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과 역사에 있어서도 관련이 깊고, 아주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면서 비슷한 생활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나라의 특성이 있는 만큼, 비슷한 점도 있는가하면 서로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의 문화에 대해서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대학생들의 문화 및 생활에 있어서는 학교공부와 취직, 동아리활동의 교내생활, 그리고 식생활, 술 문화, 아르바이트, 소비문화의 교외생활 등 다방면으로 비교를 할 수가 있습니다.첫째, 학교공부와 취직에 대해서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 대학생과 일본 대학생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영어교육 및 영어공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취직에 있어서 영어 능력을 국제화시대에 맞는 개인적인 기본자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거나 기업에 취직할 때 역시 영어능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TOEIC 점수로 제한을 두게 됩니다. 따라서 한국은 정기시험 기간 이외에도 영어를 공부하느라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이 아주 많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일반기업의 경우에는 영어를 그냥 여러 자격들 중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 대학생들에 비해서는 영어에 대한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의 남자 대학생들은 군복무가 의무이기 때문에 일본의 남자 대학생들과는 공부와 취업의 시기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남자 대학생들은 2년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기 때문에 20대 때에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반면에, 일본의 남자 대학생들은 보통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기 때문에 더욱더 이른 시기에 취직에 대한 압박감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영어, 자격증, 고시 공부 등을 위하여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흔한 반면, 일본의 대학생들은 유학이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휴학을 잘 하지 않습니다.둘째, 동아리활동에 대해서입니다. 대학교의 문화 중에서 전공공부나 학과생활 이외에 대표적인 것이 동아리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교내 동아리가 활성화 되어있고 많은 학생들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에 비해서 학교생활 중 영어공부 등 취직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대학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더욱 활발합니다. 그리고 일본 대학에는 한국의 학회와 비슷한 제미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미나를 일컫는 것인데, 스터디 그룹, 동아리, 수업을 합쳐놓은 듯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수님과 함께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논문대회를 준비하거나, 동아리와 같이 축제에 참여하는 등 동아리와도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축제기간이 되면, 한국에서는 각 동아리를 단위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 역시 일반 동아리와 제미가 양대 축이 되어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집니다.셋째, 식생활에 대해서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의 식생활을 보면 모두 일반 식당보다 값이 더 싼 교내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은 혼자서 밥을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식사를 할 때 많은 친구들과 함께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밥을 먹으면 '왜 혼자 먹지, 불쌍하다, 친구가 없는가보다' 등 부정적인 시선을 받게 됩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혼자 식사하는 것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은 전혀 없으며, 무척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사람들에 따라 각자의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상황을 본 적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일본 대학생 및 일본인들의 인식을 보고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넷째, 술 문화에 대해서입니다. 술 문화는 한일 간에 차이가 크게 나는 대학문화 중 하나입니다. 먼저 학생들이 모이는 방식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대학생들의 경우에는 처음에 2~3명으로 시작하여 점점 친구를 불러서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마시게 되는 일이 많은데, 일본에서는 1~2주 전부터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서 모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한 주량, 빈도 등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대학생은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고, 일본 대학생은 한국 대학생에 비해서는 적게 마시는 편입니다. 일본 대학생들이 술을 먹는 빈도가 한국 대학생들에 비해서 높지 않은 이유는 술값이 한국에 비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3월이 되면 신입생을 맞이하기 위해서, 각 학부나 (써클), 동아리마다 환영회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원래 신입생과 선배들이 서로를 더 잘 알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지만, 과도한 음주문화 때문에 매해 그 도가 지나쳐서 자주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술을 마실 때, 술이 주가 되고 안주는 입가심정도로 생각을 하지만, 일본의 대학생들은 술보다는 안주를 더 즐기고 더불어 술을 마시는 식입니다. 또한 한국 대학생들은 대부분 같은 술을 다 같이 나누어 비슷한 양으로 마시지만, 일본 대학생들은 각자가 마시고 싶은 종류의 술을,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양국의 대학생들이 술을 즐기는 문화, 빈도, 양, 방식에 있어서 조금씩의 차이는 보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 모두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고 술을 통해 더 가까워지기 위해 술자리를 가지는 것은 공통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다섯째, 아르바이트에 대해서입니다. 한국과 일본 대학생 모두 학교를 다니면서 용돈을 벌거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양국의 대학생들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한국의 학생들은 취업이나 학교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장기적으로 하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일본의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대학생활에 있어서의 아르바이트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있고, 그만큼 아르바이트도 대부분 장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선호하는 아르바이트의 종류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생들도 일반적으로는 사무보조, 서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과외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일본에 비해서 무엇보다 특징적인 점은, 한국의 대학교에는 '근로 학생'이 있다는 점입니다. '근로 학생'이란 각자의 학과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근로 장학금을 받는 것을 말하며, 이는 학교에 있으면서 수업에 지장을 받지 않고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반면, 일본의 아르바이트는
〈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의 역사 〉커뮤니케이션이란 인간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예로부터 아주 기초적인 형태로 존재해왔던 것이다. 초기에는 몸짓과 눈빛을 사용하고 그림이나 매듭, 연기를 사용하여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했었다. 이런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점차 발전해 사회적 합의인 말로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말 역시 시?공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image로부터 만든 글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글로 인하여 동양에서는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이 발명된다. 이후 동양에서는 이 인쇄술을 발전시키지 못하지만, 서양에서는 쿠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달시키게 되어 앞서나가게 된다. 이렇게 인쇄술이 발달하고 정보가 복제되면서 사람들이 다같이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이후에는 신부들의 투자로 고속인쇄술이 발명되는데 여기에는 성경을 인쇄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계몽주의도 나타나 문예부흥운동인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인쇄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부터 정보의 대량복제가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더욱더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다양한 사상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논리적으로 증명되는 과학이 성장했다. 이러한 정보를 나타내는 매체로써는 책과 신문이 있었는데, 이중에서도 신문은 중세에서 근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신문은 처음에 정론지로써 공론을 활성화 시켰다. 이 영향으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신문이라는 매체는 사회체제를 크게 바꿔놓게 되면서 대중지로 변화되어 갔다. 그리고나서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기술복제를 가능하게 하면서 자본주의사회로 이끌어갔지만 아우라가 사라지게 된다. 이 사진의 등장 이후 19세기 말에는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를 만들게 된다. 이것은 편집이 등장하면서 이미지와 이미지를 결합시켜 의미를 발생시키고 몽타주 기법으로 이루어졌다. 영화는 점차 발전하여 강력한 대중문화 수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20세기에는 라디오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라디오의 장점은 신문에 비해서 신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신속하게 전달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청각을 확장시키고 시간적?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한 것을“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무선통신기술이 발전하게 됐지만, 라디오 수신기는 점차 상업화되어갔다. 30년대에는 안방극장인 TV가 등장했다. TV의 특징은 시각을 확장시키고 사실성과 함께 현장성이 높다는 것이다. TV는 짧은 시간동안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해설 등은 신문?라디오보다 떨어지지만 영향력은 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반면, 영화는 TV에 의해 타격을 입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TV가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려 노력하였다. 이후에는 위성방송과 난시청을 해소하기 위해 케이블TV가 처음 등장했다. 이것은 공동으로 안테나를 세우는 것으로, 다채널로 정보가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채널이 다양해짐에 따라 종교방송?교육?스포츠?요리?만화 등의 전문방송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것에는 뉴스시간에 채널을 돌리게 하는 등 우리가 꼭 알아야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 1980년대 이후에는 PC가 등장한다. PC의 등장으로 네트워크와 함께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으로 급변했다. PC의 장점은 정보처리 능력과 저장능력, 그리고 네트워크로 전송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이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거의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후에는 또한 디지털 방송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는 지상파방송, 케이블TV, 위성방송, 인터넷 망을 통해 전국적으로 제공하는 IPTV, DMB, 인터넷방송, UCC 등이 있는데, 케이블TV와 IPTV는 3S, 즉 트리플 서비스로 전화, 인터넷, TV가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송통신들이 융합되면서 영상이 산업으로써 각광받게 되었다.
≪ 腹切 ≫나는 이번 레포트의 주제인 무사와 관련된 문화로써 할복, 즉 칼로 자기 배를 그어 죽는다고 하는 腹切(はらきり)에 대한 문화를 택했다. 보통 일본의 무사들에 관한 영화나 만화들을 접해보면 알 수 있듯이, 할복을 하는 장면이 흔히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 무사들의 자결 혹은 자살이라고 하면 단순히 할복이라는 방법으로 죽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밖에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방법은 꽤 잔인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들과 같은 한 인간으로써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이 할복이라는 것을 자행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며, 또한 이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무사들의 자결방법인 이 할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할복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결했던 무사들에 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무사란 원래 중세 초기 제후의 궁성에서 방위의 임무를 띤 군사들을 의미하였다. 그 뒤 봉건 제후에게 충성과 봉사의 의무를 가졌던 무사 계급전체를 포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무사는 중세의 주역이 되고, 12세기 말 源?朝(みなもとのよりとも)가 鎌倉(かまくら)에 막부를 창건한 것을 본격적인 무가정권의 시작으로 본다. 이는 室町(むろまち)막부와 전국시대(??時代)를 거쳐 江?(えど)막부로 이어져 1867년 明治(めいじ)유신을 맞이하기 까지, 약 700년에 걸쳐 무사가 일본정계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이 무사들의 자살법인 할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한다.할복, 즉‘하라키리(腹切)’라는 것은 칼로 스스로의 배를 가르고 뒤에서 제3자가 칼로 목을 쳐주는 일본 특유의 자살법을 말한다. 심정적으로 일본인은 하라키리에 대해서 조금도 혐오감이나 불합리함을 느끼지 않는데, 이는 일본인이 인간의 영혼과 애정이 뱃속의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나의 영혼이 더러운지 깨끗한지를 리이며, 무엇보다도 정당한 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여기서 할복에 관한 무사들의 정신이 깃들여있는 일화를 한번 살펴보자.어느 날 빵 가게에서 조그만 아이들이 빵을 훔쳐 먹었는데, 그것을 본 가게 주인은 한 아이를 붙잡아 아이의 집으로 데려갔다. 마침 집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있었는데 사무라이 집안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무라이는 “사무라이 집안은 도둑질을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아이를 향해 “너 이 녀석. 빵을 훔쳤니?”라고 묻자 아이는“아니요, 전 훔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빵 가게 주인은 “이런, 녀석도… 내가 분명히 봤는데 거짓말을 해?”라고 하며 다그쳤다. 이를 본 사무라이는 그 자리에서 아들인 아이의 배를 칼로 가르고 만다. 기겁을 하는 빵 가게 주인 앞에서 위와 창자를 샅샅이 뒤지며 하는 말이“이것 보시오. 사무라이 집안은 도둑질을 하지 않소. 그대로 인해 나의 아들이 죽었으니 그대 또한 나의 칼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오.”라고 하고는 그 자리에서 칼을 휘둘렀다.이렇게 사무라이, 즉 무사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아이의 배를 가르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화를 읽고나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과연 이러한 일까지 저질렀어야 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사들 사이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무사들의 한 정신으로써 자리 잡게 되었다. 조금은 잔인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 하라키리는 무사들의 정당한 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이제부터 하라키리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우선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가 들어서기 전까지를 고대로 보고 살펴보면, <播磨風土記(はりまふどき)>에, 713년경 일본의 하라사키(はらさき)연못에서 花波神의 아내인 淡海神이 남편의 뒤를 쫓아 연못에 왔다가 분에 못 이겨 자신의 칼로 배를 가르고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최초의 할복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8세기 초의 일본 고대사회에서 배를 가르고 내장 할복을 하고 내장을 끄집어 내던졌다고 한다. 이처럼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내어 던지는 고대의 할복은, 격분하여 강하게 반발하며 죽는 자살의 방법이었다.다음으로, 1192년부터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의 에도막부(江?幕府)를 중세로 보고 살펴보면, 이 때의 할복에는 이것에 동기와 의미가 고대에 비해 많이 첨부되어진다. 중세의 전반기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먼저 생포되기 직전에 할복하는 경우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이는 패전한 무사들이 자신들의 성이 함락되기 전에 집단자결을 하는 경우에도 해당되고, 또한 주군의 죽음에 따르는 순사의 의미도 포함된다. 이것의 예로, 鎌倉막부의 제14대 집권이었던 北?高時(ほうじょうたかとき)가 新田義貞(にったよしさだ)에게 패배하자 추종자 6천명이 순사하였는데 이 중 1천명이 할복자살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할복은 무사들의 용기와 인내의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무사들은 이러한 할복을 고통을 견뎌냄으로써 자신의 용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심지어 할복을 할 때에, “一자”형으로 배를 갈라서는 무장의 용맹을 과시할 수가 없어서 “十자”의 형태도 나왔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주군의 그릇된 행위를 보고 신하로서 충직하게 간하고 죽는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는 전쟁에 패배하고 도망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애첩의 집에 있는 주군의 행동을 간하기 위해 할복자살한 ?川家光(とくがわいえみつ)를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중세 전반기의 할복은 패전에 따른 무사들의 의리와 용맹 및 주군에 대한 직간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중세 말기에 해당되는 전국(??)시대의 할복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것도 역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부하와 동료들의 목숨을 구제하기 위한 패장의 할복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패전한 무장들이 책임을 지고 장렬하게 할복하여 죽으면 그의 가족과 부하들을 살려주는, 당시 무사들이 가졌던 일종의 사회윤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점이 악용되아니면 치욕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처형의 수단으로 할복이 등장하게 되고, 이때부터, 할복을 할 때 그 옆에 있으면서 할복을 함과 동시에 목을 쳐서 죽음을 도와주는 介錯(かいしゃく)가 나타나게 된다. 이 介錯는 서양의 처형인과는 그 의미가 사뭇 달라, 훌륭한 신분에 있는 사람이 보통 그 역할을 맡게 되며 양자의 관계는 희생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아니고 주역과 조역의 관계가 된다. 이처럼 중세 말기의 할복은, 부하들의 목숨을 구걸하는 수단과 무사들의 명예로운 자결 방법으로 정착되었으며, 처형 수단의 의미가 첨가된다.다음 시기인 근세를 살펴보면, 이는 1603년부터 1867년의 明治유신 전까지에 해당된다. 근세의 할복은 일본사회 전역에서 자살의 수단으로 유행되었고, 무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살 방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순사와, 특권 계급의 무사들에게 주어지는 형벌로써의 할복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여기서 순사란 주군의 죽음에 따라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다시 시기적으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 주군의 죽음이 임박해졌을 때 저승길을 안내하기 위해 주군보다 먼저 죽는 것을 뜻하는 선복과, 주군이 죽은 후 자신도 따라 죽는 일반적인 순사를 뜻하는 추복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순사라는 것은, 반드시 주군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또한 순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자신의 덕치와 가신들의 충성심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것은 자신의 힘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또한 순사는 동기에 따라서도 분류할 수가 있는데, 이는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저승에서도 주군을 섬기겠다는 의미인 의복(義腹)과, 동료들의 순사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할복함으로써 체면을 유지하려는 순사인 논복(論腹), 마지막으로 주인의 은혜를 크게 입은 바 없어 죽지 않아도 되는 자가 자손의 번영을 위해 순사하는 계산된 죽음을 의미하는 상복(商腹)이 있다. 다음으로 또 다른 유형인 특권 계급의 무사들에게 주어지는한 것을 들 수 있다. 介錯(かいしゃく)는 할복자(腹切者)와 절친한 관계에 있는 자가 맡는 것이 매우 특징적이고, 이는 할복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단칼에 목을 날릴 수 있는 검술을 지녀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복을 한 뒤에 자신의 내장을 들어내는 행위는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자의 행위로 여겨, 없어지게 되었다. 또한, 근세에는 배를 가르지 않는 할복의 처형도 있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는 사형 집행에 따른 할복을 할 경우, 만일 처형자가 할복할 때 반발하여 난동을 부를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마지막으로, 明治유신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에 해당되는 근? 현대의 할복에 대해서 알아보자. 근? 현대에 이르러서는 할복이라는 형태가 예전에 비해서 잘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할복자살을 한 대표적인 인물을 세 명 꼽아보면, 乃木希典(のぎまれすけ), 阿南惟幾(あなみこれちか), 그리고 三島由紀夫(みしまゆきお)를 들 수 있다. 乃木希典(のぎまれすけ)는 러일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육군 대장으로써, 전쟁에서 러시아에게 이겼지만, 그 전투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전사시켜 그 죄책감으로 자결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이“노기여, 만일 그대가 죽음을 원한다면, 내가 죽고 난 후에 하라”라고 말하여 1912년 明治천황이 사망하자 할복자살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천황의 영구가 발인하는 조포가 쏘아지고 소리가 울려 퍼지자, 노기는 정좌하여 상의를 벗고, 군도(軍刀)를 들고 날카로운 칼끝으로 세 번 하복부를 찔렀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노기의 죽음을 메이지 정신으로써 표현한 것을 문학 작품으로 한번 접해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할복을 하는 자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정말 대단한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阿南惟幾(あなみこれちか)라는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육군대신으로써, 대전에서 연합군이 패하자 그도 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할복을 하였다다.
♀『여자는 차마 말 못하고 남자는 전혀 모르는 것들』♂‘거짓말을 하는 남자, 눈물을 흘리는 여자’, ‘여자는 차마 말 못하고 남자는 전혀 모르는 것들’. 나는 레포트를 쓰기 위해 이 두 책 중 한권을 골라 읽어야만 했다. 두 쪽 다 실생활에서 공감이가는 내용일 것 같았지만 나는 후자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이 책을 택했다. 솔직히 책의 제목과 표지 그림만 봤을 때는 남녀 관계에 대한 그저 그런 흥미 위주의 가벼운 내용이려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은 책으로 여겼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고 나서 이 책이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얘기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읽으면서도 계속 느끼고 실은 짜증이 나기도 했던 부분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자 배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우선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면서 사회적인 것뿐만 아니라 남녀의 관계 역시 변하고 발전해왔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예전의 남자는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넬 필요가 없었고, 그저 많은 식량을 구해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또한 여자에게 있어서도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구해 오는 남자를 사랑하고 존경했을 뿐, 그에게서 섬세한 사랑을 받는다거나 그가 아이를 돌보리라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너무도 변했다. 가정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로 진출하는 여자가 늘어남에 따라 그로 인해 경제력을 가지게 된 여자는 더 이상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기 때문에 과거 세대와 같이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뚜렷이 나누어 있지 않다. 남녀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학습한 내용들은 부모세대에 부모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획득한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부모님들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변화하는 세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부나 연인사이의 잦은 다툼과 갈등을 결과로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에 맞는 새로운 남녀관계를 위한 기교를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인 존 그레이는 이렇게 새로운 남녀 관계의 기교를 자신과 아내와의 실제로 있었던 일, 자신에게 상담하러 온 고객들과의 대화 내용 등을 예로 들어가며 자세하게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열정적인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법은 쉽게 일곱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남자는 남성성을, 여자는 여성성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여자들이 흔히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끌리고, 남자는 아주 여성스러운 사람에게 쉽게 끌리는 것처럼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남자는 남자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여자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늘 새롭게 변화하고 성장하라는 것이다.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되면 인간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주로 남자는 주로 심각한 고민이 있을 때면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 문제를 풀려고 하지만 여자는 그와는 반대로 상대방에게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함으로써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이 정 반대이고, 또 서로 이것을 모르는 남녀는 이로 인해 오해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된다. 나도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의 경험에 비교해 보면 어쩌면 맞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남자친구에게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는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럴 때면 나는 남자친구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옆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이럴 경우, 남자들에게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이 시간이 지나야 문제가 쉽게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한순간 사랑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더라도 우리는 마음을 열어 상대를 믿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남녀관계에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신뢰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넷째,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상대가 부모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기대하는 것은 열정을 죽이는 원인이 된다. 자신은 스스로가 돌봐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 진정한 사랑으로 한 사람에게 충실해야 한다. 여자와 남자는 상대방이 오직 자신만을 위하고 사랑할 때 자신이 가장 특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섯째, 상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고 서로 도와야 한다. 상대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줄 때 서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의존과 자율의 조화를 이룰 때 보다 쉬워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동지애를 갖고 더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남자는 각자 책임을 지고 서로 다른 일을 해나갈 때 동지애를 느낀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더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현대 문명이 발전해 감에 따라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로 인해 환경이 점점 오염되고 있는데 사람들 역시 이 환경오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인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세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우선 세제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몸을 씻거나 그 밖의 섬유제품, 식기, 식품, 금속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의 기름때, 먼지, 그을음 등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유기 및 무기화합물을 말하며 흔히 세척제라고도 한다. 이것은 BC 5000년경 이집트에서 초목의 재를 우려낸 물로 세탁한 것을 시초로, AD 150년 갈리아인에 의해 동물의 기름과 잿물을 써서 비누가 제조된 후, 9세기경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가장 우수한 비누가 제조되어 탁월한 세척력을 인정받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세제는 제조방법에 따라 비누와 합성세제로 구분되고 용도별로도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목욕용 세제, 샴푸, 핸드 클리너 등 화장용으로 쓰인다. 둘째, 세탁용 고체비누, 분말 입상, 액상 합성세제인 식품, 식기용 세제 등 가정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고 마지막으로 양모, 면, 합성섬유 등 섬유원료에서 섬유제품에 이르기까지 정린, 세척, 염색 등 모든 공정에 사용되는 공업용으로 나눌 수 있다. 세제는 이렇게 다방면에서 많이 쓰이고 있지만 이것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하천이 오염되어 심각한 수질오염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그러면 이러한 세제의 사용이 하천이나 해양 생태계에 어 떤 영향을 미치는지 간단히 알아보자. 우선 세제의 거품은 미생물에 의해서도 잘 분해되지 않으며 물속으로 통과하는 햇빛을 가로막아 수중 생물의 광합성을 해치고 산소 공급 을 차단해 하천의 자기정화능력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또한 거품은 하수를 처리할 때 각종 오염물질을 끌어당기는 ↑수질오염 ↓적조현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염처리 비용이 2배 이상이나 많이 들 어 우리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제에 많이 들어있는 세척촉진제인 인산염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영양소로 작용 하고 하천의 부영양화현상과 적조현상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수중 생물이 급속하게 자라게 되고 이 식물이 부패하게 되면 암모니아, 메탄가스 등의 발생으로 물속의 산소는 고갈되고 물고기는 살 수 없게 되어 죽음의 강이 되어버린다. 대표적으로 낙동강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잔류된 세제는 우리나라 상수도 정수 시설로는 완 전히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수돗물에 섞여 들어 오거나, 수돗물을 소독할 때에 사용되는 염소와 결합하여 ‘트리할로메탄’ 이라는 발암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렇게 말로만 들어도 오염의 심각성을 알 수가 있지만 이것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간단한 실험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물 1L에 합성세제 0.1g을 넣어 1만분의 1로 희석시킨 다음, 송사리 10마리를 넣었는데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P세제에서는 2시간 15분 만에 죽었고, T세제는 2시간 30분, 미제 팔모리브는 8시간, 일제 루나는 24시간, 순식물성 천연세제는 72시간이 지나도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제는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인체에 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세제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도 몇 가지 피해 사례가 있다.주로 가정주부에게 많이 생기는 증상으로 간장의 활동이 저하되어 안색 이 검게 되거나 기미가 끼는 현상, 손이 갈라지거나 지문이 없어지는 경 우가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세제를 비누로 바꾸어 쓰면 한 두달 내에 회 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세탁한 옷에 남아있는 세제가 피부병을 일으키는 경우와 머리카락을 가늘게 함과 동시에 탈색과 탈모 현상을 불↑피해사례 러 일으키는 등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