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History- E.H.Carr1. 머리말2. 歷史家와 사실3. 사회와 개인4. 역사와 과학과 도덕5. 역사에 있어서의 因果關係6. 진보로서의 역사7. 넓혀지는 지평선8. 맺음말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동안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바이블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동안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 책의 중요성과 명쾌함을 알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못했던 것은 나의 게으름과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과 교과과목 전공수업인 ‘사학개론’이라는 수업을 통해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읽는 것과 동시에 더 낳은 이해를 위해,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나는 것과 책을 보면서 정리한건을 바탕으로 요약해보았다.2. 歷史家와 사실E.H.Carr는 이 첫 장의 시작에 있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에 대한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역사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이 첫 파트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라고 말한 E.H.Carr의 대답으로 요약할 수 있다.랑케는 ‘자기가 사실을 보살피기만 하면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신의 섭리가 보살펴 줄 것이라고’믿으면서 역사가의 임무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라고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에 반해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Contempory history)’라고 말했다. 이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크로체와 같은 의견으로 콜링우드 또한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라고 선언했다. 즉,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까지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치우치지 않고 끊임없는 상호관계를 통해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한 E.H.Carr의 주장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 것이,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인 것이다.3. 사회와 개인E.H.Carr는 사회가 먼저인가 개인이 먼저인가라는 문제는 암탉과 달걀의 문제와 만찬가지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한 그의 주장을 John Donne이‘인간은 아무도 자체만으로서 전체를 이루는 섬일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의 일부이다’라고 한 말을 들어 설명했다. 그에 반해 고전적인 개인주의자인 J.S.Mill의 ‘인간은 같이 모아 놓는다 해도 다른 종류의 실체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견해를 통해 반대적인 의견을 보여주었다. 이에 E.H.Carr는 사회와 개인은 서로 구별되어 우선순위를 둘 수 없으며, 사회와 개인은 필수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라고 한다. 즉, 개인이 모여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개인의 발전이 사회에 영향을 줄 수도 , 또는 사회의 발전이 개인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사회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역사가의 입장은 E.H.Carr의 말처럼 ‘행진하는 행렬’, 즉 군중의 행렬이라는 비유를 통해 잘 들어 난다. 역사가의 관점이나 개인적 성향은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한 개인의 위치나 개인의 신체적 특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H.Carr는 그로트, 몸젠, 네이미어등 위대한 역사가들의 사례를 들어 역사가가 사회에서 받는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즉 역사가 또한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이므로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E.H.Carr는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역사가를 연구하기 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역사가의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 평가할 수 없으며, 역사가의 입장은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근거하기 때문이다.역사적 사실이라는 부분에서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H.Carr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측면에서,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역사란 한 시대가 타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기록’이라고 주장한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이라는 것이다.4. 역사와 과학과 도덕‘역사는 과학인가?’라는 논쟁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물론 유럽에서는 역사가 과학이라는 인식이 당연시 되어왔지만, 영어사용권 세계에서는 이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E.H.Carr는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의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과학이라고 본다. 그러나 역사를 과학이라고 부른다는 것에 대해 잘못이라는 의견들이 있는데 이해 대해 E.H.Carr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박한다.첫째, 역사는 특수성과 개별성을 다루고 과학은 일반적인 것, 보편성을 다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담겨있는 보편성인 것이다.둘째,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중요성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사건에 적용하는 것이다.셋째, 역사는 예언 할 수 없다. 그러나 과학적인 법칙이란 것도 하나의 경향성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것처럼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의 닥칠급하는 자료의 성격상 도덕적 판단의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것이 곧 역사가 가치라고 하는 초역사적인 기준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E.H.Carr는 과학과 역사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또 하나의 해결방도는, 과학자나 역사가나 그 목적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보다 깊은 이해를 촉진해야 한다고 한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목적이 같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가도 그 밖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왜냐’라는 의문을 부단히 추궁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1~3장에서 E.H.Carr가 계속 말해왔던 상호관계라는 측면에서 그는 역사가 또한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 및 인간 자체를 연구하므로 그 방법이나 목표가 유사할 수도 있지만, 역사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유념하고 무조건적인 과학적 신봉이나 , 역사가 가지는 특성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5. 역사에 있어서의 因果關係E.H.Carr는 역사가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라고 말한다. 역사가는 ‘왜냐’라는 물음을 부단히 추궁하는 것이며, 해명의 희망이 있는 한 쉴 수는 없는 것이라 한다. 또한 위대한 역사가,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사상가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E.H.Carr는 헤로도토스를 예로 들며 그가 저작의 첫 머리에서 희랍인들과 야만인들의 행위에 관한 기억을 보존한다는 것, ‘그리고 특히 그들이 서로 왜 싸우게 되었는가의 원인을 밝힌다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원인을 밝히는 연구방법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을 제시하고, 원인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위계질서를 수립하고 궁극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즉, 역사가는 원인을 다양화시키고 이를 통해 궁극적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단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E.H.Carr는 앞서 말한 이러한 인과관계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역사에서의 결정론과 역사에는 역사를 잘 못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E.H.Carr는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을 우리들의 무지의 증거로 보는 견해도,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이라는 것을 과장하는 것 또한 잘 못된 것이라고 말한다.E.H.Carr는 역사의 인관관계를 논하는 질문인 ‘왜냐’질문에 대해 이장의 마지막에 부분에 서술하고 있다. 그의 서술한 바를 요약하자면, ‘현재란 것은 과거와 미래를 갈라놓는 가공적인 선이라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하다. 과거도 미래도 모두가 동일한 시간선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과거에의 관심과 미래에의 관심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쉬운 이치라고 생각된다. 역사는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시작되며,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함을 뜻한다.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 왜냐 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 라고 묻는 법이다’라는 것이다.즉, E.H.Carr는 역사연구에 있어서 인과관계의 연구는 그것을 따지는 질문인 ‘왜냐’라는 것과 동시에 ‘어디로’라는 역사진행의 방향성을 연관 짓기 위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6. 진보로서의 역사역사를 해석하는 역사관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들이 있다. 고대에는 헤로도토스나 또는 투키디데스 등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적었으며 이러한 경향성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루크레티우스르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견지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순환론적’ 사고방식을 주장한 것이다. 또한 역사를 지향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목적론적 역사관이 등장했다. 이러한 개념을 도입한 것은 유대인들이며 기독교인들을 거쳐서 기독교인들의 신정적 연사관이 대두하여 중세를 대표했다. 신정적 역사관은 역사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을 이용하여 역사의 종말을 주장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서는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자들인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진보적 역사관이 등장했다.진보와 진화는 흔히 혼동되어왔다. 이에 E.H.Carr는 ‘진보와 진화에 관한 여러 혼란 점들부터 깨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