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패트리어트』감상문학과:학번:이름:현대 미국정치의 이해는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수업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 강의에 의한 수업진행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이 과목은 학생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을 통한 수업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영화를 보고 미국정치와 연관시키고 이해하는 방식은 다소 황당하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를 통해 미국정치를 학습하고 이해한다는 점은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점도 있고 영화를 통해 미국 정치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은 흥미로운 점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 패트리어트는 미국정치와 역사에 어떤 점을 묘사하고 있으며 어떤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멜 깁슨 주연의 영화, 패트리어트는 미국이 영국과 치룬 독립전쟁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나의 주권을 가진 국가로 태어나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100년 이상을 영국의 식민지로 지내왔던 미국이 독립을 선포한다는 것은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의 입장에선 “일종의 반란”이였으며,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였을 것이다. 반면, 자유와 평등의 슬로건을 내세우며 강대국의 횡포에 맞서 싸운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미국은 더 이상 식민국가가 아닌 자유독립국가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한 역사적인 사건이며 수많은 식민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영화를 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던 내용은 “왜 미국이 영국을 싫어했느냐?” 이다. 도대체 어떠한 이유가 있었기에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은 권리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전쟁은 치러야하는 명분은 명백한 것 이였으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미국이 독립을 원했을 것이다.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바로 이해되자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는 대사였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했던 이유는 바로 ‘세금’, 즉 경제적인 이유였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강압적인 수탈을 견디다 못해 독립을 선포하고 전쟁에 돌입한 것 이였다. 영국은 당밀조례, 설탕조례, 숙영법, 인지조례, 타운센트 법령 등 식민지에 혹독한 과세를 부과했으며 이런 정책들은 영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했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국은 막대한 세금을 납세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단 한 명의 대표도 가질 수 없었으며, 이런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미국인들은 소외감과 부당함, 영국에 대한 반감은 커져갔으며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열망이 높아져만 갔을 것이다.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갈등과 분쟁의 주원인은 바로 세금과 경제적인 이유인 것 같다.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은 바로 세금에서 발달되었다. 영국의 부당한 경제적인 수탈은 미국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지유와 평등에 대한 강한 갈망을 심어 주었고 결국 이런 사상들은 표출되어 미국의 독립을 가져왔으며 미국의 역사 속에 그 정신을 이어와 30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을 세계 최고의 자유주의 국가로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역사란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해방되려고 하는 인간 몸부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추세를 가정한다면 미국의 독립도 분명 언젠가는 오게 될 것이 틀림없다.(최웅?김봉중) 영국의 부당한 식민지 정책을 열거하고 식민지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는 대원칙이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잘 나타나있는데 그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우리는 다음을 자명한 진리로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하느님은 그들에게 누구도 빼앗을수 없는 몇가지 권리를 부여했다. 여기에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의 권리가 포함된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민은 정부를 만들었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에서 나온다. 정부가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인민은 언제든지 이를 변혁내지 폐지하고 인민의 행복과 안전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다 주어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하고 이를 위한 기구를 갖춘 정부를 새로이 조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학대와 착취가 오랜 동안 계속되고 인민을 절대 전제정치 밑에 예속하려는 계획을 분명히 했을 때에는, 이러한 정부를 타도하고 미래의 안전을 위해 새로운 보호자를 마련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이고 또한 의무인 것이다. ...” -미국 독립선언서 중에서... 한권으로 보는 미국사 100장면-비록 세금와 영국의 강압적인 수탈에서 비롯되었지만 미국인들의 자유의지의 표출, 다시 말하면 자유를 향한 미국인들의 끝없는 열망을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자유에 대한 강한 신념이 결국은 전력적으로 열세였지만 세계 최강국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이였음을 패트리어는 설명해주고 있다.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미국인들의 의견이 독립전쟁을 찬성한 것이 아니였지만 의견을 하나로 수렴해 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13개주의 대표들이 모여 소위 “타운미팅”을 통해 각 주의 의견을 표현하고 서로의 입장차이를 좁혀나가는 과정을 통해 당시 이미 미국은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가 정착이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미국의 민주주의와 의회정치(민주주의)가 발전해 가는 과정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영화를 통해 알 수 있었듯이 전쟁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있었다. 전쟁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결국 미국은 독립을 이룩하고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반대하는 측은 독립을 이룩하기보다는 불평등한 세금 및 정책에 대한 불만과 영국의 시정을 요구하였다.서로 상반된 의견은 결국 다수결을 통해 미국이 전쟁을 수행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이 있는 것 같다. 조선시대에 붕당정치가 있었다.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통해 정치를 한다는 것이 기본 원리였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붕당정치는 갈등의 원인이였고 올바른 정책이 실행되지 못했고 결국은 조선이 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독립전쟁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서로의 입장을 달리했을 때 어떻게 의견을 수렴해 나갔을까? 서로의 입장차이를 이해하고 서로를 인정했을까? 모함을 하지는 않았을까, 힘이 강한 쪽이 약한 쪽을 강제로 제압하려들지 않았을까? 미국 역시 전쟁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서로의 입장을 달리했지만 ‘타운미팅’을 통해 충분히 서로의 의견을 표현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온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소수의 의견이라도 존중할 때 진정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시 미국은 식민국가였지만 미래 세계를 지배하고 민주주의를 가장 꽃 피울수 있는 저력이 있는 국가가 될 자격이 있는 나라인 것 같다.패트리어트에서 주인공 멜 깁슨은 처음엔 전쟁에 반대한다.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은 7명의 아버지(7명인지 6명인지...)이며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내용의 대사인데 영국과의 중요한 전쟁을 결정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주인공의 대사는 처음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였다. 영국과의 중요한 독립전쟁을 앞에 두고 한가롭게 자신의 아이들의 안위를 말한다는 게 좀 영웅적이지 못하다라고 해야할까? 대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해야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린 이런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정신을 배우려고 한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행복은 어느 정도 희생된다. 즉, 국가의 안위가 개인의 행복보다는 우선한다는 논리인데, 멜 깁슨의 대사를 보면 당시 미국 사회는 국가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주의 사상이 이미 뿌리 깊게 내려져 있지 않았을까?(개인적인 생각인데... 지나친 비약일수도 있음) 결국 멜 깁슨도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둔 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당시 멜 깁슨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미국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영웅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흘린 숭고한 피의 대가로 미국은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으니까...
미국의 선거제도와 의회< 목 차 >Ⅰ.미국의 선거제도1. 미국의 선거제도 특징2. 미국의 선거종류3. 대통령 선거의 단계4. 미국의 선거가 복잡한 이유Ⅱ.미국의 의회1.양원제1) 상원2) 하원2.미국의회 원내투표 방식3.의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Ⅰ.미국의 선거제도1. 미국의 선거제도 특징1) 미국의 선거제도미국의 선거제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미국은 직선제와 간선제를 섞은 형태로 먼저 각 주는 국민 투표로 선거인단을 뽑고 선거인단이 나중에 한곳에 모여 대통령을 뽑게 된다. 이러한 제도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미국 대통령선거 제도를 만들 당시에는 넓은 국토면적에 비해 교통시설과 통신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으며 국민들의 교육수준도 낮아서 대통령을 선출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으므로 좀 더 식견이 있는 선거인단을 뽑고 그들로 하여금 훌륭한 대통령을 고르자고 생각하여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또한, 미국은 국민의 권리와 이익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직접 선거를 하여 결정한다.2) 선거권(選擧權)“일정한 자격에 이르른 사람"은 선거에 나가기 전에 먼저 "등록"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로 인하여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교하여 투표율(投票率)은 9% 정도 떨어진다.3) 샘플 발럿 및 발럿 팜플렛유권자들은 매 선거마다 샘플 발럿(모의 투표 책자)을 우편으로 받는다. 이 책자는 선거일에 투표소에서 받는 투표 책자와 똑같은 것으로 선거일과 시간, 장소가 적혀 있으며 부재자투표 신청서가 뒷표지에 첨부되어 있다. 샘플 발럿은 복잡한 미국선거에 대비해 미리 읽고 신문 방송과 커뮤니티 공청회 등에서 정보를 얻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이 책자를 읽은 다음 각 항에 표시를 하여 투표장에 직접 가지고 들어가서 똑같이 생긴 본 투표책자에 옮겨 적을 수 있다.2. 미국의 선거종류미국의 선거는 크게 예비선거와 본선거, 특별선거, 그리고 소환선거로 4가지로 나누어진다.1) 예비선거매년 3월 첫번 대통령 선거 방식은 헌법과 법령, 각 정당의 당헌, 정치적 관례 등에 따라 결정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방식은 건국 초기부터 선거인단 제도를 통한 간접 선거 방식을 채택해 왔다.주민들은 각 주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상·하원수와 같은 수의 선거인단을 뽑고 그렇게 뽑힌 각 주의 선거인단은 해당 주에서 주민들의 표를 가장 많이 받은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1) 후보 지명 과정각 정당의 후보결정 과정은 유권자들이 각 후보들의 정치적 입장을 비교한 뒤 투표를 통해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수 있는 기회로써 이 과정에서 부각된 이슈들은 유권자들의 관심과 입장을 반영하며 대통령 유세에서 본격적으로 쟁점화 된다. 각 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에는 예비선거(Primary)와 코커스(Caucas)가 있다.예비선거는 유권자 투표를 통해, 코커스는 당직자 회의를 통해 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요즈음 대부분의 주에서는 예비선거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인 예비선거가 가끔 본선거와 거의 맞먹을 만큼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길고도 복잡한 이 예비선거 과정을 통해 아직까지 전혀 전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 산뜻한 이미지를 갖고 전국적 인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전통적으로 2월 19일에 열리는 뉴햄프셔 주의 Primary가 미국의 첫 예비선거로 인정되고 있으며 3월 첫째 화요일이 대세를 1차로 판가름하는 Super Tuesday로 통한다. 이 수퍼 화요일에는 뉴욕주를 포함한 큰 5-6주에서 같은 날 선거를 실시해 이날의 선거 결과를 보면 거의 누가 선두주자인가 결정되어 진다.2) 전국 전당대회선거가 열리는 해 여름에 개최되는 전국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공화 양당은 당의 대통령,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며 당의 선거공약 및 정책 방향과 목표를 제시한다.1952년 이후 전국 전당대회는 주로 7월이나 8월에 개최된다. 이 전당대회를 통해 예비선거 결과를 공식으로 집계해 후보를 선출하고 후보가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여 전당대기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당선된다 (당선 득표수 538명중 270표).그러나 선거인단은 교차투표(Cross Voting)를 할 수도 있다. 미국 50개주 가운데 24개주는 선거인단이 자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26개주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자당 후보에 대한 투표 의무를 규정한 24개주 가운데 19개주는 처벌 규정이 없다. 처벌 규정이 있는 5개주도 벌금 1000달러(오크랄호마)등으로 처벌이 경미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공식 취임일은 총선거 다음해 1월 20일 이다.※ 투표용지의 제작은 각 주와 각 시, 그리고 각 County마다 다른데, 크게 두 가지가 있다.① Party-Column Ballot (Indiana Ballot): 같은 黨 소속의 "대통령", "주지사", "연방상원의원" 등의 후보들이 한줄씩 나열되어 있다.② Office-Block Ballot (Massachusetts Ballot): Office(상자)별로 Block이 지어져서 "대통령 투표", "주지사 투표", "연방상원의원 투표" 따로 실시하게 된다.4. 미국의 선거가 복잡한 이유이렇게 복잡한 선거제도가 생겨난 배경은 바로 미국이 연방제 국가라는 특성 때문이다. 땅따먹기가 한창이던 초창기의 미국에서는 선거제도가 주마다 각기 달랐다. 각각 다른 법률과 군대를 갖고 화폐마저 따로 만들어서 쓰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주들의 특성은 유지하되 연방체를 만들어 공동으로 군대와 화폐도 보유하고, 주 간의 이해관계도 조율할 기능을 부여하자는 취지로 성립된 것이 미국이라는 국가다. 그런 배경 때문에 직접 선거도 아니고 간접선거도 아닌, 우리 주에서는 이런 후보를 밀기로 했다고 결정하는 Electoral College(선거인단)라는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또한, 한국과 달리 ‘통합선거법’이 없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피선자격과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규정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각 주의 권한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연방제 국가의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의안 심사가 가능해진다.. 또한 상하원에서 각기 상호 견제가 가능하므로 한쪽 의회를 점유하고 있는 다수파의 횡포를 방지할 수 있게 되고, 정부와 내각의 충돌시 조정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점을 살리고자 미국에서는 양원제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1) 상원미국은 연방국가이다. 연방국가는 연방을 이루는 각 주들이 그전엔 사실상 개개의 나라였기 때문에 이들 나라의 대표들이 연방국인 미국에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주대표 즉 상원의원을 뽑은 것이다.①각 주의회에서 선출한 상원은 6년 이기의 상원의원 2명씩으로 구성되어 전체수는 100명이며, 각 상원의원은 1표의 투표권을 가진다.②임기는 6년이지만 하원의원 선거 시 전체 의원의 1/3씩을 개선한다.③상원만이 가지는 권한에는 ‘권고와 승인’이라는 권한이 있는데, 조약의 비준에는 출석 상원의원의 2/3가 필요하다④상원은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들을 다루며, 하원에서 낸 탁핵안은 상원에서 심판한다.⑤상원의원들이 제1회 선거의 결과로 당선되어 회합하면, 즉시로 의원총수를 가능한 한 동수의 3개 부류로 나눈다. 제1부류의 의원은 2년 만기로 제2부류의 의원은 4년 만기로, 그리고 제3부류의 의원은 6년 만기로, 그 의석을 비워야 한다. 이렇게 하여 상원의원 총수의 3분의 1이 2년마다 개선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어느 주에 있어서나 주의회의 휴회 중에, 사직 또는 그밖의 원인으로 상원의원의 결원이 생길 때에는, 그 주의 행정부는 다음 회기의 주의회가 결원의 보충을 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상원의원을 임명할 수 있다.⑥연령이 30세에 미달하거나, 합중국시민으로서의 기간이 9년이 되지 아니하거나, 또는 선거 당시, 선출되는 주의 주민이 아닌 자는 상원의원이 될 수 없다.⑦합중국의 부통령은 상원의장이 된다.⑧상원은 의장 이외의 임원들을 선임하며, 부통령이 결원일 경우이거나, 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를 집행하는 때에는 임시의장을 선임한다.⑨상원은 모든 탄핵심판의 권한을 가진다. 이 목적을 위하여 상원이 소속되어 있어 입법활동보다 대표활동에 치중하는데 비해 입법활동을 주로 한다.현대국가에서는 상원도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의원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 조직에 의한 양자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상원이 귀족원 또는 원로원으로서의 신분적 색채를 점차 벗어나게 됨으로써 양원의 기능은 헌법에 따라 기능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국민대표는 일반적으로 하원이며, 각국에 따라 약간씩 상이하나 보통은 법률안·예산안의 선의권 인정, 의사결정에서 우월성 인정, 불신임결의의 제출권을 전속시키는 등 하원은 정치면이나 법률상의 권한면에서 상원보다 우위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4·19혁명 후 성립한 제2공화국 헌법에서 양원제를 채택하여 하원인 민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을 두었으나 5·16쿠데타로 해산되었다.하원의 정당조직① 의장(Speaker): 대통령직 계승순위가 부통령 다음의 2위. 의회에서 누구보다도 큰 권위를 가지고 있다. 보통 20년 이상 의원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선출.② 다수당 총무(majority leader): 의원총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 원내 지도자 및 부의장 역할.③ 부총무(whips): 원래는 의장과 협의하여 총무가 임명. 그러나 신참의원들이 결정권 갖기를 요구해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선출.④ 민주당 운영 및 정책위원회: 의장과 지역의 의원총회에 의해 선출된 30명으로 구성. 법안을 개발하고 세부화하는 일과 의원의 위원회 선정 등의 역할 담당.⑤ 민주당 의원총회(caucus): 전체 민주당 의원들의 회의체. 위원회 선정, 위원장 선출, 당 지도자 선출, 하원의 제반 규칙변경 등을 토론한다.2.미국의회 원내투표 방식미국 의회에서 실시되는 표결은 표결방식과 표결결과의 기록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표결방식으로는 구두표결, 기립표결, 전자표결, 지명표결 등이 있다. 기록여부로는 결과를 기록하는 표결(전파표결과 지명표결)과 기록하지 않는 표결(구두표결)이 있다.1) 구두표결(Voice Vote)의장 또는 위원장이 어떤 안건에 대해 찬반의사를 묻 있다.
REPORT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인가?과 목:한국역사의 이해담 당 교 수: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풀리지 않는 칠지도의 비밀1. 간 마사토모가 연 ‘판도라의 상자’일본 나라현 덴리시에 있는 이소노카미 신궁은 신무천왕이 나라를 평정하는데 사용했다는 신검을 모신 곳이었다.이 신궁에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금족지가 있고, 창의 일종인 6차모라는 신기한 물건이 있다고 전해져왔다. 이 물건은 특수한 상자에 들어 있는데 그것을 여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인 1873년, 산궁의 주지격인 간 마사모토는 금족지의 신고(무기보관창고)에서 이 상자를 찾아냈다. 상자 안에는 몸체의 좌우에 어긋나게 양날을 가진 각 세 가닥씩의 가지, 즉 여섯 가지에다 몸통 윗부분에 마련된 양날까지 모두 일곱 개의 검을 갖춘 6차모가 있었다. 이것이 칠지도이다.이 신성한 칼은 녹이 심하게 슬었으나 그 녹 사이에 반짝거리는 금빛을 확인하였다. 녹을 닦아내자 금상감기법으로 새겨진 글자들이 보였는데. 이것은 칠지도가 만들어진 내력과 제작한 연월일을 나타내고 있었다.2. 일본의 주장 - 칠지도는 백제왕이 바친 헌상품이다.간 마사토모가 해석한 칠지도의 내용을 보면, 그는 ‘태시’를 중국 서진(256~274)의 연호로 보면서 진 무제 4년인 268년에 맞추지 않고, 『일본서기』에 “백제왕이 왜왕에 칠지도를 바쳤다"는 기록에 맞추어 252년으로 해석하였다.그러나 또한 『일본서기』를 따르면 백제가 왜와 교통한 것은 신공 46~47년 사이이다. 이때 백제왕은 근초고왕이고 신공기 46~47년은 근초고왕 21~22년(366~376)에 해당한다.이 즈음의 『일본서기』에는 “우리나라(백제)엔 진귀한 보물이 많다. 귀국에 현상하려 생각하고 있으나 도로를 몰라 마음만 있을 뿐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이번 사자에 부탁하고 계속하여 헌상하겠다.” (366, 신공기 46)는 내용이 나온다.그로부터10년 뒤인 1883년, 중국 지안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이 발견되였다. 이 비문으로 인해 일본학계는 기존의 주장을 수정하여 “‘야마토 정권’이 신라를 치고, 낙동강 중류 이남의 7국을 평정하여 ‘침미다례’를 백제에 주었다.”고 기록된 『일본서기』를 근거로 백제왕이 백제가 일본 야마토 정권에 영원히 충성을 서약하는 증거로 칠지도를 만들어 바쳤다고 주장하였다.이와같이 일본학계가 칠지도의 내력의 근거로 삼고있는 『일본서기』는 그 자체가 신빙성이 없으며, 간 마사토모의 해석 또한 올바르지 않다. 원래 『일본서기』는 120년 정도 깍아내려야 우리나라 삼국의 연대에 부합될 만큼 조작적인 혐의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3. 한국의 주장 - 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이다.1963년 북한 김일성대학의 김석형교수는 ‘백제헌납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삼한 분국설’을 발표하여 논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학자들이 주장해온 태화라는 연호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중국의 연호가 아닌 백제 고유의 연호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삼한 분국설’은 한반도 삼한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종의 식민지인 분국을 세웠다는 것인데, 이 칠지도는 5세기 때 ‘황제’의 위치에 있던 백제왕이 ‘후왕’의 위치에 있던 ‘일본에 있는 소국의 백제왕’에게 하사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남한에서는 이병도 박사가 1976년 “태화라는 연호는 백제 고유의 연호가 분명하고 백제의 왕세자가 하위자인 왜왕에게 내린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 뒤 그 연대는 372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삼국시대의 금석문에서 중국의 연호를 사용한 예가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증거로 들었다.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영락연호는 물론, 백제 무령왕릉의 지석문에서도 황제에게만 쓰인 붕자가 보였으며 신라 진흥왕순수비에서도 태창연호와 짐자가 들어 있다. 이는 삼국이 모두 독자성과 주체의식을 드러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라는 것이다.4. 칠지도는 백제 근초고왕의 작품칠지도는 백제 근초고왕 때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에 제작 월일인 ‘6월 16일’ 즉 병오일에 해당되는 날자를 역산해보면 367년이 이에 해당된다. 근초고왕 재위 22년이 되는 해이다.근초고왕 24년인 369년에는 고구려 2만 대군이 침입했으나 5,000여 명을 잡아죽이고, 급기야 371년에는 고구려 평양성을 쳐서 고국원왕을 죽였다. 그야말로 이때는 백제의 국력이 최전성기였다. 그렇게 강국이던 백제가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 칠지도를 만들어 바친다는 것은 망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우에다 쇼죠가 1971년 주장한 바대로 ‘상위자’인 백제왕이 ‘하위자’인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일본서기』는 진구 49년(369년)에 왜가 가야의 일곱 나라를 정복하여 백제에게 주었고, 진구 52년(372년)에 이에 보답하는 뜻으로 백제가 구저(久低) 등을 사신으로 보내 칠지도와 칠자경을 비롯한 각종의 보물을 바쳤다고 전하고 있다. 이것이 칠지도에 관련된 단 하나의 문자기록이고 보니, 칠지도 명문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가 일본 중심적으로 창작·왜곡·윤색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한일 고대사학계의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구자들 중에 위와 같은 기술을 역사적 사실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왜가 가야를 정벌하였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백제가 왜에게 가야의 땅을 받았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기술에서 역사성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백제가 왜와 외교적 교섭을 시작하던 것과 관련된 전승이란 점뿐이며, 백제에 앞서 왜와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가야가 그 중개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따라서 『일본서기』의 기술은 4세기 중엽 백제가 가야를 통하여 왜와의 외교관계를 시작하였던 역사적 사실이 일본 또는 백제 중심적으로 꾸며진 결과이다. 즉 『일본서기』만으로 칠지도 명문의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동시대의 자료인 칠지도 명문을 기초로 『일본서기』의 내용을 바로잡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에세이과학번이름나는 미국 역사에 관해 잘 모른다. 책 혹은 영화, 또는 수업시간에 잠깐 배운 것을 제외하고는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비록 영화에 대한 감상문이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많이 부족 할 것 이라는 걱정스러움과 함께 에세이를 시작한다.이 영화의 장르를 분류 해본다면 역사물이면서 액션 혹은 전쟁 영화이다. 액션이나 전쟁 영화는 일부러라도 절대 보지 않는 나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보고 싶지 않아” 라며 영화를 거부했다.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내가 왜 다른 나라의 역사까지 알아야 하냐며 투덜대면서...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된 것 이라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챕터가 바뀔 때마다 세계의 역사가 짧게 언급되어졌는데, 이는 세계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함 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하지만 이 영화는 지루할지도 모르는 역사 얘기에 “벤자민 마틴” 이라는 한 개인의 얘기까지 덧붙여져서 재미있었다.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기념할만한 것 중 하나가 독립전쟁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한 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한 전쟁이었다.주인공 벤자민은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쟁탈전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 전쟁에서 뛰어난 전사로서 승리를 거두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과거를 참회하며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타운 홀 미팅이 열리게 되는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영국과의 싸움을 주장한다. 영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높은 세금과 억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벤자민은 조지왕에게 거절당하더라도 계속 간청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며 영국과의 전쟁을 반대한다. 여기서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 바로 독립전쟁의 원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들의 전쟁 목적은, 자신들의 조국인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목적이 우선이 아니었고, 세금문제와 같은 경제적인 이유였던 것이다. 역사를 공부 할 때 항상 가지는 생각,,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여기서도 만일 영국이 이들의 간청을 들어주었으면 세계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재 전 세계의 패권을 가진 미국이 영국의 것이었더라면,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 최강의 열강으로 계속 남아 있었을 텐데, 영국은 아깝지 않을까? 아니면 그 당시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나야만 했던 전쟁이었을까..이 전쟁은 결국 영국 본토의 영국인과, 영국의 식민지로 건너간 영국인들 사이의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아메리카 대륙도 영국의 것이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영국인이니까 본토에 있는 영국인들과 똑같이 대우해주고 똑같은 권리를 주어야지 조지왕은 왜 그렇게 가혹한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모든 역사 속 사건의 발단 중에는 “어머! 이래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거창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사건의 최소 발단은 모두 기본적인 상식이 어긋나는 데서 시작한다. 한마디로 나비효과 같다고나 할까. 나비의 날갯짓 같은 사소한 행동 하나가 엄청난 파장과 결과를 불러 오는 것처럼... 얼마 전 보았던 영화 “Gangs of New York”에서의 드래프트 폭동도 그러했다. 300달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돈 있는 부유한 사람들은 의무를 행하지 않아도 되고 가난한 이들은 전쟁에 나가야 한다니.. 분명히 잘못된 것인데도 행함으로써 상식이 깨어진다.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와서, 벤자민은 전쟁에 참여 하지 않지만 그의 큰아들 가브리엘은 독립을 지지하며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다가 부상을 입고 집으로 피신하는데 이때 악명 높은 영국군 대령 태빙턴이 등장해 벤자민의 둘째 아들을 죽이고 가브리엘을 스파이로 몰아 사형시키기 위해 데리고 간다. 벤자민은 죽은 둘째 아들과 끌려가는 가브리엘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간다.미국인들에게 있어 독립의 의미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만큼의 대단한 의미가 담겨 있을 텐데 주인공 벤자민이 자신의 아들들을 잃은(가브리엘은 사형에서 구했지만 영화 막바지에 태빙턴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복수감에 전쟁에 참여하여, 한 개인의 복수극으로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설정이 억지감이 든다. 그리하여 해리슨 포드가 이 역을 거절 했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러한 재미를 줄 플롯이 필요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순수하게 영국으로부터의 자유, 독립을 외치며 전쟁에 참가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주인공 벤자민과 같은 또는 다른 이유로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중요한 역사를 개인의 복수극이라는 플롯 안에서 사람들이 간단히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염려스럽다.그리고 영화에서 볼만한 장면중 하나는 영국군과 미국군과의 싸움 씬 이다. 그들은 허허벌판에서 정면 대결을 한다. 드럼 소리에 맞춰 영국군이 행진하면 미국군은 총을 쏜다. 영국군의 앞 열이 무너지면 바로 뒤쪽 열 에서 미국군을 향해 총을 쏜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미국군 첫줄은 쓰러진다. 아무런 방패 막도 없이 사람을 그저 총알받이로 쓴다. 그들은 영화 “트로이”의 고대 전사들처럼 갑옷(갑옷이 총알을 얼마나 견뎌 줄지는 모르겠지만)도 입지 않고 빨갛고 파란 멋진 군복을 입는다. 눈에 아주 잘 띄도록... 차라리 벤자민이 이끄는 민병대의 사복이 더 안전해 보이기까지 하였다.처음에 전세는 영국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이때 벤자민은 아들 가브리엘과 함께 민병대를 조직하고 그의 뛰어난 지략과 카리스마로 민병대를 우습게 아는 영국에게 크고 작은 싸움에서 승리하고 결국 역사대로 미국은 승리를 거두고 벤자민의 복수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다 타버린 마을을 다시 세우면서 그들은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가 도래했음을 알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JFK를 보고과학번이름“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라는 연설로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대통령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역대 최고 권력가 중에 존경하는 위인들을 뽑으라면 나는 세종대왕 이래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저번학기에 중급영어회화 수업에서 히어로(Hero)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었다. 그 당시 나는 존 F 케네디와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해 조사하는 동안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두 대통령의 태어난 년도가 1917년으로 같았고,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에 대선에 당선되어 1961년에 취임식을 가졌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0년에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961년에 5.16 군사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둘 다 암살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실로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예전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단순히 오스왈드라는 암살자에게 살해당했고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 사건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JFK 라는 한편의 영화를 통해 이 의문의 암살을 조정한 배후에는 아주 커다란 검은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나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통해 어떠한 배후세력들이 있었고 왜 그들이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이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검사의 조사를 근거로 하여 이 의문의 사건을 밝히려고 한다.이 영화는 흑백과 칼라의 조화 속에서 제작되어진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흑백부분은 1963년 달라스를 방문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퍼레이드 장면, 암살당하는 장면, 병원에서 치료받는 장면까지 예전의 필름을 그대로 도입해 칼라보다 사실적인 느낌이 들었고, 칼라부분은 검사 역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가 이 사건의 배후를 밝히려고 하는 장면들이었다.케빈 코스트너는 워렌 위원회가 주장했던 오스왈드 단독범행을 강력히 부인하고 그 뒤에 다른 배후세력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여러 배후세력들 즉 군수 복합체, CIA·FBI 국장, 마피아, 존슨 대통령 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검사는 이 사건의 결정적 증언을 해줄 사람들을 찾았는데 이들 모두 의문의 살해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이 검사는 결정적 증거 없이 국가를 상대로 대법원에 서게 되는데, 결국 패하고 만다. 이때에 그는 워렌 위원회가 주장했던 매직 총알에 대해 강력히 부인한다. 그가 주장한 가설을 살펴보면 혼자서 라이플총을 가지고 4발 중 3발을 정확히 저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워렌 위원회가 발표한 매직총알은 한발이 머리에 명중되어 팅겨 나와 목을 관통하고, 다시 그 총알이 가슴을 관통해 같이 타고 있던 주지사의 가슴을 관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문가가 아닌 모든 사람이 봐도 비상식적인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 사건은 오스왈드 단독범행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며, 검사의 말대로 그 뒤에는 실로 엄청난 검은 세력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다음으로는 존 F 케네디가 성장한 배경과 업적 그리고 왜 그는 의문의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가에 대해 조사해보려고 한다. 우선 케네디가의 조상들을 통해 케네디의 성장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JFK를 배출한 케네디가의 조상은 먹을 것이 없어 보스턴으로 건너온, 패트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다. 당시 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는 미국 사회의 최하층에 속해 있었으며, 온갖 멸시와 천대, 그리고 차별을 받는 계층이었다. 사회적으로 흑인보다도 비천하게 취급되었던 아일랜드계의 일가에서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케네디가의 총지휘자였던 JFK의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의 아버지 P. J. 케네디가 가르쳐준 “1등을 하라 2등 이하는 패배다.” 라는 가훈을 자식들에게 주입시켜 강한 경쟁의식을 심어 준 데에 있다. 또한 그 자신도 그러한 정신을 물려받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일랜드계 출신의 주영대사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JFK의 어머니였던 로즈 여사도 보스턴 시장 자리에 두 차례나 올랐던 아일랜드계 출신 피츠제럴드 존F(일명 ‘허니 피츠’)가의 장녀였다. 어려서부터 외국을 드나들었고, 훗날 ‘미국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이었지만 자식 교육에 있어서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쓰던 방법을 좇아 집에서 아이를 낳고, 모유로 길렀으며, 가르침은 엄하여 나쁜 짓을 저지른 아이에게는 즉석에서 매를 들었다. 또한 엄청난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스스로 용돈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검소하게 키웠던 것이다. 거기에는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아들에서 손자로 이어지는 공동운명체라는 정신이 형성되어 있다. 그 정신이 ‘케네디가의 인간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케네디는 가족중심주의 즉 가족 간의 엄청난 결속력과 조직력 속에서 성장해왔다.(오오마에 마사오미 2004년 10월 28일)다음으로 케네디의 업적을 보면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양심이자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했고, 뉴 프런티어 정신을 새로운 개혁 정책으로 내세워 사회 복지의 충실, 인종 차별의 폐지, 고도 경제 성장의 실현 등을 목표로 하여 열심히 노력한 대통령이다.(석 용 원 1998년 02월 10일)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의문의 총격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그 외에 케네디가의 사람들도 의문의 사고로 죽게 된다. 예를 들면 전투기 폭발로 숨진 JFK의 형,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은 JFK의 여동생 캐슬린과 아들, 동생 로버트 등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어 내려온 비극적인 가족사를 말한다. 이러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11년간이나 뉴욕타임즈의 편집장으로 지냈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클라인은 우연이 아닌 집안문제로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성적 문란함과 모험성향, 과도한 경쟁의식과 나르시시즘이 그 원인이 되었다고 말했다.(에드워드 클라인 2004년 10월 22일). 그의 의문의 죽음을 다룬 JFK라는 영화를 보면서 왜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통해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 보았다.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이유는 세계 1차 대전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군수산업체, 그리고 그 업체와 연관된 군부세력, CIA, FBI, 마피아 조직들의 연관성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월남전쟁의 확대를 거부했고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장착하자 이것을 평화적으로 철수시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에 반하는 군수산업체와 군부세력들은 그를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약 전쟁이 없고 세계가 평화적 상태로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군부세력과 전쟁을 일으켜 막대한 돈을 버는 군수산업체의 정체성이 약해지기 때문에 그들이 결탁하여 케네디를 살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월남 전쟁도 일찍 종식 되었을 것이고 얼마 전에 있었던 이라크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슈퍼 파워를 지닌 미국이 자기나라만 생각하는 고립적이고 국수적인 성향을 계속해서 가진다면, 전쟁은 앞으로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국의 독선적인 생각을 막기 위해 영국을 제외한 유럽나라들이 하나로 뭉쳐서 세계적으로 힘을 행사해 보려고 하지만 미국의 독단을 막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통일이 되어 중국과 일본 한국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가 하나가 된다면 중국의 어마한 인력과 일본의 자본력을 통해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초국가가 형성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