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미래를 읽고…….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신 책이라서 많은 기대감을 갖고 책을 샀다. '도둑맞은 미래' 라는 책을 읽고 나서의 첫 느낌은 한 마디로 현재의 환경 문제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으로 이런 내용들을 접한 나로서는 이 책에서 다룬 위협적 내용들이 매우 경악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세계 남성의 정자수가 실질적으로 50%나 감소했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에 난 “내 씨가 말릴지도 모른다.” 라는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나 보다. 난 이번 리포트가 단순한 형식적 차원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최초’로 진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의 정자수가 50%나 감소했다는 말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하다. 물론 최근 뉴스나 신문을 통해 환경 호르몬이 수컷의 정자 수를 감소시킨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정말 몰랐다.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충격적인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본 독후감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해 나갈 생각이다. 우선은 저자가 보고하는 핵심적 사항을 추린 뒤 개인적인 의견 및 대안을 제시해 볼 생각이다.보스턴 대학의 과학부 기자인 다이엔 두마노스키, 화학물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연구해 온 환경 과학자 테오 콜본과 피터슨 마이어는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의 심각성을 구체적인 자료 및 데이터 등의 사실적 근거를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도둑맞은 미래’ 는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해 주는데 이들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환경 내로 방출된 많은 수의 인공 화학물질들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내분비계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합성 치료제인 DES는 에스트로겐과 그 효과가 매우 흡사하여 우리의 내분비계로 하여금 아무런 대응 없이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 DES를 복용한 어머니들에게서 태어난 딸들은 현재가, 다양한 생식기의 이상, 비정상적인 임신, 그리고 면역 반응의 변화 등으로 크게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자궁 안에서 노출된 아들과 딸들 양자는 생식계통의 선천성 기형과 생식력 감소를 경험한다. 이렇듯, 자궁 안에서 DES에 노출된 인간에게 나타난 영향은 오염된 야생동물과 같은 환경적 피해로 인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인간의 생식 능력에 위협을 주는 인공 화학물질에는 DES 외에도 PCB 라는 잔류 화학물질이 있다. PCB 의 경우 생태계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PCB 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동물의 체내지방에 축적되어 절대 분해되지 않는 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그 파생 경로가 매우 광범위해 지구 전체에 이른다는 것이다. (즉, 이 땅에 더 이상 무공해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륙에서 제조된 화학 물질은 여러 경로를 통해 수천 마일을 여행하게 되고 먹이사슬에 침투하여 생태계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PCB는 체내지방에 축적되어 절대로 분해되지 않으므로 먹이 사슬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물의 체내지방에 계속 쌓이게 되고 이는 결국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인간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잔류 화학물질의 체내 농도는 지구 끝까지 여행하는 동안 수백만 배로 축적되어 그 단계가 인간에게 이르면 그 효과는 실로 치명적이라고 한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PCB, 다이옥신, DDT 와 같은 잔류 화학 물질이 수컷의 정자수를 감소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는 실로 우리 인간이 종족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심각한 위협적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만물의 영장’ 임을 자칭하며 신비에 가까운 진화를 거듭해온 우리 인간에게 드디어 인간의 ‘성’을 지배하는 인공 화학물질이 출현한 것이다. ‘씨를 말린다’ 는 비극이 비록 당장은 아니지만 점차 가시화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렇다면, 이토록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갖가지 연구와여금 점차 경각심을 가지도록 일깨워 주었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점은 인간이 돌이키기에는 이미 우리의 자연과 생태계가 너무 많이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동물들에 관한 각종 연구에서 이미 인간에게 미칠 악영향에 대한 조짐을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를 경시해왔다. 이는 인간 특유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배운 개념들과 연관 지어볼 때 인간 특유의 안일함이라 함은 바로 맹목적인 기술 결정론에 대한 숭배에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우리가 탈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시대로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탈산업사회의 잔재는 곳곳에 남아있고 그나마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성적 의견들이 가시화되기에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어쨌든, 이러한 인간의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고 오직 과학만이 유토피아를 창조해낼 수 있다” 는 지나친 과학 기술 낙관론이 결국 인간 스스로를 기술의 노예로 만들었고 환경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뒤늦게야 심각성을 느낀 우리 인간들은 이들 화학물질의 사용을 금지해보려 했으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화학물질들은 이미 환경 속 깊숙이 침투해 있어 난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인간이 자초한 이러한 비극을 나는 책의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 솔직히 나는 책의 제목이 ‘도둑맞은 미래’ 라는 점을 매우 못 마땅하게 여긴다. 아니, 제목 자체가 잘못 표기되었다고 본다. 우리의 미래는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일 뿐이다. 여태껏 과학 기술을 숭배해왔던 우리 인간들은 우리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그 일이 설령 우리의 자연을 해치는 일이더라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산업화 초기단계의 인간은 과학 기술이 장차 초래할 치명적인 효과에 대해 예측할 능력도 없었겠지만 설사 그 영향을 알았다 한들, 인간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기술 개발을 강행하여 왔을 것이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환경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다급해 지기 시작한 우리 인간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남극의 빙하에서부터 모유에 이르기까지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는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도둑맞았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미래를 훔쳤다면 말이 되겠지만 우리의 미래는 우리 인간 자신 빼고는 아무도 훔쳐 간 적이 없다. 우리 인간 스스로가 파멸을 자초한 것이지……. 씨가 말릴지도 모르는 위기 앞에서도 뻔뻔스러울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 아닐까……. 우리의 상황이 벌써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달했는데도 아직도 일각에선 이를 모르고(혹은 무시한 채) 꾸준히 화학물질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인간의 종말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에 나는 소견이나마 내 나름대로 정리한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구체적 대안으로는 식수의 청결함 관리, 오염된 물로 판정된 물로 부터 나온 물고기는 먹지 말 것, 동물성 지방 섭취를 가급적 삼갈 것, 음식과 플라스틱류 물질간의 접촉을 피할 것 등을 들 수 있다. 정부적 차원에서는 화학성 물질의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는 법률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는 충분히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겠다. 책 부록에 수록된 윙스프레드 선언문에는 전문가들의 대안이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대신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지금부터 하고자 한다. 나의 의견이 다소 추상적이고 거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책 속 내용에만 국한시킨다면 나는 특별히 할 말이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책 속의 내용은 앞서 정리했거니와 책 안에는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현 상황과 대안이 뚜렷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가 오늘날 맞게 된 위기는 결국 그것이 화학 물질의 문제이던 환경의 문제이던 간에, 지나친 과학 기술에 대한 신봉으로부터 야기된 문제라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도둑맞은 미래’ 라는 책을 생식 문제에만 국시적 차원인 과학 기술의 폐단이라는 관점에서도 고찰해봐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오늘날 씨를 말리는 이 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도 결국은 과학 전반에 걸친 성찰로 부터 얻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Faucaut 나 Lyotard 와 같은 탈근대론 자들이 주장하는 근대 자체의 부정과, 합리성, 이성, 휴머니즘으로 부터의 탈피가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근대 자체를 뿌리 뽑고 새로운 시대를 펼쳐나간다는 이론은 말 그대로 이론일 뿐이지 실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아울러 근대 자체를 뿌리 뽑기에는 우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설계가 아직 극도로 미흡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위기를 해결해 줄 만한 새로운 체계가 우리에겐 아직 없다. 개인적으로 Giddens 와 Habermas 가 주장하는 ‘제 2 의 근대’ 건설에 동의한다. 근대의 기반은 거의 전적으로 과학 기술에 의존해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날의 과학 기술은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너무나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을 아예 포기하고 예전으로 돌아갈 경우 예상되는 엄청난 불편함과 어려움에 과연 인간들이 적응할 수 있는 가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문명의 이기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편의’를 포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근대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대인 개개인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기 갱신을 함으로서 근대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근대의 ‘살릴 수 있는 장점’은 살리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 세계사의 방향을 새로 잡아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곧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근대’ 이자 ‘제 2 의 근대’ 인 것이다. 물론 근대의 장점과 단점을 엄밀히 구분하기에는 모호한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과학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방면으로의 이득은 대개 또 다른 방면에의 불이익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현명한 판단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과제임과 동시에 우리의 정자를 다시 살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