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 of Rock최 원1. 영화의 줄거리주인공 듀이 핀은 락 음악을 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그는 성공한 락커도 아주 실력 있는 락커도 아니다. 또한 그는 다른 락스타처럼 잘 생기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뚱뚱하기까지 하다. 그는 락을 하겠다는 신념 빼면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는 사내다. 이러한 처지의 듀이는 대리교사인 친구 네드 슈니블리에게 얹혀사는 신세다. 하지만 네드의 여자친구가 듀이가 그에게 얹혀사는 것을 혐오하여 그는 집세를 부담하지 않으면 네드의 집에서 쫓겨날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돈이 급한 사정이 되자. 그는 네드의 행세를 하며 호레이스 그린 초등학교에 대리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락 밖에 모르는 그가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첫 수업부터 그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만 준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아이들의 음악 수업을 보게 된다. 이 광경을 본 듀이는 이 아이들로 락 밴드를 만들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바로 그는 그 아이들을 락 밴드로 만드는 것을 실행한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락 밴드를 만들어 밴드 전쟁이라는 락 밴드 경연대회에 나가기로 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듀이는 그가 네드가 아닌 가짜교사라는 것이 들통이 난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밴드 전쟁이 있는 날 학생들은 그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자고 있는 듀이를 방문한다. 이렇게 학생들은 듀이를 설득해 밴드 전쟁에 나가게 된다. 한편 이 시각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없어진 것을 안 학부모와 교장 선생님은 밴드 전쟁의 공연장으로 아이들을 찾으러 달려간다. 엄격한 보수적인 초등학교의 학부모인 그들은 지금까지 아이들이 락음악을 듣고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찾기 위해 밴드 전쟁의 공연장을 찾은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멋진 무대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되기 위한 교육이라면락밴드가 되기 위한 교육이라면 듀이가 행한 교육방법은 시범을 통한 실습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듀이는 아이들이 악기를 다루는 것이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들이 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을 얻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클래식 음악만을 배웠을 뿐 락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바가 없었다. 따라서 듀이는 이들을 락밴드로 만들기 위해서 락음악이 어떠한 것인가를 가르쳐야만 했다. 아이들과 락밴드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듀이는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그들이 접해보지 않은 악기를 그들의 손에 잡힌다. 클래식 기타를 치던 아이가 전자기타를 손에 잡고 피아노를 치던 아이는 키보드 앞에 섰으며 심벌즈를 치던 아이는 드럼 스틱을 손에 쥐었다. 듀이는 이들에게 락음악을 가르치기 위해서 시범을 보인다. 기타를 치는 아이에게는 자신의 기타 연주를 들려주면서 락에서의 기타 연주 시범을 보인다. 그리고 그 아이는 듀이의 시범을 따라 하면서 그것을 배운다. 피아노와 드럼을 연주하는 아이에게도 이와 비슷하게 어떠한 식으로 연주해야 할지를 몸소 가르친다. 듀이의 시범을 통해 악기를 맡은 아이들은 실제로 연주를 하고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진정한 락밴드가 되어간다. 락에 대해 전혀 감이 없는 아이들에게 락음악을 실제로 들려주고 연주를 하게 함으로서 아이들이 효과적으로 그것을 학습할 수 있도록 듀이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만약 락밴드가 되기 위한교육을 단순히 음표를 그리고 락에 대해서 말로서 서술하며 교육하였다면 듀이가 학교에 머물렀던 짧은 시간에 그들이 그렇게 훌륭한 락밴드로 변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악기에 대한 기초가 있었던 아이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러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라고 해도 실습 없이 이론만으로 그것을 배웠다면 실제 밴드전쟁에 나가서 그렇게 훌륭한 연주를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말과 글을 통해서 이론에 관한 것은 충분히 습득할 수 있고 거의 완벽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 락밴드가 될 때에는 그것을 실제로 시행해보지 않는 한 해 완벽하게 공부했다. 하지만 실제로 연주를 하기 위해무대에 섰을 때 그는 당황하게 되었다. 클래식 기타의 현은 나일론이지만 전자기타의 현은 쇠줄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미 그는 그 사실을 책을 통해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한 번도 쇠로 된 줄로 연주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무대에서 전자기타를 잡긴 하였지만 쇠줄의 그 어색한 느낌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 이 외에도 이러한 변수는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글과 말은 이론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경험에서 오는 몸으로 체험하는 느낌까지 가르쳐줄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락이라는 음악을 배우는데 듀이가 직접 기타를 들고 시범을 보이지 않고 말로써 설명했다면 아이들은 락음악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말로써 설명한 것만으로 우리가 베토벤의 음악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듀이는 아이들을 락밴드로 만들기 위해서 직접 시범을 보이고 락음악이 담긴 CD를 나눠 주면서 그들이 몸소 락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교육하였다. 실제로 락음악이 어떻게 연주되고 훌륭한 연주의 샘플을 보여줌으로써 듀이는 가짜 교사였지만 락밴드가 되기 위한 교육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과 또한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영화 속에서 듀이의 교육방법은 대단히 효과적이었다고 보인다.4. 단순히 락밴드를 체험하기 위한 교육이라면락밴드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락밴드를 체험하기 위한 것이라면 위의 방식과는 다르게 듀이의 교실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는 락밴드가 되기 위한 교육을 설명했지만 여기서는 락밴드를 단순히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역할극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듀이의 의도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 밴드를 꾸릴 사람이 없는 자신이 어떻게든 밴드를 하고 싶어 아이들과 함께 락밴드를 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입장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락밴드라는견에 따라 배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아이들이 각자 맡은 일에 듀이가 간섭하지 않고 그들의 결과물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고 언제나 칭찬으로 그들의 자신감을 북돋아주었다는 점이 그 아이들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게 했다고 보여진다. 이 영화에서처럼 역할극을 수행할 때는 학생들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자신이 수행하고 싶은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그 역할극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그 역할에 대해서 지도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지도 후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역할을 자신의 재량대로 펼칠 수 있다면 그 역할극은 학생들이 적극적이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에 나온 것이 아닌 조금 더 창조적이고 발전된 형태의 역할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에 교수자의 훌륭한 지도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교수자가 역할극을 수행할 주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면 학생들도 역할극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도 듀이는 락밴드라는 역할극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훌륭한 교수자의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가 교육에 있어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 훌륭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5. 나에게 있어서 교육방법론은이번 학기에 교육방법론 수업을 들으면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정말 많은 방법이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치던 여러 가지형태의 교육 형태들이 그 고유의 방법마다 장단점을 지니고 어떠한 상황에서 그것들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배웠다. 가장 기본적인 문답법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워크숍이나 역할극까지 많은 교육방법들이 한 학기를 통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사회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게가가 그 고민이 될 것이다. 교육방법론을 들으면서 그 외의 강의에서 교수님들이 실행하고 있는 교육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그 교육방법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까지도 가지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현재 수강하고 있는 한 수업은 교수님이 문답법의 형식을 굉장히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는 학습자들이 그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문답법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고 생각이 되었다. 물론 학생들이 현재 어떤 상태인가를 교수님이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항상 학생들이 교수님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대부분을 대답은 사후적으로 보았을 때 교수님이 원하지 않는 우답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문답법이라는 교육방법이 효과적인가에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강의의 형태였다면 문답법을 할 때보다 더 깊고 많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해 줄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문답법에서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은 주위가 산만해진다는 것이다. 강의 중에 선생님의 질문을 하게 되면 학생들로부터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 질문은 계속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질문 전까지 배우고 있었던 개념이나 지식들이 문답법을 수행하는 동안 잊혀지고 단절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내가 수강하고 있는 한 수업의 예이다. 다른 수업에서 다른 교수님들은 또 다른 방법을 쓰고 계셨다. 물론 공통적인 교육방법도 있었지만 교수자에 따라 고유한 교육방법이 있었다. 스스로 교육을 받는 학습자의 신분에서 이러한 교육방법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이루어지다 보니 내가 일반적으로 받는 수업들이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물론 그 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다. 그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만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