라 남계중심의 가부장 제도가 발전하게 되었다.동족촌은 가부장제에 따른 대가족의 연장으로서 상부상조의 협동체로 볼 수 있다. 대를 이어받은 종가는 분가하여 대종가와 소종가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대종가는 마을의 중심이나 윗자리에 위치하였고 그 다음에 소종가각 위치하며, 변두리나 아랫자리에 소작농들이 자리하는 순서로 마을이 구성되었다. 동족촌 배치도△유교사상이 주택에 미친 또 다른 영향중의 하나는 가계의 계승권이 장자에게 주어지는 출생순위의 권위이다. 이러한 사상은 주택건축에도 영향을 미쳐 주택내에서 장남을 위한 작은 사랑이 아버지가 사용하는 큰 사랑 옆에 배치되기도 하였다.조선시대의 양반계층은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조상을 숭배하는 일을 모든 사람이 지켜야할 원칙으로 여겼다. 이의 영향으로 상류주택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당이 일반화되었다.2)생활문화조선시대 생활문화는 대개 주거공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활문화에 대한 이해는 주거공간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조선의 대가족 제도는 가장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가 한 가족을 이루어 자연히 많은 엌의 후미진곳에서 은밀하게 하였다.이상과 같이 조선시대 주택의 형성은 자연 환경에 의해 그 구조나 형태가 결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환경에서 유교사상 그리고 생활문화 방식에 접합하도록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생활양식과 사회적 제약에 관련된 특성들이 어떻게 주택의 배치와 실내공간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지를 살펴보자.Ⅱ. 조선시대 주택의 공간 배치1)형태에 따른 분류조선시대 주택에는 채와 방의 분화에 특성이있다. 즉 주택전체는 사랑채, 안채, 별당 등 채로 분화되고 자시 이들 채들은 그 자체내에서 사랑방, 침방, 대청 등 방으로 분화된다.또한 사회신분에 따라서 평민계층의 서민주택, 중인계급의 중류주택, 양반계층의 상류주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평면, 구조, 외부공간 특징은 아래 표와 같다. (표 2-1)2)생활 문화에 의한 공간배치조선시대 주택은 남녀의 구별에 의한 공간의 성적분화에 그 특성이 있다. 이는 숭유정책에 의한 내외법에 의한 것으로 남성을 위한 사랑채, 여성을 위한 안채, 그리고 이를 채들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당들 모두가 엄격한 남녀 구별 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것은 한걸음 나아가 택지의 선정에 양택론이, 묘지의 선정에 음택론이 작용되었고 더욱이 소위 명당이라는 지세의 형태가 여성 상징의 형태와 유사한 것을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공간 해석에 음양의 조화를 강조하였던가를 알 수 있다. 전통 주택 배치도△구 분서민주택중류주택상류주택신 분평민으로 농,공,상에 종사, 경제적으로 빈곤중인계급, 군교, 기술관, 이서 등 경제적으로 부유양반계층(정책입안자)대지주평면적특징평면배치좁은 대지에 건물을 한동으로ㄱ자, ㄷ 자안채,사랑채,행랑채 등을 독립채로 배치넓은 대지에 안채, 사랑채,행랑채,사당,별당 등을 독립체로 배치공간분할가족만이 거주하며 남녀구별은 있으나 계급분화는 없다남녀구별 및 부분적인 상하계급이 분화된 평면으로 구성남녀구별이 엄격하며 상,중,하 계급분화로 평면이 구성됨구조적특징지붕재료초 큰사랑방은 주인어른, 작은사랑방은 큰아들이 점유하게 된다.이처럼 조선시대의 가족은 부부중심이 아니라 가문중심이며, 가문에 기여하는 부자는 부자유친을 실현하기위해 같은채를 쓰면서도 장유유서에 따라 방의 격을 달리함으로써 서열을 이루었다.이상으로 조선시대 주택의 형태와 공간구성에 사회적 환경과 자연 환경들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았다. 이제 현태주택에 관해서 알아보자.Ⅲ. 현대 주택의 형성3-1 도시형 한옥의 등장1)도시형 한옥의 출현1910년에 일제 강점기 시대가 온다. 일본인들의 이주가 급증하고 자연히 새로운 주택이 필요했다. 일본인 주택업자들은 주택의 매매, 임대를 하면서 주문생산에서 벗어나 주택 건설을 사업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집장사’라는 업종이 생겨났다.그 당시 일부 상류계층에 의해 선호되는 ‘문화주택’은 당시 대중들의 주의식을 충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산비가 비싸고 주택업자들의 기술력의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이들은 전래되어 오는 주택양식을 기본으로 근대적 건축 부재를 첨가하여 새로운 한옥의 양식을 충출하게 되는데, 이를 ‘개량한옥’ 또는 ‘도시형 한옥’이라고 한다.2)도시형 한옥의 주거사적 의미도시형한옥의 등장은 일제시기의 주거양상을 이해하는데 세가지 측면에서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도시형한옥 배치도△첫째는 주택생산 양식의 변화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1:1 주문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상품생산에 의한 대량공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주택건설의 산업화와 주택시장의 형성을 의미한다.두 번째는 도시형 주택으로서 한옥의 가능성이다. 도시형 한옥은 좁은 택지와 밀집된 주거군, 공공도로 등 어려워진 대지조건에서도 적용되었다. 마당의 축소나 사랑채의 부재 등을 제외하고는 전통적 공간구성과 주거형태가 존속될 수 있었다.마지막으로 도시형 한옥은 식민지 상황에서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 전쟁을 위한 경제적 수탈과 급속한 도시화, 공업화의 시대농촌에서 도시로 무작정 이주한 많은 가구들은 우선 정착할 주택을 마련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웠다. 그들은 도심지 안에 세를 얻을 형편도 아니기 때문에 도시 변두리의 국 ? 공유지를 무단으로 점거하여 무허가 판자촌을 짓는 일이 많았다. 흔히 ‘달동네’라고 불리는 불량 주거지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산비탈을 깎아 작은 택지를 만들고 천막이나 판자, 함석 등을 이용하여 비, 바람을 막을 정도의 거처를 만들었다. 이것은 은신처의 수준이었다. 그나마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불안한 주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2)도시환경 악화와 주거단지 개발이와 같은 도시의 주택문제들은 주택의 부족이나 주거환경의 질적 저하만이 아니라 도시환경에도 큰 문제를 발생시기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도시 재정비계획 및 신도시 개발을 통하여 도시환경의 개선을 시도하였다.신도시 개발은 근대적 도시계획기법이 적용된 새로운 도시환경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급속하게 진행된 신도시 개발은 정부 재정지원의 미약, 도시기능 및 환경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도시환경을 크게 개선시키지는 못하였다. 그 문제점은 첫째, 신도시들은 대부분 그 입지가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서울과 근거리에 위치한 까닭에 도시의 자족성이나 고용문제가 고려되지 못하여 결국 수도권의 인구집중을 초래하였다.둘째, 대부분의 신도시들이 전원적인 거주환경을 조성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택지 부족과 값싼 주택의 공급이라는 미명 아래 밀도를 너무 높게 책정함으로써 수준높은 주거환경의 조성은 당초부터 불가능하였다.셋째, 개발유형에 부합되는 초지이용계획 및 각종 시설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주택도시인 경우에는 상업용지를 과대하게 책정한 반면 교육, 문화, 보건시설 등을 수용할 공공용지는 매우 작게 책정되어있어 도시환경 및 커뮤니티 조성에 장애요인이 되었다.3-3 아파트 주거문화의 정착1) 주택문제의 발생배경일제시기의 공업화, 도시화를 배경으로 발생한 도시의 주택 부족은 해방이후까지 이어져 주택문제의 원인이 된다. 특히 한국전쟁으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