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요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문호를 개방하게 되면서 봉건유교질서에 속박 당했던 여성의 재발견이 이루어졌다. 이후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여성문제에 대한 심층적 접근과 구체적인 개혁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렇듯 5. 4운동 이전기의 여성운동은 전통유교질서 속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의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봉건적 관념과 미성숙 된 여성의 자아의식으로 소극적운동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5. 4운동은 이전의 여성운동과 다르게 진행되었다. 5. 4운동은 중국 여성운동사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각계각층은 어느 때보다 여성운동에 적극적, 주체적,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제국주의와 봉건적 관념에 대항했다. 지식인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변화와 동시에 여성들의 자체 인식 변화가 일어났다. 여성들과 지식인들은 크게 4가지의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여권을 쟁취했다. 남녀사교의 자유, 남녀의 평등교육, 여성의 경제적 독립, 혼인의 자유이다.남녀사교의 자유를 위해 신민학회(新民學會)와 각오사(覺悟社)가 설립되었다. 남녀 사교 공개의 실현은 여성운동의 전개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여성인재의 양성에도 기여했다. 남녀의 평등교육은 교육이 여성의 위치가 변화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강조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의 교육은 곧 남녀평등권을 실현하는 근본조건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여성애국운동과 여권조직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고, 남녀가 동등한 교육을 받는 기풍이 확립되었다.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남녀가 동등한 지식과 기능을 겸비하여 경제적으로 경쟁하였다. 중국 여성들은 빈민습예소(貧民習藝所), 여자경업상점(女子競業商店) 등을 냈다. 이는 여성들이 스스로 직업을 구하려고 했던 최초의 시도였다. 이렇게 시작한 여성의 사회경제 참여는 여성들의 권리 향상에 큰 이바지를 했다. 혼인의 자유는 봉건혼인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식 혼인에 반발하여 출현한 ‘자유연애, 자유결혼’의 새로운 기풍은 다음 세대들이 신봉하는 목표가 되었다. 이는 봉건적 습속을 바꾸고 새로욕을 가질 수 있으며 왜 서로 자기만 차지하려는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따라서 태평천국운동은 기존의 유교정신을 위협하고, 남녀평등사상을 포함한 반봉건적 혁명의 기초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태평천국운동의 남녀평등주장은 초기 기독교 교리 중 평등 관념에서 나온 것일 뿐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모순과 한계성을 가졌다.) 비록 태평천국의 여성들은 일련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명목상의 공직에 있었다. 실제로는 자신들이 섬기는 남성 지도자들의 첩에 불가했다.태평천국의 여성해방에 대한 모순들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은 당시 참가한 여성들이 대부분 농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자의식이나 자기해방을 추구하고자하는 의식이 없었다.) 그들이 도달한 해방이란 단순히 정책적인 것일 뿐이었다.태평천국운동의 실패 이후, 중국의 지배 계급은 1861년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시행하여 중국의 자강을 꿈꿨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많은 지식인들은 서방문물(西方文物)의 모방을 통한 현대화가 더 이상 중국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체적이고 근본적인 개혁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에 자본주의 사상을 지닌 중국의 지식인들인 민족자산계급(民族資産階級)은 구국운동(救國運動)으로써 무술변법운동(戊戌變法運動)을 전개시켰다.무술변법운동에 의해 정치, 경제, 문화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민족자산계급을 대표하는 강유위(康有爲: 1858~1927), 양계초(梁啓超: 1873~1929), 담사동(譚嗣同: 1865~1898)은 여성운동과 민족의 구국운동을 하나로 결합시켰다. 그리고 이미 중국에 있었던 서양의 천부인권, 자유와 평등사상을 통해 남존여비(男尊女卑), 삼강오상(三綱五常) 등의 봉건적 전통 관념을 비판함으로써 사회전반에 걸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민족자산계급의 여성문제에 대한 관점은 태평천국 지도자들이 가졌던 여성에 관한 사상의 수준을 뛰어 넘어 근대 중국의 여성운동에서 계몽적인 고 자각하고 있던 여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5월 3일 북경대학은 여자고등사범학교(女子高等師範學校)에 여학생들과 통일된 행동을 하기 위해 전보를 보냈으나 학교 측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그러나 5월 5일 여학생들이 스스로 모여 구국운동에 관한 집회와 논의를 하였다. 5월 7일에는 여자고등사범학교의 발기에 따라 10여개의 여학생 대표) 40여명이 모여 북경여학계연합회(北京女學界聯合會)를 성립시켰다.)한편 천진에서는 5월 5일 직예 제일여자사범학교(直隸 第一女子師範學校)의 곽융진(郭隆眞: 1894~1931)의 주도 아래 여성애국단체(女性愛國團體)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중서여중, 보육여중, 경존여학교, 정숙여학교의 학생, 직업여성, 가정부인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하여 5월 25일 천진 여성계애국동지회(女性界愛國同志會)가 결성되었다. 여기에는 13세 국민학생으로부터 60여세의 늙은 부인까지 약 600여명이 참가했다.) 이 회에서는 국산품을 애용하고 여성들의 애국심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상해의 여학생들 역시 북경 학생들을 적극 성원했다. 5월7일 상해 민중 2만 여명의 국민대회를 개최할 때 신주여학교와 민생여학교 및 중국여자체조학교 등의 100명의 여학생들이 적극 참가했다. 11일에는 상해학생연합회(上海學生聯合會)가 성립되었다.) 상해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함께 투쟁하면서 새로운 기풍을 만들었다. 상해 「시보(時報)」는 '남녀가 함께 하는 일'이라는 짧은 글을 발표하여 이러한 기풍을 크게 칭찬했다.상해학생연합회는 처음에 조직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줄곧 남녀가 함께 일을 처리하였고 회의, 사무, 진행도 빨라서 외면적으로 하나도 구설에 오르지 않았으니 교육을 받은 남녀가 같이 일하는 것이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외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은데 남자도 일을 잘 하고 여자 또한 일을 잘한다면 이럴 때 남자는 역시 여자를 경시 할 필요가 없고 여자도 너무 겸손해 할 필요가 없다. 만약 점차 남녀의 한계가 없어지고 각기 자기391개, 여학생 수는 11,936명으로 남학생 총수의 2%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1918년에서 1919년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초급 소학교 여학생의 비율은 4.8%이고, 고등소학교 여학생의 비율은 5.54%로 여학생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였다. )5. 4운동기에 남녀 교육의 평등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남녀공학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북경여자사범학교 출신의 등춘란(鄧春蘭: ?~?)이었다. 그녀는 신문지상에 '전국 여자 중, 소학교 졸업생에게 고하는 글(告全國女子中小學畢業生書)'을 발표하여 대학의 여학생 입학금지 철폐안을 요구하였다. 그 당시 북경대학의 교장 채원배(蔡元培: 1863~1940))는 여학생 입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터라 등춘란을 받아들여 청강생으로 입학시켰다. 그리고 다음 1920년부터 북경대학과 남경고등사범학교, 북경고등사범학교가 정식으로 여학생 입학을 인정하고 문호를 개방하였다. 북경고등사범학교가 남녀공학을 실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교육은 국민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고 여자도 남자와 같은 국민이므로 마땅히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문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교육 사업에서 결코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다양한 학제를 갖추고 있어 참고할만하다. 중국은 구습에 젖어서 남녀의 구분이 지나치게 엄하므로 교육이 쇄신될 수가 없다. …이에 고등사범이 남녀공학을 실시하는 것은 여러 문명국의 선례와 세계의 조류를 참고하고 근세 교육가의 의견을 실로 좋은 점만을 찾아서 남녀평등의 뜻에 부합하도록 하려는 것이다.이는 전국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어 많은 대학에서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했다.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5. 4운동 시기 남녀의 평등교육은 적극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몇몇 대도시에서는 '여자는 모르는 것이 미덕'이라는 남녀차별적인 의식을 물리치고 남녀가 동등한 교육을 받는 기풍이 확립되었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조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열망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노력한 여운동 시기까지 살펴보았다. 중국은 아편전쟁으로 인해 문호를 개방하게 되면서 그 동안 지켜오던 봉건관념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천부인권 사상의 영향으로 자유와 평등, 남녀평등 사상이 전파되어 봉건유교질서에 속박 당했던 여성의 재발견이 이루어졌다. 또한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어난 태평천국 운동은 여성에 대한 혁신적인 정책을 시행하여 여성해방의 기풍을 조성했다. 태평천국에서 나타난 여성지위의 상승은 무술변법으로 이어져 근대혁명사상의 원류가 되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여성해방에 대한 노력은 남녀역할을 구분하는데 불과했고, 다시 봉건관념으로 회귀하는 모순을 보였다.반세기 이후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을 거치면서 민족자산 계급이 등장했다. 이들은 여성문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하여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계몽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여성운동 역시 남성이 주체가 되었다. 이는 아직도 여성 스스로가 해방의 주체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청제국의 계속된 불안으로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했다. 이 시기 여성운동은 한층 더 성숙해져 광동성에서는 최초의 여성의원이 탄생했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여전히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보수적 관념을 고수하여 결국 여성 참정권을 박탈했다. 참정운동은 소수의 부르주아계급 여성들의 권리의식과 자아의식이 높아졌음을 반영하는데 불과했다.이렇듯 5. 4운동 이전기의 여성운동은 전통유교질서 속에서 벗어난 자유와 해방의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잔재한 봉건적 관념과 미성숙 된 여성의 자아의식으로 소극적운동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신해혁명의 반성을 통해 의식개혁을 주장한 신문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5. 4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 『신청년』은 여성의 교육문제, 취업문제 등 여성의 자유와 기회균등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1919년 5. 4운동은 중국 여성운동사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각계각층은 어느 때보다 여성운동에 적극적, 주체적,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제국다.
철학교재연구1. 단원 주제 : 인간이란 무엇인가?우리는 무엇일까? 우리를 '육체'로 나타낼 수 있을까? '정신'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아니면 육체와 정신을 함께 나타낼 수 있을까? 이 단원에서는 형이상학의 핵심인 인간 존재에 대해 학습한다.2. 단원목표。인간 존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할 수 있다.3. 단원 설정 이유우리는 '나는 내 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병에 걸렸거나 뭔가 힘든 일을 겪을 때는 '몸이 내 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반대로 의식 불명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이건 단지 육체일 뿐이야.'라고 말하기도 한다.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우리는 내가 어디서 태어나고 몇 살이며 키는 몇이고 머리카락은 무슨 색인지 등으로 나를 규정하고, 나에 대한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나의 정체성의 큰 부분이 '육체'라는 단계를 거치지만 사실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그래서 이 단원을 설정하여 학생들에게 존재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인간 존재에 대해 학습한다. 여러 학습활동을 통하여 존재에 대한 철학적 견해들을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고, 인간 존재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할 수 있도록 한다.4. 교수-학습 방법① 교사는 전시 학습에서 배운 철학적 사고란 무엇인지에 대해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번 단원에서는 형이상학의 핵심인 인간 존재에 대해 학습할 것이라고 본 단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다.②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 학생들에게 익명의 문자를 받았는지 확인한다. '너는 누구니?'란 문자의 내용에 대해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말할 시간을 준 뒤 학습목표를 읽히면서 본 단원 학습의 방향을 잡아주도록 한다.③ 철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 했으며, 존재하는 것에 대한 여러 철학적 견해가 있음을 설명한다. 형이상학에서는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실재를 다르게 인식한다. 학생들에게 철학의 어려운 용어를 피하고 용어를 풀어서 간략히 설명한다. 존재에 대한 견해로는 자신의 존재를 외적으로 드러나는 육체로만 규정하는 것과 영혼, 정신으로만 규정하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합쳐서 규정하는 견해가 있다고 설명한다.④ 앞서 배운 존재에 대한 견해 바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활동용지 ?을 준비하여 학생들에게 체크하도록 지시한다.활동 ? '나'는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나는 내 이름으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 얼굴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 종교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 성격으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 가치관으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 취미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 고민거리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나는 내 별명으로 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⑤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지 발표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친구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⑥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⑦ 교사는 그룹별로 여러 색깔의 종이쪽지와 사인펜을 나누어 준다.종이쪽지에 '나는 누구인가?'를 쓴다. 대답을 쓸 때 자기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 하나만 종이쪽지에 쓴다. 만약 중요한 단어가 둘이면 종이쪽지도 두 장을 준비한다.다 쓴 종이쪽지를 죽 늘어놓고 공통의 주제나 내용이 든 단어가 있는지 살펴본다. 주제가 같거나 같은 내용을 뜻하는 단어는 토의를 거쳐 없앤다.남은 중요 단어를 이용하여 직사각형 종이에 '나는 _____이다.'라는 문장을 만든다.이 문장을 칠판이나 커다란 종이에 붙인 후 이야기를 나눈다.활동 ?나는 누구인가?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다.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다.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다.⑧ 탐구 활동을 통해 나는 누구인지 해명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교사는 존재에 대한 견해(자신의 존재를 외적으로 드러나는 육체로만 규정하는 것과 영혼, 정신으로만 규정하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합쳐서 규정하는 견해)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인간의 실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보고, 친구와 바꿔 읽고, 더 생각해 보도록 한다.
사람의 수염은 사춘기 이후에 생기는 성모(性毛)의 하나이며, 제2차 성징으로서 남성 호르몬의 작용으로 돋아난다. 수염에 대한 관심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많이 변천되었으며,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권력, 성향, 패션 아이콘 등의 여러 형태로 이어져오고 있다. 다음으로 수염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보자.*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는 수염지난날 수염을 기르는 전통은 자신이 야당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여러 군소정당들의 공통적 생각이었다. 이 시기 수염은 좌파의 이념과 저항을 상징했던 것이다. 그 좋은 예로 포랄베르그 출신의 녹색당 의원이자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카스파나체 시마를 꼽을 수 있다. 그가 얼굴 가득 기르고 있는 무성한 수염은 생태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의식적으로 자연을 대변하는 몸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채, 다수의 관습을 거부하려는 녹색당원들의 독단적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그러나 유럽의 민주적 우파진영은 전쟁 세대의 말끔한 군인의 용모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였다. 왜냐하면 이 시기 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에 질레트 사는 미군 당국과 독점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의 군대에 엄청난 양의 화장용품들을 공급했던 것이다. 이 계약은 연합군의 승리와 더불어 20세기의 전형적인 군인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한편 발칸 반도의 민족주의적 우파 지도자들의 수염은,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체트니크의 흉내를 많이 냈다. 세르비아의 극우 행동파 부크 드라스코비치가 나라가 지나치게 서구화 되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세르비아의 진정한 애국자들에게 수염을 기를 것을 호소하였기 때문이다.오늘날 문화적인 이해이 측면에서 볼 때 여전히 단호하고, 한눈에 식별이 가능한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수염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히틀러의 수염이다.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이 대중 정당으로 발돋움해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기 전까지 별다른 정치적 함의를 지니지 않았으나 히틀러의 독재 아래서 그 수염은 ‘지도자’의 상징 그 자체였다. 제3제국에서 히틀러가 누린 위치가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이었던 만큼 같은 당의 동료들조차 감히 그의 수염을 흉내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히틀러의 수염은 대중에게 완전히 배척당하였다. 그 만큼 상징성이 컸음을 의미한다. 선거 때만 되면 대중적 인기도가 높은 보수우익진영의 후보 포스터에는 윗입술과 코 사이가 검은색으로 덧칠되어 흉측해 진다고 한다. 이는 민주진영이 승승장구하는 보수 이데올로기에 대해 무력하게나마 저항하는 몸짓이라 하겠다.*제왕의 수염한 시절 세상을 호령하던 제왕들의 수염은 경우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관광산업의 상품으로 종종 이용되고 있다. 특히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구레나룻은 바드 이슐이나 빈 등의 유럽 중부에서 공연되는 역사극의 단역배우들에 의해 등장하면서 옛 황실과 왕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소품 노릇을 하고 톡톡히 하고 있다. 그밖에도 산업으로 일가를 이룬 마우트너마르크호프 가문의 가족들이 요제프 황제의 구레나룻을 본뜨고 있기도 하다. 나폴레옹 3세의 독특한 수염도 뮌헨의 패션 디자인의 황제 모스하머의 풍자적 회화를 통해서 전해질 따름이다.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왕족이나 왕녀의 부군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한 한 오래 전부터 제왕의 모습보다는 선거로 뽑힌 정치가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한때 권력과 지혜의 상징으로 수염을 기르던 정치가들은 미디어가 주도하는 현대사회에 이르자 치과의사의 기술로 가꾼 하얗게 빛나는 흠집 하나 없는 치아와 침묵 속의, 낙관적이고도 너그러워 보이는 미소를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교회와 수염한편 고대 사제들이 물러간 자리를 대신 차지한 기독교 성직자들의 외모는 제각각으로 통일성이 없었다. 고대와 초기 기독교 시절에 제작된 많은 조각상과 모자 이크화가 보여주는 예수의 사도들은 수염을 기른 모습이지만, 저마다 사도들의 진정한 후계자를 자처하는 고위 기독교 성직자들은 제멋대로 수염을 달고 있기도 하고 말끔하기도 해서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연 누가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진짜 후계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수도원에서 구도적 삶을 실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성자 히에로니무스는 긴 수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확실한 입장표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503년에 제정된 교회법 가운데서 성직자의 외모를 규정한 제 44조다. 이 조항은 성직자는 긴 머리는 물론 수염도 길러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성직자는 그 특별한 사회적 지위 때문에 일반인과 확연히 구분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반면 주로 선교 활동에 주력하기 위해 유럽 대륙을 방랑하던 아일랜드 교회출신의 수도자들에게 위와 같은 규정은 적용되지 않았다. 로마 교황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영국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수사들만 1090년에서 1120년 사이의 시기에 수염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아일랜드 교회 출신 수도사의 영향권 아래 있던 프랑스와 수도원 생 미셜 소속의 수도사들의 모습에서는 긴 수염을 볼 수 있다.*성자와 수염속세를 등지고 고행을 거듭하면서 특별한 내공으로 성력을 쌓은 은둔자들은 평생 수염을 길렀다. 이들에게 수도원의 법이 적용될 리 만무했다. 사람들은 수염 난 수도승이야말로 곧 성자의 전형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 성직자들은 “긴 수염이라고 해서 반드시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하였다. 교회의 역사가 거듭되면서 로마의 성직자들은 갈수록 더 반들거렸다. 교황 알렉산더 2세는 만일 신부들이 평신도처럼 머리나 수염을 기른다면 파문한다고 경고 하였다. 이 교령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이르러서 교회법전에까지 수록되기에 이른다. 순결한 사내들이 모인 교회가 세속의 습속, 각종 계급들과 상징적인 거리를 두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잘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세의 계급체계로 미루어 볼 때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군인이나 귀족 혹은 농부들의 출세 지향적 성향의 표현인 동시에 섹시함의 상징이었다. 교회의 사제들은 이런 세속과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이다.그러나 종교개혁과 더불어 르네상스에 직면한 교황들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관습의 둑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로마 교황의 궁 라터란에서 1512년에 개최된 5차 주교회의는 이전의 금지령을 포기하지는 못했지만 유행이 민감한 성직자가 빠져나갈 뒷문은 열어주었다. 짧은 수염은 비록 명시적으로 허락되진 않았지만 더 이상 금기도 아니었다. 이때부터 교황들도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율리우스 2세나 클레멘스 7세, 파울 3세 등의 초상과는 베드로의 대변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수염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프랑스 추기경 리슐리외는 수염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전통 파괴에 도덕적 분노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교회개혁자이자 밀라노 주교인 카를 보로메우스였다. 그는 자신의 교구 사제들에게 다시 철저히 면도할 것을 명했다. 그가 수염에 대한 지독한 거부감의 근거는 기성 교회를 흔든 마르틴 루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갓 나왔을 무렵 무척 무성한 수염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가톨릭 사제의 비위를 자극한 것이다. 유일하게 수염을 기르는 것이 용인된 사제들은 카프친 수도회와 카말드린 수도회 소속의 수도승
머리말한국의 교육은 교육행정체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육행정체제가 현재 우리 학교교육에는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과제를 통해서 교육 행정 및 교육 경영의 이론에 대해서 살펴보고, 현 중 ? 고등학교에서의 문제점들과 학교경영 및 교육경영에 있어서 그 현장적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하여 알아보려 한다.본론학교가 학년 및 학급이라는 하위체제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학교의 경영구조도 이와 같이 3층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즉 학급경영과 학년경영 및 학교 경영이라는 중층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경영은 학교장이 주체가 되고, 학년경영은 학년부장이, 학급 경영은 학급 담임교사가 주체가 된다. 그리하여 학교 경영은 학년 경영과 학급 경영은 물론이거니와 예산, 시설, 실비, 사무관리에 이르는 학교의 대내적 제반 사항을 포괄하며, 학부모와 지역사회관계, 유관기관이나 단체와의 협력과 조정 등 대외적인 영역까지도 포함한다.학교경영은 이상과 같은 제 영역에 걸쳐, 학교의 계획수립과 그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한 과업의 세분화와, 그 과업을 수행할 협력 체제로서의 인적 구조를 가지고 교장이 지도자로서, 학교경영자로서 지도성을 발휘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일련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에 입각하여 학년경영과 학급경영은 각각 학년 부장과 학급 담임이 책임 하에 계획에서 평가에 이르기까지 학년과 학급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에 입각하여 학년경영과 학급경영은 각각 학년 부장과 학급 담임의 책임 하에 계획에서 평가에 이르기까지 학년과 학급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 단위인 학년 경영은 그 존재 이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형식논리와는 달리 학교 경영이나 학급 경영처럼 일선 학교의 실제에서는 그렇게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학년을 구성하는 학급의 수가 단수이면, 학급경영이 학년 경영과 거의 맞먹고, 복수일 경우도 학년부장을 중심으로 한 학급담임으로 이루어지는 학년회의를 통해 동 학년으로서 각 학급의 기능을 조정하고 협력케 하는 데 그치고, 실질적 학년 경영은 학급 경영의 총화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학년 경영은 학교 경영이나 학급 경영처럼 독자적인 영역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학교경영의 영역은 학교경영의 과업과 과정의 두 차원으로 개념화 할 수 있다. 즉 교육목표, 내용, 교수. 학습과정, 평가를 포함하는 교육과정의 운영, 교내 장학, 교직원과 학생의 인사관리, 물적 시설과 설비 및 환경의 관리, 재정의 운용, 학교의 대외관계라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조직을 구성하여, 합리적, 합목적적으로 조직이 운영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성을 발휘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몇 개의 연속적 과정으로 구성된다.이로써 우리는 교육행정 및 교육 경영에 대한 이론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이런 이론들을 바탕으로 수립된 학교의 행정과 경영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문제가 있다면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떠한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학교의 행정과 경영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자.중등교육이라 함은 현행 학제상으로 볼 때 중학교 교육과 고등학교 교육을 말한다. 중등교육은 말 그대로 중간 단계의 교육이며 초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사이에서 보통교육의 완성단계를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중등보통교육에 해당한다.그렇다면 중등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먼저,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성이 문제다.흔히 얘기하듯이 일반계 고등학교는 대학입시 학원화된지 오래며, 학생들에게는 지옥이라고 불리울만큼 학교생활이 고통스럽다. 이는 고등학교들이 교육과정의 운영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고 대학 입수위주로 파행적인 운영을 하기 때문이다.학교의 입장에서는 지역사회와 학부모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학사운영을 대학입시에 맞춰서 국, 영 , 수 등 이른바 주지교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예 ? 체능을 비롯한 심체적 ? 정서적 발달을 위한 교과목과 특별활동영역은 거의 팽개치고 있다.더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수업운영이 상위권 30%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수준에 맞게 운영함으로써 나머지 70%의 학생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대다수를 무시하고 일부 대학진학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들만을 염두에 두고 가르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교실수업에서 소외된 학생들의 좌절의식과 욕구불만을 가증시키게 된다.둘째, 교육기회 부족 문제다. 현재 우리의 중등교육은 해당 연령층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행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중학교까지 완전무상의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지 못하다.셋째, 교육적 학교 환경 조성의 경시와 시설 설비의 낙후성 문제를 들 수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1993)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의 중등학교의 환경과 설비의 구비 실태는 너무 열악하다. 중학교 교사 1,116명 중 66.6%가 학교지급 비품이 부족하다고 응답하였고, 21.6%는 매우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러 가지의 특별실의 운영실태에 대한 조사에서는 시설 설비가 규정이나 권장대로 잦추어져 있고 잘 활용되고 있다는 응답자는 과학실험실의 경우는 32.7%이고, 음악실은 18.5%, 도서실 7.7%, 체육관 6.2%, 강당 7.6%이었다. 시설자체가 없다는 응답도 도서실은 20.3%, 체육관 80.7%, 강당 72.3%이었다.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교육운동협의회(1997)의 자료집에 의하면 학생들은 학교는 편안하게 쉴만한 공간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으며, 소란하고 복잡하여 시장이나 거리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운동장은 비좁고 방과 후 문학이나 연극을 연습할만한 작은 공간도 허용되지 못한다고 불평을 한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건물과 교실이 노후화되고 의자와 책상은 낡아 있고 화장실과 수도의 위생 상태가 불결하다고 지적한다.이 같은 조사 결과와 불평들이 객관적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의 학교 환경 및 시설 설비에 관한 평가는 학교가 전인격적인 학습 생활공간이라 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조건조차 구비되지 못하였음을 지적해 주기에 충분하다.이와 같은 문제점들의 해결방안들을 살펴보면, 먼저 체제 및 제도 운영면에서 중학교의 성격 전환이 이루어져야한다. 진로탐색과정을 강화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의 자격분리, 사립중학교 비율을 축소시키고, 고등학교 교육연한을 연장하여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희망 하는 자는 전원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다음으로 중학교 의무교육에 관해 무상의무교육의 지역 단계적 확대 실시와 초 ? 중학교 교육의 연계가 필요하다. 의무교육의 제도적 보완으로 의무교육에 관한 업무를 시 ? 군교육청에 대폭 이양하고, 시 ? 도 및 시? 군교육청에 의무교육 관장부서를 설치하는 방안이 있다.
유전자 조작이란?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자연 속에서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인위적으로 생명현상의 영역에서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세포만이 세포를 만들므로, 생명체만이 생명체를 만든다.’라는 생물학의 확립된 명제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에 의해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공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GMO’라는 생명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어떤 물질을 이해할 때 그것을 분자로 환원, 분해하여 분석하고 취급하듯이, 생명을 유기체로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생명공학(GMO)이다. 이제 우리는 화학적 시각에서 생명을 보고 화학적 시각에서 인간을 취급하게 되었으며, 물질적 시각에서 생명을 보고 물질적 시각에서 인간을 보게 되었다.생명공학은 ‘생명체를 분자로 환원하여 분자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므로, 외형상으로는 생물종간에 구별이 되지만, 분자의 차원에서는 물고기의 분자든, 수박의 분자든 아무런 차별성이 없으므로 그것들을 동일하게 취급한다. 따라서 외형상으로는 구별되어 나타나는 종과 종 간의 벽은 허물어지고, 분자차원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다. 다른 종의 생명체에서 유전자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해지므로, 자연 상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종과 종 간의 유전자의 이동이라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가능해진다.생물학자들은 50년 걸려서 유전 정보의 분자적 기초를 발견함으로써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DNA의 뉴클레오티드 배열에 포함되어 있는 메시지를 해독한다면 생물체를 그 와 같이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완전히 해석되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게놈의 배열을 안다 하더라도 그 전체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다.따라서 GMO는 아직도 상당히 불완전하고 불안전하다. 자연 상태의 진화과정을 허물어뜨리고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하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의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식료품의 안전성에 대한 단백질을 계속 생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의 생명체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 초래되어 무리가 생긴다.유전자 조작을 통해 동식물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첫째는 새롭게 도입된 유전자가 그때까지는 그 종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 그 종의 성질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안티센트(Antisense)법이라고 하는 것으로, 유전자의 작동을 억제시켜 종의 성질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자연에서 종의 벽을 뛰어넘는 생물은 미생물뿐이다. 때문에 GM 기술에서는 여러 가지 미생물의 유전자가 종종 사용되기도 하며, 어떤 유전자를 무리하게 작동시킴으로써 생물자체에 나쁜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유전자 조작에 의한 식료품유전자 조작 식료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첫째, 유전자 조작 기술로 ‘창조된 새로운 생명체’를 직접 먹는 식료품으로서, GM 콩이나 GM 옥수수, GM감자 등이 있다. GM 기술을 사용하여 미생물의 유전자를 작물에 도입하여 특정한 제초제에 저항력을 갖게 한다든지, 살충 작용을 하는 단백질을 도입하여 작물 자체가 살충 능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둘째, 유전자 조작 생명체를 ‘이용’하여 만든 식품으로서, 이 경우는 유전자 조작으로 ‘창조된 새로운 생명체’를 직접 먹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치즈를 만들 때 이용되는 우유 응고 효소인 키모신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대장균 등의 세균을 직접 먹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한 식품을 유전자 조작 생물체 이용 식료품이라고 한다.현재 GM 식품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식용유이며, GM 농작물 중 가장 많이 생산되는 것은 제초제 내성 GM 콩이다. GM 감자, GM 토마토, GM 호박 등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미국에 대한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GMO 관련 식료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GMO는 제초제 내성 및 살충성 GM 농산물이다.위와 같은 GMO 식료품은 과연 안전한가?GMO응이 유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알레르기 중 어떤 것들은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라운드업’이라는 제초제를 친 GM 콩의 경우, 먹으면 식물 에스트로겐의 증가를 통해 소위 환경호르몬이 초래하는 것과 같은 생식기능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살충성 GM 식물의 경우, 꿀을 흡수한 벌꿀의 수명이 단축되고, 학습장애가 발생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또한 살충 독소를 가진 감자에 달라붙은 진딧물을 잡아먹은 무당벌레의 수명이 단축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살충성 작물은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살충 독소는 옥수수 내부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의 화분 또한 독성을 가졌기 때문에 생태계가 무분별하게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GM 옥수수는 그 속에 함유된 살충성 단백질이 내열성이 높아 소회기 계통에서 분해 능력을 떨어뜨려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이 같은 살충성 단백질을 섭취하여 영향을 받은 가축과 그 제품을 먹으면 인간에게도 농축과 스트레스를 통한 간접적인 영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GMO에 대한 반대현대 문명은 인간만이 이 지구의 지표에서 살아야 한다는 인간 중심주의를 목표로 하여 다른 생물과의 공존과 상생을 망각하고 있다. 인간에게 해로운 생물도 인간이 이 지표에서 계속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것을 제거해왔다. 제초제 내성 GMO이야말로 이 적대적 상생 원리를 정면에서 무시하고 있다.엔트로피 증대 법칙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가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환성과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생물 순환이란, 먹이사슬을 따라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고 동물이 죽으면 미생물이 그 시체를 분해, 해체하여 영양분이 풍부한 흙으로 만들고 그 흙을 다시 식물이 먹는 것이다. 녹색혁명형 농업은 제초제를 쳐서 식물을 죽이고 살충제를 쳐서 동물을 죽이며 살균제를 쳐서 미생물을 죽임으로써 생물 순환을 단절시킨다.GMO처럼 결함을 가진 상품은 GMO로 인해 발생하는 유전자 오염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실정에서 지금까지의 녹색혁명형 농업과 마찬가지로 ‘내분비 교란 물질’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제초제 내서이든 살충성이든 GMO는 더욱 강력한 농약 계통의 투입을 증가시키고 있다. 따라서 GMO의 확산은 점점 더 농도가 높아지는 ‘내분비 교란 물질’의 확산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분비 교란 물질’에 대한 저항력이 커질 것이다.GMO를 자연 생태계에 방출함으로써 초래될 위험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새로운 유전자 조작 기술은 세균전을 위한 병원균을 조작하는데 사용하여 유전자 무기 혹은 생물학 무기를 생산하고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방어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슈퍼병원균에 대한 연구도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점이다.GM 실험에서 동물들이 받는 수난도 심각하다. 이식된 유전자가 화학적으로 변화되어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기묘하고 다양한 종류의 병리 현상이 새롭게 출현할 수도 있다.GMO는 터미네이터 기술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생물이나 농작물의 종 다양성도 파괴한다. 여기서 터미네이터란 종말을 고하는것, 종결시키는 것 등을 의미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에서는 유전자 독해를 종결시키는 염기서열을 의미한다. 그래서 종자가 대지에 떨어져서 발아를 시작하면 스스로 죽는 자살종자를 말한다. 화분이 날아서 확산되면 자살독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확산되고 그것이 다른 식물과 교잡을 일으키면 자살하는 식물이 확산되므로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 더구나 그 독소가 식품 속에 들어가게 되면 인간에게 위해나 알레르기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물론 동물이나 조류 곤충, 미생물 등에 미치는 영향도 염려된다.GMO에 대한 나라별 대응지금 전세계적으로 GMO에 대한 소비자와 농민들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반대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적인 식품회사들과 유통업체들은 점차 GMO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추세이며, 각국 정부에서도 GMO 의무표시제를 포함한 강력한 규제제도를 수립하고고 배척함에 따라, 식품회사와 대형유통업체들이 앞다투어 GMO를 자사제품과 매장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이들은 심지어 GMO 사료를 먹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축산물조차도 취급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유기농축산물의 생산과 소비가 폭증하고 있는 추세다. 각국 정부들과 유럽연합에서도 국민들의 요구와 압력에 따라 이미 97년부터 다양한 안전조치와 규제를 만들고 있다.일본 : 2001년부터 표시제가 시행되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지만, 일본에서는 생협들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을 꾸준히 펴 온 결과 된장 등의 장류는 비GMO로 만들게 되었으며, 유수의 맥주회사들(기린, 아사이, 삿포로)과 식품회사들이 GMO를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있다.미국 : 그동안 GMO의 종주국으로서 그에 대해 무관심했던 미국 소비자들도 최근 GMO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농민들도 GMO 재배 후 판로확보가 불투명해지자 옥수수 같은 경우에는 올해 처음으로 재배를 축소하고 있으며, 몬산토를 상대로 종자독점에 의한 반독점법 위반혐의로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유아식 업체인 거버와 하인즈는 유아식에 GMO를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했으며, 스낵회사인 프리토레이와 패스트푸드업체인 맥도날드도 각각 GM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하였다.제3세계 국가들 : 제3세계 국가들도 GMO를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GMO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인도에서는 농민들을 중심으로 "몬산토는 인도를 떠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이용해서 GMO 판촉에 나서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한국 :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이래로 아무런 조치나 표시 없이 콩, 옥수수 등의 GMO를 먹어왔다. 2001 년부터 표시제가 시행되면 그나마 우리들이 GMO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일부 마련되겠지만, 아직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 국민들은 GMO에 대한 인식이 낮고, 정부의 대응도 미흡하다. 이는 생명공학 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