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17세 콜롬비아 소녀 마리아가 마약운반을 하며 겪는 우여곡절을 다루고 있다. 얼마 전 세계 코카인 밀매시장을 주름 잡아온 콜롬비아 최대 마약 조직 ‘노르테 델 바예’ 의 두목 디에고 몬토야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FBI 10대 수배범으로 10여 년간 미국 마약시장의 70%를 장악했고 1500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악명 높은 자라고 한다. 마약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극악무도한 이로 몰리는 우리 나라 현실에 비춰볼 때 이런 사람들은 얼마나 악질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는 과연 마약 운반책들이 손 쓸 수 없을 정도의 저질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였다.이 영화는 구성이 굉장히 탄탄하다. 사건 하나하나가 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필연적이다. 전체적으로는 열악한 생활 환경 때문에 마약 운반을 하게 되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구체적으로는 임신했기에 공항에서 x-ray 검사를 피하고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고, ‘언니처럼 끝나고 싶지 않아서’ 남자친구 후안과 헤어지고 브로커 프랭클린과 댄스파티에서 만날 수 있었다. ‘루시’ 라는 인물의 설정도 그렇다. 바에서 우연히 본 그녀를 버스 옆자리에 만나 안면을 틀 수 있었고 호텔 주소를 적은 종이를 잃어버렸기에 루시 언니의 주소를 알게 되었다. 루시의 죽음으로 사건은 더 복잡한 양상으로 치달아 이 영화의 결말까지 이른다. 인물의 측면에서도 강인하고 모험적인 성향의 마리아와 유약하고 어리버리한 블랑카가 적절한 대비를 이루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또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특히 마약을 포장하고 운반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기내 화장실에서 배변 후 알약을 골라내 치약을 묻혀 다시 목구멍으로 소화하는 장면이었고, 기억에 남는 대사는 하비에르가 ‘네가 운반하는 어떤 것이라도 도중에 잃어버린다던지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린 니네 집 식구들과 맞닥들이게 될 거야. 니네 할머니, 니네 언니 그리고 어린 파치토까지. 우린 정확하게 안단다. 62개 각각의 무게가 얼만큼 나가는지를.’ 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또 면접 보는 과정에서 하비에르가 마리아에게 소화는 잘 되는지, 대식가인지, 몸은 어떤지 물어보는 부분과 블랑카가 마약운반 1회에서 얻은 돈을 페소로 바꾸면 집 1채를 살 수 있다는 부분 역시 이 영화의 사실성에 더한다.이 영화는 ‘마약운반책’ 마리아도 평범한 인간일 뿐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행기에서 두려움에 질린 채 목걸이를 잡고 눈을 감는 장면, 하비에르에게 ‘제가 잡히면 어떡하죠?’라고 묻는 모습에서 우리는 여리디 여린 17세 소녀를 볼 수 있다. 자비를 들여 루시 시신 운송비를 대주는 부분, 아기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장면과 아기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해 주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 결말에서 우리는 그녀가 감정을 가진 또 하나의 인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그녀가 마약운반을 하도록 만든 것은 열악한 생활 환경임을 알 수 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조카 약값까지 책임져야 하는 17세 소녀 가장의 삶의 무게, 쥐꼬리만한 보수에 화장실도 자유롭게 못 가게 하는 열악한 작업환경, ‘집 빼고 다’ ‘빵 빼고 다’ 좋다고 할 정도로 지긋지슷한 일상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제목 도 마리아가 다른 세계에서 온 저질의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확대해서 많은 경우 범죄는 생활고 속에서의 극단적인 생존 노력일 뿐임을 보여주고 범죄자에 대한 편견을 허물려는 게 감독의 제작 의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감독은 이 영화가 마리아가 자기자신의 기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현실도피의 일환으로 미국 행을 선택한 그녀가 아기의 미래를 생각해 미국에 남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여러 궂은 일을 겪으면서 성숙해나가는 17세 소녀의 성장영화로 볼 수도 있겠다. 평소 관심 갖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준 완성도 높은 영화였다.
동화 속 세상으로의 도피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진실된 사랑을 다룬 영화이다.온갖 어려움을 다 극복한 후에야 단 둘이 된다는 극적인 설정만큼이나 이 영화에는 언뜻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동화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작품의 동화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형태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동화와 상당한 유사성을 갖는다. 우선 영화 전반에 걸쳐 상징이 가득하다. 음식부터가 그렇다. 띠따가 요리를 통하여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요리는 띠따의 분신, 감정 전달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한다. 또 촛불이 있다. 존은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습니다.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한 거죠.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라고 말한다. 띠따가 베드로와 함께하던 순간 촛불이 가득한 방에서 그녀는 성냥에 불을 지피는데, 이는 촛불이 인생의 진정한 원동력인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슬플 때마다 띠따가 하던 뜨개질, 헤르뚜르리스 언니를 떠나게 만든 붉은 장밋잎, 띠따와 존의 약혼식 건배 장면에서 잔이 한 개 깨진 점 모두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등장 인물도 , 에서처럼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마마 엘레나는 시종일관 계모적 이미지를 유지한다. 자식에게 무관심하고 못된 말로 상처를 준다. 2째 딸을 제외한 다른 자식을 차별하며, 보수적이고 강인한 과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언니 헤르뚜르리스는 반항적이고 개방적인 신여성상을 보여주며, 조언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진다. 띠따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봉건적 여인상이고, 존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선인의 전형이다. 스토리도 약간 상투적이다. 막내딸은 결혼 못하고 엄마를 죽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집안 전통, 사랑하는 하지 않는 이와의 결혼, 엄마의 비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모두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이다.여느 동화에서처럼 초현실적이고 환상주의적인 장치도 보인다. 로사우라 결혼식 날 하객이 띠따의 슬픔이 깃든 케잌을 먹고 단체로 구토하는 장면, 헤리뚜르리스 몸의 열기로 화장실이 불타는 장면, 마지막에 촛불이 가득한 방에서 베드로와 띠따가 얼싸안고 타 죽는 부분, 엄마의 유령을 설정한 점 모두가 상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띠따 출생시 바닥부터 테이블까지 눈물이 넘쳐흘렀고 거기서 소금 20kg을 채취했다는 설정 역시 동화적 방식으로 과장됐고, 띠따와 존의 마차에 화려한 무늬의 천이 끌리는 장면도 달리의 그림에서나 볼 법한 것이다.이외에도 ‘happily ever after’ 의 결말구조, 지나칠 정도로 예쁜 화면과 시적인 대사에서도 영화의 동화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의상, 결혼식 피로연 장면, 댄스 파티 장면 모두 재현이 아름답게 잘 되었다. 특히 장미를 이용한 메추리요리가 인상적이었다. 가장 ‘동화’적인 부분은 베드로가 로사우라와 동침 전 이 것은 쾌락과 성욕을 위함이 아니고 당신을 섬길 아이를 갖기 위함이라고 하느님께 선언하는 부분을 들 수 있다.한편 에는 동화와의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우선 결말이교훈적이지 않다. 진짜 동화라면 불륜을 성립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예쁜’ 이야기 외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음식을 통해 인생을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코와 엔칠라다를 바꿀 수는 없는 거라구요’, ‘수프는 신체적인 병이든 정신적 병이든 다 고칠 수 있다’, ‘칠면조 몰레를 준비하면서 띠따는 자신의 살갗에 닿는 불과 같은 접촉이 물질의 성분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밀가루 반죽이 어떻게 빵으로 만들어지는지를 경험했다. 사랑의 열기를 체험해보지 못한 영혼은 생명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 그 예이다. 또 동화에서는 미화했을 법도 한 당시 사회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혁명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 띠따가 보수적인 카톨릭 사회에서 사랑과 도덕 관념 사이에 고민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어른들은 빡빡한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을 때 동화를 찾는다고 한다. 즉, 동화는 어느 정도 현실도피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띠따의 불운했던 삶, 당시 혁명으로 어수선했던 아직은 봉건적인 멕시코 사회, 그리고 이 영화가 그녀가 직접 쓴 ‘요리책’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왜 이 작품이 동화적 성격을 갖는지 이해할 수 있다. 따뜻한 코코아 한잔의 이미지를 남기는 영화이다.
을 통하여 본 한국 마술적 사실주의의 한계와 가능성1. 서론임철우의 작품 은 황석영의 등 과 더불어 한국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 환영과 혼령, 초자연적 현상 등 비현실적 요소가 현실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면서 우리 근대사의 비극적 경험과 민족 특유의 의식세계를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문학 기법으로서 ‘소설의 죽음’이 논의되는 현대 문학계에 새로운 소설 미학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문학계에서도 마술적 리얼리즘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는 요즈음, 을 통하여 한국적 마술적 사실주의의 가능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져서 한국형 마술적 사실주의의 한계에 주목하였다.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속 마술적 사실주의의 한계를 논해보고 ‘한국형 마술적 사실주의’ 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보겠다.2. 마술적 사실주의의 이해가. ‘마술적 사실주의’의 어원마술적 사실주의 (Magical Realism)는 하나의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C%B8%ED%95%99_%EA%B8%B0%EB%B2%95&action=edit" o "문학 기법" 문학 기법으로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의미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독일의 예술 평론가 프랑크 로(Frank Roh)가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1920%EB%85%84%EB%8C%80" o "1920년대" 1920년대 종래의 사실 표현을 뒤엎는 화가들을 이르기 위해 처음 만들어냈다. 이 개념은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20%EC%84%B8%EA%B8%B0" o "20세기" 20세기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83%81" o "노벨 문학상" 노벨 문학상 수상자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F%B8%EA%B5%AC%EC%97%98_%EC%95%99%ED%97%AC_%EC%95%84%EC%8A%A4%ED%88%AC%EB%A6%AC%EC%95%84%EC%8A%A4&action=edit" o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가 자신의 소설들이 마술적 사실주의 양식을 사용한다고 정의한 후로부터 널리 쓰이게 되었다.나. 개념과 효과마술적 사실주의를 한 가지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다양한 쓰임새를 살펴보겠다.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가장 어려운 점은 사실과 환상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었다.” 라고 말한 적 있다.이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본질을 잘 드러내 준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환상과 현실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문학기법이다. 이 기법은 시적인, 때로는 환상적인 느낌까지 드는 글을 인간 존재의 실존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혼합시킨다. 이 기법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화자가 작품 속 사건에 대해 보이는 태도인데, 이들은 세상사의 자연스런 법칙에 어긋나는 놀라운 사건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나아가 마술적 사실주의는 초자연적 현상, 혹은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채 현실에 대한 관습적인 시선에 반대되는 그 모든 것을 말한다. 많은 경우 초자연적 요소는 서구의 합리적 이성과 공존하는 원시적. ‘마술적인’ 토착 신앙에 기초한다. 즉 마술적 사실주의는 작가가 익숙한 현실의 세상에 바탕을 두고 토착신화와 미신을 차용함으로써 우리가 보통 인식하고 있지 못한 삶의 또 다른 차원을 볼 수 있게 해준다.이 기법은 다양한 문화집단의 믿음과 미신이 독특하게 혼합된 것으로, 현실을 묘사하는 데 있어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인간의 외적 측면과 내적 요소를 혼만 존재하는 특수한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아래 글을 살펴보자.이것은 유럽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3세기 이전에 이단 심문관들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럽 소설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분명한 의도를 가진 검열 행위였지만 참으로 기이한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일단 소설이 제거되자 소설의 체제(다른 것은 똑같다고 할 때)가 유럽보다 빈곤해지기는커녕 훨씬 더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유럽과 달리 그렇게 됨으로써 모두 휩쓸어버렸을 다른 모든 형식들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라틴아메리카에는 ‘소설의 금지’라 하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이 존재했고 이로 인해 설화, 민담, 전설 등 다른 형식의 글들이 온전히 전해지게 된 것이다. 즉 근대화 되기 이전의 샤머니즘적 요소들,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근대적 이성이 자리잡기 이전의 요소들이 하나의 떳떳한 문학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제 한국의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마술적 리얼리즘이 중남미의 특수한 역사적 토양 위에서 탄생한 것이고, 어떤 문화적 산물도 그것이 생성된 배경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고 할 때,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있었는지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딱 잘라 말해 한국에서 외래 소설이 금지가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처럼 설화, 민담, 전설 등 다른 형식의 글들이 잘 보존되기도 않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적도 없었다. 한국의 근대는 지나치게 단절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전통에 대해 유난히도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이처럼 마술적 사실주의의 탄생 배경과 동떨어진 한국 사회에서 이 것이 자연스럽게 적용되기는 애초부터 힘든 것일 수 있다.나. G. 마르케스의 그늘은 마술적 사실주의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은 ‘모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래에서 그 구체적 예들을 살펴보자.가장 눈에 띄는 점은 ‘영도’라는 섬의 설정이다. 글쓴이는작품의 서사적인 면을 포함한 플롯으로 부엔디아 집안 인물들의 100년의 걸친 고독과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고독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어서 의 제목이자 공간적 배경인 백년여관이 있다. 많디 많은 이름들 중에서 여관 이름을 백년으로 택한 점이나, ‘백년의 외로움’이라는 대사를 소설 속에 차용한 점에서 이 마르케스로부터 갓 이식해 온, 겉도는 느낌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이 외에도 에 나오는 벚꽃잎에 의한 꽃비 역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사망시 내리던 꽃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듯하고, 이승과 저승이 공존한다는 기본 발상도 비슷하다. 결국 한국 현실에 맞는 새로운 마술적 사실주의를 추구했다기 보다는 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상당 부분 빌려왔다고 말할 수 있다다. 다양성의 문제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다양하게 표현되지 못한다. 우선 소설에서 이용되는 요소가 그 수가 적고 반복적이다. 푸른 손,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 혼령들, 굿, 동물들이 보여주는 기이한 행동들, 빛깔을 띤 눈, 꽃비, 300년된 은행나무 이 정도가 전부이다. 이 중에서도 푸른 손의 이미지와 저승과 이승 사이에 묶여 있는 원령들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고 나머지는 가끔 등장하는 수준이다. 몇 가지 이미지만 반복적으로 차용되다 보니, “마술적 사실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신비감, 상상력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마술’이라기보다는 책에서 반복 강조하는 하나의 기억할거리 정도로만 인식된다.마술적 사실주의가 표현되는 양상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 사용되는 장치들이 다양하지도 않거니와 사용되는 맥락은 더더욱 비슷하다. 대부분의 마술적 리얼리즘 장치들은 샤머니즘의 맥락에서만 사용된다. 에서 마술적 사실주의가 샤머니즘 외에 주기적으로 순환되는 가족 구성원의 운명(이름이 같은 성원 간에 운명이 흡사하다), 사회적 금기(근친상간, 돼지 꼬리 달린 아이), 비현실적인 인간 유형(자석, 연금술 등에 미쳐 집안을 파탄내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등), 불가능한 인간 행동(불면증이 입에서 입으로 수용이 필요하다. 이는 외래 문명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현실에 적합하게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 이론의 장점을 솎아 내어 우리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재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3. 나, 3.다 에서 볼 수 있듯이 남의 문화를 억지로 끌어와 접합한 듯한 인상을 준다.김용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1940년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초현실주의의 영향으로 그들의 민중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구술성, 경이성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자각한다. 주변부에 머물러 있으며 항상 서구 문화 따라잡기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던 그들에게 초현실주의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도록 해주었고 그 속에서 탄생한 것 중의 하나가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술적 사실주의는 라틴 아메리카만의 고유한 문학 양식이 아니라 소외된 곳, 낙후된 곳에서 중심 문화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다 자신의 문학 전통, 즉 민중문화적 전통으로 회귀하는 모든 사람들, 모든 작품들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마술적 사실주의가 남미만의 문학 양식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중심문화에 열등감을 느끼다가 자신의 문학 전통으로 돌아온 모든 작품일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남미의 오리지널 마술적 사실주의’ 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우리의 역사문화적 전통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지금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그런 것처럼, 한국식 마술적 사실주의도 전세계 소설 문학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참고문헌임철우, , 서울: 한겨레신문사, 2004.G. 마르케스, , 안정효 옮김, 서울: 문학사상사, 2007.김용호, , , 14(2), 2001, pp. 83-111.김형중, , , 310, 2005.05, pp. 78-82.마술적 사실주의-위키피디아(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B%A7%88%EC%88%A0%EC%A0%81_%EC%82%AC%EC%8B%A4GE 6
역사에 남는 진정한 승자는 1970년대 말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한 ‘죄의식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부인’ 이 입양한 딸 가비의 출생의 비밀을 쫓아가면서 알게 되는 ‘비공식적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역사는 살인자가 쓰는 것” 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역설적 제목의 이 영화는 이 대사를 포함하여 작품 전반에 걸쳐 역사의 본질에 관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본인은 역사의 진실된 전모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점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흔히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말한다. 어떤 사건의 여러 측면 중에서 승자에게 유리한 부분만이 역사로 남는다는 것이다. 가령 조선왕조실록은 왕실 정통의 입장에서 광해군을 폭군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서자로써 권력 투쟁의 패배자이지만 깨인 사고방식을 가진 실력자였던 그를 일방적 관점에서만 평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승자는 역사를 조작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군부 독재하에서 민주화 운동가였던 모레노가 군부에 의해 살해됐다는 가설이 유력했지만, 여느 공식 자료에서도 이를 부인하였다. 이 외에도 치밀하게 조작된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교과서 및 여러 나라의 공식 출판물에 실려 한국의 정식 역사로 오인되고 있다.하지만 는 위의 주장을 반박한다. 역사의 숨은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군부가 자신들의 행동을 역사로 정당화하려 해도 ‘5월 어머니회’의 꾸준한 데모, 신문의 실종자 섹션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군부가 정권찬양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을 세뇌시키려고 해도 학생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반군부, 민주화 열풍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진실을 반드시 밝혀진다’는 명제를 가장 잘 뒷받침해주는 것은 알리시아의 변화 과정이다. 그녀는 요즈음 학생들이 불온하다고 느끼며 역사책이 말하는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던 보수적인 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다. 학생들이 현정부를 비판하거나 그녀의 교과서적인 수업에 반발을 하면 어김없이 군부 편을 들던 알리시아였다. 이런 그녀가 가비의 출생비밀을 쫓는 과정에서 실종자의 아이를 허락 없이 팔거나 유산시키는 등 역사의 어두운 측면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는 역사 선생님의 역사관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무엇이 역사의 본질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이 영화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갖고 있다. 우선 인물 설정이 그렇다. 알리시아와 로베르또가 효과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군부 독재의 하수인이자 ‘공식적 이야기’의 수호자라고도 할 수 있는 로베르또와 ‘비공식적 진실’에 점점 접근해가는 역사 선생님 알리시아의 대립적 설정을 통해 역사의 실제를 보여준다. 로베르또가 고발해 감옥에 가게 되는 알리시아의 친구 안나는 아르헨티나 역사의 산 증인으로써 이야기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플롯도 눈여겨볼만하다. 주인공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기득권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딸이기 때문에 주제가 극적으로 표현된다.마지막 장면에 남편의 눈물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자신이 그토록 덮고자 했던 가비의 출생비밀을 아내가 알아내자, 그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다. 부모형제에게까지 냉혈한, 교활한 이기주의자라고 비난 받는 로베르또도 결국 역사의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에 남는 진정한 승자는 그 순간의 승리자, 세력가가 아니라 바로 없앨 수 없는 ‘진실’임을, 이 영화를 통해 주장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양심과 직무, 정치외교적 입장과 사회적 정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로드리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사람을 죽인 후 그의 표정은, 살상을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인디언을 보호하겠다는 정의감 사이에 고민하던 그의 내면을 역력히 드러내 준다. 이렇듯 이 영화는 아슬아슬한 선택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18세기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국경지역은 스페인/포르투갈로부터 이주해온 세력과 토착 인디언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스페인 예수회 신부들은 인디언을 개종시키는 한편 개척민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한다. 이 때 로드리고는 악명 높은 노예상이었는데 인디언들을 학대하고 의미 없이 살아가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애정문제로 그의 친동생을 죽이게 된다. 이를 계기 삼아 그는 회개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자신이 노예로 잡아 팔던 인디언 과라니족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그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집을 지으며 바디 페인팅까지 하면서 그는 점차 동화돼간다. 나중에는 선교회의 신부가 되어 인디언들을 위한 ‘지상낙원’을 건설하는데 전념하였고 자신을 여기에 데려와 준 가브리엘 신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행복도 잠시, 스페인/포르투갈의 영토 분할 문제로 선교회가 위치한 폭포 위 지역이 신부들을 지원하지 않는 포르투갈로 넘어 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은 신부들에게 그 지역을 당장 떠나라고 명하는데, 이런 무의미한 권력분쟁에 휘둘려 소중한 것, 옳은 것을 잃을 수 없다고 믿은 선교회 신부들은, 명령에 불복하고 인디언의 편에서 싸우게 된다. 당연히 최신식 장비로 무장한 스페인/포르투갈 군대와 기껏해야 총 3자루와 화약 조금, 칼과 창 밖에 없는 인디언 세력이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몰살당하듯이 하였고, 신부들도 다 순교했지만 마지막에 추기경의 편지에서처럼 ‘죽은 건 그들이지만, 실제로 산 자도 그들이다’.영화에서 ‘우리 중 누구도 여기에 안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18세기 당시 선교사들도 실제로 저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까? 그들은 자신이 원주민에게 선진문명을 가르쳐 주고 하느님의 은혜를 입혀 준다고 믿겠지만, 그런 것 없이도 원주민들은 몇 백 년 동안 잘 살고 있었다. 그들은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나름의 방식이 있었고, 독자적인 종교와 문화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선교사들은 더 많은 개척민, 전염병, 자연 파괴, 학살을 불러오기만 했다. 그 당시에 문화 상대주의라는 개념을 그들이 알았다면, 우리가 지금 아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영화에서 서구문명과 선교사 세력이 너무 미화되서 나온 반면 기존의 과라니족은 완전한 야만인처럼 묘사된 것이다. 나름의 생활체계를 갖고 있던 과라니족이 그렇게 쉽게 개종하고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흰 옷을 입은 채 성당에서 찬송가를 불렀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과라니족은 토기제작에 매우 뛰어나며 샤머니즘, 애니미즘 신앙을 갖고 있고 주술사를 숭배하여 그들의 뼈를 예배 대상으로 삼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만 보고서는 절대 유추할 수 없는 정보들이다.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서구적인 요소의 묘사보다 이런 면에 신경을 좀 더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사 세력에 대한 존경심도 든다. 일단 낯선 땅에서 죽음을 각오한 채 전도와 봉사에 힘쓰는 그들의 모습은 숭고함 그 자체였다. 또 그 당시에는 종교도 정치색을 강하게 띄어서 추기경처럼 정의보다 정치적 명분을 택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음에도 대담한 선택을 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영화였고, 21년도 작품임에도 화면이 아름답고 구성이나 연출이 뛰어났다. 한번쯤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