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1.대각성 운동과 미국 기독교……………………………………………12.요나단 에드워즈와 제1차 대각성 운동……………………………2가. 부흥운동의 시작…………………………………………………2나. 요나단 에드워즈의 생장과 교육………………………………2다. 대각성 운동의 배경……………………………………………3라. 요나단 에드워즈와 대각성운동의 시작………………………4마. 대각성 운동의 쇠퇴……………………………………………5바. 침례교회의 부흥……………………………………………63.요나단 에드워즈의 부흥 사상………………………………………64.대각성 운동이 미국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7가. 긍정적인 면…………………………………………………………7나. 부정적인 면…………………………………………………………9결론……………………………………………………………………9참고문헌……………………………………………………………………111. 대각성 운동과 미국 기독교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경건주의 운동이 발흥해서 영적 갱신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비록 시기적으로 뒤지긴 했지만 미국에서도 이와같은 운동이 뉴잉글랜드를 중심을 발흥했다. 1720년대 뉴잉글랜드에 발흥한 소위 제 1차 대각성운동은 미국 독립혁명이 한창이던 1770년대까지 반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대각성 운동은 신대륙의 각성운동이 대륙의 경건주의 운동의 여파로 발흥한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적어도 그 기원에 있어서 후자가 전자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미국교회의 가장 큰 특색은 식민지 시대부터 종파주의 혹은 교파주의(denominationalism)였다. 미국 기독교의 교파주의는 종교적 다원주의를 필연적으로 초래하였고, 종교와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법률로 보장 될 수 있도록 정신적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이는 다음과 같다.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즉 모두가 양심에 자유에 기초한 것이다. 부정적인 면은 교파주의는 연합적 사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의 기독교는 미국의 중요도에 비해 연구성과가 부족한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데 말해 학회가 조직되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부터 대각성 운동에 대한 여러 학위논문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본 소고는 요나단 에드워즈 중심의 대각성운동을 고찰해 보고 그의 사상적 영향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2. 요나단 에드워즈와 제1차 대각성 운동가. 부흥운동의 시작대각성 운동이 1734년에 시작되기 전에 이미 1720년 중반 중부식민지에서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부흥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독일 화란 개혁교회 목사 테오도어 야콥 프렐링호이젠(Theodore Jacob Frelinghuysen. 1691-1748)이었다. 그는 화란 개혁 교회 목사로 시무 당시, 미국의 화란 개혁 교회는 형식주의에 빠져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프렐링호이젠은 예배와 종교의식에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고 내적인 변화의 체험과 성결과 생활이 중요함을 가르치는 한편 교인들이 성찬식에 참여 할 수 있 는 자격기준을 엄격히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6년만에 결실을 보게 되어 1726년부터 레리턴밸리를 중심으로 미국의 화란 개혁교회에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나. 요나단 에드워즈의 생장과 교육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1703-58)가 태어난 해는 존 웨슬리(Jhon Wesley, 1703-1791)가 태어난 해와 같다. 요나단 에드워즈가 미국에서 부흥운동을 시작한 것이 1734년이고 웨슬리가 영국에서 부흥운동을 시작한 것이 1738년이었다. 그리고 독일의 경건주의자 진제도르프9Zinzendorf, 1700-1769)가 모라비아 형제단을 창설한 것이 1727년이다. 이렇게 볼때 18세기 전반은 부흥운동의 시기였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었다.요나단 에드워즈는 뉴잉글랜드에 속하는 커넥티커트 식민지의 원저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디모데 에드워즈는 회중교회 목사였고, 어머니도 회중교회 목사 솔로몬 스타더드의 딸이었다. 요나단은이 벌어졌다. 토레이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뉴잉글랜드의 정신은 변화되었고 시대의 죄악상으로 심히 부패되어있다. 교만, 세상중심, 강점주의, 위선, 형식주의, 불결, 예배의 타락이 만연하여 있다. 교회안에서 성찬식의 거룩함이 사라지고, 주일을 지키지 않으며 예배 시 졸고, 가정에서 성경을 잃지 않고 교인들 사이에 음담패설이 난무하여 서서히 청교도주의는 이성주의에 굴복해 갔다. 뉴잉글랜드에는 입으로만 예배하는 종교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3) 사회?경제적 배경18세기 초부터 비영국게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와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들이 곳곳에 정착하여 지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인구성장과 경제분화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였다.초기의 식민지 마을은 밀집된 주거형태와 강력한 교회의 권위를 기초로한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뉴잉글랜드의 인구팽창과 도시 발전은 주님과 교회의 물리적인 거리를 넓히는 결과를 낳았으며 새로운 교회와 그 주변에 모인 사람들로 구성된 또 다른 마을들을 생성시켰다. 인구증가에서 비롯된 토지 부족은 마을 구성원들이 이탈을 야기했으며 이탈한 가족들은 새로운 마음들을 개척하였다. 늘어난 마을들 간에 대립이 심화되었고 새로 개척된 마을에서는 자유로운 사회분위기가 생겨났다.보스턴, 뉴욕, 로드아일랜드 같은 대도시들의 출현도 식민지의 세속화를 촉진하였다. 대도시들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유포되었고 신문과 잡지등이 유통되었으며 사람들이 모여 담화를 나누는 장소게 제공되어 지적 영향력의 행사가 가능했다.라. 요나단 에드워즈와 대각성운동의 시작“냉랭하고 무관심했던 기나긴 시절이 지나자 마자 대각성운동이 맑은 하늘에 몰아치는 천둥 번개와 같이 잠자는 교회를 뒤흔들었다.” 이는 뉴잉글랜드의 한 목사가 남긴 기록이다. 대각성운동은 요나단 에드워즈의 목회기간중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그 중 첫 번째 영적대각성은 그가 세 번째 목사로 부임했던 노댐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당시 마을의 상황을 에드워이 설교 제목은 다음과 같다. 첫째설교는 이신득이의 의미, 둘째는 이신득이의 가르침이 진리 라는 증거에 대해서, 셋째설교에서는 칭의와 복음적 순종파의 관계에 대해서, 넷째설교에서는 이신득의에 반대하는 견해들을 반박하는 설교, 다섯째는 칭의 교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설교를 하였다. 그는 설교를 통하여 뉴잉글랜드 지역에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다.특별히 에드워즈는 설교를 통해 죄의 회개를 촉구하였는데 그가 설교할 때 모든 사람들이 지옥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음을 느끼며 비참한 심정에서 소리내어 울부짖었기 때문에 조용하기를 기다리기 위해 여러차례 설교를 중단하기도 했다.대각성의 불을 붙인 에드워즈의 설교를 보고 어떤 비평가들은 그를 ‘지옥의 징벌’에 관한 설교를 하는 심판의 설교자, 저주의 설교자로 혹평했다. 그러나 당시의 활발한 주류 거래로 인한 방탕과 사회풍조, 부정한 노예제도, 남녀간의 부도덕한 성적타락과 신앙의 무관심 등의 사회상황과 영적인 무관심무감각을 깨뜨리기 위해 그가 생활 속의 추악한 치부를 드러내며 양심에 호소하였던 사실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마. 대각성 운동의 쇠퇴1742년 부터는 대각성의 불길이 현저히 꺼져갔다. 에드워즈는 이에 대해 “1742년 여름에 신앙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 시들해졌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까지는 이전의 특별한 역사가 계속되었다”라고 언급하였다.요나단 에드워즈와 죠지 휫필드등이 일으킨 부흥운동이 18세기 미국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주었지만 이에 맞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예배의 엄숙성을 훼손시키고 진정한 경건과 학문대신 감정만을 부채질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때 미국 회중교회는 구파와 신파로 분열 하였는데, 구파는 부흥운동을 반대하는 파였고, 신파는 부흥운동을 찬성한 파였다. 에드워즈는 당연히 신파에 속하였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신앙적 체험이나 확신을 중요시하고, 그래서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성찬 예식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구파의 반발을 일으켜 1750년 요나단 에드워즈를 노드햄턴적이었다. 그런 현상을 청중들이 모방하면서 집단적인 광란상태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대각성운동의 여러현상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결론지은 사람들이 있었다. 1742년 부흥을 반대하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나 격론이 벌어졌는데 89장이나 되는 익명의 문서가 출간되어 부흥운동을 광신행위로 치부하며 성령의 역사가 아님을 강변하기도 한다.이에 에드워즈는 설교를 통해 대각성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구체적을 상세하게 입증하였다. 이렇게 하여 대각성 운동의 성령역사가 부흥신학으로 체계화되었다. 그의 저술들은 하나님의 역사로서의 신앙 부훙에 대한 신학을 담고 있었다. 그의 부흥신학 설명은 에드워즈 시대전에 발표되었던 어떤 것보다 영속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에드워즈는 이로써 오늘날 복음적 사고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다.에드워즈의 부흥사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첫째, 신앙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잠든교회르 각성시킨다. 회개의 촉구에 열매 맺는 삶으로 인도되는 것이 부흥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부흥의 핵심적 요소이다.둘째, 신앙부흥은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들 중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성령을 통해 만국을 다스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성취된다. 신앙부흥을 통해 그리스도의 지배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목적이기도 하다.셋째, 신앙부흥은 하나님의 역사들 중 가장 영광스러운 역사이다.넷째, 신앙부흥을 위해서는 이를 갈망하는 특별기도가 필요하다.4. 대각성 운동이 미국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가. 긍정적인 면1) 미국형 칼빈주의 형성요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 운동이 미국교회에 가져다 준 가장 두드러진 영향은 미국형 칼빈주의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청교도 선조들의 신앙을 계승하면서 구파와 신파의 신학적 입장을 하나로 통합한 새로운 칼빈주의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결코 전통적인 칼주었다.
아모스(????; Amos) 1장 주해와 적용- 진멸이상의 복음 -서론아모스는 요나,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과 함께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선지자이며 특히 남 유다왕국 출신으로서 북 이스라엘왕국에서 선지사역을 수행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남동 쪽에 위치한 드고아 지방 출신으로서 뽕나무 재배와 양을 치는 미천한 목동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예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상당한 식견과 문학적 교양을 지닌, 즉 뽕나무 재배와 목축을 하는 부농이었는지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선지 사역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이 아모스를 ‘양의 뒤를 따르는 데서’ 불러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을 맡기셨다는 사실이다. 즉 그의 예언 사역은 오직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은 종교 지도층마저 이용되고 상업화한 당시 아모스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는 참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음을 뜻한다.BC 722년 BC 605, 598, 586년 BC 536앗수르에게 멸망 바벨론에게 유다 포로로 잡혀감 바벨론에서 귀환아모스 에스겔 다니엘호세아 (BC 8세기)이스라엘(여로보암)통일왕국시대유다(르호보암)요엘 이사야 미가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BC 9세기) (BC 8세기) (BC 7세기) (BC 6세기) (BC 5세기)주변국가들 오바댜 요나 나훔시리아 시대(아람) 앗수르 시대 바벨론 시대 메대/바사 시대BC 732 BC 612 BC 539시리아 멸망 앗수르 멸망 바벨론 멸망 BC 331메대/바사 멸망[그림 1] 아모스의와 주변 국가들과 관계아모스 1장 1절에 보면 아모스의 예언 사역 시기를 가리켜 유다왕 웃시야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때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이 두 왕은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인 다윗-솔로몬 시대의 영토에 버금가는 영토확장을 이룩하였고 또한 두 주요 교역로 비아 마리스(Via maris)와 킹즈 하이웨이(King's Highway)를 장악함으로서 막대한 부가 이스라엘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10)가사의서너가지 죄로 인하여부르짖는 하나님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저가가로되열방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아모스 1장의 개관내용 분석과 주해이스라엘 대하여 묵시 받은아모스는 1:1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예언한 시대가 언제인지 밝히고 있다. “유다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전 2년에 드고아 목자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아모스는 시대적으로 이사야보다 약간 앞서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가 본격적으로 예언활동을 한 것은 웃시야왕이 죽던 해 부터이다. 그런데 아모스는 웃시야 왕 시대에 이미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남쪽에서 이사야가 말씀을 전했다면 북쪽에서는 호세아와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세아는 이스라엘 출신이지만 아모스는 남쪽 유다에서 파견된 설교자였다.아모스가 말씀을 선포한 대상은 북쪽 이스라엘이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신앙을 잃고 그들에게서 참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종교적 특성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자기백성으로 사랑하고 계셨을뿐 아니라 그들이 바른 말슴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치유하고 받아들일 마음을 품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제라도 말씀에 반응을 보이면 기쁨으로 회복시킬 준비를 하고 계셨다.아모스는 자신을 “드고아 목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예언 활동을 직업으로 삼고있는 전문적인 선지자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남쪽 유다 드고아의 목자인 아모스를 선지자로 삼아 북쪽 이스라엘로 보내신것은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인가? 그렇나 북쪽 이스라엘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에 있는 이 평신도 사역자를 보낸 이유는 북쪽에 있는 선지자들은 직업적인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직업적인 선지자들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은 실상 사자가 그 먹이를 찢듯이 곧 무서운 심판으로 역사 속에 개입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위협적인 말씀이었다.우리를 더욱 당황케하는 사실은 이 무서운 심판의 대상에 열방 뿐만아니라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선택받은 민족도 아니며 오히려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열방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별히 선택된 이스라엘이 바로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전혀 기대 밖의 일이다.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전혀 기대 밖의 일을 행하시는 이유, 즉 그의 친백성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에 대해 첫째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배척하고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며, 두번째로 그들이 “거짓 것”(우상)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암 2:4). 하나님의 율법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음으로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친백성으로 삼으실 때 이 하나님 왕국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살아야할 도리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따라서 이 율법을 순종치 않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순종치 않은 것이며 이 율법을 배척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요 그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은 “거짓 것”에 미혹되어 우상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았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게 된 이유였다.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협용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반드시 행동이 그 뒤를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아모스는 그의 말씀을 부르짖는 사자의 소리에 비유하고 있다.사자의 소리가 어디에서부터 들리고 있는가?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다. 지금 북쪽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음성을 발하고 계신다.사자의 소리는 늘 두렵지만 이 소리를 들을때 다. 이때의 불은 전쟁의 참화를 상징한다 → “앗수르라는 무자비한 강대국에 의해 수 많은 국가가 전쟁의 와중에서 망하리라”이제 구체적인 심판과 더불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그의 공정하신 심판의 진행으로 더욱 강조된다. 아모스의 사역이 이스라엘과 그 주변국에 대한 구체적인 미래의 심판들을 선언키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은 심판의 예언을 통해 그 정확성을 증명해 준다.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주변다음과 같은 동일한 기본형식으로 시작된다.“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1:3, 6, 9, 11, 13; 2:1, 4, 6)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주변국가들 위에 내리는 일령의 심판들이 선포된다. 이 심판의 소용돌이는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뇌성소리와 함께 점점 이스라엘로 접근된다. 아모스 1장에는 심판을 받게될 여러나라가 나온다. 1:3에 다메섹, 1:6에 가사, 9절에 두로, 11절에 에돔, 13절에 암몬이 있다. 국제적인 규모의 죄가 실린 목록과 심판이 이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의 진노는 도저히 거두어 질수 없는 상황이다.3절 - 다메섹다메섹은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인 길르앗 백성을 잔인하게 압박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잔혹하게 짓밟았음(타작기로 짓이기듯)에 대해 심판하시고 책임 물으신다. 이들의 짓밟음은 영토 확장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수탈, 착취행위였다. 이러한 일의 보응으로 그들이 이스라엘을 날카로운 철로 짓밟았으므로 전쟁 통해 하사엘의 집(아람왕조 = 왕의 멸망은 국가 멸망과 직결됨)에 불을 보내리라고 하신다. 이 예언은 피디오 필랏필 3세에 의해 성취된다.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이 동맹하여 앗수르 세력을 막으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르신과 베가를 폐위시키고 아람은 ‘길’에 추방당하리라고 말씀하신다.6절 - 가사블레셋 족속에 대한 죄목은? 한 거민을 몽땅 잡아 에돔(당시 국제 노예 무역상)에게 넘긴다. 즉, 노예로 팔아 먹었 부른 것은 국가간에 형제맹약을 맺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맹약을 배신하고 이익을 위해 노예로 팔았다.그들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어겼다. 언약의 관계에서 인간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은 언약파기를 매우 언짢게 보신다. 모든 죄의 시작은 언약을 깨는 것이다. 두로의 죄는 빛을 가리는 죄였다.11절 에돔의 죄에돔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에 집착되었다.그의 형제를 칼로 뒤쫓고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 여기서의 ???(아히; 형제)는 특별한 의미 즉, 야곱과 에서의 관계인데 이것을 여기서는 ???(라함)이라고 표현하였다. 그 죄의 질을 “긍휼을 버리며”라고 표현하고 있다. 에서의 성격은? 야곱의 죄를 잊지 않는 뿌리깊은 원한, 이것은 사랑의 속성이 아니다. 고전 13장에 보면 사랑은 악을 생각지 않는다. 에서는 뿌리깊은 증오 때문에 형제의 정을 말살하고 앙심깊은 죄(=노를 영원히 품는 죄, 노를 풀지 않는 죄)를 저질렀다고 말한다.13절 암몬의 죄길르앗 지역의 임산부의 배를 가른 죄인데 이 죄는 영토확장을 위해서 이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 당시의 싸움은 심리적인 것에 많은 영향받는 종류의 싸움이었다. 따라서 전쟁시 심리적으로 기수를 잡으려는 의도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항오를 서서 고함지르며’, 심리적으로 공포 유발하기 위한 조처 중의 하나로 “임부의 배를 갈랐다” 전쟁할 기력, 대항할 마음 품지 못하도록 잔인행위를 했다. 이는 다만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다.결론정죄와 구원은 하나님의 양면적 사역이다.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의 메시지에서는 이 두 활동이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느다. 아모스는 불과 몇 년후에 있게 될 요나 선지자의 예언 못지 않게 멸망을 전한 선지자였다.아모스서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악한 주변국가들에게 심판을 선고하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그러므로 1장의 중심점은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한 심판이다. 이는 그 열방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선지서의 시대적 구분, 역사적 서술, 선지서의 메시지 정리.hwp선지서와 구약과의 관계선지서는 구약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는 일련의 선지서들을 일컫는다. 네명의 선지자들이 쓴 네권의 긴 책들을 대선지서, 다른 짧은 것들을 소선지서라고 부른다.히브리 성경에는 모세오경, 선지서 그리고 시편들과 기타 글들의 순서로 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 선지서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눅 24:44에서 구약을 말씀하실 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표현하고 있다.성경의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선지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선지서가 쓰여진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여야 한다. 선지서는 진공가운데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상황속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이다. 모세오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역사서를 통해서는 이스라엘이 한 국가로 발전하고 그 후 주변국인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침략당하는 것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이런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선지서의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서를 공부하는 것은 선지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구약에서 선지서의 위치긍정적 위치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왕국을 다윗, 솔로몬 및 여러왕들을 통하여 이땅에 이루시기를 원하신다.2. 이 왕국이 모든 이방인들이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경배드리는데 사용되기를 원하신다.3. 선지서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소명과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나 있다.포로포로에서 귀환아브라함 소명 방황과 준비 사울 70년후 귀환출애굽 가나안 입성 여로보암 르호보암 왕들이삭의 결혼 성막계시 사사들의 통치 다윗 선지서들이 기록된 시간야곱의 후손들 솔로몬의 통치 앗수르바벨론바사/메대창조족장시대애굽시대광야시대정복 사사시대통일시대분국에서 포로시대부정적 위치1.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이스라엘 공의를 이루시라는 것과 에돔이 반드시 굴욕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IVP 주석 오바댜, 요나, 미가서, p. 25-26 참조). 혹자는 말하기를 이 책 가운데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배타적인 사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을 끝까지 반대하는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상징하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때문이다. 하나님은 열국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택한 것이지, 이스라엘을 무조건 편애하시는 것이 아니다.오바댜의 구조:1:1-1:91:10-1:151:17-1:21심판을 받는 에돔심판을 받는 이유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약속선지서의 시대적 구분, 역사적 서술, 선지서의 메시지 정리.hwp하나님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이 세상을 그대로 방치해두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도,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을 때도 계획이 있으셨다. 따라서 그 계획에 방해되는 일을 하는 국가, 가정, 개인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반드시 이루셨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이 사실을 너무나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더욱 잘 알 수 있다. 근시안적으로 보았을 때 죄인과 악한 나라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를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불의로 가득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를 베푸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커다란 위로가 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 우리를 안심케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한다. 그리고 결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반대되는 입장에 서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나 개인이나 커다란 비극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는 열국53장을 하고 나서야 밝혀진다) 그러나 찾아보니까 앞으로 올 구원사건은 출애굽과 다윗사건, 홍해사건과 연관된 사건으로 미래를 알리신다. 하나님이 미래를 말하면서 창세기부터의 모든 역사와 관련하여 언급하므로 과거사건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올 구원사건은 가장 흔한 것이 출애굽, 다음이 미디안 사건, 다윗정복, 여호수아, 모세를 언급하고 11장은 에덴동산을 언급한다.창세기부터의 모든 역사가 다 거론되는 것, 모세, 다윗, 여호수아, 기드온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모든 역사의 절정, 완성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이고자 함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미래 구원역사의 핵심인물로 등장하는데 이분이 행할 사역을 옛날 인물과 관련시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모든 구원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된다. 11장을 읽으면서 다양성은 그 자체가 뜻이 있다. 신약에서도 말하기를 약속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되었다고, 궁극적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되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다양한 인물, 사건이 그의 사역에서 발견된 이유는 무엇인가? 히 1장에 보면 πολυμερο?(폴류메로스; 여러 모양), πολυτροπω?(폴류트로포스; 여러 부분) 등 여러 부분으로, 여러 모양으로 당시에 계시하셨다고 한다. 구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들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지막날에는 아들 안에서 말씀으로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요 5:39를 보면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지혜와 모든 보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증거하고 있다.호세아서저자와 배경: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는 북부왕국을 위해 예언한 선지자였다. 그가 예언을 시작한 때는 여로보암 왕이 통치하던 시기였다(호 1:1). 여로보암 왕은 BC 793-753년(왕하 14:23-29)에 통치하였다. 그는 강력한 왕으로서 북동쪽으로는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영역까지 영토를 넓혔다(엑스포지터심판하신다.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성을 강조한다면 호세아는 하나님의 실망하지 않는 사랑을 강조하고 있고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아모스는 목자생활이 얼마난 위험하고 고된가를 잘 알며 그 당시의 장사꾼들의 속임수와 시장 질서의 무법성을 눈여겨보고 있었다.그는 공평하지 않은 사회경제체계의 악한 현실에 답답해 하였다. 도덕은 부패하였으며 이기주의 방탕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민족신 정도로만 생각하고 바알과 더불어 혼합적으로 섬겼다.아모스는 이러한 죄악된 홈합주의적 종교관에서 결과된 우상숭배 죄를 책망하고 유일신 신앙을 강조한다. 바알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여호와 하나님만 유일하신 하나님이며 살아계신 창조주, 섭리자이심을 선포한다.개요가. 하나님의 심판 선언(1:1-2:3)a. 이방국가드에 대한 심판 예언(1:1-2:3)b.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2:4-16)나. 아모스의 설교(3:1-6:14)a. 첫째 설교; 이스아렝의 운명(3:1-15)b. 둘째 설교; 이스라엘이 타락(4:1-13)c. 셋째 설교; 이스라엘에 대한 애가(5:1-6:14)다. 심판에 대한 환상과 회복에의 약속(7:1-9:15)a. 심판에 대한 다섯가지 환상(7:1-9:10) ; 메뚜기, 불, 다림줄, 과일, 광주리, 준엄한 복수b. 회복에 대한 약속(:11-15)아모스서의 구조:1:1-2:5 이웃 국가들에 대한 심판에 대한 예언2:6-6:14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예언7:1-9:15 심판에 대한 다섯 가지 비젼과 회복에 대한 소망아모스서의 구성:1장- 6장7장-9장이웃 나라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예언적 비젼들1:1 2:5 6:14이웃 국가의 심판이스라엘의 심판심판에 대한 다섯 가지 비젼과회복에 대한 소망(엑스포지터스 주석 아모스서 참조)요나서저자: 저자는 1:1에 근거하여 요나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북부왕국에서 나와서 북쪽으로 간 선지자이다. 그의 이름은 비둘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마도 그는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선지자 세계에 흩어진 모든 족속에게도 우리는 이 메시지를 전해야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이런 어려운 때를 당했을 때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혜택을 주어야될 것이다.스바냐서저자: 저자는 스바냐이다(1:1 참조). 이 이름에는 “여호와가 숨긴다”, “여호와가 보호한다”는 뜻이 있다. 아마도 스바냐는 므낫세 왕이 우상숭배를 위해서 많은 아이들을 죽일 당시에 태어나서 여호와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다(왕하 21:16).연대와 배경: 스바냐가 예언할 당시의 정치적 배경은 어둡고 암울하였다. 앗시리아는 멸망을 향해서 치닫고 있었고 마침내 BC. 612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되었다. 바벨론은 신진국가로서 BC. 625년에 왕국이 세워져 갈수록 강해졌다. 그리고 이 당시에 유다는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은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죄를 범했다. 특히 므낫세 왕과 암몬 왕은 도덕적으로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이 두 왕 때에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 극에 달했다. 유다왕 요시아 시대(BC. 640-609년)에 와서 개혁이 일어났다. 특히 BC. 621년에 개혁이 일어났는데 아마도 이 선지서는 그 전의 상황을 놓고 예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BC. 627년경부터 이 예언을 한 것이 아닌가 볼 수 있는데 이 때 예레미야도 역시 예언을 시작했다(월터 카이저 강의 노트 참조).메시지: 스바냐는 무엇보다도 종말에 관한 내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IVP 주석 나훔 하박국 스바냐의 저자인 데이빗 베이커(Baker)는 선지서 중에서 스바냐서가 가장 조직적으로 주의 날에 관한 예언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p. 84 참조). 주의 날을 말할 때는 가깝게는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가 심판을 받고 파멸할 것이라는 점과 또 멀리는 주님의 재림시에 일어날 사건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의 날 가운데에는 심판과 함께 축복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불의는 심판하시되 남은 자들과 충성된 자들을 회복시키시는 축복이 있음을 우리는 상기할 수 있다
토마스 G. 롱의『The Witness of Preaching』(증언하는 설교)를 읽고서론『설교자는 증인이다』, 『증언으로서의 설교』, 『증언하는 설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것을 볼 때에 설교에 대한 본서의 위치를 볼 수 있다. ?설교에 관한 책으로 특별한 사역 및 설교 구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을 다루겠다는 저자의 의도는 설교자는 누구이며 무슨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도록 권고하고 있다. 설교자가 예배의 현장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회중을 바라보고 자신이 회중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교회안에서 회중과의 한 지체요 참예자이고 위임받은 자임을 권고한다.제1장 설교란 무엇인가?저자는 본서의 목적을 설교는 거칠게 흐르는 넒고 깊은 강이라 표현하며 이 강을 건너는 사람에들에게 필요한 겸손과 신중함을 고취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설교 사역이 주는 특별한 기쁨을 제시하고 있다.설교란 무엇인가? 단순한 질문 같지만 아주 복잡한 문제이다.설교의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인가?① 설교를 듣는 회중이다. ② 설교자이다. ③ 설교, ④ 그리스도의 임재그렇다면 이 요소들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설교자와 회중의 관계? 설교의 형태등은 모두 설교자란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설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설교자의 이미지대사 하나님의 직접적임 말씀과 설교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신학적 관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관한 것,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통해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대사의 메시지를 듣는 회중은 믿음으로 듣고 깨닫는다.대사로서의 설교자의 임무는 성경에 귀를 귀울이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전하는 두 요소가 있지만 대사의 이미지는 회중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이 약점이 된다. 그러나 설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 바울의 말과 같이 긍극적으로 귀에 들려주는 것이며, 바르트의 말처럼 “회중에게 유익을 줄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목회자 설교자의 정체성은 목회자에게 찾는다.경적 설교 - 성경적 설교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가장 근원적이며 중요한 방법을 스스로 귀감이 되어 제시한다. 교회는 성경이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에 집중한다. 기독교적 설교를 표준이라고 부르는데 충분한 이유는 여기있다.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역동적인 행위는 모두 교회가 복음을 깨닫는 과정에 해당하며 설교자나 청중이 모두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영적으로 성숙하며 다시새로운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성경, 신학, 그리고 현대적 경험 -설교자는 교회를 대표하여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나아온 존재인데, 그 공동체의 신학적 전통과 사회적인 장소, 그리고 성경과 기독교의 복음에 대한 전이해를 가지고 나아온다.설교자가 본문이해를 위한 세가지 중요한 이해의 틀① 비평적 성경관- 문화적 핵심 이해, 문화적 신학적 유산, ② 신학적 유산 -서서히 신앙공동체가운데 형성된 일종의 체계적 방식, 영향성, 보편성, 세계관, ③ 청중들의 삶의 상황에 대한 인식- 성경은 시대적 제약없이 삶의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현실과는 별로 상관없는 추상적인 말씀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성경으로 나아갈 때 청중들을 함께 데리고 성경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에서 듣게 될 말씀은 그들을 위한 말씀이다. 어떻게 설교자가 이것을 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려고 애쓸 때 가능하다. 성경은 청중들의 상황을 조명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진 말씀’을 들려 준다. 설교자는 성경에 접근할 때 청중들과 함께 성경에 가야 한다.시작 성경적 설교의 출발점(성경본문, 외적 상황), 설교의 출발점과 관계없이 설교는 성경본문이 중심이 되어 설교의 내용과 목적을 이끌어가야 한다.주석하는 습관 책임있는 설교(시간과 연구의 노력 투자), 어떤 방식으로 성경연구를 하든지 그것은 습관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제2의 천성이 될 만큼 목회방식이나 스케줄 속에 깊이 배인 일상사가 되어야 한다경험적 귀납적 모험을 재창조하여 청중에게 재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명제적 설교를 방대하는 공동 전선에 동참하는 견해는 이야기 설교, 이미지설교, 은유중심적 설교, 위회적 설교, 대화식 설교, 산만하지 않는 비논설적 설교들이 빠른 속도로 20세기 후반의 설교양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명제적 설교를 반대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설교학 분야는 새로운 시각의 성경 해석, 설교방법읠 설교현장에 작용한다.사건에서 주장으로성경은 회중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설교로부터 가능케 한다. 기독교 공동체라는 상황아래서 해석된 본문이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것은 본문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언어로 가능해진다. 설교자는 석의를 통해 본문이 말하기 원하며 행하기 원하는 것을 목격자로서 증인이자 이제 이러한 주장을 설교를 통해 증언해야 할 자로서 증인이다.초점과 기능설교자는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설교를 통해 제시해야 한다.초점진술과 기능진술의 세가지 원리① 초점과기능진술은 성경본문에대한 석의과정으로부터 직접 나와야 한다.② 초점 및 기능진술은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③ 초점 및 기능 진술은 명확하고 통일성이 있으며 단순해야 한다.제5장 설교의 기본형식형식은 비교적 눈에 띠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설교의 효과나 영향력에 있어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 형식은 눈에 띠지 않지만 설교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실제적인 동력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강물의 흐름을 좌우하듯 설교의 형식은 설교의 흐름이나 방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설교의 내용은 형식과 별도의 실체로 생각하기 보다 내용의 형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설교의 형식이란 설교에서 어떤 것을 말하고 어떤 것을 행하며 어떤 순서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조직적인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는 여러 가지 형태와 모양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설교자에게는 어떻게 하면 특정 설교의 메시지와 목적에 가장 잘 부합되는 형식을 만들것인가라는 과제가 주어진다.개요작성: 전통적 방식구두전달 방식의 으로 이어지는 언어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 움직임의 반응은 항상 그런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교가 개념을 엮어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가? 의문을 갖게 한다.여러 가지 좋은 형식들모든 설교 형식은 설교를 둘러싼 특정상황에 맞추어 재단한 맞춤복이 되어야 한다.만족스런 설교의 형식 찾기① 설교의 초점 및 기능 진술로부터 시작하라② 설교에서 수행해야 할 전체적인 과제들을 세부적인 단위로 나누어라③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순서를 결정하라제6장 형식다듬기기본적 설교형식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목회적 관심을 보여주는 행위이다.거리측정설교의 모든 단계는 청중에게 일종의 변화를 요구한다. 설교자는 청중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확인하고 청중에게 이 여정에 함께 동참하자고 권할 시점은 언제쯤이 될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설교자료 찾기설교자는 청중을 위해 무엇을 더 붙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어떤 자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설교자는 청중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 설교는 “전달의 체계”로 이해되는데 전체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적합한 자료가 어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저장창고로부터 탈피하기설교는 추상적 형식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그것에 설교를 억지로 끼워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설교의 초점과 기능으로부터 시갖하여 그것에 적합한 바른 형식을 구성해야 한다.다양성의 중요성성경본문의 수사학적 형식의 다양성은 전술한 설교 구성 과정의 유동성과 함께 결합되어 매우 다양한 설교형식을 창출해 낸다. 설교자는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설교자자신이 선호하는 형태를 의식적으로 넘어서야만 한다.청중은 다양한 청취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방식으로 구성된 설교를 선호하며 보다 많은 것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이 들을 수 있는 설교의 전부는 아니다. 회중의 설교 선호 스타일의 차이점을 설교자가 인식해야 한다. 설교자는 분명한 개념적 이정표를 세우고 확고하게 정해진 설교 여정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는 설교자는 때때로 보다 유연한 자는 설교의 깊이를 시의적절하게 조절한다. 설교의 결론을 어떻게 맺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는 설교의 목적이 무엇이냐, 즉 설교의 초점 진술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제8장 설교에 있어서 이미지와 경험예수님은 이야기나 비유로 설교하셨다. 일상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하셨다.복음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주장하며 기독교의 증거는 자연히 인간 실존의 영역으로부터 나온 경험이나 사례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과연 어떤 경험과 이미지를 설교에 담을 것인가?이 예수님을 기독교 설교자들은 따라왔고,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끌어 낸 이야기들, 이미지, 은유, 직유 등을 통해 복음의 대화를 나누어 왔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이미지를 설교에 적용해 볼 때 알아 둘 세 가지 비유법이 있다.창문깨기설교에 사용되는 모든 경험적 요소들은 “예화”라고 부르며 그것을 “말씀의 창문”으로 생각하는 관점은 모두 교훈적이며 이성적이며 개념적인 설교관에 기인한다. 진정한 의사소통 영역을 파악할 수 있도록 예화에 대한 더욱 폭넓은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공구함 다시 채우기기본적 예화에 해당하는 세가지 비유법① 유추형식유추형태의 예화는 설교에서 마치 일반 문장속의 직유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설교의 이슈나 주제, 개념 및 행위를 다른 것에 비유하는 것이다. 외과수술과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② 실례형식이것은 대유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대유는 사물의 일부로 전체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이것은 그것 자체입니다”의 형식.③ 은유형식은유의 간단한 형식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을 친숙하지 않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유추는 훌륭한 선생의 도구가 되지만 은유는 시인의 도구가 된다. 예수님의 비유가 그러하다. 은유형식의 예화는 경험과 개념을 나란히 제시한 후 청중에게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것을 연결하도록 요구한다.문열기설교예화는 이해와 경험이라고 하는 보다 큰 방속으로 들어가는 출입문과 같다. 설교는 한 부분이 때때로 하나의 예화만 원하는 것이 아대화
히브리서 8장 1절-6절의 주해와 적용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8장은 7장에 대한 요약으로 시작하여 7장에서 논의한 주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8장도 역시 7장의 연속으로 탁월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논증을 계속한다. 그러나 대제사장 예수님을 이해하는 해석의 도구로 7장이 ‘멜기세덱’을 사용하는 반면에, 8장은 새언약을 사용한다. 8장은 크게 1-6절과 7-13절 두 문단으로 나눌수 있다. 이 두문단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6절의 ‘언약의 중보’는 7-13절의 주제이기 때문에 전자에서 예수님께서 새언약의 중보자로서 하늘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하신다는 것은 후자에서 새 언약의 성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여기에서는 8:1-6의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새 언약의 중보자 대제사장 예수(1-6절)1-6절은 다시 1-2절과 3-5절, 6절로 나눌 수 있다. 1-2절(A)과 6절(A')은 각각 새언약의 중보자로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3-5절(B')은 구언약하에서의 제사장의 성전 봉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⑴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참 성막의 일꾼이다(1-2절, A)1-2절에서는 물론 ‘새언약’이라는 단어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A와 A'의 구조는 ‘새언약’의 중재자로서 예수님을 명시하는 A'는 A와 병행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A를 언약의 특징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개역한글1a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b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c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2a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b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표준새번역1a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합니다b 곧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 한 분 계시다는 것입니다.c 그는 하늘에서 지엄하신 분의 보좌 오른쪽에 앉아 계시는데2a 성소 곧 참 장막에서 섬기시는 분이십니다b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우신 것이 아이다.그리스도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것이 아닌 진정한 예배처소인 천국의 하나님 존전으로 돌아가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동일한 보좌 앞으로 들어가 그분께 예배드리고 우리의 필요를 아뢸수 있도록 허용하신다.오늘날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천국의 하나님 보좌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언제가는 그 앞에서 영원히 살게 될것이다. 이제 유대 제사장 제도를 통해 존속하던 ‘옛방식’, ‘구언약방식’은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대체된 것이다(요14:6)1a의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합니다’라는 문구에 의해서 1-3절은 7장에서 논의한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요약한다. 1b-2b는 그 요약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1bc는 우리가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7장의 논증에서는 이렇게 요약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2a는 1bc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하늘에 앉아 계신 대제사장은 하늘에 있는 성소, 곧 성막의 종이다. 이러한 묘사는 지상의 성전의 종 모세를 의식한 것이다. 2b는 관계대명사(?ν)로 시작하는데 이 관계대명사는 하늘에 있는 ‘참 장막’을 선행사로 한다. 여기에서 지상의 성막은 사람이 세운것이지만 하늘의 장막은 하나님이 직접세우신 것이다.기능의 발전하늘 성전 하늘 성전: 대제사장연속성모방 원형 부활승천지상 성전 예수님(예물과 제사)그림자이러한 정황은 필연적으로 제사제도의 변환을 가져온다. 곧 모든 대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오도록 임직되었으나 예수님은 제물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 그는 하늘의 성소, 곧 참 성막에서 섬기는 대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3-5절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지상에 맡겨진 모든 제사제도는 하늘 성전에 대한 복사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복사본인 지상의 제사제도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하늘 성전과 그 성전의 제사제최종적이며 가장 마지막에 세움을 받은 예수께서는 결코 그 자리에서 물러나실 수 없다.제사장들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움을 받았다. 저 또한 제물로 드릴 것이 필요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도 희생제사를 드리도록 세움을 입었다.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의 생명을 드린것이다.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완전한 예물인것이다. 이는 단번에 드리신 제물로 모든 죄가 가리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역할, 그의 희생제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섬김은 모두 구언약 아래 있는 계획을 완전가 능가하는 것이다.3a의 내용은 구언약하에서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집행하는 직무에 대한 일반적인 진술이다. 그들의 직무는 바로 ‘예물과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3b에서 말한 것처럼 대제사장은 항상 무엇인가 드려야 할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3b의 내용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므로 3a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진술은 4-5절에서의 논증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4a는 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여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셨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 반대의 경우를 가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는 1c의 ‘하늘에서’와 4a의 ‘땅에’가 서로 대조적으로 표현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곧 승천하지 않고 땅에 계셨다면 예수님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4b에서 밝혀주고 있다. 곧 율법에 의하면 이 땅에서는 대제사장이 천상적 성전의 그림자로서 지상 성전에서 사역할 대 예물을 드리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한번도 예물을 드린적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대제사장으로 인정될 수 없었을 것이다.여기에서 저자는 하늘의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 활동하시는 예수님과 지상의 제사장들이 하는 제사적 시스템의 명백한 구별을 시도한다. 곧 천상 성전의 그림자요 모사로서 지상 성전에 예물과 제사를 드리는 제도가 무용하다는 것이을 하였다.⑶ 새언약의 중보자 예수그리스도(6절, A')6절(A')은 1-2절(A)과 병행되고 3-5절(B)과 대조된다. 그러므로 6절은 A-B-A'구조를 형성한다.개역한글6a.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b.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c. 더 좋은 언약의 중보라표준새번역6a.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욱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b. 그것은 그가 더 좋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우신c. 더 좋은 언약의 중재자 이시기 때문입니다.위의 문장에서 6b는 6a의 ‘더욱 훌륭한 직무’를 설명하고 잇고 6c는 6b의 ‘더 좋은 언약’을 설명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더 훌륭한 직무’(6a)는 6b에 따르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는 6c에 따르면 ‘더 좋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운 것이다. 여기에서 ‘더 훌륭한’이나 ‘더 좋은’과 같은 비교급을 사용하는 것은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언약의 제도와의 비교를 통해 전자의 탁월성을 드러내려는 의도이다.6절은 4-5절과의 대조에서 모세나 모세가 세운 성막에서 사역하는 지상의 제사장의 사역보다 더 탁월한 사역을 하게 되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곧 더 탁월한 사역으로서 예수님은 더 나은 약속들에 근거하여 세우신 더 나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특별히 ‘이제’라는 단어는 구속사적 성취의 현재적 성격을 나타내므로 이러한 탁월한 언약의 중보자로서 예수님의 사역은 현재적 성취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6절(A')내용은 1-2절(A)에서 이미 어는 정도 다룬 것이다. 그러므로 1-2절과 6절 사이에 A-A'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관계로부터 A'에서의 새언약의 중보자로서 예수그리스도는 A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참 성전인 하늘 성전에서 섬기는 분이다. 그리고 새언약에 대해서는 7-13절에 다루고 있다. 이 새로운 언약은 더 좋은 약속에 근거하며 이에 대해 저자는 10-12절에서 자세하게 논의한다. 그 언약이고 있는 사역을 노하고 있는 것이다. 지상의 장막은 운반가능하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 성소는 하늘위에 세워져 있다. 그것은 노략당하거나 파괴될 수 없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의 유명한 성전은 로마군데에 의해 파과되었다. 이 서신은 우리가 더 좋은 성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낟. 그것은 영원하고 불멸하며 하늘에 안전하게 세워져 있다.이 본문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이다. 그리고 그분과 관련된 세가지 이슈는 현대 세계를 사는 우리에게 특별한 적실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앞에 놓인 이 본문은 그분의 높아진 신분, 영원한 사역 그리고 현재의 일에 초점을 맞춘다.8장은 7장의 연속으로 대제사장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7장은 멜기세덱을 대제사장 예수를 이해하는 해석학적 도구로 사용되는 반면 8장은 언약적 관점에서 대제사장 예수를 설명한다. 8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여기서 다루었던 1-6절, 다루지 않은 7-13절로 나눈다. 1-6절은 다시 1-2절과 3-5절, 6절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A(1-2)-B(3-5)-A'(6절)의 구조이다. A와 A'는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다룬다. 새언약의 중보자로서 예수님은 지상의 성전이 아닌 참성전으로서 하늘 성전에서 섬기는 분이다. 중간에 삽인된 B(3-5)는 옛언약하에서의 제사장과 성전을 다룬다. 여기에서의 내용은 하늘 성전에서 섬기는 예수님의 사역이 참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임을 확증하는 역할을 한다. 다루지 않았지만 7-13절은 6절에서 새언약의 탁월성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새 언약의 백성에게 이 새언약에 머물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옛언약에서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옛언약의 한계를 초월한다. 이러한 새 언약의 탁월함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근거한다. 곧 새언약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의 대상으로 십자가에 못밖에 죽는 순종을 통해 율법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킴으로써 율법의 정죄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키셨다. 그러므로 새언약의 구조에서는 하나있다.